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해피 투게더>는 그야말로 서태지 팬들을 위한 '우리들만의 추억'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기존의 프로그램 방청자들이 채널을 언제 돌렸을까 궁금할 만큼 재미가 없었다.
사실 이것이 서태지라는 인물의 심심함 때문인지 평소보다 배려심이 돋는 진행 방식 때문이었는진 모르겠지만 오늘 <해피 투게더>의 진행 방식이 유난히 조심스럽고 자제한다는 인상이 드는 건 사실이었다. 서태지 정도의 인물을 모셔다 놓고 누구나 아는 과거의 이야기를 줄줄 읊는데 한 시간이 넘는 시간을 할애한다는 건 아무래도 낭비다. 게다가 지금 당장 대중이 가장 궁금해하는 이슈 앞에서 머뭇거리고 누구나 아는 그 화려했던 과거를 나열하는데 시간을 소모하다니, 다시 생각해도 낭비다. 역시 <해피 투게더>가 아니라 <라디오스타>였어야 했다. 그게 서태지 입장에서도 좋은 일이었을 것 같다.
따뜻한 햇볕과 살랑거리는 바람을 행복의 조건이라 생각한다. 편안한 일상을 영위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소중한 삶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김민희는 지금 행복하다고 말한다.
“가끔씩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답변이 너무 성의가 없어 보일 것 같아서 뭔가를 생각해내려고 해도 특별히 얘기할만한 게 없어요.” 김민희의 답변을 듣고 나서 어쩌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김민희라면 매일 같이 특별한 일상을 보낼 것만 같아요”란 식의 우문을 던지는 사람이 비단 나뿐만은 아니었던 거니까. “여느 사람들과 똑같죠. 친구들 만나고, 그냥 내 시간을 보내고.” 그렇다면 오히려 다시 배우로서의 영역으로 돌아왔을 때 느낄 수 있는 어떤 특별함이란 게 있지 않을까? “10년 넘게 해왔던 일이기 때문인지 몰라도 역시 그냥 일상 같아요. 물론 일을 시작할 때,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그리고 완성된 작품이 사람들에게 공개될 때마다 느껴지는 낯선 느낌이나 긴장감 정도는 있죠.”
사실상 그 자리에서 가장 특별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던 건 바로 나 자신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내 질문에 주의를 기울이는 가운데서도 가끔씩 무언가를 입에 물고 씹고 있는 자신의 강아지를 보며 ‘그건 안돼’라고 상냥하게 말하는 김민희와 마주보고 있다는 것 말이다. 그것도 살랑거리는 봄바람의 결이 느껴지는 옥상 테라스에서. 마치 특별한 누군가의 집에 초대받은 손님이 된 것 같다는 설렘이 불어오는 듯한. 물론 이곳은 김민희의 집이 아니라 포토그래퍼의 자택이다. 개인적으론 지금까지 진행해온 화보 촬영 중 가장 야생적(?)이면서도 의외로 목가적(?)인 경험을 선사한 현장이기도 했다. 처음으로 대면한 두 마리의 개, 그러니까 포토그래퍼가 키우던 ‘턱스’와 김민희가 현장에 데려온 시바견 ‘탄’이 장난을 치며 사방을 돌아다녔지만 대부분의 스태프들은 지나친 상황을 제외하곤 이 두 견공의 행동 반경을 제지하지 않았다. 그만큼 현장의 분위기는 자유로웠고, 자연스러웠다. 무엇보다도 마치 절친한 친구 집에 놀러 온 것처럼 편안한 분위기를 주도한 김민희 덕분에 화보 현장의 분위기 또한 보기 드물게 여유롭고 유유자적했다. 물론 실력 있는 스태프들의 빛나는 공헌도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겠지만.
“10년간 일했지만 개봉을 기다릴 땐 항상 떨리죠. 일종의 좋은 떨림 그러니까 설렘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요?” 김민희는 지금 자신의 새로운 출연작 <우는 남자>의 개봉을 앞두고 또 한번의 ‘좋은 떨림’을 느끼고 있다. <우는 남자>의 김민희에 대한 기대감을 설명하기 위해선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2012년에 개봉된 <화차>는 우리가 몰랐던 배우 김민희의 새로운 한 뼘을 발견하는 작품이었다면 이듬해인 2013년에 개봉된 <연애의 온도>는 우리가 익히 잘 알았던 배우 김민희의 익숙한 한 뼘을 증명하는 작품이었다. 지난 2년 사이 배우 김민희는 두 편의 작품을 프리즘 삼아서 자신의 연기적 스펙트럼을 드러냈다. 누군가로부터 비로소 ‘연기가 기대된다’는 말을 듣기 시작했다. “사실 어릴 때부터 맡은 역할을 잘해내고 싶은 마음은 항상 있었어요. 그만큼 그런 기대를 갖게 만들었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죠.” 사실 <우는 남자>에서 김민희가 연기한 모경은 여러 모로 김민희가 <화차>에서 연기했던 차경선을 떠올리게 만든다. 두 캐릭터가 유사하다는 말이 아니다. <우는 남자>의 모경은 내밀한 감정을 지닌 인물이다. 그만큼 <화차>에서 은밀한 비밀을 품은 여인의 심리를 탁월하게 선사한 김민희의 지난 호연을 떠올리게 만든다는 것이다. 사실 <화차>에서 경선을 연기한 김민희로부터 얻은 특별한 인상이란 그 전까지 나긋나긋하거나 당차고 털털한 여인상을 대변해왔던 그녀가 이토록 첨예한 심리를 담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상상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김민희의 재발견이었던 셈. 그만큼 남성성을 대변하는 듯한 노골적인 제목에도 불구하고 <우는 남자>에서의 김민희가 보여줄 무언가를 기대할 수밖에 없다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우는 남자>라는 2어절의 제목에서 김민희의 몫은 ‘우는’이라는 감정에 있다. “곤(장동건)이란 인물이 모경을 통해서 감정적인 흔들림을 얻게 되는 만큼 당연히 모경이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했어요. 사실 모경이 지닌 극한의 감정을 표현하기 힘들었지만 그 감정을 잘 전달해야 곤이란 인물도 살 수 있기 때문에 잘해내고 싶었죠.” 그렇다. <우는 남자>는 남자들의 영화이지만 영화의 감정선을 쥐고 있는 키는 바로 김민희가 연기하는 모경에게 있다. 모경에게 내재된 깊은 감정은 이미 장전된 탄환과도 같았던 곤의 어떤 감정을 격발시키는 방아쇠나 다름없다. 그만큼 김민희의 역할이 중요했다. “모경은 슬픔이 내재된 인물이고, 일상에서도 그런 감정을 품은 채 생활하는 만큼 그런 인물을 연기할 준비를 한다는 건 결국 비슷한 감정을 품은 채 연기해내야 한다는 거잖아요. 그렇게 노력하다 보니 몸도 마음도 지치고 힘들어졌어요. 그래서 <우는 남자>의 촬영이 끝날 즈음엔 다음 작품은 좀 가벼운 마음으로 임할 수 있는 작품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였죠.” 그렇다면 다음 작품은 기존의 발랄하고 앙칼진 김민희를 만날 수 있다는 말일까? 글쎄. “영화 촬영이 끝난지 몇 달이 지났고, 이렇게 좀 쉬고 나니까 그 당시의 기억이 즐겁게 다가와요. 어렵고 힘들었던 일을 해냈다고 생각하면 확실히 기분은 좋아지죠.” 아무래도 김민희의 다음 행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것 같다.
사실 대한민국 영화계에선 오래 전부터 여배우에게 매력적이라 할만한 시나리오가 궁했다. 점점 형편이 나아지곤 있지만 지금도 여배우들의 갈증은 쉽게 해갈되지 않는 것 같다. “좋은 시나리오가 많지 않은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꼭 주연만을 고집하진 않아요. 비중이 작은 역할 심지어 카메오라 해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매력이 있는 역할이라면 하고 싶거든요. 그리고 탄탄한 시나리오만을 고집한다기 보단 내가 무언가 시도해볼 만한 것이 있다고 여겨지는 시나리오도 좋아요. 그 시도가 작품을 풍성하게 만들어줄 수 있다고 생각되면 매력이 느껴져요.” 김민희는 1년에 한 편 꼴로 작품에 임해왔다. 다작하지 않는 배우라는 인상이 남는다. 하지만 그건 그녀가 그런 규칙을 정했기 때문이 아닌가 보다. “다작하고 싶어요. 쉬지 않고 계속 일하고 싶죠. 그래서 <우는 남자>를 끝낸 뒤에도 시나리오를 많이 챙겼어요. 그런데 많이 끌리는 작품이 없었어요.” 어쩌면 우린 김민희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김민희는 스타일리시한 배우의 대명사였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작품 활동 중인 ‘배우 김민희’의 영역을 벗어난 김민희를 본적이 있었나? 물론 우리가 항상 김민희의 모든 것을 주시하는 파파라치가 돼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그녀가 스스로 편안하게 머무를 수 있는 자신만의 행동 반경을 벗어나지 않고 있다는 말이다. 김민희는 흔히 쉽게 생각하는 화려한 셀레브리티의 삶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있는 것 같다. “이렇게 날씨가 좋은 한낮에 술 마시는 게 좋아요. 밤에 마시는 것보단 낮에 야외의 그늘 같은 곳에 앉아서 말이죠. 물론 술판을 벌인다는 건 아니에요(웃음). 그냥 술을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잖아요. 그만큼 잘 웃게 되고.” 김민희에게 있어서 술이란 즐거움을 위한 촉매제인 셈이다. 건강한 일상을 영위하는 것이야말로 김민희에게 있어서 진정한 낙인 셈이다. ‘긍정적’ 혹은 ‘낙천적’이라는 식상한 단어보다도 ‘자연적’인 삶 그 자체를 향유하고 있다는 인상을 느꼈다. “이맘때 봄이나 가을의 화창한 한낮의 햇볕이 좋아요. 그런데 봄과 가을이 점점 짧아지고 있잖아요. 그만큼 절실하게 그 시기를 즐기는 거죠.” 심지어 시간의 흐름조차도 그녀에겐
“그냥 시간 가는 게 좋아요. 왜인지는 몰라도 지금이 좋거든요. 그래서 돌아가고 싶은 시간도 없어요.” 과거가 그립다는 건 어쩌면 현재가 그만큼 만족스럽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김민희는 만족할만한 현재를 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만족할만한 현재란 결국 기대할만한 미래로 이어진다. “희망이 없으면 안돼요. 희망은 항상 가져야죠. 다만 너무 과하지 않을 정도로만.” 그렇다면 지금 김민희가 갖고 있는 희망이란 무엇일까? “그렇게 물으면 할 수 있는 말은 ‘몰라요?’일 거 같아요(웃음).” 그러니까 김민희도 모르는 그녀의 희망이란 결국 현재진행형의 삶 그 자체일지도 모르겠다.
