최규석 작가는 나를 모르지만 나는 그를 안다. 나는 그를 격하게 아낀다. 그의 작품을 아낀다. 그가 이 세상에 빛과 소금 같은 작품을 만들어내는 사람이고, 만들어낼 사람이라고 장담하고 확신한다. 그가 트위터에서 올린 글은 실망스러웠다. 본질적으로 그가 구사한 언어가 틀린 건 아니었다. 하지만 모든 언어에는 정확히 구사돼야 할 자리가 있고, 상황이 있다. 그게 아니었다. 실수였다. 하지만 나는 실수라는 말로 그런 상황을 온전히 덮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실수는 최규석 작가가 앞으로도 쭉 짊어지고 가야 할 십자가일 수밖에 없다. 사과를 했건, 그 사과가 명문이건 간에 그렇다.

최규석 작가의 사과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냐, 라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나는 그렇다. 왜냐면 나는 그 사과를 받을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최규석 작가가 왜 나한테 사과를 하냐. 그는 내게 잘못하지 않았다. 그런데 대체 너는 왜 화를 내는 것이냐, 라고 묻는다면 내가 그를 아꼈기 때문이다. 누가 너더러 그를 아끼라고 하였더냐, 라고 묻는다면 그의 작품이 나로 하여금 그를 아끼게 만들었다고 답하련다. 그렇다. 나는 그의 작품이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될 수도 있는 실수를 그가 스스로 저질렀다는 게 화가 났다. 그의 실수 혹은 오류를 빌미로 그를 땅에 묻고 이 세상으로부터 꺼지게끔 하려는 게 아니다. 그의 사과는 적절했고, 인정할만하다. 하지만 나에겐 그를 용서할 자격이 없다. 그가 구사한 언어의 피해자는 K 대학교에 다닌다는 32마리의 싸가지 없는 어린 수컷놈들이 싸질러 놓은 거지 발싸개 같은 음담패셜의 대상인 여자들일 것이다. 직접적인 대상이 누구였건 간에 그런 패악질을 잔뜩 퍼질러놓은 단톡방을 두고 ‘표현의 자유’라는 개념을 내포한 두둔을 한 건 정말 어리석은 패착이었다. 그건 오만이었다. 내가 뱉은 말은 공정하고 확고하다는 자아의 믿음에서 비롯된 오만한 발언이었다. 폭투에 가까운 실언이었다. 다행인 건 스스로가 그걸 빨리 깨달았고, 빨리 사과했으며 빨리 반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사과를 높이 산다. 그러니 나는 당분간 그의 사과 이후의 태도를 지켜볼 것이다. 물론 내가 아는 최규석의 작품들은 그가 결코 어리석고 패악적인 인물이 아닐 것임을 여전히 믿게 만든다. 최소한 나에겐 그 정도 믿음이 있고, 여전히 그의 작품을 지지하며 앞으로도 그의 작품이 계속되길 염원할 것이다. 고로 그의 사과에 열광하는 무리들의 멱살을 잡고 밀어내고 싶다. 지금은 최규석작가의 사과에 열광할 때가 아니다. 지금은 그가 십자가를 짊어지고 걸어나가는 것을 뒤따라가주는 것이 예의다. 그럼으로써 그를 십자가에 매달아 버리려는 무리들로부터 그를 지키고, 그가 스스로 자신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끝까지 걸어나갈 수 있도록 지켜줘야 한다. 부디 이번 일이 최규석 작가의 경력을 보다 단단하게 매만질 수 있는 경험이 되길 기원한다. 나는 그의 잘못을 잊지 않고 그의 작품을 계속 지켜볼 것이다. 그것이 진짜 그를 지지하는 독자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나는 믿는다.



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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