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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5.31 엄지원 인터뷰
  2. 2008.05.31 이기우 인터뷰

엄지원 인터뷰

interview 2008. 5. 31.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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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개봉일인데 기분은 어떤가?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아, 오늘 개봉일이네? 무섭다.’ 막 이랬었다. (웃음)

이전까지의 작품들과 다른 느낌이라도 있나?
내 전작의 어떤 배우나 감독님들 중 ‘우리는 잘될 거야. 우리는 몇만은 돌파해야지’ 이런 얘기를 하던 사람들이 없었다. 그런데 <스카우트> 팀은 흥행에 대해서 얘기를 많이 한다. ‘이건 몇 만 정도 갈 거야’ 이런 얘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까 저 사람들이 안 되면 어쩌려고 저런 얘기를 하나 싶더라. (웃음) 난 그런 분위기가 처음이라 낯설다.

하지만 출연작 중에서도 어느 정도 흥행성이 점쳐졌던 작품들이 있지 않았나?
그래도 그 전에 같이 했던 사람들 중 그런 말을 직접적으로 같이 나눈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근데 이 사람들은 왜 이러지? (웃음)

요즘에 질리게 듣는 이야기겠지만 나도 묻겠다. 야구 좋아하나?
맞다. 되게 많이 듣는다. 일단 잘 모르겠다. 경기 규칙과 야구는 볼 줄 아는데, 막 좋아해서 챙겨보진 않는다. 남자들이 굉장히 좋아하는 만큼 정도는 아닌 거 같다.

개인적으로 양준혁 씨와 많이 친하다고 들었다.
많이 친하진 않은데. (웃음)

시구라도 하러 갔다가 친해졌나?
그건 아니고, 양준혁씨가 대구 분이고, 나도 대구 사람이다 보니까 그래서 인연이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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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내가 과거에 선동열, 이종범 광팬이었다. 두 분이 일본 진출하기 전까지만 해도 야구 경기 다 챙겨봤었다.
어디로 가셨더라? 주니치였나?

생각보다 잘 아는 편이다.
그런 기본적인 건 안다. (웃음)

<스카우트>덕분에 옛날 생각이 많이 났다. 혹시 <스카우트> 이전에 광주에 가본 적 있나?
예전에 <똥개>찍었을 당시 곽경택 감독님과 같이 광주영화제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 때 처음으로 갔었다.

<스카우트>촬영으로 오랜만에 다시 찾으니 어떻던가?
이번에 <스카우트> 땐 세트 장에서만 촬영하고 숙소 주변에서만 머물러서 잘 몰랐다. 맨 처음에 갔을 때는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너무 좋았다. (웃음) 나에게 광주의 첫인상을 말하라고 한다면 음식이 너무 맛있었다는 거다.

그런데 사투리를 어찌나 잘 쓰던지.
아, 나 잘했나?

사투리도 사투리지만 그보다도 그 어정쩡한 표준어가 더욱 그럴 듯 했다.
(박수를 치면서)응~~! 그거! (웃음))

너무 유연하더라. 연습 좀 했을 것 같던데.
경상도 사람들은 서울에 와서도 그냥 경상도 사투리를 계속 쓰는 사람들이 많지만 광주나 전라도 사람들은 말씨가 완전히 달라져서 출신이 어딘지 알 수 없게 되는 경우가 정말 많더라. 예를 들면 김현석 감독님도 그렇고, 박철민 선배님도 그렇고. 세영이 같은 경우도 광주에서 왔다는 걸 티 안내고 싶어하고, 빨리 적응하고 싶어했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사실 서울에서 오래 살지 않은 이상, 빨리 적응하고 싶어도 쉽게 되는 건 아니니까 흉내를 내는 거에 불과했겠지. 그렇게 어색하게 표준어를 쓰다가도 본래 사투리가 드러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런 걸 혼자서 익혔을 리는 없고, 전라도 사투리에 능한 누군가가 도와줬을 것 같은데.
우리 매니저가 전라도 출신이다. 그래서 도움을 많이 받았지. 그랑께요~, 그랑께요~, 이게 맞아? 막 이러면서, (웃음) 저는~요, 이게 맞아? 아니면 저~는요, 이게 맞아? 이런 미묘한 것까지 하나하나 다 물어봤다.

<스카우트>에서도 노래를 부르더라. <극장전>에서도 했었는데, 솔직히 잘하는 편은 아니다.
잘 하지! (웃음) 왜~? 나는 나름대로 잘 한다고 생각하고 부른 건데.

그래도 박치는 아니더라. 고음 처리가 불안할 뿐. (웃음) 최근 박선주 씨한테 보컬 트레이닝도 받았다고 들었다.
그냥 내가 샤우팅이 잘 안 되는 거 같아서, 물론 연기할 때 그런 캐릭터를 아직 한번도 못 해봐서 그럴 수도 있지만 내 스스로가 큰 소리를 낸다는 게 잘 안될 것 같다는 막연한 부담감이 있었다. 사실 사람이 살면서 소리지를 일은 거의 없다, 정말 화가 나도. 하지만 배우라면 어찌됐건 앞으로 그런 게 필요하게 될지도 모르는데, 샤우팅하는 게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거든. 물론 노래 때문에 그런 걸 하게 된 건 아니고. 질러보려면 많이 질러봐야 잘 하게 되니까 그랬던 거 같다.

말할 때 비음이 많이 나온다. 덕분에 유약하고 섬세한 인상을 준다. 게다가 소리를 지를 때는 마치 울먹이는 느낌도 나더라. 마치 유리 같은 이미지랄까.
어차피 영화 속에서 보여준 캐릭터를 통해서 배우들의 이미지는 유추되는 거니까. 분명히 내가 연기한 캐릭터들인 만큼 맞는 부분들도 있겠지만 내가 연기한 캐릭터들은 앞으로 내가 하게 될 것에 대비시킨다면 정말 단면적인 캐릭터만 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냥 엄지원이 갖고 있는 10개 중에서 3개 정도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그런 평들에 대해서도 별로 괘념치는 않는 거 같다. 오히려 난 원래 일상에서는 기운이 좀 있고, 평상시 말투는 애 같은 편이다. (웃음) 그런데 평상시에도 막 정확하게 발음하려 하면 힘든 것 같다. 그래서 일이 아닌 평상시에는 그냥 편한 대로 말하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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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스카우트> 출연을 고사했었다고 들었다.
그 때는 시나리오상의 세영이 굉장히 단면적이고, 그렇게 비중도 많지 않았다. 꼭 그런 거 보내주고서 배우한테 잘 해달라 그러더라. (웃음) 처음부터 보여줄 게 많은 걸 써서 보여달라고 하면 하겠는데 써놓은 것도 없으면서 왜 자꾸 내가 스스로 해야 되는 것만 많은 책을 왜 자꾸 보내? 이런 생각이 들어서 안 하려고 했었다.

