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meless Endless Beauty
이영애는 한 남자의 아내이자,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자신의 삶을 살고 있다. 누구나 그러하듯 그녀 또한 세월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삶이 가리키는 방향이 애써 거스르지 않는다. 행복한 일상과 평화로운 세계를 꿈꾸는 이영애의 삶은 여전히 아름답다.
<엘르>가 창간된 1992년 당시 이영애 씨도 '산소 같은 여자'라 불리며 주목받던 시기였어요.
89학번이라 1992년엔 졸업반이었죠. 당시엔 주목을 받으면서도 진로에 대해 고민했던 시기였어요. 벌써 20년 전이네요. 이렇게 말하니까 제가 너무 나이 든 것 같네요(웃음).
과거를 종종 돌아보는 편인가요?
20~30대에는 바빠서 그럴 정신이 없었죠. 요즘은 결혼해서 아이도 낳고 살면서 옛날 얘기도 하다 보니까 생각이 많이 나요. 돌아보면 힘들었지만 그래도 재미있었어요.
결혼 이후에 달라진 점이 뭘까요?
남자도 마찬가지겠지만 결혼 전에는 자신만을 위해서 살았죠. 일만 생각하고, 나한테만 투자하고, 결혼하고 나면 가정에 대한 책임이 생기죠. 아이를 낳으면 또 한 번 가치관이 바뀔 수 있고요. 결혼하고 출산하니까 아이를 위해서 생각하게 돼요. 시야가 조금 넓어지고 깊어지는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우리 애들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생각해요. 게다가 요즘은 세상이 너무 험악하니까요.
최근 미얀마 학교 설립 기금을 전달했다는 기사를 봤어요. 원래 이런 사안에 관심이 많았나요?
결혼 전부터 적극적으로 해보고 싶었지만 혼자 결정하기 어려웠죠. 이젠 남편에게 이런 고민을 털어놓으면 적극적으로 지지해 주니까 용기가 생겨요. 국내에서 도움을 주는 건 당연한 거고 <대장금>으로 많은 나라에서 사랑을 받았으니 기회가 되면 외국에도 도움을 주고 싶었어요.
평소에 남편과 대화를 자주 나누시나 봐요.
그게 중요한 거 같아요. 그게 가족이고, 부부인 거 같아요.
결혼 전에 막연하게 어떤 아내가, 어떤 엄마가 되고 싶다 생각한 적 없었나요?
원래 결혼을 빨리 하고 싶은 편은 아니었어요. 20~30대까진 일에 파묻혀 살았는데 이렇게 일이 재미있고, 혼자 있는 게 좋은데 과연 결혼생활을 잘할 수 있을지, 일하지 않으며 살 수 있을지, 막연하게 불안했죠. 하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일했고, 이룬 바가 있다고 생각해서 적당한 때 결혼했다고 생각해요. 뒤늦게 맛본 일상이 소중했기에 편안하게 안착할 수 있었어요.
처음 아이를 안아본 순간이 잊히지 않을 거 같아요.
모든 엄마들은 다 비슷할 거에요. 아이를 낳는 순간에는 이루 말할 수 없이 경이롭죠. 게다가 저는 자연분만을 하고 쌍둥이까지 낳았잖아요. 얼마나 힘들게 아홉 달을 지나왔겠어요. 하느님, 부처님, 조상님, 신이란 신은 다 불러 모아서 감사하다고 기도했어요(웃음).
아들 낳고 싶었나요? 딸 낳고 싶었나요?
신랑은 딸을 원했어요. 저는 아들도, 딸도 괜찮았는데 농담 삼아 아들 하나, 딸 하나 낳았으면 좋겠다고 한 적은 있었죠. 그런데 둘 다 얻었으니 얼마나 감사해요.
아이들이 하루하루 커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건 어떤가요?
이제 19개월이 되니까 날아다니고, 뛰어다녀요(웃음). 아들과 딸은 너무 달라요. 아들은 사내대장부 같고, 딸은 아기자기하고, 아들은 아들대로, 딸은 딸대로 보는 맛이 있어요. 보기만 해도 시간가는 줄 모르고 눈에 넣어도 안 아프다는 말이 바로 이렇다는 걸 느껴요.
엄마가 되면서 새롭게 보이는 것들도 있겠죠?
옛날에는 배우로서 역할만 생각했지만 지금의 우선순위는 우리 애들이 살아갈 세상이에요. 전쟁도, 공해도 없는 세상을 살아야 할 텐데 뉴스만 봐도 세상이 너무 각박하잖아요. 애들조차 폭력적인 세상이 됐고요. 인성교육이 잘못된 거에요. 덧셈, 뺄셈을 잘하는 것보다 얼마나 바른 사고를 갖고 살 수 있는지가 중요하잖아요. 신랑이랑 종종 얘기해요. 바람직한 쪽으로 우리가 리드해 보자고. 배우로서도 하고 싶은 작품을 찾고 다양한 역할을 해야겠지만 조금 더 사회에 경각심을 주는 작품을 하는 것도 의미 있을 거라 생각해요.
