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희가 진행하는 <뉴스9>엔 유난히 독점 보도가 많았다. 이상하다. 타방송사 기자들은 노는 것도 아닐 텐데 왜 <뉴스9>에서만 유독 독점 보도가 많단 말인가. 손석희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매일같이 출입처에서 나오는
자료 보고 그 바탕 위에서 보강 취재하는데 익숙해지면 자기가 주도적으로 하는 게 아니다. 그런 데 익숙해진
기자의 경우 자율적 취재기능이 상당 부분 떨어져 있다.” <뉴스9>의
공신력은 바로 그러한 기본적인 저널리즘의 원칙을 지키는 데서 나온다. 그리고 손석희의 <뉴스9>은 언론의 직업 윤리란 정의로운 신념을 걸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전달할 수 있는 실력을 증명함으로써 가능한 것임을 새삼 깨닫게 만든다.
"<뉴스룸>이추구하는것은지금까지진행해왔던 <뉴스9>과본질적으로다르지않습니다. 한걸음더들어가진실에접근하는것입니다." 손석희의말처럼<뉴스룸>은
기존의 <뉴스9>의 확장판이다. 100분짜리 뉴스라니, 전례가 없는 일이지만 보도국 입장에선 기존의
탐사 보도를 보다 정밀하게 분석하고 전달할 수 있는 호흡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기존의 <뉴스9>에서 힘을 발휘했던 손석희의 생방송 인터뷰 능력과
현장성 있는 보도 방식은 100분이라는 시간을 생동감 있게 채운다. 실제로
지난 10월 17일 판교 환풍구 추락사고 당시 <뉴스룸>은 해당 보도를 무려 70분 동안 진행했는데 대부분 현장에 출동한 기자들의 현장 스케치와 현장에 있었던 목격자들과의 통화로 채워졌다. 지금 가장 중요한 사건을 사건 현장에서 급박하게 전한다는 것. 이건 <뉴스룸>이 타방송사들과 차별화된 취재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해외의 ‘뉴스쇼’들처럼 박진감을 연출해내는
능력이 탁월하다고 말할 수 있다. 게다가 갖은 사회적 이슈들이 난무하는 작금의 현실에서 100분짜리 뉴스가 존재한다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손석희의 <뉴스룸>이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지, 무모한 도전으로 회자될진 모르겠다. 공중파 뉴스의 시청률에 비해서
낮은 시청률을 보이는 종편 뉴스로선 모험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뉴스룸>의 영향력은 이미 타방송사의 뉴스를 압도한지 오래다. 브랜드로서의 인지도가 중요하다. 게다가 당장 TV 앞에 앉아서 뉴스를 보지 않아도 <뉴스룸>엔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많다. 시작한지 한 달이 지나지 않은 <뉴스룸>에 대한 평가가 심심찮게 들린다는 건 이미 <뉴스룸>이 어떤 식으로든 기류를 형성하고 있는 셈이다. 적지 않은 영향력이 감지된다. 지금 한국의 방송 뉴스는 손석희가
있는 뉴스와 손석희가 없는 뉴스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생각해 보면 처음 손석희가 JTBC의 보도국 사장직을 맡는다고 했을 때 많은 이들이 손석희를 의심했다. 하지만
지금 그 누가 손석희를 의심하는가. 지금 손석희를 의심할 수 있는 건 어쩌면 손석희뿐이다. <뉴스룸>에 대한 믿음도 거기에 있다. 손석희는 손석희를 배반하지 않을 것이다.
올해로 65회를 맞이한, 미국의 권위 있는 TV 시상식 에미상 후보작들 가운데서 눈에 띄는 작품은 9개 부문 후보로 이름을 올린 <하우스 오브 카드>였다. 영국의 보수당 정치인이자 작가인 마이클 돕스의 동명 소설을 극화한 BBC의 동명 TV시리즈를 리메이크한 작품으로 백악관 입성의 야심을 품은 한 정치인의 권모술수를 현실에 밀착시키듯 흥미롭게 그린 정치스릴러다. 테크니션의 대가 데이비드 핀처가 제작과 연출을 맡고, 케빈 스페이시와 로빈 라이트 등 신뢰할만한 배우들을 전면에 포진시키며 탁월한 조형도를 확보했다. 하지만 이 정치스릴러가 주목을 받은 건 작품의 외적인 요소 덕분이었다.
<하우스 오브 카드>가 공개된 건 올해 2월이었다. 대부분의 미니시리즈들이 그러하듯이 HBO 같은, 이름만 대도 알만한 유료 케이블 채널을 통해서가 아니었다. 온라인을 통한 독점적 공개였다. <하우스 오브 카드>는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인 넷플릭스의 자체 제작 미니시리즈였기 때문이다. 그 이례적인 사실만큼이나 공급 방식 역시 파격적이었다. <하우스 오브 카드>는 기존의 TV 미니시리즈처럼 주 1~2회씩 순차적으로 방영되지 않았다. 13화를 한번에 공개했다. 넷플릭스의 유료 가입자라면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로 <하우스 오브 카드>의 전회를 시청할 수 있었다. <하우스 오브 카드>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됐다. 지난 4월 넷플릭스는 1분기 매출 실적이 10억 달러가 넘었다고 발표했다. 창립 이래 처음이었다. 이 발표와 함께 주가는 24% 폭등했다. 발표에 따르면 전년도까지 2700만명 수준이었던 유료 가입자 수도 3600만명을 상회했다. 미국 내 최대 유료 가입자를 지닌 케이블 채널 HBO가 2800만 명 수준임을 감안한다면 대단한 수치다.
