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 좀 입을 줄 아는 감독 웨스 앤더슨이 패션필름을 촬영했다. 새삼스럽게도 이제서야 말이다.
패션 필름은 단순히 브랜드의 제품을 소개하기 위해 준비한 움직이는 카탈로그가 아니다. 점차 영화 고유의 영역에 접근하고 있다. 스토리텔링을 기반으로 브랜드의 영혼을 고취시킨다. 유능한 영화감독들이 패션필름의 연출자로 선정된다. 게다가 스타일리시한 감독에게 연출을 맡긴다는 건 너무나 당연한 수순이다. 그래서 웨스 앤더슨도 프라다를 찍었다.
웨스 앤더슨이 로만 코폴라와 함께 앵글에 담아낸 첫 번째 ‘프라다’는 지난 해에 새롭게 출시된 향수 ‘캔디 로(Candy L’eau)’를 통해서였다. 3부작으로 구성된 이 광고 영상은 레아 세이두가 연기하는 귀여운 여인 캔디를 사이에 두고 티격태격하는 두 남자의 삼각 관계를 그린다. 커플과의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싶은 친구의 속내를 천진난만하게 뒤집어 놓는 남자로 인해서 벌어지는 우여곡절을 다룬 1부와 그로부터 일주일 뒤 또 다시 한번 한 여인을 사이에 두고 티격태격하는 두 남자의 모습을 그린 2부, 그리고 한 달 뒤로 점프하는 3부까지의 과정은 프랑수아 트뤼포의 <줄 앤 짐>을 떠올리게 만드는데 두 남자의 이름 또한 줄리우스(Julius)와 진(Gene)이란 점은 우연이 아닌 것 같다. 파리 특유의 로맨틱한 분위기 속에서도 귀엽고 발랄하게 다투고 어우러지는 삼각관계 속의 인물들을 중심에 둔 웨스 앤더슨 특유의 카메라 이동과 화려하면서도 아기자기한 디테일을 뽐내는 다양한 소품들로 채워진 공간의 미장센과 파스텔톤의 색감은 상큼한 레아 세이두의 표정만큼이나 깜찍하고 발랄하다.
2008년부터 아트, 건축, 영화 등의 예술분야를 조명하는 ‘프라다 클래식’을 기획해온 미우치아 프라다는 웨스 앤더슨과 함께 완성한 세 번째 프로젝트인 단편 영화 <카스텔로 카발칸티>를 올해 공개했다. 웨스 앤더슨의 페르소나 중 한 명인 제이슨 슈왈츠먼이 출연하는 이 작품은 1955년 9월의 어느 날, 레이싱 경기 중에 실수로 석상을 들이받고 ‘카스텔로 카발칸티(Castello Cavalcanti)라는 이름의 작은 마을에 체류하게 된 한 남자를 통해서 들여다본 풍경에 가깝다. 로마의 세트장에서 촬영된 이 작품은 생전 처음 당도한 마을에서 운명적인 이끌림을 느끼는 인물로부터 전통적인 가치와 고전적인 모험에 대한 향수를 끌어낸다. 소소한 분위기와 선명한 색감이 공존하는 가운데 주인공의 레이싱 재킷 뒷면으로부터 무신경하게 드러나는 ‘프라다’의 로고를 제외하면 브랜드의 흔적을 찾기 힘들다는 점도 되레 흥미롭다. 인물을 무게 중심에 두고 좌우로 움직이는 웨스 앤더슨 특유의 카메라 이동은 여전하지만 촬영 감독을 맡은 다리우스 콘지의 심도 있는 영상이 작품에 깊이를 더하고 있다.
한편 웨스 앤더슨은 광고 연출을 통해서도 자신의 장기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특히 프랑스에서 로만 코폴라와 함께 연출한 맥주 브랜드 스텔라 아르투아 광고는 웨스 앤더슨의 공간 활용과 유머 감각을 엿볼 수 있는 결과물이다. 애인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호기심으로 테이블 위의 버튼을 만지던 여자가 연극 무대 장치처럼 고안된 방 안에서 일련의 소동을 겪는 과정은 웨스 앤더슨의 장기인 무대 장치와도 같은 소품 활용 방식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리고 뒤늦게 나타나 사라진 여자보다도 스텔라 맥주 한잔에 시선을 고정시키며 미소를 짓는 남자는 웨스 앤더슨의 세계관에 즐비했던 소년들을 닮았다. 영화 촬영 현장을 재현하며 웨스 앤더슨 본인이 직접 출연하고 자연스럽게 연기까지 해내는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광고와 브래드 피트의 익살맞은 행동이 두드러진 소프트뱅크 광고, 세트를 활용한 공간 이동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AT&T 광고 시리즈 또한 웨스 앤더슨의 엑기스나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