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9'에 해당되는 글 8건
- 2016.09.27 마른 빨래를 개며
- 2016.09.26 을지로가 꿈꾸는 예술적 미래
- 2016.09.26 결혼에 관한 사소한 생각
- 2016.09.26 이랑 인터뷰
- 2016.09.26 VR은 영화의 미래인가
- 2016.09.26 김지운 감독 인터뷰
- 2016.09.03 허진호 감독 인터뷰
- 2016.09.03 연상호 감독 인터뷰
지난 반세기 동안 을지로의 시간은 천천히 흘러갔다. 자연스럽게 낡아가면서도 풍화되지 않는 활기를 지켜왔다. 그 활기에 새로운 감각이 수혈되고 있다. 을지로가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반복적으로 움직이는 기계의 굉음과 마찰음, 비좁은 골목을 민첩하게 누비는 오토바이와 자전거들. 이른 아침 을지로의 시간은 피가 도는 혈관처럼 꾸준하고 성실하게 흐른다. 6.25 전쟁 이후, 목재, 철물, 공구, 미싱, 타일도기, 조명 등 갖은 분야의 제조업자들이 자리를 잡고 반세기 동안 뿌리를 내린 을지로는 고목처럼 자리한 가게들의 숲과 같다. 모세혈관처럼 어지럽게 이어지는 비좁은 골목마다 손으로 직접 쓴 간판들이 이어진다. 그 간판 아래로 부지런히 오가는 발걸음과 바삐 움직이는 손놀림을 통해 을지로는 ‘만들지 못하는 것이 없고, 구하지 못할 것도 없는 곳’이 됐다.
그런 을지로에 최근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다양한 분야의 예술작가들이 을지로에 둥지를 트고 작업을 개진해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젊은 작가들의 유입으로 색이 바랜 거리에 새로운 활기가 채색되고 있다. 그런데 작가들은 왜 을지로를 찾았을까. “작업실을 옮길 시기가 됐고, 더 큰 공간이 필요해서 찾다가 을지로로 오게 됐어요. 사실 을지로는 재료를 사러 자주 오던 곳인데 이곳에 작업실을 두게 되니 운송도 용이해졌죠. 따로 용달을 부를 필요도 없고 리어카만 끌고 가면 되니까요.” 지난 해에 이태원에서 을지로로 이전한 ‘길종상가’의 대표 박길종의 말처럼 을지로는 장르를 망라한 예술가들이 작품의 재료를 수급하기 위해 발품을 파는 곳이다. 설치 작품이나 가구 제작 등 독창적인 디자인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길종상가가 을지로에 새롭게 자리를 잡은 것도 그런 경험과 무관하지 않다.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아트디렉터인 염승일이 디자인 스튜디오 ‘플랫플래그(Flat Flag)’를 을지로에 연 이유도 동일하다. “원래 문래동과 이태원에서 작업실을 열었다가 을지로3가의 공동작업실에 들어간 뒤 재료 공급과 공정 작업이 용이하다는 장점을 알게 됐고 개인 스튜디오를 열기 위한 최적의 장소를 찾았습니다. 공업지대가 가까운 곳에선 일반적인 사무실을 열긴 어렵지만 작품을 만드는 작가에게 터프한 환경은 문제가 안 되죠.”
재료와의 접근성이 용이하다는 장점은 새로운 영감을 부여하는, 창작의 기회비용을 제공하기도 한다. “다양한 재료를 접할 기회가 늘어나면서 잘 모르던 재료를 알게 될 때고 있고 그런 과정을 통해 생각하지 못한 아이디어를 얻을 때도 생기는 거 같아요.” 박길종 대표의 말이다. 아트디렉터 염승일도 비슷한 목소리를 낸다. “재료나 도구를 바로 수급할 수 있는 환경에 머무를 수 있으니 적용이 가능할 것 같은 소재를 접할 때마다 시도해 보고자 하는 의지가 생깁니다. 그만큼 당장 적용할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이 생기는 거죠.” 크게 발품을 팔지 않아도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게 됐으니 눈여겨보지 않았던 것을 관찰할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이는 창작열을 한 뼘 더 늘리는 기회로 호환되는 셈이다. 그러니까 을지로에서 거리감이란 그 자체로 작가들에게 새로운 영감이 된다.
을지로가 주는 거리감의 장점은 단순히 을지로 내에서만 머물지 않는다. 서울의 중심지에 자리한 을지로는 어디서든 가깝게 올 수 있고, 어디나 가깝게 갈 수 있는 곳이다.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이자 인쇄소인 코우너스는 지난 해 소공동에서 을지로로 자리를 옮겼다. “사무실에서 디자인과 인쇄를 하지만 재단, 제본, 기타 커팅 등의 후가공은 거의 충무로에 있는 인쇄골목에서 한다고 보시면 돼요. 그래서 소공동에 있을 땐 충무로까지 택시를 타고 오갔지만 을지로에선 상대적으로 가까워서 자전거를 타고 다니죠. 게다가 종이를 배송할 때도 가까운 지역은 퀵비를 받지 않고요. 여러 모로 비용이 절감된 셈이죠.” 코우너스의 공동대표 조효준의 말이다. 또 다른 공동대표 김대웅이 말을 보탰다. “아무래도 충무로는 걸어서도 갈 수 있는 거리라 찾아가는데 부담이 덜한 거 같아요. 그래서 후가공의 종류가 다양하니 작업에 어울릴만한 업체를 찾기 위해 예전보다 많이 돌아다닐 수 있었어요.” 플랫플래그의 염승일도 비슷한 장점을 느끼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레이저 커팅이나 3D 프린팅을 활용하고 있는데 을지로와 가깝기 때문에 여러 모로 좋습니다.” 결국 서울이라는 대도시의 중심에서 오늘날까지 다양한 산업을 품고 우직하게 자리를 지켜온 을지로라는 거점 자체가 예술가들을 위한 보고가 된 셈이다.
을지로 디자인 예술 프로젝트
개인적으로 을지로를 개척한 작가들도 있지만 공적인 프로젝트를 통해 을지로에 정착한 작가들도 있다. 지나 2014년 서울특별시 중구청의 시장경제과에선 을지로의 경제 활성화 방안을 모색하던 중 을지로의 공가를 조사했다. 그리고 이런 공가들의 활용방안을 구상한 뒤 업무계획수립을 세운 것이 2015년의 일이었다. 중구청의 지원을 통해 비어있는 건물을 젊은 예술가들의 공간으로 활용하고자 파악된 공가의 건물주들과의 사업설명회를 열었다. 자신의 공간을 얻지 못한 젊은 예술가들에게 개인의 창작열을 끌어올릴 수 있는 작업실을 제공하고 이를 지역사회에 새로운 변화를 모색할 수 있는 기회로 모색하자는 취지에서였다. 몇몇 건물주가 이에 호응했다. 중구청에선 건물주를 설득해 절반으로 조정한 월세의 10%만을 작가에게 부담했다. 보증금과 나머지 90%의 월세는 중구청에서 보장하는 방식으로 2년 계약을 보장하기로 했다. 이것이 바로 을지로 디자인 예술 프로젝트다.
그런데 중구청에선 왜 을지로의 공가를 예술가들의 공간으로 탈바꿈시킬 생각을 했을까? “을지로에는 없는 게 없습니다. 예술가들에게 필요한 재료나 기술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지역이라 그들이 선호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사실 서울에 이런 곳이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언젠가 이런 풍경이 사라지기 전에 더 많은 사람이 봐줬으면 하는 바람도 있어요. 그래서 예술과 연계하면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가 용이한 부분이 있으니 예술가들에게 현실적인 도움을 주고 지역경제에도 이바지할 수 있는 사업이라 판단했어요.” 중구청 시장경제과 이하숙의 설명처럼 을지로에 예술적인 숨을 불어넣고 새로운 활기를 일으키겠다는 취지에서 추진된 프로젝트인 셈이다.
그리고 2015년 7월, 프로젝트의 1기 멤버의 입주로 시작된 프로젝트는 현재 2기 멤버까지 입주하며 다섯 개의 공간을 확보했다. 여섯 명의 작가가 모여 다양한 예술활동을 전시하는 예술창작공간 ‘슬로우 슬로우 퀵 퀵’을 비롯해 교육대학원에서 만난 미술학부 전공자 7인이 함께 뜻을 모아 감상 교육이나 체험프로그램을 통한 공동체 중심의 미술사업을 개진하는 ‘R3028’ 그리고 가구와 생활용품 제작 스튜디오인 ‘산림조형’과 을지생산이라는 브랜드를 육성하고자 하는 금속공예 스튜디오 ‘서클활동’ 등 다양한 결을 지닌 젊은 작가들이 을지로 디자인 예술 프로젝트라는 지붕 아래에 자리를 폈다.
가구와 생활용품을 디자인하는 산림조형의 소동호 작가는 이 프로젝트의 1기 멤버로서 어느덧 을지로에서 1년을 보냈다. 학생 때부터 찾았던 을지로에 새로운 작업실을 구하려던 찰나에 때마침 프로젝트 공고를 알게 됐고 지원하게 됐다는 그는 을지로를 찾은 여타의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물리적 접근의 용이함과 재료 수급의 수월함에 만족하고 있다. 하지만 그뿐만이 아니다. “주변에서 다양한 기술을 접하게 되면서 새로운 영감을 얻습니다. 바로 옆에 흔히 시보리라고 말하는, 냉면기와 같은 원형판의 형태를 찍어내는 사출 공정을 하는 집이 있는데 요즘의 대량생산 방식과 다른 수공업 방식으로 작업하기 때문에 그런 기술을 활용해도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방식이 있다는 걸 알아도 직접 볼 기회가 없었는데 이런 기회에 숙련된 기술자의 도움을 얻어 보다 효율적인 작업방식을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서울 안에서 금속공예 재료 수급이 유일하게 가능한 곳인 을지로를 학생시절부터 자주 찾아서 잘 안다는 ‘서클활동’의 조민정 작가 또한 을지로의 전통적인 기술자들과의 협업 구조를 큰 장점으로 꼽는다. “금속 공예 특성상 기술자와 함께 가성비를 살릴 수 있는 협업이 가능할 거란 판단을 했어요. 그리고 작은 스튜디오에선 큰 공정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시제품 제작이 쉽지 않은데 주변에 큰 공정이 가능한 제조사들이 있으니 시제품 제작이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죠.” 오랜 역사와 함께 기술을 연마해온 숙련공들이 즐비한 을지로는 젊은 작가들 입장에선 자신들의 창작열을 완성도 있게 구현해줄 원숙한 파트너와의 협업을 기대할 수 있는 이상향인 것이다. 물론 천리길도 한걸음부터. 오랫동안 생업의 터전을 지켜온 기술자들을 설득하고 새로운 방식을 제안하는 과정이 단박에 이뤄질 리 없다. 그리고 이미 시행착오를 겪은 젊은 작가들은 새로운 접점을 찾아가는 중이다. 서클활동의 이건희 작가 또한 그렇다. “지속적으로 소통하면서 협업을 해봐야 가능성이 확대될 것 같아요. 한편으론 숙련된 기술자들의 작업 방식을 관찰하는 과정이 현장 상황을 고려한 현실적인 디자인을 구상하는 계기가 되는 것도 같습니다.”
중구청에선 매년 을지로 일대의 조명 업체들과 연계한 ‘을지로 라이트웨이’라는 행사를 개최한다. 올해에도 11월에 어김없이 열리는데 을지로 디자인 아트 프로젝트에 입주한 작가들도 이 행사에 참여할 예정이다. 아무래도 지원사업에 참여하는 작가들이 의무감에 짓눌리는 건 아닐지 의심스러웠지만 작가들은 오히려 이를 새로운 기회로 여기고 보다 적극적이었다. “처음에는 의무감이 들었지만 점점 지역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생기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방향성을 찾게 되는 것도 같아요.” 실제로 소동호 작가는 프로젝트에 참여한 뒤 을지로에 많은 기여를 했다. 을지로 버스 정류장에 타일 도기 특화정류장 디자인에 참여했고, 을지로 투어 프로그램인 ‘을지유람’의 지도 디자인 작업을 도맡기도 했다. 소동호 작가와 함께 을지3호를 공유하는 이지성 작가는 더 큰 그림을 기대하고 있다. “을지로 기반의 창작자가 늘어난 만큼 그들을 묶을 수 있는 네트워크가 형성될 수 있지 않을까요? 아마 올해 라이트웨이에서 어느 정도 실현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전문분야가 각자 다른 만큼 서로의 재능을 나누는 활동을 조금씩 해나가야죠.”
