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돌아 자정으로 돌아온 서울에서 이하이를
만났다. 빛이 사라진 시각에도 여전히 빛을 밝히는 도시에서 반짝이는 눈으로 마주한 이하이는 끝까지 반짝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신데렐라에서 대체 불가능한
보컬리스트로 성장하고 있는 이하이의 두 번째 정규앨범 <SEOULITE>가 지난 달에 이어
두 번째 ‘서울의 빛’을 공개한다. 오랜 기다림 속에서 빛을 발한 첫 번째 넘버들이 조금 무겁게 느껴졌다던 그녀는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자신이
오를 무대를 바라보고 있다. 이하이가 공개하는 두 번째 ‘서울의
빛’에 관한 대화는 하루가 허물어지고 또 다른 하루가 건축되기 시작하는 자정에서야 이뤄졌다. 12시 정각에 정확히, 하지만 유리구두를 벗어놓고 사라지는 신데렐라는
없었다. 대신 이하이는 밤이 좋다고 했다.
늦은
시간에 인터뷰를 하게 됐네요. 컨디션은 괜찮나요?
감기에 걸려서 좋다고 말하긴 힘든데 그래도 낮보단 밤이 좋아요.
야행성이군요.
네. 아무래도 낮엔
몸이 덜 풀린 기분인데 밤에는 다 풀린 느낌이라.
다행이네요. 그런데 생각보단 잘 웃네요. 방송에선 표정 변화가 별로 없어서 차가워
보였거든요. 저만 오해하는 건가요?
많이 오해해요. 그런데
이렇게 이야기하면 금방 알죠. 완전히 푼수라고(웃음). 원래 말이 많은 편은 아닌데 일을 시작하면서 조금씩 바뀐 거 같아요. 최소한
오해 받지 않도록 노력하다 보니 자연스레 이리 됐어요.
지난 3월에 하프앨범 <SEOULITE>로 3년 만에 복귀했는데 무대에 대한 갈증은 좀 풀렸을까요?
완전히 해소되진 않았어요. 아무래도
타이틀곡 ‘한숨’이 차분한 곡이라 마음껏 놀 수 있는 무대는
아니었거든요. 하지만 이번엔 좀 더 즐길 수 있을 거 같아요.
댄서블한
노래를 좋아하나요?
춤출 수 있는 노래라기 보단 어깨가 들썩이는 정도? 그런 노래를 좋아하고 잘 부를 수 있는 거 같아요. 이번에 공개될
타이틀곡 ‘My Star’의 안무도 그렇게 짰어요. 자연스럽게
흥에 겨워 나오는 움직임처럼.
타이틀곡인
‘마이 스타’보다 처음 작곡, 작사에 참여한 ‘스쳐간다’에
더 큰 애착이 가지 않나요?
‘마이 스타’는 맞춤옷처럼
편한 느낌이라면 ‘스쳐간다’는 추억이 담긴 일기장을 보는
느낌이죠. 부족한 면도 보여 쑥스럽기도 하고. 그건 열여덟
살에 작곡한 곡이니까요.
열여덟
살이요?
그 당시에 솔로로 활동하다 보니 혼자인 시간도 많고 사람들이 다
스쳐간다고 느껴져서 외로웠거든요. 그래서 곡을 쓴 뒤 양현석 사장님께 들려드리고 싶어서 메일을 보냈어요. 그런데 이번에 발표하자고 하실 줄은 몰랐죠. 처음 쓴 곡이라 미숙한
점도 보이지만 열여덟 살에 느낀 감정을 그대로 전해주고 싶어서 일부로 고치진 않았어요. 다만 마스터링을
하니까 나머지 다섯 곡과 목소리 차이가 너무 나서 보컬은 다시 녹음했죠.
곡
작업에 대한 욕심이 있나 봐요.
아무래도 직접 곡을 쓰는 게 앨범을 빨리 낼 수 있는 방법이니까요(웃음). 그리고 제 자신을 가장 잘 아는 건 저니까 그만큼 제게 어울리는
곡을 쓸 수 있을 거란 기대도 있고요.
피처링에
참여한 랩퍼가 많은데 직접 랩을 해볼 생각은 없어요?
사실 저 랩 잘해요(웃음). 기회가 되면 랩을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다만 랩 가사를
쓰는 연습이 필요하겠죠. 누가 써준 것보단 자기 생각을 담은 랩이 멋있으니까. 가사에 센스도 있어야 하고, 제게 맞는 발음도 알아야죠.
언젠가 <쇼미더머니>에?
그건 리스크가 너무 커서 안돼요(웃음).
어쨌든
지난 3월에 비하면 이번 활동은 상대적으로 마음이 편할 것 같아요.
그렇죠. 그땐 3년 만이니 새로운 걸 보여주면서 기존의 기대감에도 부응해야 했다면 지금은 본래의 페이스를 찾은 느낌? 일단 인터뷰가 편한 것만 해도 그렇고.
<K팝
스타>도 4년 전 일이네요.
벌써 4년 전이지만
문득 어제 같기도 해요. 그런데 사실 <K팝 스타>에 나갈 땐 가수가 되겠다는 야심이 없었어요. 우연히 연락을
받고 나가기도 했고요.
연락이요?
종종 학교 대표로 도나 시에서 주최하는 노래 대회에 나갔는데 <K팝 스타> 작가 분께서 그걸 보셨는지 출연을 권유하는
연락이 왔어요. 솔직히 사람들이 저를 좋아하리란 생각은 못했고, 그저
어머니께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제가 뭔가 할 수 있다는 걸. 그런데
그게 시작점이 된 거죠.
