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지환은 원래 알고 있었다. 치킨은 맥주와 먹어야 제 맛임을. 하지만 ‘치맥’ 맛은 달랐다. 서른 여섯 살이 돼서야, 연기 생활 10년을 채우고야 ‘치맥’ 맛을 알았다.
"내 연기를 즐겁게 보긴 어렵다. 눈으로는 모니터를 보면서도 반응을 감지하려고 더듬이를 뽑고 있거든.” <경성 스캔들>의 선우완이나 <쾌도 홍길동>의 홍길동처럼 넉살 좋고 유쾌한, 군살 없는 감정의 소유자들은 강지환의 아바타가 아니다. 그가 연기한 캐릭터의 환영일 뿐. 강지환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진지하고 고민이 많은 사람이다. ‘대사가 있건 없건 대본은 꼭 지니고 있어야 되고, 잘 때는 머리맡에 두고 있어야 하는’ 강지환은 ‘항상 아이디어를 내야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자신에 대해서 ‘스스로를 혹사시킨다는 느낌’을 받으면서도 결코 스스로 편안해질 수 없는 남자다. 강지환은 연기를 마치고 나서도 항상 작품 주변을 서성였다. 드라마에 출연할 때면 잠에서 깨자마자 일종의 의식처럼 컴퓨터를 켰다. TNS사이트에 들어가서 시청률을 파악하고, 시청자 게시판과 팬카페의 동향을 살피는 건 자연스런 ‘일과’가 된지 오래다. “작품을 끝내면 후련해야 되는데 스코어가 잘 안 나오면 내 탓인가 싶다. 한두 살 먹으며 변하긴 하지만 아직까지 딱 떨쳐버리기 힘들다. 그런 성격을 가진 배우를 보면 그저 부럽다.”
<영화는 영화다>를 하고 나니 ‘까칠할 것 같다’는 말을, <7급 공무원>을 하고 나니 ‘빈틈이 많아 보인다는 말을 들었다. 배우는 캐릭터의 탈을 쓰고 언제나 오해 받는다. 오해가 완벽할수록 캐릭터에 대한 완성도를 역설적으로 증명하는 셈이다. 허나 그 오해들은 때때로 배우의 쓸모를 철저하게 가둬버린다. 로맨틱 코미디 혹은 약간의 액션이 가미된 또 다른 로맨틱 코미디, 강지환의 필모그래피 대부분을 가둔 장르의 창살. ‘처음에 <차형사>가 달갑지 않았’던 것도 그런 까닭이었다. 어느덧 나이 서른 여섯의 10년차 배우가 됐는데, ‘언제까지 귀엽고 사랑스러운 로맨틱 코미디 배우’로 한정되는 것이 고민스러웠던 것. 하지만 ‘작품이라는 게 운때가 있고, 내 작품이라 들어오는 작품은 따로 있는 법’이었다.
강지환은 <차형사>의 대본을 처음 보고 ‘대사와 신이 살아있다’고 느꼈고, ‘최소한 망하지는 않겠구나’ 판단했다. 뚱뚱하고 더러운 잉여 형사가 말끔한 몸짱 모델로 거듭나는 과정은 흥행 여부와 상관없이 ‘몸은 남겠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이제 말한다. “직업이었으니까 했지. 사람으로서 할 짓이 아니었다.” 12.5kg, 차형사가 되기 위해서 강지환이 더하고 덜어야 했던 무게는 명확했다. 하지만 증량과 감량 사이에서 강지환이 체감해야 했던 고통은 측정할 수 없는 것이었다. 잘 빼는 것만큼이나 잘 찌우는 것이 중요했고, 단순히 빼는 것이 아니라 탄탄하게 다듬는 것이었기 탓이다. ‘닭가슴살을 갈아 마시며’ 체중을 늘리는 건 차라리 애교였다. 촬영 스케줄의 7~80%를 소화하는 롤타이틀의 임무를 소화하는 가운데서도 정해진 기간 안에 살인적인 감량에 돌입해야 한다는 건 자기 학대에 가까웠다. 가장 힘든 건 ‘스트레스로 예민해진 자신의 눈치를 보는 현장의 분위기로 인해서 죄책감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물론 강지환은 ‘더럽고 뚱뚱하고 비호감인 차형사를 밉지 않고 사랑스러운 캐릭터로 만들어내는 작업’을 적극적으로 이행했다.
