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1997년이었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타이타닉>이 전세계 최고 흥행영화 순위의 첨탑에 오른 것이 말이다. 그런 <타이타닉>을 비로소 정상에서 끌어내린 건 <아바타>(2009)였다. 또 한번 제임스 카메론이었다. 하지만 그 흥행 이전부터 <아바타>는 도마 위에 있었다. 제임스 카메론의 복귀작, 천문학적인 제작비가 소요된 3D영화 등, 기대와 의심을 가로질러 모든 언어가 <아바타> 앞에 정렬하듯 모여드는 것마냥 그랬다. 어쨌든 뚜껑이 열렸다. <아바타>의 판도라 행성은 거대한 가상의 세계 이상의 가치가 있었다. 그건 완벽하게 3D영화라는 세계관에 복무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맞춤형 세계였다. 광대한 대자연의 장관이 그 자체로 스케일 있는 원근감을 마련하고, 실사와 CG애니메이션 기법이 혼재된 캐릭터 전환으로 CG애니메이션에서 보다 탁월하게 구현되는 3D영상의 장점을 끌어올린다. 특히 LED에 가까운 높은 조도로 밝혀진 판도라의 야경은 장관의 레이져쇼다. <아바타>는 3D영화를 위해 마련한 총아였다.
<아바타>의 성공 이후, 불과 2년여 만에 상영관의 풍경뿐만 아니라 영상 산업의 패러다임이 변했다. 3D안경을 끼고 눈의 수평을 조절하며 스크린을 응시하는 것이 어느 새 영화를 보는 하나의 방식이 됐다. 영상 디스플레이 시장에서는 3D제품 출시가 하나의 유행처럼 번졌다. <아바타>의 엄청난 성공은 3D라는 플랫폼에 대해서 반신반의하던 영화계뿐만 아니라 영상 디스플레이 업계를 위한 복음이 됐다. 21세기 대부분을 3D영화 제작에 매진해온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이 이런 급진적인 변화에 충격을 받고 알코올 중독자가 돼서 할리우드 길바닥을 뒹굴고 있다더라 한들 이상하지 않을 만한 혁신이었다.
<아바타>에 이은 드림웍스의 야심작 <드래곤 길들이기>(2010)가 큰 호평을 받을 때만 해도 3D영화는 기꺼이 지갑을 열만한 물건처럼 여겨졌다. 문제는 그 이후다. 그 성공에 고무되어 생산된 3D영화들이 대부분 그러한 기대감을 배반했기 때문이다. 3D영화는 두 눈을 지닌 사람처럼 두 개의 렌즈를 지닌 특수 카메라를 이용해서 촬영된다. 고가의 특수 장비와 정교한 촬영술이 요구되는 만큼 많은 시간과 대자본이 요구된다. 이런 수고와 투자를 덜고자 일반적인 카메라로 촬영한 뒤, 기계적인 방식으로 상을 분리시킨 3D 컨버팅 영화들이 쏟아져 나왔다. 일반상영관보다 비싼 티켓값을 치르고 안경까지 끼는 수고를 감안하면서 시각적 피로도를 견뎌냈음에도 ‘무늬만 3D영화’들은 배신감만 안겨줬다. 특히 2011년, <그린 호넷> <걸리버 여행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캐리비안의 해적: 낯선 조류> 등 3D영화라는 이름으로 위장한 평면적인 블록버스터들이 우후죽순으로 등장하며 티켓가만 올려대고 있다는 비아냥을 얻었다. 카메론마저도 이 ‘짝퉁’들의 득세에 불만을 토로할 지경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3D영화에 주목하는 스티븐 스필버그나 마틴 스콜세지와 같은 할리우드의 장인 감독들의 말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 에르제의 고전 만화를 퍼포먼스 캡처 기술을 동원한 3D 애니메이션으로 완성한 스필버그의 <틴틴: 유니콘호의 모험>(2011)은 3D영화라는 플랫폼의 가능성을 극대화시킨 사례다. 영화의 중후반부에 등장하는 롱테이크 추격신은 단연 백미다. 실사 촬영으로 따라잡기 힘든 동선을 인물의 표정까지 생생하게 포착하는 퍼포먼스 캡처의 디테일과 CG로 구현된 가상적인 스케일로 포착해내고, 3D를 통해 생생한 현장감을 입혔다. 스필버그는 말한다. “모든 영화가 3D일 필요는 없다. 3D로 촬영될 이유가 없는 이야기들도 있으니까. 하지만 3D 안에서 완벽해지는 영화들이 있다.” 브라이언 셀즈닉의 인기 동화 <위고 카브레>를 각색한 3D영화 <휴고>(2011)로 큰 호평을 얻은 스콜세지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스필버그에게 동의한다. 항상 나는 3D에 관심이 있었고, 그것이 <휴고>를 위한 감각이라고 생각했다.” 할리우드의 두 거장의 말에는 뼈가 있다. 3D는 개척할만한 영화적 기법이라는 것, 하지만 3D가 모든 영화를 위한 대안은 아니라는 것. CG의 발달이 장르의 발전으로 통했듯이 3D영상의 발전 또한 새로운 표현력의 가능성을 여는 문이 될 수 있다. 그렇게 하나의 표현 기법으로서 정착될 때 보다 긴 생명력을 얻어낼 수 있다.
