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에서 태어나 9살에 미국으로 넘어온 저스틴 린은 영화를 전공했고, 영화감독이 됐다. 누구나 꿈을 이룰 수 있었던 미국에서 경계 없는 평범함과 특별함을 영화에 담아낸다.
J.J. 에이브럼스를 통해 현재진행형의 이름으로 거듭난 <스타트렉> 리부트 시리즈 중 세 번째 작품인 <스타트렉 비욘드>(2016)는 올해로 50주년을 맞이한 해에 공개될 프랜차이즈의 신작이다. “처음 J.J.에이브럼스에게 전화를 받은 뒤 이 프랜차이즈를 연출하는 것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는 데에만 며칠이 걸렸다. 프랜차이즈의 전통적인 팬들뿐만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해서도 막중한 책임감을 느꼈다. 모든 것은 가슴으로부터 시작해야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무섭고 두려웠다.” 그런 그에게 J.J.에이브럼스는 단호하게 조언했다. “대담해져라. 그리고 그냥 차지해라.” 그는 저스틴 린의 첫 번째 우주비행을 위한 완벽한 멘토였다.
저스틴 린이 <스타트렉 비욘드>를
연출할 수 있었던 건 당연히 <분노의 질주> 시리즈를
블록버스터급 프랜차이즈로 성공시킨 장본인이란 점이 주요했을 것이다. 본래 혈기왕성한 젊은 캐릭터들을
앞세운 스트리트 레이싱을 그린 범죄액션물이었던 <분노의 질주>가
전세계적인 흥행가도를 기록하는 블록버스터로 체급을 올릴 수 있었던 건 저스틴 린의 공이 팔 할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J.J.에이브럼스가 <스타트렉>의 차기 지휘권을 저스틴 린에게 넘긴 이유란 이렇다. “저스틴은 자신이 대단히 뛰어난
이야기꾼임을 스스로 거듭 입증해냈다. 하지만 어떤 것보다 나를 사로잡은 건 <스타트렉>에 대한 그의 진짜 애정이었다.” 그렇다. 그는 <스타트렉>의 전통적인 팬 그러니까 ‘트레키’였다. 그의
부모님은 ‘피시 앤 칩스’를 주메뉴로 한 작은 식당을 운영했는데
보통 저녁 9시에 가게 문을 닫고 10시쯤에 집에 와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저녁식사를 마친 뒤 린과 그의 동생 그리고 그의 아버지는 모두 TV 앞에 모였다. 11시부터 방영되는 <스타트렉>을 보기 위해서였다. “8살부터 18살이 될 때까지,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집을 떠날 때까지 그건 우리 가족만의 시간이나 다름없었다.” 그만큼 <스타트렉>이라는 전통적인 프랜차이즈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그의 애정은 시리즈에 새로운 모험의 좌표를 제시하는데 유용했다. “어떤
경우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걸 해체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은 훌륭한 프랜차이즈였고, 50년 동안 지속돼 왔으며 다른 매체들 안에서 여전히 살아있다. 나는
작가로서의 사이먼 페그와 더그 정과 함께 모여 이미 성공한 것과 검증된 것에 안주하지 말자고 했던 게 기억난다.
우리가 사랑했던 것의 DNA를 사용하면서도 앞으로 더 나아가고자 했다.” 그래서였을까. <스타트렉 비욘드>에선 프랜차이즈의 상징과도 같은 엔터프라이즈
호를 완전히 파괴시켜버린다. 오래된 팬들 입장에선 그 자체만으로 이번 작품이 파격으로 느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스타트렉 비욘드>에서는 지난 두 전작에 비해 캐릭터의 다양성이 돋보인다. 이는
전통적인 프랜차이즈에서 유지해온 캐릭터들의 다양성을 계승하는 것과 같다. 이는 저스틴 린보다도 더욱
‘트레키’에 가까운 사이먼 페그 덕분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프랜차이즈의 리부트가 시작될 때부터 함께 한 스코티 역의 배우 사이먼 페그 말이다. “<스타트렉>을 내 일부라 여길 만큼 애정을갖고 있지만
솔직히 모든 대사를 읊을 순 없다. 에피소드의 모든 제목까지 아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사이먼은 가능하다!”
저스틴 린이 할리우드의 흥행감독 대열에 들어선 건 <분노의 질주> 시리즈를 통해서였다. 빈 디젤과 폴 워커를 위시한 <분노의 질주> 프랜차이즈는 국적과 인종을 초월한 다양한
캐릭터들이 팀을 이룬 활약상을 펼치는데 이는 본래 다양성의 가치를 일상적으로 대면할 수 있는 <스타트렉>의 세계관과 닮아있다. 무엇보다도 이는 저스틴 린이 추구하던
본질적인 세계관이 <분노의 질주>에 반영된 결과에
가깝다. UCLA에서 영화를 전공하던 시절 <분노의
질주>(2001)를 본 저스틴 린은 동양계 미국인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깊은 흥미를 얻었다. 하지만 동시에 동양계 미국인이 악역만을 맡았다는 사실에 대단히 실망했다. 그리고
훗날 도쿄를 배경에 둔 세 번째 속편 <패스트 & 퓨리어스-도쿄 드리프트>(2006)의 연출 제안을 받은 뒤 그가 해낸
첫 업무는 불상이나 게이샤 소녀들로 점철된 시나리오를 완전히 새로운 것으로 교체하는 일이었다. 단순히
동양을 배경에 두거나 동양계 캐릭터가 등장하는 것을 넘어 편견을 뛰어넘는 역할을 주고자 하는 것이 그의 본질적인 목표였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계 미국인인 성 강이 연기한 한은 주인공을 성장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그의 궁극적인
페르소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뒤로 저스틴 린이 연이어 연출한 <분노의
질주: 더 오리지널>(2009)과 <분노의 질주: 언리미티드>(2011),
<분노의 질주: 더 맥시멈>(2013)에서도
거듭 한이 등장해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는 것 또한 그렇다.
<베터 럭 투마로우>(2002)는 저스틴 린의 단독연출
데뷔작으로 평범한 동양계 미국인 소년들의 일상과 일탈을 그린 작품이다. 당시 선댄스 영화제에서 처음으로
공개된 이 작품은 큰 호평을 얻었는데 당대의 저명한 영화평론가였던 로저 에버트는 <베터 럭 투마로우>에 대해 “단순한 스릴러도, 단순한
사회적인 다큐멘터리도, 단순한 코미디나 로맨스물도 아니지만 그 모든 것이 명확하게 보이고 훌륭하게 완성된 영화”라고 평하며 엄지를
세웠다. 저스틴 린 자신이 성장한 LA교외의 오렌지 카운티의
한 마을을 배경에 둔 이 작품은 부족할 것이 없는 동양계 중산층 가정에서 우등생으로 자란 세 명의 고등학생 소년이 사소한 일탈에 빠져드는 과정을
코믹하게 그려나가면서도 끝내 예측 밖의 끔찍함을 여운처럼 남긴다. 이 모든 과정을 동양계 미국인이 겪는
특별한 상황이라기 보단 보편적인 이들도 저지를 수 있는 특수한 행위로 인식하게 만듦으로써 인종과 문화에 대한 차별 의식을 훌쩍 뛰어넘은 성취에
가깝다. <스타트렉>과 <분노의 질주>라는 블록버스터 프랜차이즈의 캐릭터를 통해서도
이런 의식은 공평하게 배분된다.
아마 저스틴 린의 차기작이 <스타트렉>이나 <분노의 질주>가 될 것 같진 않다. 대신 제레미 레너를 앞세운 <본>시리즈의 스핀오프 <본 레거시>(2012)의 속편을 연출할 감독직을 받아들인 상황이다. 전작이
미진한 반응을 불렀던 것과 달리 그가 만들 속편이 얼마나 대단한 반향을 일으킬 수 있을진 미지수다. 하지만
<스타트렉>과
<분노의 질주>를 통해 확인한 그의 재능은 분명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혹시 아는가? <본> 시리즈 최초로 인상적인 동양계 캐릭터가 탄생할 수 있을지, 기대해봐도
좋지 않겠는가.
조각 같은 외모와 근육질 몸매를 지닌 헨리 카빌은 갈 수 있는 길에서 최선을 다해왔다. 그렇게 슈퍼맨이 돼서 날 수 있었지만 걷는 법을 잊지 않기 위해 역시 최선을 다하고 있다.
헨리 카빌은 정말 잘 생겼다. 만약 지금이 고대 그리스 시대나 로마
시대였다면 많은 시간이 지나 훗날 지금의 시대가 됐을 때 미술 입시 학원에서 헨리 카빌의 얼굴을 본뜬 흉상을 두고 데생 연습을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말입니다. 헨리 카빌의 학창 시절 별명이 ‘뚱보 카빌’이었다는 게 짐작이나 되는가. “아이들은 항상 짓궂게 굴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을 전혀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관점을 갖게 해줘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렇다.
이 남자, 관대하다.
하지만 신은 헨리 카빌에게 관대할 생각이 없었나 보다. 브라이언 싱어가
연출한 <슈퍼맨 리턴즈>(2006)의 슈퍼맨 역으로
오디션을 봤지만 슈퍼맨 역에 낙점된 건 브랜든 라우스였다. 물론 이 작품이 혹평에 시달리며 흥행에 고전했던
걸 생각한다면 전화위복일지도 모르겠지만. 한편 <007 카지노
로얄>(2006)에 출연해 제임스 본드가 될 수도 있었다. 감독이었던
마틴 캠벨까지도 그가 제임스 본드를 맡는 것을 지지하며 스크린 테스트까지 진행했지만 영화사에선 조금 더 나이 든 제임스 본드를 원했고 결국 다니엘
크레이그를 선택했다. 반대로 나이가 많아서 출연이 불발되기도 했다.
<트와일라잇>(2008)의 원작자 스테파니 메이어는 <몬테 크리스토 백작>(2002)의 카빌을 보고 에드워드
컬렌 역에 적격이라 생각하며 그에게 역할을 주길 원했다. 하지만 결국
17세 역할을 맡기엔 너무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캐스팅 선상에서 제외됐다. 그리고 이미
잘 알려진 대로 기회는 로버트 패틴슨의 것이었다. 카빌은 <해리포터: 불의 잔>(2005)에서도 로버트 패틴슨에게 기회를 내준 적이
있었다. <배트맨 비긴스>(2005)의 배트맨
역으로 거론됐던 건 오디션을 본 것도 아니었으니 앞선 사례들에 비하면 아쉬울 일도 아닐 정도다.