시나리오가 맘에 안 들어서?
세영 자체만 그랬다. 시나리오 자체는 너무 재미있게 읽었는데 세영이가 좀 맘에 안 들어서 안 한다고 했었다. 그러다 내가 꿈을 꿨는데 영화가 너무 잘 되는 꿈을 꿔서 사양했던 세영이를 다시 생각해보기로 했다. 김현석 감독님을 처음 만났을 때도 지금과 비슷한 불만을 거침없이 토로했었다. (웃음)

현장 분위기가 재미있었을 것 같다.
너무 좋았다!

난 비광시 때 완전 자지러졌었다. (웃음)
김현석 감독님께서 현장에서 직접 쓰셨지. 그 때 거의 다들 쓰러졌었다. 그 전엔 시나리오상에 ‘비광’이라고 대충 있었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추후에 쓰겠다고 하셔서 우리도 실질적인 내용은 본 촬영 때 감독님께서 쓰신 뒤에야 알게 됐다. 그렇게 재미있는 일들이 영화 촬영 동안 참 많았다.

노래까지 부르자는 아이디어는 누가?
감독님. 술 먹다가 우리 노래해요, 막 이래서. (웃음)

의외로 임창정 씨가 빠졌더라. 가수 경력이 있는 사람이 빠지다니 의외다.
그게 아무래도 곤태(박철민)의 비광시이고, 가사 자체가 호창(임창정)의 얘기는 아니니까. 이제 시 자체가 너무 재미있어서 노래로 만들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창정 오빠가 부를 수는 없고, 박철민 선배는 노래를 자기는 너무 하고 싶지만 노래를 너무 못해서 못하겠다고 하셨는데 감독님이 그럼 내가 노래할게, 형은 랩해, 지원씨가 코러스하면 되잖아, 그렇게 된 거지. 정확히 말하면 권태를 위해서 우리가 다같이 만든 테마송이다. (웃음)

그런데 권태처럼 여자에게 헌신을 다하는 비광같은 남자야말로 진정 여자에게 좋은 남자 아닐까?
그건 그 남자에게 너무 슬픈 거 같다. 사실 그렇게 따지면 여자는 늘 도움을 받아서 잘 해주지만 사랑하지는 않는 거니까. 그렇지만 그 남자는 여자가 잘 해주는 것 때문에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걸 알면서도 떠나지 못하는 거잖아. 잘해주는 기쁨이라도 얻으려고. 남자 입장에서는 순애보적일지 몰라도, 여자로서 봤을 때는 불쌍한 거 같아. 안타깝지.

결혼 생각은 아직 없나?
없다.

배우로서의 욕심 때문에?
꼭 그런 건 아닌데, 결혼은 별로 (잠시 생각하다가) 그다지 하고 싶다는 생각해 본적은 없는 거 같아요.

이상형을 아직 못 만난 탓일까?
그런가 보다. (웃음)

세영은 순수한 여자다. 그리고 그런 순수함이 사회적인 불합리에 저항하는 에너지의 기반이 돼서 결국 운동권이란 행동으로 보여주는 여자다. 세영이란 캐릭터에 대해 어떻게 이해했나?
감독님께서 저에게 연기적으로 이래라 저래라 말씀하신 건 거의 없지만 딱 한마디 하신 건 운동권 학생이라고 너무 운동권 학생처럼 연기하지만 않았으면 좋겠다는 거였다. 원래 세영이가 시나리오 자체엔 대사도 거의 없기 때문에 대부분 현장에서 해나가야 되는 캐릭터라서 그런 부탁을 한 거 같다. 어떻게 보면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여성이기 때문에 그런 면을 세게 표현할 수도 있을 테니까, 그 부분에 대해서 감독님께서 말씀하셨는데 나도 세영이가 그런 의미의 강함보다 순수함과 연약함의 의미로 강한 것이 영화적 의미가 맞겠다고 생각했다. 어쨌건 간에 세영이가 10년이 지난 뒤에 좀 까칠해지긴 했지만 본질적으로 사람은 쉽게 변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연기하고 싶었던 대학 시절의 세영이는 좀 더 귀엽고 사랑스러운 여자였거든. 사람은 쉽게 본질이 변하지 않으니까, 그런 백치 같은 구석도 좀 남아있으면서 정신이 살아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그렇게 넘어가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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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발랄한 캐릭터는 <똥개>이후로 처음이고, 닭살 커플 연기도 처음이었다.
재미있었다. 너무 잘 어울리지 않았나? (웃음) 너무 잘 맞는 거 같아, 나랑.

그 동안의 연기를 염두에 두자면 본인에게도 색다른 느낌이 아니었을까 싶다.
대중은 날 잘 모르지만 나는 날 안다. 사실 그런 연기가 내겐 자신 있는 편이다. 그래서 오히려 아무렇지 않게 잘 할 수 있는 연기였던 거 같아서 별 생각 없이 쉽게 했던 거 같다. 다만 말한 것처럼 전작들의 이미지로 기억되는 엄지원이란 배우가 저런 연기를 하면서 스스로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될 지도 모르지. 사실 난 아무렇지도 않은데.

