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셉 고든 레빗이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메가폰을 잡고, 주연까지 맡은 <돈 존>은 보통 물건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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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어느 날 말했다. “우리 그만 헤어져.” 아니, 너는 비빔밥 집에서 무슨 그런 말을 하니? 이유를 물었다. 달래도 봤다. 밑도 끝도 없이 미안하다고도 해봤다. 그런데 솔직히 이유를 모르겠더라. 언제나 너에게 최선을 다했고, 널 위해서 희생했고, 배려했는데, 이건 배신이야, 배신! 슬픔의 끝에서 파도처럼 분노가 밀려왔고, 분노에 휩쓸려 나가다 보면 망망대해 같은 외로움이 펼쳐졌다. , 글쎄, 이소라 누나가 부른 것처럼 바람이 분다니까. 그리고 김동률이 노래합니다.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 , 정말 어떻게 안될까. 그런데 결국 그녀가 돌아왔다. 마치 어제 만난 것처럼 잘 있냐는 인사가 무색할 만큼. 그런데 이 노래가 이별 후 재회하는 노래였던가? 그걸 잘 몰라서였을까. 그 뒤로 우린 네 번 헤어졌고, 다섯 번째에서야 비로소 진짜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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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키우는 개와 대화를 나누는 남자가 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개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고 생각하는 남자가 있다. 일러스트 작가인 올리버(이완 맥그리거)에게는 45년 동안 부부로 살았던 어머니와 사별한 아버지 할(크리스토퍼 플러머)이 있다. 어머니의 죽음 이후, 아버지는 고백했다. 자신의 진짜 삶을 찾고 싶다고. 할은 게이였다며 아들에게 커밍아웃한다. 40대가 넘은 아들에게 70대 중반을 넘긴 아버지가 적극적으로 제 삶을 찾아나서는 광경은 심란하듯 놀라운 발견이었다. 무엇보다도 주변의 지인들에게 무료한 삶의 복판에서 스스로의 삶을 방치하듯 사는 그에게 아버지의 고백과 그 고백 이후의 삶은 잔잔하게 물결치는 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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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마트에서 오랫동안 성실하게 근속해온 래리(톰 행크스)는 어느 날, 회사의 상부로부터 일방적인 퇴직 통보를 받는다. 이유는 그에게 대학 졸업장이 없다는 것. 하루 아침에 실업자가 된 래리는 새로운 직장을 찾고자 동분서주하지만 그를 원하는 곳은 없다. 그리고 그는 중고매매상인 이웃의 권유로 대학 입학을 결심하게 된다. 대학강사 테이노(줄리아 로버츠)는 이른 아침부터 스피치 강의에 나서야 한다. 의욕도 없는 그녀에게는 고역 같은 의무다. 하지만 수업을 신청한 학생 수가 10명을 채우지 못했기에 폐강을 알리려던 찰나, 부랴부랴 강의실로 들어서는 중년의 남자와 마주친다. 래리와 테이노는 그렇게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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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2D 셀애니메이션의 시대는 끝났다. 이젠 3D CG애니메이션이 대세다. 하지만 시대가 끝났다 하여 시대의 주인공까지 사라져야 할 필요는 없다. 물론 명맥이 끊어졌던 디즈니의 전통적인 2D 셀애니메이션의 전성기가 다시 돌아올 것이라 생각하는 이는 누구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굳이 전성기를 이루지 못한다 해도 그 가치를 증명할만한 유산의 상속은 가능하다. 디즈니의 49번째 애니메이션 <공주와 개구리>는 디즈니라는 이름이 품고 있는 오랜 명맥의 가치가 무엇인지 대변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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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과 선

도화지 2009. 12. 3. 07:02

연애는 엄두가 안 난다. 하지만 사랑은 하고 싶다. 연애를 하기 위해서 누군가를 만날 엄두는 안 나지만 누군가를 사랑하면 연애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누군가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이 생겼으면 좋겠다. 그래서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하게 돼서 사랑할 수 있다면 좋겠다. 딱히 겨울이라 그런 건 아니다. 아니, 그럴지도 모른다. 그냥 그렇다고 핑계를 대보자. 차라리 그게 낫겠다. 누군가에게 고백한다는 건 힘든 일이다. 뻥 차여 시퍼렇게 마음이 부어 오를까, 용기 내어 전한 마음이 냉랭하게 얼어붙을까, 이래저래 걱정스러운 일이다. 다들 사랑은 하고 싶다는데 정작 용기가 없어서 사람을 만나지 못한다. 호감에서 죽어버린 사랑이 어디 한둘이던가. 그건 너나 나나 마찬가지다. 용기 있는 자가 미인을 구한다는 말도 구라는 아닐 게다. 용기가 없으면 미인은 고사하고 여자 곁에 갈 수도 없지.