1997년 인터넷 DVD 대여 서비스 업체로 출발한 넷플릭스는 2009년부터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 시장에 주력했다. 그 과정에서 주가 폭락 사태를 겪기도 했지만 영상 콘텐츠를 생산하는 회사들과 독점 계약을 맺고 콘텐츠를 강화하며 점차 저변을 넓혀나갔고 미국 내 최대 규모의 회사로 성장했다. 그리고 <하우스 오브 카드>와 같은 오리지널 시리즈 제작과 성공은 넷플릭스를 기존의 케이블 채널과의 경쟁자로 인식하도록 만들었다. 전통적인 TV 채널 중심의 방송 시스템을 흔든 결과다.
오늘날 사람들은 TV 앞에 앉아있지 않고도 TV를 볼 수 있다. 태블릿 PC, 스마트폰 등 인터넷 접속이 가능한 디바이스를 통해서 실시간으로 혹은 뒤늦게라도 다운로드를 받아서 감상할 수 있다. 미국의 한 시장조사기관은 온라인 스트리밍 사용자 중 60% 이상이 넷플릭스로 영화나 드라마를 감상했다고 전한다. 소비자가 확보된 만큼 자체 콘텐츠를 생산할 이유도 충분해진다. <하우스 오브 카드>의 성공은 포스트 TV 시대의 예고편일지도 모른다. 방송 콘텐츠를 TV로만 소비하던 시대에서 벗어났듯이 방송 시스템이 TV 채널에만 적용될 이유가 없음을 피부로 느끼기 시작했다. 망망대해에 좌표가 생겼다. 인터넷이라는 인프라에 전통적인 영상 콘텐츠 제작 시스템이 합병된 셈이다. 앞으로의 전망? <하우스 오브 카드>는 총 26부작으로 제작됐고, 아직 13부작이 남았다. 그 13부작은 넷플릭스의 미래이자 방송 패러다임의 새로운 미래를 잇는 교두보가 될지도 모른다. 넷플릭스가 확실한 조커를 쥐고 있다는 말이다.
언제부턴가 케이블과 종편 채널에서 공중파에선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파격을 전파하기 시작했다. 그 전파의 주체들은 누구인가. 궁금하다면 채널, 아니, 페이지 고정할 것.
‘빠’들의 힘, <SNL 코리아>
TVN의 <SNL 코리아>는 미국의 간판 라이브쇼 <SNL>의 한국 버전이다. 안상휘 CP가 <SNL>의 국내 도입을 건의했고 일단 8회 정도를 해보고 판단하자는 내부 의견을 얻었다. “1회가 별로였다면 아마 힘들었을 거다. 1회 호스트였던 김주혁이 잘해줘서 할만해졌다.” 안상휘 CP에 따르면 시즌1은 ‘절반의 성공’이었다. 호스트에 따라서 기복이 심했다. 시즌 2의 양동근 편부터 감을 잡았다. 19금 개그를 본격적으로 건드리며 반향을 일으켰다. 그리고 신동엽의 호스트 출연은 <SNL 코리아>의 뇌관을 건드렸다. 잠재력이 폭발했다. 시즌 3에 신동엽을 영입한 건 <SNL 코리아>의 전후를 구분하는 신의 한 수였다. 크루들의 캐릭터가 확실해진 것도 그 무렵부터였다. 우리 사회에서 음성화된 19금 소재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려 능수능란하게 주무르고 과감한 정치 풍자와 위트 있는 시사 만평까지 도맡으며 파격적인 포복절도를 선사했다. 그리고 정규 방송으로 편성된 지금까지 <SNL 코리아>는 토요일 11시마다 생방송됐다.
“스튜디오 콩트를 4~5개 정도 준비하고, 야외 촬영되는 뮤직비디오도 2개 정도를 확보하고 오프닝 스테이지와 ‘위크엔드 업데이트’까지 대략 11개 코너를 정리해야 한다. 매주마다 그만한 아이디어를 짜고 대본 작업을 하며 생방송을 대비한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다.” 그래도 한 주 내내 생방송을 준비했던 예전과 달리 이젠 호스트와 크루들의 리딩과 리허설, 생방송은 토요일 하루 동안만 순차적으로 진행된다. “크루들이 스타가 된 만큼 <SNL 코리아>에만 집중해야 한다면 결국 이탈할 수밖에 없을 거다.” 크루 한 사람 한 사람이 <SNL 코리아>의 저력임을 알고 있다. 오전에 대본을 리딩하고, 점심 이후로 무대 리허설을 가진 뒤, 6시 즈음엔 실전에 가까운 ‘런 스루(Run Through)’를 통해서 모든 동선과 진행을 체크하고, 8시 반에 진짜 관객들을 대상으로 1차 공연을 한다. 이 때 안상휘 CP는 직접 객석에서 관객 반응을 체크한다. 이전까지의 리허설이 섀도우 복싱이라면 1차 공연은 최종 스파링이다. 생방송의 컨디션을 짐작할 마지막 기회라는 것. 이는 콩트의 리액션을 살피는 것인 동시에 과감한 표현이나 연기가 불쾌함으로 인식되지 않는지를 판단하는 생방송 이전의 마지막 기회다. “센 걸로 먹히면 더 센 것을 보여줘야 된다. 수위로 승부하면 안된다. 결국 아이디어로 허를 찔러야 한다.”