<한공주>는 지금 우리가 결코 잊어선 안될 것들을 환기시키는 영화다. 반드시 목격해야 한다.
“전 잘못한 게 없는데요?” 소녀가 말했다. 소녀를 에워싸고 서있던 어른들의 인상이 일그러진다. 공기가 무겁다. 대체 그 소녀와 그 어른들 사이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한공주>는 이렇게 희미한 물음표로부터 시작되는 영화다. 이 물음표는 영화의 중반부까지도 막연해진다. 이 소녀 한공주(천우희)가 썩 좋지 못한 상황에 처했다는 예감만을 흘릴 뿐, 대체 왜 전학을 가고, 일면식도 없는 이의 집에서 얹혀 살며, 이런 딸을 두고 부모는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속시원하게 설명해주지 않는다. 간혹 전진하는 서사를 잠시 멈춰 세우고 뒤돌아보게 만드는 플래시백을 통해서 모종의 단서들을 하나씩 손에 쥐어준다. 이 단서들은 점차 소녀에게 무언가 끔찍한 일이 있었을 것이란 예감으로 부푼다. 그리고 끝내 그 예감의 실현을 선명하게 목격해야 한다. 멱살을 잡혀서 그 현장에 붙잡히듯 목격해야 한다. 그러나 그 참혹한 과거의 재현보다도 더욱 끔찍한 건 따로 있다.
<한공주>는 실화를 모티프로 제작된 영화다. 영화의 반석이 된 실화는 2004년 밀양에서 벌어졌던, 고교생들의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이다. 이 사건이 충격적이었던 건 가해자가 고등학생이며 그 수가 수십 명에 달했고, 지속적인 협박과 폭력으로서 어린 여학생을 1년 가까이 유린했다는 점이었다. 더 큰 문제는 수면 위로 올라온 이 사건이 기이한 방향으로 밀려가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가해자에 대한 응당한 처벌은 고사하고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심각할 정도로 외면당하거나 되레 가해자나 가해자 부모들로부터 린치를 당했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사건을 수사하던 형사들이 피해자인 소녀들에게 모욕적인 언행을 서슴지 않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공분을 일으킨 바 있었다.
이수진 감독은 <한공주>가 실화를 재현한 영화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것이 이 영화와 실화와의 연관성을 부정하는 의미는 아닐 거다. <한공주>는 사건 그 자체에 집중하지 않는다. 고발을 통해서 객석의 관객을 분노의 도가니로 밀어넣지 않는다. 오히려 지극히 차분하고 정적인 관찰을 통해서 객석의 관객에게 목격자로서의 어떤 책임감을 짊어지게 만든다. <한공주>를 보고 나서 참담한 기분이 든다는 건 어떤 의미로선 영화가 비추는 현실에 대해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막막함을 공유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참혹한 과거의 재현보다도 더욱 끔찍한 작금의 현실을 환기시키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누군가는 죄를 짓는다. 그리고 누군가는 피해자가 된다. 죄를 지은 사람은 벌을 받고, 피해를 입은 사람에겐 어떤 식으로든 보상과 회복의 기회가 주어진다. <한공주>에선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었던 것이 아무렇지 않게 파괴될 수 있다는, 실제로 산산조각나고 있음을 목격하는 과정이다. 마치 객석에 앉아있다가 멱살에 잡혀 몽둥이로 얻어맞는 기분을 느낀다 해도 이상하지 않다.
한공주는 음악을 좋아하는 아이다. 실제로 재능도 있다. 하지만 소녀는 수영을 배우려 한다. 전학간 학교에서 만난 친구들은 이유를 묻는다. “왜 그렇게 열심히 수영을 배워?” 한공주가 답한다. “나중에 물에 뛰어들었을 때 혹시라도 살고 싶을까 봐.” 이 대사를 통해서 우린 작은 소녀에게 스스로 자맥질하고 발을 굴려 나아가지 못하면 살 수 없다는 현현한 깨달음을 안겨주는 사회에서 살고 있음을 통감하게 된다. 해야 한다. 누구나 어른이 된다. 불가피하게도 그렇다. 어른이 됐기 때문에 최소한 우린 아이들에게 좋은 미래를 안겨줘야 할 의무감을 껴안아야 한다. 억울할지라도 그렇다. OEDC 가입국 중 청소년 자살률 1위 국가인 대한민국의 어른들에게 <한공주>는 통증이다. 통증을 전하는 영화여야 한다.
<한공주>의 엔딩신, 다리 위에 서있던 공주는 사라지고, 그 아래의 수면에선 소녀만한 크기의 작은 물거품이 일어난다. 그 물거품이 사라질 즈음 갑작스런 환호와 함께 수면 아래 수영을 하며 나아가는 소녀가 보인다. 어떤 꿈이 발을 구르며 나아간다. 그렇다면 이건 해피엔딩인가? 그것보다도 우린 이 결말을 해피엔딩이라고 말할 자격이 있는가? 우린 여전히 저 깊은 바다에 수많은 소년과 소녀들을 붙잡아주지 못하고 있다. 우린 <한공주>의 결말을 해피엔딩이라 말할 자격이 없는 어른들의 사회에서 살고 있다. 우리가 당연하다 생각하는 것들이 얼마나 손쉽게 침몰되어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버렸는지, 목격해야 한다. <한공주>를 목격해야 한다. “제가 사과를 받는 건데 제가 왜 도망가야 해요?”라는 소녀의 질문으로부터 달아나선 안 된다. 그리고 기억해야만 한다. 결코 잊어선 안 된다. 저 수면 아래에 잠겨버린 수많은 꿈들을, 잊지 않겠다.
옷 좀 입을 줄 아는 감독 웨스 앤더슨이 패션필름을 촬영했다. 새삼스럽게도 이제서야 말이다.
패션 필름은 단순히 브랜드의 제품을 소개하기 위해 준비한 움직이는 카탈로그가 아니다. 점차 영화 고유의 영역에 접근하고 있다. 스토리텔링을 기반으로 브랜드의 영혼을 고취시킨다. 유능한 영화감독들이 패션필름의 연출자로 선정된다. 게다가 스타일리시한 감독에게 연출을 맡긴다는 건 너무나 당연한 수순이다. 그래서 웨스 앤더슨도 프라다를 찍었다.
웨스 앤더슨이 로만 코폴라와 함께 앵글에 담아낸 첫 번째 ‘프라다’는 지난 해에 새롭게 출시된 향수 ‘캔디 로(Candy L’eau)’를 통해서였다. 3부작으로 구성된 이 광고 영상은 레아 세이두가 연기하는 귀여운 여인 캔디를 사이에 두고 티격태격하는 두 남자의 삼각 관계를 그린다. 커플과의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싶은 친구의 속내를 천진난만하게 뒤집어 놓는 남자로 인해서 벌어지는 우여곡절을 다룬 1부와 그로부터 일주일 뒤 또 다시 한번 한 여인을 사이에 두고 티격태격하는 두 남자의 모습을 그린 2부, 그리고 한 달 뒤로 점프하는 3부까지의 과정은 프랑수아 트뤼포의 <줄 앤 짐>을 떠올리게 만드는데 두 남자의 이름 또한 줄리우스(Julius)와 진(Gene)이란 점은 우연이 아닌 것 같다. 파리 특유의 로맨틱한 분위기 속에서도 귀엽고 발랄하게 다투고 어우러지는 삼각관계 속의 인물들을 중심에 둔 웨스 앤더슨 특유의 카메라 이동과 화려하면서도 아기자기한 디테일을 뽐내는 다양한 소품들로 채워진 공간의 미장센과 파스텔톤의 색감은 상큼한 레아 세이두의 표정만큼이나 깜찍하고 발랄하다.
2008년부터 아트, 건축, 영화 등의 예술분야를 조명하는 ‘프라다 클래식’을 기획해온 미우치아 프라다는 웨스 앤더슨과 함께 완성한 세 번째 프로젝트인 단편 영화 <카스텔로 카발칸티>를 올해 공개했다. 웨스 앤더슨의 페르소나 중 한 명인 제이슨 슈왈츠먼이 출연하는 이 작품은 1955년 9월의 어느 날, 레이싱 경기 중에 실수로 석상을 들이받고 ‘카스텔로 카발칸티(Castello Cavalcanti)라는 이름의 작은 마을에 체류하게 된 한 남자를 통해서 들여다본 풍경에 가깝다. 로마의 세트장에서 촬영된 이 작품은 생전 처음 당도한 마을에서 운명적인 이끌림을 느끼는 인물로부터 전통적인 가치와 고전적인 모험에 대한 향수를 끌어낸다. 소소한 분위기와 선명한 색감이 공존하는 가운데 주인공의 레이싱 재킷 뒷면으로부터 무신경하게 드러나는 ‘프라다’의 로고를 제외하면 브랜드의 흔적을 찾기 힘들다는 점도 되레 흥미롭다. 인물을 무게 중심에 두고 좌우로 움직이는 웨스 앤더슨 특유의 카메라 이동은 여전하지만 촬영 감독을 맡은 다리우스 콘지의 심도 있는 영상이 작품에 깊이를 더하고 있다.
한편 웨스 앤더슨은 광고 연출을 통해서도 자신의 장기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특히 프랑스에서 로만 코폴라와 함께 연출한 맥주 브랜드 스텔라 아르투아 광고는 웨스 앤더슨의 공간 활용과 유머 감각을 엿볼 수 있는 결과물이다. 애인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호기심으로 테이블 위의 버튼을 만지던 여자가 연극 무대 장치처럼 고안된 방 안에서 일련의 소동을 겪는 과정은 웨스 앤더슨의 장기인 무대 장치와도 같은 소품 활용 방식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리고 뒤늦게 나타나 사라진 여자보다도 스텔라 맥주 한잔에 시선을 고정시키며 미소를 짓는 남자는 웨스 앤더슨의 세계관에 즐비했던 소년들을 닮았다. 영화 촬영 현장을 재현하며 웨스 앤더슨 본인이 직접 출연하고 자연스럽게 연기까지 해내는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광고와 브래드 피트의 익살맞은 행동이 두드러진 소프트뱅크 광고, 세트를 활용한 공간 이동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AT&T 광고 시리즈 또한 웨스 앤더슨의 엑기스나 다름없다.
