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221

time loop 2010. 2. 22. 00:27

1.       누군가의 마음에 상처를 입혔다. 안다. 그것이 무책임했고, 어쩌면 잔인한 일이었다는 것을. 이기적이라 할지라도 난 일단 그 상황이 버거웠고, 발을 빼기로 결심했으며 차가운 말을 뱉어 누군가의 마음을 냉랭하게 얼린 뒤 조각 내버려야 했다. 파편이 튀듯 내 마음도 쓰렸다. 하지만 됐다. 난 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앙금은 남았고, 관계의 금은 영원히 붙지 않을 거다. 어쩌겠나. 물은 엎질러졌고, 상황은 저만치 떠내려가버렸다. 그 자리로 돌아간다 해도 예전의 그 자리가 아닌 것을, 어쩔 것인가.

 

2.       처음으로 출국을 할 계기가 생겼다. 피렌체로 출장을 간다. 호텔 취재인데, 어쨌든 그렇다. 영어가 젬병이라 벌써부터 걱정이 팔 할이지만 피렌체라니, 설레는 것도 사실이다. 르네상스의 중심지에서 오랜 낭만의 체취를 추적하겠노라, 정도의 비범한 목표는 없지만 두오모 성당 정도는 올라가봐야겠다. 그리고 가능하면 좀 누려야지. 이국의 정경을. 물론 결과적으로 가게 된다면.

 

3.       다음 달엔 조금 여러 모로 바쁠 것 같다. 비욘드 마감이야 언제나 그렇듯 찾아오고, 그 외에도 프리미어 시즌북을 준비하게 됐다. 아직 구체적으로 잘은 모르지만 선배와 이야기하면서 대략적인 형태는 짐작하고 있다. 출장도 다녀와야 되고, 기존에 하던 작업까지 유지하기 위해선 이래저래 부지런을 떨어야 할 것 같은데, 글쎄, 요즘 어지간히 귀차니즘이 심해져서.

 

4.       인터파크에서 꽤나 싸게 <율리시스>양장본을 팔길래 사버렸더니, . 집에 배송 온 책이 사람 잡을 두께일세. 이걸 보라고 만든 건가, 잠시 멍해졌다가, 책상에 꼽아놓으면 그럴싸하겠구나 싶었지만 이걸 들고 다닌다는 것 자체가 노동스러워서 잠시 또 상념에어쨌든 그럴 듯한 소장용 책인데, 볼 엄두는 안 나니, 이게 책이니, 인테리어니.

 

5.       직장을 옮긴지도 어느 새 3달이 넘어가는 중이다. 시간은 흐르고, 그만큼 낯선 것들은 익숙한 것이 되고, 새로운 감각은 낡아간다. 하지만 역치가 아무리 높아진다 한들, 실무율은 제 자리에 머무르는 법이다. 언제나 마감은 돌아오고, 삶은 돌아간다. 이 패턴 속에서도 난 생을 꿈꾸고, 일상의 빈자리를 마련해보려 한다.

 

6.       다들 내 연애에 관심이 많다. 정작 난 내 연애에 관심이 없다. 아니, 없는 건 아니겠지. 다만 딱히 적극적일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왜 연애를 안 하냐는 질문부터, 종종 소개팅에 대한 의향을 묻는 질문을 듣곤 한다. 궁금하다. 그러니까 이건 보편적인 현상인 거냐? 누구나 연애를 하지 않는 내 나이 또래의 남자라면 이런 질문을 듣는 거냐? 아니면 내가 별종인 건가? 어쨌든 그렇다. 연애, 좋다. 할 수 있다면 좋겠지. 하지만 감정이라는 건 이성적인 판단으로 채워 넣을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난 지금 연애를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거다. 때가 되면 하겠지, 하지만 그 때가 언제인지 나는 모른다. 연애라곤 팔자에 없는 인간이라 생각해왔고, 지금도 딱히 내가 연애에 걸맞은 팔자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해본 적 없다. 여전히 사는 게 버겁다는 걸 느끼고, 그걸 뼈저리게 느끼게 만드는 지뢰 같은 상황들이 날 건드리고 있다.

 

7.       아버지가 종종 이 공간에 들어온다는 걸 안다. 그래서 좀처럼 아버지에 관한 글은 쓰지 않았다. 하지만 이젠 써야겠다. 아버지는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아니, 물론 변했다. 스스로의 말씀처럼 아버지는 많이 변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변하지 않았다. 스스로는 그걸 모른다는 점에서도 여전히 당신은 그대로다. 그래서야 우린 여전히 남남일 수 밖에 없다. 결코 다시 예전처럼 돌아갈 수 없다. 이미 아버지와 난 깨진 그릇이다. 그걸 다시 이어 붙이려면 결코 지워질 수 없는 파괴의 흔적을 모른 체 할 수 없도록 서로가 노력해야 한다. 만신창이가 된 관계가 다시 예전처럼 복구될 수 있으리란 믿음은 오만이다. 하지만 당신은 너무 쉽게 믿고 있어요. 대부분의 가해자는 스스로를 용서하며 상대에 대해 불필요한 관용적 믿음까지 품는다. 그건 일종의 정신병이다. 나를 위해서, 혹은 가족을 위해서라는 수사 따위를 동원한다는 게 꺼림칙하다. 지금까지 당신 없이 잘 살아왔다. 이제 와서 누굴 생각해준다는 말이 끔찍하다. 그러니 명심하시길. 스스로를 위해서라고 인정하시길. 정녕 우리를 생각한다면, 그런 말부터 뱉는 건 예의가 아닌 겁니다. 다 떠나서 지겨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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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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