최근 조지 루카스 감독의 <스타워즈 에피소드1: 보이지 않는 위협>이 3D영화로 재개봉됐다. 이 스페이스 오페라가 3D의 가면을 쓰고 부활하는 광경은 최근 3D영화를 둘러싼 어떤 경향을 대변한다. <타이타닉> <탑 건>과 같은 할리우드 고전 블록버스터나 <라이온 킹> <미녀와 야수>와 같은 디즈니 클래식 애니메이션들이 3D로 변환되어 개봉되는 중이다. 클래식의 입체적 발굴이라 할만한 이런 경향은 앞으로 3D영화의 향방을 가늠할만한 새로운 화두다. 현대적인 기술이 과거의 영광을 재조명한다니, 3D영화의 진로 개척은 여전히 진행 중인 것이다.
한국에서도 3D영화에 대한 관심은 뜨겁다. <아바타>의 흥행은 한국산 3D영화 제작이라는 열망을 부추겼다. 하지만 제작 의사를 밝힌 몇 편의 3D영화가 증발되거나 답보적인 상황을 벗어나지 못한 가운데, 지난 해 국내 최초 3D 블록버스터라는 수사 아래 <7광구>가 공개됐다. 이는 뼈저린 교훈을 남겼다. 시행착오의 한 단면이라 이해할 수도 있지만 무모하게 전세계적인 유행에 편승한 악수는 산업적인 재앙으로 축적됐다. 중요한 건 결국 ‘3D영화’가 아니었다. 비싼 티켓을 결제하고 안경까지 걸치며 눈의 피로까지 감당해야 하는 관객들은 점차 ‘3D’가 아닌 ‘영화’를 주목하기 시작한다.
과거 1950년대 할리우드에서 반짝했던 3D영화 붐과 달리 지금의 유행은 일시적인 현상에 머물지 않을 것이다. 3D영화를 위한 디스플레이가 개발되고, 보다 진일보한 영상 기술이 그 진화를 뒷받침하고 있는 산업적 논의 안에서 3D영화는 더 이상 미래의 영화가 아닌 현재의 영화다. 심지어 3D라는 시각적 극치를 넘어서 오감을 자극하는 4D까지 등장한 지금, 영화는 단지 숨죽이고 봐야 하는 것이 아니다. 결국 중요한 건 ‘어떻게’가 아니라 ‘무엇을’이다. 관객들은 영화가 보여줄 그 무엇을 기대하며 상영관에 들어선다. 영화는 뤼미에르 형제의 달리는 기차 영상을 본 대중의 열광이 동력이 되어 여기까지 왔다. 영화의 역사란 결국 움직이는 영상을 통해서 무엇을 보여줄 수 있는가라는 고민을 연료처럼 태우며 달려온 것이다. 관객이 보고 싶어하는 혹은 열망할만한 것, 3D영화의 미래 역시 그 고민을 태우며 달려가야 한다.
전세계 박스오피스 기록을 갈아치우고 영상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꾼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2009)의 중심에 그가 있었다. 샘 워싱턴, 그는 현재 할리우드의 새로운 블루칩이다. 영국 태생이나 호주에서 성장한 워싱턴은 미술을 전공했지만 학교를 그만 두고 건설 현장에서 벽돌을 날랐다. 그러다 호주국립예술학교에 입학했다. 호주에서 제작된 영화 <탭탭탭>(2000)으로 데뷔한 뒤, 몇 편의 TV시리즈와 영화로 자국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할리우드 데뷔는 쉽지 않았다. 몇 편의 할리우드 작품에서 조연으로 출연했지만 큰 주목을 끌지 못했다. 2009년, 그 모든 것이 시작됐다. 제작부터 주목을 얻었던 <터미네이터: 미래 전쟁의 시작>(2009)에 출연하며 눈길을 끈 그는 <아바타>와 <타이탄>(2010)과 같은 대작 블록버스터에서 주연을 차지했다. 호주의 별은 전세계의 별이 됐다.
