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중, 71명의 학도병이 북한군의 남진을 저지했다는 포항에서의 실제 전투를 극화한 <포화속으로>는 초반부터 현장감 넘치는 시가전 신을 연출하고자 안간힘을 쓰는 것만 같다. 하지만 사실감 넘치는 전투신을 목격하기 보단 ‘전쟁 화보’를 구경하는 듯한 기분이다. <포화속으로>는 재현보다도 포장에 능한 작품이다. 물량공세를 퍼붓는 전장을 바라보고 있음에도 좀처럼 긴박감이나 비장함을 발견할 수 없는 건 그 덕분이다. 캐릭터의 비장함도, 전쟁의 참혹함도, 하나 같이 흉내내기에 여념이 없는 것처럼 <포화속으로>는 전쟁의 껍데기를 두른 마초 화보 영화처럼 보인다. 한국전쟁 60주년 기념 반공영화라도 만들 심산이었을까. 그렇다면 북한군 전차에 파란색 매직으로 ‘1번’이라도 적어놓았다면 보다 효과적이었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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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전>은 언어에서 시작되어 문장으로 옮겨진 작자, 연대 미상의 구비문학이다. 대부분의 구비문학들은 다양한 근원설화로부터 그 명맥이 이어져온 것이라 추정되며 <춘향전>역시 <도미설화><박색설화>와 같이 그 근본을 짐작하게 만드는 다양한 근원설화를 지닌 판소리 문학이다. 결과적으로 우리가 아는 그 <춘향전>은 입과 입을 거쳐나가며 다양한 형태로서 변주되고 오늘날의 형태로서 정착된 결과물인 셈이다. 무엇보다도 그 종래적 형태를 결정짓는 요인은 당대의 시대적 분위기다. 정절과 정조의 아이콘이라 불려도 좋을 춘향의 일편단심을 그리는 <춘향전>은 당대 사대부 양반들이 중시하던 유교적인 풍속을 대변하는 결과물로서 종착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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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으로도 대단한 인기를 누렸던 동명의 고전 어드벤처 PC게임을 연상하는 이들이 많겠지만 사실 <페르시아의 왕자: 시간의 모래>(이하, <페르시아의 왕자>)는 그것과 시간차를 두고 있는 후속작에 가까운 롤플레잉 콘솔 게임을 모티브로 완성된 작품이다. 추억을 연상시키는 제목이며 실제로 그 양자에 가까운 후속 모델을 모티브로 완성된 작품이지만 실상 그 추억은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 <페르시아의 왕자>는 제목 그대로 <페르시아의 왕자>이되, 그 누군가가 기억하는, 혹은 반가워할 그 게임과는 직결되지 않는 동명의 타이틀을 지닌 영화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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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PIXAR)’가 늘 수준 이상의 성적을 유지하는 모범생이라면드림웍스(Dreamworks)’는 머리는 뛰어나지만 때때로 노력이 부족해서 열등한 모습을 드러내곤 하는, 게으른 우등생 같다. 마치좋은 예나쁜 예가 뚜렷하다고 할까. 드림웍스의 신작 <드래곤 길들이기>그 중에서도 좋은 예라 할 수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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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 시절 동명의 원작 게임을 즐긴 이들에게는 이름만으로 추억이 되겠지만 그 제목의 형태 이상의 의미는 염두에 두진 말 것. 마치 올드한 아케이드 어드벤처 게임을 상기시키듯 올드 패션한 어드벤처 무비를 완성시킨 것마냥 촌발 날리는 느낌을 지울 수 없지만, 적당한 합의는 거둔 오락영화랄까. 투박하지만 활극적인 묘기에서 발생하는 서커스적인 재미를 즐길 수 있다면 그럭저럭. 하지만 그 빤하디 빤한, 종종 막무가내처럼 흐르는 서사와 액션을 즐길 수 없다면 맙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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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더 이상 시를 읽지 않는다. 어쩌면 그건 더 이상 사람들이 시를 믿을 수 없는 세상을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각박한 세상에서 시상은 더 이상 운율 위로 흐르지 못하고 메마른다. 