어쩌면 김현석 감독이 그런 계기를 마련해준 셈 아닐까?
(정색하며)어! 그건 아닌 거 같아! (웃음) 물론 그럴 수도 있지만 전작들의 연기들이 내가 배우로서 가져야 할 어떤 조건들을 충족시켜줬다고 생각한다. 배우로서 지녀야 할 깊이를 비롯한 여러 가지 요소들, 그런 것들이 내 스스로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전작들을 선택하게 된 것 같다. <스카우트>같은 연기에 대해서는 스스로 자신이 있었고 언제든지 할 수가 있다고 생각하니까 안 했던 거뿐이지. 하지만 사람들은 순차적으로 보는 거니까 할 수 있는데 안 한 건지, 못한 건지 잘 모를 뿐이다. 김현석 감독님도 사실 나를 실제로 만나보곤 너무 깜짝 놀랐다고 하더라, 성격 때문에. 그랬으니 감독님도 아마 내가 그걸 잘할 줄 모르고 캐스팅 하신 거겠지? (웃음)

그 말대로라면 스스로에게 자신 없는 연기부터 먼저 밟아나간 셈이다.
물론 <똥개>는 자신 있었지만, <주홍글씨>같은 경우는 정말 자신 없었다. 정말 스스로도 진짜 답답하게 느껴질 정도의 연기였으니까, 그런 면에서 자신이 없었던 거 같다. <극장전>은 정말 기회가 좋아서 한번 해보고 싶었던 거 같고, 내가 갖고 있는 이미지와 전혀 다른 지점에 있는 작품인 거 같다. 그리고 나서 만약 <가을로>를 선택하지 않고 좀 더 빨리 <스카우트>같은 작품을 했다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 수도 있는데 비슷한 이미지의 캐릭터를 계속 맡아서 그렇게 보이는 면이 강한 것 같다.

연민을 부르는 캐릭터가 많았다. 그래서 영화마다 한번 이상씩은 우는 씬이 끼어있는 것 같더라. 평소에도 원래 눈물이 많은 편인가?
평소에도 잘 우는 편이다. 영화 속 눈물 연기도 정말 슬픈 감정이 전해져서 우는 건데, 사실 그런 부분에 있어서 안 슬프면 어떡해야 할까라는 스트레스가 있다. 어떤 감정들은 내가 생각하는 것과 달라서 나에겐 안 슬플 수도 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똑 같은 코드로 눈물을 흘리는 건 아니니까. 그래서 그 인물이 직접 되기 전까지는 대본을 보면서도 울어야 되는 장면이 있으면 이거 할 때 안 슬프면 어떡해야 할까라는 스트레스가 있다. 물론 가짜로 울 수도 있겠지만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니까.

그런데 실제로 본인은 대학 시절에 어떤 사람이었을까?
지금이랑 똑 같은 성격이었다. 내가 중학교, 고등학교 때 썼던 일기장을 <극장전>하던 시기에 어쩌다가 한 번 쭉 보게 됐는데, 그 때 나도 되게 깜짝 놀랐었다. 지금이랑 성격이 똑같고 생각하는 것도 되게 비슷했더라. 그래서 깜짝 놀랐었다. 이제 또 그 시기에 비해서 시간이 다시 흘렀지만 생각해보면 인간의 본질은 크게 변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가정과 사회 생활을 겪고 세상을 살면서 좀 더 성숙해지거나 깊어지는 건 있지만 기본적으로 갖고 있던 어떤 특성 자체는 변하지 않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한다. 결국 대학시절도 마찬가지다.

그런 점에 있어서는 세영과도 비슷한 것 같다.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는 캐릭터니까.
비슷한 거 같다. 그래서인지 세영이 좀 연기하기가 굉장히 쉬웠나 보다. 너무 쉽게 촬영했으니까.

그럼 가장 힘들게 연기했다고 생각되는 캐릭터가 있나?
캐릭터에서 오는 무게감 때문인지 모르지만 그냥 캐릭터에 시달림을 받았던 건 <주홍글씨>와 <가을로>였던 거 같다. 스스로는 그저 캐릭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가을로>같은 경우는 그래도 여행하는 기분이라 즐거웠을 것 같은데.
초반에는 그랬지만 나중에는 점점 길어지면서 고통스러웠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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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점에서?
한겨울에도 많이 찍었는데 사실 너무 추웠다. 막 칼바람을 맞으면서 가을인 것처럼 연기를 해야 되고, 그렇게 계절씬이 좀 길어지면서 힘들었던 거 같다. 그런데 오히려 요즘에 가을이 아름답게 느껴진다고 많이 생각하게 되더라. 아마도 <가을로> 촬영할 때는 가을의 풍광들에 대해서 많이 못 느끼고 무심히 지나갔었는데 이제서야 눈이 트인 걸 발견하게 된 거다. 그래서 지금 이 가을에 많이 느끼고 깨닫게 되는 거 같다. 결국 요즘 그 영화가 나에게 이런 선물을 주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임창정 씨나 박철민 씨처럼 개그 캐릭터에 능한 배우들과 함께 호흡을 맞춘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나?
그냥 재미있었다. 뭔가 풀어져있는 사람들과 연기하는 게. 물론 그렇다고 내가 풀어져있지 않은 사람이라는 게 아니라, 배우에게도 취향이라는 게 있으니까. 솔직히 내가 그런 연기 스타일에 호감을 보이는 취향은 아닌 거 같다. 그러니까 영화를 좋아하는 거나, 보는 거나, 해석하는 거나. 그런 면에서 여러 가지로 신선한 경험이었던 것 같아서 재미있었다.

아니면 혹시 5.18을 소재로 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나? <화려한 휴가>처럼 직접적인 건 아니지만 <스카우트>도 5.18에 관련된 이야기라는 건 사실이다. 게다가 민감한 대사들도 있었고.
전혀 없었다. 내 생각엔 <화려한 휴가>가 그 시대의 소용돌이에 휩쓸린 소시민들의 이야기라면 <스카우트>는 그런 시대상 속에 평범하게 살고 있던 사람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세상은 그렇게 변하고 있지만 우리는 모르고 살고 있는 사람들에 불과하다. 그래서 감독님도 그냥 그렇게 주문하셨고, 그래서 오히려 그런 부담 같은 게 없었던 거 같다. 그렇기 때문에 나중에 영화에서 이렇게 됐다는 게 밝혀졌을 때 더 울림이 있는 거 같다. 작정하고 하는 것보단 그랬는데 이렇더라는 게 더 깊이 있게 다가올 수 있는 것도 그런 지점들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그 땐 광주사람들조차 선동열이 누구냐고 하는 시절이었다. 이는 그들이 불과 며칠 뒤, 5.18이라는 무시무시한 참극을 맞이할 것이란 예감조차 못했다는 점에서 비슷한 아이러니가 느껴진다. 그런데 세영이 호창에게 종종 광주를 떠나라고 재촉한 건 그런 예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세영은 그 상황을 이미 직감하고 있었던 인물이다.
세영 자체는 영화 속에서 그런 걸 예감하고 가장 먼저 발 빠르게 행동하는 인물인 건 사실이다. 왜냐면 어쨌던 간에 전쟁으로 치면 최전방이랄까. 가장 가깝게 정보를 접하는 인물이기 때문에 알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일반 사람들은 호창처럼 전혀 모르는 게 맞는 거라고 생각하고. 사실 내가 그 시절을 직접 겪었던 사람은 아니기 때문에 다큐멘터리라던가 그런 걸 많이 찾아봤다. 그렇지만 어떤 개인적인 느낌 같은 걸 연기에 많이 반영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연기에 임했다.

