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에서 태어나 9살에 미국으로 넘어온 저스틴 린은 영화를 전공했고, 영화감독이 됐다. 누구나 꿈을 이룰 수 있었던 미국에서 경계 없는 평범함과 특별함을 영화에 담아낸다.
J.J. 에이브럼스를 통해 현재진행형의 이름으로 거듭난 <스타트렉> 리부트 시리즈 중 세 번째 작품인 <스타트렉 비욘드>(2016)는 올해로 50주년을 맞이한 해에 공개될 프랜차이즈의 신작이다. “처음 J.J.에이브럼스에게 전화를 받은 뒤 이 프랜차이즈를 연출하는 것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는 데에만 며칠이 걸렸다. 프랜차이즈의 전통적인 팬들뿐만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해서도 막중한 책임감을 느꼈다. 모든 것은 가슴으로부터 시작해야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무섭고 두려웠다.” 그런 그에게 J.J.에이브럼스는 단호하게 조언했다. “대담해져라. 그리고 그냥 차지해라.” 그는 저스틴 린의 첫 번째 우주비행을 위한 완벽한 멘토였다.
저스틴 린이 <스타트렉 비욘드>를
연출할 수 있었던 건 당연히 <분노의 질주> 시리즈를
블록버스터급 프랜차이즈로 성공시킨 장본인이란 점이 주요했을 것이다. 본래 혈기왕성한 젊은 캐릭터들을
앞세운 스트리트 레이싱을 그린 범죄액션물이었던 <분노의 질주>가
전세계적인 흥행가도를 기록하는 블록버스터로 체급을 올릴 수 있었던 건 저스틴 린의 공이 팔 할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J.J.에이브럼스가 <스타트렉>의 차기 지휘권을 저스틴 린에게 넘긴 이유란 이렇다. “저스틴은 자신이 대단히 뛰어난
이야기꾼임을 스스로 거듭 입증해냈다. 하지만 어떤 것보다 나를 사로잡은 건 <스타트렉>에 대한 그의 진짜 애정이었다.” 그렇다. 그는 <스타트렉>의 전통적인 팬 그러니까 ‘트레키’였다. 그의
부모님은 ‘피시 앤 칩스’를 주메뉴로 한 작은 식당을 운영했는데
보통 저녁 9시에 가게 문을 닫고 10시쯤에 집에 와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저녁식사를 마친 뒤 린과 그의 동생 그리고 그의 아버지는 모두 TV 앞에 모였다. 11시부터 방영되는 <스타트렉>을 보기 위해서였다. “8살부터 18살이 될 때까지,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집을 떠날 때까지 그건 우리 가족만의 시간이나 다름없었다.” 그만큼 <스타트렉>이라는 전통적인 프랜차이즈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그의 애정은 시리즈에 새로운 모험의 좌표를 제시하는데 유용했다. “어떤
경우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걸 해체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은 훌륭한 프랜차이즈였고, 50년 동안 지속돼 왔으며 다른 매체들 안에서 여전히 살아있다. 나는
작가로서의 사이먼 페그와 더그 정과 함께 모여 이미 성공한 것과 검증된 것에 안주하지 말자고 했던 게 기억난다.
우리가 사랑했던 것의 DNA를 사용하면서도 앞으로 더 나아가고자 했다.” 그래서였을까. <스타트렉 비욘드>에선 프랜차이즈의 상징과도 같은 엔터프라이즈
호를 완전히 파괴시켜버린다. 오래된 팬들 입장에선 그 자체만으로 이번 작품이 파격으로 느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스타트렉 비욘드>에서는 지난 두 전작에 비해 캐릭터의 다양성이 돋보인다. 이는
전통적인 프랜차이즈에서 유지해온 캐릭터들의 다양성을 계승하는 것과 같다. 이는 저스틴 린보다도 더욱
‘트레키’에 가까운 사이먼 페그 덕분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프랜차이즈의 리부트가 시작될 때부터 함께 한 스코티 역의 배우 사이먼 페그 말이다. “<스타트렉>을 내 일부라 여길 만큼 애정을갖고 있지만
솔직히 모든 대사를 읊을 순 없다. 에피소드의 모든 제목까지 아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사이먼은 가능하다!”
저스틴 린이 할리우드의 흥행감독 대열에 들어선 건 <분노의 질주> 시리즈를 통해서였다. 빈 디젤과 폴 워커를 위시한 <분노의 질주> 프랜차이즈는 국적과 인종을 초월한 다양한
캐릭터들이 팀을 이룬 활약상을 펼치는데 이는 본래 다양성의 가치를 일상적으로 대면할 수 있는 <스타트렉>의 세계관과 닮아있다. 무엇보다도 이는 저스틴 린이 추구하던
본질적인 세계관이 <분노의 질주>에 반영된 결과에
가깝다. UCLA에서 영화를 전공하던 시절 <분노의
질주>(2001)를 본 저스틴 린은 동양계 미국인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깊은 흥미를 얻었다. 하지만 동시에 동양계 미국인이 악역만을 맡았다는 사실에 대단히 실망했다. 그리고
훗날 도쿄를 배경에 둔 세 번째 속편 <패스트 & 퓨리어스-도쿄 드리프트>(2006)의 연출 제안을 받은 뒤 그가 해낸
첫 업무는 불상이나 게이샤 소녀들로 점철된 시나리오를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교체하는 일이었다. 단순히
동양을 배경에 두거나 동양계 캐릭터가 등장하는 것을 넘어 편견을 뛰어넘는 역할을 주고자 하는 것이 그의 본질적인 목표였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계 미국인인 성 강이 연기한 한은 주인공을 성장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그의 궁극적인
페르소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뒤로 저스틴 린이 연이어 연출한 <분노의
질주: 더 오리지널>(2009)과 <분노의 질주: 언리미티드>(2011),
<분노의 질주: 더 맥시멈>(2013)에서도
거듭 한이 등장해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는 것 또한 그렇다.
<베터 럭 투마로우>(2002)는 저스틴 린의 단독연출
데뷔작으로 평범한 동양계 미국인 소년들의 일상과 일탈을 그린 작품이다. 당시 선댄스 영화제에서 처음으로
공개된 이 작품은 큰 호평을 얻었는데 당대의 저명한 영화평론가였던 로저 에버트는 <베터 럭 투마로우>에 대해 “단순한 스릴러도, 단순한
사회적인 다큐멘터리도, 단순한 코미디나 로맨스물도 아니지만 그 모든 것이 명확하게 보이고 훌륭하게 완성된 영화”라고 평하며 엄지를
세웠다. 저스틴 린 자신이 성장한 LA교외의 오렌지 카운티의
한 마을을 배경에 둔 이 작품은 부족할 것이 없는 동양계 중산층 가정에서 우등생으로 자란 세 명의 고등학생 소년이 사소한 일탈에 빠져드는 과정을
코믹하게 그려나가면서도 끝내 예측 밖의 끔찍함을 여운처럼 남긴다. 이 모든 과정을 동양계 미국인이 겪는
특별한 상황이라기 보단 보편적인 이들도 저지를 수 있는 특수한 행위로 인식하게 만듦으로써 인종과 문화에 대한 차별 의식을 훌쩍 뛰어넘은 성취에
가깝다. <스타트렉>과 <분노의 질주>라는 블록버스터 프랜차이즈의 캐릭터를 통해서도
이런 의식은 공평하게 배분된다.
아마 저스틴 린의 차기작이 <스타트렉>이나 <분노의 질주>가 될 것 같진 않다. 대신 제레미 레너를 앞세운 <본>시리즈의 스핀오프 <본 레거시>(2012)의 속편을 연출할 감독직을 받아들인 상황이다. 전작이
미진한 반응을 불렀던 것과 달리 그가 만들 속편이 얼마나 대단한 반향을 일으킬 수 있을진 미지수다. 하지만
<스타트렉>과
<분노의 질주>를 통해 확인한 그의 재능은 분명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혹시 아는가? <본> 시리즈 최초로 인상적인 동양계 캐릭터가 탄생할 수 있을지, 기대해봐도
좋지 않겠는가.
이재용 감독의 신작 <죽여주는 여자>는 중의적인 제목이다. 그러니까 <죽여주는 여자>는 감탄사로 쓰이는 '죽여준다'와 동사로 쓰이는 '죽여준다'는 의미로 수식되는 여자의 삶을 그린 영화다. 먹고살기 위해 노인을 상대로 성매매를 하는 늙은 여성은 과거 자신과 거래한 전적이 있는 남성들이 갈망하는 죽음을 돕는다. 죽여준다던 그 여자가 정말 죽여주는 여자가 된 건 결국 남루한 노인들의 삶이 방치되고 외면되는 한국 사회의 현실이 존재하는 덕분이다. 나이가 든다는 건 여러 모로 귀찮고 성가신 일이 되는 사회에서 노인들은 버겁게 현실을 버티거나 버거운 내일을 지운다.
물론 <죽여주는 여자>를 목격한 10만 명 이상의 관객이 목도한 건 우울하고 괴로운 노년의 초상만은 아닐 것이다. 유쾌한 활기와 따뜻한 정감이 공존하는 영화 속 풍경에는 한국 사회의 여느 구석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다양한 소수자들의 표정들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그 다양한 생을 통해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되짚게 된다. 그리고 다양한 삶의 군상들도 하나 같이 늙어가고,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삶은 결국 죽음으로 수렴되는 여정이다. 다만 죽음이 다다를 때까지 살아간다는 것과 죽음을 향해 찾아간다는 것 사이에는 우주만 한 괴리가 있다. 결국 <죽여주는 여자>는 죽음을 통해 삶을 관통하는, 역설적인 영화일지도 모른다.
전작인 <두근두근 내 인생>은 선천성 조로증에 걸린 아이에 관한 영화였는데, 신작인 <죽여주는 여자>는 노인들에 관한 이야기다. '늙다'와 '죽다'라는 동사가 두 작품의 공통분모라 할 수 있겠다. 원래 <두근두근 내 인생>의 연출을 마음먹기 전에 나이 들어가는 여배우에 관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대중에게 늙어가는 삶을 노출하며 산다는 건 배우의 숙명이지만 여배우가 늙어간다는 건 남자 배우가 늙어가는 것과 다른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그 작품을 영화화하기 위해 투자자를 구하던 중에 <두근두근 내 인생>의 연출 의뢰를 받았고, 대중적인 영화를 연출한 경력이 차기작을 제작하는데 도움이 될까 싶어서 수락했다. 게다가 나이 들어간다는 것과 죽음이라는, 내 관심사와 연결되는 작품이기도 했고.
그런데 <두근두근 내 인생> 이후로 여배우에 관한 영화 대신 <죽여주는 여자>를 만들었다. 여배우에 관한 영화로 돌아가려던 차에 박카스 할머니를 다룬, 노인 성매매에 관한 기사를 접했는데 거기에 좀 경도됐다. 사실에 기반한 현실을 다룰 수 있는 소재이기 때문에 보다 빨리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늙어가는 여배우에 관한 이야기에서 중요한 건 여배우였을까, 늙어간다는 것이었을까? 그 질문에 답을 하려면 더 앞선 시점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웃음) 2007년에 <귀향>이라는 제목의 시나리오를 썼는데 실향민 노인이 금강산 관광을 갔다가 자신의 고향인 원산까지 걸어간다는 내용이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15년 동안 식물인간으로 생명을 부지한 아내 때문에 딸이 시집을 못 가는 것 같다고 생각한 할아버지가 아내의 생명을 끊고 딸을 시집보낸 뒤 자신도 신변 정리를 하기 위해 여정을 떠난다는 이야기였다. <꽃보다 할배>처럼 남자 노인들이 어울려 다니며 낄낄거리는 모습도 묘사되는데 실제로 이순재 선생님을 캐스팅했다. 늙어가는 부모님을 보고, 나 역시 나이 들어간다는 것을 느끼면서 그런 주제를 자꾸 건드리는 것 같다.
<귀향>은 영화로 제작하지 못한 건가? 제작 단계 직전에 금강산 관광이 백지화되면서 촬영이 무산됐다. 그런데 지금도 영화가 엎어졌다고 말하진 않는다. 금강산 관광이 재개되면 할 수도 있을 테니까.
<죽여주는 여자>의 시나리오를 착안한 건 언제였을까? <두근두근 내 인생>을 끝낸 뒤 2014년 여름쯤 착안했고, 가을쯤 시놉시스를 구상하면서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살폈는데 반향이 있었다. 그래서 그 해 겨울, 윤여정 씨에게 원래 제안했던 나이 든 여배우 이야기보단 박카스 할머니 이야기를 먼저 하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봤다. 윤여정 씨는 생각을 좀 해보더니 자신이 여배우라서인지 사람들이 여배우 얘기를 얼마나 현실감 있게 받아들일지 모르겠지만 박카스 할머니 이야기는 사회성도 있고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그런데 사실 나는 여배우 이야기가 더 대중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했었다. 오히려 <죽여주는 여자>는 소재만으로도 대중영화라 받아들여지기 힘든 지점들이 있으니까.
아무래도 '무겁다'라는 선입견이 생기는 소재이긴 하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죽여주는 여자>를 만들고 싶었다. '더 늦기 전'이란 의미는 시사성 있는 소재를 다룬 만큼 빨리 공론화해야 할 것 같았다는 말이다. 게다가 먼저 구상했던 여배우 이야기는 다른 이가 생각할 만한 시나리오는 아닐 테니까. 어쨌든 실제로 시나리오를 써내려 간 건 2개월 남짓한 시간이었다. 막연하게 이런저런 구상을 하다 작년 3월쯤에서야 정신이 번쩍 들어서 후다닥 썼다.
<죽여주는 여자>는 노인과 죽음 외에도 다양한 시사적 화두를 건드리는 영화다. 지난 필모그래피를 돌아봤을 때 현실과 밀착한 시사성을 다룬 작품은 <죽여주는 여자>가 처음인 것 같다. <귀향>이 영화화됐다면 처음은 아니었을 텐데. 남북문제와 실향민 문제 그리고 노인 문제까지 다룬, 시사성 있는 작품이었으니까. 사실 이런 류의 영화를 만들 땐 용기가 필요하다. 투자 여건이나 제작 환경을 고려하면 고심할 수밖에 없다. 종종 농담처럼 누가 돈만 대주면 평생 이런 영화만 찍으면서 살 수도 있다고 하는데 어쨌든 나는 2년에 영화 한 편씩 만드는 일개 감독일 뿐이고, 세월은 제한적이다 보니 쉽진 않은 거 같다.
한국 남자와 필리핀 여자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자녀를 의미하는 코피노와 트랜스젠더, 장애인 그리고 노인 등 우리 사회에서 소외받는 대상들이 이태원의 한 집에 모여 살면서 자연스럽게 그들의 존재감이 피력된다. 어떤 면에선 종합 선물세트처럼 나열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늘 영화를 구상하면서 스크랩해오던 소재들이었고 이번 기회에 자연스럽게 녹여보고 싶었다. 이태원은 <귀향>의 주인공 할아버지가 이태원 복덕방을 운영한다는 설정을 두면서 이미 관심을 갖고 있던 동네였다. 다양한 인종들이 모여서 살아가는, 서울 안에 자리한 작은 국제도시 같기도 하고 골목마다 정겨운 구석이 있어서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영화라는 게 역사적 기록물이 될 수도 있으니까. 게다가 미군 부대 주변에서 생업을 이어나간 경력이 있는 소영(윤여정)의 입장에선 이태원에 머문다는 것이 자연스럽기도 하다.
저마다 만만찮은 사연이 있을 법한 인물들이지만 소영을 제외한 인물들의 과거에 대해선 어떠한 언급도 되지 않는다. 처음 시나리오상에선 도훈(윤계상)의 개인사를 털어놓는 장면이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날라리처럼 지냈는데 친구를 태우고 오토바이를 타다가 사고를 당했다는 건데 결국 친구는 즉사했고 자신은 다리를 잃어서 죽을 생각까지 했다가 어느 날 문득 그냥 '살아가야지'라는 마음이 생기면서 역경을 극복했다는 사연이다. 결국 시나리오를 각색하며 정리했다. 이 세상 모든 이들의 삶이 영화가 될 수 없는 것처럼 영화 속의 모든 인물들도 주인공일 순 없다. 티나(안아주)도 한국에서 트랜스젠더로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사연과 시련을 겪었겠나. 하지만 어차피 우리가 모든 사람의 사연을 알고 살아가는 건 아니니까 그런 얘기를 다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흔히 비참한 인생일 것이라 여겨지는 소외 계층의 일상을 다루고 있지만 아기자기하고 귀엽게 묘사되는 덕분에 영화가 선택한 소재의 무게감이 버겁게 다가오진 않는 것 같다. 아무래도 나는 사람들이 불편해하는 걸 달가워하는 타입이 아닌 것 같다. 내 관심사를 공유하고 싶을 뿐이지, 사람들을 계도하고 싶진 않다. 어떤 주의나 의식을 웅변하고 자각하게 만들겠다는 의지가 없다. 물론 그들의 삶에 비참한 단면이 있을 거다. 하지만 매일을 지옥처럼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오히려 그럴수록 어떻게든 살아갈 구실을 만들어내고, 작은 온기에서도 삶의 동력을 얻을 거라 생각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다큐멘터리 감독처럼 박카스 할머니를 직접 찾아가 인터뷰하고 취재하는 과정이 있었을 것 같다. 상당히 디테일한 설정들도 묘사되니까. 박카스 할머니를 직접 대면하고 조사하진 않았다. 이미 내 머리 속에 그런 세계가 어느 정도 구축돼 있었고, 윤여정이란 배우를 통해 보여주고 싶은 인물이 있었으니까. TV 다큐멘터리나 시사 프로그램을 참고하기도 했다. '연애하고 갈래요?'라는 대사도 거기서 알게 됐고. 그런데 이미 캐릭터들은 어느 정도 구체화된 상황이라 특별한 필요성을 느끼진 못했다. 본격적으로 시나리오를 쓰기 바빠져서 그럴 여유도 없었고.
