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듣기는 간편하다. 터치 한 번이면 손쉽게 플레이된다. 비싸지도 않다. 그게 당연한 줄 알았다.
음원 수익 분배가 공정하지 않다는 이야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돌고 돌았다. 그러다 보니 언젠가부터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듣고 들어도
상관 없는 것처럼 돼버렸다. 어려운 게 당연한 게 됐다. 지난 7월 16일, 록 밴드
시나위의 리더 신대철을 주축으로 한 ‘바른음원협동조합’이
출범했다. 뮤지션들의 음악적 권익을 보호해 주지 않는 현재의 대중음악 시장에서 뮤지션 스스로 생존의
길을 열어보겠다는 취지에서 설립됐다. 음악으로 돈을 벌기 힘들어진 뮤지션들이 자생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말이다. 뮤지션이 힘들어진 건 음악 시장 사정이 열악해서가 아니다. 음악 시장은 돈을 버는데 정작 음악을 만드는 당사자들의 수익이 보전되지 않기 때문이다. 노래 한 곡의 다운로드 가격은 600원이다. 가수나 연주자에게 돌아오는 저작권료는 5% 수준이다. 90%에 가까운 금액이 제작사와 유통사의 몫이 된다. 노래 한 곡을
만들고 팔면 100원이 남지 않는다. 게다가 스트리밍은 곡당 12원에 결제된다. 그 와중에 음원 서비스 업체들은 음원정액제 등을
통해 박리다매로 헐값에 팔아 치운다. 제값을 받아도 수익을 내기 힘든 구조에서 수익성은 더욱 바닥을
친다. 지난 2012년
12월, AP통신에선 그해에 전 세계를 뒤흔든 싸이의 ‘강남
스타일’의 매출에 관해 보도했다. 당시까지 ‘강남 스타일’은 한국에서만 360만
건의 다운로드 횟수를 기록했는데 이를 통해 싸이가 손에 쥔 돈은 6600만원 정도였다. 같은 기간 동안 미국에선 290만 건의 다운로드가 집계됐다. 그런데 미국에서 싸이가 음원 다운로드만으로 얻은 수익은 무려 28억원에
달한다. 이 심각한 괴리는 국내 음원 시장의 기형적인 구조를 여실히 드러내는 지표다. ‘강남 스타일’조차 이 정도니 다른 곡들의 음원 수익은 얼마나 처참할지
짐작조차 불가능하다.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일본의 다운로드 최저가격은 2237원, 프랑스가 1087원, 영국이 1064원, 미국이 791원
수준이다. 대한민국은 63원이다. 잘못 쓴 게 아니다. 결국 생산자인 뮤지션의 몫은 평균 10.7원 수준이다. 10원짜리 동전 하나 보기 힘든 요즘의 물가를
고려한다면 놀라운 일이다. 곡당 12원 수준인 스트리밍 서비스는
저작권자의 몫이 곡당 무려 0.2원이다. 100곡을 스트리밍해도 20원이 남는다. 어쩌다 이렇게 기형적인 음원 수익 배분 구조가 정착된
건가. 국내 음반 시장은 2000년 이후 급격하게 디지털
시장으로 이동했다. 사실상 벼랑 끝에 섰다. 인터넷 망의
급속한 보급과 함께 소리바다와 같은 P2P 사이트를 통해서 음원의 불법 다운로드가 들불처럼 번져나갔고, 음반 시장은 극도로 위축되기 시작했다. 때마침 터진 경제위기로 인한
소비 시장 위축은 얼어붙어가는 음반 시장을 향한 매서운 바람이었다. 침몰하는 음반 시장을 구출해 줄
대안이 없었다.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했다. 불법 다운로드를
막고자 음원을 초저가로 스트리밍 서비스에 공급했다. 망 사업자들의 플랫폼을 통해서 음악을 싸게 공급하고
유통시켜 대중의 관심을 환기시키면 다시 음반 시장이 부활할 것이라고 믿었다. 순진했다. 음반 시장의 맥박은 나날이 희미해졌다. 그 사이에 음원 시장이 급속도로
팽창했다.
