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는 남자, 최다니엘
진지하지만 무겁지 않게, 유쾌하지만 가볍지 않게, 최다니엘은 거침 없이 말했다. 그리고 한결 같이 호탕한 웃음 소리가 뒤따라왔다.
최근에 담배를 끊었다던데.
8월 즈음부터.
특별한 이유라도?
사실 한번도 담배를 끊어야겠다고 생각해본 적 없는데 갑자기 피우고 싶지 않아졌다. 가끔 담배를 피우지 않는 내 자신이 어색해서 다시 피워보면 맛이 없더라.
술은 약한 편이라던데.
소주 1병이 치사량이다. 거기서 1잔이라도 더 마시면 말 그대로 죽는다.
<열한시>를 연출한 김현석 감독이나 배우 정재영 씨 모두 술을 좋아한다.
덕분에 촬영 후 매일 같이 술을 마셨다. 김현석 감독님은 영화가 늦게 끝나는 걸 굉장히 싫어한다. 11시 전엔 무조건 끝내야 된다. 9시면 더 좋고. 그렇게 한잔 걸치는 맛에 일하는 것처럼. 재영 선배도 술 좋아하고, 다들 술을 좋아하더라. 나는 술을 잘 못 마셔도 그런 자리는 좋아해서 거의 매일 같이 늦게까지 앉아있었다.
잘 마실 것처럼 보이는데.
대부분 안 믿지. 맨날 클럽 가서 놀게 생겼다면서(웃음). 아버지께서도 술을 잘 못 드신다. 집안 내력이지.
클럽 같은 곳엔 잘 안가나 보다.
데뷔 전엔 클럽이나 나이트도 갔다. 그런데 이 일을 시작하면서 그게 노는 것 같지 않더라. 술자리나 노래방에서 노는 것도 연기처럼 끼가 필요하니까 일처럼 느껴지는 거다. 게다가 사람들 눈도 있고, 마냥 자유로운 입장이 아니니까. 그리고 그런 곳엔 괜히 어깨 부딪히고 노려보는 남자들도 한두 명씩 있잖아.
연예인은 좋은 표적이기도 하니까.
결국 나만 손해다. 그들은 나를 알지만 나는 그들을 모르니까. 그렇게 불안해하면서 노는 건 노는 게 아닌 거 같다. 잠깐의 쾌락을 위해서 많은 걸 희생할 필요도 없고.
얼마 전에 오락실에서 오락하는 사진이 기사화됐던데, 그런 일상조차 기사화되는 걸 보는 기분이란?
오히려 그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어디에서든 사진에 찍힐 수 있고, 그 사진이 인터넷에 돌아다닐 수도 있다는 것 정도는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알려질 거라면 차라리 내가 알리는 거지(웃음).
연애는?
안 한지 좀 됐다. 요즘은 하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고, 이대로가 편하다.
본인만 감당하는 상황은 괜찮을지 몰라도 주변의 누군가를 감당하게 만드는 상황이 생긴다는 건 부담스러울 거다. 연애할 때는 더욱 그럴 테고.
맞다. 나로 인해서 다른 사람까지 들썩이게 만드는 건 아무래도 걱정스럽지. 그래서 하고 싶은 걸 더 못하는 경우도 없지 않고.
종종 유명인이라는 이유로 자신이 대변할 필요가 없는 분야에 대한 심각한 답변을 요구 받는 경우가 있을 것 같다. 예를 들면 오락실 사진을 빌미로 난데없이 게임 규제 정책에 대한 질문을 듣게 된다던가(웃음).
맞다. 정말 쌩뚱맞은 질문 받고, 그 답변이 기사화되고. 지난 번엔 <학교 2013>을 찍고 나서 뉴스에 나간 적도 있었다. 11시 뉴스였던가?
뭘 묻던가?