그렇다면
가수라는 꿈은 언제부터 확고해졌나요?
어릴 때부터 제 안에 있긴 있었어요. 대회에서 금거북이 같은 거 받아올 때부터(웃음). 다만 내가 그런 직업을 가질 수 없을 거라 생각해서 마음을 숨긴 거 같아요.
결국 이런 생각 때문에 반항아처럼 <K팝 스타>에
나가게 됐죠. ‘싫으면 말아라’라는 마음으로. 그런데 저를 좋게 봐주니 잠재된 꿈이 열린 거 같아요.
결국 YG로 가게 됐죠.
처음엔 적응이 안됐어요.
2NE1 언니들이나 빅뱅 오빠들은 TV로만 보던 스타였는데 같은 회사에 있다니 신기했죠. 아직까지도 생각하면 신기해요. 다만 변한 게 있다면 이젠 스무살이
넘었고, 이 직업이 몸에 맞는 옷처럼 느껴진다는 거죠.
그만큼
유명해지기도 했고요.
잘 몰랐어요. 체감할
기회가 없으니까. 그런데 최근에 게릴라 공연에 참여했는데 저를 보기 위해 많은 분들이 모인 거예요. 통제가 힘들 정도였는데 그 앞에서 노래할 때 가슴이 뛰는 걸 느꼈어요.
4년
전 무대만큼 떨렸나요?
그때는 아무 생각 없이 제가 원하는 대로 했으니까 오히려 별로
떨리지 않았던 거 같아요. ‘싫으면 어쩔 수 없지’란 생각으로
막 했던 거 같아요.
지금은
어떤가요?
신경 써야 할 게 많아졌죠. 소속사에서
원하는 그림에 따라줘야 하고, 앨범을 발표하면 성적도 신경 써야 되고,
다이어트도 중요해요(웃음). 아무래도 YG는 아티스트 스스로 앨범 작업을 해내야 하는 시스템이라 더욱 책임감이 생기는 거 같아요.
그런
책임감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 같나요?
옷도 입어봐야 잘 맞는 옷을 찾는다고 하잖아요. 처음에 회사에 들어갔을 땐 어리고 아무 것도 모르는 주제에 감히 나선다고 생각할까 봐 가만히 있었는데 이젠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걸 알았어요. 내가 뭘 잘하는지 어필해야 내게 어울리는 곡을 써주니까.
가수가
돼서 행복하기도 하겠지만 감내해야 할 고충도 있겠죠.
아무 것도 안 하는 시간이 길어지는 게 힘들었던 거 같아요. 어릴 때 제가 생각한 가수의 삶은 항상 노래하며 즐거운 일만 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준비하는 시간이 더 기니까요. 그리고 무대에서의 3분으로 기억되는 만큼 그 짧은 시간을 위해 준비하는
긴 시간이 힘든 거 같아요.
그만큼
무대에서의 3분이 더욱 무겁게 느껴지진 않나요?
3년을 쉬었으니 그만큼 실력이 늘었을 거란 기대를 채워줘야 하니까요. 그걸 3분 안에 충족시켜줘야 하니까 부담이기도 하죠.
혹시
다른 직업을 갖는 걸 상상해본 적 없나요?
지금은 이거 아니면 안돼요. 더
잘할 수 있는 게 없어요(웃음).
함께
작업하고 싶은 뮤지션으로 전인권 씨를 꼽은 적이 있어요.
<스케치북>에서
‘그것만이 내 세상’이란 노래를 불렀는데 가사가 이런 내용이잖아요. 세상을 잘 모른다고 다들 그렇게 얘기하지만 나만의 세상이 있다는 내용. 제게
큰 공감이 됐어요. 그만큼 자유롭게 영혼을 노래하는 뮤지션 같아요. 그러니
함께 작업하면 영광이겠죠. 그런데 전인권 선배님께서도 인터뷰에서 같이 하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더라고요. 굉장히 멋진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대단한 분이 저와 노래하고
싶다고 말씀해주시다니. 그리고 엄마와 제가 함께 공감할 수 있는 노래를 만들었다니 정말 대단한 거죠.
.
그
나이에 전인권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부모님 덕분이죠. 어릴
때부터 잭슨 파이브를 비롯한 팝송도 많이 듣고 자랐어요. 그런 경험들 덕분에 지금의 제가 있는 거 같아요. 어머니와 함께 들으며 마음의 울림을 느꼈기 때문에 계속 듣고, 좋아하게
됐어요.
결국
가족 덕분에 자연스레 음악에 접근하게 된 셈이네요.
무엇보다 언니 덕분에 음악을 할 수 있었어요. 어릴 땐 남자 노래밖에 못 부를 정도로 저음이었는데 그걸 안 언니가 무조건 가수를 시키자고 했거든요. <K팝 스타>에 나가는 걸 반대한 부모님을 설득한 것도
언니였고요. 제가 노래를 잘하는 것도 언니 덕분이에요. 보컬
전공인 언니 노래를 지겹도록 듣다 보니 제 스타일대로 따라 부르게 됐거든요.
가족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은 셈이네요.
데뷔했을 땐 가족들에게서 부족한 점에 대한 지적을 많이 받아서
항상 서운했어요. 밖에서 지적당하는 게 일이었는데 집에서까지 이러면 어떡하나 싶었는데 스무 살이 넘고
나서 그게 사랑이라는 걸 알았어요. 항상 내 곁에 있는 사람이 가족이란 걸 알았어요.