실제로 만나서 확인해봐야 할 것 같단 생각이 들지 않던가? 종로를 오가면서 간접적으로 관찰하긴 했다. 처음에는 구분을 못하겠더라. 그냥 마실 나와서 할아버지들과 노닥거리는 할머니 같기도 하고, 매춘하는 할머니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몇 번 보니까 알겠더라. 어딘가 지친 기색이 있고 얼굴에서 빛이 사라진 느낌이랄까. 그러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도 되는 것인지, 혹시 내게 오해는 없는 건지 검증받고 조언을 들어보고자 박카스 할머니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교수님을 만나서 시나리오를 보여줬는데 직접 취재하고 만들어낸 캐릭터가 아니라고 하니 놀라더라. 그래서 안심했다. 실제로도 마음을 열고 이야기해보면 다들 명랑하다고 하더라. '집에 남편 재워두고 나왔잖아'란 식으로 자기 얘기도 서슴없이 하고.(웃음) 사실 자기 삶이 얼마나 비참한지 이야기하는 것만큼 비참한 일도 없지 않나. 그럼 사는 게 진짜 지옥이 되는 거니까. 다만 어떻게든 살아갈 구실이 필요한 거다. 그리고 구실을 찾아서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삶을 극한으로 밀어 넣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영화상에서 소영이 한 여자를 찾아가 돈을 주는 장면이 두 번 등장하는데 그 전후 과정에 대한 특별한 설명이 없어서 이유가 궁금했다. 그래서 오해를 조금 산 것 같다. 원래 소영이 목돈을 빌렸다가 나눠서 갚는 장면이었는데 포주에게 돈을 바치는 것 같다는 추측까지 나오는 걸 보니 설명이 부족했던 것 같다. 소위 말하면 일수 개념으로 빌린 돈을 보름에 한 번씩 갚는 장면인데 영화 상에서 그녀의 모습이 너무 여유롭게만 보일 것 같아서 실제로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데 의미가 있는 장면이었다. 실제로는 갚아야 할 돈도 있고, 집세도 내야 하고, 그런 삶을 견디고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아까 말한 것처럼 소영은 유일하게 영화상에서 과거사가 밝혀진다. 그리고 그녀의 이름인 소영이 동두천에서 미군을 상대할 때 'So young'이라는 영어를 음역한 것이란 사실은 우연히 만난 옛 동료와의 대화에서 드러나는데 그녀의 과거사가 넋두리처럼 들리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전달되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 있었을 것 같다. 물론 다큐멘터리 촬영용 인터뷰를 빌미로 줄줄이 설명하는 장면도 있지만 구구절절 말할 수 없으니 극 사이사이에 잘 배치하는 게 관건이었다. 아마 결말부를 유심히 본 관객이라면 무연고자 납골당 신에서 소영의 본명인 양미숙의 생년월일이 1950년 6월 19일로 적혀 있다는 걸 확인했을 거다. 만약 그렇다면 그녀가 6.25 발발 일주일 전에 태어났다는 걸 알았을 거다. 실제로 중반부에 '3.8 따라지'라 말하기도 하고. 어쨌든 고아원을 거쳐 식모살이, 공순이, 동두천 양공주까지, 결국 한국 현대사에서 겪을 수 있는 비극을 죄다 경험한 한 여자의 일생으로 점철된다. 사회적인 시선으로 보자면 한국 현대사에서 여성의 위치를 대변하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한편으론 전쟁이 한 여자의 인생을 이렇게 짓밟아놓을 수도 있다는 걸 기저에 깔아놓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전쟁이란 남자들이 벌일 수 있는 최상위의 폭력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결국 여자들은 희생자가 된다. 사실 우리가 양공주라 부르는 여성들은 엄밀히 말하면 미군 위안부다. 국가적으로 성매매를 금지해놓고 기지촌에서만 허용한다는 건 사실상 국가가 미군에게 성매매 서비스를 제공한 셈이니까. 결과적으론 그녀들을 외화 벌이의 수단으로 여겼고. 그런데 사회적으로는 미군한테 다리 벌린 여자 취급을 당하며 손가락질만 당했다. 결국 그녀들에겐 자기 목소리를 낼 기회조차 없었던 거다.
몰염치하거나 무책임한 한국 남자들의 군상을 인지하게 되는 부분도 있다. 오프닝 시퀀스에서부터 직접적으로 묘사되는 코피노 문제도 그렇고. 영화에서 코피노 소년 민호의 아빠로 추정되는 의사도 결국 애만 싸질러 놓고 도망친 셈인데 그걸 보고 간호사가 한마디 하지 않나. "한국 남자들은 다 개새끼야." 물론 페미니스트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의도는 아니었지만 여성을 다루다 보면 결국 약자로서의 여성성을 드러내 보일 수밖에 없다. 현실이 이 모양이니까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다. 아무래도 남자의 시각으로 씌워놓은 관념들이 워낙 많다. 이를 테면 모성 같은 것? 그래서 자기 죽음 하나 어찌하지 못하는 남자들을 대신해 그들을 죽여주는 소영이 여성성의 화신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여성들이 감내해온 역사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는 걸 목격하게 만들어주는 과정이라 생각했다. 상대적으로 그녀가 꿋꿋이 살아가는 것 자체가 대단해 보이지 않나. 게다가 그녀가 성을 파는 건 살아남기 위해 폐지나 빈 병을 줍는 게 죽기보다 싫어서 선택한 방식일 뿐이다.
사실 죽음을 사주하는 남자 중 재우(전무송)도 비겁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사실상 제 손에 피를 묻히지 않으려고 여자의 여생을 망쳐버린 인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마치 자신의 평온한 죽음을 위해 여자의 삶을 산 제물처럼 바쳐버린 느낌이랄까. 맞다. 나약하고 비겁한 사람이다. 솔직히 영화적 설정으로 받아들이고 넘어가 주길 바라는 요량도 없지 않았다. 그런데 소영은 첫 번째 노인의 부탁을 들어준 뒤 재우에게 그런 사실을 감추지 않고 고백한다. 그분이 너무 원해서, 차라리 그렇게 사는 것보다 나을 거 같아서 했다고. 그만큼 소영에겐 공감능력이 있는 거다. 그리고 사람을 죽였으니 자신은 벌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그녀의 측은지심이 재우의 결심을 도운 것이라고 해석했다.
<죽여주는 여자>에서 가장 아이러니한 건 약자가 약자를 돕고, 노인이 노인을 죽인다는 사실이다. 결국 상처를 입어야만 상처를 이해할 수 있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는 현실을 반영한 느낌이랄까. <죽여주는 여자>를 만들 때 부담이 컸던 건 현실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면 이 영화가 인용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반대로 혹시라도 누군가에게 영향을 끼쳐서 이를 실행하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도 들고. 일종의 사회적 발언에 대한 책임감이 있었다. 결국 그런 걱정을 다잡게 만든 건 이런 상황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사회가 돼선 안 된다는 마음이었다. 이렇게 그들을 방치해선 안 되는 거니까. 그래서 이 영화를 통해 사회안전망에 관한 문제들이 공론화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자존감을 지키면서 잘 죽는다는 건 무엇일지, 이런 성찰도 공유하고 싶었고.
삶보다 죽음을 갈망하는 남자들의 입장에 타당성을 부여해야 한다는 고민이 있었을 거 같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죽음을 그리는 게 힘들었다. 어떻게 하면 개연성이 생길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타당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러다 내가 어떤 상황일 때 죽고 싶을지 고민해봤다. 첫 번째 남자 같은 경우엔 사는 게 창피하다고 하지 않나. 평소 댄디하게 차려 입고 부족함 없이 돈을 써가며 멋지게 살아왔던 사람이 한순간에 제 몸도 못 가누고 침대에 누워 여생을 보내야 된다면 정말 죽고 싶겠더라. 그리고 치매에 걸린 채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고 떠돌면서 남에게 폐를 끼칠 거라 생각하니 끔찍했다. 마지막으로 의지할 가족들이 모두 떠나갔을 때 무슨 낙으로 살아갈 것인지 막막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게 노인 자살을 부추기는 전형적인 유형 세 가지라는 걸 알게 됐다. 정확하게는 거기에 빈곤이 겹쳤을 때라더라.
소영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는 세 노인 중 두 명은 실내에서 죽지만 한 명은 산에 올라가 벼랑으로 떠밀려서 죽음을 맞이한다. 목격자가 발생할 수 있는 산에 올라가서 자살을 위장한다는 건 합리적인 선택과는 거리가 먼 발상처럼 보이는데, 굳이 산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원래 시나리오에는 소영이 도훈한테 어떻게 죽으면 고통이 덜할지 물어보는 장면이 있었다. 그리고 떨어져 죽으면 가장 짧게 고통을 느낄 거 같다는 결론에 다다르는데 그 장면을 다 걷어냈다. 어떤 의미에선 산에서 죽는 게 낭만적이라고도 생각했다. 아무도 찾지 않는 집에서 생을 마감하면 비참할 거 같고. 덕분에 내 영화 특유의 이상한 농담도 넣게 됐는데 이를테면 산으로 올라가면서 "야, 힘들어 죽겠다. 잠깐만 쉬자"라고 하는 대사 같은 것. 죽으려고 올라가는데 힘들어 죽겠다니, 웃기지 않나. 결국 그런 게 사는 것 아닐까 싶기도 하고.
어쩌면 공간성을 다양하게 고려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추측했다. 그런 바도 있다. 방, 산, 호텔, 이렇게 다양한 장소들을 확보하면 단조로움을 피할 수 있으니까. 게다가 주로 도심을 배경으로 둔 영화라 한 번쯤은 확 트인 곳에서 한 템포를 쉬어가는 것도 좋을 거 같았다.
영화적 배경이 가을에서 겨울로 바뀌는데 촬영시기와 영화 속 풍경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인상이었다. 어쩌다 보니 우연과 필연이 잘 겹쳐졌다. 원래 가을에 찍어야 할 영화라고 생각하긴 했다. 늦여름에서 시작해 가을로 물들어가는 남산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다행히도 그 시기에 맞게 투자가 완료됐고, 그때 빨리 촬영을 끝내야만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출품할 수 있는 스케줄이었기 때문에 부랴부랴 촬영에 들어갔다. 다행히도 잘 맞아떨어졌지.
영화의 배경이 되는 종로는 실제 박카스 할머니들의 터인데 장충단이나 남산 산책로는 의외의 선택지처럼 보였다. 실제로 그곳에서도 그런 성매매가 이뤄지는 걸까? 그렇진 않다. 다만 가끔 남산을 산책하다 보면 거기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이 한국의 발전을 대변하는 신기루처럼 보였다. 그래서 꼭 그 장소를 넣고 싶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인근의 장충단 공원으로 무대를 옮긴 거다. 남산의 한적함과 여유로움 속에서 소영이 홀로 쓸쓸히 배회하는 모습도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 풍경 안에서는 유령 같은 존재처럼 보이니까.
영화상에서 경쾌하면서도 쓸쓸한 선율의 연주음악이 몇 차례 들려지는데 장영규 음악감독에게 물어보니 공간성과 오래된 정서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하더라. 장영규 감독과는 개인적으로 오랜 친분이 있다. <정사>와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의 음악을 함께 작업하기도 했고, 일단 그냥 맡겨도 될 만큼 신뢰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런데 앞선 두 작품과 달리 <죽여주는 여자>에선 명확히 떠오르는 음악이 없었다. 그래서 편집본을 보여주면서 떠오르는 걸 얘기해달라고 하니까 오래된 이탈리아 영화 같은 느낌이 떠올랐다고, 그런데 약간 뽕끼가 있어야겠다고 하더라. 그리고 그가 보낸 샘플 중에서 두 가지 음악을 골랐다.
촬영 면에서 핸드헬드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카메라를 단 한번도 흔들지 않더라. 흔들 수 없는 영화였다. 3D 영화 제작 지원금으로 만든 영화였으니까.
3D 영화 제작 지원금을 받아서 제작했다면 두 대의 카메라를 리그(Rig)로 연결한 3D촬영 방식으로 영화를 찍었단 말인가? 맞다. '카파(KAFA)'에서 마련한 3D 영화발전기금을 지원 받은 세 번째 영화다. 김태용 감독과 류승완 감독이 참여한 옴니버스 영화 <신촌좀비만화>가 첫 지원작이었고, <죽여주는 여자>는 <방 안의 코끼리>에 이은 세 번째 지원작이다.
아무래도 시행착오가 있었을 것 같은데. 카메라를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없다 보니 카메라가 한번 이동하는 데에만 20분씩 소모됐다. 카메라가 일반적인 촬영 현장에서 사용하는 것보다 3배는 크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러니까 두 사람이 산에 끌고 올라가야 하는 건데 산에 올라갈 땐 정말 쉽지 않았다. 게다가 좁은 방 안에서 촬영할 땐 카메라가 너무 크다 보니 화각을 확보하기도 어려웠다. 평소 촬영 현장보다 스태프 수도 15% 가까이 늘었고, 촬영 시간도 더 많이 필요했고 3D 영상 컨버팅부터 색보정 작업, CG 작업 등의 후반작업도 더 복잡했다. 난제가 많았다.
트랜스젠더인 티나 역에 진짜 트랜스젠더를 섭외했다. 일단 아마추어 배우를 쓰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여자가 그 역할을 맡아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디션을 보니 남자배우들은 다들 클리셰 같은 연기를 하더라. 마치 <개그콘서트>에 나오던 황마담처럼 호들갑스럽고 과장된 느낌으로. 그래서 결국 수소문 끝에 티나를 찾았다. 처음으로 연기한다지만 30년 가까이 무대 생활을 많이 한 덕분인지 끼가 상당했고, 그래서 선택했다.
윤여정 씨와는 <여배우들>, <뒷담화:감독이 미쳤어요>에 이어 세 번째 작업이지만 극영화로 만난 건 처음이다. 지난 두 작품에선 항상 윤여정으로 나왔지만 처음으로 극 안에서 역할을 준 작품인데 특별히 다를 건 없었다. 윤여정이라는 배우가 양미숙이란 이름으로 불리지만 윤여정으로 연기해주면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처음부터 윤여정 씨를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썼다고 했는데, 그만큼 윤여정이라는 배우의 존재감이 영화에 영향을 미쳤다는 의미로 들린다. 사실 어떤 소재를 떠올리고 어느 배우랑 해야겠다고 생각한 뒤 시나리오를 쓴 건 처음이다. 그만큼 내겐 영감을 주는 부분이 많았다. 윤여정 씨가 평소에 냉소적인 농담을 잘하고 나 역시 그런 농담을 좋아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런 농담들이 시나리오에 반영됐는데 그 의미를 물어볼 필요 없이 알아서 다 소화해냈다. 이를 테면 "계산 도와드릴게요"라는 종업원의 말에 "계산해줄 것도 아니면서 도와주긴 뭘 도와줘?"라고 혼잣말을 하는 장면처럼 내가 의도한 뉘앙스를 잘 파악하고 소화해버린다.
어떤 의미에선 윤여정이라는 배우를 통해 익히 예상할 수 있는 바가 있었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사실 윤여정이라는 배우는 모든 역할을 윤여정스럽게 연기한다. 그러니까 자신이 연기하는 캐릭터에 따라 모든 것이 변하는 배우도 있지만 윤여정은 항상 윤여정으로서 소화하는 것 같다. 그런데 <죽여주는 여자>를 하면서 힘들어한다는 느낌도 받았다. 아무래도 나이가 들어가고, 사람을 죽여야 하는 인물을 연기하면서 그런 처지에 놓인 이들의 세계를 알게 되고 그런 감정에 이입하게 되면서 우울해하고 힘들어했다. 그 당시 윤여정 씨 어머니께서도 좀 편찮으셨던 것도 본인에겐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싶고.
구강성교 신 같은 경우는 배우 입장에서는 고역스러운 촬영이었을 것 같다. 원래 그 장면에서 등장하는 벌거벗은 남자는 시나리오상에서 하의만 벗은 상태로 묘사했는데 막상 현장에서 보니 작위적인 느낌이었다. 그래서 현장에서 남자 배우에게 전신 탈의를 부탁했더니 흔쾌히 응해줬는데 윤여정 씨 입장에선 그런 남자가 눈 앞에 떡 하니 앉아있으니까 당혹스러워했다. 그래서 그 신을 촬영하면서 테이크를 다시 가겠다고 했을 때의 윤여정 씨는 지금까지 봤던 모습 중에 가장 화가 나 보이는 느낌이었다.
실제로 그 장면에서의 표정을 보면 정말 질색하는 표정이 현실감 있게 와 닿는데 그게 단순히 연기적인 표현만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주사를 놓을 때 주사기에 공기를 빼는 디테일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한 테이크를 다시 간 뒤, 주사를 놓은 뒤 서비스를 할 때 살짝 위를 올려다봤으면 좋겠다고 다시 한 테이크를 가겠다고 했다가 지금까지 들었던 윤여정 씨의 음성 가운데 가장 강렬한 소리를 들었다. "왜 이걸 다시 해야 하는데!"하면서 비명을 지르는데 정말 이를 가는 느낌이었다. 그만큼 잔뜩 독기가 올라 있는 상황이라 정말 실제처럼 느껴지는 연기가 나온 것 같다. 개인적으론 정말 미안했지만 결과적으로 감독으로선 '와, 이거 건졌다'라고 생각했다.(웃음)
그런데 소영이 남자에게 놓는 그 주사의 정체는 대체 뭔가? 주사기로 성기의 정맥에 주사를 놔서 발기하게 만드는, 일종의 발기제 같은 건데 할아버지들이 실제로 맞는 거라더라. 실제로 남자 배우의 성기에 붕대를 감아놓고 주사를 가져다 대는 부분에 십자가를 그려놓기도 했다.
영화 속에서 자살을 꿈꾸는 사람은 다 남자다. 반대로 소영은 마지막까지 살아서 여생을 마치고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까지 보여주는데 상대적으로 죽음을 갈구하는 남성들에 비해 더 강인해 보이는 인상이다. 실제로 남편이 죽은 여자들보다 부인이 죽은 남자들의 삶이 더 빨리 무너지고 더 일찍 생을 마감한다더라. 아무래도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공감대가 크고 연대의식이 있어서 함께 모여 생활하는데 능하지만 남자들은 자기 부인이 아니면 잘 연대하지도 못하고 상대적으로 약한 존재가 된다. 생리학적으로도 여자들이 더 오래 산다. 평균 수명도 더 길고.
