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햇볕과 살랑거리는 바람을 행복의 조건이라 생각한다. 편안한 일상을 영위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소중한 삶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김민희는 지금 행복하다고 말한다.
“가끔씩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답변이 너무 성의가 없어 보일 것 같아서 뭔가를 생각해내려고 해도 특별히 얘기할만한 게 없어요.” 김민희의 답변을 듣고 나서 어쩌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김민희라면 매일 같이 특별한 일상을 보낼 것만 같아요”란 식의 우문을 던지는 사람이 비단 나뿐만은 아니었던 거니까. “여느 사람들과 똑같죠. 친구들 만나고, 그냥 내 시간을 보내고.” 그렇다면 오히려 다시 배우로서의 영역으로 돌아왔을 때 느낄 수 있는 어떤 특별함이란 게 있지 않을까? “10년 넘게 해왔던 일이기 때문인지 몰라도 역시 그냥 일상 같아요. 물론 일을 시작할 때,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그리고 완성된 작품이 사람들에게 공개될 때마다 느껴지는 낯선 느낌이나 긴장감 정도는 있죠.” 사실상 그 자리에서 가장 특별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던 건 바로 나 자신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내 질문에 주의를 기울이는 가운데서도 가끔씩 무언가를 입에 물고 씹고 있는 자신의 강아지를 보며 ‘그건 안돼’라고 상냥하게 말하는 김민희와 마주보고 있다는 것 말이다. 그것도 살랑거리는 봄바람의 결이 느껴지는 옥상 테라스에서. 마치 특별한 누군가의 집에 초대받은 손님이 된 것 같다는 설렘이 불어오는 듯한. 물론 이곳은 김민희의 집이 아니라 포토그래퍼의 자택이다. 개인적으론 지금까지 진행해온 화보 촬영 중 가장 야생적(?)이면서도 의외로 목가적(?)인 경험을 선사한 현장이기도 했다. 처음으로 대면한 두 마리의 개, 그러니까 포토그래퍼가 키우던 ‘턱스’와 김민희가 현장에 데려온 시바견 ‘탄’이 장난을 치며 사방을 돌아다녔지만 대부분의 스태프들은 지나친 상황을 제외하곤 이 두 견공의 행동 반경을 제지하지 않았다. 그만큼 현장의 분위기는 자유로웠고, 자연스러웠다. 무엇보다도 마치 절친한 친구 집에 놀러 온 것처럼 편안한 분위기를 주도한 김민희 덕분에 화보 현장의 분위기 또한 보기 드물게 여유롭고 유유자적했다. 물론 실력 있는 스태프들의 빛나는 공헌도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겠지만. “10년간 일했지만 개봉을 기다릴 땐 항상 떨리죠. 일종의 좋은 떨림 그러니까 설렘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요?” 김민희는 지금 자신의 새로운 출연작 <우는 남자>의 개봉을 앞두고 또 한번의 ‘좋은 떨림’을 느끼고 있다. <우는 남자>의 김민희에 대한 기대감을 설명하기 위해선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2012년에 개봉된 <화차>는 우리가 몰랐던 배우 김민희의 새로운 한 뼘을 발견하는 작품이었다면 이듬해인 2013년에 개봉된 <연애의 온도>는 우리가 익히 잘 알았던 배우 김민희의 익숙한 한 뼘을 증명하는 작품이었다. 지난 2년 사이 배우 김민희는 두 편의 작품을 프리즘 삼아서 자신의 연기적 스펙트럼을 드러냈다. 누군가로부터 비로소 ‘연기가 기대된다’는 말을 듣기 시작했다. “사실 어릴 때부터 맡은 역할을 잘해내고 싶은 마음은 항상 있었어요. 그만큼 그런 기대를 갖게 만들었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죠.” 사실 <우는 남자>에서 김민희가 연기한 모경은 여러 모로 김민희가 <화차>에서 연기했던 차경선을 떠올리게 만든다. 두 캐릭터가 유사하다는 말이 아니다. <우는 남자>의 모경은 내밀한 감정을 지닌 인물이다. 그만큼 <화차>에서 은밀한 비밀을 품은 여인의 심리를 탁월하게 선사한 김민희의 지난 호연을 떠올리게 만든다는 것이다. 사실 <화차>에서 경선을 연기한 김민희로부터 얻은 특별한 인상이란 그 전까지 나긋나긋하거나 당차고 털털한 여인상을 대변해왔던 그녀가 이토록 첨예한 심리를 담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상상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김민희의 재발견이었던 셈. 그만큼 남성성을 대변하는 듯한 노골적인 제목에도 불구하고 <우는 남자>에서의 김민희가 보여줄 무언가를 기대할 수밖에 없다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우는 남자>라는 2어절의 제목에서 김민희의 몫은 ‘우는’이라는 감정에 있다. “곤(장동건)이란 인물이 모경을 통해서 감정적인 흔들림을 얻게 되는 만큼 당연히 모경이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했어요. 