리딩부터 1차 공연까지 깨알 같은 대본이 수정되고 콩트의 설정도 변하며 캐릭터 자체가 뒤바뀌기도 한다. 신동엽을 위시한 크루들은 서로에게 화기애애한 ‘지적질’을 불사한다. “막내 작가와 선배 작가가 20년 차이가 나는데도 똑같이 대본을 놓고 비교한다. 서로 자유롭게 의견을 낸다. 초기엔 이런 분위기가 익숙하지 않은 선배 작가들이 많이 나갔다. 지금은 정착이 된 거다.” 어쩌면 그만큼 치열하다는 말이다. 좋은 의견이 반영될 수 있는 분위기에선 그만큼 적극적일 수밖에. 결국 <SNL 코리아>는 프로그램에 대한 애정이 넘치는 ‘빠’들의 방송이란 말이다. “시작할 때부터 크루의 힘이 강한 쇼를 만드는 게 목표였다. 지금의 크루 진영에 90% 이상 만족한다. 다만 캐릭터들이 확실해지다 보니까 콩트의 성격도 그 안에 갇히는 경우가 늘고 있다.” 확고한 위치를 점한 만큼 새로운 고민도 자라난다. 그리고 그 고민이 <SNL 코리아>의 비전일 것이다. “언젠가 마지막회가 끝나면 방송에 못 나간 자료들을 모아서 <시네마 천국>처럼 상영해보면 어떨까 생각한다.” 안상휘 CP의 기약할 수 없는 바람이다.
목소리를 찾아서, <히든 싱어>
JTBC의 <히든 싱어>는 가수들이 도플갱어 같은 성대를 지닌 모창 가수들과 대결하는 프로그램이다. 프로 가수들이 아마추어 실력자들 앞에서 고전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조승욱 PD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궁리하던 중 한 작가로부터 아이디어를 들었다. ‘진짜 가수와 모창 가수가 한 무대에 서면 어떨까.’ 그렇게 시작된 것이 <히든 싱어>였다. 일단 연말특집으로 파일럿 프로그램을 2회 정도 제작해보고 반응을 살피기로 했다. 일단 가수 섭외만큼이나 모창 출연자들을 찾는 것도 난관이었다. 모창을 잘해도 방송 무대에 적합한 실력자를 걸러내고 트레이닝까지 시켜서 무대에 올리는 건 그 자체로 강행군이었다. “사실 그 두 편 이후로 더 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의외로 좋은 반응을 얻었다. 하지만 정규물 편성은 어렵고 시즌제로 진행할 순 있을 것 같았다.” 결국 1월 초에 편성이 확정됐고, 팀이 꾸려졌다. 2달 간의 준비 끝에 3월부터 시즌1이 전파를 탔다.
<히든 싱어>의 첫 번째 고민은 룰의 보완이었다. 2편의 파일럿 제작에서 겪은 시행착오는 결국 중요한 자산이었다. 1회 박정현 편에서 1라운드부터 모창 출연자를 공개했던 걸 2회 김경호 편에서 2라운드로 미뤘다. 모창 출연자들의 얼굴 공개 시점이 빠를수록 관객들의 적응력도 빨라져서 게임의 흥미가 급격히 낮아진다는 판단 떄문이었다. 시즌1 중간에는 2라운드에선 목소리를 가린 채 얼굴만 공개해서 목소리와 얼굴의 매칭에 혼선을 주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시즌1 역시 섭외와의 전쟁이었다. “제일 힘들었던 부분은 모창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가수가 많았다는 점이다.” 가수의 섭외도 난관이었지만 모창 가수들을 미리 확보하는 것이 중요했다. “김건모 씨는 1월부터 예심을 했는데 섭외가 오케이된 건 4월 중순 즈음이었다. 미리 모창 출연자를 축적해놔야 했다.”
이름도 없는 프로그램인 탓에 참가자를 기다릴 수도 없었다. 작가들은 유투브, 음악 관련 커뮤니티의 동영상을 뒤지거나 보컬 학원이나 대학교 실용음악과로 발품을 팔며 모창의 귀재들을 찾아 다녔다. 그렇게 찾은 지원자들 가운데 1차 예심으로 8명 가량을 뽑은 뒤, 2차 예심 때 무대에 오를 5명을 확정한다. 그런데 예심 때만 해도 놀라운 실력을 자랑하던 참가자가 녹화 때 무대 위에선 극심한 긴장으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래서 진짜 실력자를 가리는 것이 그만큼 어렵고 중요했다. 프로 가수와 진검 승부를 벌인 준우승자들의 ‘왕중왕전’을 끝으로 시즌1을 마감한 <히든 싱어>가 남긴 아쉬움은 가수를 꺾고 1천만원의 상금을 거머쥔 모창 출연자가 없었다는 사실. “ 적어도 한 번은 나올 줄 알았는데 어렵더라. 하지만 이룰 게 있으니까 다음 시즌이 더 재미있지 않을까.” 시즌2는 오는 9월 무렵에 전파를 탈 계획이다.