물론 그가 대단한 기회를 상실하면서 손가락만 빨고 있었던 건 아니었다. 카빌에게
유명세를 안긴 건 영국의 문제적 왕이었던 헨리 8세를 다룬 TV시리즈 <튜더스>였다. 헨리 8세와 가까운 사이로서 그의 종잡을 수 없는 행적을 보좌한 찰스 브랜던을 연기한 카빌은 수많은 등장인물들이 죽음을
맞이한 탓에 오랫동안 캐릭터의 명운을 지키기 힘들었던 이 시리즈가 시즌 4까지 진행되는 2007년부터 2010년 동안 죽지 않고 살아남은 희귀한 인물로 등장했다. 그만큼 카빌의 인지도도 서서히 오르기 시작했다. 비록 인상적인 역할은
아니었지만 매튜 본 감독의 판타지 로맨스물인 <스타더스트>(2007)와
우디 앨런의 코미디물인 <왓에버 웍스>(2009)에
출연하며 할리우드에서 경력을 쌓아나가던 카빌은 마침내 첫 번째 주연작을 얻게 된다.
그리스 신화를 배경에 둔 블록버스터 <신들의 전쟁>(2011)에서 신이 간택한 영웅 테세우스 역을 맡게 된 카빌은 특별한 주문을 받게 된다. 식스팩도 아닌 에잇팩을 만들 것. 금빛으로 반짝이는 화려한 의상과
미장센이 넘실거리는 영화적 분위기와 달리 시종일관 윗옷을 입지 않고 상체를 드러내는 신이 많은 작품에서 그의 몸은 단단한 근육으로 무장한 갑옷과도
같은 역할을 해야만 했다. 결국 체지방 6%대의 조각과도
같은 육체로 거듭난 그는 격렬한 액션신을 소화해 냈지만 심각한 혹평에 시달리며 기대 이하의 반응을 경험해야 했다.
게다가 이듬해에 공개된 액션 스릴러물 <콜드 라잇 오브 데이>(2012)에선 브루스 윌리스와 시고니 위버라는 쟁쟁한 베테랑 배우들과 함께 출연하며 기대를 모았음에도
신랄한 혹평에 시달리며 대중적으로도 좋은 반응을 얻기 어려웠다. 심지어 세계적인 평점사이트로 신선한
토마토와 썩은 토마토로 평점을 매기는 로튼토마토닷컴에선 신선도 5%를 기록하는 수모를 얻게 됐다. 하지만 다행인 건 이 작품들 이후로 카빌에게 큰 기회가 주어졌다는 사실이다.
2011년, 카빌은 비로소
자신을 각인시킬 수 있는 역할을 제안하는 서류에 사인을 하게 된다. 과거 슈퍼맨이 되고자 했던 카빌은
결국 새로운 슈퍼맨 수트의 주인공으로 낙점됐다. 새로운 슈퍼맨 시리즈이자 DC 코믹스 세계관을 격발하는 첫 번째 실탄이라 할 수 있는 <맨
오브 스틸>(2013)에서 슈퍼맨을 연기하게 된 것이다. “슈퍼히어로의
신전에서 슈퍼맨은 가장 많이 알려져 있고 언제나 존경 받는 캐릭터였다. 그가 빅스크린으로 복귀하는 과정의
일부가 될 수 있다니 영광스럽다.”
카빌의 말처럼 영화가 공개되기 전부터 영화화되는 슈퍼맨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지대했고 그 관심은 자연스럽게 카빌에게
이어졌다. 그리고 카빌은 매일 아침마다 일어나 “나는 슈퍼맨이다”라는 주문을 외우며 최선을 다해 역할에 몰두했다. 무엇보다도 신체적으로 슈퍼맨에 걸맞은 체형을 만들고 유지하는데 흐트러짐이 없도록 만전을 기했다. 그건 단순히 캐릭터에 어울리는 육체적 조건을 만드는 것 이상의 작업이었다. “만약
내가 건강하지 못한 상태로 활보하면 사람들은 슈퍼맨이라 생각하며 충격을 받을지도 모른다. 그에 대한
책임감이 있다.”
사실 이런 책임감은 지나친 몰입이거나 과한 발상이라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슈퍼맨과 같은 세기적인 아이콘을 연기한다는 건 결국 슈퍼히어로의 코스튬 이상의 상징성을 입게 되는 것이다.
<맨 오브 스틸>과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2016)으로 두 번에
걸쳐 슈퍼맨을 연기한 카빌은 새로운 시대의 슈퍼맨으로서 완전히 각인됐다. 마블의 <어벤져스> 격인 DC의 <저스티스 리그>를 영화화한 두 편의 작품도 예정돼 있다. 그만큼 슈퍼맨에 걸맞은 육체를 유지하고 그 이미지를 수호하는 건 프로다운 행위이자 각오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다만 작품이 세간에서 어떤 평가를 받는가라는 문제는 배우가 책임질 수 없는 지점이니 배우로서
노력할 수밖에.
물론 카빌이 슈퍼맨 수트만 입는 배우는 아니다. 그가 슈퍼맨으로 분한
두 작품 사이에 공개된 영화 <맨 프롬 엉클>(2015)에선
섹시하면서도 능청스러운 스파이로서의 매력을 발산한 것을 보면 카빌의 야심이 단순히 빨간 망토를 두른 슈퍼히어로에 국한돼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나는 많은 관객들을 동원할 수 있기 때문에 제작자들이 고용하길 원하는 이름 중 하나가
되길 바란다.” 카빌의 말이 단순히 대중에게 인기를 끄는 상업적인 배우가 되길 바란다는 의미만은 아닐 것이다. 대중을
만족시킬 수 있는 연기를 통해 상업성을 인정 받을 수 있는 배우가 되길 원한다는 의미에 가깝다. 그리고
올해엔 보다 현실적인 인물로서 스크린에 등장할 예정이다. 그는 이라크 배경의 전쟁드라마인 <샌드 캐슬>(2016)에서 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군인으로서
두 발을 땅에 딛고 싸울 예정이다. 카빌에게 슈퍼맨이란 자신이 맡은 하나의 책임감일 뿐이다.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질 수많은 책임감을 위해 마음을 비우고 있다. “할리우드엔
나보다 멋진 사람들과 나보다 나은 배우들이 있다. 나는 그저 그들을 따라잡으며 능가하는 수밖에 없다.” 지나치게 심각하지도, 지나치게 낙천적이지도 않은 진지함, 헨리 카빌의 가능성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폴 러드에게 있어서 앤트맨 수트를 입는다는
건 새로운 도전이자 설레는 경험이었다. 동시에 이 또한 하나의 과정일 뿐이었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건 앤트맨 수트도, 영화도 아니었다.
마블 스튜디오의 총제작자인 케빈 파이기는 <앤트맨>(2015)에 폴 러드를 캐스팅한 것에 대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수트를 입고 좋은 결과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이가 하찮은 사기꾼 출신인데, 그가
폴 러드 같은 사람이라고 보자. 그는 다른 사람의 집에 침입하는 등 다소 불미스러운 행동을 해도 여전히
매력적일 수 있고, 당신이 응원할만한 사람이기에 그의 구원을 만족하게 될 것이다.” 만약 당신이 <앤트맨>을 관람했거나
관람하게 된다면 이 의견에 대해서 쉽게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연기한 <앤트맨>의 스콧 랭은 케빈 파이기의 말처럼 응원할만한
매력이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앤트맨>의 스콧 랭은 마블 코믹스의 세계관의 영화적 세계관을 의미하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의 히어로들 가운데 <아이언맨>의 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스타로드(크리스 프랫)에 비견될 수 있을 만큼 유머 감각이
차고 넘치는 캐릭터다. 동시에 MCU 안에서 유일하게 부성애를
지닌 캐릭터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앤트맨>은 폴 러드에게 개인적으로 진지하고 긍정적인 의미를 남긴 작품이었다. “이 영화를 내 아이들과 함께 볼
수 있을 거라는 점이 정말 마음에 든다. 내 딸은 다섯 살이라 아마 별 관심이 없을 거 같은데 열 살짜리
아들은 재미있게 볼 거다. 아이들이 촬영장에 온 적이 있는데 아들이 수트와 헬멧을 보고 정신을 못 차렸다. 정말 멋진 일이라 생각했다고 하더라. 아들과 나란히 앉아서 영화를
볼 거다. 정말 좋을 것 같다.”이건 폴 러드가 아니라 <앤트맨> 속의 스콧 랭이 하는 대사라 해도 믿을 수 있을
거다. 그러니까 케빈 파이기가 보는 눈이 있었단 말이다.
혹자는 ‘이런 배우가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왔을까?’ 궁금하겠지만
사실 폴 러드는 아주 오래 전부터 할리우드에서 활동해온 배우였다. 그렇다고 그가 변변찮은 무명 시절을
견딘 불운한 배우였던 건 아니다. 다만 그는 망가짐을 두려워하지 않는,
되레 뻔뻔하게 즐기는 코미디 배우로서 오랜 경력을 쌓아왔다. <앤트맨>의 캐스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진 <앵커맨>(2004)은 웰 페럴과 스티븐 카렐이 출연하는 코미디물이다. 이미
두 배우의 출연만으로도 성격이 명확하게 보이는 이 코미디물에서 폴 러드는 예측불허의 얼간이 짓을 일삼는 방송뉴스팀의 직원으로 등장한다. 큼지막한 콧수염까지 붙인 채로 등장한다. 진지함이라곤 1g조차 없어 보이는 <앵커맨>의
폴 러드는 <앤트맨>의 폴 러드와 완전히 다른
사람이면서도 종종 닮았다. <앤트맨>의 스콧 랭은
언제나 긍정적인 방향을 모색하는 인물이다. 무모하게 여겨지는 상황에서도 최선의 방향을 찾아 달려나가고
백치미 돋는 유머 감각을 잃지 않는다. 어떤 식으로든 보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진정시키는 힘이 있다. <앤트맨>이 기존의 마블 히어로물들과 달리 가족드라마적인
안정감을 선사하는 것도 폴 러드라는 배우가 품은 그런 자질과 무관하지 않다.