이진욱은 잘 생겼다. 덕분에 배우 이진욱도 잘 생긴 배우로 살아왔다. 하지만 이젠 잘 생긴 배우로만 기억될 것 같지 않다. 지금 이진욱은 자신의 얼굴을 보고 있다. 진짜 얼굴을 찾고 있다.
자신의 얼굴을 유심히 본적 있나?
예전에 이런 조언을 들었다. 배우는 자기 자신을 정확히 아는 데에서 출발한다고. 그래서 나는 나 자신을 주로 본다. 단순히 거울로 본다는 게 아니라 자신의 감정이나 상태를 아는데 집중한다.
외모엔 만족하나?
만족한다. 나는 내가 가진 부분에 대해선 긍정적이거든. 이런 내 마음가짐이 보다 만족스럽다. 사실 배우 중엔 나보다 잘난 외모를 가진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 안에서 배우로서 시간을 보내온 내 스스로의 자세에 대한 만족이 있다. 아직 이런 말하기엔 이른 감이 있지만 어쨌든 지금까진 그렇다. 앞으로도 잘 지켜갔으면 좋겠고.
사실 나이가 적은 편은 아니다.
그렇지. 30대 중반이니까.
물리적으로 나이가 많다는 말이 아니다. 다만 나이에 비하면 대표작을 늦게 만난 편이랄까. 어쨌든 비로소 <나인: 아홉 번의 시간여행>(이하: <나인>)이라는 대표작을 얻었다.
다행히 좋은 평가를 받았다. 살아온 인생과 살아갈 인생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드는 드라마란 점에선 나에게도 여러 가지로 의미가 있는 작품이었다.
<표적>의 크랭크인이 늦어지는 게 불안하진 않았나?
되도록 그런 생각은 하지 않으려는 편이다. 누군가는 주목 받기 전까진 어두운 시간을 보냈을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난 그 전까지도 연기를 계속 해왔고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단지 대중적 호응을 얻지 못했을 뿐이지. 어차피 연기는 쭉 해나갈 일이고.
<수상한 그녀>의 무대인사에 참여하지 않았던데.
민망하더라. “영화 촬영은 어땠나요?”라는 질문에 답변하기엔 내 분량이 너무 짧았다. 심지어 감독님이나 동료 배우들과 친분을 쌓기에도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했다. 어떤 열쇠를 쥔 캐릭터도, 특별한 공헌도가 있는 캐릭터도 아니었다. 그래서 할 얘기가 없었다. <표적> 촬영 중이기도 했고.
아무래도 <표적>엔 보다 큰 애착이 생길 수 밖에 없겠다.
<수상한 그녀>는 꼭 내가 아니어도 된다는 기분이었다. 물론 내 작품이었고, 그만한 애착은 있었지만 아무래도 상대적으로 감당해낸 부분이 많은 만큼 <표적>에 더 마음이 간다.
<표적>은 두 번째 영화 출연작이자 첫 영화 주연작이다. 영화 촬영은 확실히 드라마와 다르게 느껴졌을 텐데.
자의든 타의든 드라마에선 촬영하는 내내 그 캐릭터로 살게 된다. 빡빡한 스케줄 속에서 눈뜨고, 연기하고, 자고, 그런 일상의 반복이니까. 종종 그 캐릭터에 빠져 지내는 시간이 재미있을 때가 있다. 휘몰아치듯 스케줄을 소화하곤 끝냈다는 쾌감도 생기고. 영화에선 내 캐릭터에 집중하고, 세공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그만큼 연기적인 깊이를 추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그것도 개인의 몫인 거 같다. 한없이 해이해지거나 나태해질 수 있으니까.
웃을 땐 장난끼가 느껴진다.
장난끼가 적지 않다. 나름대로 장난 치는 호흡이 있는데 그게 잘 맞는 사람한텐 장난을 많이 치게 된다. 하지만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는 타입은 아닌가 보더라. 사람들이 모두 아니라고 말해서 알게 됐다(웃음). 돌이켜보면 사교적인 편은 아니었던 거 같다. 단지 필요에 의해서 그랬던 거지. 그리고 사실 혼자 있는 게 불편하지도 않다.
홀로 보내는 시간을 잘 감당하는 편인가 보다.
사실 엄청 급한 성격인데 그런 부분에선 느긋한 면이 있는 거 같다.
혼자 있을 때 <나인>의 박선우처럼 시간여행을 하는 건 아닐 테고.
그러면 얼마나 좋겠나. 정말 재미있을 거다.
혹시 되돌리고 싶은 시간이라도?
없다. 그냥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어린 시절을 영화 보듯이 보고 싶어서다. <나인>의 교훈처럼 시간여행으로 무언가를 바꾼다고 해서 절대 행복해질 수 없을 거다. 어떤 상황에서도 행복할 사람은 행복하다.
현재에 만족하나 보다.
당연하다.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두고 살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 그만큼 그럴 수 있는 마음을 갖는 것도 중요하고.
최근에 10년간 몸담았던 소속사를 옮겼다. 어떤 식으로든 기분이 묘했을 거 같은데.
특별히 문제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다. 뭔가 새롭게 시도해 보고 싶었는데 때마침 계약 기간도 만료됐으니 이번 기회에 새로운 환경에서 일해보고 싶어졌다.
기억에 남는 여행지로 체코의 체스키크롬로프와 알래스카를 꼽았더라. 쉽게 선택하는 여행지는 아닌데, 여행을 많이 다닌 걸까.
사실 알래스카엔 광고 촬영 때문에 갔지만 체스키크롬로프는 여행으로 갔다. 아마 2007년도 즈음이었을 텐데 피아니트스인 친한 형의 연주여행에 따라갔다가 오스트리아에서부터 직접 운전을 해서 국경 두 개를 넘어 갔다. 꿈 같은 일이었다. 여건만 허락한다면 자주 더 많은 곳을 가보고 싶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많은 땅을 밟아보고, 많은 일을 경험해보고 많은 사람을 만나보는 게 가장 의미 있는 일 아닐까. 배우로서도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인생의 과업이랄까(웃음).
새로운 경험 자체를 즐기는 편인가?
방송을 통해서 내 일상을 전시하는 것만 아니라면 불편할 일은 별로 없다. 수준 이하만 아니라면 영화도, 음악도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음식도 가리지 않고 잘 먹는다.
아무래도 ‘제일 좋아하는 한 가지’란 식의 질문에 답하기 힘들겠다.
쉽게 못 고른다(웃음).
그나저나 계속 먹는 얘기다. 먹는 걸 정말 좋아하나 보다.
인생의 낙이다.
직접 요리도 하나?
밥 먹을 때 된장찌개나 끓이는 정도? 그냥 내 취향대로 만들어먹는 게 좋다. 요리를 배워본 적은 없어서 감으로 한다. 스파게티도 눈대중으로 보고 만들었다. 그래서 어떻게 만드냐고 물어보면 설명을 못하겠더라.
연기도 경험이라고 생각하면 재미있겠다.
그런데 연기는 어렵다. 말하는 것처럼 간단하지 않으니까.
<표적>은 예고편만 봐도 육체적으로 힘들어 보이더라.
게다가 임신한 아내를 납치당한 남자라는 극한의 상황에 놓인 캐릭터인지라 촬영 내내 광분해 있는 상태여야 해서 더욱 힘들었다. 미친 듯이 소리치고, 달려야 했다. 횟수가 거듭될수록 감정은 더 좋아지는데 체력적인 한계가 있다 보니까 조율하는 게 어렵더라.
제작보고회에서 류승룡 씨의 말에 따르면 가녀린 액션을 보여준다던데.
평범하게 살던 의사가 갑자기 용맹심을 느낀다고 해서 얼마나 대단한 힘을 발휘할 수 있겠나. 몽둥이 하나를 휘둘러도 어설플 거다. 뭔가 멋있게 보이면 말이 안 되는 거지. 현장에서 우리끼린 ‘X밥’ 연기라고 했다(웃음). 하지만 공식석상에서 그럴 수 없으니까 그렇게 표현한 거다.
액션을 제대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잘할 수도 있을 거 같다. 하지만 아무래도 액션이 들어가는 건 대작이 될 가능성이 많을 텐데 나라는 배우가 그런 대작엔 안 어울리는 것 같고.
최근 한 방송 인터뷰에선 편지를 자주 쓴다고 얘기했다.
자주까진 아니고 가끔. 다만 지인들한테 시를 자주 보내긴 한다.
직접 시를 지어서 보낸다고.
좋은 시를 찾아서.
원래 시를 좋아하나?
시로 마음을 전하는 게 좋다. 물론 친구들은 좋아하지 않는다(웃음).
최지우 씨와의 연애가 지금도 종종 회자된다.
그래도 이젠 연관검색어에서 잘 안 보인다. 가끔 방송에서 연예인의 연애 이야기가 언급될 때 수면 위로 올라오기도 하는데 지금은 확실히 관심이 얕아진 것 같다.
원래는 공개 연애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다던데.
그냥 공개연애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사실 나란 사람에 대해서 밝혀지는 것 자체가 싫다. 대중들이 진짜 나라는 사람을 몰라야 작품 속의 내 캐릭터를 받아들이기 쉽다. 결국 내 사생활을 알리지 않는 것이 배우로서 살아가는데 도움이 된다. 반대로 그게 불가능하면 나는 손해를 본다는 말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내 사생활을 모른다고 해서 손해를 보진 않는다. 다만 그 호기심을 막을 순 없다. 그래서 쫓아다니면서 사진 찍는 것까지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당연히 대중들의 알 권리를 위해서 사생활을 포기해야 한다고, 심지어 그게 알 권리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건 정말 이해할 수 없다. 당해보지 않아서 그렇겠지(웃음).
사내연애를 괜히 비밀로 하는 게 아니니까.