 

누군가 내 마음을 받아줄 사람이 있었고, 그렇게 쉴 마음이 있어서 안온했다. 지난 연애가 그랬다. 누군가로부터 마음을 주고 받는다는 것이 그런 정신적 포만감을 안기는 것임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만큼 뒤늦게 깨닫는 괴로움이 만만치 않았다. 재회를 반복하며 마음을 몰아치던 세찬 격량을 여러 번 겪고 난 후, 비로소 난 그 평온함을 인정하게 됐다. 그 잔잔한 평온이 날 살게 했다.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마치 지난 교감들을 부정할 것마냥 어느 순간 난 편안하게 그 이별에 안착하고 있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랬다. 연애도 칼로리를 소모하는 일이라고, 그만큼 피곤하고 피로해지는 일일 수밖에. 그 피로감에서 벗어난다는 걸 실감하던 순간에 이별이 가능해졌다. 날 죽일 것 같던 일이 날 살리는 일이 됐다. 조금은 허무했고, 조금은 안도했다. 혼자서도 살 수 있을 것 같아 난 조금 슬펐고, 조금 기뻤다.

 

누군가에게 사랑 받고 싶다. 아니, 사랑하고 싶다. 감정이 부딪히고 뒤엉켜 구르다 이내 나자빠져도 그게 참 좋은 일이었던 것 같다. 누군가 대화할 상대를 쉽게 찾을 수 없는 나이가 되어가면서 자신의 외로움을 무덤덤하게 누르며 어느 새 스스로도 가늠할 수 없는 기분으로 살아간다는 건 참 슬픈 일이다. 누구나 다 외롭다. 매한가지다. 다만 그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이리저리 손을 뻗어보는 사람이 있고, 그 외로움을 회피하려 스스로 움츠려 들어 그 마음을 감추는 사람이 있다. 난 쉽게 움츠려 드는 사람이다. 누군가에게 손을 뻗는 것이 어렵다. 그래서 이 나이 먹도록 이 모양 이 꼴로 살아왔다. 안다. 인정한다. 난 내가 세상 모든 것을 아는 사람처럼 군다는 걸 잘 안다. 그래서 그것이 날 외롭고 위태롭게 만드는데도 스스로 그것을 감추고 덧대려 허둥대면서도 정작 타인 앞에서 꼿꼿이 얼굴을 들고 살아가느라 애쓰는 인간이라는 걸 안다. 그게 자존심이라 믿었던 세월도 있었고, 그래야만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믿었던 나이가 있었다. 하지만 이젠 아닌 것 같다.

 

