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 출신 배우로 알려져 있지만 배우가 먼저였다. 송재림에 대해선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많았다. 단 한번의 대화만으로도 많은 걸 알았다. 그래서 오히려 알고 싶은 게 많아졌다.
인터뷰를 30분 정도만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던데.
길게 하건 짧게 하건 나는 상관없는데 아마 회사에서 그랬나 보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인터뷰를 시작해보자. 대학을 다니다가 20대 중반에서야 데뷔했다던데, 본래 배우나 모델이 되고 싶었던 사람은 아니었을까 싶더라.
연기에 대한 절대적인 목적의식을 갖고 이 일에 뛰어든 건 아니었다. 어쩌다 보니 이 바운더리로 들어왔고, 배우로 데뷔했지만 모델로서 보다 유명해졌다. 사실 모델도 연예인이란 카테고리에서 끄트머리 즈음에 자리잡고 있지 않나. 어쨌든 그 안에서 계속 시간을 보내면서 점차 직업 의식이란 게 생긴 거 같다. 그래서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왔네.
모델이 아니라 배우로 먼저 데뷔했었나?
<그랑프리>라는 영화로 연기를 먼저 시작했다. 사실 여러 번 말했는데도 대부분 아직 잘 모르더라.
최근 <용의자>나 <감격시대>와 같은 작품에서 터프한 역할을 맡거나 액션신을 찍는 경우가 늘었다. 아무래도 <해를 품은 달>(이하: <해품달>) 이후로 그런 역할이 많이 들어오나 보더라.
<해품달>로 인한 타입 캐스팅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소위 과묵하고 말없는 역할이랄까. 그때는 지금보다 얼굴에 살도 더 빠졌던 상태라서 더욱 과묵하고 날카롭게 보였는데 높은 시청률 덕분에 그런 이미지가 뇌리에 깊게 박혔나 보다.
어쨌든 <해품달>이 잘된 만큼 기회도 많이 늘었을 거 같다.
개인적으론 많이 아쉬웠던 작품이기도 하다.
어떤 면에서?
아무래도 경험이 적어서 카메라 앞에서 쉽게 놀기가 힘들더라. 감독님한테 혼나기도 했고. 아무래도 그만큼 위축되다 보니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권위적으로 느껴졌다.
지금은 좀 달라졌을까?
이제 7년차 정도 됐는데 지금은 어느 정도 편해졌다. 옛날엔 현장에서 머리가 하얘질 정도로 혼나기도 했지만 작품수가 늘어가면서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도 생겼고, 그만큼 현장에서 사람을 대하는 게 편해졌다.
실제로 과묵한 타입은 아닌 것 같다.
과묵하다기 보단 낯을 좀 가린다는 편이다. 실제론 말도 많이 하고 의사 표현이나 주장도 확실한 편이다.
그래서 소속사에선 인터뷰를 30분만 했으면 좋겠다고 했을까?
그런가(웃음)?
어쨌든 연기에 대한 특별한 뜻이 없었음에도 배우가 됐고, 그렇게 살고 있다. 이젠 7년차인데 어느 정도 욕심이 생길 때도 되지 않았을까?
욕심이 생길 수록 많이 내려놔야 한다. 하나에 집착하면 조급함, 불안감으로 시야가 좁아지기 마련이다. 지금까지 오디션을 많이 봤는데 맡고 싶은 캐릭터를 아무리 열심히 준비해도 주어지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다. 캐스팅됐지만 엎어지거나 편성이 안 되는 작품들도 생기고, 다른 배우가 캐스팅됐다가 뒤늦게 콜이 왔지만 이미 내가 다른 작품을 준비 중이라 불가능해진 작품도 있었다. 마치 사람에게 운명이 있듯이 내가 할 수 있는 캐릭터와의 연도 있는 거 같다. 물론 더 유명해져서 투자 가치가 있는 배우가 된다면 그런 연이 늘어날진 모르겠지만 결국 적든, 많든, 저마다에게 경우의 수는 존재하는 것 같다. 그렇게 고르고 추스르다 보면 ‘포텐’이 터질 수도 있겠지.
올해 다작을 하고 싶다고 했던데.