사귀다 보면 싸울 수도 있고, 헤어질 수도 있는데 왜 헤어졌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일일이 설명할 수도 없고, 설명해도 이상해진다. 아무래도 일반 대중들에겐 배우나 연예인이 비현실적인 존재들로 여겨지나 보다. 돌을 던져도 피가 나지 않을 거 같은? 그래서 예능에서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면 좀 나아지는 것도 같지만 아무래도 배우로서 좋은 선택은 아닌 거 같다.
그래도 스트레스에 오래 시달리는 편은 아닌 것 같다.
그런 고민은 짧고, 깊고, 강하게, 빨리 끝내야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잘 안될 때도 있지만 어쨌든 그런 생각들은 빨리 정리해서 넘기는 편이다.
연애는?
연애에 대한 관심은 항상 있다.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연애는 해야 한다(웃음). 하다 못해 여가수나 여배우를 좋아하는 것도 사랑일 수 있다. 남자들은 원래 그런 힘으로 살아가는 거 아닌가(웃음)?
요즘 호감 가는 여자는?
제니퍼 로렌스가 그렇게 좋더라. 인터뷰 중인 다른 배우 뒤에서 장난 치는 모습을 보면서 ‘뭐 저런 여자가 다 있나?’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요즘 떠오르는 배우더라. 정말 특이하면서도 호감이 갔는데 <아메리칸 허슬>을 보고 나서 출연작을 다 찾아봤다.
혹시 본인의 이상형인가?
음, 그런데 막상 옆에 있으면 조금 부담스러울 거 같기도 하고(웃음). 어쩔 수 없는 대한민국의 고지식한 남자니까. 물론 너무 좋겠지. 정말 재미있을 거 같고. 하지만 갑자기 어느 순간엔 ‘제발, 가만히 좀 있어봐’ 이렇게 얘기할 것 같다(웃음).
열정적으로 살다간 예술가들에게서 감동을 느낀다고 말한 적이 있다.
아무에게도 인정받지 못했던 불행한 예술가들이 있지 않나. 멋진 음악이나 멋진 그림을 남겼지만 살아생전엔 찢어지게 가난하고, 그렇게 불행한 삶을 살다가 죽은 예술가들의 작품들은 자기 생명을 태워가면서 만든 것처럼 느껴진다.
만약 굉장히 불행한 현실을 살다가 죽어서 인정받는 예술가로서의 삶을 선택할 수 있다면?
못할 거 같다(웃음). 나는 그런 숭고한 삶을 살 깜냥이 안 된다. 영혼을 불태워서 뭔가를 해낼만한 재주도 없다.
무엇보다 먹는 게 낙이니까.
그럼(웃음). 지금의 삶을 잘 유지하면서 잘 먹고, 잘 살고, 그 정도면 충분하다(웃음).
그런 면에서 첫 주연작인 <표적>의 흥행이 간절해지진 않나?
특별히 흥행에 대한 기대는 없다. 작품에 대한 기대가 없다는 말이 아니다. 그런 부담을 가진다고 해서 작품이 잘될 것도 아니고, 나는 항상 열심히 할 거니까. 어쨌든 그래도 잘 돼야지. 그리고 잘 될 거다.
밥이라는 거, 그냥 씹어 삼킬 수만 있으면 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맛없는 밥을 먹으면 맛있는 디저트라도 먹어야 한다고 했다. 새삼 내 혀에게 미안해졌다.
“조물주는 인간에게 살기 위해 먹기를 강요하는 대신 그것을 권장하려고 식욕을, 그것에 보답하려고 쾌락을 주었다.” 미식의 경전으로 꼽히는 <미식예찬>의 저자이자 저명한 미식 평론가였던 브리야 사바랭이 남긴 말이다. 여기서 쾌락이란 아마 미각을 의미할 것이다. 맛을 느낄 수 있다는 건 자연히 맛있는 것을 먹고자 하는 욕구로 나아가기 마련이다. 이 욕구란 것이 결국 신이 인간에게 선사한, 일종의 혜택이란 의미다. 하지만 모든 이들이 이 혜택을 잘 누릴 수는 없을 것이다. 혹은 그 혜택을 꼭 누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존재할 것이다. 그건 살기 위해 먹어야 한다는 것을 강요할 필요가 없는 인간이 있기 때문이다.
회사 사무실이 이사하기 전, 그 부근에 점심시간마다 자주 찾던 식당이 하나 있었다. 흔히 밥집이라고 말하는 백반집 같은 곳이었는데 아마 몇 달 동안 그곳을 찾는 내내 순두부 찌개를 먹었던 것 같다. 나중에는 내가 순두부 찌개를 시킬 것임을 사장님도 짐작할 지경이었는데 한번은 함께 밥을 먹던 회사 동료가 말했다. “순두부 찌개 정말 좋아하나 봐.”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정답도 아니었다. 싫어하지 않을 뿐 정말 좋아하지 않았던 게다. 그런데 왜 맨날 순두부 찌개를 먹었던 것일까. 그냥 그게 편했다. 어차피 밑반찬이 매일같이 바뀌는 곳이고 찌개 역시 밥맛을 돋우기 위해서 곁들인 음식이라고 생각하면 뭐가 됐든 상관 없었다. 어차피 그 나물에 그 밥이니까. 물론 그 식당의 다른 메뉴가 형편없어서가 아니다. 대부분 먹을만했다. 나는 좀처럼 ‘맛있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먹을만하다’ 정도라면 적당히 만족한다. 순두부 찌개는 먹을만했다. 내 기준에서 먹을만한 메뉴들은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씹어 삼킬 수 있었다. 고로 어제 자장면을 먹었으니 오늘 자장면을 먹을 수 없다는 논리는 나와 무관했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는 것처럼 오늘은 오늘의 짜장면이, 내일은 내일의 짜장면이 만들어지는 거다.
“지금 먹고 싶은 거 있어?”라는 질문에 답할 수 없는 건 그래서였다. 먹어야 한다는 본능은 강렬한데 먹고 싶은 무언가에 대한 욕구는 강렬하지 않았다. 서술어는 존재하는데 목적어가 부재했다. 뚜렷한 의지도 없었다. 사실 직장인이라면 필연적으로 일주일에 다섯 번씩 반복적인 고민에 당면한다. 점심시간마다 매번 무엇을 먹을 것인가라는 화두 앞에서 고민하기 마련이다. 만약 당신이 80세까지 살아간다고 생각해보자. 그렇다면 당신은 29200번의 점심을 먹어야 한다. 하루에 식사를 세 번 한다는 가정 하에선 87600번의 식사를 해야 한다. 그만큼의 고민을 껴안고 살아야 한다는 건 생각 이상으로 피곤한 일이다. 결국 적당히 끼니를 때우자는 절충안이 득세하기 마련이다. 생존이라는 식사의 본질적인 기능성이 메뉴 선정의 패턴에 적극적으로 반영된다.
사실 내게 있어서 식사란 기본적으로 주유 혹은 충전과 다를 바 없는 행위다. 식사란 에너지 충전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뇌에서 보낸 전기 신호로 인해 촉진된 위산의 분비가 발생시킨 위벽의 통증, 즉 우리가 흔히 허기라고 말하는 생리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서 씹고 삼키는 행위를 유도하기까지의 매커니즘의 결말에 해당된다, 결국 인간은 살기 위해서 식사한다. 다만 생존만을 생각하기엔 인생은 길고 먹을 것은 많다. 그래서 사람들은 맛있는 것을 먹길 바란다. 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항상 최상의 맛을 느낄 수 없다면 적당한 포만감이 보다 중요하다. 신은 내게 세치 혀가 느낄 수 있는 쾌락을 선물했을지 몰라도 그것을 끝까지 추구할 끈기를 선물한 것 같진 않다. 하지만 무엇이든 먹을 수 있는 입과 소화시킬 수 있는 위만큼은 확실히 선물한 것 같다. 그리고 세상엔 신이 선사한 혜택을 즐기고자 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맛있는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신념을 필사적으로 추구하는 이가 존재한다. 그렇다면 그의 고민에 무임승차하면 된다. ‘머리칸’이든 ‘꼬리칸’이든. 그런데 대부분 그 고민의 주체는 남자보단 여자였던 것 같다.
사실 예전엔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들은 왜 항상 밥을 남기면서 케이크를 먹는 것일까. 분명히 배가 불러서 밥을 남긴다고 했는데 어찌하여 저 빵은 입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인가. 그때마다 그녀들은 말했다. 여자에겐 ‘밥 배가 따로 있고, 디저트 배가 따로 있다’고. 그러니까 한 조각 케이크를 맛보기 위해 그녀들은 그리 밥을 남겼나 보다. 생각해보면 그것이야말로 대단히 필사적인 행위였다. 자신에게 주어진 혜택을 누리고야 말겠다는 일종의 의지. 식사가 맛이 없었다면 맛있는 디저트라도 먹어야 한다는 의무감. 물론 그녀들은 식사가 맛있어도 디저트를 찾는다는 게 함정이지만 어쨌든 디저트 문화라는 건 보통의 남자들에겐 익숙한 행동 양식이 아니다. 남자 둘이서 카페에서 케이크를 나눠 먹고 있는 모습을 볼 기회란 흔치 않은 건 그래서다. 애초에 케이크를 먹기 위해서 위를 비워야 한다는 사고를 지시할 학습 유전자 자체가 남자에겐 희박하다. 결국 대부분의 남자들에게 미식의 개화기를 열어주는 건 여자일수밖에 없다. 애인과의 데이트를 위해서 맛집을 찾고, 브런치를 먹고, 케이크를 먹고, 와인도 마시고, 아마 대부분의 남자들은 여자를 통해서 미식의 개화기를 맞이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 남자 누구냐고? 내가 그랬다.
잘못된 일반화의 오류 아니냐고? 글쎄. 물론 아닌 남자들도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분명 남자의 팔 할은 그럴 것이다.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삼겹살이 이 땅의 외식 문화를 지배하던 시절이 있었다. 삼겹살을 무시하는 게 아니다. 그것만이 내 세상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는 말이다. 남자들이 주도한 심심한 식문화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은 건 분명 여자들이다. 결국 먹고 싶은 게 많은 여자들 덕분에 먹을 수 있는 것이 많아졌다. 사회적인 시각도 변했고, 남자들의 혀도 달라졌다. 여자로 인해 남자의 미각이 진화했다. 생각해보면 아담에게 선악과를 권한 것도 이브였다. 태초부터 미식에 대한 호기심이란 남자보단 확실히 여자의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단언컨대 여자가 미식의 미래다. 고로 나는 그녀들을 따라서 주유, 아니, 주문한다. 선악과라도 상관없다. 먹을만하니까 먹었겠지.