입심의 파괴력, <썰전>
JTBC의 <썰전>은 제목 그대로 ‘썰의 전쟁’이다. 흔히 ‘썰을 푼다’고 했을 때의 그 ‘썰’ 말이다. 김수아 PD와 정다운 작가가 <썰전>을 기획했을 당시만 해도 부정적인 시선이 대부분이었다. “한주간의 이슈를 토크로 푼다는 청사진을 그렸지만 설명하기 어려웠다. ‘<라디오 스타> 같은 정치 토크’라고 하면 다들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이었다.”(김수아) 동아줄을 내려준 것은 유일하게 호감을 표한 여운혁 CP였다. 그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썰전>은 빛을 볼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일단 방송 후 반응을 보자는 분위기는 <썰전>이 전파를 탄 뒤 호의적인 물살을 탔다. 예능국뿐만 아니라 보도국에서도 흥미를 보였다. 일찍이 <썰전>의 자산은 김구라였다. <라디오 스타>의 작가시절부터 김구라의 토크 감각에 익숙했던 정다운 작가는 일찍이 김구라를 위시한 토크쇼를 구상했다. 김구라가 운전대를 잡은 <썰전>을 굴려줄 단단한 바퀴가 될 고정 게스트들이 관건이었다. “처음부터 섭외가 반이라고 생각했다. 달변도 중요하지만 결코 기가 꺾이지 않고 끝까지 말할 사람들을 구성하는 게 최고의 과제였다.”(김수아)
1부와 2부의 외피는 정치와 문화란 점에서 확연히 달라 보이지만 본질은 동일하다. 결국 썰을 푼다는 것. 방송을 통해서 묻지 않았던, 사실은 묻지 못했던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이를 테면 고위공직자들의 인명을 앞에 두고 던지는 질문이 이런 식이다. “그 중 뭐가 ‘땡보’직인데?” <라디오 스타>를 벤치마킹했다는 토크쇼답게 <썰전>의 파격이란 바로 그 솔직함 자체에 있다. 이는 정치 문외한인 예능 작가들 덕분이기도 하다. “국회의원들이 재래시장 살리기를 한다고 보라카이로 연수를 갔다고 하면, ‘거기서 뭘 배워서 오죠?’ 이런 리액션이 가능하니까. 보통의 인간사에서 일어날만한 일이 근엄해 보이는 정치계에서도 일어난다는 걸 알게 되면 웃기더라.”(정다운) 토크 주제가 잡히면 관련 자료를 게스트들에게 보내주고 작가들이 직접 통화하면서 게스트들의 의견을 대본에 반영한다. 하지만 뉴스는 시시때때로 발생하는 법. 정해졌던 주제 대신 새 이슈로 갈아타는 건 다반사다. 드라마로 치면 ‘쪽대본’을 쓰는 셈. 개개인의 입담이 좌우하는 프로그램이다 보니 특별한 리허설도 없다. 방송 전에 간단하게 당일의 토크 주제의 흐름과 중점을 정리한 뒤 안부나 묻는 수준이다. 썰을 풀 준비가 된 고정 게스트들이 준비된 덕분이다.
사실 월요일에 녹화해서 목요일에 송출하는 방식은 기존의 예능 프로그램에선 상상할 수 없다. <썰전>의 평균 녹화시간은 4시간 안팎에 불과하다. 하지만 ‘4시간 동안 쉴새 없이 말하는 게스트들의 입담’을 걸러내기에 이틀은 생각보다 버겁다. 하지만 뜨거운 뉴스를 뜨거운 타이밍에 썰로 푼다는 건 <썰전>만의 강점이다. 그리고 녹화일과 방송일의 간극을 줄이는 건 <썰전>의 신선도를 유지하는 궁극의 해법이다. 김수아 PD와 정다운 작가는 <썰전>을 통해서 깨달았다고 한다. “콘텐츠가 좋으면 결국 사람들이 본다.” 그래서 밥 먹을 때 엠넷을 봤던 정다운 작가는 이젠 YTN을 보고, 김수아 PD는 <9시 뉴스>에서 알아보는 사람이 늘어났다고 말할 수 있게 됐다.
1월 30일, 군포여대생 납치살해 용의자로 검거된 강 모씨가 입을 열었다. 경찰은 당일 오전 강 모씨가 경기 서남부 연쇄 실종자 여성 7명을 살해했음을 자백했다고 발표했다. 사건의 본질이 달라졌다. 더욱 날카로운 이빨이 드러났다. 사건의 체급이 오른 만큼 언론보도의 비중도 급격히 변했다. 30일을 기점으로 공중파 방송국 3사의 저녁 메인 뉴스는 더 이상 강호순의 실명을 가리지 않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미 27일 첫 번째 현장검증 이후, 일간지에서는 강호순이란 이름 석자가 알게 모르게 활자화되고 있었다. 하지만 공중파 방송에서 강호순의 이름 석자가 고스란히 들려온 건 30일에서였다. 연쇄 살인범의 신원이 전파를 타고 전국으로 송출됐다.
1월 31일,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지면을 통해 강호순의 얼굴을 공개했다. 언론과 여론이 함께 술렁였다. 얼굴공개 논란이 얼굴공개로 이어졌다. 조선일보는 1면에 얼굴공개 기사를 게재했다. 중앙일보는 4면이었다. 조선일보가 좀 더 대담했다. 당일 저녁 SBS 8시 뉴스에서도 강호순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1시간 뒤, KBS 9시 뉴스에서도 강호순의 얼굴이 드러났다. MBC 뉴스데스크가 강호순의 얼굴을 공개한 건 하루가 지난 2월 1일이었다. 역시 하루가 지난 2일엔 동아일보를 비롯한 여타 일간지에서 강호순의 얼굴을 나란히 게재했다. 반면 한겨레와 한국일보는 강호순의 얼굴 대신 얼굴을 공개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지면을 통해 독자에게 알렸다.
