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돌아 자정으로 돌아온 서울에서 이하이를
만났다. 빛이 사라진 시각에도 여전히 빛을 밝히는 도시에서 반짝이는 눈으로 마주한 이하이는 끝까지 반짝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신데렐라에서 대체 불가능한
보컬리스트로 성장하고 있는 이하이의 두 번째 정규앨범 <SEOULITE>가 지난 달에 이어
두 번째 ‘서울의 빛’을 공개한다. 오랜 기다림 속에서 빛을 발한 첫 번째 넘버들이 조금 무겁게 느껴졌다던 그녀는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자신이
오를 무대를 바라보고 있다. 이하이가 공개하는 두 번째 ‘서울의
빛’에 관한 대화는 하루가 허물어지고 또 다른 하루가 건축되기 시작하는 자정에서야 이뤄졌다. 12시 정각에 정확히, 하지만 유리구두를 벗어놓고 사라지는 신데렐라는
없었다. 대신 이하이는 밤이 좋다고 했다.
늦은
시간에 인터뷰를 하게 됐네요. 컨디션은 괜찮나요?
감기에 걸려서 좋다고 말하긴 힘든데 그래도 낮보단 밤이 좋아요.
야행성이군요.
네. 아무래도 낮엔
몸이 덜 풀린 기분인데 밤에는 다 풀린 느낌이라.
다행이네요. 그런데 생각보단 잘 웃네요. 방송에선 표정 변화가 별로 없어서 차가워
보였거든요. 저만 오해하는 건가요?
많이 오해해요. 그런데
이렇게 이야기하면 금방 알죠. 완전히 푼수라고(웃음). 원래 말이 많은 편은 아닌데 일을 시작하면서 조금씩 바뀐 거 같아요. 최소한
오해 받지 않도록 노력하다 보니 자연스레 이리 됐어요.
지난 3월에 하프앨범 <SEOULITE>로 3년 만에 복귀했는데 무대에 대한 갈증은 좀 풀렸을까요?
완전히 해소되진 않았어요. 아무래도
타이틀곡 ‘한숨’이 차분한 곡이라 마음껏 놀 수 있는 무대는
아니었거든요. 하지만 이번엔 좀 더 즐길 수 있을 거 같아요.
댄서블한
노래를 좋아하나요?
춤출 수 있는 노래라기 보단 어깨가 들썩이는 정도? 그런 노래를 좋아하고 잘 부를 수 있는 거 같아요. 이번에 공개될
타이틀곡 ‘My Star’의 안무도 그렇게 짰어요. 자연스럽게
흥에 겨워 나오는 움직임처럼.
타이틀곡인
‘마이 스타’보다 처음 작곡, 작사에 참여한 ‘스쳐간다’에
더 큰 애착이 가지 않나요?
‘마이 스타’는 맞춤옷처럼
편한 느낌이라면 ‘스쳐간다’는 추억이 담긴 일기장을 보는
느낌이죠. 부족한 면도 보여 쑥스럽기도 하고. 그건 열여덟
살에 작곡한 곡이니까요.
열여덟
살이요?
그 당시에 솔로로 활동하다 보니 혼자인 시간도 많고 사람들이 다
스쳐간다고 느껴져서 외로웠거든요. 그래서 곡을 쓴 뒤 양현석 사장님께 들려드리고 싶어서 메일을 보냈어요. 그런데 이번에 발표하자고 하실 줄은 몰랐죠. 처음 쓴 곡이라 미숙한
점도 보이지만 열여덟 살에 느낀 감정을 그대로 전해주고 싶어서 일부로 고치진 않았어요. 다만 마스터링을
하니까 나머지 다섯 곡과 목소리 차이가 너무 나서 보컬은 다시 녹음했죠.
곡
작업에 대한 욕심이 있나 봐요.
아무래도 직접 곡을 쓰는 게 앨범을 빨리 낼 수 있는 방법이니까요(웃음). 그리고 제 자신을 가장 잘 아는 건 저니까 그만큼 제게 어울리는
곡을 쓸 수 있을 거란 기대도 있고요.
피처링에
참여한 랩퍼가 많은데 직접 랩을 해볼 생각은 없어요?
사실 저 랩 잘해요(웃음). 기회가 되면 랩을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다만 랩 가사를
쓰는 연습이 필요하겠죠. 누가 써준 것보단 자기 생각을 담은 랩이 멋있으니까. 가사에 센스도 있어야 하고, 제게 맞는 발음도 알아야죠.
언젠가 <쇼미더머니>에?
그건 리스크가 너무 커서 안돼요(웃음).
어쨌든
지난 3월에 비하면 이번 활동은 상대적으로 마음이 편할 것 같아요.
그렇죠. 그땐 3년 만이니 새로운 걸 보여주면서 기존의 기대감에도 부응해야 했다면 지금은 본래의 페이스를 찾은 느낌? 일단 인터뷰가 편한 것만 해도 그렇고.
<K팝
스타>도 4년 전 일이네요.
벌써 4년 전이지만
문득 어제 같기도 해요. 그런데 사실 <K팝 스타>에 나갈 땐 가수가 되겠다는 야심이 없었어요. 우연히 연락을
받고 나가기도 했고요.
연락이요?
종종 학교 대표로 도나 시에서 주최하는 노래 대회에 나갔는데 <K팝 스타> 작가 분께서 그걸 보셨는지 출연을 권유하는
연락이 왔어요. 솔직히 사람들이 저를 좋아하리란 생각은 못했고, 그저
어머니께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제가 뭔가 할 수 있다는 걸. 그런데
그게 시작점이 된 거죠.
그렇다면
가수라는 꿈은 언제부터 확고해졌나요?
