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는 작품을 통해 이름을 얻는다. 브라이언 크랜스턴은 50세에 다다라서야 이름을 얻게 됐다. 정말 긴 기다림이었다. 인생의 반환점을 돈 시점에서 인생의 전환점을
만난 배우의 절정, 어쩌면 이제야 시작된 것일지도 모른다.
"<브레이킹 배드>가
내 인생을 바꿨다." 그렇다. 2008년부터 2013년까지, 브라이언
크랜스톤이 <브레이킹 배드>에 출연하는 동안 그의
입지는 확실히 달라졌다. 지난 2013년 다섯 번째 시즌까지
종영된 TV시리즈 <브레이킹 배드>는 2014년 에미상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수상하고, 배우 부문에서도 여우주연상을 제외한 나머지 세 개 부문까지 수상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브레이킹 배드>의 알파이자 오메가라 할 수 있는 월터
화이트를 연기한 브라이언 크랜스턴 역시 남우주연상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브레이킹 배드>에 출연하며 네 번째로 받는 에미상 남우주연상이었다. 이보다
좋은 결말이 없었다.
<브레이킹 배드>는
일개 고등학교 교사였던 월터 화이트가 마약 업계의 거물로 변해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본래 월트
화이트를 연기할 후보로 물망에 올랐던 건 크랜스톤이 아니었다. 존 쿠삭과 매튜 브로데릭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캐스팅을 고사하면서 크랜스턴에게 기회가 넘어왔다. 제작사
입장에선 크랜스턴이 탐탁지 않았다. <브레이킹 배드> 이전에
크랜스턴은 <말콤네 좀 말려줘>라는 TV시트콤으로 익숙한 배우였기 때문이다. 7년간 악동 같은 네 아들의
장난질에 샌드백처럼 당하기만 하는 아버지 역할을 맡아온 크랜스턴이 선악의 경계를 치열하게 오가는 월터 화이트를 소화해낼 수 있을지 의심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브레이킹 배드>의 총괄프로듀서인 빈스 길리건은 크랜스턴을 믿었다. 빈스 길리건은 1998년에 연출한 <X파일>
시즌6의 한 에피소드에서 시속 50마일로 달리지
않으면 죽는 남자로 크랜스턴을 캐스팅했고, 그가 어두운 내면을 연기할 수 있는 배우임을 알고 있었다. 크랜스턴 역시 <말콤네 좀 말려줘> 이후로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낼 만한 캐릭터를 거듭 제안 받는 것에 대한 신물이 난 상태였고, 새로운 전환점을 찾고 있었다. 물론 그것이 마약계의 대부가 될 남자일
것이라 예상하진 못했지만.
혹시 <라이언 일병 구하기>(1998)를
봤다면 크랜스턴이 출연했다는 사실을 아는가? 아마 대부분은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라이언 가문의 4형제 중 막내를 제외한 모두가 전사했다는 보고를 받는 육군대령으로 잠시 등장할 뿐이니까. 심지어 엔딩 크레딧에도 '육군대령(War
Department Colonels)'이라는 역할로 표기되는, 이름도 없는 역할이었다. <브레이킹 배드> 이전까지의 크랜스턴의 경력을 보면 그가
할리우드에서도 특별히 언급될만한 배우로 꼽히진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브레이킹 배드>를 통해 그의 이름은 할리우드에서도 자주
오르내렸던 것이 틀림없다. 2011년부터 크랜스턴의 필모그래피에 지각변동이 생긴 것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스티븐 소더버그의 <컨테이젼>(2011)과
니콜라스 윈딩 레픈의 <드라이브>(2011) 등
주목할만한 감독의 작품에서 연이어 모습을 드러냈고, 1990년도에 발표된 동명 SF고전을 리메이크한 <토탈리콜>(2012)과 벤 애플렉의 연출작이자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인 스릴러물
<아르고>(2012)에서는 시선을 끄는 역할로 자리하며 배우로서의 경력에 무게를
더했다. 심지어 범죄스릴러물인 <콜드 컴즈 나잇>(2013)에선 포스터에서부터 그에 대한 존재감이 달라졌음을 깨닫게 만든다. 동명 블록버스터를 리메이크한 <고질라>(2014)에서도 비중은 적지만 확실한 인상을 남긴다. 그리고
크랜스턴은 그의 인생에서 두고두고 중요하게 언급될 작품과 조우하게 된다.
전세계가 냉전으로 얼어붙은 1950년대에 매카시즘 광풍이 한창이던
미국을 배경에 둔 <트럼보>는 반공산주의를 표방하며
반자유적인 횡포를 일삼던 정부의 태도에 반기를 든, 할리우드의 시나리오 작가 달튼 트럼보에 관한 실화를
다룬 전기물이다. 할리우드의 인기작가였던 트럼보는 국가의 안보를 위협하는 공산주의자를 색출하겠다는 명목으로
사회적 공포를 주입하는 반미활동위원회에 맞선 인물이다. 덕분에 자신의 이름을 걸고 할리우드에서 활동할
수 없게 된 그는 가장으로서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11개의 가명을 쓰고 B급 영화 시나리오를 대량생산하게 된다. 할리우드의 명품 작가라는
명예 대신 이야기를 만드는 기술자로서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다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가족을 위해 자신이 추구하지 않는 일을 하게 된다는 과정이 <브레이킹 배드>의 월터 화이트를 연상시킨다는 점이다. 또한 연신 시나리오를
써내며 얻은 스트레스를 가족에게 전이시키며 의도와 달리 가족의 불행을 조장하는 트럼보의 히스테릭한 면모는
<브레이킹 배드>에서 악인의 카리스마에 탐닉하며 가족의 불안을 가중시키는 월터
화이트의 이중성과 닮아있다. 크랜스턴은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처음 노미네이트됐다.
브래드 퍼먼이 연출한 범죄 스릴러물 <링컨 차를 탄 변호사>(2011)에 출연한 바 있는 크랜스턴은 브래드 퍼먼의 차기연출작인 <인필트레이터: 잡입자들>(2016)에서 주연을 맡았다. <트럼보>와 마찬가지로 실화를 바탕에 둔 이 작품은 콜롬비아의
마약왕이었던 파블로 에스코바의 마약 거래 내역을 확보하고자 5년간 잠입 수사를 펼친 미국의 관세청 특수요원
로버트 마주르에 관한 작품이다. <브레이킹 배드>의
월터 화이트가 하이젠버그라는 가명으로 신분 세탁을 하며 마약을 제조한 것처럼 <인필트레이터: 잠입자들>의 로버트 마주르는 밥 무셀라라는 가명으로 신분을
위장해 콜롬비아의 마약 카르텔에 접근하고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든다. 무엇보다도 <브레이킹 배드>와
<트럼보> 그리고 <인필트레이터: 잠입자들>은 가족을 지키고자 하는 가장의 진심과 그 내면에
잠재된 캐릭터의 양면성을 다룬다는 점에서 브라이언 크랜스턴이라는 배우의 장기를 대변하는 공통분모의 사례처럼 보인다. 온화한 인상 뒤편에 잠재된 폭력성, 윤리적인 언어와 행동의 내면에
자리한 일탈적 본능, 안정을 추구하면서도 때론 쾌락을 탐닉하는 부조리함. 이 모든 이중성을 탁월하게 표현하는 재능이 그가 배우의 삶을 지속해올 수 있었던 비결이었을 것이다.
"캐릭터를 이해해야 한다.
진정으로 캐릭터를 이해하면, 삼투압 되듯이 캐릭터가 스며들 거다. 거기서부터 당신은 캐릭터를 필터 삼아 생각하고 느끼게 된다. 하지만
거기에 한 가지 방식만 있는 게 아니다. 어떤 식으로 그걸 이뤄내든 그 방법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크랜스턴은 지난 9월에 열린 에미상 시상식에서 다시 한번 남우주연상 후보에
지명된 바 있다. 존 F. 케네디의 암살 이후 국정을 이어받아
대통령직을 수행한 린든 존슨에 관한 실화를 극화한 TV영화 <올
더 웨이>에서의 호연을 인정받은 덕분이다. 비록 수상은
못했지만 크랜스턴이란 이름이 주는 신뢰감은 보다 명확해졌다. 이제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그저 나아갈 방향에 따라 걸어갈 뿐이다.
대만에서 태어나 9살에 미국으로 넘어온 저스틴 린은 영화를 전공했고, 영화감독이 됐다. 누구나 꿈을 이룰 수 있었던 미국에서 경계 없는 평범함과 특별함을 영화에 담아낸다.
J.J. 에이브럼스를 통해 현재진행형의 이름으로 거듭난 <스타트렉> 리부트 시리즈 중 세 번째 작품인 <스타트렉 비욘드>(2016)는 올해로 50주년을 맞이한 해에 공개될 프랜차이즈의 신작이다. “처음 J.J.에이브럼스에게 전화를 받은 뒤 이 프랜차이즈를 연출하는 것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는 데에만 며칠이 걸렸다. 프랜차이즈의 전통적인 팬들뿐만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해서도 막중한 책임감을 느꼈다. 모든 것은 가슴으로부터 시작해야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무섭고 두려웠다.” 그런 그에게 J.J.에이브럼스는 단호하게 조언했다. “대담해져라. 그리고 그냥 차지해라.” 그는 저스틴 린의 첫 번째 우주비행을 위한 완벽한 멘토였다.
