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부동산 중개업자 메릴 모건(사라 제시카 파커)과 변호사 폴 모건(휴 그랜트)은 별거 중인 부부다. 폴의 외도로 인해 부부 사이에 금이 가고 파편처럼 떨어진 채 지나던 부부의 별거도 어느새 3개월에 다다랐다. 벌어진 관계를 이어보려는 폴은 메릴에게 선물을 전하고 만남을 청하며 대화를 나눠보지만 메릴의 마음은 좀처럼 쉽게 열리지 않는다. 그러던 중, 그들에게 영화 같은 사건이 찾아온다. 저녁식사 후, 길을 걷던 그들의 머리 위로 쏟아지는 날벼락 같은 빗방울보다도 더 날벼락 같은, 살인현장을 목격하게 되는 사건이 벌어지는 것. 범인에게 온전히 노출된 두 사람은 증인보호 프로그램 아래, 짐을 싸 들고 시골로 내려가 한 지붕 아래서 다시 일상을 꾸리게 된다.
<들어는 봤니? 모건부부>(이하, <모건부부>)는 뭔가 대단한 사건을 연출할 것 같은 제목과 달리 <장미의 전쟁>의 해피엔딩 버전쯤 되는 부부 클리닉 영화다. 3주 뒤 다시 만날 법적 절차를 밟기 보단 3개월 간의 공백기를 두고 서로와 자신의 감정을 염탐하던 부부는 애꿎은 사건을 빌미로 부서진 관계의 회복을 도모하게 된다. 로맨틱코미디에 스릴러적 코드를 삽입하며 극의 전환적 구실을 마련하는 <모건부부>의 착상은 일면 참신하다. 사실 대부분 로맨틱코미디는 무에서 출발해 유를 창조하는 감정적 관계의 발전양상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한 영화다. 하지만 <모건부부>는 이미 시작부터 일방적인 감정선을 뚜렷하게 드러내는 관계를 지켜본다는 점에서 그런 소소한 장르적 재미가 일정부분 포기된 것이나 다름없다.
애정전선에 위기를 맞이한 부부의 관계가 다시 봉합된다는 서사의 형태엔 어떠한 문제가 없다. 소품적인 위트가 동원되는 발랄한 로맨틱코미디보단 보다 진중한 형태의 교훈을 전달하는 멜로드라마로서의 가치가 발생할 가능성도 다분하다. 하지만 <모건부부>는 철없는 뉴요커들의 투정을 유머로 착각하는 영화다. 말 그대로 로맨틱코미디라는 속성 안에서 얕은 웃음을 발생시키고 좀처럼 설득 당할 수 없는 로맨틱을 구사한다. 달콤한 로맨틱코미디에 살벌한 스릴러적 코드를 삽입해 넣으며 극적인 전환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일부 플롯의 창의력은 인정받을만하지만 전반적인 내러티브가 안이하며 스토리텔링 자체는 식상하다.
뉴요커의 투정을 개그로 치환하는 영화의 태도는 마치 우리가 먹는 스타벅스의 비싼 커피가 실상 미국의 싸구려 1달러 커피란 점을 환기시키는 것과 같다. ‘강남의 귤이 회수를 건너면 강북의 탱자가 된다’는 말처럼 화려하고 세련된 뉴요커들의 삶을 시골로 이양시키며 얻는 시각적 차이가 특별한 묘미를 발생시키리란 착각 차체가 이미 수준 낮은 유머적 감각을 노출한다. 그러니까 그 맑은 공기와 아늑한 정경이 공해와 소음의 향수를 부르는 수단으로서 활용됐을 때, 이미 <모건부부>의 대사나 풍경은 관객을 향한 공해나 다름없다. 철없는 뉴요커의 철없는 동동 구름을 보며 그것이 뉴요커에 대한 오해라도 살까 걱정스러울 지경이다. 그런 껍데기만으로도 로맨틱은 고사하고 코미디조차 기대할만한 여건이 안 된다는 건 이미 자명한 사실이다. 코미디가 내내 헛바퀴를 도는 사이, 로맨틱은 끝내 헛스윙으로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