을지로라는 이름으로
한국에서 로봇공학을 전공하고 영국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뒤 영국을 비롯한 해외에서 활동해온 정원석 작가가 국내로 들어와 스튜디오 ‘메이커원(Makerwon)’의 자리를 을지로로 낙점한 것도 접근성 때문이었다. “금속과 전자 관련해서 재료 수급이 용이한 동시에 매뉴팩처링이 가능한 곳은 을지로뿐이었어요. 영국에도 이런 곳은 없어요. 서울처럼 고도로 발달한 도시 한가운데에 매뉴팩처링이 가능한 지역은 전세계적으로 이곳뿐일 거예요.” 그의 말처럼 을지로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기 힘든 풍경이다. 언뜻 보면 낡고 황폐해진 슬럼가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살아 숨쉬는 공간이다. 오래된 역사성을 지닌 영토를 기반으로 켜켜이 쌓여온 기술의 집합소. 창작적인 영감을 부추기는 이야기와 창작을 구체화시키는 노하우가 자리한, 완벽한 유산이다. “일본 요꼬하마 시의 상점가인 모토마치는 장인들의 집합소 같은 곳이에요. 모토마치에서 만든 제품들은 도쿄의 유명한 상점가인 긴자로 유통되는데 그만큼 오리지널이라 인정 받는 브랜드가 된 셈이죠. 을지로로 그렇게 지역을 대변하는 브랜드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요?” 이하숙 씨의 바람이 허무맹랑하게 들리지 않았다. 그녀와 같은 꿈을 꾸는 예술가들이 이미 을지로 안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을지로라는 이름으로, 가능한 미래다.
(MorningCalm 09 SEPTEMBER 2016 'Contemporary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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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별 일이 아니다. 하지만 별 일을 겪게 되는 일이 결혼일지도 모르겠다. 결혼 이후 3년 남짓한 세월을 보낸 입장에서 되새기는, 결혼에 관하여.
벌써 3년이다. 3년을 만난 여자친구가 아내가 돼서 함께 살게 된 것이. 그러니까 지금의 아내와는 6년째 알고 지낸 사이가 된 셈인데 우린 남들이 신혼부부라고 부를 때에도 특별히 신혼 같다는 생각을 못했다. ‘4년째 연애 중’이 ‘결혼 4년차’로 갑자기 바뀐 기분이었달까. 어쨌든 연애라는 것이 인생에서 쓸모 없는 단어가 된 뒤로 많은 일이 있었지만 어쨌든 결혼을 했다는 것이 새삼스레 실감난다거나 그렇진 않다. 하지만 여전히 결혼식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종종 실감하게 된다. 이를 테면 타인의 결혼식장에 가게 되는 경우, 턱시도를 입을 일도 없었고, 주례사를 들을 일도 없었고, 결혼사진을 찍을 일도 없었던 내게 언제나 결혼식은 경험해보지 못해서 신기한 구경이기도 하지만 경험해보지 않아서 다행스런 통과의례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쨌든 결혼식을 하지 않음으로써 일반적인 결혼 준비 절차를 밟는 대부분의 예비 부부들과 다른 방식의 결혼 과정을 겪었던 것도 어떤 의미에선 남다른 경험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누가 그랬다. 결혼은 일생일대의 쇼핑 기회라고. 부피가 큰 가구부터 사소한 가재도구까지, 사야 할 것도 많고, 사고 싶은 것도 많아진다. 하지만 필요할 것 같아서 사는 것은 최대한 지양하고, 살면서 필요한 게 생기면 그때 사라는 유경험자의 조언을 받들어 최대한 절제한다고 했건만 3년을 살고 나니 부질 없이 자리를 차지하거나 어딘가에 쳐 박힌 물건들도 있긴 하다. 이를 테면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기계 같은 것 따위 말이다. 3년 동안, 아니, 결혼하고 1년 사이에 한 세 번 정도나 썼던가. 그러니까 그때는 일생일대의 쇼핑 기회라지만, 희한하게도 인생에서 쓸모 없는 것들이 굉장히 갖고 싶어지는, 절정의 지름신을 접신하기 좋은 타이밍이기도 한 것 같다. 그러니 혹시라도 지금 결혼을 앞두고 세간을 장만 중인 예비부부가 이 글을 보고 있다면 살면서 이건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 이상 구매 리스트에서 일단 지워두는 게 좋겠다.
결혼 과정에서 선결 과제는 신혼집을 구하는 일이다. 집을 구하면 일단 결혼 과정의 절반은 끝난다고 보면 된다. 물론 그 과정은 만만치 않다. 아내의 직장과 내 직장의 중간지대에서 집을 보러 다녔고, 최대한 발품을 팔아 일대의 부동산을 샅샅이 방문해 연락처를 남겼는데 그만큼 많은 집을 보러 다녔다. 사실 집을 보러 다닌다는 건 흥미로운 일이었다. 단순히 집을 보러 가는 것 같지만 결국 본의 아니게 타인의 삶을 훔쳐보게 되는 과정이다. 그리고 세상엔 정말 별의별 집이 다 있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집을 구하는 신혼부부는 호구가 되기 좋은 존재라는 걸 깨달았다. 신혼집은 결혼식 전까진 구해야 하니 적당한 집을 구하지 못하면 결국 닥쳐서 구할 수 있는 집을 구하는 경우가 많다고 어느 친절한 부동산 주인이 말을 해준 뒤로 그 동안 봐왔던 집들이 새롭게 보이기도 했다. 한번은 터무니 없는 집을 보여주며 ‘이 정도면 신혼부부가 살기 딱 좋죠. 그런데 결혼식 날짜가 언제에요?’라고 묻던 의도가 갑자기 의심스러웠다. 어쨌든 중요한 건 집을 구했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마음에 드는 동네에, 원하던 예산 안에서.
아까도 말했듯이 결혼식을 하지 않는다는 건 사실상 결혼 과정의 기준점이 사라지는 일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결혼 과정들이 헤쳐 모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를 테면 우리 부부는 신혼집을 확정하기 전에 신혼여행을 다녀왔는데 이유인즉슨 성수기 시즌이 와서 항공료나 숙박비가 오르기 시작하는 5월이 되기 전인 4월에 신혼여행을 다녀오면 경비를 상당히 아낄 수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래서 4월에 하와이로 이륙하는 비행기를 탔다. 그런데 신혼여행을 함께 한 건 나와 아내 그리고 친한 지인까지 세 사람이었다. 나의 결혼 과정을 듣던 이들은 보통 이 대목에서 동공이 확장되는 게 느껴지는데 사실 아내와 나는 어차피 함께 술 마시며 어울릴 수 있는 지인이 있다면 더욱 재미있지 않겠냐는 의기투합으로 상황에 어울리는 지인을 섭외해 신혼여행을 빙자한 그냥 여행을 했던 셈이라 해도 좋았던 것이었다.
그런데 만약 그 지인이 없었다면 하와이 신혼여행은 지금보다 특별한 기억으로 남기 어려웠을 것 같다. 하와이 여행에 동행한 지인은 하와이 현지에서 금발머리 신부가 주례를 하는 결혼식을 선물했는데 정말 뜻 깊은 추억이 됐다. 턱시도와 웨딩드레스를 입지 않고, 결혼행진곡도 축가도 없는 결혼식이었지만 앞으론 바다가 보이고, 등 뒤론 공원이 이어지는 곳에서 아내와 함께 잘살 것을 다짐했던 기억은 분명 인생에서 잊기 힘든 순간으로 남아있고 남게 될 것 같다. 그런데 결국 내가 결혼식을 하지 않음으로써 겪을 수 있었던 남다른 과정들은 사실 그 결혼을 흔쾌히 허락해준 양가의 부모님들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과묵한 미식가이신 장인 어른과 손재주가 남다른 장모님을 뵙기 위해 부산에 내려갈 때마다 여행 가는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인생의 복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결혼이란 내게 여행과도 같은 것이었고, 여전히 그렇다. 당신도 그럴 것이다.
(ELLE BRIDE NO.05 FALL/WINTER 'ELLE BRIDE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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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랑한 이랑
TALK SONG
말을 하다 보니 노래를 하게 됐다는 이랑은 그림도 그리고, 연출도 하고, 글도 쓴다. 낭랑한 목소리에 담긴 범상치 않은 생각이 파도처럼 밀려오다가 천진난만한 웃음으로 부서졌다. 유쾌했다.
내일 해외에 나간다면서요?
일본에 가요. 앨범이 나오거든요. 1집 <욘욘슨>과 2집 <신의 놀이>가 한꺼번에 9월에 발매돼서 현지 레이블과 디자인 상의하고, 인터뷰도 해요. 여행도 갈 거고요.
<신의 놀이>는 4년만의 신보에요. 초판 1천장이 다 매진됐다던데.
아마 지금 인쇄 중일 거예요.
그런데 CD 대신 다운로드 코드번호만 있더군요.
앨범을 제작한 음반사 ‘소모임’ 대표가 밴드도 하는데 1집 앨범을 내면서 패키지에 공을 많이 들였대요. 그런데 막상 아무도 CD를 안 듣더란 거에요. 그래서 제 신보는 그냥 CD 없이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대요.
음원서비스를 하지 않은 이유가 있나요.
열심히 만든 책이 너무 예쁘니 다들 책을 사서 만져봤으면 하는 마음에 미뤘죠. 음원을 다운 받으면 음반을 사지 않을 테니까 책 자체가 있는지도 모를 거라서.
아무래도 음반보다는 책을 한 권 산 기분이에요.
1집처럼 손 글씨로 가사집을 써볼까 했는데 그러기엔 가사가 길었어요. 그래서 타이핑하고 보니까 글을 더 붙이고 싶어졌고, 가사에 어울리는 글을 구성하다 보니 책처럼 만들고 싶어졌어요. 그래서 좋아하는 작가인 데이비드 실즈의 양장본 원서와 커트 보네거트의 얇은 에세이를 제시하면서 이런 걸 만들고 싶다고 하니 대표님도 동의하면서 그렇게 결정됐어요.
작곡가들은 악상을 떠올린다고 하는데, 악곡보단 가사가 더욱 중요하게 느껴지는 군요.
원래 악상 같은 걸 떠올릴 수 없는 사람이라(웃음). 항상 일기를 고르는 걸로 노래 만들기를 시작해요. 노래를 처음 부를 땐 음이 거의 없어요. 혼잣말하면서 기타를 치는 식이죠.
구어체 가사의 말맛이 느껴져서 장기하의 여자 버전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반야심경 같기도 하고(웃음). 말 자체에 있는 음악적 리듬이 중요하죠. 노래를 한다기 보단 말을 좀 더 크게 하는 느낌이랄까요? 창법 자체를 생각해본 적도 없고.
처음 음반을 낸 계기가 궁금하네요.
집에서 만든 데모 음원을 싸이월드에 올렸더니 제 친구가 소모임 음반사 대표님께 소개시켜줘서 미팅을 했는데 제 음반을 내고 싶어 했어요. 사실 소속 뮤지션 하나 없는 곳이라 음반을 낼 수 있다는 근거가 없었는데 보는 눈이 있더라고요. 노래에 재미있는 구석이 있지만 이건 웃긴 사람의 노래가 아니라 슬픈 사람의 노래라고. 사실 제가 슬플 때만 음악을 만들었거든요.
<신의 놀이>에선 신과 죽음이란 단어가 가장 많이 등장하는 거 같아요. 마치 자신을 초월하고자 하는 욕망이 느껴지기도 하고.
재수 없게 들릴 수도 있는데 저는 남들 위에 서서 모든 것을 조종하고 싶나 봐요. 심지어 제 자신도 관전하듯 보거든요. 스스로를 이랑이라는 캐릭터로 생각할 때가 있어요. 그렇게 이랑이란 캐릭터를 관찰하는 동시에 이랑이란 캐릭터로서 고민도 하고.
1번 트랙인 ‘신의 놀이’에는 ‘어쩌면 난 영화를 만드는 일로 신의 놀이를 하려는 지도 몰라’라는 가사가 나오는데 감독으로서의 철학이 느껴졌어요.