신곡이
공개되면 방송에도 많이 나올 계획인가요?
방송활동을 많이 못한 탓에 사람들이 저란 사람을 잘 모를 거예요. 음악방송 외엔 예능도 많이 안 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많이 하려고 하고 있어요.
예능도?
말을 잘한다는 걸 알려줄 수 있는 예능을 해도 좋을 거 같아요. 워낙 말을 안 하는 모습만 보였으니까.
<슈퍼스타 K> 시즌5의 실패 앞에서 혹자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위기라고 떠들었다. <K팝 스타 3>는 이를 비웃듯이 흥하고 있다.
요즘 <K팝 스타 3>는 지난 두 시즌과 또 다른 궤도에 올라선 것만 같다. 게다가 그 이전까지 오디션 프로그램의 최강자로 꼽혔던 <슈퍼 스타 K> 시즌5의 몰락 이후에 거둔 성공이기에 더욱 그 성과가 두드러져 보이는 것도 같다. 잘 알다시피 <K팝 스타 3>의 변화란 양현석, 박진영과 함께 심사위원석에 앉게 된 유희열의 등장이다. 사실 기우가 없지 않았다. 지난 두 번의 시즌 동안 심사위원 중 가장 많은 지지를 받았던 이가 바로 그 자리의 주인공이었던 보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유희열은 <K팝 스타>에 완벽하게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은 장본인이 됐다.
사실 유희열의 가세로 인한 가장 큰 수혜주는 심사위원 박진영일지도 모른다. 그동안 2도에서 6도 사이를 오가는 화음 지적과 ‘공기 반 소리 반’이란 명언까지 남기며 온갖 비아냥을 들어왔던 박진영은 유희열의 등장으로 인해서 오히려 어떤 전문성을 인정받게 된 것만 같다. 지난 시즌까지 심사위원을 맡았던 세 사람 가운데 유일하게 음악적인 전문가로서의 심사 견해를 표현한 건 박진영뿐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진영이 비아냥을 듣게 되는 건 그가 음악 전문가의 입장에서 심사하기 때문이 아니다. 박진영 혼자서 전문가로서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이전까지 심사위원석에 앉아 있었던 양현석과 보아는 음악적인 전문가라기 보단 자신이 몸담은 제작사의 대표자로서 위치하는 경향이 강했다. 기본적으로 옥석을 가리는 눈이 존재할지 몰라도 음악적인 견해를 판단할 수 있는 정확한 귀를 갖고 있다고 말하긴 어려웠다. 덕분에 심사위원석에 앉은 그 누구도 박진영이 구사하는 단어나 화법에 대해서 놀릴 수는 있어도 그 견해에 대해서 명확하게 지지하거나 반박할 수 있는 인상은 아니었다. 마치 심사위원석의 외딴 섬 같았다.
유희열은 작곡과 제작 능력을 지닌 전문 뮤지션이다. 그만큼 음악적인 전문성에 신뢰가 간다. 가끔씩 박진영이 외계어처럼 화음과 발성에 관한 지적을 하거나 칭찬을 할 때, 유희열은 그 반대편에서 적당한 대립각을 세우기도 하고, 그 의견에 동참하기도 한다. 보다 부드럽고 온화하지만 때론 냉철하고 과감하다. 어떤 식으로든 박진영이라는 심사위원으로서의 면모보다도 음악가로서의 역할을 납득시키는데 한 몫을 한다. 전반적으로 심사위원석에서 긴장된 분위기가 누그러진 반면 웃음의 빈도가 늘었고 활력이 더해진 것도적절하게 치고 들어오는 유희열 특유의짖굿은 입담 덕분때문이다. 게다가 때때로 진행자 역할을 해낸다는 인상마저 주고 있다. <K팝 스타 3>는 유희열의 영입을 통해서 덕분에 오디션 프로그램으로서의, 포괄적으론 음악 프로그램으로서의 전문성을 보다 확실하게 구축하는 동시에 예능으로서의 재미까지 확보했다. 유희열이 세 심사위원의 균형에 있어서 무게 중심의 역할을 해내고 있는 덕분이다. 보아가 없어서가 아니다. 유희열이기 때문이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K팝 스타>는 오디션 프로그램이기 전에 음악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이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만큼은 시청자에게 명확하게 설명해야 한다. 물론 말로 설명하는 게 아니다. 가수를 뽑는 프로그램이니 노래로서 설명하는 거다. <슈퍼스타 K> 시즌5가 간과한 것이 여기에 있다. <슈퍼스타 K> 시즌5는 가수를 뽑는다고 했지만 예선을 진행하는 동안 제대로 들을 수 있는 노래가 별로 없었다. 예선을 보는 내내 끝까지 편집만 했다. 노래는 뭉텅뭉텅 잘리고, 오디션 참여자들의 사연 팔기에 연연하고, 다음 장면에 대한 호기심만 배가시키는데 눈이 멀었다. 노래도 제대로 들려주지 않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심사위원들은 날이 갈수록 엄격하기만 했다. 이유를 알 길이 없는 셈이다. 그만큼 경연에 참여한 이들에 대한 매력을 느낄 수가 없었다. 경연 참여자의 매력은 사연이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무대가 제대로 보일 때부터 자라나는 것이다. 시청자들은 자신들이 응원하고 싶은 사람을 찾고 싶어한다. 누가 몇 점을 받았는가에 대한 흥미는 그 다음이다. 게다가 이상한 건 심사위원들 또한 매너리즘에 빠진 것처럼 굴었다는 것이다. 특히 생방송에 들어간 이후부턴 평점 자체가 들쑥날쑥했다. 오디션 참가자들도 심사위원들도 하나 같이 매력을 어필하지 못했다. 흥미가 없으니 긴장도 되지 않는다. 볼 맛이 안 난다. 2%도 미치지 못한 결승전 시청률은 결과적으로 그리 됐다는 수치상의 결과를 벗어나서 그 과정을 보건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엄하게 오디션 프로그램의 위기를 진단하는 글들이 쏟아졌지만 그건 그저 <슈퍼스타 K>만의 자만에서 비롯된 실패였다.