근래 몇 년 동안 할리우드에서 제작된 대작 영화의 엔딩 크레딧을 유심히 지켜본 관객이라면 한국인 스태프의 이름을 심심찮게 발견했을 거다. 할리우드에서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프로덕션과 스튜디오에서 활약하는 한국인 출신 VFX 아티스트들은 적지 않은 수를 자랑한다. 이들은 한국 VFX산업의 잠재적인 자산이다. 그리고 지금 영화의 패러다임의 전환이라 불리는 <아바타>에서도 한국인 아티스트들의 손재주를 확인할 수 있다. 텍스처 아티스트(Texture Artist) 전병건을 비롯해 시니어 모델러(Senior Modeler) 장정민, 시니어 페이셜 모델러(Senior Facial Modeler) 이진우, 노응호, 모델러(Modeler) 이선진, 리드 라이팅 임창의, ATD 라이터(Assistant Lighter) Sean Lee, 모션캡쳐 에디터(Motion Capture Editor) 김기현그리고 시니어 애니메이터(Senior Animator) 박지영까지, 총 9명의 한국인이 그 역사적 작업에 손을 보탰다. 그 중 두 명의 아티스트를 소개한다.
외국에서 활동하게 된 계기를 소개해달라.
전병건(이하 ‘전’):홍대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1996년에 샌프란시스코의 AAU(Academy Art of University)로 유학을 갔다. 웨타에 오기 전,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서 3편의 장편과 1편의 단편 애니메이션 작업에 참여했다. 플레이스테이션 제작사인 소니 컴퓨터 엔터테인먼트와 파라마운트 산하 스튜디오에서 근무한 경력도 있다. 경력 초반에는 SNK, 액티비전, 소니 등 게임 시네매틱 분야에서 3-4년 일했고, 영화쪽 경력은 2003년부터 시작했다.
박지영(이하 ‘박’): ‘CalArts(California Institute of The Arts)’에서 캐릭터 애니메이션을 전공했고 졸업 후, 인디 영화사에서 2D 키애니메이터(Key Animator)로 일을 시작했다. 많은 2D 애니메이터들이 3D 파트로 전향하던 시기였고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3년 전, 제임스 카메론이 <아바타>를 준비한다는 공고를 보고 웨타 애니메이션 팀에 지원했다.
<아바타>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분야의 역할을 맡았나?
전: 2008년 11월부터 초반 8개월은 CG로 만들어진 캐릭터나 배경, 소품 등에 색상과 질감을 입혀주는 텍스처 아티스트(Texture Artist)로, 나머지 4개월은 완성된 장면에 조명을 더해 최종 이미지를 그려내는 조명 스텝(Lighting Technical Director)으로 일했다. 부서를 옮겨가며 일하다 보니 더욱 폭넓게 <아바타>의 제작과정을 경험할 수 있었다.
박:시니어 애니메이터(Senior Animator)로 참여했다.영화에 등장하는 동물과 식물을 살아 숨쉬는 생물체처럼 보이게 하는 일이다.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모든 동식물들은 직접적인 순수 애니메이션 방식으로 탄생됐다.
할리우드의 제작 방식을 경험했을 때 특별하다고 느낀 바가 있었을 것 같다.
박:자본의 적극적인 투자가 이뤄지고, 체계적인 프로덕션 파이프라인 구축됐으며 유능한 프로페셔널 아티스트들이 많다. 투자자본이 많은 만큼 새로운 기술개발 투자가 이뤄지고 그렇게 개발된 신기술들이 바로 영화에 활용된다. 특히 프리 프로덕션이나 기획 단계에 많은 공을 들여서 소프트웨어와 테크놀로지 개발을 진행하고 탄탄한 스토리 구성을 갖추는 등, 효율적인 프로덕션 계획을 철저히 이룬다. 덕분에 철저한 계획에 맞물려 능률적인 작업 환경이 완성되며 시간소비가 줄어든다. <아바타>도 제임스 카메론과 20세기 폭스가 몇 년에 걸친 준비기간 동안 ’Pace Fusion 3D Camera System’이라는 새로운 카메라 기술을 개발했다. 이런 신기술들을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실력을 지닌 아티스트가 많다는 것도 할리우드 VFX산업의 강점이다.
한국VFX기술의 발전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나?
