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1'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14.11.27 남자의 중력
  2. 2014.11.16 악플의 허수
  3. 2014.11.12 아버지와 나 1
  4. 2014.11.04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남자의 중력

Poemian 2014. 11. 27. 00:41

한 남자가 극장에 갔다. 혼자였다. 자연스러웠다. 남자는 종종 홀로 극장을 찾았다. 처음엔 극장에서 티켓 한장을 산다는 게 조심스러웠다. "한장이요"라고 매표소 점원에게 대답하는 순간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인간으로 전락해 버리는 기분이 들어 영 내키지 않았지만 몇 차례 시도해 보니 생각 이상으로 견딜만한 기분이 되고 점점 훈장처럼 느껴지는 것 같아 이젠 되레 혼자서 영화를 본다는 게 뿌듯한 업적처럼 여겨졌다. 혼자 티켓을 사고 상영관에 들어서서 텅 빈 스크린을 보며 사색하다 좌석을 채워가는 사람들을 바라볼 땐 홀로 세상을 관장하는 신처럼 위대한 존재가 된 것도 같았다. 그래서 한번은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신도 어지간히 외로운 놈이군.' 그 날도 어느 날처럼 홀로 앉아 극장을 훑어 보며 영화가 시작되길 기다리던 중이었다. 갑자기 자신의 옆 자리에 한 여자가 홀로 앉았다. 일행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상영 시간이 임박해 오는데 여자의 일행은 오지 않았다. 여자도 특별히 기다리는 일행이 없는 것 같았다. 남자는 그 여자에게 묘한 연민을 느꼈다. 얼굴이 궁금했다. 하지만 남자에겐 그만한 용기가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향수 뭐 쓰세요?" '?' 남자는 고개를 돌렸다. 여자의 눈이 검은 별 같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근처에서 소리가 날아왔다. "향수 뭐 쓰시는지 알 수 없을까요?" ", 지오 알마니요." 그 순간 영화 광고가 끝나고 극장 불이 꺼졌다. 남자는 영화에 집중할 수 없었다. 대신 우주에 떠있는 까만 별 두 개를 생각했다. 영화가 너무 길다고 생각하면서도 그게 싫지 않았다. '우주의 시간은 유한할지니...' 영화의 시간만큼은 확실히 그랬다. 상영관에 불이 켜지고 남자는 여자에게 물을 기회를 엿봤다. 하지만 여자는 지구의 멸망을 향해 날아오는 유성처럼 빨랐다. 남자는 지구의 멸망을 막아서야 한다는 듯 마음이 급해졌다. 앞서 걷는 여자를 쫓아 뛰었다. "저기요." 여자가 돌아봤다. 다시 우주였다. "향수 왜 물어보셨어요?" "?" "향수요. 아까 물어보셨잖아요." "..." 별이 깜빡이며 대답했다. "남자친구 선물하고 싶어서요." 순간 남자는 중력을 느꼈다. 그래서인지 여자가 유유히 사라지는 사이 발을 떼지 못했다. 지구였다. 지구는 멸망하지 않았다. 대신 세상에서 제일 외로워진 인간이 거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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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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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플의 허수

도화지 2014. 11. 16. 22:22

MC몽의 신보가 공중파 음악 프로그램에서 1위를 차지했다고 들었다. 음원차트에서 고공 행진을 하고 있다던데 이는 인터넷 포털의 댓글 여론이라는 게 결국 허수임을 밝히는 정황 근거가 될 수 있다. 어차피 습관적으로 악플을 다는 애들이 이리저리 둥지를 옮겨가며 기사마다 패악질을 해대는데 그 총량이란 것이 얼마나 유효한 가치가 있겠냐. 그러니까 결국 그걸 받아적으면서 기사 말미마다 인터넷 여론이 어쩌고 하면서 댓글을 나열하고 뻐꾸기질 해대는 요즘의 온라인 매체들의 보도 형태도 유사한 패악질 공범에 가깝다는 말이다. 그런 영향력 없는 신에 거품을 불어넣는 70여 개에 달하는 온라인 매체 신 역시 거품이 자욱하다는 방증이겠지. 다 걷어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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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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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나