결말부에 등장하는 죽은 소영의 얼굴에선 종교적인 평온함과 성스러움이 느껴지는 것도 같다. 그렇게 얘기하는 분이 많더라. 굉장히 성스럽다고. 그녀가 일종의 천사 같고, 성녀 같고, 보살 같다고. 실제로 중국에서 관음보살은 자비의 신이기도 하지만 창녀들의 신이기도 하다. 그런데 조계사에서 소영이 합장할 때 의도한 게 아니지만 그 뒤로 관음상 벽화가 등장한다. 그리고 홍콩영화제에서 <죽여주는 여자>가 상영될 때 중국어로 변환된 제목이 우리말로 <선녀관음>이었다. 그들이 소영은 관음보살 같은 여자라고 해석했기 때문이다.
결말부의 교도소 신 이전에 이태원에서 소영이 연행되는 과정으로 영화를 끝냈다 해도 무리가 없는 느낌인데 그랬다면 영화에 대한 감상도 완전히 달라졌을 것 같다. 시나리오 초고에선 교도소 신이 없었다. 이태원에서 연행되면서 영화가 끝나는 거였지. 그런데 너무 쿨해 보이더라. 남루하게 살던 사람의 인생을 너무 쿨하게 다루는 거 같았고, 내 취향에 맞지 않았다. 그래서 사족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녀의 유골이 무연고 납골당에 안치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지인들과 함께 살아왔지만 원래부터 무연고자였고, 마지막에도 결국 혼자 남게 됐으니까. 그렇게 홀로 밥을 깨작깨작 먹어가며 여생을 살아가다 자연사한 뒤, 세상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죽음만을 남긴 그녀가 태어나 살아간다는 건 어떤 의미가 있는 건지, 그녀의 죽음을 통해 문득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들고 싶었다.
결국 죽음을 선택한다는 개인의 자유와 죽음을 방조한다는 사회적 윤리 사이에서 물음이 남는 셈인데, 어쩌면 답이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듯한 물음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오래 사는 것이 중요했지만 이젠 남은 인생을 어떻게 잘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시대가 됐다. 서구에서는 일찌감치 자신의 죽음을 어떻게 선택할지에 대한 논의도 시작됐다. 장례식 방식을 넘어서 안락사에 대한 논의까지. 결국 사회가 성숙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죽음도 논의할 수 있는 문제가 되는데 우리는 아직도 죽음에 대한 논의를 터부시 한다. 미리 수의 해놓는 것은 물론 영정사진 찍어놓는 것마저 불길한 짓으로 취급하고. 결국 의식 있는 사람들이 미리 자신의 죽음을 대비하면서 후손들의 고민을 덜어줄 필요가 있는 게 아닐까. 물론 어려운 문제다. 죽음 자체는 너무 두려운 일이니까. 사형수들도 사형장으로 가는 길에 신발을 슬쩍 벗는다고 하더라. 신발을 다시 신을 시간을 벌기 위해서, 몇 초라도 더 살아보려고, 그런 게 생인가 보더라.
고인이 된 백남기 씨가 물대포에 맞아서 의식을 잃었다는 뉴스 장면이 등장하고, 경찰 조사를 피해 조계사에 머물던 민주노총 위원장 한상균 씨에 관한 플래카드와 경찰들도 영화상에서 목격된다. 시대가 하 수상하다 보니 심상찮게 보이는 측면이 있다. 일단 조계사에서 촬영이 가능한 날짜는 단 하루였는데 그날 경찰들이 대치하는 상황이었고, 우리도 촬영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냥 그대로 영화에서 보일 수밖에 없었다. 백남기 씨 뉴스도 영화의 배경이 되는 날짜가 2015년 11월경이었고, 그 당시 가장 이슈가 된 뉴스를 찾아보니 그 사건이었다. 그래서 그 당시 분위기를 가장 명확하게 대변할 수 있는 사건을 선택해서 보여주고 싶었다. 영화라는 것이 기록이 될 수도 있고, 타임캡슐이 될 수도 있으니까. 다만 그런 상황에 대한 해석은 각자의 몫인데, 어쨌든 이게 2015년 11월 14일에 벌어진 일이었다는 현실감을 주고 싶었다.
김지운 감독이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독립운동단체인 의열단을 다룬 영화를 연출한다고 했을 때 조금은 의아했고, 한편으론 궁금했다. 솔직히 말하면 김지운 감독이 아픈 역사를 헤집으며 뜨거운 공분을 부를 것 같진 않았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냉정하게 마음을 식히고 바라볼 수만은 없을 듯한 시대를 관통한다는 점에서 김지운 감독의 작품 가운데 이례적인 한 점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문득 궁금했다. 그리고 <밀정>이 공개됐다. 아마 <밀정>은 김지운 감독의 영화 가운데 가장 뜨거운 온도로 자신을 내던지는 인물들이 등장하는 작품일 것이다. 어쩌면 <밀정>은 김지운 감독의 영화 가운데 가장 다단하고 모호한 심리를 품은 캐릭터가 등장하는 작품일 것이다. 섞이지 않는 냉기와 온기가 등을 맞대고 한 몸을 이룬 듯한, <밀정>은 그런 영화다.
개봉 첫 주에만 2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압도적인 흥행세인데 아무래도 대자본이 투자된 작품이니 흥행에 대한 부담이 없지 않았을 것 같다. 뭔가를 과시하고자 영화를 만드는 게 아닌 이상, 투자된 자본을 회수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든 감독이 된다는 건 중요하다. 물론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겠다는 욕심으로 영화를 만든 것도 아니지만 차기작을 연출할 기회를 이어나갈 수 있을 정도로 최소한의 상업적 성과는 거두길 바란다. 상업영화 감독으로서의 자격을 인정 받기 위해선 대중과의 접점을 계속 증명해야 하니까. 그리고 촬영 현장에서 스태프나 배우들의 헌신과 열정을 봐온 입장에선 그들에게도 성과로 여겨질 만한 결과를 책임지는 감독이 되고 싶다. 결국 상업적인 성공이 그들을 위한 보상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 어느 정도 흥행을 바라는 마음이 생긴다.
3년 전의 인터뷰에서 "항상 지금의 모순이나 괴로움에 대한 반대급부가 차기작에 대한 욕망으로 연결된다"라고 말했다. <밀정> 또한 그런 과정을 거쳐 나온 또 하나의 결과물일 텐데. 전작의 모순과 욕망을 해결하는 방식으로 현재의 작품을 만들고 있지만 언제나 현재의 작품에서도 여전히 진전되지 못한 부분들이 보인다. 다만 영화에 대해 설명하다 보면 해명의 강도가 높아지니 해당 작품이 완전한 것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내게는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보이고, 아직도 도달해야 할 목표가 있다는 걸 느끼게 만드는 작품이다. 항상 아직 대표작이 없다고 말해왔는데 <밀정> 역시 대표작은 아닌 것 같다.
스스로에 대한 평가가 너무 박한 거 아닌가?(웃음) 쉽게 얘기해서 내 역량이 내 눈높이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것 같다. 그 차이를 보는 게 생각보다 괴롭다. 그래서 내 영화를 편하게 보기도 힘들다. 결국 내 역량과 내 눈높이의 차이를 최대한 좁혀나가고 일치시켜서 내 영화를 남의 영화처럼 편하게 감상할 수 있는 경지까지만 갈 수 있다면 영화를 만든 의의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밀정>의 장르가 '콜드 누아르'라고 직접 언급했는데 '누아르'라는 장르명을 '콜드'라는 단어로 수식하는 의도가 보다 중요해 보인다. 일단 비정하고 냉혹한 스파이들의 세계를 바탕에 둔 영화라는 점에서 '콜드'라는 단어의 온도가 적절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누아르 세계관 특유의 명암에는 뜨거움과 차가움이 공존하고 있다고 보는데 <밀정>은 보다 차갑게 느껴지는 누아르이길 바랬다. 그래서 의상을 비롯한 전반적인 미장센에 블랙이나 블루 톤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차가운 정서를 담아내고 싶었다. 인물의 감정을 최대한 감추거나 눌렀기 때문에 영화의 감정 또한 차갑게 느껴질 거라 생각한다. 다만 의열단이라는 역사적 실체를 서사에 옮기는 과정에서 필연적인 뜨거움이 발생하더라.
<밀정>은 <악마를 보았다> 이후로 각본가가 아닌 각색가로 이름을 올린 두 번째 작품이다. 시나리오를 읽고 영화화를 결심한 까닭이 궁금하다. 처음 시나리오를 봤을 땐 의열단을 중심으로 읽게 됐다. 그래서 <암살>에 가까운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조금 차이가 있다면 스파이물의 느낌이 보다 강한 정도? 그런데 두 번째로 읽었을 때 이정출(송강호)이 크게 들어왔다. 그래서 <암살>의 동어반복이 아닌, 새로운 영화를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이정출에게서 어떤 가능성을 발견했나? 이정출은 조선인 출신 일본 경찰이라는, 이미 정체성부터 복잡한 인물이다. 그 시대의 모순이 집약된 인물이라 느꼈고, 이정출을 이야기하는 건 결국 그 시대를 이야기하는 것이란 확신이 생겼다. 사실 이정출의 심경 변화가 개연성이 없다는 평을 보기도 했는데 생각해 보면 그 인물 자체가 시대적 모순 그 자체이기 때문에 그렇게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회색주의자 특유의 모호함이 개연성 없게 보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내 입장에선 대사나 상황을 비롯한 플롯으로 이정출의 선택에 대한 명확한 근거를 제시했다고 생각한다.
'황옥 경부 폭탄사건'이라는 실제 역사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하지만 실존인물이 언급되거나 등장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팩션이라 할 수 있지만 허구라 해도 상관 없을 만한 이야기다. 의열단은 3.1 운동 이후인 1919년도에 창립됐고, 1920년 초반에는 가장 전위적인 활동을 펼쳤지만 중반부터 세력이 약화됐다. 일제가 무서워했던 단체였던 만큼 집중적으로 와해시켰기 때문이다. 그리고 <밀정>은 1923년도를 배경에 두고 있지만 정확한 시간 연대에 일치시켜 영화를 만들면 영화적 소재가 무력해질 수 있기 때문에 1920년대의 시대적 배경을 큰 덩어리 삼아 시간을 해체하고 재조합했다. 그래서 사실 각색 과정에서 "와해된 의열단을 재조직하는 걸 보면 정채산(이병헌)이 대단한 인물이다"라는 히가시(츠루미 신고)가의 대사가 있었는데 꼭 필요할 거 같진 않아서 삭제했다.
오프닝 시퀀스에서 이정출이 김장옥(박희순)에게 자수를 권유할 때 그가 공적을 쌓기 위해 회유한다기보단 진심을 다해 살아남으라고 호소하는 인상이라 이정출의 진짜 감정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진심인 거 같지만 그것이 김장옥의 편에 선 진심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래된 친구를 적으로 만나 눈 앞에서 자결하는 모습을 본 뒤 그의 인명부를 들여다 보는 이정출의 표정에선 복잡한 감정이 읽힌다. 그것만으로도 이정출의 감정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이 됐다고 생각했고, 거기서부터 이정출의 내면에 겹겹이 쌓인 층위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히가시를 통해서 김장옥과의 친구 관계가 환기되고, 의열단에 침투하기 위해 김우진(공유)에게 접근했는데 거기서도 김장옥 이야기가 나온다. 결국 이정출이 의열단을 돕게 되는 건 자신을 둘러싼 상황의 모순과 혼란 때문이기도 하지만 '마음의 빚'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회색주의자로서의 경계는 여전한 거다. 그러니까 생존에 대한 철학을 진심으로 피력하지만 결국 변절자의 회유일 수밖에 없는, 이중성에 갇히는 셈이다. 결국 윤리적인 관점에서 이정출을 보자면 그가 면죄부를 받을 만한 인물은 아닌 것 같다.
이정출은 결국 의열단의 조력자 노릇을 한다. 하지만 그가 김우진을 비롯한 의열단원처럼 조선의 독립을 간절히 바라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극 초반에 이정출은 김장옥에게 "너는 이 나라가 독립될 거 같냐?"고 묻는다. 그리고 극 말미에 김황섭(남문철)에게 "이 나라가 독립될 거 같소?"라고 묻는다. 결국 이정출은 끝까지 회색주의자로, 허무주의자로 남아있는 거다. 그는 조선의 독립을 도모하는 길을 선택한 게 아니다. 다만 자신의 감정을 변화시킨 사람과의 약속을 완수하는 것뿐이지. 어떤 경험을 통해 마음을 편하게 둘 수 있는 쪽을 선택했고, 어느 역사에 이름을 올릴지 결정한 거다. 그렇게 정채산의 말처럼 '마음이 움직이는 게 가장 무서운 것'이 된다. 결과적으로 이는 자신의 감정에 손상을 입힌 히가시에 대한 복수극이기도 하다. 그래서 폭탄을 터트리는 장면에서 제의적인 의미를 지닌 음악인 'Bolero'를 사용했다. 대의적인 임무를 수행한다기보단 스스로를 위해 축배를 드는 이정출의 심리를 음악으로서 설명해주는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우진을 비롯한 의열단원들의 단호한 신념이 두드러지는 것 같다. 덕분에 그들의 희생이 상대적으로 숭고해지는 인상이기도 하고. 사실 희망은 누구나 품을 수 있다. 하지만 나를 내던져서 희망을 찾고 세상을 전진하게 만들겠다는 생각은 아무나 할 수 없다. 나 자신부터 조국을 되찾겠다고 목숨을 던지고, 모진 고문을 견딜 자신이 있는지 모르겠더라. 결국 뒤늦게야 이 사람들이 굉장한 로맨티스트라는 걸 깨달았다. 자신들이 선택한 것에 스스로까지 내던질 수 있는 불나방인 거다. 그러니 결국 뜨거운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다는 걸 알게 됐다.
<밀정>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대목은 아무래도 이정출과 김우진과 정채산의 삼자대면 신이었다. 적을 아군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전략이란 게 진심을 바탕에 둔 호소라는 점은 어떤 의미로는 너무 뜻밖이라 허를 찔린 기분이었다. 정채산이 김우진과 이정출의 이야기를 몰래 귀담아 듣다가 이정출을 사람으로서 만나는 게 가장 좋은 전략이라 판단한 셈이다. 그리고 술은 남자들의 세계를 잇는 최선의 매개니까 자연스럽게 선택한 것이다. 그런 선택을 본 관객 입장에선 정채산이 인간적인 매력이 있는 존재로 느껴지지 않았을까. 결과적으로 내가 신뢰하는 배우들의 연기가 관객을 설득시킬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송강호와 이병헌의 카리스마와 그 사이에서 무너지지 않는 공유의 존재감이 삼위일체를 이루니 인물들의 관계 변화가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질 거라 생각했다.
동시에 긴장감이 폭발할 법한 상황에서 오히려 가장 극적인 유머가 발생한다는 점에서도 탁월하다. 처음으로 이정출을 의열단 쪽으로 기울게 만드는 신이란 점에서 굉장히 중요한 대목이라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굉장히 과감한 연출 방식을 선택했다고 평할 수 있다. 그 신의 목표는 세 사람 사이에 형성된 냉기가 급속도로 해빙되고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물론 그것이 고도의 수싸움을 펼치는 장면이란 점을 이해시키고 그런 관계를 설득력 있게 납득시켜야 하지만 논리적인 방식으로 보단 직관적으로 느껴질 수 있도록 아이러니한 웃음을 자아낼 수 있는 상황을 연출하고 세 사람이 자리한 그 공간이 따뜻하게 느껴지길 바랐다.
이병헌은 특별출연으로 이름을 올렸음에도 두 주연배우 못지 않은 존재감을 드러낸다. 사실 <밀정>에서 마지막에 캐스팅된 배우가 이병헌이었다. 심지어 상해에서 촬영을 시작했을 때까지도 캐스팅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웃음) 불안하지 않았나? 굉장히 불안했다. 그래도 믿음이 있어서 기다렸는데 결국 그 믿음이 중요했던 것 같다. 정채산도 결국 이정출을 믿어서 성공하지 않았나.(웃음) 나 역시 믿고 기다린 덕분에 그 효력을 봤다.
하시모토(엄태구)가 처음 등장해 일본어로 말을 할 땐 당연히 일본인 경찰일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정출과 조선말로 대사를 하는 걸 보고 창씨개명을 한 조선인인지 궁금해졌다. 사실 영화상에서 이 부분을 명확히 설명해주지 않는다. 사실 편집 과정에서 히가시와 하시모토의 대화 장면이 하나 삭제됐다. 히가시가 하시모토에게 이정출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으면서 "아, 자네도 조선인 출신이지?"라고 긁으니까 하시모토가 자신의 출신성분을 부정하는 답변을 하는 장면이었다. 자신이 의주 출신이지만 어렸을 때부터 일본에서 살았고, 자신은 완벽한 일본인이라는 식으로. 아무래도 그 장면이 삭제돼서 그의 출신 성분을 명확히 대변하는 신이 사라진 셈이다.
하시모토의 출신 성분을 아는 게 꼭 중요한 건 아니다. 다만 그가 조선인 출신의 일본 경찰이라면 상대적으로 동일한 신분인 이정출이 친일파로서 정체성조차 얼마나 얕은가를 대비적으로 드러내는 역할로 이해할 수도 있겠다. 그래서 하시모토를 조선인 출신 일본경찰로 설정했다. 같은 조선인 출신 일본경찰임에도 성질이 다르고, 세대가 다르고, 의지와 신념이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게 재미있을 거라 생각했다. 이런 차이가 이정출을 밀어내는 동력으로 작동되기도 한다.
하시모토 역을 맡은 배우 엄태구는 <밀정>의 발견이라 해도 좋을 것 같다. 주로 과묵한 역할을 맡아온 배우였는데 <밀정>에서의 하시모토는 대사량이 상당한 캐릭터다. 그래서 그를 캐스팅한 배경이 궁금했다. 사실 엄태구는 내가 생각했던 하시모토의 이미지에 가까운 배우가 아니었다. 하지만 오디션에서 봤을 때 나를 전율시키는 에너지가 있었다.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부분이 있었지만 그래서 더 매력적이었다. 온전한 기운 덩어리처럼 느껴졌다고 할까. 그런 기운이 하시모토에게 더 적합해 보여서 결국 엄태구를 선택했다. 그런데 놀라울 정도의 집중력이 있더라. 한번은 촬영장 스튜디오 구석에서 감정에 몰입하면서 의식을 치르듯이 혼자 대사를 하는 모습을 멀리서 본 적이 있는데 진짜 배우를 만난 기분이었다.