전:열악한 제작환경 속에서도 여기까지 오게 된 것만으로도 상당히 고무적이다. 규모가 적지만 최소한 자국 영화 시장이 있다는 환경적 조건과 함께 열악한 환경을 견뎌내고 현재까지 산업을 이끌어온 한국의 VFX 종사자들의 역할이 크다고 본다. 하지만 비슷한 경제 수준을 지진 타국과 비교했을 때, 한국의 기술이 특별히 월등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러시아에서 만든 <나이트 워치>(2004)나 <데이 워치>(2006)의 VFX수준이나 최근 전세계를 대상으로 <아스트로 보이>와 같은 풀 3D애니메이션을 제작한 홍콩의 사례도 있다.
박:한국영화 관계자들이 VFX의 엔터테인먼트 산업 부흥 효과에 많은 관심을 가진 덕분에 해마다 VFX를 이용한 영화에 대한 투자가 증가하고 덕분에 영화의 소재도 표현력이 풍부해지고 있다. VFX활용도는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과거보다 이 분야를 공부한 전문 인력이 많아진다는 것도 두드러지는 현상이다.
최근 한국 VFX 업체의 외국진출 움직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전:한국 VFX업체의 해외 프로젝트 공동 작업과 해외 진출은 매우 바람직한 방향이고 앞으로도 적극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적은 규모의 시장에서 국내 관객만을 대상으로 산업을 이끌어 나간다면 VFX의 발전을 기대하기 힘들다. 현재 할리우드 제작사에서는 제작비를 줄이기 위해서 할리우드를 벗어나서 많은 프로젝트를 제작하고 있다. 실력만 검증되고 영어로서 커뮤니케이션만 가능하다면 해외의 VFX나 애니메이션 수주를 이룰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거다. 문제는 한국이 다른 나라에 비해서 어떤 장단점이 있는지 스스로 파악하고 그 문제점을 해결해 나갈 수 있는가다. 한국은 자국 영화와 게임 시장이 존재하고 수준 이상의 전문 인력이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하이엔드 제작 경험을 가진 인력이 부족하고 영어로 커뮤니케이션이 서툴다. 지금 VFX와 애니메이션 분야에서 미국의 수주를 받는 나라는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싱가폴, 인도와 같은 영어권 국가란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연원이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 근미래에 인류는 지구로부터 4.4광년 떨어진 ‘판도라’ 행성에서 대체에너지 ‘언옵타늄’을 채굴해 지구로 공급한다. 소량만으로도 고효율의 에너지를 발생시키는 자기장 물질 언옵타늄은 지구에서 kg당 2천만 달러에 거래되는 덕분에 기업의 영리적 욕망을 부채질한다. 미해병대 출신이지만 다리가 마비되어 보행이 불가능한 제이크 셜리(샘 워딩턴)는 약 5년여 간의 수면우주비행을 거쳐 판도라 행성에 착륙한다. 그가 판도라 행성에 온 건 언옵타늄의 채굴과 관련해 과학자로서 핵심적인 프로젝트를 수행하던 중, 죽음을 맞이한 일란성 쌍둥이 형의 과업을 이어받기 위해서다.
그 과업이란 제이크 셜리의 일란성 쌍둥이형의 유전자를 판도라 행성의 원주민인 '나비(Na'vi)'족의 유전자에 결합해 만들었다는 ‘아바타’를 형과 유전자가 일치한 제이크 셜리에게 맡기는 것. 나비족의 주둔지에 매장된 막대한 언옵타늄을 채굴하려는 기업적 야심은 제이크 셜리에게 불구가 된 다리를 고칠 수 있는 수술비를 보장하며 그를 판도라 행성으로 이끌고 그에게 아바타의 육체를 입고 나비족의 본거지를 염탐하라는 명령을 하달한다.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아바타에 접속한 제이크 셜리는 자신이 빌린 새로운 육체가 두 발을 땅에 딛게 만든다는 것만으로도 흥분감을 감추지 못한다. 그리고 처음으로 발을 디딘 판도라 행성의 밀림에서 거대한 현지야생동물의 습격을 받게 된 그는 일행으로부터 낙오돼 죽을 고비를 맞이하지만 나비족 여성 네이터리(조 샐다나)의 도움으로 목숨을 부지한다. 그리고 비로소 ‘생명의 나무’가 있는, 나비족의 본거지로 들어서게 된다.
