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65회를 맞이한, 미국의 권위 있는 TV 시상식 에미상 후보작들 가운데서 눈에 띄는 작품은 9개 부문 후보로 이름을 올린 <하우스 오브 카드>였다. 영국의 보수당 정치인이자 작가인 마이클 돕스의 동명 소설을 극화한 BBC의 동명 TV시리즈를 리메이크한 작품으로 백악관 입성의 야심을 품은 한 정치인의 권모술수를 현실에 밀착시키듯 흥미롭게 그린 정치스릴러다. 테크니션의 대가 데이비드 핀처가 제작과 연출을 맡고, 케빈 스페이시와 로빈 라이트 등 신뢰할만한 배우들을 전면에 포진시키며 탁월한 조형도를 확보했다. 하지만 이 정치스릴러가 주목을 받은 건 작품의 외적인 요소 덕분이었다.
<하우스 오브 카드>가 공개된 건 올해 2월이었다. 대부분의 미니시리즈들이 그러하듯이 HBO 같은, 이름만 대도 알만한 유료 케이블 채널을 통해서가 아니었다. 온라인을 통한 독점적 공개였다. <하우스 오브 카드>는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인 넷플릭스의 자체 제작 미니시리즈였기 때문이다. 그 이례적인 사실만큼이나 공급 방식 역시 파격적이었다. <하우스 오브 카드>는 기존의 TV 미니시리즈처럼 주 1~2회씩 순차적으로 방영되지 않았다. 13화를 한번에 공개했다. 넷플릭스의 유료 가입자라면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로 <하우스 오브 카드>의 전회를 시청할 수 있었다. <하우스 오브 카드>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됐다. 지난 4월 넷플릭스는 1분기 매출 실적이 10억 달러가 넘었다고 발표했다. 창립 이래 처음이었다. 이 발표와 함께 주가는 24% 폭등했다. 발표에 따르면 전년도까지 2700만명 수준이었던 유료 가입자 수도 3600만명을 상회했다. 미국 내 최대 유료 가입자를 지닌 케이블 채널 HBO가 2800만 명 수준임을 감안한다면 대단한 수치다.
1997년 인터넷 DVD 대여 서비스 업체로 출발한 넷플릭스는 2009년부터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 시장에 주력했다. 그 과정에서 주가 폭락 사태를 겪기도 했지만 영상 콘텐츠를 생산하는 회사들과 독점 계약을 맺고 콘텐츠를 강화하며 점차 저변을 넓혀나갔고 미국 내 최대 규모의 회사로 성장했다. 그리고 <하우스 오브 카드>와 같은 오리지널 시리즈 제작과 성공은 넷플릭스를 기존의 케이블 채널과의 경쟁자로 인식하도록 만들었다. 전통적인 TV 채널 중심의 방송 시스템을 흔든 결과다.
오늘날 사람들은 TV 앞에 앉아있지 않고도 TV를 볼 수 있다. 태블릿 PC, 스마트폰 등 인터넷 접속이 가능한 디바이스를 통해서 실시간으로 혹은 뒤늦게라도 다운로드를 받아서 감상할 수 있다. 미국의 한 시장조사기관은 온라인 스트리밍 사용자 중 60% 이상이 넷플릭스로 영화나 드라마를 감상했다고 전한다. 소비자가 확보된 만큼 자체 콘텐츠를 생산할 이유도 충분해진다. <하우스 오브 카드>의 성공은 포스트 TV 시대의 예고편일지도 모른다. 방송 콘텐츠를 TV로만 소비하던 시대에서 벗어났듯이 방송 시스템이 TV 채널에만 적용될 이유가 없음을 피부로 느끼기 시작했다. 망망대해에 좌표가 생겼다. 인터넷이라는 인프라에 전통적인 영상 콘텐츠 제작 시스템이 합병된 셈이다. 앞으로의 전망? <하우스 오브 카드>는 총 26부작으로 제작됐고, 아직 13부작이 남았다. 그 13부작은 넷플릭스의 미래이자 방송 패러다임의 새로운 미래를 잇는 교두보가 될지도 모른다. 넷플릭스가 확실한 조커를 쥐고 있다는 말이다.
‘미국의 톨킨’이라 불리는 조지 R. R. 마틴의 5부작 소설 <얼음과 불의 노래>의 최종편 <드래곤과의 춤>이 지난 7월에 발간됐다. 첫 작품 <왕좌의 게임>이 발표된 건 1996년이었다. 그리고 2007년, HBO와 TV시리즈 제작이 논의됐다. 2011년 4월 17일, 10부작 중 첫 회가 방영된다. 약 220만 명의 시청자가 TV 앞에 모였다. 그래프는 내려가는 법이 없었다. 6월 19일에 방영된 최종회는 300만 명을 넘었다. <왕좌의 게임>은 IMDB의 역대 TV시리즈 순위 중 4위에 랭크됐다. 에미상 13개 부문 후보로 지명됐다. 피터 잭슨의 <반지의 제왕> 트릴로지에 비견될 반향이었다. 실제로도 그랬다. 이제야 한 시즌의 걸음마를 뗀 작품이 이처럼 성대한 환영을 받기란 드문 일이다. 마틴은 랭커스터 왕가와 요크 왕가의 왕위 쟁탈전이었던 영국의 장미 전쟁에서 모티프를 얻었다. TV시리즈의 제작과 각본을 맡은 데이비드 베니오프는 이를 ‘중간계(middle-earth)의 <소프라노스>’라고 정의했다. 그러니까 <왕좌의 게임>은 악의 제왕을 물리치기 위해 벌이는 영웅전기가 아니란 의미다. <왕좌의 게임>은 ‘웨스테로스’라는 가상의 대륙에 있는 세븐 킹덤의 왕좌를 두고 벌어지는 사건을 그린 판타지물이다. 스크린 너머의 가상의 세계는 흡사 중세 봉건주의 사회의 유럽을 옮겨놓은 것만 같다. 전쟁의 위협을 잊은 지 오래인 왕국은 태평성대 속에서 형성된 태풍의 눈 한가운데에 놓여 있다. 거대한 탐욕의 소용돌이는 드높던 명예를 목 베어 내걸고 조롱한다. 누군가는 이를 되살리기 위해 몸을 팔고, 어떤 이는 그 삶을 판다. <왕좌의 게임>은 이 거대한 세계관 속에서 꿈틀거리는 소돔과 고모라의 징후를 드러냈을 뿐이다. 선악의 대립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알을 깨고 나온 저마다의 욕망들이 눈을 뜨고 날개를 펼 때, 결국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웨스테로스의 여름은 지났다. 이제 본격적인 겨울이다. 냉혹한 전쟁의 계절을 그릴 2시즌 <왕들의 전쟁>은 내년 4월 봄에 방영된다.
(beyond 10월호 Vol.61 '2011 ENTERTAINMENT ICONS - BROADCA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