스팀펑크는 증기기관으로 움직이는 미래다. 19세기의 유물로부터 빚어진 상상력이 21세기에 주목을 받고 있다. 물론 증기기관차를 타고 싶어서가 아니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말했다. ‘인간 존재의 본질은 다름 아닌 불안’이라고. 인간은 불안해한다. 그리고 불안은 대부분 미래에서 온다. 마치 존 코너를 잡으러 과거로 오는 터미네이터처럼. 존재하지 않는 것 즉 알 수 없다는 것 자체가 불안이다. ‘발달된 기계 문명에 의해서든, 자연 재해에 의해서든, 존재를 알 수 없는 우주 어딘가의 외계인에 의해서든, 인류는 멸망할지도 모른다!’라는 불안감. 그 중에서도 가장 현실적인 불안을 야기시키는 건 하이 테크놀로지의 발달에 의한 영향력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불안은 때론 인간의 상상력에 불을 지피는 땔감 노릇을 해왔다. SF영화들이 숱하게 그린 디스토피아의 미래상은 문명의 발달과 함께 자라는 인간의 불안에서 비롯된 결과물이다.
‘사이버펑크(cyberpunk)’라는 장르의 태동도 이런 불안에서 비롯됐다.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와 ‘펑크(punk)’의 합성어인 사이버펑크는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로버트 위너의 저서에서 처음 언급된 뒤 컴퓨터를 기반으로 발달한 인공지능을 대변하는 용어로 대두됐으며 SF세계관을 대변하는 장르적 언어로 자리잡았다. 컴퓨터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편의를 넘어서 인간을 위협한다는 두려움은 더욱 짙어졌고, 발달된 기술이 부의 축적에 따라 차별적으로 적용될 것이라는 비관적인 예측도 등장한다. <블레이드 러너>와 <매트릭스> 같은 SF영화들이 그리는 음울한 미래상과 인간성의 말살에 대한 고찰은 사이버펑크의 자궁 안에서 잉태된 것이다. 이는 컴퓨터를 위시한 디지털 기술의 발달과 함께 심화된 물질주의에 대한 불안을 반영한 디스토피아를 그린 SF적인 세계관으로 이어지고 있다.
미국의 SF소설가 K.W.지터는 당대를 지배하던 사이버펑크 운동에 빗대어서 자신이 창조한 세계관을 이렇게 언급했다. “컴퓨터 대신 증기기관이 등장하는 우리 소설은 ‘스팀펑크(steampunk)’라고 불려야 한다.” 스팀펑크는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촉발된 산업혁명과 함께 급격한 산업화가 도래한 19세기 영국의 빅토리안 시대를 모티프로 삼은 SF소설의 하위 장르이자 대체 현실이다. 새로운 시대의 도래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반영된 만큼 활기가 넘친다. 태엽이나 톱니바퀴로 대변되는 기계적인 이미지가 부각된 스팀펑크의 세계관은 컴퓨터와 내연 기관 대신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증기기관을 통해서 고도로 발달된 가상의 미래를 그린다. 증기기관차와 비행선 등 산업화 시대의 이동 수단으로 대변되는 스팀펑크의 미래란 대체로 인간이 기계를 압도하는 기술자의 시대이기도 했다. 거미를 연상시키는 거대한 기계 로봇이 등장하는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나 미야자키 하야오의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등장하는 증기기관으로 나는 거대한 기계성은 결국 인간의 의지에 따라 작동하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디지털화되는 테크놀로지가 인간을 대체하리라는 불안을 먹고 자란 사이버펑크와 달리 스팀펑크는 기계 문명을 이용하는 인간의 역할을 뚜렷하게 묘사하며 아날로그적인 기계 문명에 대한 향수를 부추긴다. 게다가 사이버펑크가 그리는 미래는 당대의 상상력을 넘어서지 못하는 이미지의 한계를 보여주는 경우가 많았다. 이를 테면 최첨단화된 미래를 그린다던 90년대의 사이버펑크 영화들이 도스창을 띄운 컴퓨터 화면을 제시하고 있다는 건 결국 당대의 상상력이 지닌 필연적인 한계가 명확한 이미지로 드러낸다는 말이다. 반면 스팀펑크는 과거의 이미지를 바탕으로 구성되는 만큼 고유의 세계관이 보존되기 때문에 이미지의 일관성이 유지되면서도 풍부한 재해석이 가능하다. 오히려 지나온 과거를 통해서 미래를 내다보는 만큼 시도할 수 있는 것들이 무궁무진하다.
지난해, IBM에선 인터넷상의 게시판과 블로그, 뉴스, SNS상의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향후 2년간 스팀펑크가 스타일을 주도하게 될 것이란 분석을 내놓았다. 이는 스팀펑크가 유형의 가치로 거듭나고 있다는 말이다. 문학이나 영화의 장르적 소재를 넘어서 실생활의 아이템으로 거듭나고 있다. 게리 올드만, 가렛 헤드룬드, 제이미 벨, 윌렘 데포와 같은 배우들을 모델로 내세운 프라다의 2012년 F/W 남성 컬렉션에선 19세기 영국 빅토리안 시대의 복식을 모티프로 현대적인 스타일을 가미한 스팀펑크 콘셉트를 공개한바 있다. 한편 2010년 이후로 미국 내 24개 이상의 백화점과 의류 전문점에선 스팀펑크 스타일의 인테리어 콘셉트를 반영했다고 한다. 이를 기반으로 의류, 액세서리 산업으로 영향력이 확장되고 있는 추세다.
스팀펑크의 모티프가 된 19세기는 아르누보 양식에서 비롯된 아르데코 양식이 절정을 이루던 시대다. 스팀펑크 또한 그 영향력 아래 있다. 자연주의적인 양식의 아르누보를 바탕으로 기하학적인 문양과 금속 재질과 기계적인 디테일을 활용한 아르데코 양식은 스팀펑크에 온전히 반영됐다. 오는 3월 8일부터 5월 18일까지 예술의 전당에서 개최되는 <스팀펑크 아트전>은 이런 스팀펑크 아트의 현주소와 그 가능성을 대면할 수 있는 기회다. 크고 작은 태엽들을 비롯한 기계 부속을 활용해서 다채로운 동물들의 형상을 완성한 작품들과 앤티크한 조명이나 다양한 소품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특히 매끈한 외형을 자랑하지만 점차 천편일률적인 형태로 획일화되고 있는 노트북과 태블릿 PC 등의 디바이스들의 외형을 해체하고 고풍스럽게 고안된 스팀펑크의 형태를 입힌 실생활적인 디자인은 스팀펑크의 재발견에 가깝다. 타자기의 형태를 빌린 아이패드 거치대라던가, 빈티지하게 재가공된 데스크탑 등은 고도로 발달한 기술에 풍요로운 감수성을 불어넣는 작업 같기도 하다.
스팀펑크에 ‘펑크’라는 단어가 결합된 건 체제에 대한 저항적인 상상력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스팀펑크가 그리는 19세기의 풍경은 산업화로 인해 태동한 기계 문명이 여전히 인간에게 종속되는 시대였다. 사고의 기능이 인간에게 머물던 시기였다. 결국 21세기에서 스팀펑크가 주목을 받는다는 건 인간 그 자체를 발굴하고자 하는 시대적 요구가 아닐까. 가속화되는 디지털 기술의 발달 속에서 점차 기술의 지배자가 아니라 기술에 종속되어가고 있다는 위기의식으로부터 탈출하고 싶다는 것, 기술의 발달이 부추기는 물질중심적인 세태로부터 소외되는 인간 고유의 가치를 회복하고 싶다는 것, 그것이 스팀펑크를 주목하도록 이끈다. 또한 급속히 변화하는 21세기의 풍경 속에서 고유의 미학적 가치를 계승하고 새로운 창조를 이끈다는 건 스팀펑크가 제시하는 청사진이기도 하다. 고글, 시계 태엽 장치를 바탕으로 완성된 장신구를 비롯해서 프록코트, 실크모자, 가죽 등의 소재에 결합된 스팀펑크의 미학은 그야말로 무궁무진하다.
역사학자 E.H. 카는 말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라고. 21세기에서 스팀펑크가 조명되는 건 어쩌면 그것이 이미 인간이 거쳐온 역사를 바탕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지난 역사를 통해서 오늘의 역사를 보완한다. 16세기의 르네상스는 절대적인 신 중심의 세계관에서 탈피해 인본주의에 바탕을 둔 예술적 움직임이었다. 기술이 인간을 압도하는 시대에서 인간의 감성을 닮은 아날로그의 향수를 부추기는 스팀펑크가 주목받는다는 건 여러모로 르네상스 시대의 움직임을 연상시킨다. 21세기의 르네상스는 스팀펑크로부터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시작될 수 있다.
(ELLE DECOR 2014 SPRING NO.13 'DECOR FEATURES CULTURE')
키스하면 안 된다. 허벅지를 감춰라. 언제부터인가 금지된 것들. 영화 포스터에서 불가능해진 것들. 대체 무엇이 문제인 것일까.
최근 국내에서 개봉된 영화 <폼페이: 최후의 날>의 포스터가 흔히 ‘영등위’라고 일컫는 영상물등급위원회에서 주관하는 등급 분류 심의에서 반려됐다. 설마 거칠게 폭발하는 폼페이 화산의 야성미가 위험해 보여서? 그럴 리가. 위험한 건 키스였다. 키스 장면이 선정적이라는 이유였다. 변경된 포스터에선 입 대신 눈을 맞추고 있는 남녀가 자리하고 있었다. 영등위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뇌를 헤집어 봐도 ‘이해’라는 단어를 발굴할 수가 없었다. 이쯤 되면 음모론을 제기해야 한다. 설마 심의에 참여한 이들이 죄다 모태 솔로인 것인가?