지금의 학교 생활에 관한 생각을 묻는데 내가 그걸 어떻게 알겠어. 우리 때도 왕따가 없진 않았지만 지금과는 또 다를 테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내가 나갈 일이 아니잖아. 드라마가 화제가 되면서 제작진에서 탄력을 받아서 부탁하길래 어쩔 수 없이 밀려나간 거지. 아마 나보다 더 곤란한 질문을 받는 사람도 있을 거다. 정치적인 질문을 받을 수도 있고. 하지만 본질은 결국 내가 영향력 있는 사람으로서 ‘얼마나 올바른 생각을 할 수 있는가’일 거다. 어떤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에 따른 책임도 내 몫일 테니까. 잘해도 내 몫이고, 못해도 내 몫이다. 그만큼 내가 서있는 위치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잠깐 정신을 놓고 있으면 나뭇잎처럼 날리는 세상이니까 오히려 갈대처럼 흔들려도 자리를 지킬 수 있도록 뿌리를 박고 사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영향력이 있다는 건 어떤 면에선 낫다는 말이다.
유명세가 따를수록 일상의 불편함도 따르기 마련인데.
불편함은 있다. 하지만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순 없다. 조금 더 정확하게 구분하자면 토끼와 거북이 중에서 선택해야 한다는 거지. 내 삶을 영위할지, 내 삶의 일부를 희생해서 더 낫다고 여겨지는 무언가를 잡을지. 나는 항상 삶을 영위하는 쪽을 취했던 거 같다. 아무래도 삶을 희생해서 얻을 수 있다고 여겨지는 가치들은 불투명하게 느껴지니 선명해 보이는 쪽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고 할까.
간절히 꿈꿔서 성취하는 일도 있겠지만 우연히 길을 따라오다가 그것이 자신의 인생이라고 인정하는 일도 있다. 연기란 당신에게 어느 쪽일까?
연기라는 것이 간절했던 적도 있었지만 처음부터는 아니었다. 사실 집안 사정이 좋은 편이 아니라서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절에 거쳤던 일 중 하나였을 뿐이다. 그런데 조금 다른 일이더라. 다른 분야엔 만점이란 기준이 있는 것 같은데 이 바닥의 기준은 좀 더 개인적이라고 할까. 모두가 같은 라인에서 경쟁하는 게 아니라 저마다 다른 방향으로 뛴다는 느낌. 그래서 파고 들었다. 그러다가 어쩌면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게 연기가 아닐까 생각하게 됐지.
그 뒤론 절박함이 생기지 않던가.
연기가 1순위일 순 있어도 0순위까진 아니었던 것 같다. 0순위라고 할만한 건 좀 더 궁극적이어야 할 것 같아서. 그래서 연기를 하면서도 매번 이걸 하는 의의가 뭔지, 내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게 무엇인지 계속 생각했다.
혹시 ‘변했다’는 말 들어본 적 있나?
몇 번 있다. 그런데 상황에 따라서 사람이 변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내가 미쳐가고 있다는 게 느껴질 땐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하는 거지.
최근에 동명이인의 인물이 일으킨 불미스런 사건 때문에 이름이 언급됐다. 실제로 연락도 많이 받았을 거 같다.
전화를 많이 받았다. “두부 사 들고 면회 갈게”라는 문자도 받았고(웃음).
새삼스레 흔치 않은 이름이라고 생각했었다. 영어 잘하냐는 얘기도 많이 듣지 않았나?
안 그래도 (정)재영 선배가 <열한시> 제작발표회장에서 “다니엘이라서 영어를 잘할 줄 알았는데 영어를 못한다”고 폭로했다(웃음).
최다니엘이란 이름은 본명인가?
맞다.
부모님께서 믿는 종교 영향이었을까?
아니다.
그런데 왜 다니엘이었을까.
어머니께서 형을 낳을 때 건강이 많이 안 좋아지셔서 아이를 더 갖지 않으려고 하셨다. 아버지는 많이 낳고 싶어하셨지만 어머니 건강이 안 좋으시니 정관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걸 뚫고 내가 나온 거다(웃음). 그래서 하늘이 주신 자식이라며 성경책에서 찾아서 이름을 지어주셨다. 심지어 제우스도 생각하셨다고 들었다(웃음).