다작을 해도 좋을 때라고 생각한다. 고착화된 이미지가 없으니까. 벌써 <연어>라는 영화를 찍고 있다. 회차가 적은 영화인데 빠르게 찍다 보니 벌써 많이 찍었다. 그래서 8월 중순 즈음부터 할 수 있는 작품을 알아봐달라고 소속사를 압박하고 있는, 아니, 자기 주장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웃음).
<잉여공주>라는 드라마도 시작한다고.
이미 1회차는 찍었다.
어쨌든 먼저 <터널 3D>가 먼저 공개될 예정이다. 공포영화다. 장르물 자체가 처음이기도 하고.
고생을 많이 했다. 월요일에 후시 녹음이 있었는데 촬영 당시의 호흡들을 실내에서 재현하려니까 쉽지 않더라. 게다가 <터널 3D>는 단 하룻밤의 이야기를 다룬 거라 호흡의 연결이 중요하다고 느꼈다. 공포영화라는 장르적 특성이 있다 보니 상당히 흥분한 상태에서 대사를 쳐야 하기도 했고, 감정을 폭발시켜야 할 때도 많았고, 매 신마다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했다. 두 번 하라면 못할 거 같다(웃음).
공포영화 현장은 상대적으로 유쾌하다던데.
유쾌했다. 촬영 들어가기 전까진(웃음)? 한번 시작하면 동굴 밑까지 들어가야 해서 춥고, 음습했다. 게다가 내가 제일 싫어하는 날씨라서. 의자에 앉아 있으면 발이 시릴 정도였다.
실제 로케이션 촬영이 많았나 보다.
남양주 세트에서 찍은 신들도 있지만 대부분 강원도나 광명에 있는 진짜 동굴에서 찍었다.
몰입감은 높아졌을 거 같은데.
그만큼 대기 시간도 힘들었다(웃음). 깊은 곳에 들어가서 촬영을 하는 만큼 끝나면 다시 나가야 하는데 어느 세월에 나가(웃음).
다칠 위험도 많았을 거 같은데.
다치는 경우도 허다했다. 동준(연우진)을 만나서 몸싸움을 하다 도망가는 신을 동굴에서 찍었는데 주변에 날카로운 돌이 많았다. 조심한다고 조심했지만 부딪힐 곳도 많아서, 옆구리도 찧고, 이래저래 고생이 많았다. 특히 여배우들이 그랬을 거다.
공포영화 좋아하나?
별로.
작품을 선택한 이유는?
장르영화에 도전하고 싶었다. 아까 말했듯이 다작을 하고 싶었는데 특정 캐릭터로 고착화되지 않은 만큼 배우로서 다양한 색깔을 풀어보고 싶었다.
스펙트럼을 넓히고 싶다는 말인가?
그럴 수도 있겠다. 다양한 필모그래피를 쌓을 수도 있고.
<터널 3D>에선 반항적인 재벌2세인 기철이란 캐릭터를 맡았는데 활자상으론 빤해 보이는 캐릭터 같다.
좀 심심해 보이지(웃음).
위기를 조장하는 인물이라던데.
대단히 이기적인 캐릭터다. 자신이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를 밀고 나가다가 그와 벌어진 간극을 좁히기 위해서 노력하는데 덕분에 상황이 복잡해진다. 기철의 입장에서 가장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게 무엇일까 고민하며 연기했다.
<연어>와 <잉여공주> 촬영을 병행 중이라던데, 힘들겠다.
육체적으로 힘들긴 하다. 그런데 <연어>는 준비기간이 길었고, <잉여공주>도 주1회 방송이다 보니 촬영 스케줄이 그리 급박한 편은 아니다. 그래서 스위치가 어렵진 않다. 그냥 일종의 수행이라 생각한다(웃음).
<잉여공주>에선 엘리트 셰프로 출연한다는데, 어울린다.
아무래도 도시적인 느낌이 어울리는 것 같다. 처음엔 클리셰적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도도하고 차가운 이미지로 등장하는데 4부 이후론 새로운 면모가 드러날 거다.
<잉여공주>는 좀 밝은 분위기의 작품 같던데
감독님, 작가님, 모든 배우들까지, 스물한 명이 모인 단체 카톡방이 있다. 거기서 다들 작품 얘기도 하고, 사소한 얘기까지 한다. 으쌰으쌰하는 분위기가 있다.