<K팝 스타 3>는 <슈퍼스타 K> 시즌5가 간과한 것들에 제대로 집중하는 인상이다. 기본에 철저하다. <K팝 스타 3>를 보면서 단 한번도 노래에 지나친 편집을 가하는 것을 본적이 없다. 경연에 참여한 이의 실력을 시청자가 가늠할 수 있게 해준다. 시청자 역시 오디션에 참여하고 있다는 기분을 느끼게 만든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시청자가 팬이 되는 건 이런 과정을 통해서다. 덕분에 볼 맛도, 들을 맛도 난다. 누가 어떤 목소리를 지녔는지, 무대에서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겠다. 그만큼 심사위원이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해진다. 프로그램 내내 귀를 기울이게 된다. 그것이 <K팝 스타 3>를 궤도에 올려놓고 있다. 반대로 <슈퍼스타 K> 시즌5가 팬을 만들기는커녕 죄다 밀어낸 건 바로 이런 과정을 무시했기 때문이다. 사실 오디션 프로그램 자체가 어린 참가자들을 경쟁으로 밀어 넣는다는 점에서 가혹한 면이 있다. 그만큼 땀과 눈물을 딛고 그 무대에 선 이들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 그 무대에서 찬사를 받든, 지적을 받든, 그 무대에 서있는 순간만큼은 그 무대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존중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 존중이란 간단하다. 경쟁을 통한 당락에 대한 호기심을 부추기는 것보다도 중요한 건 바로 무대이고 노래다. 노래하는 이에겐 최상의 무대를, 지켜보는 이에겐 관람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는 환경을 제공해주면 된다. <K팝 스타 3>가 그렇다. 그래서 흥행하는 것이다.
생방송 무대에 진출한 톱 10 가운데 두 팀의 탈락자가 가려진 지난 3월 9일 방송은 시청률 10.5%를 기록했다고 한다. 이 정도면 성공적이다. 지금까지는 질적으로 양적으로 자신의 의도를 관철해나가고 있다고 평할만하다. 게다가 앞으로의 생방송 무대를 채울 8명의 경쟁자들에 대한 관심이 지속되는 인상이다. 그러니 앞으로도 언제나처럼 기대 반 응원 반으로 지켜보겠다. 그러니까 권진아 파이팅.(…응?)
태양은 음악으로 기억되고 싶은 남자다. 자신을 불태워서라도 강렬한 음악이 될 남자다. 태양이 돌아왔다. 태양의 무대가 다시 떠오른다.
촬영은 재미있었나?
마음에 든다. 컨셉트도 좋았고.
새 앨범 타이틀을 <Rise>로 정했다던데.
일단 내 이름이 태양이니까. 사실 본의 아니게 꽤 오랜 시간을 준비했다. 3년 전에 솔로 앨범을 낸 이후로 다시 솔로 앨범을 내고 싶다고 생각할 만한 영감을 받지 못했거든.
지난 솔로 앨범 <Solar> 말인가?
맞다. 그 앨범을 작업할 땐 굉장히 힘들었고 그래서인지 몰라도 내가 정말 즐기고 싶거나 하고 싶을 때가 아니면 하지 말자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앨범 자체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래서 시간이 약간 오래 걸렸다. 그냥 여행을 다니면서 그때마다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들이나 프로듀서들을 인연이 되는대로 만나러 다녔고, 무작정 그들과 작업을 시작했다. 앨범에 넣을 곡을 작업했다기 보단 그저 그들과 같이 작업할 수 있다는 분위기에 취해서 작업을 해나갔다. 그러다가 한두 곡이 완성되면서 전체적인 앨범 컨셉트를 그릴 수 있게 됐다.
지난 솔로 앨범은 나름 좋은 평가를 받지 않았나?
사실 그래서 힘들었다. 그 당시엔 기분 좋게 받아들였지만 자꾸 그런 생각에 얽매이는 느낌이랄까. 앞으로 내가 하는 음악들은 모두 이런 식이어야 될 것 같고, 누군가가 정해주지 않았다고 해도 어떤 틀에 갇혀버리는 기분이었다.
하고 싶은 음악보단 인정받기 위한 음악에 대한 강박이 생겼다는 말인가?
맞다.
그렇다면 지난 앨범이 온전히 자기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나?
일단 내가 했던 음악이니 내 것이 아닐 리 없다. 다만 사람들이 좋아할지, 음악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 이런 집착이 생기면서 내가 남들의 평가를 의식하면서 음악을 대하고 있다는 게 너무 싫어졌다.
타이틀곡에 대해서 알려달라.