엄태구를 만나기 이전에 구상했던 하시모토는 어떤 이미지였을까? 건장한 육체와 말끔한 인상을 가진 인물을 떠올렸는데 기존 배우로 예를 들자면 주지훈 같은 이미지였다. 상대적으로 엄태구는 마르고 빈약한 느낌이지만 그래서 오히려 기이한 인상으로 다가왔다. 예상하기 힘든 악질의 느낌이랄까. 그러다 보니 내가 연상했던 기존의 이미지는 너무 전형적인 것 아니었나 싶기도 하더라.
<밀정>은 배우 송강호와 함께한 네 번째 영화다. 연출 데뷔작인 <조용한 가족>과 두 번째 연출작인 <반칙왕>에 출연했다는 점에서 감독 김지운과 배우 송강호는 함께 성장한 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아무래도 한국영화가 활발해질 무렵에 함께 머리가 컸으니까. 사실 내가 연출한 전작들을 자주 보진 않지만 간혹 볼 기회가 생기면 저럴 때도 있었구나 싶긴 하다. 아무래도 그때는 눈높이와 역량의 차이가 더욱 컸기 때문에 훨씬 더 절망적이었을 거다.(웃음)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송강호라는 배우는 일관성 있는 수준을 유지하면서도 항상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한결 같다. 프로로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지민이 연기한 연계순은 지금까지의 필모그래피 안에서 제 역량을 가장 잘 드러낸 여자 캐릭터란 점에서 특별해 보인다. <밀정>은 기본적으로 두 남자의 이야기이고, 어쩌면 한 남자의 이야기일 것이다. 그래서 연계순은 두 남자의 감정을 증폭시키는 역할로 봤다. 처음에는 신인 배우 정도가 적당하다고 생각했는데 시나리오가 확장되면서 신뢰감을 줄만한 배우가 필요했다. 개인적으로 <밀정>에서 압권이라 여기는 부분은 연계순의 기차역 액션 신이다. 기차역을 가득 채운 사람들이 연계순을 중심으로 흩어지는 모습에서 고립감과 외로움이 전해지지만 흔들리지 않는 위엄이 느껴지는 동시에 맵시도 산다. 결국 그 장면에서의 연계순이 의열단 그 자체를 보여준다. 내겐 더없이 만족스러운 장면이다.
한편으로는 여성 캐릭터로서 대상화되고 있다는 인상이 남기도 했다. 사실 뒤늦게 반성한 지점이 있다. 기차에서 하시모토를 발견한 연계순이 옷을 풀어헤쳐 가슴골을 드러내고 담배를 피우는 건 약국에서 하시모토를 마주쳤을 때의 단정한 차림새와 정반대의 분위기를 연출해 신분을 위장하기 위해서다. 일종의 장르적 클리셰인데 뒤늦게 그것이 여성 캐릭터에 대한 고정관념에 갇힌 설정이라 느껴졌다. 그런 의미에서 너무 성찰 없는 인용이었을지도 모른다고 반성하게 됐다.
<밀정>의 의열단 단원들은 자기 신념을 뜨겁게 발화하고 웅변하는 인물들이다. 사실 지금까지 연출한 작품들의 인물들은 명확한 신념을 따르는 인물들이라기보단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행동 방침을 정하는 인물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밀정>은 김지운이라는 감독의 영화 안에서 새로운 태도를 발견하게 된 작품이기도 했다. 사실 <밀정> 이전까지 내가 영화를 대하던 태도는 '세상이 이렇게 흉측하고 힘들고 어두운데 뭐가 저렇게 밝고 즐겁니?'라는 식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현실이 영화보다 더 어둡고, 끔찍하다 보니 영화에서까지 실패한 역사를 말하고 다루고 싶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다루는 인물의 태도까지 크게 바뀌는 건 아니지만 실패한 역사라 해도 그걸 딛고 앞으로 전진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다. <밀정>과 관련은 없지만 세월호 참사 같은 일을 겪게 되는 현실이니까. 어떤 식으로든 전진해 왔다고 믿었던 세대로서 처음으로 시대가 퇴보한다는 기분을 느꼈을 때의 충격이 내게도 있었던 것 같다.
클로즈업 신이 상당히 많다. 인물들의 얼굴과 표정이 <밀정>의 주요한 미장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아무래도 표정의 서사로 읽혀지길 바란 영화였던 만큼 인물을 타이트하게 촬영한 신들이 많다. 인물의 표정을 통해 극의 무드가 전달되지 않으면 서사도 무너질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현장에서 작은 모니터로 볼 때는 완급조절이 잘 되고 있는 건지 판단하기 힘들어서 후반작업으로 사이즈를 조절할 수 있도록 카메라를 좀 더 뒤로 빼서 거리를 두고 찍기도 했다. 그래서 편집과정에서 컷의 사이즈를 조절해 표정을 좀 더 채운 부분들도 있다. 다행히도 배우들의 표정이 좋아서 의도를 잘 살릴 수 있었던 것 같다.
일본경찰에 의해 의열단원들이 하나씩 척살당하는 신이야말로 <밀정>에서 가장 뜨겁게 느껴질 수 있는 부분인데 그 순간에 루이 암스트롱의 넘버 'When You're Smiling'이 흐르면서 찬물을 쫙 끼얹듯 감정의 온도를 확 가라앉히는 느낌이었다. 극후반부의 'Bolero' 역시 극적인 상황과 역설적인 감상을 준다는 점에서 유사한 장치적 역할을 하는 느낌이고. 일종의 온도 조절기 같은 역할이었다. 사실 영화를 만들 때마다 사진과 음악에서 많은 도움을 받는 편인데 루이 암스트롱의 넘버 'When You're Smiling'을 비롯해 <밀정>에서 등장하는 음악들은 모두 영화를 제작하면서 수집했던 플레이리스트에서 가져온 것들이다. 그리고 모두 다 비슷한 시기에 유행한 음악들이었다. 슬라브 무곡은 1900년도에 유행하던 음악이었고, 'Bolero'도 1920년대 초에 발표됐고, 스윙재즈도 1920년대 중후반에 등장해 1930년대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감미로운 스윙재즈 넘버가 동시대 지구 반대편에서 식민지배를 받는 이들에겐 향유할 수 없는 박탈감으로 다가오지 않았을까. 그래서 의열단이 척살당하는 신에 루이 암스트롱의 넘버를 얹었을 때 비극성이 더욱 명징해진다고 느껴졌다. 이정출의 고문 신에서부터 넘버가 흐르기 시작해 경성에 잠입한 의열단이 소탕되는 과정으로 이어지는데 만약 그 넘버가 없었다면 감정이 넘쳐서 신파처럼 느껴질 수도 있었을 거다.
대부분의 스코어 넘버들은 짧고 간결한 음을 초시계처럼 빠르고 일정하게 반복함으로써 서서히 긴장감을 조성한다. 반면 컷의 호흡에는 대체로 여유가 있어서 컷 전환의 속도는 스코어에 비해 상대적으로 느긋한 인상이라 역설적이란 느낌을 받았다. 컷의 긴박감보단 공기의 긴박감을 통해 감상을 조여보고 싶었다. 그래서 배우들에게도 '스몰 액팅'을 요구했는데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도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지도록 다른 속셈을 숨기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표정을 주문했다. 그리고 마주앉은 상대방이 모르게 타인의 시선을 포착하고 은밀하게 눈빛을 주고 받는 시선 처리 등을 보여주기 위해 컷의 호흡을 최대한 안배했다. 대신 음악을 통해 긴장감을 올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소음에 가까운 사운드를 내는 성질의 악기들을 활용한, 인더스트리얼한 음악을 만들고자 했다. 외부에서 유입된 소음이 오히려 집중력을 높여주듯이, 그런 성질의 음악이 영화적 상황을 보다 몰입하도록 만들 테니까.
타이틀 시퀀스와 극의 최후반부를 제외하면 페이드 아웃을 통해 신을 전환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특히 디졸브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는데 신을 전환할 때조차 프레임 공백을 없애고자 애쓴 느낌마저 든다. 전통적으로 디졸브를 활용할 땐 이전 신의 긴장감을 해소하고 다음 신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밀정>에서는 앞선 신의 긴장감을 다음 신까지 끌고 가고 싶었다. 그래서 옵티컬 디졸브보다 CG 디졸브를 많이 썼다. 예를 들면 김우진의 얼굴에서 정채산의 뒷모습으로 카메라가 패닝할 때 그 위로 이정출이 탄 기차 이미지가 밀고 들어오고, 이정출이 하시모토와 하일수가 나간 방 안의 창문으로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상념에 잠길 때 그 뒤로 자동차 불빛이 쭉 들어온다. 이게 다 CG로 작업한 디졸브인데 이렇게 그림들이 매끄럽게 이어지면서 긴장감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 고전적인 느낌을 보다 세련된 방식으로 구현했다는 성취감도 있었다.
열차 신은 <밀정>에서 최상의 스펙터클과 최고조의 긴장감을 제공하는 신이다. 그런데 원래 시나리오에선 없는 장면이었다고 들었다. 각색 전 시나리오에서의 열차는 상해에서 경성으로 폭탄을 싣고 가는 운송수단에 불과하다. 의열단원들은 압록강을 건넌 뒤 열차에서 내려 기생으로 변장해 인력거로 옮겨 탄다. 신의주의 부유층들이 기생들을 불러 연회를 열곤 해서 기생으로 변장하면 검문을 통과하는 게 용이했다고 한다. 실제로 독립단체가 국내에 잠입할 때 활용한 방식이었다. 그런데 막상 영화를 보는 입장에서 생각해 보니 그 지점에서 영화적 긴장감이 뚝 끊어지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열차를 운송수단 이상의 극적인 무대로 만들고 싶었고 각색을 통해 지금의 열차 신을 만들었다.
비좁은 열차의 제한된 동선을 통해 극적인 긴장감을 극대화시키는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비좁은 공간에서 전개되는 신을 설계하는 걸 좋아한다. 내가 잘하는 부분 중 하나라 생각하기도 하고. 그래서 인물의 동선이 제한되는 열차에 모든 상황을 때려 부어서 두 인물의 감정선을 극대화시켰다. 김우진과 이정출을 부조리한 상황으로 끊임없이 몰아붙이고 예상치 못한 결과로 내달리는 열차가 예측하기 힘든 시대성을 대변하는 공간이란 인상을 주고 싶었다. 사실상 영화의 하이라이트도, 주제도 다 거기 있다. 그 모든 것을 부어 넣고 가열시켜서 끓는 점이 됐을 때 튀어나오는 인물들의 형태를 통해 시대에 대한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실제로 열차 신으로 촬영된 분량은 40여분이지만 신의 절반 정도를 편집해 지금의 분량이 남았다.
그렇다면 감독판을 추가 개봉해도 좋겠다. 그러기엔 편집할 시간이 없다. 너무 오랫동안 <인랑>을 미뤄왔는데 이젠 정말 빨리 해야만 한다.
오래 전부터 연출작으로 언급됐던 <인랑>이 드디어 <밀정>의 차기작으로 언급되고 있다. 사실 원작이 있는 작품을 영화화하는 건 처음일 텐데 워낙 유명한 원작이니 부담될 것 같다. 그래서인지 너무 안 풀려서 힘들다.(웃음) <인랑>은 일본의 '전공투' 세대가 공유한 허무주의적인 정서로 점철된 세계관이라 원작의 무드를 최대한 살려서 영화를 만들 것인지, 아니면 원작을 대변하는 주요한 요소들만 남기고 완전히 뒤집어볼까 고민 중이다.
<인랑>에서 보존하고자 하는 주요한 요소는 무엇인가. 강화복의 형태나 인랑이라는 비밀 스파이들의 암투 그리고 짐승처럼 살아갈 수밖에 없는 시대성 같은 것이다. 정말 뻔뻔하게 이것만 가지고 가볼까라는 고민도 있다. 사실 너무 오래 끌어온 프로젝트인데 이젠 정말 해야 한다. 지금 생각으론 내년 3~4월쯤 크랭크인에 들어갈 것 같다.
<덕혜옹주>라는 제목과 허진호라는 이름을 한 줄에 넣고 보니 어딘가 낯설다는 기분이 느껴졌다. 멜로라는 장르의 브랜드처럼 여겨지던 그가 롤타이틀 영화를, 실화를 바탕에 둔 시대극을, 그리고 멜로가 아닌 영화를 만들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렇다. <덕혜옹주>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허진호 감독에게 '처음'이라는 단어를 매단 물음표를 던지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그리고 그는 긴 시절의 고민을 건너온 영화에 복잡하게 얽혀 있던 사연을 조심스럽게 풀어냈다.
<행복>(2007) 이후로 중국에서 <호우시절>(2009)과 <위험한 관계>(2012)을 만든 이후 다시 국내로 돌아와 4년 만에 <덕혜옹주>를 발표했다. 오랜만에 한국영화를 촬영했다 해도 과언이 아닌데 특별한 소회가 있었을까?
디지털로 찍은 건 <덕혜옹주>가 처음이다. 중국에서 <위험한 관계>를 촬영할 때만 해도 대작은 필름으로 찍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그 당시에도 디지털은 경험해보지 못했다. 현장에서 나름대로 적응하긴 했지만 확실히 낯설었다. 그리고 항상 현장은 낯설게 느껴진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오프닝 시퀀스에선 정통사극 톤인데, 타이틀 시퀀스 이후부터 일본을 배경으로 근대화된 이미지가 펼쳐지니 전후가 분리된 영화처럼 보인다. 사실 사극 톤에서 최대한 벗어나려 했는데 쉽지 않았다. 아무래도 공간성의 차이가 두드러지니 어쩔 수 없는 것 같기도 하고. 말투나, 복장도 그렇고.
솔직히 <덕혜옹주>라는 제목을 들었을 때 허진호라는 이름과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라 자꾸 감독 이름을 까먹게 되는 것 같았다. (웃음) 롤타이틀 영화는 처음인데 그만큼 인물 자체에 중점을 둔 작품이 처음이란 말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덕혜옹주라는 인물에게 끌린 이유가 궁금하다. 7~8년 전쯤에 TV에서 덕혜옹주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봤다. 그때 마음이 움직였다. 영국 황실에서 공주가 태어나면 전세계가 주목하듯이 그 당시 덕혜옹주를 둘러싼 분위기도 그랬다. 덕혜옹주는 고종이 환갑에 낳은 딸이라 어렸을 때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나라를 빼앗겼을 때인지라 조선의 희망이고, 보물처럼 여겨지는 분위기였다. 그 시절의 아이돌 같은 존재였다고 할까. 마치 아이돌 스타에 관한 사생활을 다룬 기사가 나오듯이 덕혜옹주의 일거수일투족에 관한 기사도 많이 실렸다고 한다. 굉장히 암울한 시대였지만 큰 사랑을 받고 자란 만큼 쾌활하고 밝은 성격이었다는데 아버지인 고종이 독살을 당했다는 설을 믿으며 충격을 받았고, 열네 살의 나이에 일본으로 끌려간 뒤로 급격하게 어두워졌다고 한다. 결국 타국에서 어머니의 죽음을 전해 듣고, 강제로 결혼도 하고,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이혼당하고, 딸까지 자살하고, 정말 비극적인 삶을 살았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영화화를 생각한 건 아니었다.
그렇다면 결정적인 이유는? 다큐멘터리에서 덕혜옹주가 37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오는 광경이 나왔는데 '아기씨'라 부르며 덕혜옹주를 마중하는 상궁들의 모습이 깊게 각인됐다. 당시 50대 중반에 다다르는 할머니가 된 상궁들이 과거 궁에서 입던 옷을 차려 입고 덕혜옹주에게 절을 하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움직였다.
그 장면이 특별했던 이유를 설명할 수 있을까? 아무래도 내가 다시 만난다는 것 자체를 좋아하는 거 같다. 나도 잘 몰랐는데 지금까지 만든 영화들을 보면 어떤 식으로든 결국 다시 만나거나 만나기 위해 찾아가는 과정이 등장한다. 결국 <덕혜옹주>를 통해 세월을 두고 다시 만나는 과정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 같다.
결국 영화를 만들기까지 굉장히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아무래도 제작비가 많이 들 수밖에 없는 영화였는데 영화화하기 힘든 소재라는 반대의견이 많았다. 그런데 후에 <덕혜옹주>라는 소설이 나와서 읽어봤더니 (김)장한이랑 복순이라는 캐릭터를 극화시켜서 픽션을 만들었더라. 그리고 덕혜옹주의 내면을 많이 투영했다. 그리고 베스트셀러가 됐는데 출판계에서도 이례적인 사건이라 했다. 아무래도 주류소설이 아니었으니까. 당시에 화제를 모은 <삼성을 생각한다>라는 책을 죽이기 위해 삼성에서 사재기를 했다는 루머까지 돌 정도였다. 어쨌든 소설이 인기를 얻는 것을 보고 이 정도까진 각색을 해도 되겠다고 판단했다.
영화화를 반대하는 의견은 대체로 어떤 것이었을까? 아무래도 덕혜옹주가 잘 알려진 위인도 아니고, 긍정적인 가치를 지닌 존재로 여겨질 만한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결국 우울한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는데다가 여자 주인공이라 투자자들에게 강한 물음표가 생겼던 거 같고, 그런 물음표를 지우는 게 쉽진 않았다.
연출작 가운데 첫 번째 12세 관람가 영화다. 그런가? <8월의 크리스마스>가 12세 관람가 아니었나?
