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3일에 서울시립미술관을 찾았다. <보이지 않는 사람들 Invisible People>이란 전시를 보기 위해서였다. 유엔난민협회와 제일기획이 공동으로 기획한 전시로서 개최된 지 2주 정도가 지난 시점이었다.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사람들’이란 전세계의 난민들을 의미한다. 난민들은 고국을 잃어버린 사람들이다. 전쟁으로 인해서, 종교적인 문제로 인해서, 인종 학대로 인해서 자신의 나라를 잃었거나 등져야만 했던 이들을 우린 난민이라고 부른다. 지난해 UN의 통계 발표에 따르면 전세계적으로 난민의 수가 약 4천5백2십만 명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4.1초당 1명의 난민이 발생한다고 한다. 무시할 수 없는 숫자다.
3층에 있는 전시장에 들어서서 볼 수 있는 건 전시장 벽을 둘러싼 영상이다. 벽에 걸린 한 LCD 모니터에선 난민들에 대한 사연과 난민에 대한 시민들의 생각을 담은 짤막한 영상을 재차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모니터에선 무언가에 시선을 고정시킨 영상이 중계되고 있었다. 미술관 안팎에 놓인 카메라를 통해서 중계되는 실시간 영상이 공통적으로 비추는 건 난민들이었다. 물론 실제 난민이 아니다. 전시를 기획한 제일기획의 김홍탁 마스터의 말에 따르면 이 모든 미니어처는 아프리카의 난민촌에서 만난 난민들을 3D 스캔한 뒤 3D 프린터로 제작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실제 난민의 미니어처는 전시장 곳곳을 비롯해서 미술관 안팎의 사소한 풍경 속에 자리하고 있다. 모니터 너머에선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머무는 풍경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전시장 곳곳엔 미니어처들이 배치돼있고, 전시 카탈로그엔 전시장 지도로 이 미니어처들이 자리하는 공간을 소개하고 있었다. 그리고 미니어처들의 주변엔 모델이 된 난민의 이름과 QR코드가 있는데 이 QR코드를 통해서 스마트폰으로 그들에 대한 직접적인 인터뷰 영상을 볼 수 있다. 전시장 중앙에 자리한 기둥의 터치스크린 모니터를 통해서 응원의 메세지도 전달할 수 있다. 인터랙티브한 아이디어와 의미 있는 메시지를 결합한 기획으로서 흥미를 제시한다. 다만 인터뷰 영상에 좀 더 심도 있는 내용을 담을 수 있었다면 보다 진한 의미를 전할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도 남는다. 김홍탁 마스터는 실질적으로 미니어처를 접근성이 좋은 공간에 배치하고 싶기도 했지만 개당 30만원 상당인 미니어처의 훼손 가능성을 고려했을 때 이런 방향을 모색하는 것이 불가능했다는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전시장의 좁은 면적 또한 관객의 흥미를 휘발시킬 가능성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좋은 아이디어를 통해서 좋은 시도를 해본다는 점만으로도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가치 있는 전시라고 생각한다. 예산이라던가, 여러 가지 현실적인 한계를 아이디어로서 돌파구를 찾아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최소한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이 될 수 있다는 여지라도 열어줄 수 있다면 성공적인 전시가 아닐까. 원래 3월 2일에 종료될 예정이었던 전시는 3월 30일까지 계속된다. 참고로 관람료는 무료다. 그저 찾아가기만 하면 보인다.
광고는 당신의 지갑을 노려 왔다. 그것이 당신을 멋지게 만들 것이라고 현혹한다. 요즘의 광고는 당신은 멋진 사람이라고 부추긴다. 그러니 지갑을 열고 세상을 구하라 말한다.
칸국제광고제는 통상적으로 6월 17일이 포함된 일주일 동안 열린다. 59회를 맞이한 올해에는 17일에 개최됐다. 제일기획은 12개 트로피를 손에 쥐었다. QR코드를 해시계의 원리에 접목시킨 이마트 광고와 시각장애인들이 촉각으로 사진을 찍는 시각장애인들을 등장시킨 삼성 인사이트 캠페인 광고를 통해서 3개의 금상을 얻었다. 지난해에는 QR코드를 이용한 지하철 홈플러스 가상 매장 광고로 칸 그랑프리를 수상한 바 있다. 제일기획 수석 크리에이티브 디렉터(ECD) 김홍탁 마스터가 그 현장에 있었다.
그는 1997년, 칸국제광고제를 처음 목격했다. 현재 15개에 달하는 시상 부문이 필름과 프린트만으로 양분된 마지막 해였다. 공식명칭이 바뀐 건 작년부터다. 본래 ‘애드버타이징 페스티벌(Advertising Festival)’이었던 것이 ‘페스티벌 오브 크리에이티비티(Festival of Creativity)’로 변경됐다. “패러다임이 바뀐 거다. TV나 인쇄 매체 같은 트래디셔널 미디어에서 상품 정보를 일방적으로 전하던 구시대 광고(advertising)들과 달리 다양한 루트가 개발되고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강해진 광고들이 집행된다. 재미와 감동을 함께 추구하는 광고 형식이 늘어났다.” 김홍탁의 말이다. 지난 2년간 제일기획에 그랑프리와 금상을 안겨준 QR코드는 그 단적인 예다. 정보를 주입 당하던 아날로그 시대의 대중들과 달리 오늘날 디지털 시대의 대중들은 실시간으로 세상을 중계하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서 쌍방향으로 정보를 전파하고 공유한다. 보다 적극적으로 세상에 개입한다. 상호간의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해질수록 정보적인 교류를 넘어 감정적인 교감이 이뤄진다. 감성적인 접근법이 유효해진다.
“단순히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변화가 아닌 전반적인 생태계의 변화다. 디지털 생태계의 광고는 기본적으로 항상 주의를 끌고, 소비자들의 참여를 유도해서 경험하게 만든 뒤, 제품에 대해서 이야기하게 만든다. 그만큼 다양한 커뮤니케이션이 발생한다.” 디지털 시대의 광고는 더 이상 당신에게 제품을 브리핑하지 않는다. 대신 그 제품이 추구하는 방향에 당신이 동참하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를 어필한다. 멋진 제품을 사라고 꾀는 대신, 멋진 구매자가 되라고 부추긴다. 올해 칸국제광고제 동상 수상작인 제일기획의 미네 워터 캠페인도 그렇다. 미네 워터의 수질보다도 미네 워터의 더블 바코드가 어떻게 아프리카의 어린이들을 도울 수 있는지 호소한다. 어차피 물을 사 마실 거라면 아프리카도 돕자는 거다. “크리에이티브 쉐어드 밸류(Creative Shared Value), 사람들을 끌어들여서 어떤 가치를 창출할 것인가가 오늘날 사회 공헌에 대한 핵심이다.”
세상은 변하고 있다. 광고도 변하고 있다. 사람이 변하기 때문이다. 광고가 멋진 물건을 말하는 대신, 당신이 멋진 사람이라 부추기는 것도 그래서다. 그 똑똑한 소비를 즐겨보자. 창의적인 광고로 당신의 지갑을 열어보라고 권해보자. 당신은 가치 있는 사람이다. 그러니 보다 높은 가치를 제시해보라고 행동하라. 보다 훌륭한 아이디어만 제시해준다면 세상을 구하는데 동참하고 싶다고 말해달라. 창의적인 광고가 지혜로운 구매를 이끌고 세상을 진보시킨다. 그 중심에 당신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