'링가 링가(Ringa Linga)’는 강한 느낌의 곡이다. 사실이번 앨범 자체가 다양하게 구성됐다. 보통 지금까지 앨범을 작업할 때는 하나의 큰 컨셉트를 두고 전체 앨범의 퀄리티를 높이는 방향으로 작업했지만 이번엔 다양한 장르의 곡들을 시도했고, 앨범에 담아냈다. 덕분에 듣는데 있어서 지루한 느낌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지난 앨범에서 테디와 공동 프로듀싱을 했다. 이번에도 프로듀싱에 참여했다던데.
음, 아마 지난 앨범에서 내가 하고 싶은 곡이나 할 수 있는 곡들을 추려서 만드는데 참여했다는 점에서 프로듀서라는 큰 개념에서 내 이름을 더해준 것 같다. 사실 내가 프로듀싱에 참여한다고 해서 1번 트랙부터 마지막 트랙까지 다 작곡, 작사를 할 순 없다. 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고. 그럴 경우엔 나한테 오는 책임도 훨씬 크겠지. 앨범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있어서도 바람직하지 않고.
이번 앨범 작업을 하면서 특별히 괴롭혔다고 생각하게 되는 사람은 없나?
양 사장님?
어떤 면에서?
사장님의 배팅이 없으면 음반을 낼 수 없으니까(웃음). 어느 정도 앨범이 완성됐다는 판단이 서니까 계속 재촉하게 되더라.
지난 앨범처럼 이번 앨범도 예정보다 발매가 늦어진 감이 있다.
내 앨범은 유독 예정보다 지연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왜 그럴까?
굳이 이유를 들자면 내 고집이 너무 센 거 같다. 내 세계가 너무 강해지는 것 같다. 특히 이번 앨범 작업에서도 꼭 하고 싶은 게 생겨버리니까 점점 더 확실히 이 앨범에 담아내고 싶어하는 욕구가 강해지면서 그와 반대되는 색깔을 입히려고 하면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너무 걸렸다.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만 기울어진다는 게 좋은 앨범을 만든다는 의미는 아니지 않나. 그걸 알면서도 인정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다. 사실 내겐 대중적인 감각이 없다. 대중적인 음악에 대한 감이 전혀 없다. 어쩌면 내가 좋아하는 음악들이 대체로 우울하고 어두워서일지도 모르겠다. 나를 잘 아는 우리 멤버들을 비롯해서 어렸을 때부터 나를 봐온 프로듀서 형들의 의견을 많이 수렴했다. 아무래도 지금의 나에겐 방향을 잡아줄 사람이 필요한 거 같다.
최근에 엠넷에서 방영하는 YG 연습생들의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 <WIN>에서 A팀의 멘토로 나왔다. 연습생 생활을 먼저 겪은 선배로서 할말이 많았을 것 같은데.
맞다. 실제로도 많은 얘기를 해줬다. 그 친구들 보면서 옛날 생각이 많이 나긴 했다. 우리 또한 치열한 서바이벌을 거쳐서 나온 그룹이기 때문에 그 친구들의 심정이 어떨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
정확히 몇 년간 연습생 생활을 했나?
(권)지용이랑 같이 6년 정도.
정말 절박한 6년이었을 텐데.
음악을 하겠다고 결정한 순간부터 내겐 절박함이 있었다. 음악을 하겠다고 했을 때 가족들이 반대했고, 그 순간부터 내 인생을 내가 책임져야 했으니까. 빅뱅으로 데뷔하기 위한 서바이벌 당시도 물론 그랬고. 정말 절박하고 힘든 시간이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때만큼 행복했던 시간도 없었다. 가장 순수한 열정을 갖고 있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지금 연습생친구들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런 순수한 열정이 보이니까.
빅뱅이 아닌 솔로 활동만의 충족감이 있을까?
예전엔 솔로 활동으로 내가 보여주고 싶은 걸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욕심이 났던 게 사실이다. 그리고 빅뱅으로 다시 돌아왔을 땐 뭔가 보람도 덜한 것 같은 생각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솔직히 빅뱅으로 활동하는 게 더 좋다. 지난 2년 사이에 우리 멤버들이 다양한 사건에 휘말리면서 크게 깨달은 점이 하나 있다. 우리 멤버들과 함께 있을 때가 가장 즐겁고, 지금의 나를 만든 것도 빅뱅이라는 사실이다. 그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 가장 많이 웃고, 뭔가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진다. 결국 빅뱅으로 활동하나, 솔로로 활동하나 어차피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하는 거니까 그저 그 순간들이 행복하길 바란다.
성숙과 변화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내게 중요한 게 뭔지 확실히 알게 됐다는 점에선 분명히 성숙해졌고 변화했다고 느낀다. 그 전엔 내가 많이 어려서 무조건 내 위주로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열심히 하는데 멤버들이 잘 따라와주지 않는다는 피해의식도 있었다. 사실 그들도 최선을 다하는 건데 내가 너무 어렸던 거지. 지난 3년은 그런 사실을 많이 깨닫게 된 시간이었다.
인터뷰에서 연애를 한번도 해본 적이 없다는 발언이 화제였다. 그 이후로 이 질문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것 같고.
다시 그에 관한 애기를 하고 싶진 않았다. 그런 이미지 때문에 더욱 신경 쓰이는 것도 사실이고. 사실 그 당시엔 어린 마음에 정말 연애를 하면 안 되는 거란 생각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지금도 연애엔 큰 관심이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자를아예 안 만난 건 아니었다. 다만 아직까진 연애라고 생각할 만큼 깊게 사랑한 적이 없었을 뿐이다.