한예종에서 이창동 감독님의 연출 수업을 들었는데 카메라 앞에서 모든 일이 자연스럽게 벌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게 좋은 연출이라며, 그게 신의 연출이라 하셨어요. 결국 감독은 자기 세계를 만들기 위해 사람들을 조종해 자연스럽게 조작하는 역할이잖아요. 남보다 위에 올라서 있는 느낌인데 저는 이런 느낌을 즐기는 거 같아요. 이번에 웹드라마 <게임회사 여직원들>을 4회 정도 연출하면서 ‘신브레이크다운’이란 걸 처음 해봤는데 파트별로 20여명의 사람들이 제가 쓴 대본을 두고 둘러앉아 질문하는 거에요. 소품의 형태나 음악 등 준비할 것들을 물어보고 제가 대답만 하면 다들 알아서 준비해요. 배우들은 연기하고, 소품팀은 소품 챙기고, 연출부는 연출과정을 일일이 짚어주고, 촬영팀은 콘티까지 다 짜서 촬영하고, 끝나면 편집기사님이 편집하고, 믹싱기사님이 믹싱하고, 솔직히 제가 할 일은 별로 없어요. 그런데 제 작품으로 나가잖아요. 결국 이 모든 걸 제가 컨트롤하는 셈이니 신기한 위치인 거죠.
웹드라마 <출출한 여자>의 에피소드 연출을 제안했던 윤성호 감독과의 인연으로 <게임회사 여직원들> 연출에도 참여했다던데 윤성호 감독은 어떻게 알게 됐나요?
한예종에 와서 수업을 했어요. 친해질 기회가 생겼죠. 짧은 콩트를 찍는데 도와달라 그래서 대본 외우고 연기한 적도 있었어요. 그러다 제 졸업작품이 재미있다고 칭찬하더니 <출출한 여자>를 같이 하자고 해서 참여했고, <게임회사 여직원들>도 하게 됐죠.
아무래도 주변에서 뭔가를 제안하는 사람이 많은 거 같아요.
사람들에게 많은 걸 보여주고 말해주기 때문일지도 몰라요. ‘지금 이걸 이렇게 할 거야’란 식으로. 조금 더 발전되면 또 얘기하고. 노래 만들기 시작했을 때도 매일 학교 식당 앞에서 불렀어요. 당시에 학교 작업실에서 살 때였는데 방에서 부르면 심심하니까 앰프 갖고 나가서 부른 건데 애들도 좋아해 주니까. 그렇게 공짜로 많이 풀었어요.
7번 트랙인 ‘평범한 사람’은 평범한 사람들을 위로하는 노래처럼 느껴지는데 그 위로의 대상엔 본인도 들어갈까요?
첫 앨범을 내고 인터뷰를 한 덕분에 몇몇 매체나 브랜드랑 친분이 생기면서 공짜 선물을 받거나 행사에 초대받는 경험을 했는데 그게 무서웠어요. 쉴새 없이 선물을 받고, 매일 같이 행사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멋지고 아름다운 것을 무감각하게 받고, 쓰고, 자랑하면서 그게 이상하다는 걸 잊어버릴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저는 노숙자도 무섭거든요. 표정이 없잖아요. 질문하는 걸 까먹은 사람 같아요. 자기 모습을 잊어버리고, 수치심조차 없어진 사람. 결국 그런 두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남들과의 차이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제가 위로하고 싶은 평범한 사람들인 거죠. ‘왜 나는 저렇게 될 수 없지?’라며 누군가와의 차이를 생각한다는 건 최소한 자기 위치에 대한 생각이란 걸 하고 사는 사람이니까, 자신을 잊어버리지 않아서 스스로를 연민하는 그런 마음을 위로하고 싶은 거에요.
자신을 잃어버릴까 봐 두렵나 봐요.
맞아요. 한번은 파티에 초대됐는데 TV에 나오는 사람들과 같이 있는 게 무섭더라고요.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이건 언젠가 써먹을 수 있는 장면이라며 스스로를 관전하고 있고(웃음). 어쨌든 그런 걸 즐기다가 그런 기회가 사라졌을 때의 우울감을 예측하니까 정신차리는 거죠. 본연의 모습도 아닌데 본래 갖고 있던 아름다움마저 없어질 수도 있다는 게 싫어요. 결국 그런 상실감 때문에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처지를 비난하다 자살할 수도 있잖아요.
유명세가 오히려 결핍이 된다면 아이러니하겠네요.
유명해지고 싶어하는 제 친구한테 이런 말을 해준 적이 있어요. ‘좋아요’ 같은 거 더 받으려고 이상한 짓 하지 말고 지금 할만한 일을 하라고. 저는 유명해지고 싶어한다는 그런 마음이 제일 무섭게 느껴져요. 아마 유명한 상태가 되면 유명하다는 느낌조차 무감각해질 거에요. 돌이켜보면 지금이 제일 유명한 때일 수 있잖아요. 가장 유명한 때인데 정작 유명한 걸 즐길 수 없는 거죠.
그런데 ‘평범한 사람’에서 등장하는 멋있는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요?
조금 유치할 수 있는데 제가 모델 김원중을 좋아하거든요. 김원중 사진을 보다가 김원중은 거울을 보면 무슨 생각이 들까 생각했어요. 아침에 일어나도 멋있을 거 같고, 자기 전에도 멋있을 거 같고(웃음).
8번 트랙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를 미워하기 시작했다’는 제목 자체가 비참하면서도 결연하게 들려요. 경험이 반영된 노래일까요?
경험에서 가져온 것도 있죠. 제가 겪은 미움이라던지, 가족이나 죽음에 대한 생각 등 제 경험을 확장한 부분들이죠. 그걸 노래로 하기 잘했다고 생각했어요. 사람과 사람이 가까워져서 생기는 사건은 제대로 설명해도 왜곡되고 가십으로 소비되지만 쓰고 부르는 건 이야기로 불리니까 나한테 생긴 일을 일일이 알진 못해도 그런 정서를 노래함으로써 공유할 수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러니 일일이 설명하고 이해 받는 것보다도 노래를 해서 함께 울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게 더 좋은 일 같아요.
음악적인 평가에 대해서 신경 쓰이진 않나요?
보긴 하지만 솔직히 신경 쓰이진 않아요. 저는 결과보단 과정에서 재미를 느끼는 편이기도 하고요. 책도, 만화도, 대본도 막 끝냈을 때 혼자 기뻐서 울고 난리가 나요.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사람이 된 거 같아서 셀카도 찍고(웃음). 그런 과정이 결과물을 보는 것보다 재미있어요. 그래서 완성된 곡을 다시 부르는 것도 솔직히 재미가 없어요. 오늘 <게임회사 여직원들>도 마지막화까지 공개됐는데 역시나 그러려니 하게 되더라고요. 아무래도 결과물에 대한 평가도 그래서 신경 쓰이진 않나 봐요. 그나마 <신의 놀이>는 책을 읽으면 노래만 듣는 것보단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래도 음악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데 그런 평가가 새로운 동기부여가 되진 않나요?
2년 전부터 지인들이 일하는 모습을 찍어왔는데 일본에 사는 친구 어머니가 베틀 짜는 모습도 찍었어요. 그리고 며칠 전 뮤직비디오 촬영에서 베틀을 짜는 모습을 마임으로 보여달라고 주문했어요. 다양한 직업군의 행위를 촬영한 것을 바탕으로 무용을 만들었죠. 그래서 베틀을 짜던 친구 어머니에게 그 뮤직비디오를 빨리 보여주고 싶어요. 덕분에 이런 걸 만들었다고. 그럼 기뻐하실 거 같거든요. 그런 게 제겐 재미있는 일이에요. 수만 명이 ‘좋아요’를 눌러주는 것보다도.
(ELLE KOREA SEPTEMBER 2016 NO.287 'ELLE INT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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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세는 VR이다. 모두가 VR을 언급한다. 바람이 분다. 물론 이것이 판을 뒤엎을 바람인지는 알 길이 없다.
올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선 지난해 선댄스영화제에서 화제가 된 VR영화 <카타토닉>을 상영했다. <카타토닉>은 특별한 스토리가 있다기 보단 휠체어를 타고 괴기스러운 공간을 돌아다니며 소름 끼치는 광경을 목격하게 만드는 과정을 체험하게 만드는데 목적을 둔 호러 단편물이다. 이를 테면 테마파크의 귀신의 집 같은 거랄까. 특별히 마련된 휠체어에 앉아 안내에 따라 VR헤드셋을 쓰니 플레이 과정에 대한 선택을 묻는 문구가 떴다. 헤드셋의 전면부를 터치하니 영화가 시작됐다. 다른 세상이 시야에 꽉 찼다. 아니, 다른 세상이었다. 뭔가가 불쑥 튀어나올 것만 같은 기이한 풍경 속으로 내가 떠밀려가고 있었다. 긴장감이 엄습하면서도 호기심이 발동해서 주변을 자꾸 두리번거렸다. 앞서 영화를 본 여자가 상모 돌리듯 머리를 돌려댄 이유를 알 것 같았다.
VR영화는 고개를 돌리면 그 시점에 해당되는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관객이 시점을 결정할 수 있다. 신기해서 상모 돌리듯 상하좌우로 고개를 돌려 보게 됐다. 그런데 무언가 굉장히 끔찍한 것이 오른쪽에 있었는데 내가 왼쪽을 보고 있어서 지나쳐 버린 것 같다. 본의 아니게 긴장감 대신 내가 외면한 귀신의 쓸쓸함을 느껴버렸다. 게다가 영화를 보는 내내 시력이 0.5 정도 떨어진 것만 같았다. 화질이 선명하지 않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날 영화를 보는데 활용된 건 삼성기어VR인데 해상도가 좋지 않다는 지적이 담긴 기사가 적지 않게 검색된다. 콘텐츠의 가능성을 막는 기술적 한계가 존재한다는 말이다.
어쨌든 흥미로운 변화다. 아이맥스, 3D, 4D 등 새로운 관람 방식이 더러 등장했지만 VR영화는 완전히 새로운 체험이다. 그만큼 전세계 영화계도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 같다. 최근 루카스필름 산하의 한 스튜디오에선 <스타워즈>의 다스베이더를 주인공으로 설정한 VR영화를 제작할 것이라 발표했다. 관객이 다스베이더가 등장하는 영화가 아니라 관객이 다스베이더의 시점으로 영화에 참여하는 작품이 될 것이라고 한다. 심지어 아이맥스(IMAX)사에서도 VR영화를 제작할 것이라 발표했다. 아이맥스사에서 만드는 VR영화이니만큼 기존의 VR기기에 비해 화각이 넓은 VR기기를 제공할 것이라 밝혔다.
VR영화에 관심을 기울이는 건 기존의 영화산업에 몸담고 있던 이들만이 아니다. 지난해 구글에선 <헬프>라는 단편 VR영화를 발표했다. 간단한 테스트 영상 정도를 만든 게 아니다. <분노의 질주> 시리즈와 <스타트렉 비욘드>를 연출한 저스틴 린이 메가폰을 잡은 작품으로 우주에서 날아든 괴물이 활보하는 도시를 1인칭 시점으로 체험할 수 있는 작품이다. “시청자가 영화 속 공간에 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어려웠다.” 구글과 함께 <헬프>를 제작한 콘텐츠 기업 불릿의 대표 토드 마커리스의 변이다. 그렇다. 영화란 감독의 예술이다. 감독이 결정한 시점에 영화의 의도가 담겨있다. 문제는 VR영화는 관객이 시점을 결정함으로써 영화의 의도를 완벽하게 외면해 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관객의 체험이 의도치 않게 영화적 실패로 이어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관객에게 360의 시야각을 열어줌으로써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을 보지 못하게 될 수 있다는 건 VR영화가 지닌 현재 시점의 한계인 셈이다. 그리고 이는 과연 VR영화가 영화산업의 미래를 견인할 화두일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모종의 답변일 수도 있다.
VR영화가 영화를 대체하는 미래일 것 같진 않다. 다만 VR영화는 하나의 장르를 자처할 수 있다. 1인칭 시점의 영상을 통해 관객에게 영화적 체험을 주입하려는 시도를 극대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극명한 오락적 장점을 품고 있다. 다만 VR영화라는 것이 보편화되려면 극장의 풍경이 달라져야 한다. 관객의 자리마다 VR헤드셋이 비치돼 있거나 3D입체안경처럼 상영관 출입구에서 관객에게 VR헤드셋을 하나씩 나눠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관객들은 거대한 스크린이 아니라 각자의 머리에 쓴 고글을 통해 각자의 영화를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같은 상영관에서 본 영화에 대한 기억은 제각각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극장에서 VR영화를 본다는 건 의미가 없는 일일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홈비디오 시장 혹은 기존의 극장과 다른 형태의 VR영화관이라는 신종 사업을 통해 활로를 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엔 VR영화를 볼 수 있는 VR시네마라는 영화관이 문을 열었는데 그곳엔 거대한 스크린 대신 저마다 자리를 잡고 영화를 볼 수 있는 VR헤드셋이 다량으로 배치돼있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VR영화에 대해 이와 같이 말했다. “VR영화는 위험하다. 왜냐면 관객은 감독의 의도와 다른 곳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 VR기술을 개발하는 한 회사의 고문으로 자리하고 있다. 그러니까 영화의 대가에게도 VR영화는 흥미롭게 다가오는 쟁점인 셈이다. 결국 VR영화는 그에 어울리는 기획과 결합됐을 때 완벽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영역이다. 그런 의미에서 VR은 영화의 미래라기 보단 새로운 영토, 즉 신대륙의 발견인 것이다.