저스틴 린이 <스타트렉 비욘드>를
연출할 수 있었던 건 당연히 <분노의 질주> 시리즈를
블록버스터급 프랜차이즈로 성공시킨 장본인이란 점이 주요했을 것이다. 본래 혈기왕성한 젊은 캐릭터들을
앞세운 스트리트 레이싱을 그린 범죄액션물이었던 <분노의 질주>가
전세계적인 흥행가도를 기록하는 블록버스터로 체급을 올릴 수 있었던 건 저스틴 린의 공이 팔 할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J.J.에이브럼스가 <스타트렉>의 차기 지휘권을 저스틴 린에게 넘긴 이유란 이렇다. “저스틴은 자신이 대단히 뛰어난
이야기꾼임을 스스로 거듭 입증해냈다. 하지만 어떤 것보다 나를 사로잡은 건 <스타트렉>에 대한 그의 진짜 애정이었다.” 그렇다. 그는 <스타트렉>의 전통적인 팬 그러니까 ‘트레키’였다. 그의
부모님은 ‘피시 앤 칩스’를 주메뉴로 한 작은 식당을 운영했는데
보통 저녁 9시에 가게 문을 닫고 10시쯤에 집에 와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저녁식사를 마친 뒤 린과 그의 동생 그리고 그의 아버지는 모두 TV 앞에 모였다. 11시부터 방영되는 <스타트렉>을 보기 위해서였다. “8살부터 18살이 될 때까지,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집을 떠날 때까지 그건 우리 가족만의 시간이나 다름없었다.” 그만큼 <스타트렉>이라는 전통적인 프랜차이즈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그의 애정은 시리즈에 새로운 모험의 좌표를 제시하는데 유용했다. “어떤
경우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걸 해체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은 훌륭한 프랜차이즈였고, 50년 동안 지속돼 왔으며 다른 매체들 안에서 여전히 살아있다. 나는
작가로서의 사이먼 페그와 더그 정과 함께 모여 이미 성공한 것과 검증된 것에 안주하지 말자고 했던 게 기억난다.
우리가 사랑했던 것의 DNA를 사용하면서도 앞으로 더 나아가고자 했다.” 그래서였을까. <스타트렉 비욘드>에선 프랜차이즈의 상징과도 같은 엔터프라이즈
호를 완전히 파괴시켜버린다. 오래된 팬들 입장에선 그 자체만으로 이번 작품이 파격으로 느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스타트렉 비욘드>에서는 지난 두 전작에 비해 캐릭터의 다양성이 돋보인다. 이는
전통적인 프랜차이즈에서 유지해온 캐릭터들의 다양성을 계승하는 것과 같다. 이는 저스틴 린보다도 더욱
‘트레키’에 가까운 사이먼 페그 덕분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프랜차이즈의 리부트가 시작될 때부터 함께 한 스코티 역의 배우 사이먼 페그 말이다. “<스타트렉>을 내 일부라 여길 만큼 애정을갖고 있지만
솔직히 모든 대사를 읊을 순 없다. 에피소드의 모든 제목까지 아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사이먼은 가능하다!”
저스틴 린이 할리우드의 흥행감독 대열에 들어선 건 <분노의 질주> 시리즈를 통해서였다. 빈 디젤과 폴 워커를 위시한 <분노의 질주> 프랜차이즈는 국적과 인종을 초월한 다양한
캐릭터들이 팀을 이룬 활약상을 펼치는데 이는 본래 다양성의 가치를 일상적으로 대면할 수 있는 <스타트렉>의 세계관과 닮아있다. 무엇보다도 이는 저스틴 린이 추구하던
본질적인 세계관이 <분노의 질주>에 반영된 결과에
가깝다. UCLA에서 영화를 전공하던 시절 <분노의
질주>(2001)를 본 저스틴 린은 동양계 미국인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깊은 흥미를 얻었다. 하지만 동시에 동양계 미국인이 악역만을 맡았다는 사실에 대단히 실망했다. 그리고
훗날 도쿄를 배경에 둔 세 번째 속편 <패스트 & 퓨리어스-도쿄 드리프트>(2006)의 연출 제안을 받은 뒤 그가 해낸
첫 업무는 불상이나 게이샤 소녀들로 점철된 시나리오를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교체하는 일이었다. 단순히
동양을 배경에 두거나 동양계 캐릭터가 등장하는 것을 넘어 편견을 뛰어넘는 역할을 주고자 하는 것이 그의 본질적인 목표였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계 미국인인 성 강이 연기한 한은 주인공을 성장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그의 궁극적인
페르소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뒤로 저스틴 린이 연이어 연출한 <분노의
질주: 더 오리지널>(2009)과 <분노의 질주: 언리미티드>(2011),
<분노의 질주: 더 맥시멈>(2013)에서도
거듭 한이 등장해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는 것 또한 그렇다.
<베터 럭 투마로우>(2002)는 저스틴 린의 단독연출
데뷔작으로 평범한 동양계 미국인 소년들의 일상과 일탈을 그린 작품이다. 당시 선댄스 영화제에서 처음으로
공개된 이 작품은 큰 호평을 얻었는데 당대의 저명한 영화평론가였던 로저 에버트는 <베터 럭 투마로우>에 대해 “단순한 스릴러도, 단순한
사회적인 다큐멘터리도, 단순한 코미디나 로맨스물도 아니지만 그 모든 것이 명확하게 보이고 훌륭하게 완성된 영화”라고 평하며 엄지를
세웠다. 저스틴 린 자신이 성장한 LA교외의 오렌지 카운티의
한 마을을 배경에 둔 이 작품은 부족할 것이 없는 동양계 중산층 가정에서 우등생으로 자란 세 명의 고등학생 소년이 사소한 일탈에 빠져드는 과정을
코믹하게 그려나가면서도 끝내 예측 밖의 끔찍함을 여운처럼 남긴다. 이 모든 과정을 동양계 미국인이 겪는
특별한 상황이라기 보단 보편적인 이들도 저지를 수 있는 특수한 행위로 인식하게 만듦으로써 인종과 문화에 대한 차별 의식을 훌쩍 뛰어넘은 성취에
가깝다. <스타트렉>과 <분노의 질주>라는 블록버스터 프랜차이즈의 캐릭터를 통해서도
이런 의식은 공평하게 배분된다.
아마 저스틴 린의 차기작이 <스타트렉>이나 <분노의 질주>가 될 것 같진 않다. 대신 제레미 레너를 앞세운 <본>시리즈의 스핀오프 <본 레거시>(2012)의 속편을 연출할 감독직을 받아들인 상황이다. 전작이
미진한 반응을 불렀던 것과 달리 그가 만들 속편이 얼마나 대단한 반향을 일으킬 수 있을진 미지수다. 하지만
<스타트렉>과
<분노의 질주>를 통해 확인한 그의 재능은 분명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혹시 아는가? <본> 시리즈 최초로 인상적인 동양계 캐릭터가 탄생할 수 있을지, 기대해봐도
좋지 않겠는가.
데이비드 에이어의 남자들은 언제나 방아쇠를
당긴다. 흉악한 세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남자들의 사투를 그린다. 자신이
살아온 세상과 닮은 거리에 두 발을 디딘 남자들의 생을 장전한다.
데이비드 에이어는 우직한 감독이다. 그가 연출한 세계관 속의 인물들은
하나 같이 총을 들고 사선을 넘는다. 그리고 그 세계관의 대부분은 LA라는
거대한 도시의 그늘 속에 도사린 위험천만한 범죄 현장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런 특성은 그의 유년
시절 기억과 상당부분 연결돼 있다. “나는 LA 남부에서 자라면서 ‘고대 LA경찰
시절’이라고 일컬었던 그 시절의 경찰들로부터 항상 달아나야 할 짓을 일삼곤 했다.” 본래
에이어가 태어난 곳은 일리노이주의 소도시였지만 유년시절에 세상을 등진 아버지로 인해 LA 남부의 가난한
친척집에 맡겨졌고 그 험한 거리에서 빛보단 어둠에 익숙한 소년으로 자랐다. 그런 그가 LA를 배경으로 둔 범죄물에 천착하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유년 시절의 질풍노도에 대한 빚을 갚기 위해서는 아닌 것 같다. “LA경찰은 다른 기구다. 80년대나 90년대의 경찰조직이 아니다. 현재 그 인근의 치안상태가 반영된 조직이다. 조직이 진화해왔으니
영화도 그런 사실이 반영돼서 진화했다.”
감독으로 데뷔하기 전 각본가로서 활동했던 시절에도 그는 LA의
흉악한 단면을 마주한 경찰을 소재로 둔 이야기에 천착해왔다. <트레이닝 데이>(2001), <다크 블루>(2002),
<S.W.A.T. 특수기동대>(2003)를 통해서 저마다 형태가 다른 LA경찰들의 일상을 묘사했다. 그 중에서도 덴젤 워싱턴과 에단 호크가
호흡을 맞춘 <트레이닝 데이>는 그에게 상당히
절실한 작품이었다. “나는 할리우드에서 일하길 원했다. 그래서
나를 위해 전혀 시도되지 않은 무언가를 썼다.” <트레이닝 데이>는
데이비드 에이어가 감독의 지위를 확보한 지금에도 여전히 중요한 경력으로 회자되는 작품이다. 그의 연출작들
가운데 <트레이닝 데이>의 중력 안에 놓여있는
것처럼 보이는 작품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크리스찬 베일 주연의 <하쉬
타임>(2005),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스트리트
킹>(2008), 제이크 질렌할과 마이클 페냐가 듀오로 등장하는 <엔드 오브 왓치>(2012)는 총격이 난무하는 위험한 거리를
누비는 LA경찰을 소재로 두거나 그와 깊게 연관된 작품이다. 그
중에서도 <스트리트 킹>은 LA경찰의 내부 비리를 고발하게 되는 처지로 몰린 어느 경찰의 사투를 다룬다는 점에서 <트레이닝 데이>와 가장 근접한 관점의 이야기를 끌어안았다. 한편 <하쉬 타임>과 <엔드 오브 왓치>는 무법 천지 같은 LA의 흉악한 풍경 속에서 차를 타고 누비는 두 남자의 동선을 따라간다는 점에서 <트레이닝 데이>와 유사한 시점을 담아낸다. 무엇보다도 세 작품은 <트레이닝 데이>의 누아르적인 결말을 연상시킨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이런
면모는 에이어의 또 다른 연출작인 <사보타지>(2014)와 <퓨리>(2014)에서도 일관되게 이어진다.