앞서 언급한 <앵커맨>의 제작자였던
주드 아패토우의 연출작인 <40살까지 못해본 남자>(2007)와 <사고친 후에>(2007)에서도 폴 러드는 선하지만 어딘가
덜 떨어진 인상의 남자들과 어울리며 하향평준화된 삶을 마냥 즐기듯 전전한다. 비록 한가운데 서서 주목을
독점하는 주연 캐릭터는 아니지만 그 주변부에서 타인의 삶을 진지하게 경청하면서도 백치미 넘치는 태도로 위로를 전한다. 심지어 <아워 이디엇 브라더>(2011)에선
우울증을 호소하는 경찰에게 천진난만한 태도로 대마를 한 움큼 쥐어주다 감옥에 수감돼서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인물을 연기한다. 인간적인 공감대를 쥐어주는 것이 그에겐 무엇보다도 중요한 기준이다. “캐릭터를
인간적으로 만드는 것이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비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앤트맨>의 스콧 랭 역시 슈퍼히어로로서 보여주는 기상천외한 활약상만큼이나 돋보이는 건 공감할만한 진심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말 멋진 격투신이나 화려한 시각효과가 눈엔 즐거울지 몰라도 깊이는 떨어진다. 캐릭터들과 공감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 이 영화는 이러한
요소들을 모두 갖추고 있다. 멋진 액션신은 물론 격투신들은 정말 최고다. 이전엔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볼 수 있을 거다. 일부 기술은 최초로
사용된 기법이기도 하고, 정말 획기적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정말 기억했으면 하는 것은 캐릭터들과 그들간의 관계다.”
물론 슈퍼히어로가 되는 과정이 그저 마음을 다스리는 것만으로 가능했을 리가. 하지만
다채로운 고생문을 열고 닫았을 것이라 예상했던 것에 비해 폴 러드의 답변은 일관되게 유쾌한 톤을 유지한다. “촬영하는
것은 매우 즐거웠다. 솔직히 말하면 싸우는 것이 재미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는
싸울 기회가 많지 않았다. 그래서 트레이닝과 액션신들을 준비하는 것 자체로도 정말 즐거웠다.” 다만 유일하게 불편한 건 와이어의 안장이었다. “원치
않는 곳으로 파고들어서. 그걸 빼면 그리 나쁘지 않았다. 재미있더라. 공중에 매달려서 ‘이게 내 일입니다. 이렇게 하루를 보내죠’라고 말하는 경우도 꽤 많았다.” 또한 스태프의 도움을 받아서 입는
데에만 30분의 시간이 소요되는 디테일한 수트를 입고 연기한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독특한 경험이었다고
말한다. “이런 의상을 입게 되면 캐릭터 표현에 굉장한 도움이 된다.
서는 자세부터 다르고 생각하는 것마저 달라진다. 처음볼 땐 너무 좋아서 아찔했다. 헬맷을 처음 써봤을 땐 어린 시절에 봤던 스톰트루퍼 헬맷이 생각났다. 만약
어린 나이로 돌아가면 많은 그림을 그렸을 거다.”
한편
<앤트맨>에서 폴 러드는 단순히 연기에만 참여한 것이 아니다. <앵커맨>의 연출을 맡았던 감독 아담 맥케이와 함께 시나리오
각본에 참여했다. 사실 폴 러드에겐 이미 영화 기획과 각본, 제작
경력이 존재했다. 그럼에도 <앤트맨>은 그에게 새로운 도전이었다. “이런 작업은 항상 저예산 코미디
작품에서 경험했던 거다. 이런 스케일에서는 처음이었다.” 그럼에도 그에겐 당연히 의미가
있는 도전이었다. “각본에 참여하면 모든 캐릭터에 대해 깊이 이해할 수 있다. 항상 캐릭터의 의도를 생각하고 내 선택이 다른 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처음보다 스토리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도 더욱 깊어졌다.” 그리고 덕분에 우린 이토록 유쾌한 앤트맨을 만날 수 있게 됐다. “우리가 만드는 건
영화일 뿐이다. 인생을 살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웃는 거다.
정말 진심으로 웃는 일 말이다.” 폴 러드의 말을 따르자면 그에게 있어서 영화란 인생의 낙을 찾는 여정에 가깝다. 그러니까 웃음을 찾아가기 위해 건설하는 기차 레일과도 같은
것이랄까. 참고로 폴 러드는 계약상 앤트맨 수트를 세 번 이상 입어야 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토록 유쾌한 히어로를 볼 기회가 최소한 두 번 이상 더 남아있단 말이다. 이보다 좋을 수 있겠는가.
이미 시대를 대표하는 배우로
꼽히는 케이트 윈슬렛은 그럼에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진화를 거듭하는 배우다. 그녀는 여전히 배우로서의
삶을 더욱 사랑하게 만들어줄 작품을 찾고 있다.
“나는 열셋 혹은
열네 살 때부터 항상 실제보다 나이를 더 먹은 것처럼 느꼈다.” 영국 출신으로 11세 무렵부터 연기를 배운 케이트 윈슬렛은 어려서부터 남달랐다. 그녀의
연기 데뷔는 13세가 된 1991년 영국의 TV시리즈물을 통해서 이뤄졌다. 스크린 데뷔작도 10대가 지나기 전인 17세에 찾아왔다. 지금은 할리우드의 대가가 됐지만 한때 B급 장르물의 대가로서 악명이
자자했던 피터 잭슨의 <천상의 피조물>(1994)이
바로 그것이었다. 끔찍한 실화를 밑그림으로 삼고 있지만 광기적인 판타지로 채색된 이 영화는 비현실적인
망상에 사로잡힌 두 소녀의 기괴한 우정이 끝내 한 소녀의 어머니를 살해하기까지의 내용을 그리고 있는데 여기서 친구의 엄마를 살해하는데 조력하는
폴린 역으로 등장하는 윈슬렛은 나이에 비해 조숙한 외모만큼이나 섬뜩한 연기력으로 눈길을 끌었고, 영국
아카데미 여우주연상까지 수상했다. 조부모와 부모 그리고 삼촌까지 극단에서 활동하는 배우 집안에서 태어난
그녀에게 배우로서의 삶은 어쩌면 운명이었다. 무엇보다도 그녀에겐 확실히 타고난 유전자가 있었던 것 같다.
윈슬렛은 제인 오스틴의 동명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이안 감독의 <센스
앤 센서빌리티>(1995)에서 연기한 마리안 대시우드 역을 통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노미네이트되는
영예를 얻었다. 그러니까 10대가 지나가기도 전에 케이트
윈슬렛은 배우로서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영광에 근접했다는 말이다. 하지만 실제로 윈슬렛에게 있어서
그건 이른 경험이라기 보단 시작에 가까웠다. <센스 앤 센서빌리티> 이후로 윈슬렛은 시대극의 경력을 이어나갔고, 자신의 역량을
십분 발휘해냈다. 19세기 영국에서 대담한 주제를 소설로 담아냈던 토마스 하디가 남긴 마지막 소설을
영화화한 <쥬드>는 종교적인 관습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19세기 영국을 배경에 둔 비극적인 러브스토리다. 자신의
사촌을 사랑하게 된 여인 수를 연기한 윈슬렛은 애절한 사랑을 가로막는 시대적 한계를 절감하고 운명을 받아들이는 여인의 가련하고도 강인한 표정을
완벽하게 체화해냈다. 한편 같은 해에 공개된 <햄릿>(1996)에서는 그 유명한 오필리어를 연기한다. 아버지를 잃고
미쳐버린 뒤 끝내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는 오필리어의 광기에 압도적인 페이소스를 입히는데 성공했다. <타이타닉>(1997)에서도 비극과 대면하는 여인의 세계관은 거듭 이어졌다. 필연적인
비극을 향해 항해하는 배 위에서 자신이 꿈꾸는 삶과 사랑을 선택하는 열정적인 여인 로즈를 연기했다. 윈슬렛은
그렇게 비극적인 운명 앞에서 선택의 기로에 놓인 여인으로서의 운명을 연기하는데 능했다. 혹은 능해질
수밖에 없었다.
사실 윈슬렛이 연기한 여성들은 자신을 억압하는 시대적 편견이나 관습을 견뎌내야 하거나 평범한 삶에 깃든 내밀한
욕망을 향해 손을 뻗는 경우가 많았고 그때마다 케이트 윈슬렛은 고요하면서도 강인하고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대혁명
이후로 도래한 삼엄한 공포정치 속에서 금기시된 음란소설에 탐닉하며 표현의 자유를 지지하는 여인 마들렌으로 분한 <퀼스>(2000)와 무료한 삶에 찾아온 예기치 못한 불륜에 빠져드는 여성 사라를 연기한 <리틀 칠드런>(2006), 제2차 세계대전의 광풍 속에서 영문도 모른 채 독일의 첩자로 내몰리게 된 여인 한나를 연기한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2008)
그리고 안온하게 위장된 권태로운 삶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듯 살아가는 여인 에이프릴로 등장한 <레볼루셔너리 로드>(2009)까지, 이 모든 작품에서 윈슬렛은 저마다 다른 환경에 놓인 각기 다른 여인을 연기하면서도 결국 ‘나’라는 존재 혹은 ‘나’라는 여성에 대한 자문을 거듭한다. 자신도 모르는 자신 혹은 자신이
알고자 하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시대적 금기의 담을 넘거나 위장된 삶 너머로 시선을 돌린다. 이는
근작인 <레이버 데이>(2013)에서 또한 마찬가지다. 공황장애로 인해 세상과 자신의 삶을 분리시키며 유일한 가족인 어린 아들에게 기대며 살아가는데 우연히 맞닥뜨린
탈옥수로 인해 기이한 방식으로 삶을 회복해 나간다. 불안하고 예민한 심리에 묶여 깊게 침전해있던 여성으로서의
욕망이 서서히 수면 위로 떠올라 그녀에게 현실적인 의지를 부여한다. 금새 꺼져버릴지라도 가장 밝게 빛나는
한 순간을 위해 타오르는 성냥과도 같은 행복을 추구하는 존재의 가련한 슬픔과 강인한 의지가 동시에 전해진다. 윈슬렛은
바로 그런 배우였다.