(ELLE KOREA SEPTEMBER 2016 NO.287 'ELLE SPEC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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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운 감독이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독립운동단체인 의열단을 다룬 영화를 연출한다고 했을 때 조금은 의아했고, 한편으론 궁금했다. 솔직히 말하면 김지운 감독이 아픈 역사를 헤집으며 뜨거운 공분을 부를 것 같진 않았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냉정하게 마음을 식히고 바라볼 수만은 없을 듯한 시대를 관통한다는 점에서 김지운 감독의 작품 가운데 이례적인 한 점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문득 궁금했다. 그리고 <밀정>이 공개됐다. 아마 <밀정>은 김지운 감독의 영화 가운데 가장 뜨거운 온도로 자신을 내던지는 인물들이 등장하는 작품일 것이다. 어쩌면 <밀정>은 김지운 감독의 영화 가운데 가장 다단하고 모호한 심리를 품은 캐릭터가 등장하는 작품일 것이다. 섞이지 않는 냉기와 온기가 등을 맞대고 한 몸을 이룬 듯한, <밀정>은 그런 영화다.
개봉 첫 주에만 2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압도적인 흥행세인데 아무래도 대자본이 투자된 작품이니 흥행에 대한 부담이 없지 않았을 것 같다.
뭔가를 과시하고자 영화를 만드는 게 아닌 이상, 투자된 자본을 회수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든 감독이 된다는 건 중요하다. 물론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겠다는 욕심으로 영화를 만든 것도 아니지만 차기작을 연출할 기회를 이어나갈 수 있을 정도로 최소한의 상업적 성과는 거두길 바란다. 상업영화 감독으로서의 자격을 인정 받기 위해선 대중과의 접점을 계속 증명해야 하니까. 그리고 촬영 현장에서 스태프나 배우들의 헌신과 열정을 봐온 입장에선 그들에게도 성과로 여겨질 만한 결과를 책임지는 감독이 되고 싶다. 결국 상업적인 성공이 그들을 위한 보상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 어느 정도 흥행을 바라는 마음이 생긴다.
3년 전의 인터뷰에서 "항상 지금의 모순이나 괴로움에 대한 반대급부가 차기작에 대한 욕망으로 연결된다"라고 말했다. <밀정> 또한 그런 과정을 거쳐 나온 또 하나의 결과물일 텐데.
전작의 모순과 욕망을 해결하는 방식으로 현재의 작품을 만들고 있지만 언제나 현재의 작품에서도 여전히 진전되지 못한 부분들이 보인다. 다만 영화에 대해 설명하다 보면 해명의 강도가 높아지니 해당 작품이 완전한 것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내게는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보이고, 아직도 도달해야 할 목표가 있다는 걸 느끼게 만드는 작품이다. 항상 아직 대표작이 없다고 말해왔는데 <밀정> 역시 대표작은 아닌 것 같다.
스스로에 대한 평가가 너무 박한 거 아닌가?(웃음)
쉽게 얘기해서 내 역량이 내 눈높이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것 같다. 그 차이를 보는 게 생각보다 괴롭다. 그래서 내 영화를 편하게 보기도 힘들다. 결국 내 역량과 내 눈높이의 차이를 최대한 좁혀나가고 일치시켜서 내 영화를 남의 영화처럼 편하게 감상할 수 있는 경지까지만 갈 수 있다면 영화를 만든 의의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밀정>의 장르가 '콜드 누아르'라고 직접 언급했는데 '누아르'라는 장르명을 '콜드'라는 단어로 수식하는 의도가 보다 중요해 보인다.
일단 비정하고 냉혹한 스파이들의 세계를 바탕에 둔 영화라는 점에서 '콜드'라는 단어의 온도가 적절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누아르 세계관 특유의 명암에는 뜨거움과 차가움이 공존하고 있다고 보는데 <밀정>은 보다 차갑게 느껴지는 누아르이길 바랬다. 그래서 의상을 비롯한 전반적인 미장센에 블랙이나 블루 톤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차가운 정서를 담아내고 싶었다. 인물의 감정을 최대한 감추거나 눌렀기 때문에 영화의 감정 또한 차갑게 느껴질 거라 생각한다. 다만 의열단이라는 역사적 실체를 서사에 옮기는 과정에서 필연적인 뜨거움이 발생하더라.
<밀정>은 <악마를 보았다> 이후로 각본가가 아닌 각색가로 이름을 올린 두 번째 작품이다. 시나리오를 읽고 영화화를 결심한 까닭이 궁금하다.
처음 시나리오를 봤을 땐 의열단을 중심으로 읽게 됐다. 그래서 <암살>에 가까운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조금 차이가 있다면 스파이물의 느낌이 보다 강한 정도? 그런데 두 번째로 읽었을 때 이정출(송강호)이 크게 들어왔다. 그래서 <암살>의 동어반복이 아닌, 새로운 영화를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정출에게서 어떤 가능성을 발견했나?
이정출은 조선인 출신 일본 경찰이라는, 이미 정체성부터 복잡한 인물이다. 그 시대의 모순이 집약된 인물이라 느꼈고, 이정출을 이야기하는 건 결국 그 시대를 이야기하는 것이란 확신이 생겼다. 사실 이정출의 심경 변화가 개연성이 없다는 평을 보기도 했는데 생각해 보면 그 인물 자체가 시대적 모순 그 자체이기 때문에 그렇게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회색주의자 특유의 모호함이 개연성 없게 보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내 입장에선 대사나 상황을 비롯한 플롯으로 이정출의 선택에 대한 명확한 근거를 제시했다고 생각한다.
'황옥 경부 폭탄사건'이라는 실제 역사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하지만 실존인물이 언급되거나 등장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팩션이라 할 수 있지만 허구라 해도 상관 없을 만한 이야기다.
의열단은 3.1 운동 이후인 1919년도에 창립됐고, 1920년 초반에는 가장 전위적인 활동을 펼쳤지만 중반부터 세력이 약화됐다. 일제가 무서워했던 단체였던 만큼 집중적으로 와해시켰기 때문이다. 그리고 <밀정>은 1923년도를 배경에 두고 있지만 정확한 시간 연대에 일치시켜 영화를 만들면 영화적 소재가 무력해질 수 있기 때문에 1920년대의 시대적 배경을 큰 덩어리 삼아 시간을 해체하고 재조합했다. 그래서 사실 각색 과정에서 "와해된 의열단을 재조직하는 걸 보면 정채산(이병헌)이 대단한 인물이다"라는 히가시(츠루미 신고)가의 대사가 있었는데 꼭 필요할 거 같진 않아서 삭제했다.
오프닝 시퀀스에서 이정출이 김장옥(박희순)에게 자수를 권유할 때 그가 공적을 쌓기 위해 회유한다기보단 진심을 다해 살아남으라고 호소하는 인상이라 이정출의 진짜 감정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진심인 거 같지만 그것이 김장옥의 편에 선 진심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래된 친구를 적으로 만나 눈 앞에서 자결하는 모습을 본 뒤 그의 인명부를 들여다 보는 이정출의 표정에선 복잡한 감정이 읽힌다. 그것만으로도 이정출의 감정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이 됐다고 생각했고, 거기서부터 이정출의 내면에 겹겹이 쌓인 층위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히가시를 통해서 김장옥과의 친구 관계가 환기되고, 의열단에 침투하기 위해 김우진(공유)에게 접근했는데 거기서도 김장옥 이야기가 나온다. 결국 이정출이 의열단을 돕게 되는 건 자신을 둘러싼 상황의 모순과 혼란 때문이기도 하지만 '마음의 빚'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회색주의자로서의 경계는 여전한 거다. 그러니까 생존에 대한 철학을 진심으로 피력하지만 결국 변절자의 회유일 수밖에 없는, 이중성에 갇히는 셈이다. 결국 윤리적인 관점에서 이정출을 보자면 그가 면죄부를 받을 만한 인물은 아닌 것 같다.
이정출은 결국 의열단의 조력자 노릇을 한다. 하지만 그가 김우진을 비롯한 의열단원처럼 조선의 독립을 간절히 바라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극 초반에 이정출은 김장옥에게 "너는 이 나라가 독립될 거 같냐?"고 묻는다. 그리고 극 말미에 김황섭(남문철)에게 "이 나라가 독립될 거 같소?"라고 묻는다. 결국 이정출은 끝까지 회색주의자로, 허무주의자로 남아있는 거다. 그는 조선의 독립을 도모하는 길을 선택한 게 아니다. 다만 자신의 감정을 변화시킨 사람과의 약속을 완수하는 것뿐이지. 어떤 경험을 통해 마음을 편하게 둘 수 있는 쪽을 선택했고, 어느 역사에 이름을 올릴지 결정한 거다. 그렇게 정채산의 말처럼 '마음이 움직이는 게 가장 무서운 것'이 된다. 결과적으로 이는 자신의 감정에 손상을 입힌 히가시에 대한 복수극이기도 하다. 그래서 폭탄을 터트리는 장면에서 제의적인 의미를 지닌 음악인 'Bolero'를 사용했다. 대의적인 임무를 수행한다기보단 스스로를 위해 축배를 드는 이정출의 심리를 음악으로서 설명해주는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우진을 비롯한 의열단원들의 단호한 신념이 두드러지는 것 같다. 덕분에 그들의 희생이 상대적으로 숭고해지는 인상이기도 하고.
사실 희망은 누구나 품을 수 있다. 하지만 나를 내던져서 희망을 찾고 세상을 전진하게 만들겠다는 생각은 아무나 할 수 없다. 나 자신부터 조국을 되찾겠다고 목숨을 던지고, 모진 고문을 견딜 자신이 있는지 모르겠더라. 결국 뒤늦게야 이 사람들이 굉장한 로맨티스트라는 걸 깨달았다. 자신들이 선택한 것에 스스로까지 내던질 수 있는 불나방인 거다. 그러니 결국 뜨거운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다는 걸 알게 됐다.
<밀정>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대목은 아무래도 이정출과 김우진과 정채산의 삼자대면 신이었다. 적을 아군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전략이란 게 진심을 바탕에 둔 호소라는 점은 어떤 의미로는 너무 뜻밖이라 허를 찔린 기분이었다.
정채산이 김우진과 이정출의 이야기를 몰래 귀담아 듣다가 이정출을 사람으로서 만나는 게 가장 좋은 전략이라 판단한 셈이다. 그리고 술은 남자들의 세계를 잇는 최선의 매개니까 자연스럽게 선택한 것이다. 그런 선택을 본 관객 입장에선 정채산이 인간적인 매력이 있는 존재로 느껴지지 않았을까. 결과적으로 내가 신뢰하는 배우들의 연기가 관객을 설득시킬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송강호와 이병헌의 카리스마와 그 사이에서 무너지지 않는 공유의 존재감이 삼위일체를 이루니 인물들의 관계 변화가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질 거라 생각했다.
동시에 긴장감이 폭발할 법한 상황에서 오히려 가장 극적인 유머가 발생한다는 점에서도 탁월하다. 처음으로 이정출을 의열단 쪽으로 기울게 만드는 신이란 점에서 굉장히 중요한 대목이라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굉장히 과감한 연출 방식을 선택했다고 평할 수 있다.
그 신의 목표는 세 사람 사이에 형성된 냉기가 급속도로 해빙되고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물론 그것이 고도의 수싸움을 펼치는 장면이란 점을 이해시키고 그런 관계를 설득력 있게 납득시켜야 하지만 논리적인 방식으로 보단 직관적으로 느껴질 수 있도록 아이러니한 웃음을 자아낼 수 있는 상황을 연출하고 세 사람이 자리한 그 공간이 따뜻하게 느껴지길 바랐다.
이병헌은 특별출연으로 이름을 올렸음에도 두 주연배우 못지 않은 존재감을 드러낸다.
사실 <밀정>에서 마지막에 캐스팅된 배우가 이병헌이었다. 심지어 상해에서 촬영을 시작했을 때까지도 캐스팅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웃음) 불안하지 않았나?