그 가운데서도 <엔드 오브 왓치>는 데이비드 에이어라는 감독의 경력 안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1인칭 시점의 캠코더 촬영 컷을 가미하며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태로 만들어진 이 작품은 LA경찰
두 사람의 동선을 부지런히 쫓으며 생생한 현장감을 부여한다. 제복을 입고 경찰서와 순찰자, 거리를 오가는 두 경찰과 그 주변부를 살피는 카메라는 LA경찰의
실제적인 삶을 직접적으로 대면하는 듯한 체험적인 쾌감과 긴장감을 도모한다. 극적인 형태의 기존 작품들과
형식적으로도 차별적인 인상을 전달한다는 점에서 더욱 두드러지는 면모가 있다. 그저 그런 범작 취급을
받았던 전작들과 달리 대단한 수작으로 평가를 받았던 <엔드 오브 왓치> 이후 에이어가 발표한 <사보타지>는 최정예 마약검거 특수부대가 미궁의 음모에 휘말리는 내용을 그린다.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주연을 맡은 이 작품은 전작에 대한 평가와 완벽하게 대비를 이룰 정도로 혹평을 얻었다. 하지만
같은 해에 발표된 <퓨리>를 통해서 에이어는 다시
한번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낸다.
<퓨리>는 영화의 배경만으로도 데이비드 에이어의 경력 안에서 이질적인 위치를 차지한 작품이다. LA의 골목을 전전하는 경찰들 대신 제2차 세계대전의 막바지에 치달은
독일 전선에서 탱크에 몸을 실은 미군들이 스크린에 등장한다. 하지만
<퓨리>는 데이비드 에이어의 호기심을 당길만한 세계였다. “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 그리고 삼촌 등 수많은 친인척들이 전쟁에 참여했다. 나
또한 해군에서 복무했고. 그래서 전쟁이란 내게 항상 사적인 소재이자 가족사 같은 것이었다. 전쟁에 대해 알면 알수록 언제나 이분법적이고, 도덕적인 명분이 있는
일처럼 보였는데 실제로도 그랬다. 그러니까 그건 선악의 대립이었다는 말이다. 다만 참호에서 싸우는 사내들에겐 잔혹한 일이었다. 전쟁은 매우 암담했다. 그걸 보여주고 싶었다. 대단히 긍정적인 결과로 닿았지만 거기엔 사내들이
감당해야 하는 부당한 대가가 있었다는 것을.” 에이어는
이런 깨달음을 바탕으로 <퓨리>를 참혹한 전쟁물
이상의 휴먼드라마로 격상시켰다.
사실 에이어가 연출해온 LA 배경의 범죄물 속에서 경찰들이 감당하는
긴장감은 전장의 그것만큼이나 공포스럽다. <퓨리>는
에이어가 줄곧 그려왔던 두려움의 세계를 보다 사실적인 비극 안에 세워 넣고 밀어가는 작업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퓨리>는 에이어가 그린 새로운 풍경일
뿐 일관성 있는 감정을 담아낸 세계관이다. 게다가 <퓨리>는 에이어의 초기 각본작이었던 <U-571>(2000)과
마찬가지로 제2차 세계대전 배경의 작품이며 수많은 적에게 둘러싸인 잠수함 한 대와 탱크 한 대에 모든
것을 걸고 싸우는 군인들의 사투를 다룬다는 점에서 데이비드 에이어라는 작가의 인장을 재확인시킨다. 물론 <퓨리>의 최후반부 전투신이 지나치게 과장된 무리수처럼
여겨지는 측면이 있지만 <퓨리>가 발하는 휴머니즘의
감동을 가릴 정도는 아니다. 무엇보다도 <퓨리>는 LA라는 지정학적 특수성 안에서 맴돌던 에이어의 세계관에서
벗어나 전세계적인 보편성을 확보하고 완결해냈다는 점에서 발전적인 성취로 여겨질 만하다. 물론 <퓨리> 역시 총을 든 사내들의 세계관이란 점에서 에이어의
세계관은 여전히 같은 동심원 속에 놓여있다. 그는 전장 속을 누비는 사내들의 이야기 외엔 관심이 없는
걸까? 데이비드 에이어표 로맨틱 코미디라는 것도 존재할 수 있을까? 그의
대답은 이렇다. “물론이다. 매우 진지하게,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일단 당장 그는 2016년 개봉 예정작인 <수어사이드
스쿼드>에 매달릴 예정이다. DC코믹스물 원작인 이
작품은 슈퍼히어로와 대립하는 악당들, 즉 슈퍼 빌런들이 정부 산하에서 죄를 탕감받는다는 명목으로 비밀
임무를 수행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흉악한 범죄물의 세계를 비추던 데이비드 에이어의 카메라가 재생시킬
코믹스의 세계관이라니, 사뭇 궁금하다. 좀처럼 상상하기 힘든
데이비드 에이어표 로맨틱 코미디보다도.
위기의 남자들
데이비드 에이어의 영화 속에선 항상 위기의 남자들이 등장한다. <하쉬 타임>의 짐 데이비스(크리스찬 베일)은 LA경찰을
꿈꾸지만 낙방한 뒤, 위험한 제안을 받게 되고 점차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관계마저 파괴할만한 혼돈으로
빠져드는 불나방 같은 남자다. <스트리트 킹>의
톰 러들로(키아누 리브스)는 오발로 인해 동료를 죽였다는
죄책감 속에서 홀로 사건을 마무리하고자 사지로 뛰어들지만 정작 음모의 덫에 갇힌다. <엔드 오브
왓치>의 브라이언 테일러(제이크 질렌할)와 마이클 자발라(마이클 페냐)는
위험천만한 임무를 즐기듯 수행하는 경찰 파트너이지만 히스패닉 갱들로부터 조여오는 위협을 느낀다. <사보타지>의 존 브리처 와튼(아놀드 슈왈제네거)은 특수부대를 이끄는 리더이지만 갑작스러운 팀원들의 죽음을 통해 정체불명의 위기를 느낀다. <퓨리>는 단 한대의 탱크를 둘러싼 독일군들을 맞이하는
탱크 안 미군들의 긴장감을 결연하게 그린다. 생사의 경계를 넘나드는 혹은 그 경계에 놓인 남자들이 주사위를
굴리듯 방아쇠를 당긴다.
좋은 작품이란 걸작의 반열에 오른 작품을
지칭하는 것만은 아니다. 좋은 감독이란 거장의 면모를 지닌 감독을 지칭하는 것만은 아니다. 라세 할스트롬은 바로 그런 작품을 만든 그런 감독이다.
1946년생인 라세 할스트롬은 40여
년에 달하는 연출 경력을 지닌 60대 후반의 노장 감독이다. 하지만
흔히 그만한 경력을 지닌 감독들에게 손쉽게 동원하는 ‘거장’이나
‘대가’라는 단어에 어울린다고 말하기엔 겸연쩍은 구석이 있다. 물론 그가 연출한 작품 가운데선 기억될만한 수작들이 더러 존재한다. 하지만
라세 할스트롬은 대단한 울림을 전달한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걸작의 반열에 들만한 작품을 연출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거장이나 대가만이 오랜 시절의 경력을 보장받는 건 아니다. 라세 할스트롬은 개별적인 인생을 아우르는
보편적인 감동을 길어 올리는 범작들을 꾸준히 만들어오며 대중과 호흡해온 감독이다.
라세 할스트롬이란 이름만으로도 짐작하겠지만 그는 미국 출신 감독이 아니다. 스웨덴, 그러니까 북유럽 출신 감독이다. 라세 할스트롬과 함께 동시대 할리우드에서
활동한 북유럽 출신 감독으론 레니 할린을 꼽을 수 있다. 하지만 레니 할린은 할리우드에서 이미 옛날
사람이 된지 오래다. 20세기부터 21세기까지 할리우드에서
끊임없이 작품을 연출해온 건 할스트롬이 유일하다. 과거형에 머무르지 않고 현재진행형으로서 할리우드에
자신의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물론 할스트롬의 감독 경력이 할리우드에서 시작된 건 아니었다.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태어난 할스트롬은 소위 말하는, ‘떡잎이 노란
아이’였다. 열살 무렵 단편영화를 연출하며 감독으로서의 비전을
찾은 그는 고등학교 시절에 촬영한 다큐멘터리가 TV방송 전파를 타게 되는 경험을 얻기도 했다. 이 경험은 본격적인 TV시리즈 연출 데뷔로 이어졌고, 10여 년간의 TV시리즈 연출자로서 경력으로 나아갔지만 그의 유명세에
일조한 건 세계적인 스웨디시 팝그룹 ‘아바’였다. 아바의 히트곡 대부분의 뮤직비디오를 연출했으며 아바의 공연실황을 담은 다큐멘터리 <아바: 더 무비>(1977)를
발표하기도 했다. 그리고 할스트롬은 1985년에 발표한 영화 <개 같은 내 인생>을 통해서 보다 확실한 미래로 나아간다.
할스트롬은 <개 같은 내 인생>
이전에도 스웨덴에서 몇 편의 영화를 연출했는데 모두 가정을 배경으로 갈등과 화합을 그린 드라마란 점에서 일관성이 있었다. <개 같은 내 인생> 또한 마찬가지다. 병약한 어머니를 둔 소년의 고독하고도 묵묵한 성장기를 그린 이 작품을 통해서 할스트롬은 골든글로브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했고, 아카데미 각본상과 연출상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됐다. 그 뒤로 한동안 스웨덴에서 영화를 연출해오던 그는 홀리 헌터, 지나
롤랜즈 등 당대의 배우들이 출연한 <사랑의 울타리>(1991)를
통해 할리우드에 진출했고 좋은 평가를 얻었다. 그리고 그 후 할스트롬의 가장 인상적인 연출작 중 하나인 <길버트 그레이프>(1993)를 발표한다.