개인적으로 <스카우트>에서 가장 맘에 드는 장면을 꼽는다면?
과거 회상 장면에서 다시 현재로 넘어오는 씬. YMCA 사무실에 세영과 호창이 따로따로 앉아서 적막함이 흐르던 그 장면이 개인적으로 너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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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조실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호창과 주고 받는 대사 뒤에 순간적으로 세영이 머금던 미소가 아이러니했다. 그 안타까운 상황 속에서도 서로의 속마음을 교감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그 상황의 대사는 현장에서 김현석 감독님께서 갑자기 만들어 주신 거다. 원래 창정 오빠가 나한테 하는 대사도, 내가 창정 오빠한테 하는 대사도 시나리오에 없었고 호창이가 선동열을 스카우트하러 서울에서 왔다는 게 밝혀지면 그냥 취조실을 나가고, 세영이만 남겨지는 거였다. 그런데 김현석 감독님이 이런 대사를 해보는 게 어떨까라고 창정 오빠한테 제안했고, 창정 오빠가 그럼 세영이한테 한마디 하면 세영이도 한마디 해야 되는 거 아니냐고 해서 결국 나도 그렇게 대사를 하자고 동의했고 그렇게 현장에서 추가된 부분이다. 그냥 난 그 상황에서 서로에게 아직 마음이 남아있음을 전달하는 최고의 방법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그 장면도 되게 좋아한다. (웃음)

평소에 외출은 자주 하시는 편인가?
외출?

<극장전>처럼 길에서 알아보는 사람들을 만났을 때 어떨까 궁금했다.
그냥 혼자 잘 다니고, 알아보는 사람들 있으면 반갑게 인사하고 그런다. 그런 부분은 영실이와 비슷한 거 같다. (웃음)

영화에서 촬영했던 장소를 다시 가본 적 있나?
의도해서 찾아가진 않지만 어쩌다가 지나가게 될 때는 기분이 남다르지.

배우는 게 많다던데, 욕심이 많은 거 같다.
기본적으로 무의미한 시간에 투자하는 거다. 사실 배우들이 촬영을 안 할 때는 시간이 많다. 그런데 바쁠 때는 또 너무 바쁘기 때문에 뭔가 시간적인 여유가 있을 때 사람으로서 뭔가 발전적인 욕망이 커지는 거 같다. 그래서 그냥 하나씩 하게 되는 거 같다.

최근에 우정출연이나 특별출연도 많이 하고 있다. 특별한 이유라도?
굳이 안 해야 할 이유가 없으니까. (웃음)

어떻게 보면 배우로서 발을 넓히기 위한 어떤 전략 때문은 아닐까?
(고개를 흔들면서) 에이~! <기담>은 제작자이신 도로시 장소정 대표님이 저랑 너무나 친한 언니 사이고, 창립 작품이라서 제가 기꺼이 참여한 거고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같은 경우는 워낙 화제작이고 내가 참여해서 나쁠 이유가 전혀 없는 작품이지 않나. 특별 출연이라 씬이 별로 없지만 김지운 감독님께서 부탁하시고 특별히 거절할 이유도 없으니까 하게 된 거다.

선동열이나 이종범은 야구팬에겐 전설 같은 존재다. 배우로서 본인에게도 그런 전설 같은 존재가 있다면?
많지. (웃음) 한국에서는 이미숙 선배님 좋아하고, 이자벨 위페르도 좋아한다. 역할 모델 롤이 된다고 생각하는 배우는 꽤 있는 거 같아요. 메릴 스트립도 좋아하고. 사람들이 잘 모르지만 케이트 블란쳇도 좋아한다. 가끔씩 좋아한다고 말하는데 모르면 속상하더라. (웃음)

본인은 배우로서 혹은 인생에서 몇회정도 왔다고 생각하나?
3회~!

왜 3회인가?
일단 시작은 했으니까 1회는 아니고, 그냥 스스로 생각할 때 아직 크게 만족할만한 정도에 다다르지 못했다고 생각하니까 5회는 아닌 것 같고, 말년도 아니니까 8~9회는 더 아니고, 3회 정도 되지 않을까? (웃음)

그럼 공격 중? 수비 중?
수비할건 없는 거 같은데. (웃음)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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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

이기우 인터뷰

interview 2008. 5. 31. 0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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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드라마 <키드갱>이 종영됐다고 들었다. 최근 <두사람이다>를 비롯해서 자신이 출연한 영화와 드라마를 각각 한 편씩 끝냈는데 소감이 어떤가?
<키드갱>과 <두사람이다>의 촬영시기가 비슷했는데 그 때 우정 출연으로 <기다리다 미쳐>란 영화까지 3개를 같이 했었다. 그래서 너무 힘들었는데 끝나고 나니 후련하기도 하다. 그 뒤로 조금 쉴 시간이 있어서 가까운데 여행도 다니면서 쉬다가 지금은 홍보에 총력을 다하느라 다시 바빠졌다. (웃음)

여행을 좋아하나 보다.
집에서 쉬는 것도 좋지만 한번씩 여행 갔다 오는 것도 좋아한다.

처음 짝사랑으로 시작했다. 처음 출연한 <클래식>부터.
그렇지.

그런데 <키드갱>에선 결혼도 했다. (웃음)
내가 듣기론 원래 결혼 예정이 없었다더라. 원래는 아마 도희(빈우)랑 다른 사람이 연결될 예정이었는데, 빠듯한 일정 속에서 촬영되다 보니까 스토리가 바뀐 것 같다. 아마도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하려고 그랬던 것 같다.

그런데 개 좋아하나? 아까부터 눈이 자연스럽게 (인터뷰 장소에 있는 개한테) 가더라.
좋아한다.