특별한 이유라도?
예전에 한번 말했던 것 같기도 한데 나한텐 첫사랑이 있었다. 그 첫사랑이 내겐 너무 큰 감정이었기 때문에 그 이후에 내가 느끼는 감정을 그만큼의 크기가 아니라면 쉽게 마음이 열리지 않는 것 같다. 아무래도 내 욕심인 거지.
자꾸 이런 질문 받게 되면 기분이 어떤가?
휩쓸리는 기분이랄까? 나에겐 나만의 기준이 있고, 나만의 상황이 존재하는 건데 그 대답 하나를 두고 너무 확대 해석하니까.
하지만 외골수처럼 보일 수도 있다.
사실 내가 그렇게 외골수 타입도 아니다. 노는 것도 좋아하고. 물론 내가 놀아봤자 뭐……사실 나는 음악 말고 하는 게 없다. 그렇게 나를 가둔 거다. 그나마 지금은 예전보단 나아졌다.
음악 말고 하는 게 없다니.
물론 밥도 먹고.
밥은 누구나 살기 위해서 먹는다.
음……
주로 누구랑 놀까?
거의 멤버들하고만. 아니면 멤버들의 친구들.
술은 마시나?
멤버들하고만.
멤버들이 정말 편한가 보다.
멤버들과 있을 때 나는 진짜 웃긴 사람이다. 진짜(웃음)! 멤버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요즘은 위트가 더 느는 거 같다. 장난치는 것도 좋고. 사실 내 안엔 ‘흥’이 너무 많다(웃음).
흥보단 생각이 많은 사람 같다.
혼자 있는 시간엔 사색을 많아한다. 어떤 생각에 빠지면 그 답을 찾을 때까지 생각한다. 하지만 2년 전부턴 생각을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생각이 강해지면 오히려 생각대로 맞아떨어지는 게 하나도 없더라.
생각이 많으면 잠을 자기도 힘들다.
원래 불면증이 있었는데 지금은 자연적인 방식으로 치유했다. 잠은 잘 잔다.
예전에 지드래곤이 솔로 앨범의 타이틀곡을 피처링했던 걸 개인 앨범에서까지 빅뱅의 흔적을 남겨야 하냐며 속상해하는 개인 팬들이 팬클럽 커뮤니티 안에서 갑론을박을 벌였다고 하더라. 빅뱅의 팬이 개인의 팬으로 나뉘어 갈등하는 걸 보는 기분이 궁금하다.
몰랐다. 지금 들어서 알았다. 나는 누구보다도 친한 지용이가 피처링을 해줘서 곡이 더 좋아졌으니까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식으로든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겠지. 나는 정말 그 누구보다도 우리 팬들을 사랑한다. 그 사람들이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런 갈등이 있다는 건 아쉽다. 우리가 해결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팬들의 의견을 모두 수렴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해외 팬도 많이 늘었다. 오래 전 미국 진출이 꿈이라는 얘기를 한적도 있었는데.
아마 처음 데뷔할 때였을 거다. 지금 생각하니까 조금 오그라드는데, 지금은 그런 마음은 없다. 그저 내가 좋아하고, 나한테 멋지고, 내가 쿨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표현하고 싶을 뿐이지, 어떤 거창한 목표를 정해두고 달려가는 건 멋없는 일 같다.
지금 막 새벽 1시가 지났다. 보통 이 시간엔 깨어있나?
보통 이 시간엔 스튜디오에 있다.
야행성인가?
프로듀서나 엔지니어들이 밤부터 일을 시작하니까 아무래도 나 역시 뭔가를 시작하려면 그때부터 스튜디오로 나가있어야 된다.
이번 앨범이 어떤 앨범으로 남았으면 좋겠나?
이번 앨범은 정말 내가 기본적으로 할 수 있는 음악들은 다 넣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좋아해줬으면 좋겠다. 사실 지난 솔로 1집 앨범 이전에 발표했던 싱글들이 차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사실 나는 그런 부분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 타입이지만 이젠 남의 일처럼 생각할 순 없는 거다.
그 정도로 성적이 안 좋았나?
좀 더 잘됐어야 했다고 하더라. 나도 요즘에 알았다.
권한에 책임이 생겼다는 걸 깨달았다는 말인가.
그렇다. 내게도 책임이 생긴 거지.
태양은 끝까지 하고 싶은 걸 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면 순진하게 들릴까?
나는 앞으로도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거다. 그럴 수 없는 건 단지 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내 생각과 색깔이 담긴 음악을 사람들이 듣고 싶게 만들 수 없다는 건 내 부덕이다. 그래서 이번 앨범에 애착이 남는다. 지난 앨범은 남들이 원하는 방향에 귀를 기울이는데 노력했다면 이번 앨범은 내가 원하는 방향을 보다 완성도 있게 닦아내려고 노력한 앨범이니까. 좋은 앨범이 나왔다고 생각한다. 진짜로.
지금의 위치에서도 이루고 싶은 무언가가 있을 텐데.
나는 아직도 가수가 되는 게 꿈이다. 아직도 하고 싶은 음악이 너무 많고, 음악이란 세계 안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 이런 꿈을 이루고 싶다기 보단 죽기 전까지 계속 쫓아가고 싶다.
너무 원대하게 들리는 꿈 말고 당장 해내고 싶은 목표는?