<길버트 그레이프>는
길버트 그레이프(조니 뎁)라는 청년에 관한 이야기다. 그는 변변찮은 아르바이트 일을 하며 다섯 가족의 가장 노릇을 해낸다. 아버지를
잃은 이후로 충격에 휩싸여 집에만 틀어박혀 있다가 지나친 과체중이 된 어머니와 정신적인 장애가 있는 막내 동생은 그에게 있어서 언제라도 부둥켜
안을 수 있는 혈육이지만 한편으론 벗어날 수 없는 속박이기도 하다. 하지만 <길버트 그레이프>는 가족애를 부정하거나 비판하는 영화가
아니라 살아가다 보면 어찌할 수 없이 매일 같이 직면할 수밖에 없는 운명론적인 삶에 관한 이야기에 가깝다. 그리고
그러한 삶에 종속된 일상이 무기력하게 추락하지 않고 결국 새로운 기류를 타고 짐작할 수 없는 내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응원 같은 결말로 이륙한다. 결핍의 시간을 어제로 밀어내고 충만한
내일을 꿈꾼다.
<길버트 그레이프> 이후로
연출한 <사이더 하우스>(1999)와 <쉬핑 뉴스>(2001), <언피니시드 라이프>(2005) 사이엔 유사한 공통점이 있다. 사생아들을 받아주는
고아원에서 자란 청년의 성장과 정착을 다룬 <사이더 하우스>,
강압적인 아버지 아래서 보낸 유년시절로 인한 자신감이 결여된 삶을 극복해내는 남자의 인생을 살피는
<쉬핑 뉴스>, 모종의 사고로 죽은 아들을 그리워하며 며느리를 원망하고, 친구에게 치명적인 부상을 입힌 곰에게 앙심을 품은 노인의 삶에 관한 <언피니시드
라이프>까지, 자신의 결핍을 극복하거나 그로부터 해방되는
남자들을 다룬다는 점에서 그렇다. 삶의 조류를 거슬러올라가거나 타의적으로 떠밀려가거나 제 자리를 꿋꿋이
지켜나가거나, 저마다 다른 형태로 천착한 결핍을 메우고 치유하는 건 결국 그 주변부에 머무는 관계를
통해서다. 결국 관계를 통해서 자신이 설 자리를 깨닫고, 자신이
의지할 존재를 발견한다. 필연적인 환경이나 불가피한 사건으로 얻은 결핍과 상처가 관계를 통해 치유된다. 평범한 이들의 관계를 통해서 이뤄지는 삶, 그것이 바로 라세 할스트롬의
영화를 관통하는 보편적 정서다.
할스트롬의 작품 속에서 보기 드물게 우화적인 세계관을 지닌 <초콜릿>은 종교적 교리를 바탕에 둔 억압적인 정서를 당연한 규율로 감내하는
마을 주민들 사이에 편입된 한 여인이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며 주민들을 계몽한다는 달콤한 저항을 다룬 작품으로서 시대에 매몰되지 않으려는
어느 개인과 그 가치에 주목한다. 그리고 <초콜릿>은 서로 반목하던 세계의 화해와 화합을 그린다는 점에서 근작인 <로맨틱
레시피>(2014)와 연결된다. 뤼미에르에서 프랑스식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프랑스 여인과 인도식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인도 가족들의 갈등과 화해를 그린 이 작품은 결코 서로 손잡지 않을 것 같은 두 세계의
화합을 그린다는 점에서 할스트롬의 세계관에 종속된다. <사막에서 연어낚시>(2011) 또한 중동과 서방 세계의 갈등 속에서 국면 전환을 꿈꾸는 영국 정부와 예멘의 부호가 손을 잡는
과정을 그린다는 점에서 그렇다.
21세기 이후로 할스트롬은 다양한 방면의 영화들을 만들어 왔다. 중세 시대에 숱한 여성들을 매혹시켰다고 전해지는 전설적인 호색가 카사노바에 관한 <카사노바>(2005)나 미국의 대부호인 하워드 휴즈에
대한 자서전을 날조한 작가에 관한 실화를 다룬 <혹스: 욕망의
법칙>(2006)과 같이 남다른 면모를 지닌 이들의 삶을 조명하는 영화의 메가폰을 잡기도 했다. <디어 존>(2010)이나 <세이프 헤이븐>(2013)과 같이 남녀의 절실함을 바탕에
둔 로맨스물을 영화화하기도 했다. 주인에 대한 충심이 강한 강아지의 절절한 사연을 다룬 <하치 이야기>(2009)도 한편으론 새로운 드라마의 영역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라세 할스트롬의 작품들은 어떤 대단한 경지를 선사할만한 걸작에 대한 기대감으로부터
확실히 멀어지고 있는 것 같다. 반대로 그의 영화들은 과거보다 보편적인 사람들의 너른 감정들을 담아내는
드라마로 확장되고 있다. 감독으로서 무엇이 더 옳은 길일지에 대해 말하긴 어렵다. 중요한 건 그의 드라마가 여전히 이 세상에서 유효하다는 사실일 것이다. 세상의
모든 영화가 걸작일 수 없듯이 모든 이의 삶이 위대해질 순 없다. 그리고 그 평범한 삶에도 나름의 위로가
필요하다. 라세 할스트롬의 드라마가 필요한 건 그래서다. 좋은
범작들을 만드는 것, 그것 또한 이 세상에 필요한 재능인 셈이다.
소설
찍는 남자, 라세 할스트롬
라세 할스트롬의 초기 대표작인 <개 같은 내 인생>은 스웨덴 작가 레이다 욘손의 자전적 소설 3부작 가운데 두
번째 작품을 기초로 완성한 작품이다. 그 밖에도 그는 적지 않은 소설을 영화로 연출해왔다. 소설가이자 각본가이며 영화 감독인 피터 헤지스의 소설 <길버트
그레이프>부터 스토리텔링의 대가 존 어빙의 소설 <사이더
하우스>, 영국의 여류 작가 조앤 해리스의 소설을 옮긴 <초콜릿>과 퓰리처상 수상 작가 E. 애니 프롤스의 소설 <시핑 뉴스>, 베스트셀러 작가 니콜라스 스파크스의 소설 <디어 존>과 <세이프
헤이븐>, 영국 작가 폴 토데이의 소설 <사막에서
연어낚시>를 영화화했으며 최근작인 <로맨틱 레시피> 또한 경제전문지 출신 기자인 리처드 C. 모리아스가 쓴 소설 <백 걸음의 여행>을 스크린에 옮겼다.
무명 배우에서 세계적인 스타로 변신했다는
신데렐라 스토리는 할리우드에선 상상할 수 있는 일이다. 가장 최근에도 그런 사례가 탄생했다. 크리스 프랫은 지금 완전히 다른 궤도로 진입했다.
사실 크리스 프랫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2014)에 승선하기 전까지 완전한 무명 배우에 불과했던 건 아니었다.
올해로 6시즌까지 진행된 TV시리즈 <팍스 앤 레크리에이션>에서 연기한 앤디 역으로 적지 않은
인지도를 얻었고, 크리틱스 초이스 TV어워즈에선 코미디 남우조연상
부문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했다. 사실 <팍스 앤 레크리에이션>의 앤디는 유쾌한 유머 감각을 지닌 캐릭터란 점에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스타로드와 유사한 구석이 있다. 하지만
외모만을 놓고 본다면 마치 지구의 남반구와 북반구처럼, 믿을 수 없도록 동떨어진 존재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근육질의 육체미를 자랑하는 스타로드와 달리 앤디는 테디베어처럼 둥글둥글한 곡선미가 눈에 선명한
남자이기 때문이다.
크리스 프랫은 한 TV쇼에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출연 제안을 받았을 때 자신이 아내에게 소리쳤던 일화를 밝혔다. “여보! 75파운드나 몸무게를 빼야 되니 빵은 그만 구워!” 반쯤은 농담일지도 모르지만 실제로 그에겐 일종의 절실함이 있었다. 마블
코믹스의 팬이기도 했던 그에게 마블 유니버스의 일원이 될 수 있다는 제안은 그야말로 꿈 같은 일이었겠지만 어떤 식으로든 그의 경력 안에서 전환점을
만들 수 있는 기회였다. “나는 우스꽝스러운 감초 역할에 특화된 편이었는데 그런 역할을 통해서 경력을
쌓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해서 다른 오디션은 거의 참여하지 않았다. 하지만 <제로 다크 서티>(2012)에 출연한 뒤부턴 연기하고
싶은 배역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고, 매니저를 통해서 새로운 오디션을 찾아갔다.” 바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말이다.
사실 <제로 다크 서티>에서
크리스 프랫이 특별히 인상적인 역할을 맡았던 건 아니다. 그 이전에 출연했던 <원티드>(2008), <신부들의 전쟁>(2009)이나 <머니볼>(2011),
<5년째 약혼 중>(2012) 등의 작품에서 어떤 배우가 맡았다 해도 상관 없을
만한 역할을 전전해왔다. 그나마 지난해에 제작된 <딜리버리
맨>과 <그녀>에선
각각 극의 중심인물이 지닌 정서적 갈등을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는 인물로 등장하거나 중심인물의 정서적 결핍을 긍정적인 태도로 수긍하고 이해하는 인물로서
자리하며 나름의 존재감을 어필할 만한 인물로 등장한 바 있다. 다만 편차가 심해 보이는 체중으로 인상이
자주 변화하는 탓에 크리스 프랫이란 배우에 대한 일관성 있는 인상을 꿰어내기가 쉽진 않았을 거다. 어쩌면
앞서 나열한 출연작들보다도 주연 캐릭터의 내레이션을 맡은 <레고 무비>(2014)에서의 존재감이 보다 확실하게 느껴질 정도랄까.
