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욱은 잘 생겼다. 덕분에 배우 이진욱도 잘 생긴 배우로 살아왔다. 하지만 이젠 잘 생긴 배우로만 기억될 것 같지 않다. 지금 이진욱은 자신의 얼굴을 보고 있다. 진짜 얼굴을 찾고 있다.
자신의 얼굴을 유심히 본적 있나? 예전에 이런 조언을 들었다. 배우는 자기 자신을 정확히 아는 데에서 출발한다고. 그래서 나는 나 자신을 주로 본다. 단순히 거울로 본다는 게 아니라 자신의 감정이나 상태를 아는데 집중한다. 외모엔 만족하나? 만족한다. 나는 내가 가진 부분에 대해선 긍정적이거든. 이런 내 마음가짐이 보다 만족스럽다. 사실 배우 중엔 나보다 잘난 외모를 가진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 안에서 배우로서 시간을 보내온 내 스스로의 자세에 대한 만족이 있다. 아직 이런 말하기엔 이른 감이 있지만 어쨌든 지금까진 그렇다. 앞으로도 잘 지켜갔으면 좋겠고. 사실 나이가 적은 편은 아니다. 그렇지. 30대 중반이니까. 물리적으로 나이가 많다는 말이 아니다. 다만 나이에 비하면 대표작을 늦게 만난 편이랄까. 어쨌든 비로소 <나인: 아홉 번의 시간여행>(이하: <나인>)이라는 대표작을 얻었다. 다행히 좋은 평가를 받았다. 살아온 인생과 살아갈 인생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드는 드라마란 점에선 나에게도 여러 가지로 의미가 있는 작품이었다. <표적>의 크랭크인이 늦어지는 게 불안하진 않았나? 되도록 그런 생각은 하지 않으려는 편이다. 누군가는 주목 받기 전까진 어두운 시간을 보냈을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난 그 전까지도 연기를 계속 해왔고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단지 대중적 호응을 얻지 못했을 뿐이지. 어차피 연기는 쭉 해나갈 일이고. <수상한 그녀>의 무대인사에 참여하지 않았던데. 민망하더라. “영화 촬영은 어땠나요?”라는 질문에 답변하기엔 내 분량이 너무 짧았다. 심지어 감독님이나 동료 배우들과 친분을 쌓기에도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했다. 어떤 열쇠를 쥔 캐릭터도, 특별한 공헌도가 있는 캐릭터도 아니었다. 그래서 할 얘기가 없었다. <표적> 촬영 중이기도 했고. 아무래도 <표적>엔 보다 큰 애착이 생길 수 밖에 없겠다. <수상한 그녀>는 꼭 내가 아니어도 된다는 기분이었다. 물론 내 작품이었고, 그만한 애착은 있었지만 아무래도 상대적으로 감당해낸 부분이 많은 만큼 <표적>에 더 마음이 간다. <표적>은 두 번째 영화 출연작이자 첫 영화 주연작이다. 영화 촬영은 확실히 드라마와 다르게 느껴졌을 텐데. 자의든 타의든 드라마에선 촬영하는 내내 그 캐릭터로 살게 된다. 빡빡한 스케줄 속에서 눈뜨고, 연기하고, 자고, 그런 일상의 반복이니까. 종종 그 캐릭터에 빠져 지내는 시간이 재미있을 때가 있다. 휘몰아치듯 스케줄을 소화하곤 끝냈다는 쾌감도 생기고. 영화에선 내 캐릭터에 집중하고, 세공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그만큼 연기적인 깊이를 추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그것도 개인의 몫인 거 같다. 한없이 해이해지거나 나태해질 수 있으니까. 웃을 땐 장난끼가 느껴진다. 장난끼가 적지 않다. 나름대로 장난 치는 호흡이 있는데 그게 잘 맞는 사람한텐 장난을 많이 치게 된다. 하지만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는 타입은 아닌가 보더라. 사람들이 모두 아니라고 말해서 알게 됐다(웃음). 돌이켜보면 사교적인 편은 아니었던 거 같다. 단지 필요에 의해서 그랬던 거지. 그리고 사실 혼자 있는 게 불편하지도 않다. 홀로 보내는 시간을 잘 감당하는 편인가 보다. 사실 엄청 급한 성격인데 그런 부분에선 느긋한 면이 있는 거 같다. 혼자 있을 때 <나인>의 박선우처럼 시간여행을 하는 건 아닐 테고. 그러면 얼마나 좋겠나. 정말 재미있을 거다. 