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진엔 스토리텔링이 담겨있다. 시퀀스를, 씬을, 내러티브를, 스토리텔링을 예상하게 만드는 훌륭한 프레임이 된다. 그리고 사진을 찍다 보면 언젠가 알게 된다. 인물 사진이 정말 어렵다는 것을. 인물 사진이 어렵다는 건 인물과의 소통이 필요한 까닭이다. 어떤 풍경을 배려하는 완벽한 구도를 찾는다는 것과 조금 다른 차원의 재능이나 경험치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색다른 프레임을 연출하거나 뷰파인더 너머의 공간을 발견하는 것과 다른 차원의 자질이 필요하다.

 

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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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유럽의 사실주의 화가들은 화폭에 현실을 옮겨 담고자 했다. 극사실주의적인 붓터치로 실사와 그림 간의 피아를 좁히고자 했다. 선명한 명암 속에서 드러나는 사물의 재질이 필사되듯 채워졌다. 크리스트교의 엄숙주의가 지배한 중세 바로크 미술은 우아함과 장엄함의 극치다.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눈이 호강하고 있는 것만 같다. 기계적인 인상도 느껴진다. 작은 포도알맹이에 맺힌 투명한 물기까지 화폭에 그려낸 사실주의적 색채감은 경외를 넘어 경악할 지경이다.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결과론적인 접근이다. 그 실재적인 색감을 구현하기 위한 끊임없는 실패의 경험을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노력의 산물을 결코 간과할 순 없다. 하지만 중세 바로크 미술의 그림들은 아름다운 반면 떠오르지 않는다. 한 폭의 그림마다 경이로운 기교를 보여주지만 결과적으로 모든 것들이 그러하여 어느 하나가 잡히지 않는다.

 

서양미술거장전-렘브란트를 만나다란 타이틀은 무색한 일이다. 렘브란트가 유화뿐만 아니라 에칭으로도 유명하다지만 실상 유화 한 점뿐인 렘브란트 전시회란 에칭으로 구색을 맞춘다 한들 어딘가 석연찮은 게 사실이니까. 물론 그 밖에도 루벤스와 반다이크, 푸생, 브뤼헐, 부셰 등,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의 그림이 몇 점 자리잡고 있지만 그저 구색을 맞추는 느낌이다. 서양미술거장전이란 거창한 타이틀은 무색하지만 어쨌든 화려하고 우아한 중세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묘한 감흥이 생김은 부정할 수 없다. 완벽하고 섬세한 디테일이 가득한 사실주의적 터치과 우아하고 장엄한 신 고전주의적 감성을 지켜본다는 건 실로 기이한 낭만임에 틀림없다. 호화스럽되 우아하며 예민하지만 섬세하다. 르네상스의 성취를 후퇴시킨 바로크 미술의 걸작들은 암흑 시대 속에서도 나름의 고민을 품었다. 고상함 속에 영험을 그려 넣기 위해서, 분명 그들은 노력했을 것이다. 물러서는 와중에도 성취는 발견된다. 바로크 시대는 분명 성취를 위한 퇴보의 시대였다.

 

내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그림은 프랑수아 부셰의 헤라클레스와 옴팔레. 관능적인 에로티시즘 사이로 매혹적인 우아함이 깃든다. 격정적인 낭만 속에서 고상한 품위가 유지된다. 실로 사랑하고 싶어지는 그림이다. 헤라클레스와 옴팔레의 서사를 알고 본다면 어딘가 서글퍼지겠지만 적어도 그림 너머의 순간만큼은 황홀하다. 풍만한 육체 속에 낭만이 깃들고 입을 맞춘 찰나는 화폭에 담겨 영원을 누빈다. 영원한 시간, 영원 하고픈 시간. 관능과 순수 사이에 놓인 투명한 매혹이 쉽사리 잊히지 않았다.

 

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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