어릴 때부터 제 안에 있긴 있었어요. 대회에서 금거북이 같은 거 받아올 때부터(웃음). 다만 내가 그런 직업을 가질 수 없을 거라 생각해서 마음을 숨긴 거 같아요.
결국 이런 생각 때문에 반항아처럼 <K팝 스타>에
나가게 됐죠. ‘싫으면 말아라’라는 마음으로. 그런데 저를 좋게 봐주니 잠재된 꿈이 열린 거 같아요.
결국 YG로 가게 됐죠.
처음엔 적응이 안됐어요.
2NE1 언니들이나 빅뱅 오빠들은 TV로만 보던 스타였는데 같은 회사에 있다니 신기했죠. 아직까지도 생각하면 신기해요. 다만 변한 게 있다면 이젠 스무살이
넘었고, 이 직업이 몸에 맞는 옷처럼 느껴진다는 거죠.
그만큼
유명해지기도 했고요.
잘 몰랐어요. 체감할
기회가 없으니까. 그런데 최근에 게릴라 공연에 참여했는데 저를 보기 위해 많은 분들이 모인 거예요. 통제가 힘들 정도였는데 그 앞에서 노래할 때 가슴이 뛰는 걸 느꼈어요.
4년
전 무대만큼 떨렸나요?
그때는 아무 생각 없이 제가 원하는 대로 했으니까 오히려 별로
떨리지 않았던 거 같아요. ‘싫으면 어쩔 수 없지’란 생각으로
막 했던 거 같아요.
지금은
어떤가요?
신경 써야 할 게 많아졌죠. 소속사에서
원하는 그림에 따라줘야 하고, 앨범을 발표하면 성적도 신경 써야 되고,
다이어트도 중요해요(웃음). 아무래도 YG는 아티스트 스스로 앨범 작업을 해내야 하는 시스템이라 더욱 책임감이 생기는 거 같아요.
그런
책임감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 같나요?
옷도 입어봐야 잘 맞는 옷을 찾는다고 하잖아요. 처음에 회사에 들어갔을 땐 어리고 아무 것도 모르는 주제에 감히 나선다고 생각할까 봐 가만히 있었는데 이젠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걸 알았어요. 내가 뭘 잘하는지 어필해야 내게 어울리는 곡을 써주니까.
가수가
돼서 행복하기도 하겠지만 감내해야 할 고충도 있겠죠.
아무 것도 안 하는 시간이 길어지는 게 힘들었던 거 같아요. 어릴 때 제가 생각한 가수의 삶은 항상 노래하며 즐거운 일만 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준비하는 시간이 더 기니까요. 그리고 무대에서의 3분으로 기억되는 만큼 그 짧은 시간을 위해 준비하는
긴 시간이 힘든 거 같아요.
그만큼
무대에서의 3분이 더욱 무겁게 느껴지진 않나요?
3년을 쉬었으니 그만큼 실력이 늘었을 거란 기대를 채워줘야 하니까요. 그걸 3분 안에 충족시켜줘야 하니까 부담이기도 하죠.
혹시
다른 직업을 갖는 걸 상상해본 적 없나요?
지금은 이거 아니면 안돼요. 더
잘할 수 있는 게 없어요(웃음).
함께
작업하고 싶은 뮤지션으로 전인권 씨를 꼽은 적이 있어요.
<스케치북>에서
‘그것만이 내 세상’이란 노래를 불렀는데 가사가 이런 내용이잖아요. 세상을 잘 모른다고 다들 그렇게 얘기하지만 나만의 세상이 있다는 내용. 제게
큰 공감이 됐어요. 그만큼 자유롭게 영혼을 노래하는 뮤지션 같아요. 그러니
함께 작업하면 영광이겠죠. 그런데 전인권 선배님께서도 인터뷰에서 같이 하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더라고요. 굉장히 멋진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대단한 분이 저와 노래하고
싶다고 말씀해주시다니. 그리고 엄마와 제가 함께 공감할 수 있는 노래를 만들었다니 정말 대단한 거죠.
.
그
나이에 전인권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부모님 덕분이죠. 어릴
때부터 잭슨 파이브를 비롯한 팝송도 많이 듣고 자랐어요. 그런 경험들 덕분에 지금의 제가 있는 거 같아요. 어머니와 함께 들으며 마음의 울림을 느꼈기 때문에 계속 듣고, 좋아하게
됐어요.
결국
가족 덕분에 자연스레 음악에 접근하게 된 셈이네요.
무엇보다 언니 덕분에 음악을 할 수 있었어요. 어릴 땐 남자 노래밖에 못 부를 정도로 저음이었는데 그걸 안 언니가 무조건 가수를 시키자고 했거든요. <K팝 스타>에 나가는 걸 반대한 부모님을 설득한 것도
언니였고요. 제가 노래를 잘하는 것도 언니 덕분이에요. 보컬
전공인 언니 노래를 지겹도록 듣다 보니 제 스타일대로 따라 부르게 됐거든요.
가족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은 셈이네요.
데뷔했을 땐 가족들에게서 부족한 점에 대한 지적을 많이 받아서
항상 서운했어요. 밖에서 지적당하는 게 일이었는데 집에서까지 이러면 어떡하나 싶었는데 스무 살이 넘고
나서 그게 사랑이라는 걸 알았어요. 항상 내 곁에 있는 사람이 가족이란 걸 알았어요.
신곡이
공개되면 방송에도 많이 나올 계획인가요?
방송활동을 많이 못한 탓에 사람들이 저란 사람을 잘 모를 거예요. 음악방송 외엔 예능도 많이 안 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많이 하려고 하고 있어요.
예능도?
말을 잘한다는 걸 알려줄 수 있는 예능을 해도 좋을 거 같아요. 워낙 말을 안 하는 모습만 보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