덕분에 <해변의 여인> 생각이 났다. (웃음) 사실 그 때 개 끌고 다니는 청년은 예상밖이라 인상적이었다. <극장전> 생각도 났고, 그런 출연의 배경도 <극장전>과 무관할 것 같은데?
감독님은 <극장전>의 상원이가 감독을 지망하는 대학생 역할로 성장한 거라고 개인적으로 말씀해주셨다. 큰 의미는 없지만 전작과 연결되는 의미랄까.

올해 들어 본인의 이미지에 역행되는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최근 <두사람이다>에선 과감한 어필이었던 것 같고, <좋지 아니한가>는 좀 깼다. (웃음)
약간의 반전이랄까. (웃음)

아주머니한테 접근하는 다단계 청년이라니. (웃음) 항상 건실한 청년으로만 생각했는데, 그래서인지 나름대로 신선했다.
방금 말한 것처럼 날 건실한 청년 이미지로 생각했던 분들이 <좋지 아니한가>나 <두사람이다>를 통해 다른 모습을 보고 당황스러워 하고 그로 인해 재미있다고 느낀다면 내게 그런 모습은 고소할 것 같다. 그 분들은 영화 속의 내 모습을 보고 재미있어 한다면 난 그런 날 보는 분들의 반응을 보고 재미있어 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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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사람이다>가 <새드무비>이후로 두 번째다. 자신의 얼굴을 포스터에 내 건 영화는. 그런데 <새드무비>는 사람이 너무 많았고. (웃음) 여덟에서 하나보단 셋 중 하나가 더 낫지 않나? 확실히 비중이 커진 셈이니까.
내가 출연한 작품인데 불구하고 영화포스터에 내가 없는 경우가 태반이었기 때문에 그 동안은 무심결에 영화를 보다가 나를 발견해 준 분들이 반가웠다. 그 대신 이젠 내 얼굴을 간판으로 걸고 영화를 보게 될 분들이 생겼기 때문에 부담감도 조금 생기는 것 같다.

<두사람이다>는 기존의 작품들에 비해 출연량도 많았을 텐데.
드라마처럼 지속적으로 소화할 분량들은 일정한 에너지로 쭉 끌고 가야 한다면 <두사람이다>같은 경우는 굉장히 중요한 부분에서 뭔가 확실히 실어줄 수 있는 에너지가 필요했었던 것 같다. 사실 처음 시작할 때부터 부담됐다. 그 동안 해왔던 것들과 전혀 다른 모습이니까. 내가 그걸 한다면 과연 잘 어울릴까, 나랑 잘 매치가 될까, 그런 걱정을 되게 많이 했었다. 만약 안 어울린다면 배우로서 이건 정말 큰 타격이니까. 저 배우는 그냥 착한 동네 청년 같은 역할밖에 못한다고 낙인 찍힐까 봐. 그래서 시나리오 보면서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결과적으로 스스로가 봤을 때 어떻게 생각하나. 본인에게도 색다른 모습이었을 텐데.
나도 브라운관이나 스크린을 통해서 내 모습을 쭉 봐왔지만 지금 같은 모습은 처음이다. 극적인 분위기 자체가 음산한 공포영화도 처음이고, 피를 묻힌 것도 처음이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고, 그래서 어느 정도 만족하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내 눈에 계속 보이는 허점들을 보완해야겠단 생각도 든다. 그래도 한번 도전해봤기 때문에 잃은 것보단 얻은 게 더 많았던 역할이었던 것 같다.

새로운 모습을 통한 모종의 만족감도 있었겠다.
나에 대한 또 다른 자그마한 가능성을 발견한 것 같은 느낌이지.

그런데 <두사람이다> 현장에서 연장자 역할을 많이 했을 것 같다. 이런 경험도 거의 처음일 법한데.
그만큼 시간이 흘렀구나 싶더라. 데뷔한지 5~6년 정도 됐는데, <클래식> 때는 완전 막내였다. 스텝 분들도 다 형이었으니까. 그래서 막 형, 형, 그러면서 쫓아다니며 소주 한잔 받아먹고 그랬다. (웃음) 사실 그런 경우가 익숙했는데 지금은 어느덧, 나보다 어린 스텝들도 있고 심지어 <두사람이다>는 같이 하는 두 배우들조차 나보다 어렸으니까 묘하더라. 그렇다고 내가 그 두 사람보다 월등히 뛰어난 건 아닌데, 시간이 좀 흐른 탓에 은근히 맏형으로서의 부담감이 생기더라. 사실 난 현장 분위기가 재미있어야 촬영할 맛이 나는 편이다. 현장 분위기가 좀 삭막하고, 동료들 간에 불협화음이 있다던가, 사이가 안 좋으면 난 정말 못 하거든. 근데 <두사람이다>현장은 공포 영화지만 스텝들이 워낙 좋았다. 감독님도 밝은 성격이고, 촬영감독님, 조명감독님은 완전 밝은 분이셨고. 그에 잘 편승해서 스텝들과 촬영 중간중간 나머지 시간엔 잘 웃기도 하고, 떠들기도 하고, 그래서 부담감이 많이 줄었던 거 같다.

<두사람이다>가 첫 공포인데, 아이러니하지 않았나? 영화는 어두워도 현장은 밝으니까.
그렇지. 그런데 <두사람이다>의 스텝들이 모두 프로답다고 느꼈던 적이 많았다. 밥 먹거나 그런 쉬는 시간엔 다들 재주껏 놀다가 촬영이 들어가면 그 순간만큼은 정말 진지하게 영화에 대해서만 생각을 하는 것 같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영화란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작업이란 것도 깨달았지.

그런데 <클래식>에 캐스팅이 안 됐다면 군대 갔을 거란 이야긴 들었다.
인생이 바뀌었지. (웃음) 그 당시 내 친구들은 다 군대 갈 시기였고, 나도 날짜를 받아놓은 상태였고. 정말 우연히 <클래식>이란 시나리오가 내 손에 들어와서, 태어나 처음 오디션이란 걸 보고 <클래식>으로 얼굴을 알리면서 연기자의 길을 걷게 됐으니까.

그럼 그때 본격적인 연기자 준비를 했던 건 아니었나 보다?
모델 활동 하면서 생각은 가지고 있었다. 모델 활동을 좀 하다가 군대를 갖다 와서 일단 심리적으로 안정되고 뭔가 더 겪어본 다음에 배우를 해야겠단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 당시 군대를 빨리 가려고 했었던 거고.