일단 이 앨범으로 많은 사람에게 좋은 영감을 줄 수 있다면 좋겠다. 그리고 계속 음악을 만들 수 있다면 좋겠다. 물론 계속 해나가겠지만 가장 컨디션을 좋다고 느껴지는 지금 같은 시기에 다른 데에 신경 쓸 필요 없이 집중해서 뭔가를 만들어내고 싶다.
컬러풀한 에너지로 무대를 누비던 2NE1의 산다라박이 정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순수한 여인으로서 카메라 앞에 홀로 섰다. 산다라박이 아닌 박산다라라는 이름으로.
“아마 오늘 화보 촬영도 2NE1으로서 했다면 예전처럼 무서운 언니들 컨셉트로 갔을 텐데 박산다라 혼자이기 때문에 차분한 느낌을 시도해볼 수 있었던 거죠. 저희 팬들은 이제 제가 뭘 해도 잘 안 놀라는데 오히려 오늘 찍은 화보가 지난 반삭보다 더 충격적일 걸요.” 그녀의 말처럼 오늘 그녀는 충만한 에너지로 악동처럼 무대를 누비던 2NE1의 산다라박을 벗고 여성스러운 순백의 의상을 입은 박산다라로서 카메라 앞에 홀로 섰다.
박산다라가 산다라박으로 불리게 된 건 <인간극장>에 출연한 이후부터였다. 당시 그녀의 필리핀 생활이 ‘내 이름은 산다라박’이란 타이틀로 전국에 송출되면서 알려진 산다라박이란 이름은 2NE1의 산다라박으로서 완전히 익숙해졌다. 그녀 스스로에게마저도. “이젠 저조차도 가끔은 산다라박 대신 박산다라라고 불리는 게 어색해요. 외국인도 아닌데.” 사실 2NE1의 산다라박이 된다는 건 일종의 도전이었다. 9년 전, 21살 무렵이었다. 당시 필리핀의 국민여동생과도 같았던 산다라박이 일개 연습생 신분을 선택하며 한국행 비행기에 탑승한 것이 말이다. “그땐 어렸으니까요. 지금은 아마 그렇게 못할 거에요. 필리핀에서 너무 큰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마음이 아팠지만 한국에서 새롭게 도전해보고 싶었죠. 꿈이었던 YG에 들어올 수 있어서 두려움 없이 온 거 같고요.”
지난해엔 반삭까지 시도했던 산다라박도 10대 시절엔 S.E.S.나 핑클 같은 가요계의 요정을 꿈꾸던 소녀였다. 애초에 솔로로 연습했던 네 멤버가 처음 2NE1이란 이름 아래 한자리에 모였을 땐 가히 충격적이었다. 서로가 봐도 너무나 다른 그들이었다. 게다가 학창시절엔 벙어리로 오해 받을 정도로 숫기가 없었던 그녀다. 심지어 10년 가까이 본 YG의 양현석 대표, 일명 양 사장과도 여전히 살갑게 지내지 못하는 그녀에게 자신과 너무나도 다른 세 멤버들과의 어울림이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엄청 어색했죠. 그런데 그 세 명이 혼자 밥 먹거나 연습하면 먼저 다가와줬어요. 그래서 빨리 친해진 거 같아요. 지금은 다른 세 멤버들이 저를 보호해주고 챙겨주는 거 같아요.” 물론 작은 오해도 있었다. 산다라박은 최근 동갑내기 멤버인 박봄에게서 처음엔 자신을 싫어하는 줄 알았다는 이야길 들었다. 당황한 나머지 살갑게 전화한 박봄에게 무뚝뚝하게 응답해버린 탓이었다. “지금은 제 성격을 잘 아니까 뒤늦게 그 일이 너무 웃긴대요.” 여전히 숫기가 없어 보이는 그녀가 무대를 휘젓고 다니는 2NE1의 멤버 산다라박이라는 건 조금 놀랍다. “학교에서 말 한마디 못하던 제가 용기를 내서 학교 축제 때 솔로로 노래를 했어요. 어떻게 했는지는 몰라도 그 이후로 자신감이 생겼어요.”
그러니까 그녀에겐 진짜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무대가 필요했단 말이다. “데뷔 전부터 제 꿈은 항상 콘서트 무대에 서는 거였는데 재작년에 한번 해보고는 완전히 맛이 들렸어요. 그래서 작년에도 투어 돌면서 정말 즐거웠죠. 재작년엔 일본 투어만 했지만 작년엔 미국이랑 싱가포르, 대만까지 갔다 왔거든요. 특히 첫 미국 공연은 떨렸어요. 아는 이 하나 없는 뉴저지까지 와서 잘할 수 있을지, 관객이 많이 올지 두려움이 컸거든요. 그런데 놀랍게 객석이 다 차있어서 한인 교포들이 많이 와주셨구나 생각했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다 현지의 미국인들이라고 해서 놀랐죠. 투어 마지막엔 많이 울기도 했어요. 올해에도 작년보다 많은 곳에 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국경과 언어를 넘어서 자신이 설 수 있는 무대가 넓어졌음에 짜릿해진다는 것, 확실한 무대 체질이다. 그녀가 지난 한 해를 뒤돌아보면 아쉬움도 적지 않다는 것도 그렇기 때문이다. “글로벌 투어를 돌고 왔어도 한국에선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져요. 작년엔 디지털 싱글로 발매한 ‘I Love You’를 빼면 새로운 게 없었으니까요. 항상 새로운 곡과 새로운 퍼포먼스와 새로운 스타일로 무대에 서는 게 기대되거든요.” 그래서 모든 것이 낯설고 그만큼 새로웠던 데뷔 초가 문득 그리울 때도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2NE1의 산다라박으로서 그녀는 새로운 도전을 거듭하고 있다고 느낀다. “사람 욕심이란 게 이것저것 더 해보고 싶은 건가 봐요. 데뷔 4년째가 된 지금까지 좋은 추억도 많았고, 한 단계씩 더 발전해가고 있지만 그래도 욕심은 어쩔 수 없나 봐요.”