도화지 2014. 11. 12. 03:36

그러니까 고2때였다. 학교를 다녀오니 집안 곳곳엔 드라마에서 보던 빨간 딱지가 붙어있었다. 어머니께선 집에 커튼을 쳐놓으시더니 절대 걷지 않았다. 당시 우리 집은 아파트 1층이었는데 문이고 창이고 시시때때로 빚쟁이들이 찾아와 두들겨댔다. 학교를 가는 게 용할 지경이었다. 어느 날은 학교를 다녀오니 어머니께선 약수터에 들고 다니던 물통을 내게 두 개 쥐어주시더니 당신도 두 개를 들고 앞장서셨다. 아파트의 공용 수도에서 물통 네 개에 물을 가득 담아서 집으로 걸어왔다. 수도가 끊겨있었다. 그 뒤로 전기가 끊겼고, 가스가 끊겼다. 촛불을 켰고, 휴대용 버너로 밥을 지었고, 욕조에 채운 물로 나도 씻고 쌀도 씻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사라졌다. 결국 집은 경매로 넘어갔고, 40평 대의 자가 아파트는 15평 남짓의 월세 단독 주택으로 쪼그라들었다. 아버지는 없었다. 나는 당신이 미워졌다. 언젠가 나와 어머니를 버린 당신이 보란 듯이 잘살면서 당신을 한없이 비웃어 줄 거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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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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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요즘 것들은'이란 추임새로 일관되는 노인들의 한탄은 대부분 자신들이 감내했던 젊고 배고픈 시절의 묵은 내를 풍긴다. 하지만 시대는 변했고, 노인들은 자연스레 뒤쳐졌다. 자신들의 뒤쳐짐에 대한 한탄은 보다 풍요로워 보이는 요즘 것들에 대한 규탄으로 발전한다.

 

사실 노인은 대접받을 권리가 있다. 그들은 새로운 시대를 위해 지나간 시대를 견뎠고, 버텼으며 결국 이겨낸 존재들이다. 그렇게 시대를 견디고 버티며 이겨내서 얻은 것이라곤 고작 탑골공원 인근의 영토와 지하철에서의 고성방가 따위다. 여간 성가시고 귀찮아서 방치해 버려야 할 시대적 퇴물들이 도심의 귀퉁이에서 옹기종기 모여서 소주나 막걸리를 들이키고 욕지기를 퍼붓거나 우두커니 내려앉는다.

 

대한민국은 OECD 국가 중 노인 자살률 1위 국가다. 노인들은 힘들다. 그래서 청년들을 욕한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OECD 국가 중 청소년 자살률 1위 국가이기도 하다. 자살률 자체가 1위다. 청소년도 힘들고, 노인도 힘들고, 며느리도 힘들고, 엄마도 힘들고, 아빠도 힘들다. 대한민국에선 한 달에 1200명 정도가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모두가 힘들다. 자기 살 길이 바쁘고, 힘겹고, 고단하다. 미래를 꿈꾸지 못하는 청년들의 세상에서 노인이란 그저 낡아서 자연스레 도태돼버려야 마음이 편한 단어가 돼버리고 있다. 그 누구도 노인을 돌볼 생각을 못한다. 하지만 누구나 노인이 된다. 그렇게 이 사회로부터 도태된 단어가 돼서 도심의 한 켠으로 밀려나 홀로 우두커니 주저 앉거나 악다구니를 쓴다. 그 누구도 눈길을 주지 않는 곳에서, 귀를 기울이지 않는 곳에서. 대한민국은 노인을 위한 나라가 아니다. 그렇게 됐다. 불행한 세상이다. 모두가 다 그렇게 스스로 언젠가 도태될 것이라는 운명을 스스로 목격하고 눈감으며 모른 척 살아간다. 이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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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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