아니더라. 아무래도 그 당시에 일부러 15세 관람가로 넘겼나 보다. (웃음)
아무래도 이 작품이 멜로물이 아니란 것도 12세 관람가란 점과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아무래도 수위 높은 애정신 자체가 등장할 가능성 자체가 없으니까. 그런데 사실 멜로로 발전시킬 수 있는 요소가 많은 소재였던 것 같은데 자제한 인상이었다. 사실 멜로로서의 가능성이 다분한 이야기였기 때문에 고민하긴 했다. (김)장한이 일본에서 덕혜옹주를 데려오는 이유가 이루지 못한 사랑 때문이라고 초점을 맞추면 멜로가 될 수 있었고, 실제로 그런 바탕의 시나리오도 있었다. 그런데 덕혜옹주를 데려오는 이유가 그렇게 보여선 안될 거라 생각했다. 아무래도 장한이 지닐 법한 역사적인 책임감을 존중하고 관객도 그런 책임감을 크게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멜로로 받아들일 만한 부분은 최대한 줄이고, 촬영이 끝난 뒤에도 멜로처럼 느껴질 만한 부분은 걷어내 버렸다.
멜로가 돼선 안 된다고 생각한 이유는? 지키고 싶은 선이 있었다. 덕혜옹주를 극화시키는 정당성이라고 할까. 멜로로 가져간다면 그 선을 넘어갈 것 같았다. 지나치게 극화된 느낌도 들고. 사실 박해일이 한번은 덕혜옹주와 김장한이 동침을 해야 말이 되는 게 아니냐고, 그래야 정한이 덕혜옹주를 한국에 데려오려고 애쓰는 걸 납득할 수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두 사람이 함께 겪었던 고난만으로도 충분히 재회를 꿈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덕혜옹주가 해방된 지 17년이 지난 1962년에 귀국한 것이니 37년 만에 고국에 돌아온 건데 이건 결국 민족적인 자존심의 문제에 가깝게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니 김장한에겐 덕혜옹주를 데려와야 할 이유가 충분했던 거다.
김장한은 실존인물이었지만 영화 속 김장한과는 거리가 있다. 영화 속의 김장한은 소설에서 가져온 인물이긴 했지만 실제로 그는 고종이 덕혜옹주와 결혼을 시키려고 했던 남자이기도 했다. 고종이 덕혜옹주의 짝을 빨리 점지해주고 싶어했다는데 갑자기 죽음을 맞이하면서 백지화된 셈이다. 그런데 덕혜옹주와 결혼을 시키려 했던 김장한에겐 김을한이란 형이 있었는데 신문기자였고, 김을한의 아내가 덕혜옹주와 학교 동창이었다고 한다. 결국 지금의 김장한을 완성하기 위해 그의 주변인물들을 끌어온 부분들이 있었다.
사실 실화를 바탕에 둔 이야기를 영화화한 것도 처음이다. 소설을 허구의 축으로 삼아 이야기를 각색하는 것만큼이나 사실에 대한 고증 문제도 중요했을 거 같다. 사실 김장한이란 인물을 언급한다는 건 실화에 기반을 둔 부분이지만 그가 정혼자로서 덕혜옹주를 찾아간다는 건 소설에서 빌려온, 명백한 허구다. 그리고 영친왕의 망명 사건을 다룬 부분은 완벽한 허구인데 실제 역사에선 영친왕과 관련된 극적인 망명 사건은 없었지만 그도 망명을 생각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임시정부에선 영친왕이 상해를 여행 중일 때 망명을 권했다는데 영화에서처럼 폭파 작전과 연계된 건 아니었다. 그런데 영화 속 시대가 이봉창 열사가 일왕 암살을 시도했던 시기와 맞물리기도 해서 덧붙여 각색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영친왕의 망명 시도는 실제로 어땠는지 궁금하다. 영친왕이 일본이 전쟁에서 패배하고 망할지도 모른다는 정보를 갖고 있었던 거 같다. 아무래도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을 텐데 영친왕도 고위직에 속하는 인물이었으니까. 그런 면에서 영친왕이 망명을 고민할 만한 이유가 있었던 거다. 그런데 당시 영친왕의 상해 여행 시점에 맞춰 망명을 도모했던 상해임시정부에선 영친왕이 일본인 아내와 이혼하길 바랐다고 한다. 하지만 영친왕은 일본인 아내를 데려가길 원했고 결국 망명을 거부했다고 하더라.
영화상에서 영친왕의 이미지는 유약하게 느껴지는 측면이 있다. 영친왕이란 인물은 열한 살에 일본으로 건너갔는데 실제로 일본사람이나 다름없었다고 한다. 이토 히로부미를 양아버지로 생각하고 따를 정도였고, 그의 제사에도 참석했다고 하니까. 그런데 영친왕의 처인 이방자 여사의 자서전에 따르면 그럼에도 영친왕 스스로가 조선의 정통성을 이어가는 마지막 인간이란 생각을 갖고 있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친일을 했다기 보단 한 나라의 왕으로서 독립 이후의 국가에 대한 생각이 조금이나마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그런 면에서 영화상에서 그린 망명 작전 신은 나름대로 개연성이 있는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상대적으로 덕혜옹주는 영친왕에 비해 강인하게 묘사된 거 같다. 아무래도 영화와 실화 사이의 줄다리기가 있었을 것 같은데. 덕혜옹주가 일본에서 강제 노역 중인 조선인들 앞에서 연설하는 장면도 극화된 장면인데 사실 친일을 옹호하는 버전의 신도 촬영했었다. 한택수(윤제문)에게서 어머니인 양귀인(박주미)이 위독하다는 전보를 받고 친일 연설을 하면 조선으로 돌아가게 해주겠다고 제안한 뒤 덕혜옹주가 친일 연설을 하고 나니 한택수가 그제서야 사실 어머니가 죽었다고 전하는 시퀀스도 있었다.
그런데 왜 지금의 결과를 선택한 걸까? 최소한 덕혜옹주에게 그 정도는 해주고 싶었다. 사실 영화상에서도 그녀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지 않나. 그래서 '어쩌면 한 번쯤 이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됐고 그런 장면을 연출했다. 아무래도 영화를 찍는 동안 극화된 인물이나 장면의 정당성과 개연성을 잘 설득하고 있는지 걱정이 많았다. 아무래도 잘못하면 왜곡시켜버린 것으로 치부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경계를 살피는 과정이 힘들었다.
모든 연출작을 통틀어서 액션신을 볼 수 있는 첫 작품이기도 하다. <아저씨>와 <광해, 왕이 된 남자>의 촬영감독인 이태윤이 <덕혜옹주>의 촬영감독을 맡았는데 내가 <외출>을 찍을 당시 촬영감독 조수였던 인연이 있었다. 아무래도 액션 연출에서는 기술적인 면이 중요한데 솔직히 이번 촬영을 통해 촬영감독과 미술감독에게 많이 배웠다. 개인적으로는 영화를 만들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말이 되느냐'의 문제인데 액션 신에선 말이 안 된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때가 있더라.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 부분을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음, 내 입으로 말하긴 좀 그렇긴 한데.(웃음) 예를 들어 김장한이 배에 총을 맞고도 나중에 막 뛰어다니는데 '총을 맞았는데 어떻게 저렇게 움직일 수 있지?'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웃음) 아무래도 그런 부분을 그냥 넘어갈 수 있다면 괜찮겠지만 만약 '저거 이상하다'고 생각하게 된다면 말이 안 되는 거니까. 그리고 한택수가 배 위에서 총을 쏘는데 '어떻게 저렇게 잘 맞출 수가 있을까?'라고 생각하기도 하고.(웃음) 아무튼 말이 되는 기준을 어떻게 가져가야 하는지 납득하는 게 어려운 일처럼 느껴졌다.
정상훈이나 라미란처럼 희극에 능한 배우들 덕분에 코미디물로서의 인상도 종종 느껴지는데 과거 인터뷰에서 코미디를 연출해 보고 싶단 말을 한 적이 있더라. 사실 웃음만큼 확실한 반응은 없다. 내가 영화를 재미있게 찍은 거 같다는 확신을 주는 반응이란. 그런 면에서 지금까지 만든 모든 작품에 웃음을 주는 요소가 있었던 거 같은데, 그만큼 어떤 상황에서든 영화에 유머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왔다.
<외출>로 함께했던 손예진과 11년 만에 재회했다. 그녀에게 예민하고 치열한 캐릭터를 입혀보고 싶단 생각을 했던 이유가 있었을까? <외출>을 촬영할 때 감정에 깊게 빠져들어야 하는 신이 더러 있었는데 그때 힘이 있는 배우라고 느꼈다. 그런데 이번 작업을 통해 더욱 놀랍게 다가왔다. 집중력이라 할 수도 있고, 몰입도라고 할 수도 있는데 연기적으로 강한 힘이 있는 배우라는 걸 알았다. 정말 그 인물이 돼버리는 순간이 있었다. 그래서 촬영장에서 실제로 신기가 있는 거 같다는 말을 한 적도 있었다. 덕혜옹주가 고국에 돌아가려다 실패하고 항구에 드러누워 미쳐버리는 장면을 찍을 때가 새벽이었고 굉장히 피곤한 순간이었다. '몹 신(Mob scene)'인데다가 촬영 여건도 좋지 않았고 당시 촬영을 강행하던 시점이라 배우 본인을 비롯해 스태프들도 굉장히 피곤한 상황이었는데 그 차가운 땅바닥에 누워서 연기적인 집중력을 보여주니 대단해 보일 수밖에 없었다.
덕혜옹주가 감정의 파고를 형성하는 역할이라면 김장한은 그 파고를 담고 견디는 둑 같은 느낌이다. 감독으로서 손예진이란 배우에게선 잠재력을 끌어내는 것이 중요한 작업이었다면 박해일이란 배우가 감정적인 중심을 잡아주길 기대했을 거 같은데, 그만큼 박해일과의 소통이 중요하지 않았을까 궁금하다. 일단 (박)해일 씨와는 친하다. 막걸리 마시는 걸 좋아하는데, 해일 씨도 좋아하고(웃음). <덕혜옹주>를 함께 하기로 결정한 뒤로 실제 촬영에 들어가기 전까지 시간이 조금 있었는데 그때 인사동에 있는 단골 막걸리집에 함께 자주 갔다. 그리고 영화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눴다. 본인 스스로 김장한이란 인물을 만들어나가는 것에 대한 고민이 많았는데 서로 툭툭 던지듯이 의견을 주고받으며 조금씩 인물을 매만졌던 것 같다. 결국 촬영을 시작하니까 박해일이란 배우 스스로 김장한을 만들어놓았더라. 매 촬영마다 미세하게 감정을 쌓아가는 게 보여서 정말 좋았다. 사실 감정을 표출해서 소진하는 게 아니라 차곡차곡 쌓아간다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인데 훌륭하게 해내더라.
특별출연 배우가 많은데 고수 같은 경우엔 극적인 비중이 상당하다. 사실 대부분 고수가 그렇게 나올 줄은 몰랐다고 하더라. 이우 왕자는 실제 사진으로 봤을 때 상당히 잘생긴 외모를 갖고 있었고, 멋쟁이로 알려져 있었다. 게다가 민족의식도 상당했고. 그래서 어느 정도 존재감이 있고 멋있다고 생각하는 배우가 이우를 연기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실 고수 씨가 이우와 닮았다. 그런데 고수 씨가 하게 돼서 개인적으론 참 좋았지.(웃음)
작년부터 일제강점기 시절을 배경에 둔 영화가 많이 나오고 있다. <덕혜옹주>도 그 중 하나라 할 수 있는데 이런 현상에 대한 특별한 관점이 있는지 궁금하다. 솔직히 내가 할 말은 아닌 거 같은데.(웃음) 그냥 <덕혜옹주>만 두고 말해보자면, 사실 전작인 <위험한 관계>도 1930년대 상하이가 배경이니 <덕혜옹주>와 비슷한 시기를 배경에 둔 작품인 셈이다. 그 영화를 하면서 이 시대가 매력적이라고 느꼈다. 그런데 <덕혜옹주>를 일제 강점기 배경의 영화라고 정의하기엔 조금 어려울 것 같다. 사실 영화의 주무대가 일본이기도 하고. 게다가 내가 <덕혜옹주>를 선택한 건 시대상황 때문이 아니었다. 그저 그 시대상황이 묘사돼야 했기 때문에 그 시절이 그려진 것뿐이다.
혹시 막연하게라도 차기작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지점이 있다면? 새로운 장르를 한번 해보면 어떨까 싶다. 액션이나 코미디, 아니면 스릴러? 장르적인 작품에 대한 관심도 생기고. 아니면 예전처럼 일상적인 영화를 다시 한번 해보면 어떨까 생각하기도 하는데 둘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한다.
<덕혜옹주>를 만들었기 때문일까? 사실 예전부터 그런 생각을 해왔다. <덕혜옹주>도 내가 해왔던 영화와 다른 느낌이니까 이젠 아예 완전히 다른 걸 해보면 어떨까 궁금하다.
연상호라는 이름을 부지런히 쫓아온 이들에게도, 연상호라는 이름 자체가 생소한 이들에게도, <부산행>의 감독 연상호란 신선하게 다가오는 이름이었을 것이다. 국내에서 보기 드문 애니메이션 장르의 대가로 꼽히는 감독이자 사회파 작가로도 분류되는 연상호의 <부산행>은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보기 드물게 대중적인 오락물이면서도 쉽게 접하기 힘들었던 좀비를 위시한 한국형 장르물이자 한국사회를 정통으로 가로지르는 문제작이기도 하다. 그리고 개봉 첫 주말에 이미 5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흥행작으로 단숨에 내달린 시점에서 연상호 감독을 만났고, 그를 만난 지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벌써 800만 명의 관객이 <부산행>을 봤다는 소식을 접하며 이 글을 마무리하고 있다. 첫 실사영화로, 어쩌면 올해 가장 뜨겁게 기억될지도 모를 작품을 만든 연상호 감독에게선 그 열기와는 거리가 있는 차분함이 느껴졌다.
처음으로 연출한 실사영화가 100억이 넘는 블록버스터 영화인데 개봉 첫 주에만 5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전작들을 꾸준히 봐온 입장에선 벼락부자를 보는 느낌이다. (웃음) 아무래도 의아하게 생각한 분들이 많았을 거다. <부산행>을 연출한다는 소식이 처음 알려졌을 때엔 독립 애니메이션 감독에게 이런 대작을 맡겨도 되냐는 의견도 있었던 걸로 안다. 심지어 기존에 내 작품을 좋아했던 관계자 분들도 그런 얘기를 했다니까.
구체적으로 제안을 받게 된 과정이 궁금하다. 투자배급사인 '뉴(New)'에서 <사이비>를 제작했는데 뉴의 장경익 대표가 <사이비>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실사영화 연출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100억대 예산의 영화를 맡길 수도 있다고. 그 당시엔 진심으로 하는 말인가 싶기도 했고, 솔직히 나름대로 애니메이션 작업에 만족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제안이 크게 당기진 않았다. 어쨌든 그때 워낙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인지 정작 <부산행>에 들어가는 과정은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실사영화 연출 제안을 받은 건 그때가 처음이었나? 그전에도 시나리오를 보여주면서 실사영화를 연출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긴 했지만 마음에 드는 시나리오가 없었다. 그래서 좋은 시나리오가 들어오지 않는 이상 실사영화를 할 일은 없겠구나 생각했다.
아무래도 애니메이션 연출과는 다른 일인데, 두렵진 않았나? 사실 애니메이션 연출과 크게 다르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사실 국내에서 애니메이션이 제작되는 경우가 드물고, 산업도 체계화돼 있지 않다. 그래서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게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업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즐거워서 즐기며 작업해왔다. 하지만 <부산행>을 만들면서 느낀 건 역시 실사영화 제작 체계가 잘 잡혀있다는 것이다. 애니메이션보단 확실히 편했다. 프로들이 모여 있고, 분업화도 잘돼있고. 애니메이션은 산업 자체가 구체적이지 않아서 주먹구구식으로 만들 수밖에 없다.
애니메이션을 만들 땐 혼자서 다양한 영역을 도맡아야 했던 걸로 안다. 아무래도 예산이 없으니까. (웃음)
그런 면에서 다양한 스태프와 상의하며 협업해 나가는 과정이 중요했을 텐데, 낯설진 않았을까? 어차피 다 사람이 하는 일이다. 옛날에 외주 일을 많이 해봐서 스태프들의 짜증을 유발하는 지점을 잘 안다. 감독의 방향성이 없으면 정말 피곤하다. 이렇게 했다가, 저렇게 했다가, 덕분에 다들 죽어나가는 거지. (웃음) 그런 걸 아는 덕분인지 스태프들과 소통하는 건 편했다.
KTX의 홍보효과가 상당할 것 같은데 코레일로부터 도움을 받진 않았나? 사실 KTX 설계도를 받고 싶었는데 관련 보안이 철저했다. 그래서 받지 못했다. KTX 열차칸을 똑같이 구현하는 게 정말 힘들었다. 미술팀이 KTX를 타고 다니면서 일일이 열차칸의 치수를 쟀다. KTX 열차의 의자와 비슷한 의자를 구하기 위해 발품도 많이 팔았다. 폐차된 무궁화호 한 칸 정도의 의자를 수거해 와서 천갈이를 하는 식이었다. 스크린으로 봤을 땐 크게 티가 나지 않았겠지만 실물에선 차이가 많았다. 예를 들면 KTX는 선반을 앞으로 펼 수 있는데 우리 세트에선 불가능했다. 실제로 KTX에서 쓰는 의자가 아니라서 선반은 형태만 흉내 낸 모형이었으니까. 정말 미술팀에서 고생이 많았다. 순제작비가 80억 정도이니 큰 예산이지만 마냥 넉넉한 예산은 아니었다. 어떤 면에서 <부산행>을 이 정도 예산으로 찍었다는 건 효율적인 결과라고 생각한다.
비좁은 공간에서 2시간 여의 이야기를 끌어가야 한다는 점에서 고민이 있었을 거 같다. 아무래도 기차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펼쳐지는 영화이기 때문에 그런 고민이 더욱 절실했는데 촬영감독님과 미술팀이 잘 해결해 줬다. 보통 현장에선 '덴깡'이라고 하는, 세트를 분리하거나 연장하는 작업이 용이하게 이뤄졌고, 내가 추구하는 스타일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영화적으로 다양한 앵글을 구현했다.
공간감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편집의 리듬감도 중요했을 것 같다.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어느 정도 리듬감을 설계했고, 그렇게 설계된 리듬에 맞춰 촬영과 편집을 감행했다. 사실 후반 편집보단 현장 편집에 많은 공을 들였는데 현장에서 촬영본을 바로 확인하면서 호흡이 떨어지는 신을 수정하고, 경우에 따라 신을 날리기도 했다.
