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앤 유> 단평

cinemania 2014. 3. 3. 01:13

<미 앤 유>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말년작이 될 것임을 제외한다면 큰 특이점이 없는 작품이다.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거나 비범한 걸작으로 분류되진 않을 거다. 하지만 노장만이 지닐 수 있는 사려 깊은 시선을 명징하게 증명하는 작품이다. <몽상가들> 이후로 무려 10년 만에 발표한 베르톨루치의 <미 앤 유>는 소소한 성장 영화에 가깝다. 물론 영화 속의 상황이란 그리 평범하지 않다. 지하실에 마련한 자신만의 아지트에서 은신을 즐기려던 소년이 이복 누나와 우연히 동거하게 되며 벌어지는 7일 간의 사연이란 그 공간성과 행위 설정의 의도로부터 어떤 지적인 메타포를 읽어야 할지 고민하게 만든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미 앤 유>는 한 시대를 풍미한 노장이 새로운 어린 세대에게 내미는 따뜻한 손길에 가깝다. 부모 세대로부터 얻은 상처를 통해서 고립의 장벽으로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혹은 자신을 망가뜨릴 탐닉과 환각으로 도피하려는 동세대간의 소통을 통해서 삶에 대한 회복과 치유를 일깨울 수 있다는 조언이자 충고 혹은 그러한 믿음의 전달에 가깝다. 혁명과 자유를 꿈꾸던 20대의 유아기적 낭만을 아름다운 미장센 안에 담아낸 <몽상가들>이 역설적으로 텅빈 도구 같은 영화였던 것을 생각한다면 <미 앤 유>는 본질적인 질문에 집중하는 인상이라 결과적으로 꽉 찬 인상이기도. ‘Space Oddity’와 함께 맞이한 엔딩 시퀀스에서 소년의 얼굴을 줌인하는 엔딩 컷은 사실 보기 드물게 낡은 방식이라 생경하기도 했는데 베르톨루치라는 감독의 시대를 반추했을 땐 묘하게 다가오는 것도 같았다. 지나갈 시대를 미리 보고 있다는 기분. 그래서 어쩌면 <미 앤 유>는 베르톨루치의 유언 같은 작품일지도 모르겠다고, 내심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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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워> 단평

cinemania 2013. 1. 1. 18:42

솔직히 촌스럽다. 웃기고 울리려는 의도가 다분한 찰나가 그런 정황 속으로 끼어들어가도 될 거라 판단한 연출적 감이 기가 막힌다. 말 그대로 그냥 웃기고 울리는 순간을 나열하면 된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하지만 그런 촌스러움이 <타워>를 붕괴시키는 한방은 아닌 것 같다. 그래도 뛰어난 배우들의 연기와 완성도 높은 CG가 이런 단점을 상쇄시킨다. 거대한 주상복합주택의 화재 안전성은 현재에도 여러 차례 제기되고 있는 문제라 CG의 완성도로 인해서 보다 현실적인 공포로 치환된다. 고의적인 악역의 설정도 눈에 빤하지만 우리네 일상에서 마주치는 파렴치한들의 수준이 그만한 것이라 딱히 뭐라 지적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어쨌든 인재에서 비롯된 거대한 재난의 수순은 인정할만하다. 재난의 이미지는 완벽하고 그 안의 끔찍한 그림도 여럿이라 붕괴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결말부까지의 참혹함은 진짜처럼 와 닿는다. 다만 한강 너머에서 바라보이는 여의도의 타워 스카이는 사실 누가 봐도 9.11의 유사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같아서 남의 비극을 상업의 도구로 활용한 것 같다는 일말의 거부감도 든다. 그 이미지를 권유할 마음도 없지만 말릴 마음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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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 단평