친자연적인 노스탤지어 이미지
<아바타>는 분명 혁신적인 비주얼만으로도 그 가치에 대한 의심이 불필요한 영화다. 지금까지 '3D'라는 수식어를 걸고 등장한 기존의 작품들이 시도라는 단어 안에서 존중받아 왔던 것과 달리, <아바타>는 비로소 성과라는 단어를 동원해도 좋을만한 값어치를 드러낸다. 특히 오랜 시간 동안 스크린에서 3D비주얼을 실험하며 답보와 약진의 데이터를 구축해온 로버트 저메키스와 달리 제임스 카메론은 장고의 시간을 인내하며 단 하나의 결과물로서 온전히 새로운 토대를 구축해버릴 참이다. <아바타>가 새롭다는 수식어를 얻을 수 있는 근거는 이미지에 놓여있는 것이지만 그것이 단지 그 이미지의 형태를 지칭하는데 국한되는 건 아닐 것이다. <아바타>의 세계관으로부터 거둬들일 수 있는 특별함은 그 외형적 디자인보다도 판도라의 대자연과 (유사인류 형태를 띤) 나비족의 내면적인 교감방식을 전시하는데서 비롯된다.
<아바타>는 디지털 네트워킹 시스템을 시냅스의 유기적 신호로 호환하며 창의적 소재와 친화적 주제를 동시에 납득시킨다. 판도라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생명의 나무’는 판도라의 메인보드이자 심장이다. 판도라의 대자연은 생명의 나무와 교감하는 방대한 네트워크 망이자 형광색 혈액이 흐르는 혈관으로 이어진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다. 판도라 행성의 식물과 대지는 마치 센서를 장착한 터치스크린처럼 외부의 접촉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그때마다 LED조명에 가까운 선명한 조도를 밝힌다. 개체들의 반응은 서로를 연결한 네트워크를 통해 거대한 정보망을 구성한다. 형광 색채감을 드러내는 판도라의 야경은 시각적으로 황홀한 결과물이지만 그 조직적 체계를 완성한 아이디어가 보다 놀라운 산물에 가깝다. <아바타>는 창조와 응용이라는 창작적 협주로서 거대한 세계관을 완성했다. 그리고 이는 웅장한 오케스트라의 전율을 이루는 영화적 클라이맥스로 나아가기 위한 밑거름이나 다름없다.
현대적인 감각과 첨단 테크놀로지를 모티브로 디자인된 판도라의 풍요로운 원시림 이미지는 주제의식을 단단하게 매만지는 수단으로서 효과적인 역량을 발휘한다. 디지털 문명에서 비롯된 착상이 자연적 풍경과 접목됐을 때 발생하는 감상적 결과가 단순한 교훈적 주제를 순수의 경지로 이끌어낸다. 오만한 기계적 문명을 동원해 나비족의 자연을 파괴하고 유린하는 인류의 민폐는 판도라 행성의 풍요로운 대자연을 통해 더욱 날카롭게 두드러진다. 동시에 3D비주얼을 위시하는 기능적 이미지의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그 기술적 발전을 과시하는 이미지 기술을 진정한 영화적 표현 방식으로서 영화에 녹여낸다는 점에서 더욱 선명한 성과가 드러난다.
자연친화적 노스탤지어, <아바타>는 노골적인 주제의식을 2시간 40여분의 러닝타임 동안 단순하고 명확하게 밀고나간다. 문명의 발전 속에서 영리를 추구하는 인류의 어리석은 욕망은 손쉽게 자연을 파괴하고 자신들의 주거지를 무덤으로 만들어나간다. <아바타>에서 인류는 점차 푸른빛을 잃어가는 지구를 떠나 새로운 외계 식민지를 개척하고 그곳에서마저 파괴를 일삼는 비루한 종족으로 묘사된다. 문명과 자연의 대비를 통해 인류의 오만을 지적하는 주제의식을 지닌 영화들은 <아바타>이전에도 차고 넘쳤다. 하지만 그래서 <아바타>가 상투적인 영화라고 확신하는 건 설득력이 떨어진다. ‘단순하다’와 ‘엉성하다’의 의미는 명확히 다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바타>의 스토리텔링은 단순한 주제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는가라는 형태로서 이야기될 때 더욱 마땅한 평가가 가능해보인다.