처음 카메라 대면할 때 어땠나?
진짜 완전 쫄았다. (웃음) 일단 내가 연극영화과 출신도 아닌 경영학과 출신이니 카메라를 경험한 적도 없었고, 그 당시엔 DVD같은 것도 없어서 영화 촬영 현장을 미리 접해볼 기회도 없었고, 일단 영화 현장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도 전혀 몰랐다. 카메라가 어떻게, 무슨 렌즈가 어디를 얼마나 찍는지도 몰랐고. 그래서 난 무조건 전신이 다 나온다고 생각했다. 클로즈업이든 바스트건 상관없이. 그래서 전신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다 긴장한 상태에서 촬영했다. 종종 영화를 보면 배우들이 감독님한테 혼나는 경우 있잖아. 그래서 난 혹시나 그러지 않을까 싶어서 더욱 노심초사 긴장했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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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함께 출연했던 조승우 씨가 많은 조언을 해주지 않던가?
그때 승우 형이 사소한 것들이지만 누가 알려주지 않는다면 지금도 굉장히 헷갈릴 수 있는 것들에 대한 팁을 많이 줬다. 예를 들면 이렇게 대면하고 있는 씬에서 카메라가 날 찍고 있을 때의 시선 처리 같은 거, 그 사람이 카메라 오른쪽에 있으면 그 사람의 오른쪽 눈을 보고 이야기하는 게 좋다라는. 그리고 내가 감정이 심어져 있는 대사를 할 땐 승우형이 눈을 감아줬다. 자신의 눈빛을 보고 연기하는 배우가 혼선을 갖거나 시선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에. 물론 대사는 제대로 쳐주지만 눈은 감고 있었던 거다. 그렇게 상대배우를 배려하는 어떤 방법도 배웠다. 그때그때마다 조금씩 팁을 주고 가는 거지.

별 거 아닌 듯 하지만 실속 있는 조언들이다. 그런데 배우이기 이전에 지니고 있던 꿈은 없었나?
아마 배우가 아니었다면 회계사나 세무사 쪽을 공부하고 있었겠지. 전공이 그 쪽이니까. 아니면 내가 약간 미술 쪽에 관심이 있어서 인테리어를 공부할지도 모르고. 그래서 원래는 미대를 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는데, 내가 머리 속에서 구상한 걸 꺼내서 실물화하는 작업인데 왜 정물화 시험을 봐야 하는지 그 당시엔 전혀 이해를 못했다. (웃음) 물론 기본적인 미술 감각을 테스트하는 것이란 걸 뒤늦게 깨달았지만 그 땐 공감이 안 갔던 거지. 왜 데생을 하고, 왜 아그리파상을 그려야 하는지. 그래서 사업가의 꿈을 안고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그렇다면 배우라는 길에 들어선 계기는 어디서 시작됐다고 생각하나?
중학교 때부터 학예회나 체육대회, 성당 발표회 같은 데 나가서 가수들 흉내 내면서 춤추고 노래하고, 그런 걸 좋아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평소엔 얌전하다가 그럴 때만 그렇게 되더라. 그런 잠재된 끼가 있었나 보다. 그래서 중학교 때부터 막연하게 연예인이 되겠다는, 말 그대로 연기자가 아니라 연예인이 되고 싶단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연극영화과가 있는 예고에 시험을 봤다가 떨어졌다. 결국 서울고등학교에 입학했는데 그 땐 아직 어리니까 대학교가서 해봐도 늦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고등학교에서 친구들과 적당히 운동하면서 놀고, 적당히 공부해서 지금 대학에 입학했지. 한편으론 대학교 가면 나 스스로도 무언가 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지고, 집에서도 약간 관대해질 것이라 생각했고. 그러다가 고등학교 때, 이창동 감독님의 <초록물고기>를 우연히 집에서 혼자 봤는데 너무 재미있게 봤다. 특히 한석규 선배님 연기에 감탄해서 마지막엔 펑펑 울 정도였지. 막연하게 연예인이 되보고 싶다는 생각이 조금 진지하게 바뀌는 계기였던 것 같다. 진짜 저렇게 한번 되보고 싶다는 생각을 지닐 수 있었던 계기. 그때부터 연기자라는 직업을 새롭게 인식했고 그에 대해서 계속 고민하고 생각했던 것 같다.

집에서 관대해 질 것이란 기대감은 그 당시 그런 일을 하는 것에 대한 반대가 있었다는 이야기인가?
요즘은 내가 활동하니까 부모님께서 종종 웃으면서 농담도 하시는데 ‘우리 집안에 그런 애가 한 명 나올 때가 되긴 했다.’란 말씀도 하셨다. (웃음) 사실 아버지께서도 키가 크시고 얼굴은 나보다 더 작다. 우리 집안 체형들이 다 길쭉길쭉한 편이라, 옛날부터 할아버지도 배우 하란 말을 들으셨단다. 그런데 그 당시는 ‘딴따라’라고 부르면서 사회적인 인식이 별로 안 좋았던 시절이라 생각도 못했었다고 한다. 또 우리 집안이 대대로 공무원 집안이다. 아버지께서도 공무원이시고. 그렇다고 집안에서 내가 이 일을 하겠다고 했을 땐 반대는 안 했다. 일단 부모님께서 내가 어렸을 때부터 터치는 잘 안 하시는 편이었다. 오히려 그 역할은 우리 집에서 다니던 성당에서 정신적으로 맡아준 거 같다. 지금 형이나 나나 부모님께서 맞벌이하실 때도 비뚤어지지 않고 자기 할일 잘 했던 게 성당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부모님께서는 우리한테 무언가를 던져서 맡겨주시면 그냥 지켜보신다. 그냥 지켜보시다가 크게 엇나갈 것 같으면 한마디 해주시는 정도. 그런데 정말 내가 나중에 가정을 갖게 되면 그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아버지의 교육 철학은 굉장히 좋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지금은 완전한 내 서포터시지. 아주 훌륭한 홍보 대사다. (웃음)