세상에서 단 한 사람만 나를 사랑해준다면, 그리고 내가 그 한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할 것 같다. 외로운 일이다. 그 단 한 사람을 찾기란, 그리고 그 단 한 사람에게 마음을 열어주기란 참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린 점과 같은 존재다. 세상이란 단면 위에서 먼지처럼 흩날리며 살아간다. 그 한 점과 한 점이 만나 선을 이루기란 그만큼 쉽지 않은 일인가 보다. 하지만 이젠 선을 그리고 싶다. 날 이어줄 한 점이 필요하다. 날 이 한 점에서 구해줄 인연이 문득 그리워졌다. 이제 다시 선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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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명의 셀프메이드(self-made) 작가가 된 감독. 그 전업엔 사연이 있다. 감독은 눈이 멀었고, 빛이 없는 세상에서 연출이란 불가능의 영역이기에 눈이 보이지 않아도 가능한 이야기꾼으로 삶을 전가했다. 감독은 어쩌다 눈이 멀었을까. 그게 다 이 죽일 놈의 사랑 때문이다. <브로큰 임브레이스>부서진 포옹이라는 의미처럼 어긋난 단추를 채우듯 균열적인 만남을 거듭하며 사랑을 나누던 남녀의 삶이 파편처럼 부서져 내리던 시절을 수집해 다시 삶을 복원해나가는 작업이다. <브로큰 임브레이스>는 잔잔한 심해에서 거친 수면으로 나아가듯 로맨스의 파국을 심상찮게 묘사해내는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전작들과 궤를 달리하지 않지만 특유의 멜로적 파토스에서 새어 나오는 긴장감과 성격이 다른 스릴러적 서스펜스가 별도로 구성된 작품이란 점에서 특별하다. 풍부한 정서적 감흥을 자아내는 유려한 영상은 여전히 대단한 감상을 부여하면서도 서사적 흥미를 자아내고자 하는 노력이 전작들에 비해 두드러진다. 덕분에 기존의 알모도바르 영화로부터 감지되던 자극적 심상의 깊이가 얕아진 듯한 인상이 들지만 텍스트적인 재미는 좀 더 보충된 느낌이다. 동시에 <브로큰 임브레이스>는 알모도바르의 <신경쇠약 직전의 여자>(1998)를 환기시킨다는 점에서 마치 자전적 고백이 담긴 것만 같은 입체적 감상마저 도모한다. 무엇보다도 알모도바르는 <브로큰 임브레이스>를 통해서 자신의 영화적 경력에 대한 새로운 전기를 선언하는 것만 같다. <귀향>이나 <그녀에게>만큼의 감정적 진동에 다다르진 못하더라도 페드로 알모도바르라는 이름 안에서 <브로큰 임브레이스>는 결코 부끄럽지 않은 작품이다. 무엇보다도 페넬로페 크루즈를 선택한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안목은 이번에도 또 한번 여실히 증명된다. 그것만으로도 일단은 만족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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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담보살> 단평

cinemania 2009. 11. 5. 01:27

작두 타고, 굿판을 벌이며 온몸으로 귀기를 발산하던 전통무속과 달리 요즘 점집은 캐주얼하고 멀티플렉스적이다. 무당과 타로 마스터가 한 건물에 입주해서 팀웍을 이룬다. <청담보살>은 그런 트렌드를 소재적으로 반영한 로맨틱 코미디물이다. 운명적 배필을 만나야만 삶이 풀린다고 믿는 미녀보살 태랑(예진)은 비전이 전무해 보이는 백수 승원(임창정)이 자신의 운명적 상대임을 알게 되고 작업(?)에 착수한다. 사실상 과장된 상황극이 주를 이루는 <청담보살>은 연출력이나 개연성보다도 순발력에 의존하는 코미디다. 덕분에 나름대로 진지하게 멜로적 감정에 몰입하는 배우들의 감정은 좀처럼 와 닿지 않으며 전반적인 사연 역시 유치하게 건들거리는 탓에 로맨스 자체가 사족같다. 재치를 발휘하는 배우들의 애드립에 의해 유머가 작동하지만 그 찰나를 벗어나지 않는다. 덕분에 운명적인 상대에 천착하던 보살이 결국 그 운명을 스스로 극복하게 된다는 외피적 설정에 진지하게 접근하는 후반부는 온전히 넌센스다. 단지 몇몇 배우들의 애드립에 만족할 수 있다면 모를까, 그렇지 못한 관객에게 2시간 여의 러닝타임은 좀 길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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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이렇게 변한 지 오래 됐어. 들뜬 어조로 무례하면서도 심드렁하게 말을 뱉는 택시기사, 그리고 옆에 앉은 여자. 그녀가 바라보는 창 밖의 파주는 예전에 그녀가 자리하던 그곳이 아니다. 그건 그곳이 변해서가 아니라 그녀가 그곳에서 보낸 시절로부터 멀리 돌아오는 길이기 때문이다. 자욱하게 길을 메운 안개로 한치 앞을 가늠할 수 없는 풍경에 내밀한 긴장감이 차오른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사연과 속내를 점치기 어려운 인물의 표정으로부터 호기심이 예민하게 출렁인다. <파주>는 시종일관 털이 곤두서듯 서늘한 적막을 유지하다가도 날카롭게 찌르고 거칠게 흔드는 찰나가 뒤늦게 고개를 들어올리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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