휴머니즘을 역설하는 ‘아바타’ 세계관
<아바타>가 전시하는 판도라의 생태계는 사실상 지구의 생태계를 리모델링한 것에 가깝다. 그 이미지의 형태가 익숙한 것이라기 보단 그 이미지의 모티브가 명확히 읽힌다는 것이다. 다른 것을 보고 있지만 새로운 것을 보고 있다는 기분에 다다르진 않을만한 풍경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판도라는 지구의 ‘아바타’ 같은 행성이다. 사실상 <아바타>의 세계관 자체가 우리가 사는 세상을 토대로 구축된 ‘아바타’ 같은 세계관이며 이로서 <아바타>는 우리가 사는 세계에 대한 거대한 우화로서 기능한다. 아바타의 육체를 빌어 가상의 세계로 로그인해 생소한 외계문명에 링크한 뒤 대자연의 정보를 공유하고 그 세계를 체험하는 제이크 셜리는 곧 관객을 위한 ‘아바타’이며 <아바타>라는 영화 자체가 이 세계의 발전적 방향성을 제시하기 위한 ‘아바타’와 같은 영화인 셈이다.
<아바타>의 세계관을 구성하는 모티브는 그 외형적 이미지뿐만 아니라 기초적인 자의식마저도 이 세계와 연동돼있다. 제국주의 근대사를 비롯해 강자가 약자를 침탈하는 수난의 기록이 역사로서 당당히 자리한 인류의 서사는 <아바타>를 이루는 가장 명확한 근간일 것이다. 오랫동안 지속된 인류의 폐해적 역사를 2시간 40여분의 러닝타임에 반영한 <아바타>는 폭력적인 인류의 욕망을 고발하는 이미지와 그 욕망의 자멸을 그리는 내러티브로서 강한 공분과 희열을 전달한다. 나비족의 본거지를 무참히 파괴하는 인간들의 공세는 그 자체를 보는 관객의 마음을 짓이겨버릴 것이다. 판도라의 대자연이 붕괴되는 광경을 통해 관객은 인류가 저지른 침탈과 파괴의 역사를 환기시킬 것이다. 제임스 카메론은 단순하고 명확하게 의표를 찌른다. 후반부에 (아바타의 육체를 빌린) 제이크 셜리가 이끄는 나비족의 역공이 대단한 쾌감을 부르는 것도 그런 감정으로부터 연동된 상승효과다. 관객들은 자신들의 동족들의 죽음에 대단한 희열을 느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바타>는 인류의 자멸을 통해 인류의 휴머니즘을 역설하는 작품인 셈이다. 이미지의 혁명이란 수사는 실상 그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높은 가치를 지닌다. <아바타>가 영화의 미래라 불릴만한 근거도 이 지점에 있다.
<아바타>의 스크린은 단순히 기술적 진화를 전시하는 윈도우가 아니다. <아바타>에 동원된 기술적 진화는 영화적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효과적 도구로서 제 위치를 확고히 지킨다. 이는 3D비주얼이라는 기술적 대안이 영화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라는 고민 안에서도 발전적인 답변이다. 단순히 전시적 효과로서 위용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표현의 수단으로서 기능하는 3D비주얼은 분명 ‘영화적’이란 단어 안에서 충분한 가치를 설득한다. 물론 <아바타>는 단순히 체험적 행위만으로도 가치가 온당한 영화다. <아바타>에 보다 높은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건 그 대단한 수준의 체험이 숭고한 감정적 파고를 이끌어낸다는 점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아바타>는 기술적으로도, 표현적으로도, 현존하는 3D영화 가운데 유일하게 완성을 이뤘다 장담해도 좋은 첫 번째 성과다. 제임스 카메론은 로버트 저메키스가 결코 헤어나지 못한 언캐니 밸리(uncanny valley)의 무덤 옆에 자신의 비석을 세우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냈다. ‘이모션 퍼포먼스 캡쳐’라는 새로운 촬영기술을 도입해 완성했다는 <아바타>의 디지털 캐릭터들은 낯선 이미지를 통해 비현실적인 판타지의 상상력을 두른 채 실사적인 체험을 가능케 한다. <아바타>는 디지털 캐릭터의 눈동자에 감정을 구현했다. 실제 배우의 외모가 서린 동시에 나비족의 외형적 특성이 포장된 <아바타>의 디지털 외계인들은 선명한 눈동자의 자연스런 동공 수축과 근육 이완을 디테일하게 전시하며 이를 통해 관객의 감정을 고양시킨다. 그리고 그 디지털 캐릭터들의 눈망울은 <아바타>의 감정적 깊이를 드러내는 호수나 다름없다. 그 눈은 제임스 카메론을 테크놀로지의 장인으로서 확고하게 자리매김하게 만드는 방점인 동시에 <아바타>의 기술적 진보에 진심마저 담아낸 진화의 산물이다. 제임스 카메론은 <아바타>를 통해 우리가 두른 세계의 폐해를 진화시키고자 ‘아바타’와 같은 세계를 묘사하고 이를 통해 신인류의 탄생을 촉구한다.