유전자의 영향인가. 외모에서 풍기는 이미지가 곱게 자란 느낌이다. (웃음) 반듯한 느낌이기도 하고. 그런 이야기 평소에 듣지 않나?
반듯해 보이는 건 우리 형이 좀 더 그렇다. 난 좀 모자람 없이 넉넉하게, 부유하게 자랐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종종 있다. 사실 겉보기만 그렇고 부모님들께서 키우시느라 고생을 많이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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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오해가 캐릭터에도 반영된 게 아닐까 싶다. 그걸 올 해 들어서 2번에 걸쳐서 깬 셈이고. 그리고 아닐 것 같은 사람이 그럴 때 충격은 2배가 된다는 점에서 그 2번의 연기는 효과적이었다. 동시에 이는 본인에게 연기의 영역을 더욱 넓혀준 계기가 됐을 법하다. 그런데 평소에 그런 연기적 변신에 대한 욕구가 없었나?
<야수>의 권상우 씨처럼 남자답게 멋있고 강인한 인상을 심어줄 수 있는 역할이 굉장히 하고 싶고 부러웠던 게 사실이다. 그리고 그런 역할을 하면 관객들이 매력을 느끼는 것 같아서 늘 하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었지. 그런데 지금도 그런 강인한 역할을 연기하기엔 내가 좀 어리단 생각이 든다. 아직은 겉으로 풍기는 이미지도 남자다움보단 소년스러움을 많이 갖고 있는 것 같아서 그런 걸 스스로 잘 알기 때문에 도전을 못 했던 것 같다.

어쩌면 <두사람이다>이 그런 의미에서 어느 정도 자신감을 충족시켜주지 않았을까? 사실 <두사람이다>의 반전은 이야기보단 배우의 이미지가 깨진다는 점에서의 충격이 더 와닿았다.
내가 이 역할을 선택한 이유는 도전과제가 있는 역할이었기 때문이었다. 또 초, 중반부와 후반부에 달라지는 2가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으니까, 그것도 하나의 이유였던 것 같다. 한 작품 안에서 2가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으니까. 하지만 아예 처음부터 강인한 역할을 했다면 너무 부담스러웠을 거다. 그런데 중간에 늘 하던 역할이 섞여있어서 조금은 쉽게 결정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예전에 <혼자가 아니야>란 시트콤에서도 은근히 웃겼던 기억이 난다. <두사람이다>를 통해서 처음으로 공포 연기를 보여줬는데 그런 새로운 이미지를 보여준 만큼 새롭게 뭔가 해보고 싶다는 목표가 생길 법도 하다.
남을 웃겨도 보고, 울려도 봤는데 이젠 <두사람이다>를 통해서 공포감까지 줬다. 그게 배우가 해야 할 일인 거 같다. 근데 내가 남들을 진짜 제대로 울려 본 적은 없었다. 물론 우는 것도 마냥 슬픈 게 있고, 혹은 연민의 정으로 울 수 있는 거지만. 그래서 나중엔 좀 제대로 울려줄 수 있는 그런 역할도 해보고 싶다.

울리고 싶다고 하니 여자 많이 울리는 스타일은 아니었나 보다.
물론 아니지! (웃음)

농담이고, 그런데 혹시 싫어하는 사람과 잘 만날 수 있는 편인가?
난 싫어하는 사람과 안면 씻고 정색하는 성격은 못 된다. 그래서 그 사람의 언행이나 태도가 맘에 안 들어도 같이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옆에서 계속 말해도 난 그냥 ‘그래. 넌 그래라.’란 식으로 그냥 신경 끄고, 그 사람을 위해서 뭘 해 주거나, 정을 주진 않는 거지. 그러니까 다 받아주긴 하는데 선을 정확히 그어놓는다. 친해지려고 안 하는 편이랄까. 그래도 좀 친해진 사람하고는 장난 아니게 친해지는 편이고.

아무래도 <두사람이다>에서 연기한 캐릭터가 증오를 숨긴 인물이기 때문에 본인은 어떤 사람일까 싶었다.
내가 AB형이라서 그런지, (웃음) 내 감정을 숨기는 건 잘한다. 많이 싫어도 싫은 내색 잘 안하고, 많이 기뻐도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내 사람들 사이에선 많이 표현하지만, 정말 아닌 사람들 앞에선 적당히 하고. 근데 정말 키까지 큰데 그래 버리니까 싱겁다고들 하지. 그런 모습을 본 사람들이. 싱거운 놈이라고.

외모 때문에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아까 말한 반듯한 청년 이미지 때문에. (웃음) 그런데 얼마 전, 모 TV프로에서 스스로 텔레마케터를 했다고 고백했다던데.
그게 모델 활동 시작할 무렵, 그러니까 2001년도 쯤에 스키를 장만하고 싶어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텔레마케터도 해보고, 아파트 공사 현장에 보일러 설치하는 것도 해보고, 아르바이트 많이 했다. 커피숍에서 알바도 했고, 이것저것 많이 했다.

커피숍 다닐 때 고정 팬 확보 좀 되지 않았을까? (웃음)
사실 그 때부터 조짐이 보였던 거 같다. (웃음) 나이 많은 누나들 있잖아, 그 당시에 내가 대학교 1~2학년 때였는데, 3~4학년 정도 되는 그런 누나들이 종종 쪽지도 주고. (웃음)

갑자기 <좋지 아니한가>가 떠오르는데. (웃음) 어쨌든 올 해 예년에 비해 많은 활동 중이다. 나름대로 얻은 것도 많을 것 같은데.
가장 좋았던 건 사람들을 많이 얻었다는 것. <키드갱>을 통해 손창민 선배님이란 대배우와 어울리면서 함께 웃고, 힘들 게 촬영했던 것만으로도 고맙고 그런 기억들이 아마 평생 남을 것 같다. 물론 건달이 좋은 이미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그전에 연기한 지극히 착해고 로맨틱한 남자들보단 훨씬 인간적인 냄새가 많이 나는 역할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칼날이란 역할에 굉장히 많이 동화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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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도 직접 돌보고.
아기도 좋아하는 편인데, 예준이가 너무 예뻤다. 그래서 나뿐만 아니라 다들 너무 예뻐했지. 아기가 울어야 할 때 울고, 웃어야 할 때 웃고 심지어 심각한 표정까지 지어버리니까 다들 감탄했지. 나도 빨리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더라.