아찔하다.
제우스가 됐으면 나이트에서 일하긴 ‘딱’이었겠지(웃음).
최근에 <최다니엘의 팝스 팝스>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됐다. 신기하게도 영화 제목처럼 오전 11시에 시작하더라.
나도 신기했다. 사실 촬영한지 오래됐고 개봉이 확정되기 전이었으니까. 영화 제목이 <열한시>로 결정된 것도 나중에 포스터 촬영하면서 들었다.
원래 새벽 3시에 진행하는 라디오를 맡고 있었는데.
내가 진행했던 프로그램의 전 타임의 DJ인 나얼 형이 자신이 가을 개편에서 잘릴 거 같다고 하길래 ‘괜찮을 거라고’ 위로했는데 내가 잘렸다(웃음)! 그런데 동시에 오전 프로그램 DJ가 공석이 되면서 담당 PD님이 같이 하자고 불렀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오전 11시였던 거지.
라디오 DJ에 특별한 매력을 느끼나?
사실 사람들은 내가 맡은 캐릭터와 마주하기 때문에 인간 최다니엘은 잘 모를 거다. 그런 면에서 캐릭터가 아닌 사람으로서 사람들과 소통한다는 건 굉장히 매력적이다. 게다가 내 얘기를 할 수 있다는 것도.
특별히 갖고 싶은 능력이 있다면?
순간이동.
이유는?
지각하지 않을 거 같아서 좋겠다 싶었는데 영화 <점퍼>를 보니까 세계 어디든 마음대로 갈 수 있으니 부럽더라. 은행도 털고(웃음).
위험한 사람이네(웃음).
그러니까 절대 그런 능력을 가져선 안 된다(웃음). 남들 앞에선 위선적으로 행동할 수 있겠지만 알맹이까지 온전히 선한 사람이 될 자신은 없다. 그런데 그런 능력을 갖는다는 게 좋은 일 같진 않다. 특별한 걸 꿈꿀 수는 있지만 그 꿈이 현실이 되는 순간 내가 꿈꾸던 삶이 펼쳐질지는 모르는 일이니까.
<열한시>에서 공학박사 역할을 맡았는데 의사나 선생님 같은 지적인 분야의 캐릭터를 연기하기도 했다. 공부는 잘하는 편이었나?
혹시 수능 수리영역에서 5점 맞아본 적 있나?
수리영역이 80점 만점일 텐데.
다 풀었는데 5점을 맞았다. 시간이 정말 많이 남았었지(웃음). 나중에 보니까 3번으로 다 찍어도 12점은 맞았더라.
공부를 못한 게 아니라 안 했네.
필요를 못 느꼈다. 국영수부터 음악, 미술, 체육, 이렇게 다양한 메뉴판을 제시하면서 너한테 맞는 입맛이 무엇인지 알 기회를 주는 건 좋은데 사실 그게 아니잖아. 가두리 양식 같다고 할까? 사람들을 공장의 로봇처럼 획일화시키는?
바다로 나가고 싶었나 보군.
나는 연어인데 왜 나를 꽁치로 만드느냐(웃음)!
자기 기준이 확실하거나 주장이 또렷해 보인다. 보통 그런 사람들이 리더 역할을 도맡더라.
둘 중 하나지. 리더가 되거나 왕따가 되거나(웃음)! 그런데 예전엔 쑥스러움이 많은 사람이었다.
내성적이었단 말인가?
이름부터 네 글자라서 튈 수 밖에 없는데 눈에 띄는 게 이래저래 부담스럽더라. 내가 원하는 부분에 대한 기준은 확고했지만 대장이 되고 싶진 않았던 것 같다. 그저 주어진 환경에서 내가 하고 싶은 걸 찾는 편이었지. 그런데 어쩌다 보니 이런 일을 하게 됐네. 신기하게도.