굉장히 불안했다. 그래도 믿음이 있어서 기다렸는데 결국 그 믿음이 중요했던 것 같다. 정채산도 결국 이정출을 믿어서 성공하지 않았나.(웃음) 나 역시 믿고 기다린 덕분에 그 효력을 봤다.
하시모토(엄태구)가 처음 등장해 일본어로 말을 할 땐 당연히 일본인 경찰일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정출과 조선말로 대사를 하는 걸 보고 창씨개명을 한 조선인인지 궁금해졌다. 사실 영화상에서 이 부분을 명확히 설명해주지 않는다.
사실 편집 과정에서 히가시와 하시모토의 대화 장면이 하나 삭제됐다. 히가시가 하시모토에게 이정출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으면서 "아, 자네도 조선인 출신이지?"라고 긁으니까 하시모토가 자신의 출신성분을 부정하는 답변을 하는 장면이었다. 자신이 의주 출신이지만 어렸을 때부터 일본에서 살았고, 자신은 완벽한 일본인이라는 식으로. 아무래도 그 장면이 삭제돼서 그의 출신 성분을 명확히 대변하는 신이 사라진 셈이다.
하시모토의 출신 성분을 아는 게 꼭 중요한 건 아니다. 다만 그가 조선인 출신의 일본 경찰이라면 상대적으로 동일한 신분인 이정출이 친일파로서 정체성조차 얼마나 얕은가를 대비적으로 드러내는 역할로 이해할 수도 있겠다.
그래서 하시모토를 조선인 출신 일본경찰로 설정했다. 같은 조선인 출신 일본경찰임에도 성질이 다르고, 세대가 다르고, 의지와 신념이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게 재미있을 거라 생각했다. 이런 차이가 이정출을 밀어내는 동력으로 작동되기도 한다.
하시모토 역을 맡은 배우 엄태구는 <밀정>의 발견이라 해도 좋을 것 같다. 주로 과묵한 역할을 맡아온 배우였는데 <밀정>에서의 하시모토는 대사량이 상당한 캐릭터다. 그래서 그를 캐스팅한 배경이 궁금했다.
사실 엄태구는 내가 생각했던 하시모토의 이미지에 가까운 배우가 아니었다. 하지만 오디션에서 봤을 때 나를 전율시키는 에너지가 있었다.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부분이 있었지만 그래서 더 매력적이었다. 온전한 기운 덩어리처럼 느껴졌다고 할까. 그런 기운이 하시모토에게 더 적합해 보여서 결국 엄태구를 선택했다. 그런데 놀라울 정도의 집중력이 있더라. 한번은 촬영장 스튜디오 구석에서 감정에 몰입하면서 의식을 치르듯이 혼자 대사를 하는 모습을 멀리서 본 적이 있는데 진짜 배우를 만난 기분이었다.
엄태구를 만나기 이전에 구상했던 하시모토는 어떤 이미지였을까?
건장한 육체와 말끔한 인상을 가진 인물을 떠올렸는데 기존 배우로 예를 들자면 주지훈 같은 이미지였다. 상대적으로 엄태구는 마르고 빈약한 느낌이지만 그래서 오히려 기이한 인상으로 다가왔다. 예상하기 힘든 악질의 느낌이랄까. 그러다 보니 내가 연상했던 기존의 이미지는 너무 전형적인 것 아니었나 싶기도 하더라.
<밀정>은 배우 송강호와 함께한 네 번째 영화다. 연출 데뷔작인 <조용한 가족>과 두 번째 연출작인 <반칙왕>에 출연했다는 점에서 감독 김지운과 배우 송강호는 함께 성장한 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아무래도 한국영화가 활발해질 무렵에 함께 머리가 컸으니까. 사실 내가 연출한 전작들을 자주 보진 않지만 간혹 볼 기회가 생기면 저럴 때도 있었구나 싶긴 하다. 아무래도 그때는 눈높이와 역량의 차이가 더욱 컸기 때문에 훨씬 더 절망적이었을 거다.(웃음)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송강호라는 배우는 일관성 있는 수준을 유지하면서도 항상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한결 같다. 프로로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지민이 연기한 연계순은 지금까지의 필모그래피 안에서 제 역량을 가장 잘 드러낸 여자 캐릭터란 점에서 특별해 보인다.
<밀정>은 기본적으로 두 남자의 이야기이고, 어쩌면 한 남자의 이야기일 것이다. 그래서 연계순은 두 남자의 감정을 증폭시키는 역할로 봤다. 처음에는 신인 배우 정도가 적당하다고 생각했는데 시나리오가 확장되면서 신뢰감을 줄만한 배우가 필요했다. 개인적으로 <밀정>에서 압권이라 여기는 부분은 연계순의 기차역 액션 신이다. 기차역을 가득 채운 사람들이 연계순을 중심으로 흩어지는 모습에서 고립감과 외로움이 전해지지만 흔들리지 않는 위엄이 느껴지는 동시에 맵시도 산다. 결국 그 장면에서의 연계순이 의열단 그 자체를 보여준다. 내겐 더없이 만족스러운 장면이다.
한편으로는 여성 캐릭터로서 대상화되고 있다는 인상이 남기도 했다.
사실 뒤늦게 반성한 지점이 있다. 기차에서 하시모토를 발견한 연계순이 옷을 풀어헤쳐 가슴골을 드러내고 담배를 피우는 건 약국에서 하시모토를 마주쳤을 때의 단정한 차림새와 정반대의 분위기를 연출해 신분을 위장하기 위해서다. 일종의 장르적 클리셰인데 뒤늦게 그것이 여성 캐릭터에 대한 고정관념에 갇힌 설정이라 느껴졌다. 그런 의미에서 너무 성찰 없는 인용이었을지도 모른다고 반성하게 됐다.
<밀정>의 의열단 단원들은 자기 신념을 뜨겁게 발화하고 웅변하는 인물들이다. 사실 지금까지 연출한 작품들의 인물들은 명확한 신념을 따르는 인물들이라기보단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행동 방침을 정하는 인물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밀정>은 김지운이라는 감독의 영화 안에서 새로운 태도를 발견하게 된 작품이기도 했다.
사실 <밀정> 이전까지 내가 영화를 대하던 태도는 '세상이 이렇게 흉측하고 힘들고 어두운데 뭐가 저렇게 밝고 즐겁니?'라는 식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현실이 영화보다 더 어둡고, 끔찍하다 보니 영화에서까지 실패한 역사를 말하고 다루고 싶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다루는 인물의 태도까지 크게 바뀌는 건 아니지만 실패한 역사라 해도 그걸 딛고 앞으로 전진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다. <밀정>과 관련은 없지만 세월호 참사 같은 일을 겪게 되는 현실이니까. 어떤 식으로든 전진해 왔다고 믿었던 세대로서 처음으로 시대가 퇴보한다는 기분을 느꼈을 때의 충격이 내게도 있었던 것 같다.
클로즈업 신이 상당히 많다. 인물들의 얼굴과 표정이 <밀정>의 주요한 미장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아무래도 표정의 서사로 읽혀지길 바란 영화였던 만큼 인물을 타이트하게 촬영한 신들이 많다. 인물의 표정을 통해 극의 무드가 전달되지 않으면 서사도 무너질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현장에서 작은 모니터로 볼 때는 완급조절이 잘 되고 있는 건지 판단하기 힘들어서 후반작업으로 사이즈를 조절할 수 있도록 카메라를 좀 더 뒤로 빼서 거리를 두고 찍기도 했다. 그래서 편집과정에서 컷의 사이즈를 조절해 표정을 좀 더 채운 부분들도 있다. 다행히도 배우들의 표정이 좋아서 의도를 잘 살릴 수 있었던 것 같다.
일본경찰에 의해 의열단원들이 하나씩 척살당하는 신이야말로 <밀정>에서 가장 뜨겁게 느껴질 수 있는 부분인데 그 순간에 루이 암스트롱의 넘버 'When You're Smiling'이 흐르면서 찬물을 쫙 끼얹듯 감정의 온도를 확 가라앉히는 느낌이었다. 극후반부의 'Bolero' 역시 극적인 상황과 역설적인 감상을 준다는 점에서 유사한 장치적 역할을 하는 느낌이고.
일종의 온도 조절기 같은 역할이었다. 사실 영화를 만들 때마다 사진과 음악에서 많은 도움을 받는 편인데 루이 암스트롱의 넘버 'When You're Smiling'을 비롯해 <밀정>에서 등장하는 음악들은 모두 영화를 제작하면서 수집했던 플레이리스트에서 가져온 것들이다. 그리고 모두 다 비슷한 시기에 유행한 음악들이었다. 슬라브 무곡은 1900년도에 유행하던 음악이었고, 'Bolero'도 1920년대 초에 발표됐고, 스윙재즈도 1920년대 중후반에 등장해 1930년대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감미로운 스윙재즈 넘버가 동시대 지구 반대편에서 식민지배를 받는 이들에겐 향유할 수 없는 박탈감으로 다가오지 않았을까. 그래서 의열단이 척살당하는 신에 루이 암스트롱의 넘버를 얹었을 때 비극성이 더욱 명징해진다고 느껴졌다. 이정출의 고문 신에서부터 넘버가 흐르기 시작해 경성에 잠입한 의열단이 소탕되는 과정으로 이어지는데 만약 그 넘버가 없었다면 감정이 넘쳐서 신파처럼 느껴질 수도 있었을 거다.
대부분의 스코어 넘버들은 짧고 간결한 음을 초시계처럼 빠르고 일정하게 반복함으로써 서서히 긴장감을 조성한다. 반면 컷의 호흡에는 대체로 여유가 있어서 컷 전환의 속도는 스코어에 비해 상대적으로 느긋한 인상이라 역설적이란 느낌을 받았다.
컷의 긴박감보단 공기의 긴박감을 통해 감상을 조여보고 싶었다. 그래서 배우들에게도 '스몰 액팅'을 요구했는데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도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지도록 다른 속셈을 숨기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표정을 주문했다. 그리고 마주앉은 상대방이 모르게 타인의 시선을 포착하고 은밀하게 눈빛을 주고 받는 시선 처리 등을 보여주기 위해 컷의 호흡을 최대한 안배했다. 대신 음악을 통해 긴장감을 올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소음에 가까운 사운드를 내는 성질의 악기들을 활용한, 인더스트리얼한 음악을 만들고자 했다. 외부에서 유입된 소음이 오히려 집중력을 높여주듯이, 그런 성질의 음악이 영화적 상황을 보다 몰입하도록 만들 테니까.
타이틀 시퀀스와 극의 최후반부를 제외하면 페이드 아웃을 통해 신을 전환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특히 디졸브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는데 신을 전환할 때조차 프레임 공백을 없애고자 애쓴 느낌마저 든다.
전통적으로 디졸브를 활용할 땐 이전 신의 긴장감을 해소하고 다음 신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밀정>에서는 앞선 신의 긴장감을 다음 신까지 끌고 가고 싶었다. 그래서 옵티컬 디졸브보다 CG 디졸브를 많이 썼다. 예를 들면 김우진의 얼굴에서 정채산의 뒷모습으로 카메라가 패닝할 때 그 위로 이정출이 탄 기차 이미지가 밀고 들어오고, 이정출이 하시모토와 하일수가 나간 방 안의 창문으로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상념에 잠길 때 그 뒤로 자동차 불빛이 쭉 들어온다. 이게 다 CG로 작업한 디졸브인데 이렇게 그림들이 매끄럽게 이어지면서 긴장감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 고전적인 느낌을 보다 세련된 방식으로 구현했다는 성취감도 있었다.
열차 신은 <밀정>에서 최상의 스펙터클과 최고조의 긴장감을 제공하는 신이다. 그런데 원래 시나리오에선 없는 장면이었다고 들었다.
각색 전 시나리오에서의 열차는 상해에서 경성으로 폭탄을 싣고 가는 운송수단에 불과하다. 의열단원들은 압록강을 건넌 뒤 열차에서 내려 기생으로 변장해 인력거로 옮겨 탄다. 신의주의 부유층들이 기생들을 불러 연회를 열곤 해서 기생으로 변장하면 검문을 통과하는 게 용이했다고 한다. 실제로 독립단체가 국내에 잠입할 때 활용한 방식이었다. 그런데 막상 영화를 보는 입장에서 생각해 보니 그 지점에서 영화적 긴장감이 뚝 끊어지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열차를 운송수단 이상의 극적인 무대로 만들고 싶었고 각색을 통해 지금의 열차 신을 만들었다.