디지털 디바이스의 기술 발달과 대중화로 인해 음원 시장 역시 급격하게 생활과 밀착해 버렸다. 문제는 구조와 의식이었다. 대형 음원 유통사들은 초기에 공급받았던
낮은 음원가에 맞춰 유통 기준을 정했다. 소비자들에게도 음원은 싼 가격에 즐길 수 있는 것이 돼버렸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손쉽게 음악을 다운받거나 스트리밍으로 들을 수 있다. 음반
판매량은 회복될 기회를 잃었다. 음반 한 장 가격이면 듣고 싶은 음악을 다 듣고도 남는 금액이었다. 언젠가부터 음악은 거저 들어도 상관 없는 것이 돼버렸다. 음악은
제작과 유통을 담당하는 망 사업자들의 수익을 위한 시녀로 전락했고, 음악 종사자들은 순식간에 재주 부리는
곰으로 둔갑해 버렸다. 이젠 음원 차트에서 선전하는 아이돌 스타를 대거 보유한 메이저 기획사들조차 음원
수익엔 특별한 기대를 걸지 않는다. 그것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해외
진출이라는 옵션이 생겼지만 그것도 모두를 위한 은총일 리 없다. 그럼에도 음원 서비스 업체에서 차트
성적은 중요하다. 기대할 수 없는 음원 수익을 대체하는 수익 모델은 공연과 행사였다. 전국 각지에서 열리는 각종 행사가 음악적인 주 수입원이 됐다. 결국
음원 차트 순위가 섭외 순위를 좌우한다. 행사장을 쫓아 전국 각지를 동분서주하는 가수들이 늘어났다.
최근 교통사고로 사망한 레이디스 코드 멤버들의 현실도 이런 시스템의 열악함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음악만으로 생존할 수 없는 기형적인 구조에서 빚어진, 러시안 룰렛
같은 비극이다. 음원값은 음원서비스사, 저작권협회, 음반제작자협회 등 음반 산업의 관계자들이 모여서 합의한 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승인을 받는다. 음악이 공공재도 아닌데 정부의 가격 통제에 따라야 한다는 건 의아한 일이다.
정부에선 음원 서비스 사가 40% 이상의 수익을 가져가지 못하게 막는 효과가 있다고 주장한다. 눈 가리고 아웅이다. ‘바른음원협동조합’을 설립한 신대철은문체부 회의에 참석해서 직접적인 음악 종사자들에게 80%의 이익을 돌려줄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신탁 단체들과 합의하면 승인해 주겠다는 대답도 들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런 식의 제안을 한 경우는 없었다는 이야길 들었다. 그러니까
사실상 정부에서도 제대로 관심을 기울여본 적이 없었다는 말이다. 어쩌면 음악의 실제 주인들이 자신의
입장을 대변할 기회를 단 한 번도 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바른음원협동조합은 어쩌면 그 첫 번째 기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건 결국 ‘시장성을 확보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현재의 음악
종사자들이 불합리한 음원 수익 배분을 감당하면서 폭리를 취하는 대기업 산하의 음원 서비스 업체들에게 음악을 공급하는 건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바른음원협동조합의 노력으로만 가능한 변화도가 아닐 것이다. 음악이
음악을 살리지 못하는 땅에서 그리는 음악적 청사진이란 결국 신기루이거나 백일몽이다. K팝도, 한류도, 언젠가 흩어질 모래성이다.
<탑밴드 시즌 2>가 시작했다. 놀랍게도 홍대를 주름잡는, 알만한 이들은 안다는 인디 밴드들이 죄다 나왔다. 저마다 열심히 연주하고 노래했다. 그 무대가 왠지 서글펐다.