<타이타닉>을 통해 자신을 세계의 왕이라 천명했던 제임스 카메론의 오만한 발언은 <아바타>를 거쳐 진정한 자신감으로 진화했다. <아바타>라는 결과물로서 자신의 왕좌를 증명해냈다. <아바타>는 분명 새로운 세기를 일군 영화적 유산이라 불릴 만한 작품이다. 장담하건대 분명 장차 그렇게 일컬어질, 21세기 고전이 탄생했다.
<아바타>를 치장하는 팔 할의 수사는 이미지의 혁신이다. 마땅하고 옳은 일이다. 제임스 카메론이 12년의 장고 끝에 공개한 <아바타>는 분명 기존의 3D영화들과도 온전히 궤가 다른 이미지의 역작이라 칭할만한 결과물이다. 단순한 시각적 체험만으로도 본전은 거두다 못해 막대한 이익을 얻었다 해도 좋을 만큼 <아바타>가 전시하는 이미지들은 대단한 만족감을 부여한다. 하지만 다만 그것뿐이란 평은 온당치 않다. <아바타>를 상찬할만한 근거를 단순히 그 이미지의 형태에 국한해 발색할 필요는 없다. <아바타>는 그 거창한 이미지로 단순하면서도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근미래의 인류는 지구로부터 4.4광년 떨어진 ‘판도라’ 행성에서 고효율 자기장 에너지원인 ‘언옵타늄’을 채굴해 지구의 에너지난을 극복한다. kg당 2천만 달러에 거래되는 언옵타늄은 기업의 영리적 욕망을 부채질하는 물건이다. 다리가 마비된 탓에 보행이 불가능한 제이크 셜리(샘 워딩턴)는 판도라 행성에서 언옵타늄 채굴과 관련된 핵심프로젝트를 수행하다 죽음을 맞이한 일란성 쌍둥이 형의 과업을 이어받기 위해 약 5년여 간의 수면우주비행을 거쳐 판도라 행성에 착륙한다. 그곳에서 그는 형의 유전자를 판도라 행성의 ‘나비(Na'vi)'족 유전자에 결합해 만든 ‘아바타’에 접속하고 나비족의 본거지를 탐색하라는 명령을 이행한다.
지금까지 '3D'라는 수식어를 내세운 작품들이 시도라는 단어 안에서 존중 받아 왔다면 <아바타>는 이제 그 첫 번째 성과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될만한 작품이다. <아바타>가 선사하는 3D비주얼은 분명 그 이전의 어떤 3D영상들과도 차별화된 진화적 눈높이를 선사한다. 로버트 저메키스가 오랜 시간동안 답보와 약진을 전전하는 사이, 제임스 카메론은 단 하나의 결과물로서 완성적 성과를 드러낸다. 시각적 피로감이 낮아진 반면, 보다 생생한 이미지를 선사하는 <아바타>는 디지털캐릭터의 '언캐니 밸리(uncanny valley)'마저 뛰어넘는다. 잔상의 오차가 현격하게 사라진 <아바타>의 디지털캐릭터는 빠른 속도감 속에서도 선명한 형태를 유지하며 현격한 입체감을 전달한다.
향상된 이미지의 성과로만 <아바타>를 설명하기란 섭섭한 일이다. 사실 <아바타>가 구축한 판도라 행성의 세계관은 지구의 이란성 쌍둥이라 해도 좋을 만큼 명확한 모티브를 두르고 있다. 크기와 형태가 다르지만 인간을 연상시키는 '나비(Na'vi)'족을 비롯해 판도라를 채우는 생태계 이미지는 대부분 지구로부터 이양된 세계관이다. 제임스 카메론은 <아바타>에 인류의 ‘아바타’라 할만한 세계를 그려낸다. <아바타>를 비범하다 명할 수 있는 궁극적 이유도 그 지점에 놓여있다. <아바타>는 문명과 자연의 대비를 통해 인류의 오만한 역사를 성찰하고자 한다. <아바타>가 동원하는 판도라의 이미지는 그 성찰을 도모하기 위한 기시감의 현장이나 다름없다. 형태의 차이가 발견되지만 궁극적으로 판도라는 지구의 또 다른 판본인 셈이다. 그 또 다른 판본의 세계관을 유린하고 파괴하며 그 안에 자리한 약자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인간들의 군상은 결국 인류가 걸어온 오만한 역사의 재현과 같다.