비좁은 열차의 제한된 동선을 통해 극적인 긴장감을 극대화시키는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비좁은 공간에서 전개되는 신을 설계하는 걸 좋아한다. 내가 잘하는 부분 중 하나라 생각하기도 하고. 그래서 인물의 동선이 제한되는 열차에 모든 상황을 때려 부어서 두 인물의 감정선을 극대화시켰다. 김우진과 이정출을 부조리한 상황으로 끊임없이 몰아붙이고 예상치 못한 결과로 내달리는 열차가 예측하기 힘든 시대성을 대변하는 공간이란 인상을 주고 싶었다. 사실상 영화의 하이라이트도, 주제도 다 거기 있다. 그 모든 것을 부어 넣고 가열시켜서 끓는 점이 됐을 때 튀어나오는 인물들의 형태를 통해 시대에 대한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실제로 열차 신으로 촬영된 분량은 40여분이지만 신의 절반 정도를 편집해 지금의 분량이 남았다.
그렇다면 감독판을 추가 개봉해도 좋겠다.
그러기엔 편집할 시간이 없다. 너무 오랫동안 <인랑>을 미뤄왔는데 이젠 정말 빨리 해야만 한다.
오래 전부터 연출작으로 언급됐던 <인랑>이 드디어 <밀정>의 차기작으로 언급되고 있다. 사실 원작이 있는 작품을 영화화하는 건 처음일 텐데 워낙 유명한 원작이니 부담될 것 같다.
그래서인지 너무 안 풀려서 힘들다.(웃음) <인랑>은 일본의 '전공투' 세대가 공유한 허무주의적인 정서로 점철된 세계관이라 원작의 무드를 최대한 살려서 영화를 만들 것인지, 아니면 원작을 대변하는 주요한 요소들만 남기고 완전히 뒤집어볼까 고민 중이다.
<인랑>에서 보존하고자 하는 주요한 요소는 무엇인가.
강화복의 형태나 인랑이라는 비밀 스파이들의 암투 그리고 짐승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는 시대성 같은 것이다. 정말 뻔뻔하게 이것만 가지고 가볼까라는 고민도 있다. 사실 너무 오래 끌어온 프로젝트인데 이젠 정말 해야 한다. 지금 생각으론 내년 3~4월쯤 크랭크인에 들어갈 것 같다.
어쩌면 그런 조급함이 원동력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랬으면 좋겠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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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혜옹주>라는 제목과 허진호라는 이름을 한 줄에 넣고 보니 어딘가 낯설다는 기분이 느껴졌다. 멜로라는 장르의 브랜드처럼 여겨지던 그가 롤타이틀 영화를, 실화를 바탕에 둔 시대극을, 그리고 멜로가 아닌 영화를 만들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렇다. <덕혜옹주>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허진호 감독에게 '처음'이라는 단어를 매단 물음표를 던지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그리고 그는 긴 시절의 고민을 건너온 영화에 복잡하게 얽혀 있던 사연을 조심스럽게 풀어냈다.
디지털로 찍은 건 <덕혜옹주>가 처음이다. 중국에서 <위험한 관계>를 촬영할 때만 해도 대작은 필름으로 찍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그 당시에도 디지털은 경험해보지 못했다. 현장에서 나름대로 적응하긴 했지만 확실히 낯설었다. 그리고 항상 현장은 낯설게 느껴진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오프닝 시퀀스에선 정통사극 톤인데, 타이틀 시퀀스 이후부터 일본을 배경으로 근대화된 이미지가 펼쳐지니 전후가 분리된 영화처럼 보인다.
사실 사극 톤에서 최대한 벗어나려 했는데 쉽지 않았다. 아무래도 공간성의 차이가 두드러지니 어쩔 수 없는 것 같기도 하고. 말투나, 복장도 그렇고.
솔직히 <덕혜옹주>라는 제목을 들었을 때 허진호라는 이름과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라 자꾸 감독 이름을 까먹게 되는 것 같았다. (웃음) 롤타이틀 영화는 처음인데 그만큼 인물 자체에 중점을 둔 작품이 처음이란 말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덕혜옹주라는 인물에게 끌린 이유가 궁금하다.
7~8년 전쯤에 TV에서 덕혜옹주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봤다. 그때 마음이 움직였다. 영국 황실에서 공주가 태어나면 전세계가 주목하듯이 그 당시 덕혜옹주를 둘러싼 분위기도 그랬다. 덕혜옹주는 고종이 환갑에 낳은 딸이라 어렸을 때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나라를 빼앗겼을 때인지라 조선의 희망이고, 보물처럼 여겨지는 분위기였다. 그 시절의 아이돌 같은 존재였다고 할까. 마치 아이돌 스타에 관한 사생활을 다룬 기사가 나오듯이 덕혜옹주의 일거수일투족에 관한 기사도 많이 실렸다고 한다. 굉장히 암울한 시대였지만 큰 사랑을 받고 자란 만큼 쾌활하고 밝은 성격이었다는데 아버지인 고종이 독살을 당했다는 설을 믿으며 충격을 받았고, 열네 살의 나이에 일본으로 끌려간 뒤로 급격하게 어두워졌다고 한다. 결국 타국에서 어머니의 죽음을 전해 듣고, 강제로 결혼도 하고,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이혼당하고, 딸까지 자살하고, 정말 비극적인 삶을 살았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영화화를 생각한 건 아니었다.
그렇다면 결정적인 이유는?
다큐멘터리에서 덕혜옹주가 37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오는 광경이 나왔는데 '아기씨'라 부르며 덕혜옹주를 마중하는 상궁들의 모습이 깊게 각인됐다. 당시 50대 중반에 다다르는 할머니가 된 상궁들이 과거 궁에서 입던 옷을 차려 입고 덕혜옹주에게 절을 하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움직였다.
그 장면이 특별했던 이유를 설명할 수 있을까?
아무래도 내가 다시 만난다는 것 자체를 좋아하는 거 같다. 나도 잘 몰랐는데 지금까지 만든 영화들을 보면 어떤 식으로든 결국 다시 만나거나 만나기 위해 찾아가는 과정이 등장한다. 결국 <덕혜옹주>를 통해 세월을 두고 다시 만나는 과정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 같다.
결국 영화를 만들기까지 굉장히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아무래도 제작비가 많이 들 수밖에 없는 영화였는데 영화화하기 힘든 소재라는 반대의견이 많았다. 그런데 후에 <덕혜옹주>라는 소설이 나와서 읽어봤더니 (김)장한이랑 복순이라는 캐릭터를 극화시켜서 픽션을 만들었더라. 그리고 덕혜옹주의 내면을 많이 투영했다. 그리고 베스트셀러가 됐는데 출판계에서도 이례적인 사건이라 했다. 아무래도 주류소설이 아니었으니까. 당시에 화제를 모은 <삼성을 생각한다>라는 책을 죽이기 위해 삼성에서 사재기를 했다는 루머까지 돌 정도였다. 어쨌든 소설이 인기를 얻는 것을 보고 이 정도까진 각색을 해도 되겠다고 판단했다.
영화화를 반대하는 의견은 대체로 어떤 것이었을까?
아무래도 덕혜옹주가 잘 알려진 위인도 아니고, 긍정적인 가치를 지닌 존재로 여겨질 만한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결국 우울한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는데다가 여자 주인공이라 투자자들에게 강한 물음표가 생겼던 거 같고, 그런 물음표를 지우는 게 쉽진 않았다.
연출작 가운데 첫 번째 12세 관람가 영화다.
그런가? <8월의 크리스마스>가 12세 관람가 아니었나?
아니더라.
아무래도 그 당시에 일부러 15세 관람가로 넘겼나 보다. (웃음)
아무래도 이 작품이 멜로물이 아니란 것도 12세 관람가란 점과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아무래도 수위 높은 애정신 자체가 등장할 가능성 자체가 없으니까. 그런데 사실 멜로로 발전시킬 수 있는 요소가 많은 소재였던 것 같은데 자제한 인상이었다.
사실 멜로로서의 가능성이 다분한 이야기였기 때문에 고민하긴 했다. (김)장한이 일본에서 덕혜옹주를 데려오는 이유가 이루지 못한 사랑 때문이라고 초점을 맞추면 멜로가 될 수 있었고, 실제로 그런 바탕의 시나리오도 있었다. 그런데 덕혜옹주를 데려오는 이유가 그렇게 보여선 안될 거라 생각했다. 아무래도 장한이 지닐 법한 역사적인 책임감을 존중하고 관객도 그런 책임감을 크게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멜로로 받아들일 만한 부분은 최대한 줄이고, 촬영이 끝난 뒤에도 멜로처럼 느껴질 만한 부분은 걷어내 버렸다.
멜로가 돼선 안 된다고 생각한 이유는?
지키고 싶은 선이 있었다. 덕혜옹주를 극화시키는 정당성이라고 할까. 멜로로 가져간다면 그 선을 넘어갈 것 같았다. 지나치게 극화된 느낌도 들고. 사실 박해일이 한번은 덕혜옹주와 김장한이 동침을 해야 말이 되는 게 아니냐고, 그래야 정한이 덕혜옹주를 한국에 데려오려고 애쓰는 걸 납득할 수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두 사람이 함께 겪었던 고난만으로도 충분히 재회를 꿈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덕혜옹주가 해방된 지 17년이 지난 1962년에 귀국한 것이니 37년 만에 고국에 돌아온 건데 이건 결국 민족적인 자존심의 문제에 가깝게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니 김장한에겐 덕혜옹주를 데려와야 할 이유가 충분했던 거다.
김장한은 실존인물이었지만 영화 속 김장한과는 거리가 있다.
영화 속의 김장한은 소설에서 가져온 인물이긴 했지만 실제로 그는 고종이 덕혜옹주와 결혼을 시키려고 했던 남자이기도 했다. 고종이 덕혜옹주의 짝을 빨리 점지해주고 싶어했다는데 갑자기 죽음을 맞이하면서 백지화된 셈이다. 그런데 덕혜옹주와 결혼을 시키려 했던 김장한에겐 김을한이란 형이 있었는데 신문기자였고, 김을한의 아내가 덕혜옹주와 학교 동창이었다고 한다. 결국 지금의 김장한을 완성하기 위해 그의 주변인물들을 끌어온 부분들이 있었다.
사실 실화를 바탕에 둔 이야기를 영화화한 것도 처음이다. 소설을 허구의 축으로 삼아 이야기를 각색하는 것만큼이나 사실에 대한 고증 문제도 중요했을 거 같다.
사실 김장한이란 인물을 언급한다는 건 실화에 기반을 둔 부분이지만 그가 정혼자로서 덕혜옹주를 찾아간다는 건 소설에서 빌려온, 명백한 허구다. 그리고 영친왕의 망명 사건을 다룬 부분은 완벽한 허구인데 실제 역사에선 영친왕과 관련된 극적인 망명 사건은 없었지만 그도 망명을 생각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임시정부에선 영친왕이 상해를 여행 중일 때 망명을 권했다는데 영화에서처럼 폭파 작전과 연계된 건 아니었다. 그런데 영화 속 시대가 이봉창 열사가 일왕 암살을 시도했던 시기와 맞물리기도 해서 덧붙여 각색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영친왕의 망명 시도는 실제로 어땠는지 궁금하다.
영친왕이 일본이 전쟁에서 패배하고 망할지도 모른다는 정보를 갖고 있었던 거 같다. 아무래도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을 텐데 영친왕도 고위직에 속하는 인물이었으니까. 그런 면에서 영친왕이 망명을 고민할 만한 이유가 있었던 거다. 그런데 당시 영친왕의 상해 여행 시점에 맞춰 망명을 도모했던 상해임시정부에선 영친왕이 일본인 아내와 이혼하길 바랐다고 한다. 하지만 영친왕은 일본인 아내를 데려가길 원했고 결국 망명을 거부했다고 하더라.
영화상에서 영친왕의 이미지는 유약하게 느껴지는 측면이 있다.
영친왕이란 인물은 열한 살에 일본으로 건너갔는데 실제로 일본사람이나 다름없었다고 한다. 이토 히로부미를 양아버지로 생각하고 따를 정도였고, 그의 제사에도 참석했다고 하니까. 그런데 영친왕의 처인 이방자 여사의 자서전에 따르면 그럼에도 영친왕 스스로가 조선의 정통성을 이어가는 마지막 인간이란 생각을 갖고 있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친일을 했다기 보단 한 나라의 왕으로서 독립 이후의 국가에 대한 생각이 조금이나마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그런 면에서 영화상에서 그린 망명 작전 신은 나름대로 개연성이 있는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상대적으로 덕혜옹주는 영친왕에 비해 강인하게 묘사된 거 같다. 아무래도 영화와 실화 사이의 줄다리기가 있었을 것 같은데.