무릎에 흉터나 상처가 많다.
여긴 옛날에 자전거 타다가 다친 곳이고, 여긴 십자인대가 끊어져서 이식한 수술자국이다. 조심성이 없어서 몸을 좀 험하게 썼다(웃음).
팔뚝의 문신엔 특별한 의미라도 있나?
기독교 신자였다. 빌립보 4장 13절에 있는 “내게 능력 주신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I CAN DO EVERYTHING IN MY GOD)”는 뜻이다. 옛날엔 기도하는 소년의 손처럼 보였는데 요즘은 합장하는 것처럼 보인다(웃음).
불교로 전향이라도 한 건가(웃음)?
그런 건 아니다. 어쨌든 강요만 하지 않으면 어떤 종교라도 괜찮다. 신을 믿는다기 보단 좋은 의미를 주는 말이 많으니까. 다 먼저 산 사람들의 이야기잖아. 솔직히 문신은 어릴 때 멋으로 한 것 같다(웃음).
독서를 자주 하는 편인가?
예전엔 많이 읽었다. 2~3년 전까진 인터뷰 할 때 집에서 뭐하냐고 물어보면 책을 많이 읽는다고 답했는데 그래서 자연스레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돼버렸다. 그래서인지 팬들이 책이나 고양이 관련 선물을 많이 보내준다. 하지만 지금은 많이 못 읽고 있다.
고양이를 키우나 보다.
맞다. 팬들이 고양이 관련 서적, 관련 물품, 하물며 고양이 밥그릇 설거지하는 스폰지까지 선물해주셨다(웃음).
고양이가 주인을 잘 만났네.
나도 좋다. 사실 나는 나한테 크게 돈을 쓰는 편이 아니라서 고양이 선물이 들어오는 게 더 좋다. 지금 입고 있는 반바지도 옛날에 산 청바지를 잘 안 입게 돼서 5천원 주고 줄인 거다.
아까 독서에 관해 물어본 건 다듬어진 문장처럼 말하는 타입이라서였다. 그래서 왠지 책을 많이 읽는 편이 아니었을까 궁금했다.
요즘은 그냥 필요성에 의해서만 읽는다. 시나리오, 촬영, 사진, 연출론, 영상 문법, 카메라 워킹 등 연기에 도움이 될만한 책만 읽는다. 일종의 업무 관련 서적이랄까(웃음)?
그렇게 공부를 하다 보면 실제로 적용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얻고 싶어지지 않을까? 어떤 면에선 현실과의 괴리를 느낄 수도 있고.
물론 적용할 수 있는 한계는 있다. 다만 감독이 하는 생각을 조금이라도 배우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일하는 방식에 대한 개론만큼의 지식 정도는 알고 있어야 그들의 언어로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그래야 현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보인다. 현장이란 커다란 유기체나 다름없다. 하나가 잘못되면 전체를 다시 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전체를 보고 이해할 수 있어야 자기 연기에도 집중할 수 있다. 이를 테면 렌즈 종류에 따라 프레임이 달라진다. 만약 밤에 줌 망원렌즈로 촬영을 한다면 포커스를 맞추기 어렵다는 걸 아니까 과한 움직임을 하지 않는 거다.
완벽주의자라는 말처럼 들린다.
그런 강박이 없진 않다.
처음부터 그런 강박을 갖고 연기한 건 아니었을 것 같다. 뒤늦게 연기에 대한 애착이 생겨서 그런 강박 또한 생겨났을 것 같단 말이다.
직장에서도 전직할 생각을 하면 지금 하는 일에 대한 흥미가 확 떨어지잖아. 나도 초기엔 많이 흔들렸다. 한때는 재미있을 것 같으니 일단 해보자고, 하다 보면 좋은 기회도 있을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면 이젠 점점 더 끈끈한 직업 정신이 생긴 것 같다. 프로들의 세계에서 나 혼자 아마추어처럼 서있지 말자고, 내 기반이 어느 정도이건 간에 나중에 내 부인까지 책임져야 할 직업이라고 느끼면서 점차 임하는 게 달라졌다. 애정도 생기고.