<탑밴드 시즌 2>가 전파를 타기 시작한 건 5월 5일 토요일 밤 11시 25분경이었다. 트랜스픽션이, 슈퍼키드가, 몽니가, 칵스가, 데이브레이크가, 피터팬 콤플렉스가, 그리고 피아가! 홍대에서 공연 좀 보고 놀았다고 자부하는, 여름에 뮤직 페스티벌에서 좀 흔들어봤다는 선수들이 다 아는 그 이름들이 세탁기에서 막 건져낸 빨래마냥 줄줄이 걸렸다. 그 덕분인지 2회부터 5회까지 광고는 완판됐다고 한다. 소위 말하는 네임드 밴드들이 서바이벌 경연을 벌인다는 게 팔릴 만한 이슈이긴 했다. 그러나 시청률은 2%대에서 요지부동이다. 그럼에도 SNS를 비롯한 인터넷상에서 <탑밴드 시즌 2>는 뜨거운 감자였다. 프로그램의 완성도에 대한, 몇몇 밴드의 출연에 대한, 심사위원들의 심사 방식에 대한 갑론을박이 뜨거웠다. 기이할 정도로 그랬다.
큰 논란이 있었던 2회 방송을 보자. 방아쇠가 된 건 화제의 밴드 피아였다. 그들 역시 1차 예선을 거친 99팀 중 하나였다. 2차 예선에서는 한 조를 이룬 3팀이 경연을 벌인 후, 심사위원들이 논의 끝에 결정된 1팀이 3차 예선 무대에 오른다. 피아의 무대를 바라본 심사위원석에선 상반된 기류가 흘렀고 전선이 형성됐다. 신대철은 ‘그래도 피아’를 주장했고, 김경호는 ‘어째서 피아냐’고 반박했다. 신대철의 말처럼 ‘짜임새 있는 연주를 보여줬고, 못한 건 아니’었지만 유영석의 말처럼 ‘기대 이하’였고, 김경호의 말대로 ‘예전의 느낌과는 많이 달랐’으며, 신대철도 ‘보컬의 측면에서 압도하지 못했다는’ 걸 알았다. 유영석이 ‘지금 피아가 떨어지면…’이라며 말꼬리를 흐리는 와중에, 김경호는 ‘논란이 될까 봐 그러는 거냐’ 받아쳤다. 끝판왕이라고 생각했던 피아였다. 단판 승부에서 전적을 끌어들여서 심사하는 건 엄연히 반칙이다. 백전백승의 챔피언이라도 방어전에서 한번 패배하면 벨트를 헌납하는 게 룰이다. 하지만 그 자리엔 챔피언이 없었다. 피아도 도전자였다. 패배보다 뼈아픈 건 탈락이었다. 이는 <탑밴드 시즌 2>의 딜레마를 환기시키고, 인디 밴드 신이라는 바운더리를 각성시키는 풍경이었다.
국내에서 인대 밴드라는 언어가 동원된 건 커트 코베인이 시애틀의 자택에서 산탄총으로 자신의 머리를 날려버린 지 1년여 즈음 된 1995년 4월 무렵이었다. 홍대의 펑크 클럽 드럭에 모인 얼터너티브 밴드들이 커트 코베인의 사후 1주년을 추모하며 연주를 했고 정기적으로 공연이 지속됐다. 델리 스파이스, 언니네 이발관, 크라잉 넛, 코코어 등과 같은 밴드들이 등장한 것이, 그들에게 인디 밴드라는 언어가 통용된 것이 그 무렵이었다. 홍대를 본진 삼아서 그들만의 리그를 꾸리고 클럽 등지에서 공연을 펼쳐나가는 록밴드들에 대한 팬덤은 댄스 음악 일변도로 흐르던 당시의 분위기 속에서 분명 특별한 현상이었다. 하지만 과연 그 당시로부터 지금까지 인디 밴드를 정의할 수 있는 어떤 실체가 있었던가.