신문과 방송
얼굴 사진을 입수한 건 비단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뿐만이 아니었다. 일간지나 방송국이나 가릴 것 없이 이미 강호순의 얼굴공개에 대한 논의는 각기 내부적으로 이뤄지고 있었다. 단지 시점이 문제였다. 과거 신정아의 누드 사진을 게재한 문화일보처럼 선정성의 뭇매를 맞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상황은 달랐다. 사생활 침해에 대한 손가락질보다 극악무도한 흉악범에 대한 주홍글씨가 선명했다. 여론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는 판단이 유력했다. 선봉에 선 조선일보와 중앙일보가 깃발을 꽂은 것도 그런 판단과 무관하지 않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지난 1월 31일자 지면에서 강호순의 얼굴공개에 관한 입장을 게재했다. 중앙일보 유건하 기획전략팀장은, “일일이 제작과정을 이야기할 순 없지만 편집권에 대한 심사숙고 끝에 내부결론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같은 날 SBS와 KBS의 저녁 메인 뉴스가 뒤를 따른 건 우연이 아니다. 필연적인 타이밍이었다. “보도국장, 팀장 선에서 간헐적인 논의는 계속되고 있었다. 단지 추이를 살피던 중이었다. 결국 31일 오전회의에서 갑론을박 논의 끝에 방송이 결정됐다.” KBS 정은천 사회부 팀장의 말이다. SBS의 입장도 크게 다를 바가 없다. SBS 양철훈 편집부 부국장에 따르면, “애초에 편집부 차원의 고민이 있었다. 31일, 보도국 전체 편집 회의 차원에서 논의됐고, 부장 선 토론으로 결정됐다. 조선과 중앙에서 먼저 얼굴을 공개한 마당에 딱히 얼굴이 가려질 의미가 없어졌다는 판단이 우세했다.”조선일보와 중앙일보의 기습적인 보도가 방송사를 움직이는데 영향을 끼친 건 분명하다. 그렇다고 허를 찔린 건 아니었다.
“조선과 중앙의 보도가 공개 논의의 단초가 된 건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방송과 신문은 신의의 잣대나 파장이 다르다. 이 부분의 고민이 있었다.” SBS 양철훈 편집부 부국장의 말이다. 누군가가 먼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야 편해질 일이었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가 물꼬를 텄다. 방송사의 고민을 어느 정도 덜어준 셈이다. 신문이 정보를 선점했다 해도 방송의 위력은 차원이 다르다. 조간신문의 보도 이후의 저녁 뉴스는 늦은 것이 아니다. SBS와 KBS가 차례로 강호순의 얼굴을 뉴스에 내보낸 시점은 주효했다. 이상한 건 MBC였다. 31일 당일에 침묵했던 MBC는 다음 날이 돼서야 MBC뉴스데스크를 통해 강호순의 얼굴을 공개했다. 익명을 요구한 타방송국의 인사가 의문스럽게 말했다. “타사보도에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지만 개인적으로 의아했다. 어째서 하루 늦게 방송을 했을까. MBC가 고민한 지점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MBC 역시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의 보도에 반응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MBC 김성환 수도권 팀장은 말한다. “사진은 이미 강호순의 검거 당일에 입수됐다. 다만 이를 공개할 것인가, 라는 내부 논란이 계속됐다. 당일 편집회의에서 보도 시점은 결정된다. 얼굴공개까진 하지 말자는 의견이 우세했던 30일과 달리 31일엔 논의가 좀 더 깊어졌다. 그리고 2월 1일엔 논의가 무색해진 경향이 있었다. 타방송사에서 보도가 된 상황에서 우리가 얼굴을 가린다는 게 무의미하다는 판단이 섰다.” MBC는 좀 더 신중했다. 심각한 후유증을 야기할 수 있는 사안이었다. 방송의 공정성을 내세워 공영방송 사수라는 기치를 내거는 MBC가 앞장 설 일이 아닌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이미 방송에서마저 강호순의 얼굴이 알려진 마당에 MBC의 고민은 무의미하다는 내부 목소리가 높아졌다. 지니고 있는 정보를 묵힐 수 없다는 의견이 점차 힘을 얻었다. 타방송국보다 하루가 늦은 시점에서의 보도는 무색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정보의 껍데기는 유효했다. 시의적 효력은 상실됐지만 정보 차원의 목적에서 접근할 필요가 없었다. 자체적인 의사표명이 중요한 사안이었다. MBC의 내부적 합의는 그렇게 이뤄졌다.
언론과 여론
강호순의 얼굴공개는 달리기가 아니라 꼬리잡기였다. 속도전보다도 탐색전에 가까웠다. 방송사는 두 일간지의 꼬리를 잡았다. 하지만 두 일간지도 머리는 아니었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가 얼굴공개의 원칙으로 내세운 건 ‘국민의 알 권리’였다. 여론의 요구에 부응한 정보라는 점을 앞세웠다. “기사를 작성한 경위의 논리에 대해서는 이미 지면에서 충분한 입장을 밝힌 셈이라 본다.”김수혜 조선일보 기동팀장이 잘라 말한 것처럼 조선일보는 지난달 31일자 지면을 통해 강호순의 얼굴을 공개한 자사 입장을 기사로 전했다. ‘반 인륜범죄자의 얼굴을 마땅히 공개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습니다.’눈에 띄는 대목이다. 중앙일보 역시 ‘공익을 위해 연쇄살인범 강호순의 이름, 얼굴 공개’라는 헤드라인으로 강호순의 얼굴을 공개했다. “즉흥적인 반응이 아니라 일련의 사건이 발생한 끝에 여론의 요구가 높아진 끝에 응답한 사안이라고 생각한다. 극악무도한 인면수심의 사건이 거듭되고 이에 대한 국민적 감정이 여론화되는 시점에서 언론이 방관할 순 없는 사안이다. 신문은 여론은 대면하는 매체 아닌가.”중앙일보 유건하 팀장의 말이다. 방송국의 입장표명도 크게 다를 바는 없다. 방송국 3사는 이번 얼굴공개가 ‘국민의 알 권리’와 ‘여죄의 제보’를 위한 것이라는 공통적 견해를 밝혔다. 국민을 위한 공익이 얼굴공개의 목적이란 이야기다.