사실 영등위의 포스터 심의 기준에 대한 볼멘소리는 하루 이틀 이야기는 아니었다. 다만 최근 들어서 관계자들의 불만이 더해지는 데엔 이유가 있다. “지난 1년 사이에 지나치게 심사 기준이 엄격해진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기준을 잘 모르겠다는 거다. 지난 달까진 별 문제 없었던 기준이 불과 한 달 사이에 불가 판정을 받게 되면 좀 황당할 수밖에 없지 않나.” 한 영화 관계자의 말이다. 최근 개봉된 <아메리칸 허슬>은 두 가지 이유로 심의에서 반려됐다. 여성이 입은 드레스에서 가슴 부위 노출이 너무 심하다는 것과 ‘개수작’이란 단어를 사용했다는 것. ‘선정적인 묘사’와 ‘비속어 등의 표현’에 대한 기준에서 벗어났다는 이유다.
하지만 이런 판단을 무색하게 만드는 전례들이 존재한다. 상반신을 드러낸 채 양 손으로 가슴 부위를 가린 두 여성을 앞세운 <손톱>(1994)이나 전라에 가까운 여인의 상반신이 드러난 <사마리아>(2004)의 포스터는 <아메리칸 허슬>을 반려시킨 ‘선정적인 묘사’라는 기준 안에서 어떻게 자유로울 수 있었을까. 각각 ‘미친놈’과 ‘엿같은’이란 활자가 눈에 띄는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2006)과 <똥파리> 앞에서 ‘개수작’은 좀 무색한 느낌 아닌가. 최소한 일관성 있는 기준이 없다고 느껴질 수밖에 없다.
사실 명문화된 기준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공식적으로 영등위의 업무는 영화 포스터 ‘심의’가 아니라 ‘등급 분류 서비스’다. 사용 가능한 영화 포스터의 등급은 전체관람가밖에 없다. 사실상 심의인 셈이다. 물론 심의가 불필요한 건 아니다. 공공 장소에서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되는 선전물의 유해성은 사전에 판단할 필요가 있다. 그 판단의 기준이 되는 전체관람가 기준은 영등위의 홈페이지에 명시돼 있다. 세부기준에 따르면 선정성과 폭력성, 반사회성 등이 이에 해당된다.
문제는 이 기준이 제 역할을 하고 있느냐다. 명시된 기준에 따라 반려된 포스터 몇 가지를 해석해보자. 폭발하는 화산 앞에서의 키스하는 남녀의 모습은 ‘성행위와 관련하여 방법, 표정 등을 지나치게 묘사한 것’에 해당되는 것일까. 혹은 ‘사회통념상 허용되지 아니하는 성관계를 묘사하는 것’일까. 아니면 폭발하는 화산 앞에서의 키스가 반사회적이거나 폭력적인 것일까. 그렇다면 가슴골의 노출은 ‘가슴을 자세하게 선정적으로 묘사하는 것’에 해당되는 것일까. 드레스 상반신으로 선명하게 드러난 가슴골이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반려된 <베일을 쓴 소녀>의 포스터는 단순히 가슴골의 선 일부를 지우고 전체관람가를 받았다. 그렇다면 지난 해에 개봉된 <컴플라이언스>라는 영화의 포스터를 검색해보자. 노출에 대한 관계자들의 우려와 달리 전체관람가를 받는데 성공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두 포스터에서 노출된 가슴의 선정성이란 어떤 기준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일까.
전체관람가의 큰 기준은 청소년들에게 끼치는 유해성 여부다. 성숙한 여인의 육체가 발육이 왕성한 청소년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순 있다. 하지만 그 호기심이 유해한가. 그렇다면 해수욕장에서 비키니 입은 여자들도 청소년 입장에선 죄다 선정적일 테니까 청소년들의 해수욕장 출입을 금지시키고 거대한 장벽이라도 둘러야 하는 건가. 어른들이 청소년들에게 섹스를 권장하진 않는 건 섹스가 나쁜 것이라서 아니다. 그 행위를 감당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섹스에 대한 올바른 접근을 가르치는 것 역시 어른들의 의무다. 눈을 가리고 귀를 막는 것이 되레 잘못된 호기심을 부추기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 결국 제도의 확립만큼이나 중요한 건 제도를 다스리는 사람들의 가치관일 것이다.
사실 유해성의 큰 기준이 되는 건 노출 수위만이 아니다. 피를 비롯해서 피를 연상시키는 붉은 색을 사용하는 것 또한 철저하게 제한된다. 혹은 생채기나 흉터와 같은 신체 훼손의 흔적이 선명한 이미지도 사용이 제한된다. 흉터가 있는 여인의 얼굴이 클로즈업된 <미스좀비>의 포스터도 흉터들을 대부분 지우고 나서야 사용이 가능해졌다. 붉은 핏빛이 선연한 <300: 제국의 부활> 역시 선혈의 흔적을 지워야 했다. 흉터와 피를 ‘폭력성’의 흔적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해외에서 수입된 두 영화의 포스터는 수입된 일본과 미국에서 사용하는 포스터에 활자만 한국어로 바꾼 결과물이다. 그렇다면 일본과 미국에서는 이 정도의 수위를 인정하고 있다는 것인데 두 나라의 아이들은 한국의 아이들보다 폭력적일까. 중요한 건 그 판단의 주체가 어른이란 사실이다. 사실상 믿음의 주체일지도 모른다.
전체관람가라는 기준 아래 집행되는 등급 분류는 때때로 지나치게 모호하다. 지극히 주관적이다. 현재 영화 포스터 등급 분류에 참여하는 건 공모제를 통해서 위촉된 다섯 명의 위원이다. 사실상 세밀한 가이드라인이 부재한 가운데서 전체관람가 기준이라는 큰 테두리 안에서 다섯 명의 위원의 결정에 따라 영화 포스터의 유해성이 판단된다. 하지만 ‘청소년에게 끼칠 유해성’이란 기준은 지나치게 모호하다. 때때로 개인적인 관점에 따라 해석해야 할 필요가 있다. 게다가 이들은 1년 단위로 교체된다. 매년마다 새로운 관점이 적용된다. 어쩌면 다섯 명의 시각을 통해서 전국민의 관점을 판단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수다. 물론 영등위 입장에서도 고심하는 지점이 있다. “아주 세밀한 규정까지 명문화하면 진짜 규제가 될 수 있다.” 관계자의 말이다. 일리가 있다.
사실 한국은 표현에 있어서 대단히 보수적인 사회다. 전체관람가의 대상이란 대한민국 국민 모두다. 그 모두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전제란 영화 포스터에서 가능한 예술적 시도를 무시하는 결론을 도출할 수밖에 없는 필연적 기준이란 말이다. 그만큼 위원회 역시 보수적인 시선을 견지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정당한 시각이 곧 모두를 만족시키는 시각일리도 없다. 영화 포스터상에서 동성애에 대한 직접적인 표현 자체가 금기시되는 것도 그런 이유다. “우린 예술성을 판단하는 게 아니다. 말 그대로 유해성만을 판단하는 셈이다.” 영등위 관계자의 말이다. 그렇다면 유해성에 대한 올바른 판단 기준을 세워야 할 필요가 있다. 영화 관계자들 역시 영화 포스터의 표현 가치에 대한 확실한 입장을 제시해야 한다. 어차피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 다만 모두가 납득하도록 추구해야 할 가치관은 존재한다. 그것이 영화 포스터에서도 허락 받지 못할 이유는 없다.
“자꾸 나만 바라 봐. 나를 좋아하는 것 같다니까. 유난히 나한테 잘해주더라고. 어떡하지. 내가 먼저 고백할까?” 일단 내 노래를 먼저 들어보게나. ‘아, 여보게. 정신 차려. 이 친구야.’
“그거 다 어장관리야. 원래 선수들이 그래.” 친구는 호기롭게 말했다. 그런데 잠시 후 생각에 잠기더니 무언가 기분 나쁜 것이 떠올랐다는 듯한 표정으로 입을 뗐다. “음, 맞다. 그런 적이 있었어.” 이윽고 혀를 굴려 밀어낸 언어가 폭포처럼 쏟아졌다. “‘나를 좋아하나?’라고 생각했지. 그것도 아니면 왜 나랑 둘이서만 술을 마시겠어? 그리고 자꾸 기댄다니까. 그러니까 나도 왠지 호감이 생기는 거야. 괜히 잘해줄 리 없잖아. 그리고 어느 날 고백했지. 그런데 갑자기 자기는 아니래. 멍했지. 그래서 그 뒤론 안 봤어. 좀 짜증나잖아.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유치하게 군 것 같긴 한데 막상 그 때 기분을 떠올리면 역시 별로라니까.”
왜 그는 그녀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생각했을까? 친절해서? 그럼 지난 번에 찾았던 식당의 종업원은 나를 좋아하지 않아서 불친절했던 걸까. 친절한 건 그럴 수 있다고 치자. 그런데 손을 잡고 어깨도 기대고 막 그러는 건 좀 오해할만하지 않나? 착각하지 않고 배길 수 있는 건가. 그래서 여자에게 물었다. “학창 시절에 여자들끼리 손잡고 화장실도 가는 거 본적 없어? 그만큼 그런 행동이 자연스럽다고. 어느 정도 친해졌다고 네 손을 잡거나 어깨에 기대거나, 그러는 거? 같이 화장실만 안 갔을 뿐이지. 그런 친구들과 비슷한 거야. 그냥 편한 거지. 이성적으로 좋아하는 남자라면 그렇게 못하지. 오히려 엄청 조심스러워질걸.” 미안하다. 잘 몰랐다. 남중, 남고 졸업했거든. 어쨌든 그렇다면 그는 그녀에게 손 잡고 화장실에 가던 ‘베프’ 같은 존재였다는 말일까. 그래도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과연 그것이 남자만의 착각이란 말인가?
물론 착각이 남자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자신에게 친절한 남자로부터 호감을 기대했다가 그저 만인에게 ‘매너 좋은 남자’임을 알고 실망한 여자들의 사례도 적진 않다. 매너 좋은 남자는 그냥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는 ‘홍익인간’일 뿐이다. P2P파일처럼 누구나 공유하는 매너라는 것이 결국 매력일 순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혹시 매너 좋다고 칭찬 받는 여자를 본 적 있나? 혹은 칭찬해본 적 있나? 기억나지 않을 거다. 그럴 일이 없었을 테니까. 매너란 단어의 소유주는 대부분 남자다. 왜냐면 매너란 것이 여자보단 남자에게 유용한 스킬이기 때문이다. 남자는 호감의 기미가 보이면 움직인다. 여자는 보다 신중하다. 어느 정도 확신이 생겨야 반응한다. 먼저 움직이는 쪽이 잘 보이고자 노력하기 마련이다. 채점하는 쪽은 주로 여자다. 남자에겐 매너가 필요한 시점이란 말이다. 그만큼 남자는 보편적인 매너를 갖추는 방향으로 훈련된다. 그만큼 여자들의 친절한 호의란 남자의 입장에선 낯선 것이다. 여자들이 친절을 베풀 줄 몰라서라는 말이 아니다. 그럴 기회가 적다는 말이다. 남자 입장에선 희소한 경험일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다. 그만큼 그 여자가 인상적으로 느껴질 가능성이 있다.
