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털사이트에서 '바람'이라는
단어를 검색해봤다. 놀라웠다. '아빠랑 바람 핀 여자가 계속
도발해요.' '유부녀와 바람 피우다 걸렸어요.' '바람 피우는
사람의 증거를 확보하고 싶습니다.' 바람을 피우는 남편 혹은 아내 심지어 부모를 어찌해야 할지를 묻는
하소연이, 바람을 피우다 걸렸을 때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묻는 절절함이, 바람 피우는 아내 혹은 남편을 응징하는 방법에 대해 질문하는 단호함이 차고 넘쳤다. 익명성이 보장되는 온라인상이라 해도 사적인 치부가 드러날 만한 질문을 불특정 다수에게 던진다는 건 그만큼 절박하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이리도 많은 절박함이라니, 가히 바람
잘날 없는 사회라 해도 좋겠다.
흥미로운 통계가 있다. 지난
2015년, 한 일간지에서는 기혼자 2000명을
대상으로 불륜경험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는데 그 중 484명이 불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그리고 40대와 50대의
불륜 비율이 20대와 30대에 비해 현저히 높고,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비율이 높아졌다. 그렇다면 다들 어디서, 누구와 바람을 피우는 걸까. 채팅사이트나 나이트클럽처럼 새로운 곳에서
만난 사람이 가장 높은 비율인 37.2%에 달했다. 유흥업소
관계자(29.5%)와 직장 동료(25.6%) 그리고 동창
등 친구(17.1%)와 동호회 사람(11.6%)이 그 뒤를
이었다. 여기서 남성은 유흥업소 관계자나 새로운 곳에서 만난 이성에 응답한 이들의 비율이 75% 이상으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그러니까 한국의 기혼남성들 가운데
바람을 피우는 이들 중 8할 가까이가 자신의 취미나 사생활과 무관하게 여자를 만나기 위해 찾아간 곳에서
바람을 피우는 확률이 현저히 높다는 의미다. 정리하자면 바람을 피울 준비가 된 남성들이 바람을 피울
확률이 높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그렇다면 취미생활이 있는 남자와 불륜 가능성의 연관성은 존재할까? 물론
존재할 것이다. 다만 취미생활의 종류에 따라, 취미생활을
즐기는 이들의 성비에 따라, 집단적으로 함께 하는 취미인지에 따라서.
간단히 말하면 취미생활을 영위하면서 남녀가 만날 확률이 어느 정도인가에 따라 바람 피울 수 있는 가능성 여부가 천차만별일 것이다. 예를 들어 목공에 취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특별히 동호회 활동을 하지 않아도 홀로 작업을 배울 수 있는 경로가
많고, 어느 정도 숙련된 상태라면 혼자서 취미를 영위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외도 가능성이 현저하게
낮을 것이다. 또는 동호회 활동을 통해 지속하는 운동 같은 경우도 남자의 비율이 많은 경우엔 역시 가능성이 0에 수렴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누군가를 만나지 않아서 바람을
피울 일이 없다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애초에 취미 자체에 몰입하는 이들은 누구를 만나고, 어디를 간다
해도 바람을 피울 확률이 떨어질 것이다.
반대로 재보다 잿밥에 더 관심이 있는 이들이 있다. 이를 테면 소위
외롭고 심심해서 취미생활을 찾는 이들 중에선 취미생활보다도 누군가와의 관계를 통해 일상의 외로움을 해소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다. 그러니까 취미활동 이후의 뒤풀이를 기대하며 동호회를 찾거나 모임에 나가는 이들 말이다. 이런 이들에겐 애초에 동호회 모임 자체가 누군가를 만날 수 있는 채팅사이트이거나 나이트클럽에 가깝다. 게다가 취미생활을 영위한다는 점에선 배우자에게도 그럴 듯한 핑계를 댈 수 있는 셈이니 어떤 의미에선 공작 활동도
수월해진다. 그리고 남자나 여자나 그런 이유로 동호회 활동을 시작한 이들이 있을 것이다. 크로스핏보다, 사이클보다, 산행보다, 스포츠댄스보다, 영어회화보다, 그
이후의 뒤풀이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그들을 움직이게 만든다. 그리고 취미생활을 통해 일탈의 알리바이를
확보한다.
물론 모두가 다 그래서만은 아닐 것이다. 그저 반복적인 일상이 지겨워서
새로운 흥미를 찾기 위해 동호회를 찾아 자기계발을 해나가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한편으론 평소 즐기던
취미생활을 타인들과 함께 영위하기 위해 동호회를 찾았다가 우연히 만난 이성과 친근해져 대화를 나누고, 술도
한잔 하고, 그렇게 편안한 사이가 돼서 어쩌다 보니 서로에게 이끌려 본의 아니게 충동적인 관계로 발전하고
전전긍긍하는 이도 존재할 것이다. 그러니까 결국 이건 사람의 문제다.
바람은 차가운 곳에서 따뜻한 곳으로 불어간다. 누군가의 체온을 갈망하는 이가 그 손길을
원할 확률이 크다. 그러니까 바람 피울 사람은 바람을 피우게 돼있다.
너무 단호한 표현인가. 아니다. 단언컨대 취미는
문제가 아니다. 취미생활이 있어도, 없어도, 바람 피울 사람은 피우게 돼있다. 다만 취미생활이 있다면 취미를
통해서 피울 것이고, 취미가 없다면 없는 대로 피울 것이다. 바람
앞에서 취미는 그저 취미일 뿐, 결국 사람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