덕혜옹주가 일본에서 강제 노역 중인 조선인들 앞에서 연설하는 장면도 극화된 장면인데 사실 친일을 옹호하는 버전의 신도 촬영했었다. 한택수(윤제문)에게서 어머니인 양귀인(박주미)이 위독하다는 전보를 받고 친일 연설을 하면 조선으로 돌아가게 해주겠다고 제안한 뒤 덕혜옹주가 친일 연설을 하고 나니 한택수가 그제서야 사실 어머니가 죽었다고 전하는 시퀀스도 있었다.
그런데 왜 지금의 결과를 선택한 걸까?
최소한 덕혜옹주에게 그 정도는 해주고 싶었다. 사실 영화상에서도 그녀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지 않나. 그래서 '어쩌면 한 번쯤 이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됐고 그런 장면을 연출했다. 아무래도 영화를 찍는 동안 극화된 인물이나 장면의 정당성과 개연성을 잘 설득하고 있는지 걱정이 많았다. 아무래도 잘못하면 왜곡시켜버린 것으로 치부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경계를 살피는 과정이 힘들었다.
모든 연출작을 통틀어서 액션신을 볼 수 있는 첫 작품이기도 하다.
<아저씨>와 <광해, 왕이 된 남자>의 촬영감독인 이태윤이 <덕혜옹주>의 촬영감독을 맡았는데 내가 <외출>을 찍을 당시 촬영감독 조수였던 인연이 있었다. 아무래도 액션 연출에서는 기술적인 면이 중요한데 솔직히 이번 촬영을 통해 촬영감독과 미술감독에게 많이 배웠다. 개인적으로는 영화를 만들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말이 되느냐'의 문제인데 액션 신에선 말이 안 된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때가 있더라.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 부분을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음, 내 입으로 말하긴 좀 그렇긴 한데.(웃음) 예를 들어 김장한이 배에 총을 맞고도 나중에 막 뛰어다니는데 '총을 맞았는데 어떻게 저렇게 움직일 수 있지?'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웃음) 아무래도 그런 부분을 그냥 넘어갈 수 있다면 괜찮겠지만 만약 '저거 이상하다'고 생각하게 된다면 말이 안 되는 거니까. 그리고 한택수가 배 위에서 총을 쏘는데 '어떻게 저렇게 잘 맞출 수가 있을까?'라고 생각하기도 하고.(웃음) 아무튼 말이 되는 기준을 어떻게 가져가야 하는지 납득하는 게 어려운 일처럼 느껴졌다.
정상훈이나 라미란처럼 희극에 능한 배우들 덕분에 코미디물로서의 인상도 종종 느껴지는데 과거 인터뷰에서 코미디를 연출해 보고 싶단 말을 한 적이 있더라.
사실 웃음만큼 확실한 반응은 없다. 내가 영화를 재미있게 찍은 거 같다는 확신을 주는 반응이란. 그런 면에서 지금까지 만든 모든 작품에 웃음을 주는 요소가 있었던 거 같은데, 그만큼 어떤 상황에서든 영화에 유머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왔다.
<외출>로 함께했던 손예진과 11년 만에 재회했다. 그녀에게 예민하고 치열한 캐릭터를 입혀보고 싶단 생각을 했던 이유가 있었을까?
<외출>을 촬영할 때 감정에 깊게 빠져들어야 하는 신이 더러 있었는데 그때 힘이 있는 배우라고 느꼈다. 그런데 이번 작업을 통해 더욱 놀랍게 다가왔다. 집중력이라 할 수도 있고, 몰입도라고 할 수도 있는데 연기적으로 강한 힘이 있는 배우라는 걸 알았다. 정말 그 인물이 돼버리는 순간이 있었다. 그래서 촬영장에서 실제로 신기가 있는 거 같다는 말을 한 적도 있었다. 덕혜옹주가 고국에 돌아가려다 실패하고 항구에 드러누워 미쳐버리는 장면을 찍을 때가 새벽이었고 굉장히 피곤한 순간이었다. '몹 신(Mob scene)'인데다가 촬영 여건도 좋지 않았고 당시 촬영을 강행하던 시점이라 배우 본인을 비롯해 스태프들도 굉장히 피곤한 상황이었는데 그 차가운 땅바닥에 누워서 연기적인 집중력을 보여주니 대단해 보일 수밖에 없었다.
덕혜옹주가 감정의 파고를 형성하는 역할이라면 김장한은 그 파고를 담고 견디는 둑 같은 느낌이다. 감독으로서 손예진이란 배우에게선 잠재력을 끌어내는 것이 중요한 작업이었다면 박해일이란 배우가 감정적인 중심을 잡아주길 기대했을 거 같은데, 그만큼 박해일과의 소통이 중요하지 않았을까 궁금하다.
일단 (박)해일 씨와는 친하다. 막걸리 마시는 걸 좋아하는데, 해일 씨도 좋아하고(웃음). <덕혜옹주>를 함께 하기로 결정한 뒤로 실제 촬영에 들어가기 전까지 시간이 조금 있었는데 그때 인사동에 있는 단골 막걸리집에 함께 자주 갔다. 그리고 영화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눴다. 본인 스스로 김장한이란 인물을 만들어나가는 것에 대한 고민이 많았는데 서로 툭툭 던지듯이 의견을 주고받으며 조금씩 인물을 매만졌던 것 같다. 결국 촬영을 시작하니까 박해일이란 배우 스스로 김장한을 만들어놓았더라. 매 촬영마다 미세하게 감정을 쌓아가는 게 보여서 정말 좋았다. 사실 감정을 표출해서 소진하는 게 아니라 차곡차곡 쌓아간다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인데 훌륭하게 해내더라.
특별출연 배우가 많은데 고수 같은 경우엔 극적인 비중이 상당하다.
사실 대부분 고수가 그렇게 나올 줄은 몰랐다고 하더라. 이우 왕자는 실제 사진으로 봤을 때 상당히 잘생긴 외모를 갖고 있었고, 멋쟁이로 알려져 있었다. 게다가 민족의식도 상당했고. 그래서 어느 정도 존재감이 있고 멋있다고 생각하는 배우가 이우를 연기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실 고수 씨가 이우와 닮았다. 그런데 고수 씨가 하게 돼서 개인적으론 참 좋았지.(웃음)
작년부터 일제강점기 시절을 배경에 둔 영화가 많이 나오고 있다. <덕혜옹주>도 그 중 하나라 할 수 있는데 이런 현상에 대한 특별한 관점이 있는지 궁금하다.
솔직히 내가 할 말은 아닌 거 같은데.(웃음) 그냥 <덕혜옹주>만 두고 말해보자면, 사실 전작인 <위험한 관계>도 1930년대 상하이가 배경이니 <덕혜옹주>와 비슷한 시기를 배경에 둔 작품인 셈이다. 그 영화를 하면서 이 시대가 매력적이라고 느꼈다. 그런데 <덕혜옹주>를 일제 강점기 배경의 영화라고 정의하기엔 조금 어려울 것 같다. 사실 영화의 주무대가 일본이기도 하고. 게다가 내가 <덕혜옹주>를 선택한 건 시대상황 때문이 아니었다. 그저 그 시대상황이 묘사돼야 했기 때문에 그 시절이 그려진 것뿐이다.
혹시 막연하게라도 차기작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지점이 있다면?
새로운 장르를 한번 해보면 어떨까 싶다. 액션이나 코미디, 아니면 스릴러? 장르적인 작품에 대한 관심도 생기고. 아니면 예전처럼 일상적인 영화를 다시 한번 해보면 어떨까 생각하기도 하는데 둘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한다.
<덕혜옹주>를 만들었기 때문일까?
사실 예전부터 그런 생각을 해왔다. <덕혜옹주>도 내가 해왔던 영화와 다른 느낌이니까 이젠 아예 완전히 다른 걸 해보면 어떨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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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상호라는 이름을 부지런히 쫓아온 이들에게도, 연상호라는 이름 자체가 생소한 이들에게도, <부산행>의 감독 연상호란 신선하게 다가오는 이름이었을 것이다. 국내에서 보기 드문 애니메이션 장르의 대가로 꼽히는 감독이자 사회파 작가로도 분류되는 연상호의 <부산행>은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보기 드물게 대중적인 오락물이면서도 쉽게 접하기 힘들었던 좀비를 위시한 한국형 장르물이자 한국사회를 정통으로 가로지르는 문제작이기도 하다. 그리고 개봉 첫 주말에 이미 5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흥행작으로 단숨에 내달린 시점에서 연상호 감독을 만났고, 그를 만난 지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벌써 800만 명의 관객이 <부산행>을 봤다는 소식을 접하며 이 글을 마무리하고 있다. 첫 실사영화로, 어쩌면 올해 가장 뜨겁게 기억될지도 모를 작품을 만든 연상호 감독에게선 그 열기와는 거리가 있는 차분함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의아하게 생각한 분들이 많았을 거다. <부산행>을 연출한다는 소식이 처음 알려졌을 때엔 독립 애니메이션 감독에게 이런 대작을 맡겨도 되냐는 의견도 있었던 걸로 안다. 심지어 기존에 내 작품을 좋아했던 관계자 분들도 그런 얘기를 했다니까.
구체적으로 제안을 받게 된 과정이 궁금하다.
투자배급사인 '뉴(New)'에서 <사이비>를 제작했는데 뉴의 장경익 대표가 <사이비>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실사영화 연출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100억대 예산의 영화를 맡길 수도 있다고. 그 당시엔 진심으로 하는 말인가 싶기도 했고, 솔직히 나름대로 애니메이션 작업에 만족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제안이 크게 당기진 않았다. 어쨌든 그때 워낙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인지 정작 <부산행>에 들어가는 과정은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실사영화 연출 제안을 받은 건 그때가 처음이었나?
그전에도 시나리오를 보여주면서 실사영화를 연출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긴 했지만 마음에 드는 시나리오가 없었다. 그래서 좋은 시나리오가 들어오지 않는 이상 실사영화를 할 일은 없겠구나 생각했다.
아무래도 애니메이션 연출과는 다른 일인데, 두렵진 않았나?
사실 애니메이션 연출과 크게 다르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사실 국내에서 애니메이션이 제작되는 경우가 드물고, 산업도 체계화돼 있지 않다. 그래서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게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업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즐거워서 즐기며 작업해왔다. 하지만 <부산행>을 만들면서 느낀 건 역시 실사영화 제작 체계가 잘 잡혀있다는 것이다. 애니메이션보단 확실히 편했다. 프로들이 모여 있고, 분업화도 잘돼있고. 애니메이션은 산업 자체가 구체적이지 않아서 주먹구구식으로 만들 수밖에 없다.
애니메이션을 만들 땐 혼자서 다양한 영역을 도맡아야 했던 걸로 안다.
아무래도 예산이 없으니까. (웃음)
그런 면에서 다양한 스태프와 상의하며 협업해 나가는 과정이 중요했을 텐데, 낯설진 않았을까?
어차피 다 사람이 하는 일이다. 옛날에 외주 일을 많이 해봐서 스태프들의 짜증을 유발하는 지점을 잘 안다. 감독의 방향성이 없으면 정말 피곤하다. 이렇게 했다가, 저렇게 했다가, 덕분에 다들 죽어나가는 거지. (웃음) 그런 걸 아는 덕분인지 스태프들과 소통하는 건 편했다.
KTX의 홍보효과가 상당할 것 같은데 코레일로부터 도움을 받진 않았나?
사실 KTX 설계도를 받고 싶었는데 관련 보안이 철저했다. 그래서 받지 못했다. KTX 열차칸을 똑같이 구현하는 게 정말 힘들었다. 미술팀이 KTX를 타고 다니면서 일일이 열차칸의 치수를 쟀다. KTX 열차의 의자와 비슷한 의자를 구하기 위해 발품도 많이 팔았다. 폐차된 무궁화호 한 칸 정도의 의자를 수거해 와서 천갈이를 하는 식이었다. 스크린으로 봤을 땐 크게 티가 나지 않았겠지만 실물에선 차이가 많았다. 예를 들면 KTX는 선반을 앞으로 펼 수 있는데 우리 세트에선 불가능했다. 실제로 KTX에서 쓰는 의자가 아니라서 선반은 형태만 흉내 낸 모형이었으니까. 정말 미술팀에서 고생이 많았다. 순제작비가 80억 정도이니 큰 예산이지만 마냥 넉넉한 예산은 아니었다. 어떤 면에서 <부산행>을 이 정도 예산으로 찍었다는 건 효율적인 결과라고 생각한다.