‘노숙자들을 만나기 위해서 새벽에 영등포나 서울역을 찾고, 풍물시장이나 동대문에서 직접 의상을 구해 오는’ 고민을 마다하지 않던 강지환에게 있어서 최대의 고민은 ‘뚱뚱한 무대포 강력반 형사’를 완성할 핵심적인 설정이었다. 그 고민을 단박에 덜어준 이가 나타났으니 그가 바로 ‘파리지앵 정재형’. “그 분의 단발머리가 나한테 너무나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래서 사실 형사가 장발이라는 게 현실성이 떨어지는 걸 알면서도 그 유혹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결국 단발머리는 차형사의 트레이드마크로 얹혔다. <7급 공무원>으로 함께 작업했던 ‘신태라 감독과의 신뢰’가 돈독한 덕분이기도 했다. 신태라 감독은 ‘혼자 쥐어짜낸 뒤 나타나서 여러 버전의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강지환의 연기스타일을 잘 알고 있었기에 기다림은 어렵지 않았다. 심지어 <쾌도 홍길동>으로 한차례 호흡을 맞춘 바 있는 성유리를 상대배우로 추천하고 직접 설득한 것도 강지환이었다. 본래 적극적인 자세로 작품에 참여하는 강지환이지만 <차형사>는 분명 그에게 특별할 만한 이유가 있다.
“일을 접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고, 정말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전국 400만 관객을 동원한 <7급 공무원>으로 경력의 정점에 오른 강지환은 하루 아침에 밑바닥으로 끌려 내려갔다. 전소속사와의 계약 분쟁에 휘말린 강지환은 만신창이가 되어 1년 여의 시간을 견뎌야 했다. ‘배우’ 혹은 ‘공인’이라는 미명하에 ‘모든 것이 기사화’되고, ‘소송, 법정과 같은 단어로 배우의 이미지가 오염되는 상황’보다도 힘겨운 건 ‘외로움’이었다. “오랫동안 활동하면서 나름 자리잡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모두가 등돌리니 주위에 아무도 없다는 걸 인정하기가 가장 힘들었다.” 좌절감만큼이나 갈망을 억누르는 것도 힘겨웠다. ‘묵묵히 때를 기다리던’ 그는 “업계 관계자들을 만나서 인맥을 쌓는 것보다 내 일을 확실하게 해내는 것이 배우로서 진짜 힘을 기르는 일임을 깨달았다.” 현재 강지환이 수많은 예능 출연 제의를 뿌리치는 것도 ‘연기적으로 정당한 인정을 받고 싶다’는 욕심 때문이다. 단순히 ‘작품을 성공시키겠다는 맹목적인 이유’로 영화와 무관한 입담을 과시하는 건 그에게 아물지 않은 상처를 헤집는 일과 같다.
“조급함이 앞서던 예전과 달라졌다. 내가 노력해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있지만 내가 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걸 인정할 수 있게 됐다.” 그는 이제 ‘운명을 조금 믿게 됐다’고 한다. ‘내 작품은 따로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는 바꿔 말하자면 스스로 선택한 작품을 좀 더 믿게 됐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연기 10년차를 맞이하는 해에 만난 <차형사>는 그에게 ‘치맥’ 같은 영화다. 한때 해외의 고급 맥주가 진정한 ‘맛’이라고 믿었던 그는 이제 동네 호프집의 물탄 생맥주를 들이키는 일상의 ‘멋’을 알게 됐다. 연기 경력 10년 만에 찾은 최고의 선물, 그건 바로 ‘최선을 다한 만큼 어디 내놔도 창피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믿는’ 여유라고 강지환은 말했다. 심각하고 진지한 특유의 그 표정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