지난 1일 오전, 강호순의 자백에 따른 추가 현장검증을 위해 군포경찰서를 떠나기 직전 기자들과의 질의 대면이 있었다. 첫 번째 질문이 나왔다. “어제 얼굴이 언론에 공개됐는데 심정이 어떠세요?”강호순은 묵묵부답이었다. 이를 대신한 건 오후 5시경 경찰의 브리핑이었다. 군포경찰서 이명균 강력계장은 그 질문을 통해 강호순이 자신의 얼굴이 언론에 공개됐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다고 밝혔다. 그리고 강호순이 심경적인 충격을 느꼈다고 전했다. 경찰은 강호순에게 언론의 얼굴공개를 알리지 않았다. 대신 현장에서 변화가 있었다. 경찰은 당일 현장검증에서 강호순에게 마스크를 씌우지 않았다. 언론의 얼굴공개가 다음 날 이뤄진 특단의 조치였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그랬다. 현장검증 주변에서는 유족을 비롯한 구경꾼들의 고함이 빗발친다. 마스크를 쓰고 모자까지 눌러쓴 강호순을 향한 비난은 때론 주변의 경찰에게 향한다. “경찰 내부에서도 항상 논란이 있었다. 일선 형사들도 마스크를 벗기고 싶어한다. 피의자 인권도 중요하지만 여론 앞에서 피의자의 편에 서는 것처럼 보이는 게 좋을 리 있겠나.”이명균 강력계장의 말이다. 경찰 역시 여론을 의식하고 있었다.
강호순의 마스크가 벗겨진 뒤에도 현장검증은 여러 차례 거듭됐다. 경찰은 강호순이 자신의 얼굴공개에 충격을 느꼈다고 발표했다. 강호순의 현장검증을 일선에서 취재한 모 일간지의 기자는 전한다. “범인의 심경변화에 대한 경찰의 발표는 기자들이 확인한 사안은 아니다. 현장에선 실제적으로 얼마만큼의 심경 변화가 있는지 느끼기 어려웠다. 다만 마스크를 벗은 뒤로 고개를 더 파묻는 경향이 있다.”마스크를 벗겼지만 강호순의 얼굴이 보이는 건 아니다. 눌러쓴 모자와 후드로 얼굴은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얼굴을 파묻는 행위는 강호순이 마스크가 벗겨진 자신의 얼굴을 의식하고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큰 변화는 강호순이 아니라 다른 쪽에 있었다. “사진 기자의 카메라 앵글 각도가 변했다. 정면이 아니라 좀 더 아래로 내려간 거지.”한겨레 사회부 김기선 기자의 말이 현장의 분위기를 전달한다. 마스크가 벗겨진 강호순의 얼굴을 찍고자 하는 노력이 있다. 김기선 기자의 말이 이어졌다. “얼굴공개 뒤로 점점 보도가 선정적으로 변하고 있단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팩트를 찾기 위한 노력보단 이슈를 만들기 위한 움직임이 늘고 있다.”
언론은 강호순의 얼굴공개가 사회적인 공익을 위한 결단이라고 소개해왔다. 그 뒤를 이어 강호순의 과거 행적들이 낱낱이 드러난다. 살인 수단과 살해 방법, 살인 행적까지 여과 없이 보도된다. 범죄 예방 차원에서 강호순의 범행을 보도하고 추적해 샅샅이 공개한다. 전국적으로 밤거리를 돌아다니는 여자가 줄었다는 뉴스가 뒤따른다. 그 가운데 싸이코패스 테스트가 유행한다. 주요 일간지를 비롯해 인터넷 매체까지 싸이코패스 진단법이라는 테스트를 기사화하고 유포한다. 이수정 경기대 심리범죄학 교수에 따르면, “최근 싸이코패스 진단법이라고 알려진 대부분의 테스트는 잘못된 정보다. 게다가 싸이코패스 테스트를 비범죄자에게 적용한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불특정 다수의 호기심은 일회적이다. 다만 그 호기심에 영합하는 배후는 지속적이다.
“현장의 기자들 중에서도 보도가 너무 선정적으로 흐르고 있다는 지적이 심심찮게 나온다.”어느 일선 기자의 말처럼 강호순을 둘러싼 언론의 보도방식에서 이상기류가 발견된다. 지난 2일, YTN에서 보도된 현장검증 관련뉴스는 단연 자극적이었다. “주민들이 보는 앞에서 돌을 던져서 죽이고 그러는데 (강호순 역시) 그런 식으로라도 처참하게 죽여야죠.”강호순의 현장검증을 지켜보던 수원의 한 시민이 내뱉은 분노 섞인 언어가 여과 없이 방송으로 흘러나왔다. 언론의 보도가 여론의 흥분상태를 부추기고 있다고 할만한 사안이다.