<어 리틀 카오스>(2015)를
통해 오랜만에 시대극으로 돌아온
그녀는 루이 14세의 베르사유 궁전의 분수 디자인을 맡기 위해 경쟁하는 정원사 사빈 역을 맡았다. “사빈느와 나 사이엔 닮은 점이 많다고 느꼈다. 그녀는 일생 동안
큰 슬픔과 어려움을 여러 번 이겨냈고, 내 삶에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녀가 그 모든 슬픔과 어려움을 극복했다는 사실에 있어 존경심이 든다. 그녀는 슬픔을 질질
끌고 가지 않았으며, 세상이 그녀를 불쌍히 여길 거라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단지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일으켜 세우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녀는
매우 긍정적이고 흥이 많다. 시대극에서 이러한 캐릭터를 많이 만날 순 없지.” 사빈은 윈슬렛이 연기했던 시대극 속의 여자들과는 또 다른 목표를 제시했다. 한편 <타이타닉> 이후로
대작 출연을 고사한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상업영화 출연 경력이 드물었던 그녀는 최근 SF시리즈물인 <다이버전트>(2014)와 <인서전트>(2015)에 연이어 출연하며 새로운 활로를
모색했다. 그녀 스스로 새로운 경력의 필요성을 느낀 것일까?
“사람들은 말한다. “당신은 독립영화를 하겠다는 의식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처럼 보인다”고. 절대 그렇지 않다. 모든
작품 이후에 항상 얼마나 다른 걸 보여줄 수 있을지를 고려한다. 내게 도전이 될 수 있는지, 영감을 줄 수 있는지 그리고 지금보다 내 직업을 더욱 사랑할 수 있게 될 것인지 말이다.” 그녀에게 상업적인 할리우드 대작이 도전이 되고, 영감을
줄만한 때가 된 것이다. “사실 나는 상당히 운이 좋다. 오직
나 자신을 위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지금까지 불평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비범한 것을 배울 수 있는 훌륭한 사람들과 함께 일할 수 있는 환경 속에서 살아왔다. 매우 흥미롭고, 도전적이며, 창조적인
자극을 주는 일을 끊임없이 해왔다.” 윈슬렛은
실패라는 단어와 어울리는 경력을 좀처럼 쌓지 않았다. 이미 이 시대를 대표하는 배우 중 하나로 꼽히지만
그녀의 전성기는 아직도 지나지 않은 것 같다. 아직도 그녀는 길을 찾고 있다. 자신이 사랑하는 배우로서의 삶을 더욱 사랑하게 만드는 도전과 영감의 길 위에서, 케이트 윈슬렛이라는 이름으로.
셰익스피어 해석의 권위자로 꼽히는 감독
케네스 브래너는 언젠가부터 셰익스피어의 것이 아닌 세계를 탐하기 시작했다. 셰익스피어를 등진 것이 아니다. 셰익스피어의 어깨 너머로 새로운 세상을 탐구한다는 말이다.
케네스 브래너가 마블 유니버스와 디즈니 왕국에 접근하는 방식은 기존에 자신이 해왔던 ‘셰익스피어적인’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토르: 천둥의
신>(2011)에 대해 이렇게 생각했다. “이건 거대한 규모 안에서 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다. 거창한 허구의
시나리오 한가운데 있는 인간의 이야기.” 그리고 그는 <신데렐라>(2015)에 대해서도 명확한 관점을 고수했다. “처음 이 작업에 관여하게 됐을 때 이렇게 말했다. ‘내가 생각하는
큰 그림이 뭔지 알 거다. 그건 그 길에서 벗어나는 거야’라고.” 공통분모는
단 하나였다. “이건 셰익스피어로부터 비롯됐다.”셰익스피어적인 관점 안에서 이는 모두 지극히 가능한 이야기였던
것이다.
대부분의 배우 출신 감독들과 달리 브래너는 처음부터 배우이자 감독이었다. 그는
자신의 경력 초기부터 카메라 뒤에 서서 ‘액션!’과 ‘컷!’을 외쳤다. 물론
자신의 연출작에서 주연을 맡게 되는 경우엔 예외였지만. 그리고 그의 데뷔 연출작인 <헨리 5세>(1989)부터
그 예외적인 경력이었다. 휴전 중이던 프랑스와의 백년전쟁을 재개하며 프랑스에 상륙해 대승을 거둔 영국의
왕 헨리 5세에 관한 작품으로 대단히 비장하고 엄숙한 분위기로 일관된 작품이다. 동명의 셰익스피어 희곡을 각색한 이 작품을 통해 처음으로 감독 경력에 발을 디딘 브래너는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감독상 부문과 남우주연상 부문 후보로 지명되며 전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다. 그의 차기작 <환생>(1991)이 할리우드에서 제작된 것도 그런 덕분이다.
<환생>은 40여 년의 세월을 넘나드는 전생과 윤회에 관한 미스터리물이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시제에 따라 흑백과 컬러 영상으로 전환되는 이 작품은 여러 면에서 알프레도 히치콕의 서스펜스 감각을 연상시킨다. 실제로 브래너 역시 이런 영향력을 언급한 바 있다. “항상 히치콕을
사랑했고, <환생>의 준비를 시작할 때부터 <다이얼 M을 돌려라>(1954)를
비롯해 <레베카>(1940), <스펠바운드>(1945), <오명>(1946) 등 수많은 히치콕의
영화들을 다시 봤다.”그리고 당시 브래너의 부인이었던 엠마 톰슨과
함께 자신의 영화에서 주연을 맡은 브래너에게 이 작품은 비평적으로도, 상업적으로도 성공적인 결과물이었다. 하지만 그에게 확고한 명성을 안겨준 건 결국 히치콕이 아니라 셰익스피어일 수밖에 없었다.
<헛소동>(1993)은
케네스 브래너라는 감독에게 있어서 대표작으로 꼽힐 만한 작품이다. 브래너 자신과 엠마 톰슨은 물론 덴젤
워싱턴, 키아누 리브스, 케이트 베킨세일, 마이클 키튼 등 대중적으로 친숙한 배우들이 대거 등장하는 이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동명 희극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가운데서도 가장 유쾌한 작품이라 알려진 것처럼 브래너의
<헛소동>은 연극적인 연출력이 두드러지는, 유쾌하고
낭만적인 기운이 충만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후보로 오르기도 했다. 이러한 성공에 고무된 덕분인지 브래너는 대작의 야심을 품게 됐는데 영국계 여류 작가인 메리 셸비의 고전 소설 <프랑켄슈타인>을 영화화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가 공동제작자로 참여했고, 로버트 드
니로가 주연으로 합세하며 큰 그림이 완성됐다. 브래너의 <프랑켄슈타인>은 대중적인 성공을 거뒀지만 그의 전작들에 비하면 지독하게 심각하고 무거운 작품이었다. 특유의 위트나 페이소스가 실종된 이 작품에 대해서 평단의 반응은 이례적으로 차가웠다. 하지만 진정한 야심작은 따로 있었다.
브래너가 직접 각색하고 연출한 <햄릿>(1996)은 셰익스피어가 집필한 희곡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영화적인 원형을 만드는 작업이었다. 무려 네 시간에 달하는 러닝타임은 그런 노력이 반영된 결과라 해도 좋을 것이다. 원작에 등장하는 주옥 같은 대사가 고스란히 영화에서 발음되고, 모든
장면들이 존재하는 <햄릿>의 실사판은 여전히 브래너의
것이 유일하다. 높은 완성도를 평가받은 로렌스 올리비에 감독의
<햄릿>(1948) 역시 그런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게다가 브래너의 <햄릿>은
셰익스피어만을 위한 제단이 아니라 브래너 자신을 세우는 새로운 무대이기도 했다.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의
중세 덴마크를 배경에 둔 셰익스피어의 원작과 달리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19세기 덴마크로 시대배경을
옮긴 브래너는 이를 통해 보다 현대적인 인상의 <햄릿>을
완성했다. 또한 대사와 인물에만 집중하는 연극적인 연출 대신 다양한 몽타주를 동원하는 영화적 기법을
통해 지극히 영화적인 <햄릿>을 완성해냈다. 또한 에너지가 넘치는 브래너 특유의 연기가 반영된 햄릿은 그 어느 햄릿보다도 재기발랄한 개성이 있다. 브래너에게 <햄릿>은
감독으로서 가장 절정의 경력이었다고 말해도 좋을 작품이다.
<햄릿> 이후로
4년이 지나서야 발표한 <사랑의 고통이 사라지다>(2000)와 그로부터 다시 6년이 지나 공개된 <당신 좋으실 대로>(2006)는 모두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영화화한 결과물이었지만 그는 셰익스피어라는 이름을 통해 새로운 영광을 얻진 못했다. ‘추락’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새로운 전환점이 필요하다는 건 확실했다. 주드 로와 마이클
케인이 출연한 <추적>(2007)은 부조리극의
대가 해롤드 핀터의 각본을 브래너 영화화한 작품으로서 그가 연극이라는 초심으로 되돌아간 듯한 인상을 준다는 점에서 각별한 인상을 준다. 그 이후로 그는 셰익스피어의 그림자에서 벗어난 것처럼 할리우드에서 최적화된 상업적 블록버스터를 연이어 연출했다. <토르: 천둥의 신>과
액션 스릴러물인 <잭 라이언: 코드네임 쉐도우>(2014) 그리고 <신데렐라>까지, 그의 최근작들은 셰익스피어의 인장이 명확했던 브래너의
과거와 완벽하게 분리된 인상이다. 하지만 그는 지금 자신을 매료시킨 셰익스피어처럼 또 다른 무언가에
매료되고 있을 뿐일지도 모른다. “동화는 2000년이 넘는
지난 세월 동안 다양한 문화권 안에서 구전돼서 손쉽게 응용됐고, 많은 각색을 거쳐왔다. 보다 적극적인, 더욱 21세기적인
캐릭터로, 새로운 느낌의 신데렐라를 만드는 게 중요했다.”셰익스피어에 주목하고 해체시킨 방식으로 슈퍼히어로와 고전동화의 세계관을 응시한다.