인디펜던트, 즉 ‘인디’라는 단어가 음악계로 유입된 건 대중화된 기성 장르와 대립적인 포지셔닝을 취할 수밖에 없는 새로운 장르의 태동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멤피스 로큰롤이, 뉴욕 펑크락이, 시애틀 그런지가 그랬다. ‘인디’라는 수사는 자연스럽게 마이너의 속성을 끌어안는다. 하지만 그건 전략적인 포지셔닝의 방식일 뿐, 태생적인 구분의 의미가 아니었다. 메이저 자본력을 설득하기 힘든 마이너 장르들이 최소한의 자본력으로 자신의 재능을 입증하는, 도전자로서 링에 오르는 시스템이었을 뿐, 극복해야 할 영역이 아니었던 것이다. 엘비스 프레슬리가, 너바나가 평생 인디 뮤지션이 아니었던 것도 그래서다. 한국에서 인디 밴드라는 영역이 모호한 건 그래서다. 그건 전략적 선택이 아니라 마치 불가피한 한계처럼 보인다. 메이저로 진입하기 위한 시작점이 아니라 필연적인 마이너리티의 영역처럼 보인다. 인디 신의 스타 밴드가 된다 한들, 그건 철저하게 그 협소한 신 안에서의 이슈일 뿐이다. 피아를 안다면 인디 밴드를 알겠지만 인디 밴드를 모른다면 피아는 어쩌다 들어본 이름 정도나 될 것이다. 한 번 인디 밴드는 영원히 인디 밴드로 남을 수 밖에 없는, 어떠한 지향점을 모색할 수 없는 굴레이자 속박처럼 인식된다. 저항이나 도전을 위한 발판이 아니라 갈 곳을 잃은 미아들이 보호소에 귀속되듯 정처 없는 머무름이다.
<탑밴드 시즌 2>가 프로와 아마추어의 경계를 허문 건, <탑밴드>를 통해서 그런 기준 자체가 불명확할뿐더러 의미도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홈페이지에 이를 공고한 뒤, 별다른 액션 없이도 소위 말하는 네임드 밴드들이 참여 의사를 밝혀왔다고 한다. 아마추어 신분으로 <탑밴드>에서 참여한 몇몇 밴드의 인지도나 몸값이 수직 상승했다는 소식 앞에서 인디 밴드로서 보낸 오랜 세월은 자연히 허망해졌다. 락 페스티벌 무대나 홍대 공연장에서 항상 마주하는 팬들만 보게 된다는 기분도 괜한 데자뷰가 아니다. 방송 출연이 얼굴을 알리고 이름값을 높이겠다는 단순한 욕망의 소산일지도 모르지만 새로운 관객과 대중에게 자신의 창작물을 어필하고 싶다는 건 예술가로서 당연한 갈망이다. 그들이 <탑밴드 시즌 2>를 선택한 건 그만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지향점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물질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자신들을 한 단계 도약시켜줄 발판이 필요했다. <탑밴드 시즌 2>가 좋은 발판인지 가늠하기 전에 그런 기회 자체가 절실하다.
이건 결국 인디 밴드라는 계층의 생존을 다룬 리얼리티 서바이벌이다. 2%의 시청률에 매몰된 ‘그들만의 리그’라 해도 그들의 갈증을 해갈해줄 새로운 무대가 그곳에 있었다. 14년 경력의 밴드 피아가 그 무대에 선 것도 이런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명예로운 퇴장 따윈 기대할 수 없지만 일단 무대에 오르고 볼 일이다. 살아남아서 당장 오를 수 있는 무대를 확보하는 게 보다 중요하다. <탑밴드 시즌 2>가 환기시키는 건 바로 그런 절박함이다. ‘토요일 밤의 락 페스티벌’이라는 슬로건은 그 라인업만으로 무색하지 않다. 하지만 실상은 ‘헝거 게임’이다. 굶주린 밴드들이 모여서 경합을 벌이는 광경은 그러니 애처로울 수밖에 없다. 실상 그것이 인디 밴드들의 허기를 갈취하고 있다 할지라도 그런 불합리마저 눈감게 만드는 허기를 외면하지 않길 바라는 건 그런 까닭이다. 지향점을 마련하는 것, 그것이 인디 밴드라는 실체 또한 마련할 것이기에. 인디 밴드들은 아직도 배가 고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