현장편집을 치열하게 가져간 이유는? 아무래도 영화가 잘 만들어지고 있는지 제일 빠르게 확인하려면 그때마다 완성된 신을 확인하는 수밖에 없으니까. 그런 면에선 현장편집본을 디테일하게 확인하는 수밖에 없었다. 결국 현장편집본과 최종편집본의 분량 차이가 별로 없을 정도였다. 한 3~4분 정도?
최종 편집은 편했겠다. 거의 이틀 정도? 별로 할 게 없었다.
<부산행>에서 가장 끔찍한 역할을 하는 건 결국 좀비보다 사람들이다. 좀비에게 고립된 일행을 구해 생존자들과 합류한 이들을 감염자로 몰고 윽박지르는 사람들로부터 약자의 치졸함 같은 것이 드러난다. <돼지의 왕>이나 <사이비> 같은 작품과 일관성 있는 주제의식을 이어가는 신이기도 한데, 결국 가장 '연상호다운 장면'이기도 하다. 그런 점을 잘 보여주고 싶었다. 사실 시나리오 개발 중에 용석이한테 권총이라도 하나 쥐어줘야 하는 거 아니냐는 의견도 나왔다. 그렇지 않고서 저렇게 많은 사람이 용석에게 동조하는 게 말이 되냐고. 그런데 나는 용석이가 권총을 갖지 않고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라 생각했다. 보통 사람들에게서 악마성 같은 기질이 관성처럼 터져 나오는 순간들이 있는데 그런 관성을 보여주고 싶었다. 후반부에서 느껴지는 처연함도 거기서부터 출발하는 감정이라 생각했고. 방금 가족을 잃은 사람에게 윽박을 지르는 보통 사람들이란 우리가 평소에 인간적이라 생각하는 모습이 아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런 일은 종종 일어난다. 그런 순간이 피해자나 피해자의 가족들 입장에선 굉장히 슬프게 다가올 거라 생각했다.
권총 얘기가 나왔는데 사실 용석 자체가 권총이다. 그가 장전하면 사람들이 죽어나가니까. 그리고 그렇게 가혹하게 캐릭터를 죽일 수 있는 단호함이란 결국 감독의 의지일 테고. 결국 방아쇠를 당기는 건 감독 본인이란 말인데 그런 면에서 이렇게 많은 인물을 주저하지 않고 죽이다니, 정말 가혹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웃음) 블라인드 시사회를 비롯한 여타의 시사회에서의 설문조사나 감상평을 보고 재미있게 느꼈던 부분이 있다. 용석이로 인해 여러 사람이 죽게 되는데 사람들이 그 숱한 죽음에서 가장 큰 충격을 느끼는 건 10대 커플인 영국(최우식)과 진희(안소희)의 죽음이었다. 개인적으로 그런 감상이 마음에 들었다. 사실 10대 커플은 장난스럽고 철없게 보인다. 예를 들면 둘이 울면서 통화하는 장면에선 슬퍼 보인다기 보단 장난스럽게 보일 정도로 철부지 애들이란 거다. 사실 용석이 승무원인 기철(장혁진)의 등을 떠밀 때에는 관객들이 큰 충격을 받지 않는다. 그런데 영화를 보는 내내 우습게 생각했던 아이들이 쓰레기처럼 버려졌을 때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더라. 어떻게 보면 관객들이 방심한 탓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되진 않을 거라 생각했던 애들이 생각지도 못한 폭력에 내몰렸을 때 느껴지는 충격 같은 거랄까. 그때는 용석이란 인물이 끝까지 갔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이기도 한데 그 이후부터는 그가 어떤 짓을 저질러도 이상하지 않게 느껴진다. 그런 측면에선 배우들의 연기가 괜찮았다. (김)의성 선배나 소희나 우식이나.
사실 10대 커플의 죽음은 예상치 못한 순간이란 점에서 충격적이기도 한데, 용석의 비열함을 보여주기 위한 도구적인 죽음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낭비적으로 느껴지는 죽음이기도 하다. 결국 관객이 예상치 못한 순간이 돼서 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길 바랐다. 철없고 한심해 보이는 어린 세대들이 내가 속한 세대에게 가혹하게 짓밟히는 꼴을 봤을 때의 참담함을 느꼈으면 하는 부분이 있었다.
어떤 의미에선 그만큼 애정이 있기 때문에 죽인 셈이랄까. 아이러니하다. (웃음) 아무래도 영화를 통해서 보여주고 싶었던 게 있었으니까. (웃음)
석우의 죽음은 그의 원죄를 생각한다면 명분이 있다. 다만 주인공을 죽인다는 점에서 망설임은 없었을까? 석우를 죽이는 건 시작부터 정해져 있던 거라. (웃음) 사실 용석과 석우는 그 세대를 책임지는 인물이란 점에서 이미 어떤 식으로든 운명이 정해져 있었다. 공멸 혹은 자멸하는 운명이랄까. 다만 그 과정에서 억울하게 희생된 사람들이 등장하는 거고.
그래도 캐릭터들마다 확실한 존재감을 드러낸다는 점에선 허투루 동원된 느낌은 아니다. 감독의 입으로 이런 얘길 하긴 조금 민망할 순 있지만 <부산행>에는 일종의 논리가 있었다. 보통 아포칼립스 영화들은 세대론을 대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부산행> 역시 캐릭터의 세대를 어떻게 설계할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이데올로기가 느껴지는 영화는 아니지만 유일하게 두 노인 여성을 상반된 이데올로기의 상징이라 생각하기도 했다. 그 분들의 시대 자체가 이데올로기의 시대였으니까. 그 다음 세대는 성장 중심의 사회에서 자랐으니 석우와 용석 같은 캐릭터가 떠올랐고, 그 다음 세대인 10대는 일종의 희생양 노릇을 하게 된다. 그리고 수안이나 성경(정유미)이 임신한 아이는 다음 세대에 대한 희망일 수도 있지만 나는 우리가 쥐어야 할 당위에 더 아깝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가끔 인터뷰에서 마지막에 둘 다 쏴죽이는 게 연상호다운 거 아니냐고 물어보시는 분들이 있었는데 그 정도의 당위는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당위가 뻔하게 느껴지는 사람도 있지만 당위는 항상 뻔한 거니까.
마지막에 수안이가 부르는 '알로하 오에(Aloha Oe)'라는 노래는 이별과 재회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노래를 선택한 이유가 있었을까? 마지막에 어떤 노래를 불러야 할까 고민했는데 <송곳> 작가인 만화가 최규석으로부터 추천을 받았다. 일단 가사 자체가 감성적이고 비하인드 스토리가 괜찮았다. 원곡이 하와이 왕조가 무너졌을 때 마지막 여왕이 만든 민요라는데 그런 사연이 마음에 들었다. <부산행>이란 아포칼립스 영화를 개인의 감정에 실어서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기획 의도와도 맞아떨어졌다. 한 나라가 망해갈 때 재회를 약속하는 노래라는 점에서 종말론적인 상황을 다루는 이 영화의 엔딩톤과 어울리게 들렸다.
수안이가 아빠 앞에서 부르고 싶었던 노래를 결국 아빠가 죽으니까 부르게 된다는 점에서 페이소스가 형성된다. 개인적으로 엔딩 크레딧이 나오기 직전에 클로즈업된 수안의 표정이 힘있고 단단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엉엉 우는 게 아니라 씩씩하게 노래를 끝까지 부르고 힘있는 표정을 보여주길 바랬다.
유사 좀비를 다룬 장르물이란 점에서 주목을 받았는데 좀비에게 물린 부위에 따라 좀비가 되는 시간차가 있더라. 목을 물린 사람이 팔이나 다리를 물린 사람보단 확실히 빨리 변한다. 그래서 주인공은 절대 목을 물리지 않는다. (웃음)
하지만 주인공에겐 우대 쿠폰을 준 느낌도 든다. 특히 석우는 인저리 타임이 긴 느낌이기도 하고. (웃음) 그런데 석우는 고속촬영 부분이라 길게 느껴지는 거다. 실제론 되게 짧은 시간이다. (웃음)
사실 좀비는 나올 만큼 나와서 좀비를 묘사할 때 어떤 시도를 해도 참신하다는 말을 듣기란 어렵다. 그런 면에서 <부산행>은 차별적인 좀비를 보여주겠다는 야심보단 일반적인 좀비를 충실하게 묘사하고 합리적으로 활용하는 인상이다. 사실 요새는 별의별 좀비가 다 나오지 않았나. 생각하는 좀비도 있고, 뱀파이어와 좀비가 더해진 타입까지 나왔는데 나는 좀비물이 너무 많이 변형되는 게 싫었다. 그래서 되레 클래식한 느낌을 주고자 했다. 조지 로메로가 만든 좀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단순한 좀비 말이다. 물론 뛰느냐, 걷느냐, 라는 이슈가 있기도 했는데 뛰는 좀비도 이미 익숙한 편이다. 대신 어두울 때 앞이 잘 안 보인다는 설정은 아마 <부산행>을 통해 처음 가미된 부분일 거다.
구제역 사태를 언급하는 오프닝 시퀀스나 근래의 시위 진압 장면을 떠올리게 만드는 방송 장면 등이 요즘 세태와 직결된 느낌을 준다. 심지어 벨소리로 들려지는 '오 필승 코리아'도 예사롭지 않게 느껴지는데 아무래도 리얼리티를 위한 의도적 장치처럼 느껴진다. 아무래도 낯선 소재를 다루기 때문에 관객이 느끼는 진짜 사회와 영화 속의 사회가 다르다고 느끼면 몰입하기 어려울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재미있게 느낄 수 있는 뉘앙스를 뿌린 셈인데 생각보다 그런 부분을 크게 받아들이는 분들이 많았다. 아마 그런 인상이 영화의 흥행에도 영향을 미친 게 아닐까 싶다.
오는 8월 18일엔 <부산행>의 프리퀄인 애니메이션 <서울역>이 개봉한다. <서울역>에서 목소리 연기로 참여한 심은경 씨가 <부산행>의 첫 번째 좀비로 등장하는데 이걸 복선이라고 봐도 될까? 연결고리라고 생각한다면 그렇게 잘 연결된다고 느끼긴 어려울 거다. 하지만 별개의 캐릭터라고 여기기엔 비슷한 점도 많을 거다.
미끼를 던지는 건가. 그렇다. (웃음)
<서울역>은 본래의 장기인 애니메이션인데 <부산행>이 흥행한 만큼 <서울역>으로 연상호의 애니메이션을 처음 접하는 관객이 많아질 수도 있다. 아무래도 15세 관람가가 나오기도 했으니까. 조금 기대는 되지만 아직 개봉일자가 많이 남아서 특별히 별다른 기분이 들진 않는다. 다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폐막작으로 미리 상영하는 게 좋은 선택인지 모르겠다.
이유는? 스포일러라고 여겨질 만한 요소가 굉장히 세다. 사실 <부산행>은 스포일러가 그렇게 큰 영향을 끼치는 영화라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서울역>은 <식스센스>처럼 브루스 윌리스가 유령이다, 란 식으로 말해 버리면 김이 샐 수도 있는 작품이라 이게 독이 될지, 득이 될지 잘 모르겠다. 사실 올해 프랑스 안시 국제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 초청작으로 상영된 적이 있었는데 이동화 PD가 상영관에 가서 반응을 봤는데 관객들이 경악한다고 하더라. 나도 영화제 폐막식에 가서 반응을 보려 한다.
지난 20년간,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10편의 영화로 세상에 말을 걸었다. 그리고 답을
얻었다. 자신의 영화로 세상과 소통할 수 있음을. 영화가
언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를 만난 건 2009년이었다. 배두나가 주연을 맡은 <공기인형>으로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된 그를 인터뷰하게 됐다. 질문을 던지면
골똘히 생각한 뒤 차분히 답하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자신이 주목하는 건 ‘일상의 빛나는 순간’이라고 말했다.
“지극히 평범한 일상에서의 시간이나 공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값진 것인지 보여주고 싶다”는
그의 답변은 그가 응시하는 세계관이 궁극적으로 나아가 닿길 바라는, 그의 이상을 짐작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의 이상적인 세계의 주인공은 그의 영화 속에 놓여있는 이가 아니다.
그의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평범한 일상에서의 시간이나 공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값진 것인지 보여주고 싶다는 것이 그의 궁극적인 바람일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선 누군가의 통증을 맞닥뜨려야만 한다. 그는
결코 손쉽게 행복을 전시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인위적인 고통을 주입함으로써 행복의 착시 효과를 조장하지도
않는다. 진짜 이 세계에 존재하는 혹은 존재할지도 모를 불행의 단면을 발췌해 주목하게 만듦으로써 자신이
영위하는 일상의 평온함이 얼마나 귀하고 복된 것일 수 있는지 새삼 깨닫게 만든다. 이를 테면 <아무도 모른다>에서 냉정할 정도로 일관되게 유지하는 정서적
거리감이 그렇다.
비극적인 실화를 모티프로 둔 <아무도 모른다>는 부모로부터 버림 받은 것이나 다를 바 없는 네 남매를 응시하는 영화다.
그 시선엔 동정이나 연민 같은 것이 완벽하게 결여돼 있다. 카메라는 그저 그 삶을 철저하게
중계하는 수단에 가깝다. 비극을 통해 눈물샘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살풀이하는 영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관객은 그 참담한 상황을 마른 눈으로 끝까지 응시할 수밖에 없다. 눈물을
통해 그 고통에 공감했다는 면죄부를 얻을 길도 없다. 유기견처럼 방치돼 자신들의 삶이 얼마나 버거운
것인지조차 깨닫지 못하고 당연하다는 듯 살아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지켜본다는 건 실로 참담한 일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그런 식으로 실체가 훼손되지 않은 진짜 비극을 생생하게 목격하도록 만든다. 그럼으로써 ‘일상의 빛나는 순간’을 역설적으로 체감하도록 이끈다. 냉소적인 두 눈으로 고통을 관조하지만 결국 그 고통 안에서 가능한 희망을 건져낸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초기 극영화에서 TV 다큐멘터리 연출가로서의 흔적이
드러나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인물의 감정에 개입하거나 이입하지 않도록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는
거리감을 두는 카메라의 중립성. 그리고 그는 연출 경력 초기엔 실제로 일어난 사건에서 단서를 얻어낸
작품들을 더러 만들어왔다. 옴진리교의 테러 사건을 직접적으로 인용하는
<디스턴스>는 마을 사람들의 식수로 사용되는 호수에 독극물을 뿌리고 자살한 테러분자들의
죄책감을 떠안고 살아가야 하는 가해자 유족들의 삶을 그린다. <아무도 모른다>는 도쿄에서 벌어진 아이 방치 사건이 모티프가 된 작품이다. 아버지의
죽음을 복수하고자 길을 떠난 사무라이의 화해를 그린 시대극 <하나> 또한 미국 9.11 테러 이후 복수와 증오로 점철돼가는 시대상에
대한 근심에서 잉태된 작품이다. 실제적인 세계의 흐름을 포착하는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의 시각이 극영화를
바라보는 시각으로 자연스레 이동한 셈이다. 사후세계의 중립지대에서 죽은 자의 추억을 재현해주는 이들을
다룬 <원더풀 라이프>는 당연히 실화를 바탕에
둔 작품이 아니지만 실제에 가깝게 보이는 인터뷰 방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점에서 다큐멘터리적인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러한 사회적 관심을 바탕에 두고 탁월한 작가적 역량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보다 큰 의의가 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걸어도 걸어도>에 대해 어머니의 죽음을 통해 겪었던 후회가 반영된 작품이라고 밝힌 바 있다. 지극히 사적인 경험을 영화적 세계관으로 확장시킨 첫 작품이었다. 그
이후로 그는 사적인 경험을 보편적인 세계관으로 확장하는 작가적 역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작품 가운데서 가장 천진난만한 작품인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은 보다 오래된 기억을 길어 올린 작품이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는
해에 첫눈에 반한 여자를 만나고자 가고시마로 향했다. 그 과정에서 잠시 들렀던 사쿠라지마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연기를 뿜는 화산 주변에서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영위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다들 왜 이렇게 태평이지? 화산이 분출하고 있는데”라는 대사로서 영화에 반영됐다. 한편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사회파 다큐멘터리 감독의 시선과
사적인 세계에서 보편적인 철학을 발굴해내는 작가로서의 역량이 결합된 작품이다. 다섯 살배기의 딸을 통해서
모성과 부성이 받아들여지는 현격한 격차를 느끼게 된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1970년대 도쿄에서 유아가
뒤바뀐 사건을 프리즘 삼아 이를 보편적인 이야기로 투영해보고자 마음 먹었다. 사회를 조망하는 전지적
시점의 관찰자에서 1인칭 시점의 작가로서 개인의 내밀한 심성 안에 잠재된 보편적 세계관을 탐구하게 된
것이다.
“당시 도쿄에서 일어난 사건을 세밀하게 그린 <아무도 모른다>를 본 미국 관객은 우리 동네에서도 그런
사건이 일어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스페인에서도, 토론토에서도, 프랑스에서도, <걸어도 걸어도>가 자신의 어머니 이야기라 이야기하는 관객들을 만났다. 신기한
일이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철저하게 국내적인 걸 파고드는 것이 결국 그 끝에 놓인 보편성과 통하는 게 아닐까.” 단호했다. 일상 속에서 반짝하고 다가오는 특별한 무언가를 발견한다는
것. 그것이 결국 다른 언어를 가지고 있음에도 모든 세계에 말을 걸 수 있는 비결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오는 12월 개봉을 앞두고 있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최근작인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아마 그의 필모그래피 내에서 가장
보편적인 대중성을 갖춘 작품일 것이다. 게다가 이 작품은 동명 만화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그가 처음으로 연출한 극영화인 <환상의 빛>도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었다. 원작을 영화화한 작품이란
점에서 공통분모가 있지만 시작과 끝이라는 대비만큼이나 완전히 상반되는 정서를 품고 있는 작품이다. <환상의
빛>은 어느 날 갑자기 증발하듯 자살해버린 남편으로 인해 깊은 상실감을 체감하게 된 여자의 삶을
주목한다. 갑작스럽게 세상에 홀로 남겨진 자만이 체감할 수 있는 심연의 고통을 찬찬히 살피면서도 그녀가
끝내 생의 궤도를 찾을 것이라는 희망을 넌지시 짐작하게 만든다.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부모의 도움 없이 한데 뭉쳐 살아가던 세 자매가 배다른 여동생을 맞이하며 네 자매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린다. <환상의 빛>이 내면으로 침잠하며 스스로의
외로움을 이겨나가는 내면적 성장의 이야기라면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크고 작은 갈등을 겪는 네 자매가 서로의 존재를 통해서 위로를 얻으며 삶을 찾아나간다는 점에서 외향적 성장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배다른 어린 네 자매의 척박한 삶을 중계하는 <아무도 모른다>의 맞은편에 놓인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어떤 식으로든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작품 세계 안에서 새로운 변곡점으로 언급될 것이다.