무엇보다도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스타로드를 보며 앞서 열거한 그의 출연작들을 짐작하는 이란 드물 것이다. 단언컨대 그럴 수밖에 없다. 식스팩과 수백 광년쯤은 동떨어진 듯한
체형의 무명배우였던 그의 과거를 연상했을 때 스타로드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사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어떤 면에서 크리스 프랫과 처지가
유사한 작품이었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또한
마블 코믹스의 역사를 차지하는 작품이지만 <어벤져스>의
세계관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은 세계관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크리스 프랫에겐 좋은 기회였다. “시나리오와 감독의 디렉팅을 벗어나지만 않는다면 뭘 해도 상관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게 배우로선 도움이 된다.” 대중에게도 낯선 역할인 만큼 자신의 관점이 새로운 기준이 된다 해도 상관없다는 걸 알았다. 게다가
낯설지 않은 작품이었다. 유년시절 친구를 통해서 우연히 원작 코믹스를 접한 적이 있었고 자신도 그 중
몇 권을 소장할 기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결과론적으론 운명적이란 의미를 붙일 수도 있을 거다. 게다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그의 기대를 넘어서는, 일종의 선물과도 같은 작품이었다. “출연을 결정하기 전에 시나리오를 보지 못했다. 막상 시나리오를
읽었을 땐 내 생각보다 훨씬 좋은 역이라서 안도했지. 시나리오가 아주 웃긴데, 그게 딱 제임스 건 감독 스타일이다. 그는 실제로도 아주 재미있는
친구다.”
사실 크리스 프랫은 자신과 함께한 동료들의 칭찬을 곧잘 하는 편인데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서도 주변 동료들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단순히
입바른 말을 잘해서라기 보단 그가 실제로 사려 깊고 친절한 동료이기 때문일 가능성이 다분해 보인다. 그는 <당신은 몇번째인가요?>(2011)라는 영화로 크리스 에반스와
함께 출연한 적이 있었는데 사실 그는 주연을 맡은 크리스 에반스의 역할에 오디션을 봤지만 작은 역할을 맡아야 했다. 하지만 그 이후로 크리스 에반스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크리스
에반스 또한 SNS를 통해 공개적으로 크리스 프랫에 대한 애정을 표한 바 있었는데 두 배우가 모두 마블
유니버스의 히어로로 활약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연치곤 기묘한 일이다. 언젠가 <어벤져스>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세계관은 필연적으로 중첩될 가능성도 다분한 만큼 두 배우가 한 스크린에 자리할
가능성도 존재할 것이다.
한편 그는 자상하고 세심한 가장이기도 한데 한번은 동료배우이기도 한 아내 안나 패리스의 머리를 땋은 사진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려서 화제가 됐고, 한 영상 인터뷰에서 머리 땋기 실력을 직접 시연해 보이기도 했다. 천연덕스럽게 내년 개봉작으로 예정된 <쥬라기 공원>의 새로운 속편을 홍보하며 1분만에 완벽한 머리 땋기를 선보인
그는 “(머리를 묶을 땐) 고무밴드보단 스크런치라고 불리는
걸 쓰는 게 낫다”는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한편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촬영으로 오랫동안 집을 비운 탓에
아내로부터 생후 13개월이 된 아들이 아빠를 못 알아볼 수도 있으니 낙심하지 말라는 조언을 받았지만
자신을 보고 ‘아빠’라고 불러주는 어린 아들로 인해 눈물을
흘리면서 이 날을 “내 인생 최고의 날이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크리스 프랫은 우주를 지키는 영웅을 연기하는 배우이기
전에 자신의 가정에 충실한 남자인 것이다.
크리스 프랫에게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로 마블 유니버스의 주인공이 됐다는 건 배우로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는 일이다. 그는 최근 LA에 있는 한 아동병원을 방문했다. 자신이 영화에서 입었던 의상들을 입고 스타로드로서 아이들을 찾았다. 그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와 관련된 인터뷰 중 자신의 촬영
의상을 챙겨놨다고 고백한 적이 있었다. 이유가 있었다. “만약
영화가 개봉하고 좋은 성적을 거둔다면 아이들을 찾아갈 거다. 영화가 크게 성공해서 아픈 아이들에게 의미로
다가올 수 있을 정도가 된다면, 피터 퀼이나 스타로드가 찾아오는 게 큰 의미가 된다면 그럴 거다. 그럼 이 영화가 내게 진정한 의미가 될 거다. 가장 멋진 건 내
아들이 언젠가 이 영화를 볼 것이고, 어쩌면 내가 어떤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을 거란
사실이다. 그들에게 좋은 롤모델이 되는 거다.” 생각해보면 크리스 프랫은 대부분의 작품에서 선한 인물로서 자리했다. 때때로
우스꽝스러울지언정 그랬다. 그는 본래 따뜻한 심성을 지닌 배우다. 진정한
영웅의 자격을 지닌 사람이다. 그의 식스팩보다 그 착한 마음이 진정한 매력이자 재능일 것이다. 그 마음이 그의 경력에 좋은 영감이 될 것이다. 물론 그의 식스팩을
볼 기회는 유효하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속편이 2017년에 공개될 예정이니 말이다. 물론 식스팩보다도
따뜻한 마음이 더욱 매력적인 남자, 크리스 프랫의 유쾌한 행보를 계속 목격하고 싶다.
'리부트’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재부팅’ 그러니까 컴퓨터를 다시 켠다는 의미를 지닌
단어다. 그러니까 영화를 리부트한다는 건 간단히 말해서 영화를 ‘다시
시작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같은 방식으로 다시 시작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리부트는 그 대상이 되는 원작이 깔아놓은 철로에 개량된 열차를 올려놓는 작업이 아니다. 열차뿐만 아니라 철로를 싹 갈아엎고 비행장을 만들어버릴 수도 있는 작업이다.
변주의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다만 그 시리즈의 정체성만은 유지한다. <배트맨 비긴즈>(2005)엔 배트맨이 있고, <맨 오브 스틸>(2013)엔 슈퍼맨이 있다. 제임스 본드가 없는 <007>시리즈가 존재할 리 없다. 매력적인 캐릭터는 시리즈의 미래를 보장하는 뿌리이자 줄기이며 잎이자 꽃이다.
그리고 잘 알다시피 할리우드엔 이미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차고 넘친다. 그들에게 새로운 숨을
불어넣을 장치가 필요할 뿐이다. 그것이 바로 리부트다.
언젠가 한번 들었던 이야기를 다시 듣는 건 필연적으로 지루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듣지 못했던 이야기가 있다고 하면 궁금해지기 마련이다. 게다가 그것이 상당히 재미있는 이야기였다면 더욱
솔깃해질 수밖에 없다. 배트맨이든, 슈퍼맨이든, 스파이더맨이든, 한결 같이 ‘태생의
비밀’을 안고 다시 돌아오는 것도 그래서다. 대부분의 리부트
영화들이 ‘프리퀄 무비’로 시작되는 건 다분히 전략적인 셈이다. 리부트의 대상이 되는 기존의 작품으로부터 해방돼서 새롭게 설계된 이야기 위에서 자유로운 전개가 가능하다. 이를 테면 <007: 카지노 로얄>(2006)이나 <스타트렉: 더 비기닝>(2009),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2011),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2011)과 같은 작품은 프리퀄의 형식을 빌려서
시리즈의 리부트를 시도하면서도 완전히 새로운 서사의 발판을 확보함으로써 새로운 이야기의 방향성을 탐색하고 구축한 뒤, 나아가버린다. 무엇보다도 새로운 이야기를 발굴하는 노력보다도 손쉽게
검증된 이야기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매력적인 방법론이다. 게다가 마블과 DC의 슈퍼히어로물들이 증명한 것처럼 매력적인 캐릭터들의 존재만으로도 이룰 수 있는 이야기의 너비란 그야말로
우주처럼 넓고 광활하다. CG의 발달을 위시한 영상 기술의 발달도 리부트를 부채질한다. 과거의 기술력으론 표현할 수 없었던 이미지의 구현이 완벽하게 가능해진 시대에서 필연적으로 열악할 수밖에 없었던
과거의 영화적 이미지들을 놀라운 볼거리로 발바꿈시키는 것만으로도 리부트의 가능성은 보다 무궁무진해진다. 리부트
열풍은 좀처럼 꺼지지 않고 확장될 것이다. <터미네이터>를
비롯한 수많은 인기 프랜차이즈들이 리부트의 대열에 합류 중이다.
리부트 열풍은 영화계를 넘어서 TV시리즈까지 강타하고 있다. 내년에 방영될 예정인 <히어로즈> 시즌 5는 이미 기존의 시리즈를 리부트하는 방향으로 제작될
것이라고 발표됐다. 또한 고전 시리즈로서 인기를 모았던 슈퍼히어로물인
<플래쉬>도 새롭게 리부트될 예정이다. 또한
리부트 열풍은 영화와 미드의 경계를 넘어선 스핀오프 기획으로 진화 중이다. <어벤져스>의 성공에 힘입은 TV시리즈
<에이전트 오브 쉴드>가 기획된 것처럼 <다크
나이트>의 고든 경감을 주인공으로 둔 또 다른 <배트맨> 프리퀄 시리즈가 미드로 제작 중이다. 스크린과 TV의 경계를 허무는 크로스오버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어쩌면 새로운
시대가 리부트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크리스 헴스워스는 지루한 캐릭터에서 벗어나고자 태평양을 건너 미국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그는 천둥의 신이 됐다. 그리고 이젠 두 발을 딛고 설 수 있는 배우임을 증명할 차례다.
