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지
TTL핑크커플요금제(모)그룹이 해제되었습니다.
문자를 받았다. 그 전에 전화를 걸었다.
저 요금제 바꾸려 하는데요. 지금 커플요금제 쓰시는데 변경해드릴까요? 예.
신속하고 정확하게 절차는 이뤄졌다. 상담원은 친절한 목소리로 마지막 남은 너와 나의 동아줄을 자르고 있었다.
친구분 성함과 전화번호를 알려주세요. 예…
여전히 난 그 친구 전화번호를 외우고 있다. 거침없이 11자리의 숫자가 입에서 뱉어져 허공으로 나뒹굴다 수신기 너머로 새어 들어갔다. 너와 내가 모르는 어떤 이가 우리 사이를 정확하게 반으로 나눈다.
마무리는 내가 지었다. 여전히 마음이 아프고 시리다. 내 사랑이 그 아이를 더 괴롭히기 전에 막아서야 했다. 못할 짓이었다. 하지만 칼을 빼 들었다. 내 가슴을 찔렀다. 피가 나도록 찔러서 도려냈다. 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여전히 내 사랑은 이리도 뜨겁구나. 나눌 사람은 없는데. 열병에 걸려 드러눕기 전에 식혀야지.
찰나의 망설임은 부질없이 흩어졌다. 친절한 상담원은 일말의 권유도 없이 과감하고 공평하게 몫을 나눴다. 배려가 고마웠다. 당신은 친절하군요. 신속 정확하네요.
간단하게, 우리를 이어주던 동아줄이 잘려나갔다. 아니, 어차피 줄은 팽팽하지 않았다. 잘려나간 것이 아니다. 네가 놓은 줄이 끌어당겨져 내 주변에서 흐느적거린다. 더 이상 너와 난 우리가 될 수 없다. 다시 한번 슬프지만 난 온전히 뒤돌아가련다. 네가 없는 곳에서 홀로 슬퍼하다 그렇게 냉담해지겠지. 그 때도 난 너를 사랑했다 말할 수 있으려나. 난 그렇게 실감하고 있다. 너와 내가 정말 헤어졌음을.
난 그렇게 우리를 해지하고 다시 나로 돌아왔다. 불과 2년도 안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