1995년작인 <환상의
빛>에서 2015년작인 <바닷마을 다이어리>에 다다르기까지,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총 10편의 영화를 연출해왔다. 그 너비만큼이나 영화적 세계관도 크고 작은 변화를 겪어왔지만 확실한 건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일관되게 남겨진
자들의 삶을 살펴왔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점차 그 삶에 애정을 드리우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그의 영화는 기본적으로 냉소적이다. 하지만 그 냉소는 결코 사람을
향한 것이 아니다. 사람들을 외롭게 내모는 사회를 향한 냉소다. 최근
발간된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에세이집 <걷는 듯 천천히>에선
그가 품은 인간에 대한 애정과 사회에 대한 시각을 보다 명확히 읽을 수 있다. “인간이 인간이기 위해서는, 실패까지도 기억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결국 문화로 성숙된다. 그 시간을 기다리지 않고 망각을 강요하는 것은 인간에게 동물이 되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것은 정치와 언론이 행할 수 있는 가장 강하고, 가장 치졸한 폭력이다.” 이건 지금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결국 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보편적인 언어를 찾아낸 것이다. 사회에 대한 엄격한 시선과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을 통해서.
도전자라기 보단 방랑자에 가깝다. 맞선다기 보단 궁금해서, 김지운은 항상 새로운 길을 모색한다. 정복자가 아니라 개척자로서, 나아갈 수밖에 없는 삶을 산다. 그 여정을 즐긴다.
블랙코미디, 호러, 필름
누아르, 웨스턴, 싸이코 스릴러 등, 영화감독 김지운은 언제나 한 자리에 머물지 않았다. 새로운 영토를
개척하듯 매 작품마다 새로운 장르를 찾아 나섰다. 그리고 결국 어떤 장르에든 김지운이라는 인장을 찍었다. “<달콤한 인생>은 내면으로 침전하는
영화였기 때문에 외향적인 영화가 떠올라서<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처럼 호쾌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런데시각적인 스펙터클은 좋았지만 밀도가 떨어진다는 느낌이 들어서 밀도가 빽빽한<악마를 보았다>를 쥐어짜듯이 만들게 됐죠.그러고 나니 괴롭고 우울한
느낌이 강해져서B급 코드의 유머를 펼칠 수 있는<라스트 스탠드>까지 닿게 된 것 같습니다.항상 지금 내가 느끼는 모순이나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고 싶거나 이를 바꿔보고 싶다는 욕망들이 다음 작품에 반영되는 것 같아요.”
김지운 감독은 국립현대무용단 창단 5주년을 기념하는 <어린왕자> 가족무용극에서 구성대본과 영상연출을 담당했다. 영화감독이 무용극의 연출에 참여한다는 게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닐 거다. 다만
그가 김지운 감독이기 때문에 그 결과가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한국영화계에서 이름 석자만으로 이목을
끌 수 있는 감독은 많지 않다. 김지운은 바로 그런 감독이다. 그런
그가 스크린에 영사되는 영화 대신 무대에서 펼쳐지는 무용극에 참여한다니 필연적으로 그 계기가 궁금했다. “2005년도에
안애순 예술감독의 무용극 <세븐 플러스 1: 복수는
가슴 아픈 것>에 참여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에 한
에피소드의 대본을 썼고, 영화에서 사용하는 특수효과를 무대 위에 구현했죠. 그야말로 잠깐 도와드린 정도였는데 이번에는 기획 단계부터 참여하게 됐죠. 그러다
본격적인 연출 제안을 받게 돼서 전체 구성을 잡고 대본을 쓰게 됐는데 지난 2월쯤 올해 미국에서 진행하려
했던 작품의 스케줄이 꼬이면서 동시에 국내에서 100억대의 장편영화 의뢰가 들어왔어요. 그런데 공교롭게도 <어린왕자>
공연일자와 그 장편영화 크랭크인 날짜가 겹치면서 총연출은 포기하고 대본 구성과 영상 연출을 맡게 됐습니다.”
사실 김지운이 지금과 같은 영화감독이 될 수 있었던 건 어쩌면 무대 덕분이다.
그는 서울예술대학 연극과에 진학했다. 하지만 그는 ‘영화를
더 잘 알고자 드라마의 기본부터 다지고 싶어서’ 연극과에 들어갔다. 유년시절부터
워낙 영화를 좋아했던 그에게 연극은 영화로 닿기 위한 디딤돌이었다. 연극배우의 길로 나아간 친누나 덕분에
연극과 가까워지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했다. “알게 모르게 누나의 동료들과 친하게 어울릴 수 있었고
연극을 자주 보게 됐습니다. 당시엔 공연 자체보단 보헤미안처럼 자유로운 연극인들의 삶을 막연하게 동경하던
때이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그만큼 무대에 그렇게 무지한 편은 아니었단 말이죠.”
그렇다면 그에게 무대 연극이란 어떤 흥미로 다가왔을까? “제한적인
공간에 수많은 시공을 담아내야 하면서도 어떤 것은 생략하고, 어떤 것은 함축하고, 어떤 건 일부만을 보여주면서 결국 그 전체를 이미지로 연상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무대 미학에 어렴풋이 열광하고
감동했던 기억이 있어요. 본래 있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영화의 물질적인 보다 저런 제한적 환경을 미학적
상상력으로 채워나가고 박진감 넘치게 표현하는 무대미학이 훨씬 예술에 가깝다고 느꼈던 적도 있고요.” 이런
그에게 무용극은 또 어떤 흥미로 다가왔을까? “연극을 통해 표현성의 발생과 기원을 찾게 됐는데 무용에선
몸을 움직이는 가장 원초적인 행위나 기원적인 몸짓, 제의적인 동작이 춤의 형태로 어울려 보인다는 것이
흥미로웠던 것 같습니다.”
김지운 감독은 항상 자신이 연출하는 영화의 시나리오를 직접 써왔다. 그런
의미에서 무용극 대본을 쓰는 건 익숙하면서도 낯선 작업이었다. “원작을 다시 읽고 새롭게 느껴지거나
말을 건다고 느껴지는 부분 그리고 우리가 ‘어린왕자’라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내게 작용하는 느낌을 따라 써내려 갔습니다.” 물론 만만한 과정은
아니었다. “영화 시나리오처럼 구체적으로 써야 하는지, 시처럼
여백을 두고 써도 되는지, 헷갈렸죠.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
그냥 스스로 제한을 두지 말고 쓰는 대로 써보기로 했어요. 세부적인 이미지가 떠오르면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추상적인 이미지가 떠오르면 역시 그대로 자유롭게 썼어요. 그런데
무용단원들이 워낙 자유분방한 구성에 단련된 덕분인지 일관성 없는 대본을 알아보기 쉽게 구성표도 만들고 장면 진행표도 만들어 오더군요. 마치 타짜들이 화투패 깔듯이.”
영화는 감독이 관객에게 보일 시점을 통제한다. 하지만 무대는 온전히
관객에 의해서 시점이 선택된다. 하지만 김지운 감독은 그런 차이가 되레 같은 방식으로 극복될 수 있다고
단언한다. “신기하게도 드넓은 황야를 배경으로 둔 와이드숏을 봐도 대형 화면 한쪽 구석의 작은 점 하나가
커다란 스크린을 장악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결국 영화의 쇼트 안에서, 무대 위에서, 무언가를 어떻게 배치하고 어떻게 힘을 안배하느냐에
따라 같은 결과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영화는 다양한 쇼트와 시선으로 변증법적인 충돌과 관계로 신을, 시퀀스를 만들며 스토리와 감정을 정교하게 구축해나갑니다. 그런 의미에서
무대는 영화에서 보여진 다양한 조각의 쇼트들을 쭉 펼쳐놓고 끊어지지 않게 이어나가며 스토리와 감정을 구축해나가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죠. 이렇게 생각하면 결국 영화와 무대극 사이의 이질감을 좁혀 나갈 수 있습니다.”
사실 지금 김지운 감독은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가족무용극 <어린왕자>연출에 참여하는 동시에 오는 10월에 크랭크인에 들어갈 새로운 영화 <밀정>의 촬영을 앞두고 시간을 쪼개서 로케이션 헌팅이 한창이다. 일제
치하 독립군에 관한 이야기인 만큼 상해 등지에서의 촬영도 예정돼 있다. 해외 영화사들로부터 작업 제안도
심심찮게 전달되고 있다. 전세계적인 인기를 모은 SF 재패니메이션 <인랑>의 실사화도 그의 손에 달려있다. 그를 즐겁게 만들 물음표는 아직 무궁무진하다. “A부터Z까지 딱 떨어지게 계획하며 작업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머릿속으로 들어오는 것들이 생겨야 점점 명확해지는
편이에요.배우가
들어오고,의상이
들어오고,공간이
생기고,그런 과정을 통해 점점 이야기가 맞춰져요.하루키의 말처럼 나는 프로그래머인 동시에 게이머인 셈이죠.어떤 결과를 프로그래밍하지만
게이머로서 더 좋은 아이디어가 주제로 굳어가는 과정을 즐깁니다.” 불확실한 여정 가운데
서있다는 것. 그것이 김지운을 나아가게 만든다.
셰익스피어 해석의 권위자로 꼽히는 감독
케네스 브래너는 언젠가부터 셰익스피어의 것이 아닌 세계를 탐하기 시작했다. 셰익스피어를 등진 것이 아니다. 셰익스피어의 어깨 너머로 새로운 세상을 탐구한다는 말이다.
케네스 브래너가 마블 유니버스와 디즈니 왕국에 접근하는 방식은 기존에 자신이 해왔던 ‘셰익스피어적인’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토르: 천둥의
신>(2011)에 대해 이렇게 생각했다. “이건 거대한 규모 안에서 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다. 거창한 허구의
시나리오 한가운데 있는 인간의 이야기.” 그리고 그는 <신데렐라>(2015)에 대해서도 명확한 관점을 고수했다. “처음 이 작업에 관여하게 됐을 때 이렇게 말했다. ‘내가 생각하는
큰 그림이 뭔지 알 거다. 그건 그 길에서 벗어나는 거야’라고.” 공통분모는
단 하나였다. “이건 셰익스피어로부터 비롯됐다.”셰익스피어적인 관점 안에서 이는 모두 지극히 가능한 이야기였던
것이다.
대부분의 배우 출신 감독들과 달리 브래너는 처음부터 배우이자 감독이었다. 그는
자신의 경력 초기부터 카메라 뒤에 서서 ‘액션!’과 ‘컷!’을 외쳤다. 물론
자신의 연출작에서 주연을 맡게 되는 경우엔 예외였지만. 그리고 그의 데뷔 연출작인 <헨리 5세>(1989)부터
그 예외적인 경력이었다. 휴전 중이던 프랑스와의 백년전쟁을 재개하며 프랑스에 상륙해 대승을 거둔 영국의
왕 헨리 5세에 관한 작품으로 대단히 비장하고 엄숙한 분위기로 일관된 작품이다. 동명의 셰익스피어 희곡을 각색한 이 작품을 통해 처음으로 감독 경력에 발을 디딘 브래너는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감독상 부문과 남우주연상 부문 후보로 지명되며 전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다. 그의 차기작 <환생>(1991)이 할리우드에서 제작된 것도 그런 덕분이다.
<환생>은 40여 년의 세월을 넘나드는 전생과 윤회에 관한 미스터리물이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시제에 따라 흑백과 컬러 영상으로 전환되는 이 작품은 여러 면에서 알프레도 히치콕의 서스펜스 감각을 연상시킨다. 실제로 브래너 역시 이런 영향력을 언급한 바 있다. “항상 히치콕을
사랑했고, <환생>의 준비를 시작할 때부터 <다이얼 M을 돌려라>(1954)를
비롯해 <레베카>(1940), <스펠바운드>(1945), <오명>(1946) 등 수많은 히치콕의
영화들을 다시 봤다.”그리고 당시 브래너의 부인이었던 엠마 톰슨과
함께 자신의 영화에서 주연을 맡은 브래너에게 이 작품은 비평적으로도, 상업적으로도 성공적인 결과물이었다. 하지만 그에게 확고한 명성을 안겨준 건 결국 히치콕이 아니라 셰익스피어일 수밖에 없었다.
<헛소동>(1993)은
케네스 브래너라는 감독에게 있어서 대표작으로 꼽힐 만한 작품이다. 브래너 자신과 엠마 톰슨은 물론 덴젤
워싱턴, 키아누 리브스, 케이트 베킨세일, 마이클 키튼 등 대중적으로 친숙한 배우들이 대거 등장하는 이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동명 희극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가운데서도 가장 유쾌한 작품이라 알려진 것처럼 브래너의
<헛소동>은 연극적인 연출력이 두드러지는, 유쾌하고
낭만적인 기운이 충만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후보로 오르기도 했다. 이러한 성공에 고무된 덕분인지 브래너는 대작의 야심을 품게 됐는데 영국계 여류 작가인 메리 셸비의 고전 소설 <프랑켄슈타인>을 영화화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가 공동제작자로 참여했고, 로버트 드
니로가 주연으로 합세하며 큰 그림이 완성됐다. 브래너의 <프랑켄슈타인>은 대중적인 성공을 거뒀지만 그의 전작들에 비하면 지독하게 심각하고 무거운 작품이었다. 특유의 위트나 페이소스가 실종된 이 작품에 대해서 평단의 반응은 이례적으로 차가웠다. 하지만 진정한 야심작은 따로 있었다.
브래너가 직접 각색하고 연출한 <햄릿>(1996)은 셰익스피어가 집필한 희곡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영화적인 원형을 만드는 작업이었다. 무려 네 시간에 달하는 러닝타임은 그런 노력이 반영된 결과라 해도 좋을 것이다. 원작에 등장하는 주옥 같은 대사가 고스란히 영화에서 발음되고, 모든
장면들이 존재하는 <햄릿>의 실사판은 여전히 브래너의
것이 유일하다. 높은 완성도를 평가받은 로렌스 올리비에 감독의
<햄릿>(1948) 역시 그런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게다가 브래너의 <햄릿>은
셰익스피어만을 위한 제단이 아니라 브래너 자신을 세우는 새로운 무대이기도 했다.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의
중세 덴마크를 배경에 둔 셰익스피어의 원작과 달리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19세기 덴마크로 시대배경을
옮긴 브래너는 이를 통해 보다 현대적인 인상의 <햄릿>을
완성했다. 또한 대사와 인물에만 집중하는 연극적인 연출 대신 다양한 몽타주를 동원하는 영화적 기법을
통해 지극히 영화적인 <햄릿>을 완성해냈다. 또한 에너지가 넘치는 브래너 특유의 연기가 반영된 햄릿은 그 어느 햄릿보다도 재기발랄한 개성이 있다. 브래너에게 <햄릿>은
감독으로서 가장 절정의 경력이었다고 말해도 좋을 작품이다.
<햄릿> 이후로
4년이 지나서야 발표한 <사랑의 고통이 사라지다>(2000)와 그로부터 다시 6년이 지나 공개된 <당신 좋으실 대로>(2006)는 모두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영화화한 결과물이었지만 그는 셰익스피어라는 이름을 통해 새로운 영광을 얻진 못했다. ‘추락’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새로운 전환점이 필요하다는 건 확실했다. 주드 로와 마이클
케인이 출연한 <추적>(2007)은 부조리극의
대가 해롤드 핀터의 각본을 브래너 영화화한 작품으로서 그가 연극이라는 초심으로 되돌아간 듯한 인상을 준다는 점에서 각별한 인상을 준다. 그 이후로 그는 셰익스피어의 그림자에서 벗어난 것처럼 할리우드에서 최적화된 상업적 블록버스터를 연이어 연출했다. <토르: 천둥의 신>과
액션 스릴러물인 <잭 라이언: 코드네임 쉐도우>(2014) 그리고 <신데렐라>까지, 그의 최근작들은 셰익스피어의 인장이 명확했던 브래너의
과거와 완벽하게 분리된 인상이다. 하지만 그는 지금 자신을 매료시킨 셰익스피어처럼 또 다른 무언가에
매료되고 있을 뿐일지도 모른다. “동화는 2000년이 넘는
지난 세월 동안 다양한 문화권 안에서 구전돼서 손쉽게 응용됐고, 많은 각색을 거쳐왔다. 보다 적극적인, 더욱 21세기적인
캐릭터로, 새로운 느낌의 신데렐라를 만드는 게 중요했다.”셰익스피어에 주목하고 해체시킨 방식으로 슈퍼히어로와 고전동화의 세계관을 응시한다.
브래너의 연출 차기작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일련의 뉴스에서는 그가 <토르>의 새로운 시리즈에 복귀를 희망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물론
결과는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 확실한 건 케네스 브래너의 연출 차기작이 셰익스피어라는 자장 안에서 맴도는
작품이 아닐 것이란 예감이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언젠가
그가 셰익스피어라는 중력으로 다시 발을 디딜지 몰라도 지금의 그는 분명 셰익스피어를 넘어선 우주로 유영하고 있다.
그건 확실하다.
생이란 성공과 실패라는 단어로 손쉽게 구분된다. 하지만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영화들은 괴롭고 비루한 일상을 통해서도 이어지는 생을 그린다. 쉽게 꺾이지 않는 생의 가능성을 응시한다.