연기하는 캐릭터로부터 영향을 받기도 하나?
사실 아닌 줄 알았는데 지나고 보니까 많이 받았더라. 그래서 카메라 앞에 있을 때와 카메라 밖에 있을 때 차이를 많이 두려고 한다. 촬영하지 않을 땐 평소보다 더 익살스럽게 장난을 치기도 하고.
효과가 있었나?
점심 시간이나 쉬는 날에도 일 생각할 때 있지 않나? 항상 작품이 끝나기 전엔 어쩔 수 없이 생각하게 된다. 아무리 캐릭터를 덜어내려고, 거리를 두려고 해도 내 생각은 이미 캐릭터에게 가있는 거다. 그 생각으로 꽉 차있는 거다. 그런데 육체적으로도 캐릭터에 적응해버리면 정말 헤어나오기 힘들더라. 그래서 최대한 거리를 두려고 한다. 그런데 거리를 두려고 해도 완벽한 거리감이 생길 순 없다. 예를 들면 카드를 치는데 내가 ‘아봉출’인거다.
아봉출이 뭔가?
처음부터 에이스 세 개가 손에 딱 들어온 거(웃음). 손에 쥔 에이스 세 개에 빠져서 남이 스트레이트를 완성하는지 플러쉬를 노리는지 모르고 무조건 풀하우스나 포커가 되길 기다리는 거지. 그러니까 전체 판을 못보고 내가 쥔 패만 보는 거다. 내 캐릭터로부터 빠져 나와야 하는 것도 그래야 작품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남의 대사를 듣지 않고 내 대사만 치면 대화가 아니라 독백이 되는 거니까.
개인적인 사정으로 하차하게 된 김무열 대신 <열한시>에 출연하게 됐다.
원래 처음부터 나한테 왔던 작품이었다. 다만 좀 쉬고 싶어서 사양했고 그게 김무열 씨한테 갔다가 다시 내게 돌아왔다. 내게 두 번이나 온 작품이고 시간관계상 꼭 해주길 바라는 느낌이 간절해서 다시 거절할 순 없었다. 그런데 정재영 선배는 내가 하지 않을 줄 알았다고 하더라. 대개는 그렇게 되면 남이 버린 걸 다시 주워서 한다고 생각에 잘 안 한다고 하더라.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돌아다니면서 닳는다던가, 헌 대본이 되는 것도 아니고, 맞는 사람을 찾아가기 마련이지 않나. 중요한 건 내가 그 역할을 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지, 내가 그 역할을 한다는 게 어떻게 보일까가 아니니까. 그런 생각을 털어버리면 가벼워진다.
<시라노; 연애조작단>을 연출한 김현석 감독과 두 번째 작업이다. 한 감독과 두 번 작업해본 것도 처음이다.
그게 선택의 이유이기도 하다. 대본을 다시 받은지 일주일만에 촬영에 들어가서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지만 이건 나 혼자 하는 게 아니니까. 재영 선배도 믿고, 옥빈이도 믿고, 감독님도 믿고 가보자고 생각했다. 사실 어느 정도 준비된 상태로 작품에 들어가는 걸 선호하는 편이라 시간이 필요한 편인데 그걸 깨보고 싶었다. 그 전까진 나를 믿고, 사람보단 글을 믿고 작품에 들어갔다면 이번엔 내가 벼랑 끝에 서있다고 해도 내가 잡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믿으며 간 셈이지.
결과가 궁금하겠다.
벌써부터 조마조마하다! 사람을 믿고 갔다고 하지만 결국 그런 두려움을 극복하는 나와의 싸움이 제일 큰 관건이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매번 진 거 같다(웃음). 아직 영화를 보지 못했지만 이대로 개봉 안 했으면 좋겠다 싶기도 하고(웃음).
만약 영화가 정말 잘 나오면?
이 영광을 모두 주님께(웃음).
(ELLE KOREA 12월호 NO.254 'ELLE int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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