참혹한 세태 속에서 시구는 마치 아스팔트 위로 내려앉은 씨앗처럼 감성을 잊은 단단하게 메마른 인간의 마음에 뿌리 내릴 수 없는 것마냥 흩날려 간다. 물기를 잃어버린 것처럼말라버린 세상 속에서 시쓰기를 절실히 갈망하면서도 좀처럼 시상을올리지 못하는 어느 여인은 그 대신 험악한 세상의 단면만을 거듭 목격하고 체험해 나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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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는 연기처럼 피어나 세상을 어지럽힌다. 개인의 삶을 흔들고 때때로 세상을 무력하게 옥죈다. 그럼에도 아직 세상이 살만하다 말할 수 있는 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남몰래 자라나는 선의 덕분이다. 쉽게 피어나고 흩어져 나가는 악의와 달리 선의는 조심스럽게 피어나 눈에 띄지 않게 자라난 뒤, 세상을 치장한다. <블라인드 사이드> 바로 그 선의에 관한 이야기다. 선의에서 비롯된 현실의 사연은 텍스트로 옮겨진 뒤, 이미지로 재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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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인형이다. 다만 순수한 동심을 배려하기 위해 태어난 인형이 아니다. 그녀는 성인 남성을 위해 마련된 인형이다. 보다 직접적으로 설명하자면 성인 남성의 성욕을 해소하기 위해 마련된 성인 용품이다. 흔히 말하는 섹스돌(sex doll)에 가까운 공기인형(air doll)이다. 물론 인형에게 운명이나 인생이란 단어는 마땅치 않다. 그렇기에 인형의 용도를 가혹하다 설명하는 것도 마뜩찮은 일이다. 일반적인 상식에서는 그렇다. 하지만 <공기인형>에서의 인형만큼은 운명이나 인생이란 단어를 동원해야 한다. <공기인형>은 사람의 마음을 얻게 된 인형에 관한 영화이므로. 이는 <공기인형>이 묘사하는 세계의 정서 안에서 분명 역설적인 감상을 부를 만한 것이다. 마음을 나누지 못하는 인간들의 세상에서, 마음이란 것 자체를 담아낼 수 없는 텅 빈 그릇이 된 인간들의 세계에서, 되레 마음을 얻게 되버린 인형의 운명이라니, 분명 역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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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우스가 만들어낸 인간들과 마찬가지로 올림푸스의 신들도 욕망하는 존재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리스 신화에서 등장하는 다양한 신의 군상이란 현대적 의미에서 당시 인간들이 만들어낸 허구적 세계관 속의 가공적인 캐릭터에 가까운 것이다. 곧 그리스 신화란 오늘날에 있어서 내러티브가 존재하는 판타지의 소스로서 유용하다. 인간을 탄생시켰다지만, 인간에 의해 창작되었고, 인간을 지배한다지만, 인간에 의해 완성된, 인간사의 또 다른 판본이나 다름없다. 특히나 창작력의 고갈에 다다를 정도로 컨텐츠의 소비가 극대화되고 리메이크가 득세하는 요즘의 시대에서 그리스 신화와 같이 방대한 세계관은 분명 아이템에 목마른 창작자들의 구미를 당길만한 화수분의 세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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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3 19, ‘충격과 공포라는 작전명령이 떨어졌다. 미군은 전폭기를 동원해 바그다드 상공을 무차별적으로 폭격했다. 미군의 총공세로 바그다드는 초토화됐고 미군의 진격으로 도시는 점령됐다. 미국은대량살상무기 보유를 명목으로 이라크에 무력을 행사했고, 정부를 무력화시켰다. 부시는 미국이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선언했지만 상황은 끝나지 않았으며 애초에 그것은 전쟁처럼 시작되지도 않았다. 미국이 주장했던 대량살상무기는 어느 곳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그 허구적 주장이 대량살상의 참상을 만들어냈을 뿐이다. <그린 존>은 명확하게 그날을 재현하는 데서 출발한다. <본 슈프리머시> <본 얼티메이텀>을 연출하며 확고한 팬덤을 형성한 폴 그린그래스 감독은 다시 한번 맷 데이먼을 앞세워진짜미국의 치부를 들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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