사실 모경이 지닌 극한의 감정을 표현하기 힘들었지만 그 감정을 잘 전달해야 곤이란 인물도 살 수 있기 때문에 잘해내고 싶었죠.” 그렇다. <우는 남자>는 남자들의 영화이지만 영화의 감정선을 쥐고 있는 키는 바로 김민희가 연기하는 모경에게 있다. 모경에게 내재된 깊은 감정은 이미 장전된 탄환과도 같았던 곤의 어떤 감정을 격발시키는 방아쇠나 다름없다. 그만큼 김민희의 역할이 중요했다. “모경은 슬픔이 내재된 인물이고, 일상에서도 그런 감정을 품은 채 생활하는 만큼 그런 인물을 연기할 준비를 한다는 건 결국 비슷한 감정을 품은 채 연기해내야 한다는 거잖아요. 그렇게 노력하다 보니 몸도 마음도 지치고 힘들어졌어요. 그래서 <우는 남자>의 촬영이 끝날 즈음엔 다음 작품은 좀 가벼운 마음으로 임할 수 있는 작품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였죠.” 그렇다면 다음 작품은 기존의 발랄하고 앙칼진 김민희를 만날 수 있다는 말일까? 글쎄. “영화 촬영이 끝난지 몇 달이 지났고, 이렇게 좀 쉬고 나니까 그 당시의 기억이 즐겁게 다가와요. 어렵고 힘들었던 일을 해냈다고 생각하면 확실히 기분은 좋아지죠.” 아무래도 김민희의 다음 행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것 같다. 사실 대한민국 영화계에선 오래 전부터 여배우에게 매력적이라 할만한 시나리오가 궁했다. 점점 형편이 나아지곤 있지만 지금도 여배우들의 갈증은 쉽게 해갈되지 않는 것 같다. “좋은 시나리오가 많지 않은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꼭 주연만을 고집하진 않아요. 비중이 작은 역할 심지어 카메오라 해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매력이 있는 역할이라면 하고 싶거든요. 그리고 탄탄한 시나리오만을 고집한다기 보단 내가 무언가 시도해볼 만한 것이 있다고 여겨지는 시나리오도 좋아요. 그 시도가 작품을 풍성하게 만들어줄 수 있다고 생각되면 매력이 느껴져요.” 김민희는 1년에 한 편 꼴로 작품에 임해왔다. 다작하지 않는 배우라는 인상이 남는다. 하지만 그건 그녀가 그런 규칙을 정했기 때문이 아닌가 보다. “다작하고 싶어요. 쉬지 않고 계속 일하고 싶죠. 그래서 <우는 남자>를 끝낸 뒤에도 시나리오를 많이 챙겼어요. 그런데 많이 끌리는 작품이 없었어요.” 어쩌면 우린 김민희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김민희는 스타일리시한 배우의 대명사였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작품 활동 중인 ‘배우 김민희’의 영역을 벗어난 김민희를 본적이 있었나? 물론 우리가 항상 김민희의 모든 것을 주시하는 파파라치가 돼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그녀가 스스로 편안하게 머무를 수 있는 자신만의 행동 반경을 벗어나지 않고 있다는 말이다. 김민희는 흔히 쉽게 생각하는 화려한 셀레브리티의 삶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있는 것 같다. “이렇게 날씨가 좋은 한낮에 술 마시는 게 좋아요. 밤에 마시는 것보단 낮에 야외의 그늘 같은 곳에 앉아서 말이죠. 물론 술판을 벌인다는 건 아니에요(웃음). 그냥 술을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잖아요. 그만큼 잘 웃게 되고.” 김민희에게 있어서 술이란 즐거움을 위한 촉매제인 셈이다. 건강한 일상을 영위하는 것이야말로 김민희에게 있어서 진정한 낙인 셈이다. ‘긍정적’ 혹은 ‘낙천적’이라는 식상한 단어보다도 ‘자연적’인 삶 그 자체를 향유하고 있다는 인상을 느꼈다. “이맘때 봄이나 가을의 화창한 한낮의 햇볕이 좋아요. 그런데 봄과 가을이 점점 짧아지고 있잖아요. 그만큼 절실하게 그 시기를 즐기는 거죠.” 심지어 시간의 흐름조차도 그녀에겐 “그냥 시간 가는 게 좋아요. 왜인지는 몰라도 지금이 좋거든요. 그래서 돌아가고 싶은 시간도 없어요.” 과거가 그립다는 건 어쩌면 현재가 그만큼 만족스럽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김민희는 만족할만한 현재를 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만족할만한 현재란 결국 기대할만한 미래로 이어진다. “희망이 없으면 안돼요. 희망은 항상 가져야죠. 다만 너무 과하지 않을 정도로만.” 그렇다면 지금 김민희가 갖고 있는 희망이란 무엇일까? “그렇게 물으면 할 수 있는 말은 ‘몰라요?’일 거 같아요(웃음).” 그러니까 김민희도 모르는 그녀의 희망이란 결국 현재진행형의 삶 그 자체일지도 모르겠다. (ELLE KOREA 2014 6월호 NO.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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