원칙과 논란
흉악범 얼굴공개를 입법화하자는 주장이 제기됐다. 정치권의 움직임도 나타났다. 인권실천시민연대 오창익 사무국장은 이를 반박한다. “흉악범에 대한 기준이 모호할뿐더러 법에 따른 얼굴 공개가 된 용의자가 후에 진범이 아니라고 밝혀지면 어떻게 해야 하나. 2차, 3차 피해자가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벌써 ‘강호순의 고향 특산물 불매운동’이 벌어지고 있다고 하지 않나.”강호순의 얼굴공개와 함께 우리 사회의 내면에 감춰져 있던 인식이 드러났다. 죄질에 따라 인권존중이 분류돼야 한다는 주장과 범죄자라 할지라도 기본적인 인권은 존중해야 한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이를 빌미로 사형제 폐지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곳곳에서 설전이 벌어진다. 지난 2월 5일자 법률신문에서는 헌법학자 30명과의 전화 설문조사를 공개했다. 찬성 46.7%, 반대 53.3%. 반대가 앞섰지만 팽팽한 결과다. 법적인 합의 역시 쉽지 않다는 의미다. 찬성하는 쪽이 내세우는 논리의 기반은 알 권리에 있다. 반대하는 쪽은 무죄추정의 원칙을 내세우고 있다.
무죄추정의 원칙은 헌법 27조 4항에 기반을 둔다. ‘형사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반면 알 권리는 헌법이나 실정법으로 규정된 권리가 아니다. 법무법인 드림 정영택 변호사의 자문에 따르면 이렇다. “헌법 21조 1항에 따르면 ‘모든 국민은 언론, 출판의 자유와 집회, 결사의 자유를 가진다’고 명시돼있다. 여기서 언론, 출판의 자유는 표현의 자유와 연관되고 이것이 알 권리의 바탕이 될 수 있는 여지는 있다.”하지만 두 사안이 흉악범 얼굴공개에 대한 찬반 논리를 완벽하게 보좌할 수 있는 근거가 못 된다. 무죄추정의 원칙이나 알 권리가 얼굴공개와 직결된 지점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영택 변호사는 다양한 유권해석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헌법 10조 1항에서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한 의무를 진다.’고 명시돼 있다. 또한 헌법 37조 1항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한다.’고 한다. 헌법 37조 1항을 근거로 국민 개개인은 헌법에 열거되지 않은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다. 이에 따라 헌법에 열거되지 않은 초상권 역시 개인의 보장받을 권리에 속한다. 이는 헌법 10조 1항에 따라 개인의 기본적 인권에 대한 국가적 의무와 연동된다. 강호순의 얼굴공개가 초상권의 문제로 발전될 수 있다는 의미다. 예외는 있다. 사회적인 공인에 한해서 초상권의 문제는 예외로 적용될 수 있다. 여기서 문제는 강호순을 공인이라고 구분할 수 있는가라는 지점이다. 공인의 사전적 의미는 ‘공적인 일에 종사하는 인물’이다. 연예인이 공인인가, 라는 논란이 발생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강호순 역시 마찬가지다. 유명세를 치렀다고 해서 공인이라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강호순이 공인이 아니라면 얼굴공개는 초상권 침해에 해당한다. ‘고의 또한 과실로 인한 위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는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는 민법 750조에 따른 처벌을 요구할 수 있다. 언론의 얼굴공개 보도는 초상권의 권리를 강호순의 동의 없이 신문에 게재했기 때문에 고의적인 위법행위로 해석이 가능하다. 동시에 ‘모든 국민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 받지 아니한다.’는 헌법 17조에 따라 과거 행적이 담긴 사진의 게재까지 보상을 요구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 과거 신정아의 누드 사진을 게재해 패소한 문화일보의 판례도 여기에 해당된다. 얼굴공개에 대한 다양한 유권해석이 존재함에도 언론이 보도를 선점했다는 건 원칙에 대한 고민이 가벼웠거나 이를 간과했다는 의미다.
“언론입장에서는 위법성보다도 기사로서의 의미가 관건이 될 수 있다. 불법적인 보도가 면책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단지 법률적 판단과 무관하게 언론 입장에서 기사적 가치를 판단하고 보도를 결정할 수 있다는 말이다.” MBC 김성환 수도권 팀장의 말은 인권연대 오창익 사무국장의 말과 연동된다. “언론의 보도는 자유다. 상업적이고 부적절한 일이라 해도 거기에 대해 간섭할 필요는 없다. 그 후 그만큼의 책임을 지면 된다.”언론은 뉴스로서의 가치를 먼저 선택한다. MBC가 PD수첩을 통해 광우병 관련 보도를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표현의 자유에 따라 뉴스 선별과 보도 결정은 언론의 권리다. 문제는 세세한 원칙의 틈새를 파고 든 관행이 거대한 원칙들을 무너뜨리고 있다는 점이다. 사나워진 여론 위로 강호순의 얼굴을 내던져 대중에게 물어뜯게 한들 사건의 근본이 해결되는 건 아니다. 오히려 기존에 고수하고 확립되던 원칙이 흔들린다. 언론을 통해 흉악범의 얼굴이 공개되고, 이를 통해 경찰은 피의자의 마스크를 벗겼다. 공익을 위한 것이라 했지만 실상 논란만 가중되고 있다. 사회적 합의가 어려운 소모전이 계속된다. 상처의 치료를 위한 고심보단 당장의 고통을 잊을만한 마약을 처방한 셈이다.