잘 알다시피 할리우드 영화란 단순히 미국 영화가 아니다. 전세계 어디에서든 극장이 있는 곳이라면 할리우드 영화를 상영한다. 전세계의 배우들이 할리우드 진출을 동경하는 건 야구 선수가 메이저리그를 꿈꾸는 것처럼 당연한 일이다. 특히 영어권 국가의 배우라면 더더욱 그렇다. 영국과 캐나다 배우들의 할리우드 진출 역시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할리우드 배우의 산실 노릇을 하는 국가론 호주 역시 빠지지 않는다. 고인이 된 히스 레저를 비롯해서 멜 깁슨, 휴 잭맨, 러셀 크로, 케이트 블란쳇, 나오미 왓츠, 니콜 키드먼, 에릭 바나, 그리고 샘 워싱턴까지, 할리우드를 주름잡는 이 이름의 주인들은 모두 호주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이 리스트에 추가해야 할 이름이 하나 더 있다. 크리스 헴스워스, 그는 ‘아스가르드’가 아니라 호주에서 태어났다.
“나는 척박한 시골의 가정에서 두 형제들과 함께 자랐다. 우린 끊임없이 무기나 요새 같은 것을 만들며 놀았지만 액션 히어로가 되려고 했던 건 아니다.” 헴스워스는 멜버른에서 태어났다. 어느 어린 아이들처럼 자연스럽게 ‘슈퍼맨 흉내를 내면서 집 주변을 뛰어다니며’ 성장했다. 하지만 20대가 넘은 나이에 거대한 망치를 휘두르는 신을 연기하기 위해서 히어로가 등장하는 만화책을 펼쳐보게 될 일이 생길 거란 예상 역시 해본 적이 없었다. 마블 엔터테인먼트의 직원들로부터 <토르>의 카피본이 무더기로 쇄도할 줄을 몰랐다. 할리우드의 이방인에서 세계적인 스타로 단숨에 도약할 수 있으리라 상상해본 적은 더더욱 없었을 거다.
대자본이 투여되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심지어 마블 엔터프라이즈의 야심찬 프로젝트인 <어벤져스>(2012)로 향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할 대작의 얼굴로 낯선 배우를 내민다는 건 일종의 모험이다. 확신이 필요하다. 이런 경우엔 대부분 프로젝트를 좌우하는 큰 손의 보증이 있기 마련이다. <어벤져스>의 감독이기 전에 이미 유능한 제작자이자 각본가였던 조스 웨던은 <토르: 천둥의 신>(2011)의 메가폰을 잡은 케네스 브레너에게 크리스 헴스워스를 추천했다. 담보는 자신이 각본에 참여하고 제작했던 <캐빈 인 더 우즈>(2012)였다. 2009년에 촬영을 완료했지만 2012년에서야 개봉되어 큰 인기를 얻었던 이 작품은 대단히 파멸적이고 끔찍한 세계관을 재기발랄한 풍자와 위트로 승화시킨 컬트작이었으며 조스 웨던이 제작과 각본을 담당했다. 그는 이 영화의 출연자 중에 한 명이었던 크리스 헴스워스를 눈 여겨 봤고, 토르의 망치 ‘뮬니르’의 주인이 되리라 믿었다.
“육체적으론 어렵지 않았다. 그저 체육관에 머물면 되니까. 가장 큰 어려움은 나보다 훨씬 경험이 많은 안소니 홉킨스나 나탈리 포트만과 함께 거대한 프로젝트에 참여한다는 것이었다. 그와 같은 기회를 꿈꿨지만 비로소 다다랐을 땐 매우 두려운 일이었다.” 사실 헴스워스가 태평양을 건너 미국으로 건너온 건 그에게 어떤 열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본격적인 연기 경력은 2004년 호주 시드니에서 촬영했던 연속극 <홈 앤 어웨이>를 통해서였다. 그는 그 시절을 이렇게 회상했다. “3년 반 동안 똑같은 캐릭터를 연기한다는 건 매우 지겨웠다. 항상 불이나 태풍, 헬리콥터의 충돌, 비행기 사고 따위에 휘말렸다. 드라마틱한 죽음을 소원하게 됐다.” 결국 새로운 계기를 찾아 LA로 건너온 그는 가까스로 <스타트렉: 더 비기닝>(2009)에서 작지만 중요한 단역을 따낸 뒤, 그저 그런 몇 편의 경력을 전전하다가 ‘인간 이상의 존재’로 발탁됐다. 드라마틱한 죽음 대신 고전적인 비극의 요소를 품은 슈퍼히어로 블록버스터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토르: 천둥의 신>과 속편인 <토르: 다크 월드>(2013)는 여러 모로 셰익스피어의 비극을 연상시킨다. 실제로 두 작품의 메가폰을 잡은 이들의 면모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토르: 천둥의 신>의 감독은 <햄릿>(1996)을 연출했던 배우 출신 감독 케네스 브레너다. 실제로 그는 크리스 헴스워스에게 셰익스피어의 <헨리 5세>를 던져주며 토르의 모티프를 찾길 요구했다. <토르: 다크 월드>의 메가폰을 잡은 건 미니시리즈 <왕좌의 게임>을 연출한 앨런 테일러다. 고전적인 엄숙함과 중세 왕정기의 야만성이 교차하는 <왕좌의 게임>은 그 자체로 역설적이고 필연적인 운명이 뒤엉킨 셰익스피어의 비극을 연상시키는 판타지물이다. 이는 곧 <토르>라는 작품을 꿰뚫는 핵심이 셰익스피어의 코드를 관통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실제로 서로 다른 핏줄을 안고 태어나 반목하는 토르와 로키 형제의 멜로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 시리즈에서 고전적인 중후함과 연민을 자극하는 깊은 눈매를 지닌 헴스워스가 갈등의 주인공으로 캐스팅됐다는 건 결과적으로 적절해 보인다. 단순하지만 강인하게 자신의 신념을 밀고 나가면서도 내면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남성적인 매력은 토르라는 캐릭터 자체에 대한 신뢰로 이어진다.
<토르: 천둥의 신>과 <어벤져스> 그리고 <토르: 다크 월드>까지, 크리스 헴스워스라는 배우를 이야기할 때 토르를 제외한다면 할 말이 없어지는 건 사실이다. <백설공주>를 모티프로 기획된 액션 판타지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2012)에서도 특별한 존재감을 드러냈다고 말하기란 어렵다. 그런 면에선 존 하워드가 연출한 <러시: 더 라이벌>(2013)이 오히려 특별한 경력에 가깝다. F1의 왕좌를 두고 경합을 벌였던 전설적인 라이벌에 관한 실화를 다룬 이 작품에서 헴스워스는 할리우드 진출 이후로 출연한 주연작에서 처음으로 현실적인 캐릭터를 연기해낸다. 비현실적인 혹은 초현실적인 세계관을 거치며 우직한 선의로 무장한 채 악과 맞서 싸웠던 것과 달리 누군가를 이기겠다는 사적인 욕망을 표현한다. 새로운 가능성이 발견되고 연기의 범위가 확장된다.
물론 그는 한동안 하늘을 날고 거대한 망치를 휘두르며 세계를 구하는데 여념이 없을 것 같다. 2015년에 개봉될 예정인 <어벤져스>의 속편 이후로도 이 슈퍼히어로의 세계는 오랫동안 유지되고 확장되며 전세계 관객을 사로잡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헴스워스의 세계도 점차 확장될 예정이다. 선악의 경계가 불분명한 범죄물의 대가 마이클 만의 신작에 출연한 그는 실화를 스크린에 옮길 예정인 론 하워드의 새로운 신작에 또 한번 참여한다. 신계와 인간계를 오가는 바쁜 스케줄을 소화할 예정이다. 신이라 불린 사나이, 크리스 헴스워스가 두 발을 딛고 설 진짜 세계가 궁금하다.
올해로 65회를 맞이한, 미국의 권위 있는 TV 시상식 에미상 후보작들 가운데서 눈에 띄는 작품은 9개 부문 후보로 이름을 올린 <하우스 오브 카드>였다. 영국의 보수당 정치인이자 작가인 마이클 돕스의 동명 소설을 극화한 BBC의 동명 TV시리즈를 리메이크한 작품으로 백악관 입성의 야심을 품은 한 정치인의 권모술수를 현실에 밀착시키듯 흥미롭게 그린 정치스릴러다. 테크니션의 대가 데이비드 핀처가 제작과 연출을 맡고, 케빈 스페이시와 로빈 라이트 등 신뢰할만한 배우들을 전면에 포진시키며 탁월한 조형도를 확보했다. 하지만 이 정치스릴러가 주목을 받은 건 작품의 외적인 요소 덕분이었다.
<하우스 오브 카드>가 공개된 건 올해 2월이었다. 대부분의 미니시리즈들이 그러하듯이 HBO 같은, 이름만 대도 알만한 유료 케이블 채널을 통해서가 아니었다. 온라인을 통한 독점적 공개였다. <하우스 오브 카드>는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인 넷플릭스의 자체 제작 미니시리즈였기 때문이다. 그 이례적인 사실만큼이나 공급 방식 역시 파격적이었다. <하우스 오브 카드>는 기존의 TV 미니시리즈처럼 주 1~2회씩 순차적으로 방영되지 않았다. 13화를 한번에 공개했다. 넷플릭스의 유료 가입자라면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로 <하우스 오브 카드>의 전회를 시청할 수 있었다. <하우스 오브 카드>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됐다. 지난 4월 넷플릭스는 1분기 매출 실적이 10억 달러가 넘었다고 발표했다. 창립 이래 처음이었다. 이 발표와 함께 주가는 24% 폭등했다. 발표에 따르면 전년도까지 2700만명 수준이었던 유료 가입자 수도 3600만명을 상회했다. 미국 내 최대 유료 가입자를 지닌 케이블 채널 HBO가 2800만 명 수준임을 감안한다면 대단한 수치다.