브래너의 연출 차기작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일련의 뉴스에서는 그가 <토르>의 새로운 시리즈에 복귀를 희망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물론
결과는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 확실한 건 케네스 브래너의 연출 차기작이 셰익스피어라는 자장 안에서 맴도는
작품이 아닐 것이란 예감이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언젠가
그가 셰익스피어라는 중력으로 다시 발을 디딜지 몰라도 지금의 그는 분명 셰익스피어를 넘어선 우주로 유영하고 있다.
그건 확실하다.
데이비드 에이어의 남자들은 언제나 방아쇠를
당긴다. 흉악한 세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남자들의 사투를 그린다. 자신이
살아온 세상과 닮은 거리에 두 발을 디딘 남자들의 생을 장전한다.
데이비드 에이어는 우직한 감독이다. 그가 연출한 세계관 속의 인물들은
하나 같이 총을 들고 사선을 넘는다. 그리고 그 세계관의 대부분은 LA라는
거대한 도시의 그늘 속에 도사린 위험천만한 범죄 현장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런 특성은 그의 유년
시절 기억과 상당부분 연결돼 있다. “나는 LA 남부에서 자라면서 ‘고대 LA경찰
시절’이라고 일컬었던 그 시절의 경찰들로부터 항상 달아나야 할 짓을 일삼곤 했다.” 본래
에이어가 태어난 곳은 일리노이주의 소도시였지만 유년시절에 세상을 등진 아버지로 인해 LA 남부의 가난한
친척집에 맡겨졌고 그 험한 거리에서 빛보단 어둠에 익숙한 소년으로 자랐다. 그런 그가 LA를 배경으로 둔 범죄물에 천착하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유년 시절의 질풍노도에 대한 빚을 갚기 위해서는 아닌 것 같다. “LA경찰은 다른 기구다. 80년대나 90년대의 경찰조직이 아니다. 현재 그 인근의 치안상태가 반영된 조직이다. 조직이 진화해왔으니
영화도 그런 사실이 반영돼서 진화했다.”
감독으로 데뷔하기 전 각본가로서 활동했던 시절에도 그는 LA의
흉악한 단면을 마주한 경찰을 소재로 둔 이야기에 천착해왔다. <트레이닝 데이>(2001), <다크 블루>(2002),
<S.W.A.T. 특수기동대>(2003)를 통해서 저마다 형태가 다른 LA경찰들의 일상을 묘사했다. 그 중에서도 덴젤 워싱턴과 에단 호크가
호흡을 맞춘 <트레이닝 데이>는 그에게 상당히
절실한 작품이었다. “나는 할리우드에서 일하길 원했다. 그래서
나를 위해 전혀 시도되지 않은 무언가를 썼다.” <트레이닝 데이>는
데이비드 에이어가 감독의 지위를 확보한 지금에도 여전히 중요한 경력으로 회자되는 작품이다. 그의 연출작들
가운데 <트레이닝 데이>의 중력 안에 놓여있는
것처럼 보이는 작품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크리스찬 베일 주연의 <하쉬
타임>(2005),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스트리트
킹>(2008), 제이크 질렌할과 마이클 페냐가 듀오로 등장하는 <엔드 오브 왓치>(2012)는 총격이 난무하는 위험한 거리를
누비는 LA경찰을 소재로 두거나 그와 깊게 연관된 작품이다. 그
중에서도 <스트리트 킹>은 LA경찰의 내부 비리를 고발하게 되는 처지로 몰린 어느 경찰의 사투를 다룬다는 점에서 <트레이닝 데이>와 가장 근접한 관점의 이야기를 끌어안았다. 한편 <하쉬 타임>과 <엔드 오브 왓치>는 무법 천지 같은 LA의 흉악한 풍경 속에서 차를 타고 누비는 두 남자의 동선을 따라간다는 점에서 <트레이닝 데이>와 유사한 시점을 담아낸다. 무엇보다도 세 작품은 <트레이닝 데이>의 누아르적인 결말을 연상시킨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이런
면모는 에이어의 또 다른 연출작인 <사보타지>(2014)와 <퓨리>(2014)에서도 일관되게 이어진다.
그 가운데서도 <엔드 오브 왓치>는 데이비드 에이어라는 감독의 경력 안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1인칭 시점의 캠코더 촬영 컷을 가미하며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태로 만들어진 이 작품은 LA경찰
두 사람의 동선을 부지런히 쫓으며 생생한 현장감을 부여한다. 제복을 입고 경찰서와 순찰자, 거리를 오가는 두 경찰과 그 주변부를 살피는 카메라는 LA경찰의
실제적인 삶을 직접적으로 대면하는 듯한 체험적인 쾌감과 긴장감을 도모한다. 극적인 형태의 기존 작품들과
형식적으로도 차별적인 인상을 전달한다는 점에서 더욱 두드러지는 면모가 있다. 그저 그런 범작 취급을
받았던 전작들과 달리 대단한 수작으로 평가를 받았던 <엔드 오브 왓치> 이후 에이어가 발표한 <사보타지>는 최정예 마약검거 특수부대가 미궁의 음모에 휘말리는 내용을 그린다.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주연을 맡은 이 작품은 전작에 대한 평가와 완벽하게 대비를 이룰 정도로 혹평을 얻었다. 하지만
같은 해에 발표된 <퓨리>를 통해서 에이어는 다시
한번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낸다.
<퓨리>는 영화의 배경만으로도 데이비드 에이어의 경력 안에서 이질적인 위치를 차지한 작품이다. LA의 골목을 전전하는 경찰들 대신 제2차 세계대전의 막바지에 치달은
독일 전선에서 탱크에 몸을 실은 미군들이 스크린에 등장한다. 하지만
<퓨리>는 데이비드 에이어의 호기심을 당길만한 세계였다. “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 그리고 삼촌 등 수많은 친인척들이 전쟁에 참여했다. 나
또한 해군에서 복무했고. 그래서 전쟁이란 내게 항상 사적인 소재이자 가족사 같은 것이었다. 전쟁에 대해 알면 알수록 언제나 이분법적이고, 도덕적인 명분이 있는
일처럼 보였는데 실제로도 그랬다. 그러니까 그건 선악의 대립이었다는 말이다. 다만 참호에서 싸우는 사내들에겐 잔혹한 일이었다. 전쟁은 매우 암담했다. 그걸 보여주고 싶었다. 대단히 긍정적인 결과로 닿았지만 거기엔 사내들이
감당해야 하는 부당한 대가가 있었다는 것을.” 에이어는
이런 깨달음을 바탕으로 <퓨리>를 참혹한 전쟁물
이상의 휴먼드라마로 격상시켰다.
사실 에이어가 연출해온 LA 배경의 범죄물 속에서 경찰들이 감당하는
긴장감은 전장의 그것만큼이나 공포스럽다. <퓨리>는
에이어가 줄곧 그려왔던 두려움의 세계를 보다 사실적인 비극 안에 세워 넣고 밀어가는 작업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퓨리>는 에이어가 그린 새로운 풍경일
뿐 일관성 있는 감정을 담아낸 세계관이다. 게다가 <퓨리>는 에이어의 초기 각본작이었던 <U-571>(2000)과
마찬가지로 제2차 세계대전 배경의 작품이며 수많은 적에게 둘러싸인 잠수함 한 대와 탱크 한 대에 모든
것을 걸고 싸우는 군인들의 사투를 다룬다는 점에서 데이비드 에이어라는 작가의 인장을 재확인시킨다. 물론 <퓨리>의 최후반부 전투신이 지나치게 과장된 무리수처럼
여겨지는 측면이 있지만 <퓨리>가 발하는 휴머니즘의
감동을 가릴 정도는 아니다. 무엇보다도 <퓨리>는 LA라는 지정학적 특수성 안에서 맴돌던 에이어의 세계관에서
벗어나 전세계적인 보편성을 확보하고 완결해냈다는 점에서 발전적인 성취로 여겨질 만하다. 물론 <퓨리> 역시 총을 든 사내들의 세계관이란 점에서 에이어의
세계관은 여전히 같은 동심원 속에 놓여있다. 그는 전장 속을 누비는 사내들의 이야기 외엔 관심이 없는
걸까? 데이비드 에이어표 로맨틱 코미디라는 것도 존재할 수 있을까? 그의
대답은 이렇다. “물론이다. 매우 진지하게,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일단 당장 그는 2016년 개봉 예정작인 <수어사이드
스쿼드>에 매달릴 예정이다. DC코믹스물 원작인 이
작품은 슈퍼히어로와 대립하는 악당들, 즉 슈퍼 빌런들이 정부 산하에서 죄를 탕감받는다는 명목으로 비밀
임무를 수행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흉악한 범죄물의 세계를 비추던 데이비드 에이어의 카메라가 재생시킬
코믹스의 세계관이라니, 사뭇 궁금하다. 좀처럼 상상하기 힘든
데이비드 에이어표 로맨틱 코미디보다도.
위기의 남자들
데이비드 에이어의 영화 속에선 항상 위기의 남자들이 등장한다. <하쉬 타임>의 짐 데이비스(크리스찬 베일)은 LA경찰을
꿈꾸지만 낙방한 뒤, 위험한 제안을 받게 되고 점차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관계마저 파괴할만한 혼돈으로
빠져드는 불나방 같은 남자다. <스트리트 킹>의
톰 러들로(키아누 리브스)는 오발로 인해 동료를 죽였다는
죄책감 속에서 홀로 사건을 마무리하고자 사지로 뛰어들지만 정작 음모의 덫에 갇힌다. <엔드 오브
왓치>의 브라이언 테일러(제이크 질렌할)와 마이클 자발라(마이클 페냐)는
위험천만한 임무를 즐기듯 수행하는 경찰 파트너이지만 히스패닉 갱들로부터 조여오는 위협을 느낀다. <사보타지>의 존 브리처 와튼(아놀드 슈왈제네거)은 특수부대를 이끄는 리더이지만 갑작스러운 팀원들의 죽음을 통해 정체불명의 위기를 느낀다. <퓨리>는 단 한대의 탱크를 둘러싼 독일군들을 맞이하는
탱크 안 미군들의 긴장감을 결연하게 그린다. 생사의 경계를 넘나드는 혹은 그 경계에 놓인 남자들이 주사위를
굴리듯 방아쇠를 당긴다.