<친절한 금자씨>가 개봉된 2005년 이후로 연기 경력이 멈췄어요. 이유가 뭔가요?
1년 가깝게 <대장금>을 찍으며 소진된 마당에 바로 <친절한 금자씨>를 하면서 많이 지쳤어요. 게다가 <대장금>이 메가 히트를 치고, <친절한 금자씨>도 기대 이상의 흥행까지 거두고 나니까 배우로서 나름 포만감을 느꼈죠. 그래서 나름대로 소화시킬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거 같아요. 그런 다름 다시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작품이 배우가 원한다고 오는 게 아니니까요. 2009년에 결혼하기 전까지 3~4년 동안 쉬고 싶어서 쉰 시간도 있지만 작품을 기다리다가 놓친 시간도 있었죠.
그럼에도 여전히 배우로서의 복귀 여부에 대한 관심이 뜨겁습니다.
배우로서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건 이 직업을 가진 한 피할 수 없는 문제에요. 저를 싫어하는 분들도 당연히 있겠지만 알아보고 반갑게 맞아주는 분들이 있다는 건 나이가 들고 보니까 참 고마운 일이더라고요.
여전히 연기 욕심이 있나요?
결혼 전에는 정말 욕심이 많았죠. 결혼 전보단 선택의 폭이 좁아진 것이 사실이고요. 지금 제 인생의 우선순위는 가정이에요. 가정을 제대로 지킨 다음에 연기도 할 수 있는 거라 생각해요. 그만큼 제가 가정을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주는 작품이라면 하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MBC스페셜로 방영된 <나는 이영애다>에서 <대장금>에 출연한 한지민 씨가 이영애 씨를 이렇게 말했더군요. “정말 힘들었을 텐데 항상 흔들림 없는 모습이었던 거 같다.”
<대장금>의 90%가 제 분량이었죠. 하루도 쉬는 날이 없었는데 제가 쓰러지면 드라마가 불방되는 상황이었다고요. 아마도, 쓰러져도 안 되니까 제가 흔들리면 큰일나죠. 막말로 감독님이 흔들리면 조연출이라도 어떻게 하겠지만 제가 쓰러지면 누가 대신할 수 없잖아요. 그래서 <대장금>을 끝내고 긴장이 탁 꺼지니까 열흘은 몸져누웠어요. 농담 삼아 5년은 늙은거 같았어요.
<대장금>이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이끌어내는 과정이 놀랍진 않았나요?
알았다면 개런티를 더 받았을 텐데(웃음). 적어도 <대장금>이 사람을 따뜻하게 만드는 드라마라고 느꼈어요. 배우뿐서 뿐 만니라 사람으로서도 많은 걸 느낄 수 있는 진정한 웰메이드 작품이라고 믿었어요. 가끔 신랑하고 이태원 산책을 하는데 한번의 중동 사람이 와서 초콜릿을 건네주기도 하고,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이 알아봐주는 거에요. <대장금>이 정말 전 세계적인 드라마라고 느꼈어요.
책임감이 클수록 신중한 법이잖아요. 무언가를 쉽게 선택하는 편은 아닐 것 같아요.
어쩌면 소심한 거죠. 돌다리도 두들겨는, 생각이 좀 많은 편이에요. 그렇게 결정하면 열심히 하고, 결과를 떠나서 후회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나는 이영애다>에서 지금이 예전보다 좋다고 했어요. 어떤 면에서 그렇게 느끼시나요?
만약 20대를 허비하고 30대를 그냥 좋았다면 지금이 좋진 않겠죠. 계단 하나를 오르고, 두 개를 올라야 세 번째 계단에 닿는 것처럼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기 때문에 여유를 얻은 거 같아요. 30대를 거치면서 나름대로의 기준으로 행복에 대한 가치관을 터득했고, 만족할 수 있는 여유를 찾았어요.
요즘의 관심사는 뭔가요?
제빵을 배우고 있어요. 재미있기도 하지만 저희 아들이 빵을 너무 좋아하거든요. 건강에 해롭지 않은 빵이나 피자를 만들어주고 싶어요. 곧 양평으로 이사를 가는데 전원에서 아이들과 함께 자연에 파묻혀 살아보고 싶어요. 좋으면 눌러살 수도 있겠죠. 아마 이 인터뷰가 나올 때면 이미 이사했을 거에요.