1997년 인터넷 DVD 대여 서비스 업체로 출발한 넷플릭스는 2009년부터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 시장에 주력했다. 그 과정에서 주가 폭락 사태를 겪기도 했지만 영상 콘텐츠를 생산하는 회사들과 독점 계약을 맺고 콘텐츠를 강화하며 점차 저변을 넓혀나갔고 미국 내 최대 규모의 회사로 성장했다. 그리고 <하우스 오브 카드>와 같은 오리지널 시리즈 제작과 성공은 넷플릭스를 기존의 케이블 채널과의 경쟁자로 인식하도록 만들었다. 전통적인 TV 채널 중심의 방송 시스템을 흔든 결과다.
오늘날 사람들은 TV 앞에 앉아있지 않고도 TV를 볼 수 있다. 태블릿 PC, 스마트폰 등 인터넷 접속이 가능한 디바이스를 통해서 실시간으로 혹은 뒤늦게라도 다운로드를 받아서 감상할 수 있다. 미국의 한 시장조사기관은 온라인 스트리밍 사용자 중 60% 이상이 넷플릭스로 영화나 드라마를 감상했다고 전한다. 소비자가 확보된 만큼 자체 콘텐츠를 생산할 이유도 충분해진다. <하우스 오브 카드>의 성공은 포스트 TV 시대의 예고편일지도 모른다. 방송 콘텐츠를 TV로만 소비하던 시대에서 벗어났듯이 방송 시스템이 TV 채널에만 적용될 이유가 없음을 피부로 느끼기 시작했다. 망망대해에 좌표가 생겼다. 인터넷이라는 인프라에 전통적인 영상 콘텐츠 제작 시스템이 합병된 셈이다. 앞으로의 전망? <하우스 오브 카드>는 총 26부작으로 제작됐고, 아직 13부작이 남았다. 그 13부작은 넷플릭스의 미래이자 방송 패러다임의 새로운 미래를 잇는 교두보가 될지도 모른다. 넷플릭스가 확실한 조커를 쥐고 있다는 말이다.
이건 단순한 영웅전이 아니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트릴로지는 오늘날의 슈퍼히어로 무비들과 또 다른 전형이다. 혼돈과 절망을 건너 끝내 세상을 구원하는 배트맨의 여정은 여전히 당신의 믿음을 시험하고 있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장편 연출 데뷔작 <미행>(1998)은 단돈 6천불의 예산과 게릴라 슈팅으로 촬영된 작품이다. 이는 미국 내 단 두 개의 상영관에서 개봉된 뒤 4만 8천여 불의 수익을 거뒀다. 최근 놀란이 지휘한 영화들과 비교했을 때 지극히 초라한 규모를 지닌 이 작품은 그의 필모그래피를 관통하는 중요한 단서다. <미행>의 파편적인 서사의 운용은 놀란을 세계적인 입지의 감독으로 승격시킨 <메멘토>(2000)를 떠올리게 만든다. 하지만 영화의 주제 의식은 <인셉션>(2010)과도 흡사하다. 실제로 <미행>에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연기하는 <인셉션>의 코브와 동명인 또 다른 코브가 등장하는데 그는 도둑질이라는 행위가 타인의 삶에 관여하고, 어떤 의미로는 타인의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행위라고 주장한다. 이는 타인의 꿈에 침투해서 기억을 조작하고 개인의 삶을 조종한다는 점에서 흡사하다. <미행>의 도둑질이 곧 ‘인셉션’인 셈이다.
놀란이 죽어가던 <배트맨> 시리즈에 새로운 숨을 불어넣을 적임자로 임명됐을 당시, 화두에 오른 건 문에 붙은 배트맨 로고가 등장하는 <미행>의 한 장면이었다. 그가 일찌감치 배트맨의 팬보이였다는 소문이 전파됐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가 배트맨에게 시행한 심폐소생술은 탁월했다. 팀 버튼이 연출한 <배트맨>(1989)이 할로윈의 코스튬 카니발이라면 놀란의 <배트맨 비긴즈>(2005)는 하이퍼리얼리즘의 테러를 주목하는 영화였다. 그러니까 팀 버튼의 그것이 철저하게 악몽 같은 코믹스의 세계관 안에서 복무하며 현실과 괴리된 존재들을 비추는 대신 놀란은 최대한 현실에 두 발을 딛고 이 세계의 폭력 위를 누비는 영웅의 고단함을 추적한다.
<배트맨 비긴즈>는 배트맨 수트의 부품 하나하나의 근원과 기능까지 짚어나간다. 결과적으로 <배트맨 비긴즈>는 <다크 나이트>(2008)와 <다크 나이트 라이즈>를 위한 충실한 매뉴얼이다. 반도체의 단자들을 연결하듯 배트맨을 이루는 물리적, 정서적 인과관계에 크고 작은 디테일을 새겨 넣는 과정을 통해서 브루스 웨인과 배트맨이라는 이중적 자아가 공존할 수 있는 현실적인 장을 마련한다. 이는 단순히 놀란의 고집이나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명확한 인식이자 철저한 기준, 즉 그가 생각하는 영화적 가치를 대변한다. 스크린과 객석 사이의 거리감을 좁히고 일치시킴으로써 상영관을 벗어난 관객이 자신의 영화적 체험을 곱씹을 때, 영화 속 고담과 객석 사이의 거리를 좁히고 일치시킴으로써 그 세계는 무한한 가능성을 확장되고 이로서 완성된다.
<배트맨 비긴즈>가 놀란의 배트맨을 스크린에 세우는 작업 자체로서의 의미를 지닌 작품이라면 <다크 나이트>는 그 완성된 배트맨을 도구 삼아서 고담, 즉 이 세계의 곳곳을 비추고, 살피는 ‘놀란의 본격적인 시선’에 가깝다. 아이맥스 카메라까지 동원된, 전작에 비해서 광대해진 스케일은 <배트맨 비긴즈>에서 어루만진 디테일의 연결을 통해서 보다 손쉽게 확장된다. 물론 히스 레저의 목숨을 건 열연이 <다크 나이트>가 지닌 자질 이상의 성취를 더했다는 걸 간과할 순 없지만 기본적으로 이 작품이 사회를 관통하는 시선과 영웅에 접근하는 방식은 주목할만하다. <다크 나이트>는 ‘이 사회의 대중이 진정한 영웅을 받아들일 수 있는 그릇인가?’라는 물음을 품었다. 고담을 유린하던 조커가 배트맨이 가면을 벗으면 자신도 자수하겠다는 조건을 내걸었을 때, 시민들은 배트맨을 비난하고 자수를 촉구한다. 조커는 대중의 나약하고 이기적인 심리를 파고 들어 헤집는다. 이를 통해서 영웅을 끝내 궁지로 몰아넣는다.
놀란의 ‘배트맨’ 트릴로지 대단원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그럼에도 이 사회에 영웅이 존재해야만 하는 이유에 관한 이야기다. <다크 나이트>에서 스스로 권위의 추락을 선택한 배트맨은 다시 한번 일어서서 고담을 구원할 흑기사가 된다. 배트맨에게 기생하듯 등을 맞댄 숙적 조커와 달리 베인은 철저하게 반체제의 선동가로서 배트맨을 마주보고 선다. 놀란은 말한다. “조커는 확실히 혼돈에 가까운 무정부주의자이자 사악한 유머 감각의 소유자로서 특별한 악당의 전형을 보여줬다. 내게 베인은 이 영화를 위한 밑천이었다. 이번 영화에선 새로운 무언가를 원했다.”조커가 고담을 흔드는 바람, 즉 혼돈 그 자체를 유희하는 악마였다면 베인은 모든 것을 파괴하는 절망의 화신이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본 관객 대부분은 베인에게 뭇매를 맞고 나뒹굴던 배트맨이 끝내 허리가 꺾여 몸을 가누지 못하는 광경에서 묘한 통증을 공유했을 것이다. 기댈 곳이 없다는 건 세상의 끝으로 몰린 절망이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그런 세상의 끝으로부터 되돌아오는 이야기다. 물론 이성적인 질서와 규범이 무법적인 폭력에 의해 와해되는 풍경을 초월적인 존재의 등장만으로 구원할 수 있다는 믿음은 역설적인 절망이다. 하지만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비관적인 영화가 아니다. 배트맨이 구원한 고담에서 자라난 누군가는 정의로운 신념으로 영웅적인 채비를 차리고, 세계로 나아간다. 배트맨은 말한다. “모두가 영웅이야. 어린 아이의 어깨에 코트를 걸쳐주며 세상이 끝나지 않았다고 희망을 주는 남자도.” 배트맨의 탈을 쓴 브루스 웨인이 지키고자 했던 고담의 가치란, 이 세계의 정의란 그런 것이다. 결국 놀란은 이 세계를 좌우하는 건 배트맨도, 베인도 아닌, 객석의 개개인이라 말하고 있는 셈이다.
놀란의 영화는 항상 진실에 대한 물음을 품고 있다. 그 물음은 일종의 게임의 형식을 취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그 진실을 마주하기까지의 고난과 목도했을 때의 충격을 중요하게 다룬다. <프레스티지>(2006)는 어쩌면 크리스토퍼 놀란의 세계관을 설명하기 위한 가장 좋은 도면일지도 모른다. 마술은 트릭이다. 눈속임이다. 진실을 알게 되면 시시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것이 훈련된 눈속임이 아니라 위장된 진실이라면? 최고의 마술을 꿈꾸던 두 마술사가 경쟁 끝에 도달하는 진실은 생각 이상으로 놀랍고 끔찍하다. <프레스티지>는 바로 놀란이 품은 진실게임이다. 놀란은 말한다. “자신만의 세계와 논리를 가진 영화들이 관객이 보는 이미지 이상의 의미로 확장될 수 있다.”당신이 바라보는 영화적 세계가 스크린 너머의 허구일 때 우린 안전하지만 그것이 때때로 현실로 튕겨져 나올 때, 영화란 더없이 위험한 도구처럼 보인다. 최근 콜로라도 주의 소도시 오로라에서 벌어진 참혹한 총기 사건도 영화의 잠재적 불안을 조커처럼 속삭이고 부추긴다. 하지만 영화는 결코 이 세계를 망치지도, 구원하지도 않는다. 그 주체는 바로 당신이다. 놀란이 전하는 진실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결국 우린 믿어야 한다. 당신이 지켜야 할 모든 가치들을, 그리고 우리 자신 스스로를.