cinemania 2012. 11. 23. 13:41

강풀 작가의 <26>은 사연이 많은 소재를 장르적인 그릇에 담아서 그 감정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영화는 원작에 비해서 호흡은 짧게 가져가야 하니 각색은 불가피하고, 실사화라는 표현적인 제한도 존재한다. 특별한 재해석 능력을 보여준다면 모를까, 원작의 의미에 충실한 작품을 만들고자 한다면 본전 찾기도 쉬운 작업은 아니다. <26>은 그런 제약들을 뛰어넘은 영화적 성취를 보여주는 작품이라 하긴 어렵다. 압축된 초반 서사는 성기고, 변주된 일부 캐릭터는 비효율적인 경우가 발견된다. 그럼에도 영화를 보는 내내 뜨거운 감정이 차고 넘친다. 어떤 식으로든 1980 5 18일에 대한 감정이입에서 자유롭기 힘든 탓이다. 어떤 식으로든 냉정하게 보기 힘들다. 보는 내내 울화가 치민다. 미치도록 죽이고 싶어진다. 영화를 영화 자체로 보기 힘들게 만드는 이 놈의 현실이 문제다. 영화 하나가 짊어진 사연이 뭐 이리 무겁고 언제까지 애달파야 하냔 말이냐.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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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션 사극 <광해: 왕이 된 남자>는 광해군 집권 당대의 아슬아슬한 정치적 조형을 창작적인 스토리텔링으로 안착시키는데 성공했다. 구중궁궐 내의 정치적 모략의 중심으로 떠밀리며 엄격한 궁의 생활에 적응해나가는 왕의 남자의 일상은 코믹한 광경을 이끌어낸다. 이 아이러니한 유머가 칼을 품은 <광해>에서 자연스러운 긴장과 이완의 리듬을 만들어낸다. 아슬아슬한 정치적 조형을 창작적으로 잘 안착시킨 시나리오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때때로 그 합이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 순간도 존재하나 전반적으로 거슬리지 않는 흐름을 지녔으며 그 틈새를 메우는 건 배우들의 탁월한 연기다. 1인 2역을 오가는 이병헌은 서까래처럼 영화의 지붕을 받치고, 류승룡은 주춧돌처럼 영화를 떠받든다. 김인권과 장광의 연기에는 마음이 간다. 교과서적인 웅변조차 절절하게 소화하는 <광해>정치하는 사람보다도 사람이 하는 정치 18세기 조선이나 21세기 대한민국을 관통하는 절실함임을 잘 알고 있다. 달다가 맵다가 끝내 콧날이 시큰해진다.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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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나이트>가 선사한 광활한 충격을 맛본 당신에게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이미 신앙이고 주님일 거다. 무한한 혼돈과 같은 조커를 이겨낸 배트맨은 존재 자체로 파괴이자 절망에 가까운 강적 베인에 맞서 처절하게 짓밟히면서도 또 한 번 일어서서 소돔과 고모라가 될 고담시를 구원해야 한다. <배트맨 비긴즈> <다크 나이트>를 잇는 트릴로지의 피날레 <다크 나이트 라이즈> 164분의 러닝타임 안에서 다시 한 번 사회학적인 관점에서 영웅의 소비 실태를 고민하고 제시한다. 극심한 실업난을 겪고 있는 미국 내 사회에서 월가 시위와 같은 계급적 투쟁이 본격화되고 있는 현실이 적극적인 메타포로 동원된 인상이기도 한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결국 자본과 계급이라는 21세기의 시민사회를 관통하는 히어로계의 <시민 케인>이라 할만하다. 배트맨은 여전히 고뇌의 간지를 풍기고, 베인은 압도적이지만 무엇보다도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서 훅을 날리는 건 캣우먼이다. 한두 가지 결정적 순간이 전체적인 완성도 안에서 살짝 뒤쳐지는 인상이지만 결말은 가히 복음이 되어 배트맨을 성배로 만들고야 만다. 개별적인 작품의 완성도에서 봤을 때 <다크 나이트>를 넘지 못하는 듯하나 3부작의 관점에서 봤을 때 자기 이야기를 완벽하게 갈무리하는 수작이다. 아이맥스 카메라 촬영분량만 72분에 달하는데 이걸 과연 아이맥스 상영관에서 안보고 배기는 것이 정상일지도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광대하고 웅장하며 처절하나 결국 경배할 수밖에 없는, 영웅 대서사시. 과연 이런 3부작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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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교> 단평

cinemania 2012. 4. 19. 11:14

상대적으로 뼈를 드러내며 시작하는 원작의 서사가 강렬한 건 부인할 수 없다. 서사의 축약을 위해 순행으로 전개를 수정한 건지 모르겠지만 가공할 떡밥을 스스로 포기했다는 점에서는 아쉽다. 삼각관계에서 빚어지는 심리적 갈등과 충돌로 발생하는 긴장감은 원작에 비해서 사유화되는 인상인데, 이를 테면 원작은 은교에 대한 두 남자의 감정 발화가 서로에 대한 견제와 의식을 통해서 발전되는 인상인 만면, 영화는 그것이 단순히 나이가 다른 수컷들의 롤리타적 욕망으로 제한하듯 그려진다. 형태는 남아있는데 핵심이 떨어져나갔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이적요 역할의 박해일은 열심히 했다. 톤이 나쁘지도 않다. 다만 70대 노인을 연기해야 한다는 강박에 가깝게 들리는 성대 묘사에 적응하기가 어렵다. 김무열의 서지우는 감정을 좀 절제할 필요가 있는 캐릭터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그리고 그 어떤 결점과 무관하게 신인 배우 김고은은 지우기 힘든 인상을 남긴다. 동물적인 감각이 느껴지는 신인배우의 출연이란 점에서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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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차> 단평