디지털 네트워킹 시스템을 시냅스의 유기적 신호전달 체계로 호환하는 <아바타>의 자연적세계관은 보다 인상적이다. 판도라의 메인보드이자 심장이라 할 수 있는 ‘생명의 나무’와 교감하며 거대한 네트워크 망을 구축하는 판도라의 대자연은 살아 숨쉬는 유기체의 질서를 이루고 있으며 이를 통해 숭고한 자연적 가치를 발생시킨다. 외부의 접촉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형광의 색채를 띠는 판도라의 대지와 식물들은 터치스크린의 센서와 같고, LED조명에 가까운 조도를 밝힌다. 디지털 문명이 이룬 발전적 결과가 판도라의 대자연에 적용될 때, 그 광경은 황홀한 신비를 발산한다. 결국 그 대자연의 신비는 인간의 조악한 감수성과 대비군을 이룬다. 황홀한 판도라의 대자연적 풍요를 바라본다는 것만으로도 그것을 정복하겠다는 인류의 야심은 익히 초라하게 몰락한다. <아바타>는 분명 명확한 주제를 단순한 스토리텔링으로 진전시키는 영화임에 틀림없지만 그 이유로서 폄하될 수 없는 근본적 가치를 품고 있다. <아바타>는 그 단순한 이야기를 현명하게 밀고 나가는 우직한 작품으로서 이해돼야 마땅하다.
<아바타>는 진화된 3D비주얼을 선사한다는 점만으로도 새로운 영화적 발견이라 불릴만한 자격이 충분한 작품이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건 <아바타>가 구현하는 테크놀로지가 영화에 복무하는 방식이다. <아바타>에서 그 뛰어난 이미지는 단순한 전시적 효과로서 기능하지 않는다. 영화적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충심 어린 보좌관으로서 제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한다. 인류의 오만한 역사를 되짚는 우화의 세계를 묘사하기 위한 이미지적 수단으로서 보다 우월한 휴머니즘적인 가치를 역설한다. 제임스 카메론은 <아바타>를 통해 우리가 두른 세계의 폐해를 진단한다. 그리고 신인류의 탄생을 촉구한다. <아바타>는 말 그대로 인류의 새로운 진화를 촉구하기 위한, 신인류의 탄생을 그린 ‘아바타’적 이상인 셈이다.
벌써부터 로버트 저메키스의 한숨이 들린다. 저메키스가 오랫동안 약진과 답보 사이를 전전하는 사이, 제임스 카메론은 한 방으로 모든 것을 바꿔놓을 참이다. 현격한 기술력의 진화가 대자본의 투자 가치마저 설득할 정도로 놀랍다. 문명과 자연의 대비라는 닳고 닳은 소재를 순수의 경지로 승화시키는 건 아이디어의 힘이다. <아바타>의 세계관은 디지털 네트워킹 시스템을 시냅스의 전기적 신호로 호환하며 창의적 소재와 친화적 주제를 동시에 납득시킨다. 아바타의 육체를 빌어 가상의 세계로 로그인해 생소한 외계문명에 링크한 뒤 대자연의 정보를 공유하고 그 세계의 가상적 체험을 가능케한다. 접촉을 감지할 때마다 형광빛의 색채감과 LED에 가까운 조도를 밝히는 판도라의 대자연은 현대적인 감각으로 인테리어된 원시림의 풍요를 접목하며 환상적인 감상을 부른다. 기술적 진화가 완성한 이미지는 감성적 체온마저 전달한다. 그 모든 것이 3D라는 기술적 도구를 효과적인 표현 양식으로 이해시킨다는 점에서 더욱 놀랍다. 돈만 있다면 누구라도 찍어낼 수 있는 <2012>가 거대한 사치라면, <아바타>는 자본만으로 어찌할 도리가 없는 진짜 명품이다.
<아바타>의 블록버스터적인 스케일을 만끽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3D관람을 권장할 수 밖에 없는 건 그만큼 <아바타>를 통해 목격할 3D비주얼이 체험 이상의 값어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아바타>는 현존하는 3D영상 가운데 유일하게 완성을 이뤘다 평해도 좋은 첫 번째 작품이다. 단순히 체험적 값어치만을 따진다 해도 기회비용을 따져 물을 필요는 없다. 제임스 카메론이 또 한번 자신을 세계의 왕이라 천명한다 해도 <아바타>는 그 발언마저 자만이 아닌 자신감이라 이해시킬만한 작품이다. <아바타>는 영화 역사상 새로운 세기를 일군 혁신적 유산이라 불려도 좋을 작품이며 장담하건대 분명 장차 그렇게 일컬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