비좁은 공간에서 2시간 여의 이야기를 끌어가야 한다는 점에서 고민이 있었을 거 같다.
아무래도 기차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펼쳐지는 영화이기 때문에 그런 고민이 더욱 절실했는데 촬영감독님과 미술팀이 잘 해결해 줬다. 보통 현장에선 '덴깡'이라고 하는, 세트를 분리하거나 연장하는 작업이 용이하게 이뤄졌고, 내가 추구하는 스타일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영화적으로 다양한 앵글을 구현했다.
공간감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편집의 리듬감도 중요했을 것 같다.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어느 정도 리듬감을 설계했고, 그렇게 설계된 리듬에 맞춰 촬영과 편집을 감행했다. 사실 후반 편집보단 현장 편집에 많은 공을 들였는데 현장에서 촬영본을 바로 확인하면서 호흡이 떨어지는 신을 수정하고, 경우에 따라 신을 날리기도 했다.
현장편집을 치열하게 가져간 이유는?
아무래도 영화가 잘 만들어지고 있는지 제일 빠르게 확인하려면 그때마다 완성된 신을 확인하는 수밖에 없으니까. 그런 면에선 현장편집본을 디테일하게 확인하는 수밖에 없었다. 결국 현장편집본과 최종편집본의 분량 차이가 별로 없을 정도였다. 한 3~4분 정도?
최종 편집은 편했겠다.
거의 이틀 정도? 별로 할 게 없었다.
<부산행>에서 가장 끔찍한 역할을 하는 건 결국 좀비보다 사람들이다. 좀비에게 고립된 일행을 구해 생존자들과 합류한 이들을 감염자로 몰고 윽박지르는 사람들로부터 약자의 치졸함 같은 것이 드러난다. <돼지의 왕>이나 <사이비> 같은 작품과 일관성 있는 주제의식을 이어가는 신이기도 한데, 결국 가장 '연상호다운 장면'이기도 하다.
그런 점을 잘 보여주고 싶었다. 사실 시나리오 개발 중에 용석이한테 권총이라도 하나 쥐어줘야 하는 거 아니냐는 의견도 나왔다. 그렇지 않고서 저렇게 많은 사람이 용석에게 동조하는 게 말이 되냐고. 그런데 나는 용석이가 권총을 갖지 않고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라 생각했다. 보통 사람들에게서 악마성 같은 기질이 관성처럼 터져 나오는 순간들이 있는데 그런 관성을 보여주고 싶었다. 후반부에서 느껴지는 처연함도 거기서부터 출발하는 감정이라 생각했고. 방금 가족을 잃은 사람에게 윽박을 지르는 보통 사람들이란 우리가 평소에 인간적이라 생각하는 모습이 아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런 일은 종종 일어난다. 그런 순간이 피해자나 피해자의 가족들 입장에선 굉장히 슬프게 다가올 거라 생각했다.
권총 얘기가 나왔는데 사실 용석 자체가 권총이다. 그가 장전하면 사람들이 죽어나가니까. 그리고 그렇게 가혹하게 캐릭터를 죽일 수 있는 단호함이란 결국 감독의 의지일 테고. 결국 방아쇠를 당기는 건 감독 본인이란 말인데 그런 면에서 이렇게 많은 인물을 주저하지 않고 죽이다니, 정말 가혹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웃음)
블라인드 시사회를 비롯한 여타의 시사회에서의 설문조사나 감상평을 보고 재미있게 느꼈던 부분이 있다. 용석이로 인해 여러 사람이 죽게 되는데 사람들이 그 숱한 죽음에서 가장 큰 충격을 느끼는 건 10대 커플인 영국(최우식)과 진희(안소희)의 죽음이었다. 개인적으로 그런 감상이 마음에 들었다. 사실 10대 커플은 장난스럽고 철없게 보인다. 예를 들면 둘이 울면서 통화하는 장면에선 슬퍼 보인다기 보단 장난스럽게 보일 정도로 철부지 애들이란 거다. 사실 용석이 승무원인 기철(장혁진)의 등을 떠밀 때에는 관객들이 큰 충격을 받지 않는다. 그런데 영화를 보는 내내 우습게 생각했던 아이들이 쓰레기처럼 버려졌을 때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더라. 어떻게 보면 관객들이 방심한 탓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되진 않을 거라 생각했던 애들이 생각지도 못한 폭력에 내몰렸을 때 느껴지는 충격 같은 거랄까. 그때는 용석이란 인물이 끝까지 갔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이기도 한데 그 이후부터는 그가 어떤 짓을 저질러도 이상하지 않게 느껴진다. 그런 측면에선 배우들의 연기가 괜찮았다. (김)의성 선배나 소희나 우식이나.
사실 10대 커플의 죽음은 예상치 못한 순간이란 점에서 충격적이기도 한데, 용석의 비열함을 보여주기 위한 도구적인 죽음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낭비적으로 느껴지는 죽음이기도 하다.
결국 관객이 예상치 못한 순간이 돼서 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길 바랐다. 철없고 한심해 보이는 어린 세대들이 내가 속한 세대에게 가혹하게 짓밟히는 꼴을 봤을 때의 참담함을 느꼈으면 하는 부분이 있었다.
어떤 의미에선 그만큼 애정이 있기 때문에 죽인 셈이랄까. 아이러니하다. (웃음)
아무래도 영화를 통해서 보여주고 싶었던 게 있었으니까. (웃음)
석우의 죽음은 그의 원죄를 생각한다면 명분이 있다. 다만 주인공을 죽인다는 점에서 망설임은 없었을까?
석우를 죽이는 건 시작부터 정해져 있던 거라. (웃음) 사실 용석과 석우는 그 세대를 책임지는 인물이란 점에서 이미 어떤 식으로든 운명이 정해져 있었다. 공멸 혹은 자멸하는 운명이랄까. 다만 그 과정에서 억울하게 희생된 사람들이 등장하는 거고.
그래도 캐릭터들마다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낸다는 점에선 허투루 동원된 느낌은 아니다.
감독의 입으로 이런 얘길 하긴 조금 민망할 순 있지만 <부산행>에는 일종의 논리가 있었다. 보통 아포칼립스 영화들은 세대론을 대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부산행> 역시 캐릭터의 세대를 어떻게 설계할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이데올로기가 느껴지는 영화는 아니지만 유일하게 두 노인 여성을 상반된 이데올로기의 상징이라 생각하기도 했다. 그 분들의 시대 자체가 이데올로기의 시대였으니까. 그 다음 세대는 성장 중심의 사회에서 자랐으니 석우와 용석 같은 캐릭터가 떠올랐고, 그 다음 세대인 10대는 일종의 희생양 노릇을 하게 된다. 그리고 수안이나 성경(정유미)이 임신한 아이는 다음 세대에 대한 희망일 수도 있지만 나는 우리가 쥐어야 할 당위에 더 아깝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가끔 인터뷰에서 마지막에 둘 다 쏴죽이는 게 연상호다운 거 아니냐고 물어보시는 분들이 있었는데 그 정도의 당위는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당위가 뻔하게 느껴지는 사람도 있지만 당위는 항상 뻔한 거니까.
마지막에 수안이가 부르는 '알로하 오에(Aloha Oe)'라는 노래는 이별과 재회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노래를 선택한 이유가 있었을까?
마지막에 어떤 노래를 불러야 할까 고민했는데 <송곳> 작가인 만화가 최규석으로부터 추천을 받았다. 일단 가사 자체가 감성적이고 비하인드 스토리가 괜찮았다. 원곡이 하와이 왕조가 무너졌을 때 마지막 여왕이 만든 민요라는데 그런 사연이 마음에 들었다. <부산행>이란 아포칼립스 영화를 개인의 감정에 실어서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기획 의도와도 맞아떨어졌다. 한 나라가 망해갈 때 재회를 약속하는 노래라는 점에서 종말론적인 상황을 다루는 이 영화의 엔딩톤과 어울리게 들렸다.
수안이가 아빠 앞에서 부르고 싶었던 노래를 결국 아빠가 죽으니까 부르게 된다는 점에서 페이소스가 형성된다.
개인적으로 엔딩 크레딧이 나오기 직전에 클로즈업된 수안의 표정이 힘있고 단단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엉엉 우는 게 아니라 씩씩하게 노래를 끝까지 부르고 힘있는 표정을 보여주길 바랬다.
유사 좀비를 다룬 장르물이란 점에서 주목을 받았는데 좀비에게 물린 부위에 따라 좀비가 되는 시간차가 있더라. 목을 물린 사람이 팔이나 다리를 물린 사람보단 확실히 빨리 변한다.
그래서 주인공은 절대 목을 물리지 않는다. (웃음)
하지만 주인공에겐 우대 쿠폰을 준 느낌도 든다. 특히 석우는 인저리 타임이 긴 느낌이기도 하고. (웃음)
그런데 석우는 고속촬영 부분이라 길게 느껴지는 거다. 실제론 되게 짧은 시간이다. (웃음)
사실 좀비는 나올 만큼 나와서 좀비를 묘사할 때 어떤 시도를 해도 참신하다는 말을 듣기란 어렵다. 그런 면에서 <부산행>은 차별적인 좀비를 보여주겠다는 야심보단 일반적인 좀비를 충실하게 묘사하고 합리적으로 활용하는 인상이다.
사실 요새는 별의별 좀비가 다 나오지 않았나. 생각하는 좀비도 있고, 뱀파이어와 좀비가 더해진 타입까지 나왔는데 나는 좀비물이 너무 많이 변형되는 게 싫었다. 그래서 되레 클래식한 느낌을 주고자 했다. 조지 로메로가 만든 좀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단순한 좀비 말이다. 물론 뛰느냐, 걷느냐, 라는 이슈가 있기도 했는데 뛰는 좀비도 이미 익숙한 편이다. 대신 어두울 때 앞이 잘 안 보인다는 설정은 아마 <부산행>을 통해 처음 가미된 부분일 거다.
구제역 사태를 언급하는 오프닝 시퀀스나 근래의 시위 진압 장면을 떠올리게 만드는 방송 장면 등이 요즘 세태와 직결된 느낌을 준다. 심지어 벨소리로 들려지는 '오 필승 코리아'도 예사롭지 않게 느껴지는데 아무래도 리얼리티를 위한 의도적 장치처럼 느껴진다.
아무래도 낯선 소재를 다루기 때문에 관객이 느끼는 진짜 사회와 영화 속의 사회가 다르다고 느끼면 몰입하기 어려울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재미있게 느낄 수 있는 뉘앙스를 뿌린 셈인데 생각보다 그런 부분을 크게 받아들이는 분들이 많았다. 아마 그런 인상이 영화의 흥행에도 영향을 미친 게 아닐까 싶다.
오는 8월 18일엔 <부산행>의 프리퀄인 애니메이션 <서울역>이 개봉한다. <서울역>에서 목소리 연기로 참여한 심은경 씨가 <부산행>의 첫 번째 좀비로 등장하는데 이걸 복선이라고 봐도 될까?
연결고리라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잘 연결된다고 느끼긴 어려울 거다. 하지만 별개의 캐릭터라고 여기기엔 비슷한 점도 많을 거다.
미끼를 던지는 건가.
그렇다. (웃음)
<서울역>은 본래의 장기인 애니메이션인데 <부산행>이 흥행한 만큼 <서울역>으로 연상호의 애니메이션을 처음 접하는 관객이 많아질 수도 있다.
아무래도 15세 관람가가 나오기도 했으니까. 조금 기대는 되지만 아직 개봉일자가 많이 남아서 특별히 별다른 기분이 들진 않는다. 다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폐막작으로 미리 상영하는 게 좋은 선택인지 모르겠다.
이유는?
스포일러라고 여겨질 만한 요소가 굉장히 세다. 사실 <부산행>은 스포일러가 그렇게 큰 영향을 끼치는 영화라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서울역>은 <식스센스>처럼 브루스 윌리스가 유령이다, 란 식으로 말해 버리면 김이 샐 수도 있는 작품이라 이게 독이 될지, 득이 될지 잘 모르겠다. 사실 올해 프랑스 안시 국제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 초청작으로 상영된 적이 있었는데 이동화 PD가 상영관에 가서 반응을 봤는데 관객들이 경악한다고 하더라. 나도 영화제 폐막식에 가서 반응을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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