좋은 작품이란 걸작의 반열에 오른 작품을
지칭하는 것만은 아니다. 좋은 감독이란 거장의 면모를 지닌 감독을 지칭하는 것만은 아니다. 라세 할스트롬은 바로 그런 작품을 만든 그런 감독이다.
1946년생인 라세 할스트롬은 40여
년에 달하는 연출 경력을 지닌 60대 후반의 노장 감독이다. 하지만
흔히 그만한 경력을 지닌 감독들에게 손쉽게 동원하는 ‘거장’이나
‘대가’라는 단어에 어울린다고 말하기엔 겸연쩍은 구석이 있다. 물론 그가 연출한 작품 가운데선 기억될만한 수작들이 더러 존재한다. 하지만
라세 할스트롬은 대단한 울림을 전달한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걸작의 반열에 들만한 작품을 연출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거장이나 대가만이 오랜 시절의 경력을 보장받는 건 아니다. 라세 할스트롬은 개별적인 인생을 아우르는
보편적인 감동을 길어 올리는 범작들을 꾸준히 만들어오며 대중과 호흡해온 감독이다.
라세 할스트롬이란 이름만으로도 짐작하겠지만 그는 미국 출신 감독이 아니다. 스웨덴, 그러니까 북유럽 출신 감독이다. 라세 할스트롬과 함께 동시대 할리우드에서
활동한 북유럽 출신 감독으론 레니 할린을 꼽을 수 있다. 하지만 레니 할린은 할리우드에서 이미 옛날
사람이 된지 오래다. 20세기부터 21세기까지 할리우드에서
끊임없이 작품을 연출해온 건 할스트롬이 유일하다. 과거형에 머무르지 않고 현재진행형으로서 할리우드에
자신의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물론 할스트롬의 감독 경력이 할리우드에서 시작된 건 아니었다.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태어난 할스트롬은 소위 말하는, ‘떡잎이 노란
아이’였다. 열살 무렵 단편영화를 연출하며 감독으로서의 비전을
찾은 그는 고등학교 시절에 촬영한 다큐멘터리가 TV방송 전파를 타게 되는 경험을 얻기도 했다. 이 경험은 본격적인 TV시리즈 연출 데뷔로 이어졌고, 10여 년간의 TV시리즈 연출자로서 경력으로 나아갔지만 그의 유명세에
일조한 건 세계적인 스웨디시 팝그룹 ‘아바’였다. 아바의 히트곡 대부분의 뮤직비디오를 연출했으며 아바의 공연실황을 담은 다큐멘터리 <아바: 더 무비>(1977)를
발표하기도 했다. 그리고 할스트롬은 1985년에 발표한 영화 <개 같은 내 인생>을 통해서 보다 확실한 미래로 나아간다.
할스트롬은 <개 같은 내 인생>
이전에도 스웨덴에서 몇 편의 영화를 연출했는데 모두 가정을 배경으로 갈등과 화합을 그린 드라마란 점에서 일관성이 있었다. <개 같은 내 인생> 또한 마찬가지다. 병약한 어머니를 둔 소년의 고독하고도 묵묵한 성장기를 그린 이 작품을 통해서 할스트롬은 골든글로브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했고, 아카데미 각본상과 연출상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됐다. 그 뒤로 한동안 스웨덴에서 영화를 연출해오던 그는 홀리 헌터, 지나
롤랜즈 등 당대의 배우들이 출연한 <사랑의 울타리>(1991)를
통해 할리우드에 진출했고 좋은 평가를 얻었다. 그리고 그 후 할스트롬의 가장 인상적인 연출작 중 하나인 <길버트 그레이프>(1993)를 발표한다.
<길버트 그레이프>는
길버트 그레이프(조니 뎁)라는 청년에 관한 이야기다. 그는 변변찮은 아르바이트 일을 하며 다섯 가족의 가장 노릇을 해낸다. 아버지를
잃은 이후로 충격에 휩싸여 집에만 틀어박혀 있다가 지나친 과체중이 된 어머니와 정신적인 장애가 있는 막내 동생은 그에게 있어서 언제라도 부둥켜
안을 수 있는 혈육이지만 한편으론 벗어날 수 없는 속박이기도 하다. 하지만 <길버트 그레이프>는 가족애를 부정하거나 비판하는 영화가
아니라 살아가다 보면 어찌할 수 없이 매일 같이 직면할 수밖에 없는 운명론적인 삶에 관한 이야기에 가깝다. 그리고
그러한 삶에 종속된 일상이 무기력하게 추락하지 않고 결국 새로운 기류를 타고 짐작할 수 없는 내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응원 같은 결말로 이륙한다. 결핍의 시간을 어제로 밀어내고 충만한
내일을 꿈꾼다.
<길버트 그레이프> 이후로
연출한 <사이더 하우스>(1999)와 <쉬핑 뉴스>(2001), <언피니시드 라이프>(2005) 사이엔 유사한 공통점이 있다. 사생아들을 받아주는
고아원에서 자란 청년의 성장과 정착을 다룬 <사이더 하우스>,
강압적인 아버지 아래서 보낸 유년시절로 인한 자신감이 결여된 삶을 극복해내는 남자의 인생을 살피는
<쉬핑 뉴스>, 모종의 사고로 죽은 아들을 그리워하며 며느리를 원망하고, 친구에게 치명적인 부상을 입힌 곰에게 앙심을 품은 노인의 삶에 관한 <언피니시드
라이프>까지, 자신의 결핍을 극복하거나 그로부터 해방되는
남자들을 다룬다는 점에서 그렇다. 삶의 조류를 거슬러올라가거나 타의적으로 떠밀려가거나 제 자리를 꿋꿋이
지켜나가거나, 저마다 다른 형태로 천착한 결핍을 메우고 치유하는 건 결국 그 주변부에 머무는 관계를
통해서다. 결국 관계를 통해서 자신이 설 자리를 깨닫고, 자신이
의지할 존재를 발견한다. 필연적인 환경이나 불가피한 사건으로 얻은 결핍과 상처가 관계를 통해 치유된다. 평범한 이들의 관계를 통해서 이뤄지는 삶, 그것이 바로 라세 할스트롬의
영화를 관통하는 보편적 정서다.
할스트롬의 작품 속에서 보기 드물게 우화적인 세계관을 지닌 <초콜릿>은 종교적 교리를 바탕에 둔 억압적인 정서를 당연한 규율로 감내하는
마을 주민들 사이에 편입된 한 여인이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며 주민들을 계몽한다는 달콤한 저항을 다룬 작품으로서 시대에 매몰되지 않으려는
어느 개인과 그 가치에 주목한다. 그리고 <초콜릿>은 서로 반목하던 세계의 화해와 화합을 그린다는 점에서 근작인 <로맨틱
레시피>(2014)와 연결된다. 뤼미에르에서 프랑스식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프랑스 여인과 인도식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인도 가족들의 갈등과 화해를 그린 이 작품은 결코 서로 손잡지 않을 것 같은 두 세계의
화합을 그린다는 점에서 할스트롬의 세계관에 종속된다. <사막에서 연어낚시>(2011) 또한 중동과 서방 세계의 갈등 속에서 국면 전환을 꿈꾸는 영국 정부와 예멘의 부호가 손을 잡는
과정을 그린다는 점에서 그렇다.
21세기 이후로 할스트롬은 다양한 방면의 영화들을 만들어 왔다. 중세 시대에 숱한 여성들을 매혹시켰다고 전해지는 전설적인 호색가 카사노바에 관한 <카사노바>(2005)나 미국의 대부호인 하워드 휴즈에
대한 자서전을 날조한 작가에 관한 실화를 다룬 <혹스: 욕망의
법칙>(2006)과 같이 남다른 면모를 지닌 이들의 삶을 조명하는 영화의 메가폰을 잡기도 했다. <디어 존>(2010)이나 <세이프 헤이븐>(2013)과 같이 남녀의 절실함을 바탕에
둔 로맨스물을 영화화하기도 했다. 주인에 대한 충심이 강한 강아지의 절절한 사연을 다룬 <하치 이야기>(2009)도 한편으론 새로운 드라마의 영역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라세 할스트롬의 작품들은 어떤 대단한 경지를 선사할만한 걸작에 대한 기대감으로부터
확실히 멀어지고 있는 것 같다. 반대로 그의 영화들은 과거보다 보편적인 사람들의 너른 감정들을 담아내는
드라마로 확장되고 있다. 감독으로서 무엇이 더 옳은 길일지에 대해 말하긴 어렵다. 중요한 건 그의 드라마가 여전히 이 세상에서 유효하다는 사실일 것이다. 세상의
모든 영화가 걸작일 수 없듯이 모든 이의 삶이 위대해질 순 없다. 그리고 그 평범한 삶에도 나름의 위로가
필요하다. 라세 할스트롬의 드라마가 필요한 건 그래서다. 좋은
범작들을 만드는 것, 그것 또한 이 세상에 필요한 재능인 셈이다.
소설
찍는 남자, 라세 할스트롬
라세 할스트롬의 초기 대표작인 <개 같은 내 인생>은 스웨덴 작가 레이다 욘손의 자전적 소설 3부작 가운데 두
번째 작품을 기초로 완성한 작품이다. 그 밖에도 그는 적지 않은 소설을 영화로 연출해왔다. 소설가이자 각본가이며 영화 감독인 피터 헤지스의 소설 <길버트
그레이프>부터 스토리텔링의 대가 존 어빙의 소설 <사이더
하우스>, 영국의 여류 작가 조앤 해리스의 소설을 옮긴 <초콜릿>과 퓰리처상 수상 작가 E. 애니 프롤스의 소설 <시핑 뉴스>, 베스트셀러 작가 니콜라스 스파크스의 소설 <디어 존>과 <세이프
헤이븐>, 영국 작가 폴 토데이의 소설 <사막에서
연어낚시>를 영화화했으며 최근작인 <로맨틱 레시피> 또한 경제전문지 출신 기자인 리처드 C. 모리아스가 쓴 소설 <백 걸음의 여행>을 스크린에 옮겼다.
무명 배우에서 세계적인 스타로 변신했다는
신데렐라 스토리는 할리우드에선 상상할 수 있는 일이다. 가장 최근에도 그런 사례가 탄생했다. 크리스 프랫은 지금 완전히 다른 궤도로 진입했다.