“언론은 사회의 표정 중 하나다. 국민들이 강호순을 얼굴을 보고자 하는 건 국민의 분노가 반영된 것이다. 그 안엔 강호순의 얼굴 자체가 보고 싶다는 순수한 호기심이 있을 수도 있는 반면 집단적인 광기도 분명 존재한다.”김성환 팀장의 말처럼 언론의 얼굴공개는 사회적 요구의 부응이다. 다만 그 사회적 요구가 현명했는지 확신할 수 없다. MBC가 타방송사에 비해 하루 늦게 얼굴공개를 결정한 건 이런 고민이 보다 강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MBC마저 확신할 수 없는 사회적 요구에 짓눌린 셈이다. 여론을 악용했다는 비난에도 자유롭지 못하다. “공분하는 대중을 이성적 판단으로 이끌어야 하는 언론이 오히려 대중적 공분을 흡수해 여론을 선동하고 있다.”김기선 기자의 말에 무게가 실린다.
지난 2일 MBC 뉴스데스크의 클로징 멘트는 그 일부 언론을 향한 것이었다. “몇 년 전 경찰이 마스크를 씌우면서 내규로 슬그머니 시작했듯이, 이번에 일부 언론이 이를 벗기면서 어물쩍 결정했습니다.” KBS의 정은천 팀장은 이에 실소를 금치 못했다. 그 클로징 멘트가 KBS를 겨냥한 방아쇠란 판단 때문이었다. 그리고 MBC의 선정성을 지적했다. “우리는 MBC와 달리 강호순의 단독사진만 사용했다. 피의자 가족이 함께 찍힌 사진을 입수했지만 무관한 제3자의 피해를 고려했기 때문이다.”그러나 MBC의 클로징 멘트는 비단 KBS를 향한 것만은 아닐 수 있다. 어쩌면 MBC 스스로를 향한 손가락이 될 수도 있다. 뒤늦은 합류라 해도 MBC가 그 대열에 들어선 건 마찬가지다. “절차의 실종의 생각의 실종이 될 수 있어서 더 우려스럽습니다.”클로징 멘트의 마무리는 이렇다. 언론의 강호순 얼굴공개 과정이야말로 절차의 실종이자 생각의 실종이었다.
절망과 희망
“어차피 이건 길게 갈 사안이 아니다. 알지 않나.”모 일간지의 팀장급 인사의 말처럼 강호순의 얼굴도 어느 다른 이들처럼 곧 잊혀질 것이다. 문제는 강호순의 얼굴을 다시 볼 것인가의 문제다. 강호순을 통해 유영철과 지존파를 다시 보게 된 것처럼 언젠가 우리는 새로운 흉악범을 통해 강호순의 얼굴을 다시 만나게 될지 모른다. 살인의 추억은 되풀이된다. 강호순의 얼굴공개를 범죄예방효과로 연결하는 논리는 미약하기 짝이 없다. 단지 강호순을 힐난하고 때려죽인다고 해서 범죄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흉악범만큼이나 끔찍한 증오만 양산될 뿐이다. 징벌이 아니라 예방이 필요하다. 강호순의 얼굴이 아니라 우리의 얼굴을 봐야 한다. 강호순의 얼굴은 우리 사회에 잠재된 악의 뿌리가 어디까지 내려앉아있는가의 지표다.
개개인의 절망이 모여 사회적 공분을 이룬다. 추악한 사회적 기저에 맞닥뜨린 당혹감이 거대한 분노로 몰아친다. 언론은 여론의 방파제다. 진짜 알아야 할 것과 단순히 알고 싶은 것을 구별해서 떠내려 보내거나 막아서야 하는 것을 가늠하는 것이 진정한 언론의 몫이다. 그저 살인자의 얼굴을 공개하고 여론의 돌팔매질을 부추기는 것이 언론의 역할은 아니다.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보다 전문화된 형사정책과 효과적인 교정교화가 무엇보다 절실히 필요합니다.”이수정 교수는 지난 10년간 이에 대해 주장해 왔지만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고 한다. 강호순의 검거에서 프로파일링 수사가 큰 역할을 했다. 이수정 범죄심리학 교수는 그 프로파일링이 유영철 사건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수확이라고 말한다. 불행을 통해 절망을 얻기는 쉽다. 하지만 희망을 가늠해야 한다. 강호순은 이 사회의 직설적인 절망이자 희망의 역설이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강호순의 얼굴엔 살인마에 대한 친절한 예시 따윈 없었다. 소박하고 온화한 미소에 가증스러움이 더해질 따름이다. 그 끝에 무력한 분노만 잔뜩 걸려들었다. 살인자의 얼굴을 공개하는 것에 동의합니까, 라는 질문에 적합한 답을 찾긴 어렵다. 하지만 살인자의 얼굴을 다시 보고 싶습니까,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명확하다. 살인자의 얼굴을 다시 한번 마주보지 않기 위해선 좀 더 현명해야 한다. 싸이코패스 테스트 따위를 클릭하거나 강호순을 향한 육두문자나 날리고 있을 사안이 아니다. 당신 앞에 드러난 강호순의 얼굴을 향해 물음표를 얻어야 한다. 어째서 우리는 강호순의 얼굴을 보고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무엇을 보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보고 있느냐에 대해 따져 물어야 한다. 여론을 위해 강호순의 얼굴을 공개했다는 언론에 되물어야 한다. 살인마의 얼굴을 본 당신이 쥐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깨달아야 한다. 당신의 분노가 누구를 위한 것인가, 구별해야 한다. 절망을 볼 것인가, 희망을 볼 것인가. 우린 지금 선택의 기로에 놓여있다. 살인마의 얼굴이 잘 생겼다는 것 따위를 알고자 했던 게 아니라는 걸 당신은 분명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