모델 활동 시기가 그리 길진 않았다. 하지만 특별히 준비하지 않았던 분야에서 나름대로 인정 받았던 걸 보면 자질이 있었던 모양이다.
어쩌다 기회가 생겼고, 그 기회를 통해서 조금씩 알아갔던 거 같다. 당시엔 패션 매거진을 사보면서 포즈에 대해서 고민했다. 사실 내 키가 큰 편도 아니고, 호불호도 많이 갈렸고, 런웨이에 자주 오를만한 모델도 아니었지만 좋은 피사체가 되길 바랬다. 연기도 마찬가지다. 흡입력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
컴퓨터 공학 전공이었다던데 중퇴를 했다. 특별히 전공을 살릴 생각을 했던 건 아니었나 보다.
내가 신림9동에서 태어났는데 신림동하면 떠오르는 게 있나?
아무래도 고시원이 떠오른다.
일단 부유한 동네는 아니지. 고시 발표라도 나는 날엔 시끄럽다. 잘된 사람은 잘돼서 웃고 안된 사람은 안됐다고 곡하는 소리하고. 어쨌든 대학교까지 가서 전공에 상관 없이 공무원 준비하는 사람을 많이 봤다. 나 역시 비싼 돈 내고 대학까지 갔는데 특별히 멘토를 찾지도 못했고,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밖으로 나가보고 싶었다. 젊음이 주는 무식함 덕분이랄까. 당시에 ‘굶주린 들개처럼 돌아다녀라’라는 식의 카피가 유행했는데 이에 현혹돼서 학교 밖으로 떠돌았다. 물론 끽해봐야 아르바이트나 하는 수준이었지. 휴학한 뒤로 고깃집 알바도 하고, 회사 파티션 나르는 일, 모텔, 쇼핑몰 모델, 호프집 등등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물론 수입이라고 해봐야 고작 옷이나 사 입고, 데이트 비용이나 충당할 정도의 수준이었지. 등록금을 충당한다는 게 명분이었는데 택도 없었다. 사실상 내가 놀기 위한 핑계밖에 안된 거다. 그래서 나중엔 후회도 많이 했지. 그나마 어린 나이에 조금이나마 현실을 느껴본 것 같긴 하다.
속된 말로 ‘남의 돈 먹기 쉽지 않다’는 것 정도는 알았겠다.
나는 ‘88만원 세대’를 충분히 이해한다. 나도 어렵게 컸으니까. 사실 연년생 동생이 있는데 우리 집 형편이 둘 다 함께 대학에 보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엔 징병이라는 좋은 제도가 있지 않나(웃음). 어쨌든 당시에 산업체에서 대체 복무를 해서 돈을 벌었는데 시급이 2960원 정도였다. 보통 한 달에 85만원 정도를 벌었는데 점차 시급도 오르고, 하루에 네 시간 정도씩만 자며 철야를 하면 130만원 정도를 받았다. 그런데 아무리 열심히 해도 140만원은 넘지 않더라. 어쨌든 그만큼 돈 귀한 줄은 안다.
금전적인 교훈 이외의 깨달음은 없었을까?
최소한 뭐가 귀하고, 중한지는 안다고 생각한다. 사람 귀한 줄도 안다. 최소한 ‘천상천하 유아독존’으로 사람을 대해선 안 된다는 건 안다. 부질 없는 시기이기도 했지만 최소한 정말 쉽게 얻을 수 없는 것들이 많다는 걸 깨달았다는 점에선 정말 필요한 시기였을지도 모른다. 느린 걸음으로 가더라도 그런 믿음이 있다면 잘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너무 느려서 좋지 않은 결과에 대해선 들어본 적 없나?
어떤 책에서 나온 이야기인데 세상이 변해가는 속도에 비해서 교육과 법이 제일 변화가 늦다고 하더라. 예를 들면 대한민국 누진세가 그렇다. 우리가 사용하는 가전제품이 얼마나 빨리 변하는데도 세제는 옛날 기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현재 기준에 비례해서 변하질 못한다는 거다.
인터뷰하다가 누진세 얘기를 듣게 된 건 처음이다(웃음).
한번 검색해봐라. 정말 심각하다니까.
어쨌든 30분은 지났다.
할 만큼 했나?
(ELLE KOREA AUGUST 2014 NO.262 'ELLE intervi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