(BOX)왜 아이맥스인가?
“아이맥스가 영화를 위한 최고의 포맷으로 발명됐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크리스토퍼 놀란이 <다크 나이트>를 아이맥스 카메라로 촬영한 이유다. 상업영화 최초의 사례였다. 심지어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전작의 두 배에 달하는 55분 분량을 아이맥스 카메라로 촬영했다. 70mm 아이맥스 필름에 담긴 광대한 비주얼은 그 자체로 대단한 볼거리다. 하지만 놀란은 단순한 볼거리를 의식한 것이 아니다. “<인셉션>은 그 특이한 풍경을 포착하기보다 꿈의 리얼리티를 묘사하는 게 중요했기에 아이맥스 대신 핸드헬드 카메라의 현장감을 활용했다. 반면 <다크 나이트>와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아이맥스의 거대한 캔버스에 매우 잘 맞아떨어진다. 그 차이는 영화가 요구하는 방식에 의존한 결과였다.”놀란이 재발견한 아이맥스에 할리우드가 주목하고 있다.내년에 개봉될 <스타트렉: 더 비기닝 2>와 <헝거 게임: 캐칭 파이어>는 아이맥스 카메라로 촬영됐으며 스티븐 스필버그도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이는 중이라니, 3D를 잇는 차세대 영화 플랫폼은 아이맥스가 될지도 모르겠다.
마크 월버그의 10대는 심각한 비행의 나날이었다. 그의 듬직한 현재를 생각한다면 낯선 사실이다. 나락에 떨어졌던 오랜 경험은 단단한 현재의 기반이 됐다. 가족이라는 삶의 의지를 깨닫게 됐다.
“만약 내가 그 비행기에 아들과 함께 있었다면 그렇게 떨어지도록 놔두지 않았을 거다. 일등석 객실에서 피 터지게 싸우고 나서 이리 말했을 걸. ‘됐어요. 이제 안전한 곳으로 착륙합시다. 걱정 마세요.’” 9.11 테러에 관한 마크 월버그의 코멘트였다. 이 발언으로 그는 곧 대가를 치러야 했다. 영웅 의식에 젖은 경솔한 발언이었다는 성토가 곳곳에서 이어졌다. 월버그는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하지만 이 해프닝은 월버그가 가정적인 남자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시켰다. ‘아들과 함께 있었다면’이라는 전제는 할리우드의 소문난 ‘딸바보’이자 4남매의 아버지인 그의 인생을 위한 전제이기 때문이다.
월버그는 보스턴 남부 교외의 도체스터에서 트럭 운전사였던 아버지와 간호사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9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가난한 이민자들이 주를 이룬 그곳에서 성장한 월버그는 열악한 경제적 사정 속에서 잦은 불화를 겪던 부모의 이혼을 11세 무렵에 경험했다. 월버그의 유년시절이 불구덩이 한가운데 놓인 폭탄처럼 위태로워진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았다. 13세 무렵부터 코카인에 손을 댄 월버그는 뒷골목을 전전하며 점차 깊은 나락에 빠져들었다. 마약 판매, 절도, 폭행 등으로 경찰서를 들락거리던 그는 결국 한 술집에서 저지른 심각한 폭행으로 교도소에 수감됐다. 16세의 나이였다. 2년 동안의 교도소 생활은 그에게 일종의 전환점이 됐다. “후회할만한 짓을 많이 했다. 그 실수들에 대해서 분명 대가를 치러야 한다.”
어쩌면 다른 길을 갈 수도 있었다. 11세 무렵, 친형 도니 월버그와 함께 세계적인 아이돌 그룹의 창단 멤버로 발탁됐던 기회를 저버리지 않았다면 말이다. 다만 늦은 것은 아니었다. 그에게는 분명 남다른 끼가 있었으니까. 다시 가정으로 돌아온 월버그는 형의 후원 속에서 새로운 삶을 모색했다. 스스로 새로운 이름을 지었다. 마키 마크라는 이름의 래퍼가 된 그의 활동은 성공적이었다. 첫 앨범의 타이틀곡 ‘Good Vibration’은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올랐고, 싱글앨범은 플래티넘을 기록했다. 탄탄한 근육질 몸매를 드러내며 섹시한 이미지를 어필한 그는 캘빈클라인의 언더웨어 모델로 기용되며 더욱 큰 인지도를 얻었다. 이 모든 과정은 월버그가 진짜 인생에 다다르기 위한 징검다리에 불과했다.
“나는 스무 번 넘게 보스턴 경찰에게 체포됐고, 그 경험들을 기본적으로 활용했다. 이를 좋은 용도로 쓸 수 있었던 건 틀림없이 축복이었다.”마틴 스콜세지의 <디파티드>(2006)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월버그는 이와 같은 소감을 밝혔다. 결과론적이지만 그의 이른 일탈은 이른 성숙을 위한 여정이 됐다. 사실 월버그는 배우로서의 꿈을 지녀본 적이 없었다. 월버그를 이끈 건 그의 스크린 데뷔작 <르네상스 맨>(1994)의 감독 페니 마샬이었다. “내가 이미 연기하고 있으며 누구보다 어리석지 않으니 왜 카메라 서지 못할 이유가 있느냐고 하더라.” 그 이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함께 출연한 <바스켓볼 다이어리>(1995)에서 자전적인 경험이 투영된 캐릭터를 연기하며 주목을 얻었다.
월버그가 스스로 거물의 자질을 지닌 배우임을 증명한 건 폴 토마스 앤더슨이 연출한 <부기 나이트>(1997)를 통해서였다. 7~80년대 미국의 포르노 산업의 열풍과 몰락을 통해서 당시 미국식 가족주의의 허상을 파헤친 이 작품에서 당대의 포르노 스타로 등장하며 정상과 바닥의 위치를 오르내린 이의 허무를 포착한다. 특히 마틴 스콜세지의 <성난 황소>(1980)의 엔딩을 오마주한 라스트 신에서 거울을 응시하며 내뱉는 나직한 독백은 월버그의 자전적인 열망마저 오버랩되는 듯한 명장면이다. 조지 클루니와 함께 한 이라크전 배경의 코미디 <쓰리 킹즈>(1999)와 해양 재난 영화 <퍼펙트 스톰>(2000), 동명의 SF 고전을 팀 버튼이 리메이크한 <혹성탈출>(2001)과 전설적인 하드록 밴드의 보컬에 대한 전기인 드라마 <록스타>(2001)는 월버그의 입지를 수직상승시켰다.
“아버지가 되면 더 나은 인생에 들어선다.” 월버그는 아버지가 된 뒤, 자신의 삶을 더욱 긍정하게 됐다. 사실 월버그의 캐릭터 대부분은 어두운 성장사와 가족에 대한 남다른 애착을 지니고 있다. <쓰리 킹즈>와 <퍼펙트 스톰>에서의 캐릭터들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가족을 향한 절실한 감정이 감지되는 캐릭터였으며 무명 미식축구 선수의 성공실화를 영화화한 <인빈서블>(2006) 또한 가난과 이혼의 아픔을 딛고 일어난 한 남자의 열정과 로맨스가 큰 축을 이루고 있다. M. 나이트 샤말란과 피터 잭슨이 각각 연출한 <해프닝>(2008)과 <러블리 본즈>(2009)에서도 붕괴와 상실의 위기 속에 놓인 가족을 보존하기 위해 노력하는 가장으로 등장한다. 물론 지적이고 터프한 리더의 이미지를 어필한 <이탈리안 잡>(2003)이나 <4 브라더스>(2005)와 같은 작품도 있지만 이들 역시 기본적으로 든든하고 헌신적인 가장의 리더십이 느껴지는 캐릭터들이다. 또한 대통령 암살의 음모 속으로 내던져진 한 남자의 통쾌한 복수를 그린 <더블 타겟>(2007) 역시 그의 진지함과 성실함을 대변하고 있다.
월버그의 최신작 <콘트라밴드>(2012)는 이러한 특성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작품이다. 아이슬란드 영화를 리메이크한 이 작품에서 월버그는 전직 밀수업자를 연기한다. 손을 씻고 새로운 인생을 살지만 가족의 안위를 위해서 위험한 밀수업에 다시 뛰어드는 남자로 등장한다. 복서 미키 워드의 실화를 다룬 전기적인 작품 <파이터>(2010)에서 주연을 맡았던 그는 역시 가난하고 불운한 가정 속에서도 건실하고 우직하게 자신의 이상을 추구하는 인물을 그려낸다. 무엇보다도 월버그가 직접 제작까지 도맡은 두 작품이니만큼 그의 철학과 잘 부합되는 작품이리라는 건 확실하다.
보스턴 교외의 빈곤한 도시에서 암담한 10대를 관통한 월버그가 할리우드를 주름잡는 배우이자 제작자로 성장할 수 있었던 건 바로 가족에 대한 믿음을 되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어두운 과거를 결코 상상할 수 없는 현재를 살고 있다. 월버그가 아들과 함께 ‘그 비행기’에 존재했었다 해도 그 역사적 비극을 막아냈을 가능성은 여전히 희박하게 느껴지지만 그가 지닌 가족적인 애정만큼은 확실하게 전해진다. “성공과 결혼으로 인해서 우리가 더 나은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한다.” 한 여자의 아내로서, 네 아이의 아버지로서, 마크 월버그는 그렇게 오늘을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