육체적인 차이로부터 오해가 조장되는 경우도 있다. 일상적으로 남자가 여자의 몸에 손을 댄다는 건 조심스러운 일이다. 오해의 소지가 다분하다. 상대적으로 여자가 남자의 몸에 손을 댄다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이는 경향이 있다. 물론 스킨십에 대한 욕망은 여자보단 남자에게 보다 강렬하다. 남자의 입장에서 여자의 육체는 ‘감각의 제국’이나 다름없다. 그만큼 스킨십에 있어서 심리적으로 예민한 건 남자 쪽일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어서 포털사이트에서 ‘가슴’과 ‘팔짱’을 함께 검색해 보시라. 팔짱 낀 여자의 가슴이 팔에 닿는다는 것이 남자의 상상력을 얼마나 자극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여자에겐 그냥 피부의 접촉일지 몰라도 남자에겐 의미 있는 행위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는 말이다. 물론 그저 감사한 마음으로 즐기는(!) 남자도 있는 것 같긴 하지만 어쨌든 그렇다. 여자의 무신경한 행위가 남자에겐 적극적인 어필로 읽힌다는 말이다.
남자의 감정 표현은 확실히 단순하고 명확하다. 물론 혹자는 반문할 것이다. 요즘 남자들도 ‘밀당’이 얼마나 심한데! 미안하지만 그렇게 느꼈다면 그 남자가 당신에게 확실한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남자는 감정적으로 어리석은 짓은 해도 자기 감정을 배반하진 못하는 존재다. 물론 선수가 아니라는 전제 하에서. 하지만 이는 여자도 마찬가지다. 어장 관리는 성별의 제한을 두지 않는 선수들의 세계니까. 어쨌든 남자란 자신이 좋아하는 상대에겐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전달하고자 애쓰기 마련이다. 상대를 소유하고 싶어한다. 그러니 상대의 호감을 예감한 남자들은 그만큼 빠르게 달궈진다. 감정을 익히는 속도를 끌어올린다. 아우토반을 만난 듯이 질주한다. 그래서 착각 속에서 달려나간 감정을 돌이키기가 어렵다. 혼자만의 상상 속에서 그녀는 이미 나만의 연인이었는데 환상 속의 그대가 돼버렸으니 헤어나올 길이 막막하다. 한편에선 수치심도 자란다. 본의 아니게 착각하게 만든 그녀가 원망스러워지기 마련이다. 착각은 자유지만 대가가 크다.
사실 자신의 호의가 ‘나를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착각하게 만든 남자가 있었던 여자에겐 그런 경험이 몇 차례 더 있었거나 생길 가능성이 있다. 미필적 고의로 어장을 운영하는 여자인 것이다. 나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습니다. 매번 말하고 미안해한다. 정말 본의 아니게 그리 된 것인지 의심스럽다. 어차피 미필적 고의로 착각을 수확했던 그녀였건, 고의적으로 마음을 경작했던 그녀였건 간에 그녀들에게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 아니었던 남자라면 아파도 다시 한번 거절의 뉘앙스를 떠올려볼 필요가 있다. 전문적인 양식업 종사자는 끝까지 당신에게 마음이 없다는 뉘앙스를 풍길 뿐 자신의 어장에서 쉽게 풀어주려 들지 않는다. 자신을 사랑한다는 남자를 긍휼히 여겨서 격려하고 위로를 할지언정 미안해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본의 아니게 양식업에 종사하게 된 그녀라면 선을 그을 것이다. 본의 아니게 당신을 옭아맨 그물을 당장 치우려 노력할 것이다. 사과부터 할 것이다. 당장의 착각에 일조했다는 죄책감을 표시할 가능성이 높다. 그것이 위로가 될진 모르겠지만 최소한 잘못된 경로를 수정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안긴다.
<건축학개론>에서 수지가 연기한 서연이 ‘썅년’이 된 건 그녀가 약아서가 아니었다. 승민(이제훈)이 머저리였기 때문이다. 이 여자가 내 여자다. 왜 말을 못해! 하지만 알다시피 수지는 ‘국민 썅년’이다. 대한민국 남자들이 필연적으로 입대하는 것마냥 수지를 좋아한다. 물론 남자들이 착각하는 여자가 죄다 수지 같을 리가. 하지만 매력이 없는 여자가 남자의 착각을 불러일으킬 순 없다는 말이다. 고로 선수 지망생을 꿈꾸며 자신의 매력에 낚이는 남자들의 어장 관리를 즐기는 여자가 아니라면 주의할 필요는 있다. 자신을 좋아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남자들의 원망을 먹고 사는 일상이 즐거울 리만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남녀 사이엔 친구 관계라는 게 없다는 속설이 괜한 말은 아니다. 그만큼 이성간의 친구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황진이가 서경덕과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건 서경덕이 황진이를 옆에 누이고도 코를 골고 잘 수 있는 대쪽 같은 남자였기 때문이다. 세상에 그런 남자가 흔할 리 있겠나. 아니, 그런데 진짜 잠만 잤을까? 진짜?
뮤지션 정재형은 기분 좋게 망가지는 법을 알았다. 드디어 조금 방송을 알게 됐다. 어느 정도 카메라가 익숙해졌다. 이젠 카메라 앞에서 요리도 한다.
발리에 서핑을 하러 갔다가 급작스럽게 맹장수술을 받게 돼서 살이 빠졌다던데, 맹장수술을 받았다는 것보다 서핑을 한다는 게 의외였다.
작년 10월부터 시작했는데 나도 이렇게 좋아하게 될 줄은 몰랐다. 몇 년 전부터 아는 후배가 해보면 좋아할 거라고 추천해서 생각만 하고 있다가 일단 수영을 먼저 배웠다. 그리고 수영이 어느 정도 능숙해질 무렵 (장)기하랑 부산에 놀러 갔다가 나만 하루 더 묵게 됐는데 뭘 할지 고민하다 부산에 있던 후배들한테 연락했고 서핑을 배우게 됐다. 지금은 컴퓨터에서 파도 그림만 봐도 스트레스가 해소된다.
서핑은 의외지만 요리는 어울린다. 올리브TV에서 진행하는 <정재형의 프랑스 가정식>을 제의 받게 된 과정은?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됐다. 작년에 방송 관계자와 저녁을 먹다가 프로그램 이야기가 나왔는데 만약 요리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면 프랑스 가정식을 할 수 있겠다고 했다. 거창하게 느껴지는 메뉴가 아니라 브라세리(brasserie)에서 먹던 소박한 가정식 말이다. 물론 그 당시엔 당장 바빠서 여건이 안됐다. 요리 프로그램을 해본다는 게 망설여지기도 했고. 그러다 이렇게 하게 됐다.
원래 요리는 즐겨 하는 편이었나.
파리에선 그랬다. 처음 도착하자마자 했던 건 아니었다. 시간도 없었고, 해봐야 계란밥 정도? 그렇게 1년이 지날 무렵 피부 질환이 생겨서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식생활을 묻더라. 당시엔 육류 위주로 먹거나 인스턴트로 대충 때우곤 했다. 그러니 병이 나지 않겠냐고 묻는데 그럴 만했다. 그 다음부턴 매끼마다 샐러드를 만들었고 그렇게 시작했다. 파티에 초대되면 항상 레시피를 물어보곤 했는데 한번은 일본 친구들이 끓인 카레에 놀란 적이 있었다. 6시간 동안 양파를 볶아서 카라밀라이즈를 만드는데 요리도 하나의 창작이라고 느껴지더라. 음악처럼 남들을 즐겁게 만들 수 있다는 게 좋았다.
메뉴 선정 방식은?
<마스터 셰프> 출신의 박준우 씨가 감수를 도와준다. 지금은 10회 정도까지 대략적인 레시피를 정했다.
메뉴 선정에 개인적인 경험도 반영될까?
그래야 할 얘기가 생기더라. 그래서 하고 싶은 메뉴를 한 20가지 정도 뽑아놓은 다음에 가능하겠다 싶은 걸 추려낸다. 그런데 ‘블랑켓 드 포’처럼 손이 많이 가는 메뉴보단 ‘크래프 수제트’ 같이 간단한 메뉴가 반응이 좋다. 요리 프로그램에서 원하는 느낌을 배우면서 수정을 해나가기도 한다.
반응도 체크하나?
안 본다고 말할 줄 알았겠지만 챙겨본다! 그런데 이거 마케팅 아닌가 싶을 정도로 적극적인 리뷰가 많더라. 직접 만들어서 사진을 올린 글을 보고 ‘오!’ 이러면서.
음악에 대한 반응을 접하는 것과는 기분이 다를까?
분명히 그렇다. 아무래도 내 음악과 방송에서의 이미지는 극과 극이기도 하고. (유)희열이가 그랬다. ‘굳이 중간 지점을 찾아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어떤 면에선 유일한 사람 아니냐. 그냥 형이 보여줄 수 있는 걸 예능에서 보여주면서 음악과 같이 가면 되지 않겠냐.’ 그런 것 같다. 내가 언제까지 방송을 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자연스럽게 흐르는 대로 가려고 한다.
뒤늦게 생각해보면 <무한도전> 출연이 큰 전환점이 된 셈인데.
물론 그 당시엔 생각지도 못했다. 그저 어리둥절했지. 당시에 수많은 프로그램 출연 제안을 거부했던 것도 내가 불안했기 때문이다. 내가 원래 정리가 안되면 한발도 못 뗀다. 그런데 요즘 <정제형의 프랑스 가정식>은 좀 편하게 하고 있다. ‘편집을 잘해야 할 텐데’라고 생각하다 보면 불안하기도 하지만(웃음).
의외로 방송 활동에 적극적이란 인상이다. 가끔은 즐기는 것도 같고.
예능을 할 거라면 어설프게 하진 말자고 생각했다. 잘하겠다는 야심이라기 보단 최선을 다하자는 각오랄까? 물론 음악 활동을 해치지 않는 선을 유지하면서.