cinemania 2012. 2. 23. 00:10

미야베 미유키의 <화차>는 신용이라는 이름으로 개인의 파산을 방조하는 사회의 방치 속에서 파멸하고 유령이 되어버린 어느 개인이 위장을 통해서 삶을 갱신하고자 하는 욕망으로 끝내 괴물이 되어버린 것을 발견하게 되는 미스터리 추리물이다. 이는 단지 일본 내의 문제가 아닌 자본주의 신용 사회로 접어든 한국의 문제이기도 한데, 변영주 감독의 <화차>는 이에 대한 서술을 간결하게 다듬고 미스터리 추리물이라는 장르적 밀도를 높이는데 각색을 주력한 것으로 보인다. 덕분에 캐릭터 설정과 관계에 작은 변주를 가하지만 전반적으로 원작도 살고, 영화도 사는 인상이다. 자욱한 미스터리의 지배력이 느껴지는 가운데, 결말부에 다다라 보다 강도 높은 서스펜스의 정곡을 찔러 넣고 끝내 페이소스의 잔해를 드러낸다. 과감한 각색과 심도 있는 연출이 돋보인다. 끔찍하고, 처참하며, 처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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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고> 단평

cinemania 2012. 2. 22. 18:46

브라이언 셀즈닉의 <위고 카브레>를 영화화한 마틴 스콜세지의 <휴고>는 원작과 마찬가지로 움직이는 영상 수준이었던 영화에 예술적인 숨결을 불어넣은 진정한 영화의 창시자 조르주 멜리에스에 관한 영화다. 3D영화라는 현대적인 매체를 통해서 영화의 기원이 된 뤼미에르 형제의 그 영상을 비롯한 무성영화의 레퍼런스들을 목도하는 건 대단히 놀라운 체험이다. <휴고>는 강요에 가까운 예찬 대신 영화에 대한 애정과 경의를 담아 당신을 영화라는 세계로 인도하려 한다. 3D영화로서 최상의 기술적 완성도를 자랑하고, 텍스트와 삽화로 이뤄진 원작을 영화로서 승화해내는 이 작품이 영화라는 예술 자체에 대한 오랜 역사를 성실하게 기술하는 동시에 그 자체의 의미를 온전히 전달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감동적이다. 영화에 대한 무한한 애정으로 고전의 발굴과 복원 사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들며 끊어진 영화의 역사를 이어나가는 마틴 스콜세지는 <휴고>를 통해서 영화 그 자체를 오마주한다. 거장의 진심에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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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의 성공에 기대어 제작된 속편들이 장기화될 때마다 그러하듯이, <언더월드 4 : 어웨이크닝> 설정 또한 속편을 만들기 위해만들어진 설정을 기꺼이 강행한다. 어쨌든 무리수에 가까운 인과에서 종종 드러나는 구멍을 눈감을 있거나 피와 살이 튀는 몇몇 장면을 민감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있는 취향의 관객이라면 단순하게 즐길 있는 킬링타임 무비라 있다. 씹고, 뜯고, 찢기고, 튀는 괴물들 데스 매치 속에서 특유의 슬라이딩 발레 액션이 마구 시전되는 액션 시퀀스는 그럭저럭 즐길만하다. <레지던트 이블> 밀라 요보비치에 버금가는 변종 여전사라 할만한 케이트 베킨세일은 반갑지만 캐릭터의 이미지에 완전히 매몰되는 인상이라 한편으로 우려된다. 속편이 딱히 기대되지 않는 속편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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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바닥에서부터 기어오르는 법을 배운 이는 미끄러지면서 버티는 재주를 용하게 터득한다.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는 한국의 근대사를 헤쳐오며 오늘날 일가를 이룬 한 아버지의 진창 같은 일생을 조명하는 영화다. 노스텔지어로 가오를 잡고, 블랙코미디의 리듬을 타면서도 서슬 퍼런 서스펜스가 때때로 쑥 들어온다. 두 전작을 통해서 리얼리즘의 연출적 장기를 드러낸 윤종빈 감독의 시대적 묘사가 탁월한 가운데, 배우들은 또렷한 연기로 그 시대적 공기를 채워낸다. 특히 영화를 좌우로 흔들어대는 최민식의 가공할 연기가 돋보이는 가운데서도 종종 그 리듬을 중심축으로 세워 넣고 긴장을 불어넣는 하정우의 존재감도 근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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