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크>란 제목은 우리가 잘 아는 그 보통명사의 의미가 아니다. 이는 실존했던 어떤 사람의 이름, 즉 절대명사로서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밀크>는 전기영화란 말이다. 미국 역사상 최초로 공직자로 활동한 게이이자 게이인권운동가로서 활발히 활동했던 하비 밀크의 삶을 조명하는 영화다. 영화는 그의 생의 일부, 즉 그가 죽은 1978년으로부터 8년 전인, 1970년에 시작된다. 이유는 명확하다. 하비 밀크란 인물에 대해서 말할 때, 그 8년 이전까지 거슬러올라가는 건 딱히 유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1970년, 밀크(숀 펜)는 뉴욕에서 연인 스콧 스미스(제임스 프랑코)을 만나게 된다. 두 사람은 2년 후, 뉴욕을 떠나 샌프란시스코로 거처를 옮긴 뒤, 그곳에서 자신들의 사진현상 가게 ‘카스트로(Castro)’를 열고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그 새로운 삶이란 단지 그들에게 한정된 새로움이 아니었다. 그들의 가게는 게이들의 안식처가 됐고, 그들의 커뮤니티를 위한 중심지가 된다. 그리고 밀크는 점점 더 게이들의 인권을 위한 새로운 방법론을 고민하게 된다. 게이 정치가가 탄생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고, 스스로 자신이 고안한 방법을 실천하기 위해 시의원 선거에 출마한다. 그리고 거듭된 낙선 속에서도 도전을 이어나가다 결국 시의원 배지를 가슴에 얻게 된다.
인물을 조명하는 전기영화들은 대부분 그 인물의 삶이 남긴 것들을 조명한다. 왜냐면 적어도 전기영화가 다루는 인물들은 무언가 이야기할만한 것들을 남기고 떠나간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밀크>도 마찬가지다. 하비 밀크는 게이로서 자신의 신분을 떳떳이 밝혔으며 그것을 통해 자신의 삶을 개척해나갔다. 그 당당함이 대단한 미덕이라기 보단 그런 태도가 그의 삶을 수식했으며 그의 정체성을 특별하게 인식시킨 덕분이다. 그를 정치 무대에 데뷔시킨 건 생존의 야망이었으며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게이들의 삶을 보다 단단하게 다지기 위한 노력의 방법론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약자나 사회적 소수자들과 연대했으며 그 세력을 규합해 자신의 지론을 단단하게 이루는 근거로서 삼았다.
<밀크>는 사회적 약자로서의 하비 밀크에 대한 연민보단 이상적인 삶을 꿈꾸는 유능한 정치가로서의 하비 밀크를 담담하면서도 강렬하게 묘사한다. 동시에 그를 둘러싼 악의에 감정을 쏟아 넣으며 인물에 대한 동정을 유발하기 보단 보다 객관화된 사회적 시선을 강화하고 그 태도에 집중함으로써 인물의 행위적 근거들을 뚜렷하게 각인시킨다. 동성애자의 시민권을 박탈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당대의 인물들을 소수의 권리를 억압하는 악인이 아니라 시대적 무지를 드러내는 상징적 존재로서 부각시킨다. 이는 <밀크>가 단순히 어떤 인물에 대한 감상적 조명을 꾀하는 작품이 아니라 그 시대 상황을 반추함으로써 그 환경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은 인물의 이상적 자아를 분명히 각인시킨다는 점에서 뚜렷한 의미를 지닌다. 인물을 연출하지 않고 진짜 인물을 그려낸다.
사실 <밀크>는 근래 몇 년간의 구스 반 산트의 작품과 다른 선상에 놓인 작품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는 구스 반 산트의 근작들이 어떤 가치관을 표방하기 보단 개인적인 심리적 불확실성을 묘사하는데 보다 치중한 까닭이다. 특히 비선형적인 서사와 불안정한 묘사를 통해 커트 코베인이라는 실존인물의 실루엣을 불투명하게 포착한 <라스트 데이즈>와 <밀크>는 상당히 다른 지점에 놓인 작품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때 <굿 윌 헌팅>과 같은 드라마를 만들기도 했던 구스 반 산트의 사례를 상기시킨다면 <밀크>의 방식이 딱히 구스 반 산트와 동떨어진 작품이라 이해하긴 어렵다. <밀크>는 하비 밀크라는 인물의 영향력을 묘사하기 보다 그 개인의 가치관과 삶 자체를 조명한다는 점에서 드라마틱한 감성과 다큐적 리얼리즘을 동반한다. 무엇보다도 공정한 정치적 견해를 표방하는 인물의 삶에 포커싱을 맞출 때 그 인물의 대의적 공정함 자체는 드라마틱한 요소로서 발효될 수 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밀크>는 구스 반 산트의 이례적인 작품이라기 보단 소재의 관성이 작가주의적 흐름과 결부될 때 발생하는 자연스런 현상이라 이해할만하다.
사실 <밀크>는 구스 반 산트의 작품이기도 하지만 숀 펜의 작품이라 말하는 것이 적합해 보인다. 숀 펜의 연기는 미사여구를 동원한다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정말 훌륭하다. 메소드 연기가 모든 연기의 궁극이라 말하긴 힘들지만 적어도 숀 펜은 메소드 연기의 우월함을 설명하는데 유용한 근거라 할만한 결과물을 선사했다. 적어도 숀 펜의 필모그래피 안에서 <밀크>는 그의 뛰어난 전작들을 제치고 그를 설명하는 가장 훌륭한 사례로서 현재까지 유효하다. 동시에 <밀크>에 등장하는 모든 배우들은 저마다 탁월한 제기능을 발휘한다. 특히 댄 화이트를 연기하는 조쉬 브롤린은 인물의 결과적 행위를 지켜볼 관객들이 품을 만한 감정적 악의를 무마시킬 만큼 인물의 감정을 중립적으로 설득시킨다. 그 배우들의 이름만으로도 더 이상 가치를 나열할 필요가 없을 정도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