혹시 되돌리고 싶은 시간이라도? 없다. 그냥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어린 시절을 영화 보듯이 보고 싶어서다. <나인>의 교훈처럼 시간여행으로 무언가를 바꾼다고 해서 절대 행복해질 수 없을 거다. 어떤 상황에서도 행복할 사람은 행복하다. 현재에 만족하나 보다. 당연하다.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두고 살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 그만큼 그럴 수 있는 마음을 갖는 것도 중요하고. 최근에 10년간 몸담았던 소속사를 옮겼다. 어떤 식으로든 기분이 묘했을 거 같은데. 특별히 문제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다. 뭔가 새롭게 시도해 보고 싶었는데 때마침 계약 기간도 만료됐으니 이번 기회에 새로운 환경에서 일해보고 싶어졌다. 기억에 남는 여행지로 체코의 체스키크롬로프와 알래스카를 꼽았더라. 쉽게 선택하는 여행지는 아닌데, 여행을 많이 다닌 걸까. 사실 알래스카엔 광고 촬영 때문에 갔지만 체스키크롬로프는 여행으로 갔다. 아마 2007년도 즈음이었을 텐데 피아니트스인 친한 형의 연주여행에 따라갔다가 오스트리아에서부터 직접 운전을 해서 국경 두 개를 넘어 갔다. 꿈 같은 일이었다. 여건만 허락한다면 자주 더 많은 곳을 가보고 싶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많은 땅을 밟아보고, 많은 일을 경험해보고 많은 사람을 만나보는 게 가장 의미 있는 일 아닐까. 배우로서도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인생의 과업이랄까(웃음). 새로운 경험 자체를 즐기는 편인가? 방송을 통해서 내 일상을 전시하는 것만 아니라면 불편할 일은 별로 없다. 수준 이하만 아니라면 영화도, 음악도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음식도 가리지 않고 잘 먹는다. 아무래도 ‘제일 좋아하는 한 가지’란 식의 질문에 답하기 힘들겠다. 쉽게 못 고른다(웃음). 그나저나 계속 먹는 얘기다. 먹는 걸 정말 좋아하나 보다. 인생의 낙이다. 직접 요리도 하나? 밥 먹을 때 된장찌개나 끓이는 정도? 그냥 내 취향대로 만들어먹는 게 좋다. 요리를 배워본 적은 없어서 감으로 한다. 스파게티도 눈대중으로 보고 만들었다. 그래서 어떻게 만드냐고 물어보면 설명을 못하겠더라. 연기도 경험이라고 생각하면 재미있겠다. 그런데 연기는 어렵다. 말하는 것처럼 간단하지 않으니까.
<표적>은 예고편만 봐도 육체적으로 힘들어 보이더라. 게다가 임신한 아내를 납치당한 남자라는 극한의 상황에 놓인 캐릭터인지라 촬영 내내 광분해 있는 상태여야 해서 더욱 힘들었다. 미친 듯이 소리치고, 달려야 했다. 횟수가 거듭될수록 감정은 더 좋아지는데 체력적인 한계가 있다 보니까 조율하는 게 어렵더라. 제작보고회에서 류승룡 씨의 말에 따르면 가녀린 액션을 보여준다던데. 평범하게 살던 의사가 갑자기 용맹심을 느낀다고 해서 얼마나 대단한 힘을 발휘할 수 있겠나. 몽둥이 하나를 휘둘러도 어설플 거다. 뭔가 멋있게 보이면 말이 안 되는 거지. 현장에서 우리끼린 ‘X밥’ 연기라고 했다(웃음). 하지만 공식석상에서 그럴 수 없으니까 그렇게 표현한 거다. 액션을 제대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잘할 수도 있을 거 같다. 하지만 아무래도 액션이 들어가는 건 대작이 될 가능성이 많을 텐데 나라는 배우가 그런 대작엔 안 어울리는 것 같고. 최근 한 방송 인터뷰에선 편지를 자주 쓴다고 얘기했다. 자주까진 아니고 가끔. 다만 지인들한테 시를 자주 보내긴 한다. 직접 시를 지어서 보낸다고. 좋은 시를 찾아서. 원래 시를 좋아하나? 시로 마음을 전하는 게 좋다. 물론 친구들은 좋아하지 않는다(웃음). 최지우 씨와의 연애가 지금도 종종 회자된다. 그래도 이젠 연관검색어에서 잘 안 보인다. 가끔 방송에서 연예인의 연애 이야기가 언급될 때 수면 위로 올라오기도 하는데 지금은 확실히 관심이 얕아진 것 같다. 