멕시코 시티에서 태어난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가 보다 넓은 세상으로 나아간 건 17세 무렵이었다. 대서양을 횡단하는 무역선의 물류 창고에서 자고
바닥을 청소하며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처음으로 다다른 곳이 바로 바르셀로나였다. 바르셀로나에서의 경험은 그에게 남다른 시각을 제공했다. “바르셀로나는
정말 대단했다. 어떤 모험심을 가진, 매우 어린 시절이었다. 수많은 이웃들을 소개해주는 친구가 생겼고, 끝내주는 경험을 했다. 서로 다른 언어로 대화하는 다양한 인종들로 구성된 모임을 보면서 감탄했다. 탐험을
하는 내게 있어서 정말 쿨한 일이었다.” 직접적으로 곤잘레스
이냐리투가 연출한 <비우티풀>(2010)은 이
당시에 목격했던 바르셀로나에서의 경험이 반영된 작품이다. 그러나 그 이전에 다양한 출신 성분의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진 광경을 목격하고 체험했던 여정이야말로 그의 영화관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 같다.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장편 연출 데뷔작인 <아모레스 페로스>(2000)는 이 세계의 너비를 되새기게 만드는 작품이다.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고향인 멕시코 시티를 배경으로 둔 이 영화는 각자 다른 영역에서 살아가는 세 인물의 생을 세 개의 시점으로 나열하는 옴니버스 형식을
취하고 있다. 칸국제영화제의 비평가주간에 초청돼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하기도 했던 이 작품은 찌든 때처럼
거리에 눌러 붙은 폭력성을 묘사하고 퍼즐 같은 서사 구조를 지닌 덕분에 쿠엔틴 타란티노의 작품을 연상시킨다는 평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곤잘레스 이냐리투에게 폭력은 허구적인 소품이 아닌 현실의 언어였다. “나처럼 매일같이 거리에서
폭력이 발생하고 사람이 죽는 도시에서 산다면, 폭력과 죽음은 더 이상 재미있는 일이 아닐 거다. 폭력에는 그에 응당한 결과가 있다는 걸 보여주고자 노력했다. 만약
당신이 폭력을 구사한다면, 그 폭력의 결과는 당신에게 돌아올 거다.”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초기작인 <아모레스 페로스>와
<21그램>(2003), <바벨>(2006)은
서사적으로 유사한 형식성을 취하고 있다. 세 부류로 나뉜 개별적인 삶과 그 일상이 부득이한 이유로 타인의
삶과 충돌하고 끝내 이 세계를 에워싸는 사건으로 확장된다. 세 작품은 동일하게 서사를 파편처럼 나열하고
퍼즐 구조의 서사로 진전된다. 다중적인 시점을 통해 서사의 확대와 증축을 꾀하며 입체적 감상을 유도한다. 이처럼 유사한 서사적 형태를 지닌 세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건 우연과 필연을 통해 진전되는 관계의 층위와
현실적인 생의 너비를 체감하게 만드는 관성이다. 어느 개인의 경험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생에게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의 가능성을 짐작하게 만든다. 그럼으로써 이 세계라는 물리적 너비를 포괄할 수
있는 생의 무게감을 실감하게 만든다.
<비우티풀>은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라는 감독의
새로운 영역을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다중적인 시점으로 구성된 옴니버스식 서사를 지닌 전작들과 달리 <비우티풀>은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첫 번째 정극이라고 해도
좋을 작품이다. 수미상관의 구조로 이뤄진 이 작품은 생과 죽음의 양면성을 유려한 슬픔과 환희로 승화시키며
시적인 아름다움을 전달한다. 물론 어떤 이들은 이런 감상에 대해서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왜냐면 사실 <비우티풀>은
굉장히 참담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전세계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바르셀로나의 빈민가에서 힘겹게 두 자식을
키워나가는 아버지를 주인공으로 둔 이 영화는 그 누구보다도 죽음을 잘 이해하고 있는 남자가 자신에게 드리운 죽음의 그림자를 향해 천천히 걸어나가는
이야기다. 가난과 고통 그리고 배신과 죽음이라는 어둡고 험난한 단어들로 점철된 이 영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여운을 남긴다 말할 수 있는 건 죽음으로도 부서지지 않는 생의 가치를 시적인 정서로 담아내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말처럼, “<비우티풀>은
죽음이 아니라 삶에 관한 영화다. 삶을 향한 찬가다.” 그
비극적인 생의 마감을 지켜보면서도 그토록 평화로운 감상을 얻을 수 있는 건 결국 그 생이 어떤 종착만은 아닐 것이란 믿음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마치 영적인 기적을 목격하는 듯한 초현실적인 아름다움이 그 영화에 담겨있다.
사실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영화는 하나 같이 어둡고 고통스러운 이 세계의 단면들을 수집해 오면서도 생의 가치를 부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생이 살아갈만한 가치가 있음을 역설한다. 마치 “몇 번이라도 좋다! 이 끔찍한 삶이여, 다시!”라고 외쳤던 니체의 격언처럼 그렇다. 다만 이 거대한 비극의 도가니 속으로 내몰리는 인간들의 군상이 어떤 구조 속에 놓여있는가를 통해서 이 삶을
비극으로 내모는 인과와 심리를 제시한다.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영화로부터 괴로운 심정을 얻는다는 건 그만큼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 괴로운 서사의 끝에서 되레 감상적 치유를 길어 올릴 수 있는 건 결국
그의 영화가 서로의 통증을 분담하고 공감할 수 있다는 이 세계에 대한 영적인 믿음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버드맨>(2014)은 이런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확실한 증언과도 같다.
대략 5년 전, 자신이 구상했던 어떤 이야기의 조연 캐릭터를 모티프로 개발된 <버드맨>은 한때 ’버드맨’이란 슈퍼히어로로서 전성기를 누렸던 어떤 배우의 재기를 그린 작품이다. 하지만 <버드맨>은 단순히 어떤 배우의 연기적 재기에 관한 드라마가
아니다. 곤잘레스 이냐리투도 “솔직히 그런 주제엔 전혀 관심이
없다”고 말한다. “인간의 자아가 우리를 끌어올려줄 수 있지만 순식간에 우리를 해칠 수도 있는, 위험한 것임을 알았으면 좋겠다. 그것에 힘을 내주고 휘둘리면 끔찍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버드맨>은 한 퇴물 배우가 자신을
파괴하는 망상과 세간의 비웃음으로부터 삶을 회복해나가려는 과정을 그린다. 그 과정은 때때로 우스꽝스럽다
못해 신랄한 블랙코미디 형태로 묘사되는데 이는 기존에 곤잘레스 이냐리투 영화와 이질적인 감상적 온도를 전달한다.
동시에 명배우들이 시종일관 장대비처럼 쏟아내는 대사량과 그 대사에 세찬 리듬감을 가미하는 드럼 솔로,
그리고 중력으로부터 해방된 듯한 카메라 워크 등 전작들에 비해 보다 화려해진 테크닉들로 영화의 기교적인 밀도가 한층 높아진 인상이다.
무엇보다도 <버드맨>은 보기 드물게 유머러스하고 신랄한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첫 번째 블랙코미디이지만 어느 생에 대한 경의를 품은, 그의 다섯 번째 찬가다. 어떠한 예측도 뛰어넘는 이 영화의 결말은 타인들에 의해 손쉽게 실패라고 손가락질 받는 누군가의 삶이 결코 무의미한
것만은 아니라는, 곤잘레스 이냐리투가 응시하는 생의 철학으로 비상한다.
“내 영화들은 내 자신의 연장선이다. 일종의 내 생명과 직결된
경험의 증거들, 매우 드문 선행과 매우 많은 한계들과 함께.”비참한 삶의 형태 속에서도 결코 죽일 수 없는 생의 가능성.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가 응시하는 건 결국 이 세계의 너머가 아닌 자기 자신과 우리 생의 한가운데에 놓여
있는 그것이다.
<버드맨>의
결말에 대하여
아마도
<버드맨>을 보게 된다면 그 결말에 대해서 어떤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엠마 스톤의 ‘빅 아이즈’를
통해서 짐작할 수밖에 없는 그 결말은 원래 예정됐던 결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영화의 촬영이 중반에 다다랐을
즈음 그 결말이 정말 최악이라고 느낀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는 결국 각색가들과 함께 새로운 결말에 골몰했고,
결국 지금 형태의 결말을 완성했다. 그는 지금 형태의 결말에 대해서 굉장히 만족했고, 타당한 결론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본래의 결말을 언급하는
것에 대해서도 극도로 말을 아낀다. “원래의 결말에 대해선 결코 말하지 않을 거다. 매우 황당한 것이니까. 정말 나쁜 것이었다.” 물론 지금의 결말
또한 황당하다고 느낄 관객은 존재할 거다. 이쯤 되면 어떤 결말인지 정말 궁금하지 않나? 보면 안다.
데이비드 에이어의 남자들은 언제나 방아쇠를
당긴다. 흉악한 세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남자들의 사투를 그린다. 자신이
살아온 세상과 닮은 거리에 두 발을 디딘 남자들의 생을 장전한다.
데이비드 에이어는 우직한 감독이다. 그가 연출한 세계관 속의 인물들은
하나 같이 총을 들고 사선을 넘는다. 그리고 그 세계관의 대부분은 LA라는
거대한 도시의 그늘 속에 도사린 위험천만한 범죄 현장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런 특성은 그의 유년
시절 기억과 상당부분 연결돼 있다. “나는 LA 남부에서 자라면서 ‘고대 LA경찰
시절’이라고 일컬었던 그 시절의 경찰들로부터 항상 달아나야 할 짓을 일삼곤 했다.” 본래
에이어가 태어난 곳은 일리노이주의 소도시였지만 유년시절에 세상을 등진 아버지로 인해 LA 남부의 가난한
친척집에 맡겨졌고 그 험한 거리에서 빛보단 어둠에 익숙한 소년으로 자랐다. 그런 그가 LA를 배경으로 둔 범죄물에 천착하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유년 시절의 질풍노도에 대한 빚을 갚기 위해서는 아닌 것 같다. “LA경찰은 다른 기구다. 80년대나 90년대의 경찰조직이 아니다. 현재 그 인근의 치안상태가 반영된 조직이다. 조직이 진화해왔으니
영화도 그런 사실이 반영돼서 진화했다.”
감독으로 데뷔하기 전 각본가로서 활동했던 시절에도 그는 LA의
흉악한 단면을 마주한 경찰을 소재로 둔 이야기에 천착해왔다. <트레이닝 데이>(2001), <다크 블루>(2002),
<S.W.A.T. 특수기동대>(2003)를 통해서 저마다 형태가 다른 LA경찰들의 일상을 묘사했다. 그 중에서도 덴젤 워싱턴과 에단 호크가
호흡을 맞춘 <트레이닝 데이>는 그에게 상당히
절실한 작품이었다. “나는 할리우드에서 일하길 원했다. 그래서
나를 위해 전혀 시도되지 않은 무언가를 썼다.” <트레이닝 데이>는
데이비드 에이어가 감독의 지위를 확보한 지금에도 여전히 중요한 경력으로 회자되는 작품이다. 그의 연출작들
가운데 <트레이닝 데이>의 중력 안에 놓여있는
것처럼 보이는 작품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크리스찬 베일 주연의 <하쉬
타임>(2005),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스트리트
킹>(2008), 제이크 질렌할과 마이클 페냐가 듀오로 등장하는 <엔드 오브 왓치>(2012)는 총격이 난무하는 위험한 거리를
누비는 LA경찰을 소재로 두거나 그와 깊게 연관된 작품이다. 그
중에서도 <스트리트 킹>은 LA경찰의 내부 비리를 고발하게 되는 처지로 몰린 어느 경찰의 사투를 다룬다는 점에서 <트레이닝 데이>와 가장 근접한 관점의 이야기를 끌어안았다. 한편 <하쉬 타임>과 <엔드 오브 왓치>는 무법 천지 같은 LA의 흉악한 풍경 속에서 차를 타고 누비는 두 남자의 동선을 따라간다는 점에서 <트레이닝 데이>와 유사한 시점을 담아낸다. 무엇보다도 세 작품은 <트레이닝 데이>의 누아르적인 결말을 연상시킨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이런
면모는 에이어의 또 다른 연출작인 <사보타지>(2014)와 <퓨리>(2014)에서도 일관되게 이어진다.
그 가운데서도 <엔드 오브 왓치>는 데이비드 에이어라는 감독의 경력 안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1인칭 시점의 캠코더 촬영 컷을 가미하며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태로 만들어진 이 작품은 LA경찰
두 사람의 동선을 부지런히 쫓으며 생생한 현장감을 부여한다. 제복을 입고 경찰서와 순찰자, 거리를 오가는 두 경찰과 그 주변부를 살피는 카메라는 LA경찰의
실제적인 삶을 직접적으로 대면하는 듯한 체험적인 쾌감과 긴장감을 도모한다. 극적인 형태의 기존 작품들과
형식적으로도 차별적인 인상을 전달한다는 점에서 더욱 두드러지는 면모가 있다. 그저 그런 범작 취급을
받았던 전작들과 달리 대단한 수작으로 평가를 받았던 <엔드 오브 왓치> 이후 에이어가 발표한 <사보타지>는 최정예 마약검거 특수부대가 미궁의 음모에 휘말리는 내용을 그린다.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주연을 맡은 이 작품은 전작에 대한 평가와 완벽하게 대비를 이룰 정도로 혹평을 얻었다. 하지만
같은 해에 발표된 <퓨리>를 통해서 에이어는 다시
한번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낸다.
<퓨리>는 영화의 배경만으로도 데이비드 에이어의 경력 안에서 이질적인 위치를 차지한 작품이다. LA의 골목을 전전하는 경찰들 대신 제2차 세계대전의 막바지에 치달은
독일 전선에서 탱크에 몸을 실은 미군들이 스크린에 등장한다. 하지만
<퓨리>는 데이비드 에이어의 호기심을 당길만한 세계였다. “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 그리고 삼촌 등 수많은 친인척들이 전쟁에 참여했다. 나
또한 해군에서 복무했고. 그래서 전쟁이란 내게 항상 사적인 소재이자 가족사 같은 것이었다. 전쟁에 대해 알면 알수록 언제나 이분법적이고, 도덕적인 명분이 있는
일처럼 보였는데 실제로도 그랬다. 그러니까 그건 선악의 대립이었다는 말이다. 다만 참호에서 싸우는 사내들에겐 잔혹한 일이었다. 전쟁은 매우 암담했다. 그걸 보여주고 싶었다. 대단히 긍정적인 결과로 닿았지만 거기엔 사내들이
감당해야 하는 부당한 대가가 있었다는 것을.” 에이어는
이런 깨달음을 바탕으로 <퓨리>를 참혹한 전쟁물
이상의 휴먼드라마로 격상시켰다.
사실 에이어가 연출해온 LA 배경의 범죄물 속에서 경찰들이 감당하는
긴장감은 전장의 그것만큼이나 공포스럽다. <퓨리>는
에이어가 줄곧 그려왔던 두려움의 세계를 보다 사실적인 비극 안에 세워 넣고 밀어가는 작업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퓨리>는 에이어가 그린 새로운 풍경일
뿐 일관성 있는 감정을 담아낸 세계관이다. 게다가 <퓨리>는 에이어의 초기 각본작이었던 <U-571>(2000)과
마찬가지로 제2차 세계대전 배경의 작품이며 수많은 적에게 둘러싸인 잠수함 한 대와 탱크 한 대에 모든
것을 걸고 싸우는 군인들의 사투를 다룬다는 점에서 데이비드 에이어라는 작가의 인장을 재확인시킨다. 물론 <퓨리>의 최후반부 전투신이 지나치게 과장된 무리수처럼
여겨지는 측면이 있지만 <퓨리>가 발하는 휴머니즘의
감동을 가릴 정도는 아니다. 무엇보다도 <퓨리>는 LA라는 지정학적 특수성 안에서 맴돌던 에이어의 세계관에서
벗어나 전세계적인 보편성을 확보하고 완결해냈다는 점에서 발전적인 성취로 여겨질 만하다. 물론 <퓨리> 역시 총을 든 사내들의 세계관이란 점에서 에이어의
세계관은 여전히 같은 동심원 속에 놓여있다. 그는 전장 속을 누비는 사내들의 이야기 외엔 관심이 없는
걸까? 데이비드 에이어표 로맨틱 코미디라는 것도 존재할 수 있을까? 그의
대답은 이렇다. “물론이다. 매우 진지하게,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일단 당장 그는 2016년 개봉 예정작인 <수어사이드
스쿼드>에 매달릴 예정이다. DC코믹스물 원작인 이
작품은 슈퍼히어로와 대립하는 악당들, 즉 슈퍼 빌런들이 정부 산하에서 죄를 탕감받는다는 명목으로 비밀
임무를 수행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흉악한 범죄물의 세계를 비추던 데이비드 에이어의 카메라가 재생시킬
코믹스의 세계관이라니, 사뭇 궁금하다. 좀처럼 상상하기 힘든
데이비드 에이어표 로맨틱 코미디보다도.
위기의 남자들
데이비드 에이어의 영화 속에선 항상 위기의 남자들이 등장한다. <하쉬 타임>의 짐 데이비스(크리스찬 베일)은 LA경찰을
꿈꾸지만 낙방한 뒤, 위험한 제안을 받게 되고 점차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관계마저 파괴할만한 혼돈으로
빠져드는 불나방 같은 남자다. <스트리트 킹>의
톰 러들로(키아누 리브스)는 오발로 인해 동료를 죽였다는
죄책감 속에서 홀로 사건을 마무리하고자 사지로 뛰어들지만 정작 음모의 덫에 갇힌다. <엔드 오브
왓치>의 브라이언 테일러(제이크 질렌할)와 마이클 자발라(마이클 페냐)는
위험천만한 임무를 즐기듯 수행하는 경찰 파트너이지만 히스패닉 갱들로부터 조여오는 위협을 느낀다. <사보타지>의 존 브리처 와튼(아놀드 슈왈제네거)은 특수부대를 이끄는 리더이지만 갑작스러운 팀원들의 죽음을 통해 정체불명의 위기를 느낀다. <퓨리>는 단 한대의 탱크를 둘러싼 독일군들을 맞이하는
탱크 안 미군들의 긴장감을 결연하게 그린다. 생사의 경계를 넘나드는 혹은 그 경계에 놓인 남자들이 주사위를
굴리듯 방아쇠를 당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