그런데 새 음반은 아직도 기약이 없나?
곧 영화음악 작업을 하나 시작한다. 사실 <무한도전> 이후로 고정 출연했던 방송이란 게 <유&아이> <불후의 명곡> 정도였다. 하지만 정작 내가 음악 외에 다른 것에 신경 쓰다 보니까 정신을 못 차린 거다. 원래 써놓은 곡들이 있었고 한 2~3년 전에 음반을 냈어야 하는데 이제야 조금 진정이 돼서 시작해보려고 한다.
멀티태스킹이 어려운 편인가 보다.
멀티태스킹보단 또 다른 정재형들의 유닛 활동이라고 해두자(웃음). 어쨌든 마흔 살까지 음악만 보고 살았는데 내 인생에서 이렇게 한 발 뒤에서 음악을 해보는 건 처음이기도 하다. 사실 음악을 만들고, 가사 쓰고, 공연하고, 그 일정들은 생각보다 버겁다.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 거다. 서핑이 그렇다. 서핑을 하다가 높은 파도가 오면 덜컥 겁이 난다. 나는 지금 아주 낮은 파도만 탈 수 있으니까. 그래서 잠시 멀리 떨어져서 낮은 파도를 기다리는 거다. 음반 활동은 내겐 큰 파도와 같다. 에너지를 비축해야만 한다. 그런데 최근에 아파 보니까 알겠더라. 기도를 하고 있더라. ‘잘못했어요. 음악 할게요.’ 음악을 미루고 있다는 데에서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나 보더라.
그런데 한창 잘 활동하다가 나이 서른에 불쑥 파리로 유학을 갔다.
내가 원래 좀 ‘또라이’다(웃음). 사실 주위에서 걱정을 많이 했다. 하지만 나는 점점 이게 내 길이라는 걸 알게 됐다.
영화음악을 배우겠다고 유학까지 떠난 이유는?
사실 영화 음악은 그냥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베이시스 2집 즈음에 <마리아와 여인숙>이란 영화에 음악감독으로 참여했는데 극장에서 보니까 내가 너무 민망하더라. 아무 것도 없이 할 수 있는 작업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유럽 영화를 좋아해서 파리로 유학을 가게 됐다. 그렇게 2년 정도 공부해서 영화음악 과정이 끝나고 나니까 클래식 공부에 욕심이 생기더라.
9년이나 머물 거라 생각했나.
정말 몰랐다. 길어야 3년 정도? 밀린 공부를 하겠다고 갔는데 기간이 길어졌다. 사실 클래식을 전공할 때 가요를 하면서 교수님들로부터 이단아 취급을 받았다. 그런데 유학 가서 영화음악 과정을 마치고 클래식을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깨달았다. 나도 구분하고 있었던 거다. 그 뒤론 왠지 마음이 편해졌다. 지금까지 음악을 배워왔던 기간보다도 음악에 대해서 더 많이 알게 된 기분이었다. 게다가 그 당시엔 음악 작업을 하지 않는 날이 없었다. 꾸준히 영화 음악 작업 의뢰가 들어왔고, 현지 학교에 내야 하는 과제 작업물도 있었고. 돌아보면 30대가 음악적으로 가장 치열했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의 자양분이 있었기 대문에 지금의 내가 존재할 수도 있었던 것 같고.
아무래도 체류비가 적지 않았을 텐데.
내 음악감독비가 비싼 편이었다. 물론 잘 하니까(웃음)? <중독>에 참여한 이후로 여름휴가를 가본 적이 없었다. 방학 동안 작품 하나 하고 그 돈으로 파리에서 1년씩 생활했다. 그게 아니었으면 그 긴 시간을 감당할 수 없었지. <정재형의 Paris Talk>라는 책을 낸 것도 그런 결핍이 찾아준 경험이 아니었을까. 만약 베이시스의 정재형으로 늙었다면 지금과는 달랐겠지.
결국 9년간의 생활이 지금 큰 자산이 되는 것 같다.
남자는 5~60대에 정말 멋있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여러 가지 경험으로 나를 채워서 그 다음에 쓸 양분이 생긴다. 그렇게 찾아가는 수밖에 없다.
파리 홍보 대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안 그래도 얼마 전에 이적이 그러더라. ‘형, 쫌만 더하면 레지옹 도뇌르 훈장도 받을 수 있겠는데(웃음)?’
요즘 <정재형의 프랑스 가정식>을 보면서 방송이 많이 늘었다고 생각했다.
아마 <불후의 명곡>을 하면서 많이 배운 것 같다. 게스트도 많고, 단순히 <유&아이>처럼 진행과 게스트의 경계가 별로 없다. 완전 전쟁터지. 내가 던져주는 리드 멘트보다 중요한 건 게스트들의 대답이다. 그렇게 고생해보니까 조금 알겠더라. 꼭 ‘조금’ 알았다고 써야 한다(웃음).
<무한도전> 출연 이후에 이효리 씨와 진행한 <대학가요제> 당시엔 정말 심각했는데.
그때 (정)형돈이가 보고 그랬다. ‘다른 건 몰라도 형 옆모습은 눈 감고도 그리겠다! 무슨 측면 진행자냐. 카메라 좀 봐라(웃음).’
<정재형의 프랑스 가정식>은 혼자 진행한다는 점에서 부담은 없었을까?
녹화시간이 1회당 네 시간 정도인데 이게 레시피 프로그램이지만 재미있었으면 좋겠다는 의도도 기저에 깔려있어서 쉽지 않다. 그래서 녹화 전날엔 고민이 많았는데 그걸 안고 가니까 또 잘 안 풀리더라. 그래서 녹화장으로 향할 땐 되도록 발걸음을 가볍게 가져가려고 노력한다.
혼자 떠들면 어색하지 않나?
그래도 스태프들이 다 내 식구 같아서 편하다. 내 입장에선 시청자나 다름없기 때문에 스태프들과의 공감대가 중요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손이 많이 가는 요리를 하다가 손이 부족하면 ‘빨리 와서 이거 저어봐’라고 나도 모르게 말하는데 그러면 스태프도 나와서 젓고 있다(웃음). 친구들이랑 밥을 만들어 먹는 것처럼 자연스럽다.
‘한 입 프렌치’라는 유용한 코너도 있고, 생각보다 실용적인 프로그램이더라.
알차지(웃음). 사실 처음 준비할 때 제작진한테 다양하게 해보자고 코너 하나씩 짜오라고 쪼아댔다. 지금도 계속 그런다. 계속 아이디어를 달라고 닦달하는 중이다.
방송에 대한 적극성이 생겼다고 할까?
다 나를 위해서(웃음).
그래도 어느 정도 요리에 대한 자신감은 있었나 보다.
방송으로 보여주려니까 조금 버거울 때는 있지만 맛있게 만든다는 자신감은 있다. 그래서 ‘맛있다’는 말을 들어야만 만족스럽다. (김)동률이네 막내 동생이 파리에서 미술 공부를 하면서 종종 우리 집에 왔었는데 패션 계통에 있는 둘째 동생도 종종 파리로 출장을 오곤 했다. 한번은 우리 집으로 초대해서 식사를 대접했는데 계속 맛있다고 그러더라. 사실 걔가 좀 무뚝뚝하거든. 나중에 헤어질 때 한 마디 하더라. 팁을 듣고 왔다고. 동률이랑 동률이 막내 동생이 정재형이 만든 밥을 먹을 땐 맛있다는 말을 열 번씩은 해야 한다고 그랬다나(웃음). 아니면 그 다음 요리가 안 나올 거라고. 스태프들이 와서 먹을 때도 “맛있지? 맛있지?”라고 계속 물어본다. 그럼 다들 맛있다고 한다(웃음).
김동률 씨가 제작진에게도 팁을 줬나 보다.
아마 소금을 줘도 맛있다고 할걸(웃음).
팬들로부터 음악요정으로 불렸는데 요즘은 요리요정이라고 불리더라. ‘요정’이 된 기분은?
예전에 <우리 집에 왜 왔니?>라는 영화 음악으로 인연을 맺었던 황수아 감독이 아이유 뮤직비디오를 연출하면서 연기를 해줬으면 좋겠다더라. 그런데 역할이 음악 요정이었다. 그래서 유희열이 공식석상에서 ‘음악요정이십니다’라고 소개를 하면서 음악요정이라고 불리게 됐다. 처음엔 민망했는데 점점 나를 친근하게 느낀다는 뉘앙스가 느껴졌다. 물론 ‘요리요정’ 정재형이라는 타이틀을 붙일 때도 고민이 많았다. 사람들이 또라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잖아. 지금은 그냥 ‘요리 요정님’하면 ‘왜?’ 그런다(웃음).
<밀리언셀러>라는 파일럿 프로그램에서 박명수 씨랑 작곡 대결을 한다던데.
다양한 사람들이 신청한 사연을 모티프로 작곡가들이 곡을 쓴다. 그리고 매회마다 PR해줄 가수에게 곡을 주는 건데 첫 회엔 주현미 씨가 나온다. 어쨌든 내가 쉽게 만날 수 있는 카테고리에 있는 분이 아니고, 트로트를 써야 된다는 점에서 신선하게 다가왔다. 개인적으론 내 상상을 통해서가 아니라 사연을 리터치해서 가사를 쓴다는 점에서 환기가 된 부분이 있다. 사실 지금까지 앨범 발매가 지연된 건 가사 쓰기가 힘들어서였거든. 아무래도 좀 고무적이랄까. 재미있을 것 같다.
유희열 씨나 이적 씨와 친분이 두터워 보인다. 두 사람도 예전에 비해서 예능 활동이 활발해지기도 했는데.
얼마 전에 (이)적이를 만나서 이런 저런 얘기를 했는데 이렇게 서로 꾸준히 조명을 받을 수 있다는 건 고마운 일이 아닐까 생각했다. 다들 스무 살에 데뷔했던 친구들인데 아직까지 사랑 받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고마운 일 아닌가 싶어서.
음악적으로 비교했을 때 누가 더 낫다고 생각하는지?
예전엔 이런 질문하면 약간 머뭇거렸는데 요즘은 그냥 ‘내가 최고지(웃음)!’ 사실 그들의 작업을 보고 있으면 자극도 되고, 존경심이 생긴다. 그들이 음악을 파는 에너지는 남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니까. 정말 잘하는 아이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