사실 크리스 프랫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2014)에 승선하기 전까지 완전한 무명 배우에 불과했던 건 아니었다.
올해로 6시즌까지 진행된 TV시리즈 <팍스 앤 레크리에이션>에서 연기한 앤디 역으로 적지 않은
인지도를 얻었고, 크리틱스 초이스 TV어워즈에선 코미디 남우조연상
부문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했다. 사실 <팍스 앤 레크리에이션>의 앤디는 유쾌한 유머 감각을 지닌 캐릭터란 점에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스타로드와 유사한 구석이 있다. 하지만
외모만을 놓고 본다면 마치 지구의 남반구와 북반구처럼, 믿을 수 없도록 동떨어진 존재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근육질의 육체미를 자랑하는 스타로드와 달리 앤디는 테디베어처럼 둥글둥글한 곡선미가 눈에 선명한
남자이기 때문이다.
크리스 프랫은 한 TV쇼에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출연 제안을 받았을 때 자신이 아내에게 소리쳤던 일화를 밝혔다. “여보! 75파운드나 몸무게를 빼야 되니 빵은 그만 구워!” 반쯤은 농담일지도 모르지만 실제로 그에겐 일종의 절실함이 있었다. 마블
코믹스의 팬이기도 했던 그에게 마블 유니버스의 일원이 될 수 있다는 제안은 그야말로 꿈 같은 일이었겠지만 어떤 식으로든 그의 경력 안에서 전환점을
만들 수 있는 기회였다. “나는 우스꽝스러운 감초 역할에 특화된 편이었는데 그런 역할을 통해서 경력을
쌓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해서 다른 오디션은 거의 참여하지 않았다. 하지만 <제로 다크 서티>(2012)에 출연한 뒤부턴 연기하고
싶은 배역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고, 매니저를 통해서 새로운 오디션을 찾아갔다.” 바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말이다.
사실 <제로 다크 서티>에서
크리스 프랫이 특별히 인상적인 역할을 맡았던 건 아니다. 그 이전에 출연했던 <원티드>(2008), <신부들의 전쟁>(2009)이나 <머니볼>(2011),
<5년째 약혼 중>(2012) 등의 작품에서 어떤 배우가 맡았다 해도 상관 없을
만한 역할을 전전해왔다. 그나마 지난해에 제작된 <딜리버리
맨>과 <그녀>에선
각각 극의 중심인물이 지닌 정서적 갈등을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는 인물로 등장하거나 중심인물의 정서적 결핍을 긍정적인 태도로 수긍하고 이해하는 인물로서
자리하며 나름의 존재감을 어필할 만한 인물로 등장한 바 있다. 다만 편차가 심해 보이는 체중으로 인상이
자주 변화하는 탓에 크리스 프랫이란 배우에 대한 일관성 있는 인상을 꿰어내기가 쉽진 않았을 거다. 어쩌면
앞서 나열한 출연작들보다도 주연 캐릭터의 내레이션을 맡은 <레고 무비>(2014)에서의 존재감이 보다 확실하게 느껴질 정도랄까.
무엇보다도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스타로드를 보며 앞서 열거한 그의 출연작들을 짐작하는 이란 드물 것이다. 단언컨대 그럴 수밖에 없다. 식스팩과 수백 광년쯤은 동떨어진 듯한
체형의 무명배우였던 그의 과거를 연상했을 때 스타로드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사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어떤 면에서 크리스 프랫과 처지가
유사한 작품이었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또한
마블 코믹스의 역사를 차지하는 작품이지만 <어벤져스>의
세계관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은 세계관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크리스 프랫에겐 좋은 기회였다. “시나리오와 감독의 디렉팅을 벗어나지만 않는다면 뭘 해도 상관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게 배우로선 도움이 된다.” 대중에게도 낯선 역할인 만큼 자신의 관점이 새로운 기준이 된다 해도 상관없다는 걸 알았다. 게다가
낯설지 않은 작품이었다. 유년시절 친구를 통해서 우연히 원작 코믹스를 접한 적이 있었고 자신도 그 중
몇 권을 소장할 기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결과론적으론 운명적이란 의미를 붙일 수도 있을 거다. 게다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그의 기대를 넘어서는, 일종의 선물과도 같은 작품이었다. “출연을 결정하기 전에 시나리오를 보지 못했다. 막상 시나리오를
읽었을 땐 내 생각보다 훨씬 좋은 역이라서 안도했지. 시나리오가 아주 웃긴데, 그게 딱 제임스 건 감독 스타일이다. 그는 실제로도 아주 재미있는
친구다.”
사실 크리스 프랫은 자신과 함께한 동료들의 칭찬을 곧잘 하는 편인데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서도 주변 동료들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단순히
입바른 말을 잘해서라기 보단 그가 실제로 사려 깊고 친절한 동료이기 때문일 가능성이 다분해 보인다. 그는 <당신은 몇번째인가요?>(2011)라는 영화로 크리스 에반스와
함께 출연한 적이 있었는데 사실 그는 주연을 맡은 크리스 에반스의 역할에 오디션을 봤지만 작은 역할을 맡아야 했다. 하지만 그 이후로 크리스 에반스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크리스
에반스 또한 SNS를 통해 공개적으로 크리스 프랫에 대한 애정을 표한 바 있었는데 두 배우가 모두 마블
유니버스의 히어로로 활약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연치곤 기묘한 일이다. 언젠가 <어벤져스>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세계관은 필연적으로 중첩될 가능성도 다분한 만큼 두 배우가 한 스크린에 자리할
가능성도 존재할 것이다.
한편 그는 자상하고 세심한 가장이기도 한데 한번은 동료배우이기도 한 아내 안나 패리스의 머리를 땋은 사진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려서 화제가 됐고, 한 영상 인터뷰에서 머리 땋기 실력을 직접 시연해 보이기도 했다. 천연덕스럽게 내년 개봉작으로 예정된 <쥬라기 공원>의 새로운 속편을 홍보하며 1분만에 완벽한 머리 땋기를 선보인
그는 “(머리를 묶을 땐) 고무밴드보단 스크런치라고 불리는
걸 쓰는 게 낫다”는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한편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촬영으로 오랫동안 집을 비운 탓에
아내로부터 생후 13개월이 된 아들이 아빠를 못 알아볼 수도 있으니 낙심하지 말라는 조언을 받았지만
자신을 보고 ‘아빠’라고 불러주는 어린 아들로 인해 눈물을
흘리면서 이 날을 “내 인생 최고의 날이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크리스 프랫은 우주를 지키는 영웅을 연기하는 배우이기
전에 자신의 가정에 충실한 남자인 것이다.
크리스 프랫에게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로 마블 유니버스의 주인공이 됐다는 건 배우로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는 일이다. 그는 최근 LA에 있는 한 아동병원을 방문했다. 자신이 영화에서 입었던 의상들을 입고 스타로드로서 아이들을 찾았다. 그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와 관련된 인터뷰 중 자신의 촬영
의상을 챙겨놨다고 고백한 적이 있었다. 이유가 있었다. “만약
영화가 개봉하고 좋은 성적을 거둔다면 아이들을 찾아갈 거다. 영화가 크게 성공해서 아픈 아이들에게 의미로
다가올 수 있을 정도가 된다면, 피터 퀼이나 스타로드가 찾아오는 게 큰 의미가 된다면 그럴 거다. 그럼 이 영화가 내게 진정한 의미가 될 거다. 가장 멋진 건 내
아들이 언젠가 이 영화를 볼 것이고, 어쩌면 내가 어떤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을 거란
사실이다. 그들에게 좋은 롤모델이 되는 거다.” 생각해보면 크리스 프랫은 대부분의 작품에서 선한 인물로서 자리했다. 때때로
우스꽝스러울지언정 그랬다. 그는 본래 따뜻한 심성을 지닌 배우다. 진정한
영웅의 자격을 지닌 사람이다. 그의 식스팩보다 그 착한 마음이 진정한 매력이자 재능일 것이다. 그 마음이 그의 경력에 좋은 영감이 될 것이다. 물론 그의 식스팩을
볼 기회는 유효하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속편이 2017년에 공개될 예정이니 말이다. 물론 식스팩보다도
따뜻한 마음이 더욱 매력적인 남자, 크리스 프랫의 유쾌한 행보를 계속 목격하고 싶다.
'리부트’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재부팅’ 그러니까 컴퓨터를 다시 켠다는 의미를 지닌
단어다. 그러니까 영화를 리부트한다는 건 간단히 말해서 영화를 ‘다시
시작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같은 방식으로 다시 시작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리부트는 그 대상이 되는 원작이 깔아놓은 철로에 개량된 열차를 올려놓는 작업이 아니다. 열차뿐만 아니라 철로를 싹 갈아엎고 비행장을 만들어버릴 수도 있는 작업이다.
변주의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다만 그 시리즈의 정체성만은 유지한다. <배트맨 비긴즈>(2005)엔 배트맨이 있고, <맨 오브 스틸>(2013)엔 슈퍼맨이 있다. 제임스 본드가 없는 <007>시리즈가 존재할 리 없다. 매력적인 캐릭터는 시리즈의 미래를 보장하는 뿌리이자 줄기이며 잎이자 꽃이다.
그리고 잘 알다시피 할리우드엔 이미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차고 넘친다. 그들에게 새로운 숨을
불어넣을 장치가 필요할 뿐이다. 그것이 바로 리부트다.