약간 이른 질문일지 모르지만 미래의 가족 계획 같은 건 없나?
난 결혼을 일찍 하고 싶었다. 사실 내 목표는 28살에 결혼 하는 거였다. 사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가장 왕성할 때가 이십 대 후반이라고 생각한다. 그때 아이를 가져서 그런 가정 안에서 내 생각들을 정리하고 뭔가 안정된 자세로 매진하고 싶은 마음이었던 거지. 우리 아버지께서 스물 여덟에 장가를 가셨다. 공무원 임용고시 붙자마자 장가를 가셨는데 장가를 일찍 가셔서 형이랑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편이 아니다. 근데 그게 너무 보기 좋았다. 한편으론 아버지를 닮고 싶단 생각이 많아서 그러고 싶었는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이젠 늦었지.

<두사람이다>에서 ‘찌르는 사람이 있으면 찔리는 사람이 있다’는 대사가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본인은 누굴 찌르는 편인가, 누군가에게 찔리는 편인가?
사람들이 보통 이기적인 거 같다. 그래서 찔리는 건 아는데 찌르는 걸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자기도 모르게 누구를 찌르긴 찌른 것 같은데, 자기 자신은 남으로부터 찔린 것만 기억하고자 하는 심리가 있지 않을까. 나도 그 대사를 보면서 살아가면서 나도 모르게 누군가를 찌른 경우가 분명히 있었을 텐데 싶더라. 친구들과 어울리는 순간에 나도 모르게 말실수를 해서 나도 모르게 상처를 주는 순간이 있었을 텐데, 그런 생각들을 하니까 좀 더 말과 행동을 신중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리고 공인이기도 하니까.

관계에 대한 생각을 한번쯤은 하게 되는 영화인 것 같다. 그렇다면 자신에게 소중한 두 사람은 누구인가? 혹은 자신이 배우가 되는데 가장 기여한 두 사람은 누구라고 생각하나?
가장 소중한 두 사람은 아버지, 어머니. 그건 내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아마 부지부동이었을 거다. 배우가 된 것도 모두 그분들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처럼 집안에 대한 걱정이나 고민 없이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매진할 수 있게 환경을 잘 만들어준 것도 부모님 덕분이니까. 언젠가 아니, 언젠가 라기 보단 이건 계속 갚아나가야 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작게든, 크게든.

이제 첫 영화로부터 5년이 지났다. 그 동안에 출연한 영화들이 쌓였는데, 그 중 자신이 배우가 됐음을 실감한 작품이 뭔가?
내가 처음으로 배우를 하고 있긴 있나 보다 했던 게 <극장전>이었다. 그 전까진 연예인이란 타이틀이 어울렸다면, <극장전>덕분에 홍상수 감독님과 작업하고 나니 영화계에 계시는 분들이 배우라는 타이틀을 걸어주는 것 같더라. 감독님께서 날 믿고 캐스팅해주신 덕분이고 그 덕에 생애 첫 영화제가 칸 영화제가 되기도 했다. 내 인생에 있어서 배우라는 타이틀을 걸어준 건, <극장전> 그리고 홍상수 감독님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엄청난 인연이자 행운이다. 그렇다면 홍상수 감독님이 자신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했을 법도 한데.
나도 그게 의아했다. 왜 나일까? 그리고 홍상수 감독님은 예쁘거나 잘 생긴 배우조차 일상적으로 만들어서 표현하고, 그로부터 어떤 독특한 향을 느끼게 하는 영화를 만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키만 멀대 같이 크고 어린 날 뭘 보고 캐스팅하시나 생각했다. 촬영을 하는 중간중간에도 그런 의구심이 들었다. 하지만 촬영은 정말 재미있었고 그러다 보니까 결과물에 대해서 궁금증도 생기고 기대감을 갖게 됐다. 그리고 후에 완성된 영화를 보고 나서, 이래서 날 캐스팅 하셨구나 싶더라. 키 크고 트렌디한 느낌의 이기우를 옆집 수험생 같은 느낌으로 완전히 탈바꿈 시켜 주셨다.

지금까지 행보를 보면 차근차근 자신의 영역을 넓혀가는 느낌이다. 올해부터는 본격적으로 영역을 개척하는 듯한데, 앞으로 자신의 타이틀을 걸고 싶은 욕심은 없나?
시기라는 게 있는 것 같다. 내가 10편 가량의 영화를 하면서 현장에서 습득할 수 있는 기술이나 인간관계를 맺는 이런 것들도 다 시기에 따라 다른 것 같다. 처음은 호기심에서 출발하고, 중간은 알아가는 재미였지만 이젠 배우로서 너무 당연하고, 반드시 해야 되는 과정이 된 것 같다. 그리고 그걸 깨닫게 된 순간부터 난 한 영화의 주인공이 될 자격도 갖추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쯤 그걸 하면 참 좋지 않을까, 싶은 마음도 있다. 시기적으로 볼 때 10편 정도가 적은 편수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애초에 한두 편의 영화로 확 뜨는 스타가 되기보단 작게나마 조금씩 덧댄 이미지를 보여주는 게 내 계획이었거든. 조금씩은 계획대로 되가는 거 같다. 그래서 이젠 주연에 대한 욕심도 조금 생긴다.

혹시 정말 해보고 싶은 역할이나 함께 작업하고 싶은 감독이 있나?
예전에 <극장전>할 때, 이십 대 중반에도 종종 이야기했었지만, 군대 갔다 오고 서른 넘어서 홍상수 감독님 영화에 한 번 더 출연해보고 싶단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다. 그리고 지금 원래 내가 촬영에 들어갈 영화가 있는데, 차승원 선배님과 한석규 선배님이 출연하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란 작품이다. <키드갱>의 칼날이 좀 진중한 역할이었다면, 거기선 좀 껄렁껄렁한 역할이다. 그런 역할을 지금 내 나이일 때 하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을 했다.

처음 데뷔했을 때가 23살이었는데, 그런데 지금은 서른 되기까지 3년 남았다. 서른 되기 전까지 이루고 싶은 목표 같은 건 없나?
벌써 그렇게 됐다. 생각도 못했는데. (웃음) 배우로서 영화를 만드는 분들이나 관객들한테 영화인이라는 것을 각인시켰으면 좋겠다. 이기우는 영화를 계속 할 사람이란 확신을 주거나 영화를 계속 해줬으면 좋겠단 바람이 남을 수 있는 배우. 사실 그건 서른 살이 아니라 마흔 살, 쉰 살까지 가지고 가야 할 목표인 거 같다. 끊임없이 수요가 있어야 공급이 있는 거니까, 이기우에 대한 수요를 느끼게 할 그런 작품들을 많이 하고 싶다.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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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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