2009년에 결혼하면서 박사 과정도 준비했다던데, 진전이 있나요?
전공 분야였던 연극영화과로 박사 과정을 밝고 있는데 학문적으로 공부하는 것도 의외로 재미있더라고요. 박사 학위를 따겠다는 욕심보단 공부에 한 번 더 관심을 가져보자 싶었어요. 물론 녹록하진 않아요. 그만큼 어렵고 힘드니까 박사가 되면 인정받을 수 있는 거겠죠? 출산과 육아 때문에 휴학도 했었고, 일단 욕심 부리지 않으려 해요.
전지현 씨와 친분을 유지했다고 들었어요. 친분을 유지하는 다른 배우가 있나요?
(장)서희도 자주 만나지 못해도 가끔 격려하면서 보이지 않게 응원하는 사이에요.
올해 전지현 씨가 결혼했는데, 특별한 조언은?
지현이는 저랑 열 살 터울이지만 워낙 자기 나이 이상으로 대견한 친구에요. 오히려 제가 배울 게 많죠.
전지현 씨가 다시 활발하게 연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다시 연기하고 싶단 생각을 해보진 않았나요?
아이들이 아직 19개월이잖아요. 하루하루 자라나는 게 너무 예쁠 때라 이 순간을 놓치면 후회할 그에요. 아이들이 자라는 걸 보는 것 이상으로 좋은 작품이 있다면 하겠죠. 그런 작품이 있겠어요(웃음)? 좋은 작품은 당연히 하겠지만 지금 우리 아이들 이상으로 기쁨을 주는 건 없을 거에요.
지금은 아이들이 가장 좋은 작품인 셈이네요.
저희 신랑이 우리 일상을 <대장금 2>처럼 생각하자고 말해요. 우리는 이미 집에서 <대장금 2>를 찍고 있다면서요(웃음).
최근 <대장금 2>제작 이야기가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이름이 언급되는 상황이었잖아요. 어떤 기분이었나요?
<대장금 2>는 <대장금> 끝나자마자 나왔던 이야기이고, 계속 프러포즈가 있었어요. 전 세계 80개국 이상의 나라에 수출된 드라마가 <대장금>밖에 없으니 당연히 속편을 만들고 싶겠죠. 그래서 가끔 애국심으로 하라는 분들도 있지만(웃음). 돈만 벌자고 될 일은 아니잖아요. 단지 금전적인 이유로 속편을 만들어서 전 세계 사람들을 실망시킬 수도 없고요. 저는 한다고, 하지 않는다고 말한 적 없는데 제가 할 것처럼, 그래서 <대장금>이 만들어질 것처럼 이야기하는 건 아닌 거 같아요.
솔직히 그저 만들기 위한 작품을 만드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요.
요즘은 시즌제로 드라마를 만들잖아요. 만약 처음부터 <대장금>을 그렇게 기획했다면 모르겠어요. 그렇지 않기 떄문에 속편을 보다 심사숙고해서 만들어야 되는데 만들기 위한 작품, 대작을 위한 대작이 되면 하지 아니한 것만 못한 거죠.
생각이 많아지면 산에 오른다고 했어요. 원래 혼자 하는 일을 좋아하는 편이었나요?
혼자 명상하고, 산책하고, 요가하고 그렇게 뭔가 혼자 하는 걸 좋아했는데 결혼하고 나선 신랑하고 많이 하죠. 한남동에 살땐 남산에 많이 올랐고, 이태원을 많이 걸었어요. 이제 양평으로 이사하니까 그곳에 산책로를 만들어서 신랑하고 자주 걸어야죠. 걷는 걸 좋아해요.
혹시 나이 들어간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나요.
아무래도 제가 연기자고 여배우인데 전혀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하지만 이제 그런 두려움을 메워주는 든든한 가족이 생겼잖아요. 위안과 안정을 얻는 울타리가 생긴 거죠.
나이 들어간다는 것에 대한 가치관이 있을 것 같군요.
요즘 신랑하고 우리 아이들이 커나가는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요. 저희가 아기를 늦게 가졌잖아요. 언제까지 품 안에서 키울 수 없고요. 결국 아이들이 사회로 나가야 되는데 우리가 사회를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배우로서 좋은 작품을 남기고 다양한 역할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카테고리 안에서, 능력 안에서 <대장금>처럼 사람들에게 따뜻함을 전할 수 있는 의미를 만들고 싶어요. 그렇게 조금이나마 아이들을 위한 어른으로서 나이 들어가고 싶어요. 제가 너무 정치인처럼 얘기했나요(웃음)? 결혼하고 자식 생기면 이 마음 알 거에요(웃음)!
(ELLE KOREA 11월호 NO.2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