언젠가 한번 들었던 이야기를 다시 듣는 건 필연적으로 지루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듣지 못했던 이야기가 있다고 하면 궁금해지기 마련이다. 게다가 그것이 상당히 재미있는 이야기였다면 더욱
솔깃해질 수밖에 없다. 배트맨이든, 슈퍼맨이든, 스파이더맨이든, 한결 같이 ‘태생의
비밀’을 안고 다시 돌아오는 것도 그래서다. 대부분의 리부트
영화들이 ‘프리퀄 무비’로 시작되는 건 다분히 전략적인 셈이다. 리부트의 대상이 되는 기존의 작품으로부터 해방돼서 새롭게 설계된 이야기 위에서 자유로운 전개가 가능하다. 이를 테면 <007: 카지노 로얄>(2006)이나 <스타트렉: 더 비기닝>(2009),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2011),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2011)과 같은 작품은 프리퀄의 형식을 빌려서
시리즈의 리부트를 시도하면서도 완전히 새로운 서사의 발판을 확보함으로써 새로운 이야기의 방향성을 탐색하고 구축한 뒤, 나아가버린다. 무엇보다도 새로운 이야기를 발굴하는 노력보다도 손쉽게
검증된 이야기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매력적인 방법론이다. 게다가 마블과 DC의 슈퍼히어로물들이 증명한 것처럼 매력적인 캐릭터들의 존재만으로도 이룰 수 있는 이야기의 너비란 그야말로
우주처럼 넓고 광활하다. CG의 발달을 위시한 영상 기술의 발달도 리부트를 부채질한다. 과거의 기술력으론 표현할 수 없었던 이미지의 구현이 완벽하게 가능해진 시대에서 필연적으로 열악할 수밖에 없었던
과거의 영화적 이미지들을 놀라운 볼거리로 발바꿈시키는 것만으로도 리부트의 가능성은 보다 무궁무진해진다. 리부트
열풍은 좀처럼 꺼지지 않고 확장될 것이다. <터미네이터>를
비롯한 수많은 인기 프랜차이즈들이 리부트의 대열에 합류 중이다.
리부트 열풍은 영화계를 넘어서 TV시리즈까지 강타하고 있다. 내년에 방영될 예정인 <히어로즈> 시즌 5는 이미 기존의 시리즈를 리부트하는 방향으로 제작될
것이라고 발표됐다. 또한 고전 시리즈로서 인기를 모았던 슈퍼히어로물인
<플래쉬>도 새롭게 리부트될 예정이다. 또한
리부트 열풍은 영화와 미드의 경계를 넘어선 스핀오프 기획으로 진화 중이다. <어벤져스>의 성공에 힘입은 TV시리즈
<에이전트 오브 쉴드>가 기획된 것처럼 <다크
나이트>의 고든 경감을 주인공으로 둔 또 다른 <배트맨> 프리퀄 시리즈가 미드로 제작 중이다. 스크린과 TV의 경계를 허무는 크로스오버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어쩌면 새로운
시대가 리부트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크리스 헴스워스는 지루한 캐릭터에서 벗어나고자 태평양을 건너 미국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그는 천둥의 신이 됐다. 그리고 이젠 두 발을 딛고 설 수 있는 배우임을 증명할 차례다.
잘 알다시피 할리우드 영화란 단순히 미국 영화가 아니다. 전세계 어디에서든 극장이 있는 곳이라면 할리우드 영화를 상영한다. 전세계의 배우들이 할리우드 진출을 동경하는 건 야구 선수가 메이저리그를 꿈꾸는 것처럼 당연한 일이다. 특히 영어권 국가의 배우라면 더더욱 그렇다. 영국과 캐나다 배우들의 할리우드 진출 역시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할리우드 배우의 산실 노릇을 하는 국가론 호주 역시 빠지지 않는다. 고인이 된 히스 레저를 비롯해서 멜 깁슨, 휴 잭맨, 러셀 크로, 케이트 블란쳇, 나오미 왓츠, 니콜 키드먼, 에릭 바나, 그리고 샘 워싱턴까지, 할리우드를 주름잡는 이 이름의 주인들은 모두 호주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이 리스트에 추가해야 할 이름이 하나 더 있다. 크리스 헴스워스, 그는 ‘아스가르드’가 아니라 호주에서 태어났다.
“나는 척박한 시골의 가정에서 두 형제들과 함께 자랐다. 우린 끊임없이 무기나 요새 같은 것을 만들며 놀았지만 액션 히어로가 되려고 했던 건 아니다.” 헴스워스는 멜버른에서 태어났다. 어느 어린 아이들처럼 자연스럽게 ‘슈퍼맨 흉내를 내면서 집 주변을 뛰어다니며’ 성장했다. 하지만 20대가 넘은 나이에 거대한 망치를 휘두르는 신을 연기하기 위해서 히어로가 등장하는 만화책을 펼쳐보게 될 일이 생길 거란 예상 역시 해본 적이 없었다. 마블 엔터테인먼트의 직원들로부터 <토르>의 카피본이 무더기로 쇄도할 줄을 몰랐다. 할리우드의 이방인에서 세계적인 스타로 단숨에 도약할 수 있으리라 상상해본 적은 더더욱 없었을 거다.
대자본이 투여되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심지어 마블 엔터프라이즈의 야심찬 프로젝트인 <어벤져스>(2012)로 향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할 대작의 얼굴로 낯선 배우를 내민다는 건 일종의 모험이다. 확신이 필요하다. 이런 경우엔 대부분 프로젝트를 좌우하는 큰 손의 보증이 있기 마련이다. <어벤져스>의 감독이기 전에 이미 유능한 제작자이자 각본가였던 조스 웨던은 <토르: 천둥의 신>(2011)의 메가폰을 잡은 케네스 브레너에게 크리스 헴스워스를 추천했다. 담보는 자신이 각본에 참여하고 제작했던 <캐빈 인 더 우즈>(2012)였다. 2009년에 촬영을 완료했지만 2012년에서야 개봉되어 큰 인기를 얻었던 이 작품은 대단히 파멸적이고 끔찍한 세계관을 재기발랄한 풍자와 위트로 승화시킨 컬트작이었으며 조스 웨던이 제작과 각본을 담당했다. 그는 이 영화의 출연자 중에 한 명이었던 크리스 헴스워스를 눈 여겨 봤고, 토르의 망치 ‘뮬니르’의 주인이 되리라 믿었다.
“육체적으론 어렵지 않았다. 그저 체육관에 머물면 되니까. 가장 큰 어려움은 나보다 훨씬 경험이 많은 안소니 홉킨스나 나탈리 포트만과 함께 거대한 프로젝트에 참여한다는 것이었다. 그와 같은 기회를 꿈꿨지만 비로소 다다랐을 땐 매우 두려운 일이었다.” 사실 헴스워스가 태평양을 건너 미국으로 건너온 건 그에게 어떤 열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본격적인 연기 경력은 2004년 호주 시드니에서 촬영했던 연속극 <홈 앤 어웨이>를 통해서였다. 그는 그 시절을 이렇게 회상했다. “3년 반 동안 똑같은 캐릭터를 연기한다는 건 매우 지겨웠다. 항상 불이나 태풍, 헬리콥터의 충돌, 비행기 사고 따위에 휘말렸다. 드라마틱한 죽음을 소원하게 됐다.” 결국 새로운 계기를 찾아 LA로 건너온 그는 가까스로 <스타트렉: 더 비기닝>(2009)에서 작지만 중요한 단역을 따낸 뒤, 그저 그런 몇 편의 경력을 전전하다가 ‘인간 이상의 존재’로 발탁됐다. 드라마틱한 죽음 대신 고전적인 비극의 요소를 품은 슈퍼히어로 블록버스터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토르: 천둥의 신>과 속편인 <토르: 다크 월드>(2013)는 여러 모로 셰익스피어의 비극을 연상시킨다. 실제로 두 작품의 메가폰을 잡은 이들의 면모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토르: 천둥의 신>의 감독은 <햄릿>(1996)을 연출했던 배우 출신 감독 케네스 브레너다. 실제로 그는 크리스 헴스워스에게 셰익스피어의 <헨리 5세>를 던져주며 토르의 모티프를 찾길 요구했다. <토르: 다크 월드>의 메가폰을 잡은 건 미니시리즈 <왕좌의 게임>을 연출한 앨런 테일러다. 고전적인 엄숙함과 중세 왕정기의 야만성이 교차하는 <왕좌의 게임>은 그 자체로 역설적이고 필연적인 운명이 뒤엉킨 셰익스피어의 비극을 연상시키는 판타지물이다. 이는 곧 <토르>라는 작품을 꿰뚫는 핵심이 셰익스피어의 코드를 관통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실제로 서로 다른 핏줄을 안고 태어나 반목하는 토르와 로키 형제의 멜로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 시리즈에서 고전적인 중후함과 연민을 자극하는 깊은 눈매를 지닌 헴스워스가 갈등의 주인공으로 캐스팅됐다는 건 결과적으로 적절해 보인다. 단순하지만 강인하게 자신의 신념을 밀고 나가면서도 내면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남성적인 매력은 토르라는 캐릭터 자체에 대한 신뢰로 이어진다.
<토르: 천둥의 신>과 <어벤져스> 그리고 <토르: 다크 월드>까지, 크리스 헴스워스라는 배우를 이야기할 때 토르를 제외한다면 할 말이 없어지는 건 사실이다. <백설공주>를 모티프로 기획된 액션 판타지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2012)에서도 특별한 존재감을 드러냈다고 말하기란 어렵다. 그런 면에선 존 하워드가 연출한 <러시: 더 라이벌>(2013)이 오히려 특별한 경력에 가깝다. F1의 왕좌를 두고 경합을 벌였던 전설적인 라이벌에 관한 실화를 다룬 이 작품에서 헴스워스는 할리우드 진출 이후로 출연한 주연작에서 처음으로 현실적인 캐릭터를 연기해낸다. 비현실적인 혹은 초현실적인 세계관을 거치며 우직한 선의로 무장한 채 악과 맞서 싸웠던 것과 달리 누군가를 이기겠다는 사적인 욕망을 표현한다. 새로운 가능성이 발견되고 연기의 범위가 확장된다.
물론 그는 한동안 하늘을 날고 거대한 망치를 휘두르며 세계를 구하는데 여념이 없을 것 같다. 2015년에 개봉될 예정인 <어벤져스>의 속편 이후로도 이 슈퍼히어로의 세계는 오랫동안 유지되고 확장되며 전세계 관객을 사로잡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헴스워스의 세계도 점차 확장될 예정이다. 선악의 경계가 불분명한 범죄물의 대가 마이클 만의 신작에 출연한 그는 실화를 스크린에 옮길 예정인 론 하워드의 새로운 신작에 또 한번 참여한다. 신계와 인간계를 오가는 바쁜 스케줄을 소화할 예정이다. 신이라 불린 사나이, 크리스 헴스워스가 두 발을 딛고 설 진짜 세계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