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태가 나타났다. 여고 앞이 아니라 TV에서. 응큼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의외로 귀엽고 사랑스럽다는 반응이다. 이상한 일이 아니다. 알고 보면 어차피 당신도 변태니까.
JTBC의 <마녀사냥>에 특별 게스트로 배우 정경호가 출연했다. 좋아하는 할리우드 배우를 이야기하던 중 정경호가 “줄리아 로버츠”라고 답하자 신동엽이 다시 물었다. “입 큰 여자 좋아하나 봐요?” 정경호가 답했다. “예.” 그러자 음흉한 표정으로 신동엽이 말했다. “은근히 크다고 자랑하네.” 어디서 웃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의 정경호를 제외하고 스튜디오의 모든 이들은 파안대소했다. <마녀사냥>에서 신동엽은 정관장 혹은 산수유 같은 존재다. 그의 존재감만으로도 프로그램의 정체성이 선다. 이미 <SNL 코리아>에서 절정의 ‘섹드립’을 선보이며 변태적인 유머 코드를 대중적으로 삽입하는데 성공한 신동엽이였다. 이영돈 PD의 유명한 멘트 “제가 한번 먹어보겠습니다”를 음담패설처럼 비틀어버리는 건 분명 대단한 재능이다. <SNL 코리아>가 신동엽의 출연 이전과 이후로 나뉘는 것도 그런 덕분이다. 신동엽의 존재감이 <SNL 코리아>의 ‘섹드립’ 본능을 일깨우고 프로그램의 ‘성’ 정체성마저 각성시켰다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사실 <마녀사냥>은 <SNL 코리아>와 같이 섹스를 마음껏 희화화하는 성격의 콩트 프로그램이 아니다. <마녀사냥>은 섹스에 대한 솔직하고 자유로운 담론을 펼치는, 음담패설을 겸비한 토크쇼에 가깝다. 같은 소재를 다른 방식으로 다루는 두 프로그램에 신동엽이 발을 걸치고 있는 이유는 어쩌면 이렇다. 섹스라는 주제에 대해서 거리낌 없이 눙칠 수 있는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빛을 보는 캐릭터들도 생겨나고 있다. 일찍이 ‘감성변태’라는 별명을 얻었던 유희열은 <SNL 코리아>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자리매김하는 중이고, <마녀사냥>에서 신동엽의 섹드립을 발군의 만담으로 이끌어내는 성시경의 솔직한 입담은 그야말로 재발견이다.
‘변태’라는 캐릭터가 인기를 끌고, 섹스 어필한 소재가 예능의 저변으로 확대된다는 건 섹스를 저속하다고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로부터 보다 자유로워질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누구나 섹스를 하면서도 누구도 섹스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는다. 마치 섹스하지 않는 사람들처럼, 수술과 암술로 꽃가루라도 교환해서 번식하는 종족처럼 행세한다. 공공장소에서 ‘섹스’라는 단어를 또박또박 발음했다가는 고해성사라도 받아야 할 것 같다. 섹스라는 단어를 단순히 야한 것이고 저속한 행위라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솔직하지 못하다. 올해 처음으로 집행된 콘돔 광고에 대한 갑론을박은 밑바닥에 놓여있던 이런 의식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아이들도 보는 TV에서 콘돔 광고를 하면서 섹스를 조장하는 것이냐’라는 반대 여론과 ‘오히려 감출수록 부작용이 더 크다’는 찬성 여론이 팽팽히 맞섰다. 그런데 콘돔만 있으면 섹스가 가능하나? 콘돔이랑 섹스한다는 말인가? 콘돔 광고가 섹스를 조장하는 것이라면 냄비 광고도 비만 환자가 급증에 일조하고 있다는, 맥주잔이 음주를 조장하고 있다는 비판에 시달려야 할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이런 논쟁 자체는 긍정적이다. 누구나 섹스한다. 콘돔도 쓰고, 피임도 한다. 콘돔도 피임약도 소비재다. 소비를 촉진하고자 광고를 집행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21세기가 돼서야 광고가 집행된 건 콘돔의 소비가 민망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섹스는 건강한 행위다. 건강하지 않으면 하고 싶어도 못한다고. 하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까지 섹스를 건강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다. 제대로 된 성교육이 부재한 것도 어쩌면 그래서다. “나는 어떻게 태어났어?”라는 순진한 질문에 당장 상세한 브리핑을 하라는 말은 아니지만 평생 속이며 산다는 건 문제다. 만약 청소년들의 성교육을 담당하는 것이 인터넷이라면? 농담이 아니다. 지난 해 성폭력상담소에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성문화를 접하는 경로의 1순위가 인터넷이란 조사결과가 나왔다. 역시 인터넷 강국이다. 훗날 섹스를 인터넷으로 다운 받은 포르노로 배웠다는 자식의 고백을 듣기라도 한다면 기분 좋을 일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섹스에 대한 의식이 건강하지 않다면 결국 우리 사회의 미래도 건강할 수 없다. 콘돔 광고가 성관계를 조장하고 부추긴다는 어떤 기성세대들의 주장은 인터넷으로 성문화를 경험하는 청소년들이 대다수라는 설문조사 결과 앞에서 얼마나 무기력한가. 그런 의미에서 차라리 변태적인 유희의 소비는 차라리 좋은 변화다. 우리가 금기시했던 편견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기회라는 말이다. 남들이 들을까 무서워 말할 수 없었던 것들을 더욱 적극적으로 표현해야 한다. 이를 테면 동성애도 마찬가지다. 남자가 남자와, 여자가 여자와, 손을 잡고 다니든, 부비부비를 하든 그게 무슨 상관인가. 광장에서 섹스를 하면 범죄다. 하지만 섹스는 침실에서 일어나는 사생활이다. 그 누구에게도 피해를 입히지 않는 당사자만의 문제다.
동성애도 마찬가지다. 누구에게도 피해를 입히지 않는다. 섹스를 말해도 되듯이 동성애도 말할 수 있다. 남녀가 손잡고 걷듯이 ‘남남’이 손잡고 걸을 수 있다. 당사자들에게 일말의 지분도 없는 이들이 참견을 시작한다면 오히려 기회다. 갈등이나 충돌은 불편하고 어려운 일이지만 긍정적인 변화를 모색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그 과정을 지날 수 없다면 어떠한 변화 자체도 존재할 리 없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불경한 짓이냐고 기도하고 불공을 드리거나 말거나 이건 대단히 건강한 변화다. 누구나 사랑을 하고 연애를 하고 결국 섹스한다. 하지만 섹스를 ‘말하면’ 변태가 된다. 그렇다면 어차피 이 사회에선 모두가 변태다. 그러니 솔직해져야 한다. 우린 변태가 아니라 그 섹스로 잉태된 존재니까. 자기 존재의 근원을 부끄러워할 수 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