원래는 공개 연애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다던데. 그냥 공개연애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사실 나란 사람에 대해서 밝혀지는 것 자체가 싫다. 대중들이 진짜 나라는 사람을 몰라야 작품 속의 내 캐릭터를 받아들이기 쉽다. 결국 내 사생활을 알리지 않는 것이 배우로서 살아가는데 도움이 된다. 반대로 그게 불가능하면 나는 손해를 본다는 말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내 사생활을 모른다고 해서 손해를 보진 않는다. 다만 그 호기심을 막을 순 없다. 그래서 쫓아다니면서 사진 찍는 것까지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당연히 대중들의 알 권리를 위해서 사생활을 포기해야 한다고, 심지어 그게 알 권리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건 정말 이해할 수 없다. 당해보지 않아서 그렇겠지(웃음). 사내연애를 괜히 비밀로 하는 게 아니니까. 사귀다 보면 싸울 수도 있고, 헤어질 수도 있는데 왜 헤어졌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일일이 설명할 수도 없고, 설명해도 이상해진다. 아무래도 일반 대중들에겐 배우나 연예인이 비현실적인 존재들로 여겨지나 보다. 돌을 던져도 피가 나지 않을 거 같은? 그래서 예능에서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면 좀 나아지는 것도 같지만 아무래도 배우로서 좋은 선택은 아닌 거 같다. 그래도 스트레스에 오래 시달리는 편은 아닌 것 같다. 그런 고민은 짧고, 깊고, 강하게, 빨리 끝내야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잘 안될 때도 있지만 어쨌든 그런 생각들은 빨리 정리해서 넘기는 편이다. 연애는? 연애에 대한 관심은 항상 있다.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연애는 해야 한다(웃음). 하다 못해 여가수나 여배우를 좋아하는 것도 사랑일 수 있다. 남자들은 원래 그런 힘으로 살아가는 거 아닌가(웃음)? 요즘 호감 가는 여자는? 제니퍼 로렌스가 그렇게 좋더라. 인터뷰 중인 다른 배우 뒤에서 장난 치는 모습을 보면서 ‘뭐 저런 여자가 다 있나?’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요즘 떠오르는 배우더라. 정말 특이하면서도 호감이 갔는데 <아메리칸 허슬>을 보고 나서 출연작을 다 찾아봤다. 혹시 본인의 이상형인가? 음, 그런데 막상 옆에 있으면 조금 부담스러울 거 같기도 하고(웃음). 어쩔 수 없는 대한민국의 고지식한 남자니까. 물론 너무 좋겠지. 정말 재미있을 거 같고. 하지만 갑자기 어느 순간엔 ‘제발, 가만히 좀 있어봐’ 이렇게 얘기할 것 같다(웃음). 열정적으로 살다간 예술가들에게서 감동을 느낀다고 말한 적이 있다. 아무에게도 인정받지 못했던 불행한 예술가들이 있지 않나. 멋진 음악이나 멋진 그림을 남겼지만 살아생전엔 찢어지게 가난하고, 그렇게 불행한 삶을 살다가 죽은 예술가들의 작품들은 자기 생명을 태워가면서 만든 것처럼 느껴진다. 만약 굉장히 불행한 현실을 살다가 죽어서 인정받는 예술가로서의 삶을 선택할 수 있다면? 못할 거 같다(웃음). 나는 그런 숭고한 삶을 살 깜냥이 안 된다. 영혼을 불태워서 뭔가를 해낼만한 재주도 없다. 무엇보다 먹는 게 낙이니까. 그럼(웃음). 지금의 삶을 잘 유지하면서 잘 먹고, 잘 살고, 그 정도면 충분하다(웃음). 그런 면에서 첫 주연작인 <표적>의 흥행이 간절해지진 않나? 특별히 흥행에 대한 기대는 없다. 작품에 대한 기대가 없다는 말이 아니다. 그런 부담을 가진다고 해서 작품이 잘될 것도 아니고, 나는 항상 열심히 할 거니까. 어쨌든 그래도 잘 돼야지. 그리고 잘 될 거다. (ELLE KOREA 2014 5월호 NO.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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