어쨌든 그녀도 이제 나이 서른이다. ‘다 죽여버리자!'며 무대에 오르는 2NE1의 산다라박으로서 도전을 즐기는 것도 좋지만 박산다라로서의 삶을 돌아보는 것도 중요한 시점이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동안의 외모가 시간을 멈춰 세우는 건 아니니까. “사실 26살에 데뷔했으니 빠른 편은 아니었죠. 우리 팀의 (공)민지만 해도 16살에 데뷔했잖아요. 물론 딱히 나이에 신경 쓰진 않았어요. 2NE1이란 팀 자체가 어린 소녀 같은 느낌은 아니니까 계속 이렇게 음악을 해나갈 수도 있을 거 같고요. 하지만 서른이 되니까 미래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는 건 사실이에요. 연기에 도전해보고 싶어요.” 물론 2NE1을 벗어나서 홀로서기를 하고 싶다는 게 아니다. 그녀는 여전히 2NE1의 산다라박으로서 할 수 있는 게 많다고 믿는다. 단지 박산다라라는 이름으로 이루고 싶은 다른 무언가가 있다는 거다. 욕심이 많다. “조금이라도 더 젊을 때 제 모습을 많이 남기고 싶더라고요. 5년 뒤에 돌아봤을 때 시간이 아깝지 않았다고 느낄 수 있도록.”
한편 최근 결혼식을 올린 원더걸스의 선예의 소식은 묘한 자극이었다. “개인적인 친분은 없는데도 불구하고 괜히 제가 싱숭생숭하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고, 마음이 이상했어요. 되게 예뻐 보였어요.” 데뷔 3년간 연애 금지 조항을 잘 지킨 덕에 소속사로부터 연애의 자유를 보장받은 지금은 어쩌면 절호의 기회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일단 막연한 연애보다도 새로운 음반 녹음에 주파수가 맞춰져 있다. 정규 앨범이 될지, 미니 앨범이 될진 모르지만 그녀가 위한 새로운 곡과 새로운 퍼포먼스와 새로운 스타일이 마련될 예정이라는 것. 박산다라가 말했다. 처음 마주본 순간의 어색함 대신 그 익숙한 산다라박의 표정으로.
오랜만이다. 세 남자가 무대 위에서 마음껏 뛰는 모습이. 살다 보면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생긴다지만 지난 3년은 이들에게 분명 지나치게 가혹했다. 그래서 반가웠다. 데뷔 9년차에 7집 앨범을 발매한 에픽 하이가 다시 전하는 에너지가.
다시 활동하는 기분은?
투컷(이하; 투)알다시피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고,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런데 앨범이 나오고 매일매일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게 즐겁다. 솔직히 예전엔 스케줄이 너무 많다고 불평하기도 했다. 이젠 온종일 바빠도 즐겁다. 스케줄 하나 잡히면 그저 좋다.
타블로(이하; 타)나도.
미쓰라(이하; 미)쉬는 동안 생각만 많아져서 몸을 움직이고 싶었다. 우린 그게 행복하니까. 새로운 노래를 빨리 들려주고 싶었고, 셋이 뭉쳐 뭐라도 생기면 당장 나오고 싶어서 빠른 속도로 작업했다.
오랜만에 세 멤버가 모여서 무대에 서는 느낌은?
타 아직은 좀 어색하다.
미처음엔 너무 어색했다. 새로 시작하는 느낌? 그래도 경험이 있어서인지 적응은 빨리 되더라. 오랜만이라 더 재미있기도 하고.
타이렇게 다시 뭉친지도 5개월 정도밖에 안됐고, 다 같이 하는 무대는 3년만이라서 떨렸다. 하지만 난장판처럼 뛰어놀 수 있는 노래라서 막상 시작하니 그런 기분은 다 잊혀졌다. 다시 무대에 선 만큼 최대한 이 순간을 즐기려 한다. 긴 워밍업이라 생각한다. 시동을 거는 상황이지. 다만 오랫동안 걸어야 된다. 한 1년 동안 작업실 안에서만 걸으면 답이 없다. 관객들을 만나야 된다. 빨리 나오고 싶었던 것도 그래서였다. 무대 위에서 신곡과 옛날 노래도 하면서 다시 관객들을 만나야 시동이 걸릴 것 같기도 하고. 지금 이 활동 자체가 하나의 큰 워밍업이다.
앨범 타이틀 <99>의 의미는?
타 너무 단순해서 놀릴 수도 있는데. 9주년인데 9곡, 끝.
투마케팅 팀에서 너무 단순하다고 해서 진지한 의미를 우겨 넣었지만 진짜 의미는 그거다.
9년 전, 처음 데뷔할 때 기분이 들지 않나?
타 우리를 베테랑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우린 꼭 신인 같다. 예전에도 확실한 우리 색깔을 찾기까지 몇 년 걸렸다. 처음 두세 장 앨범을 내기까지 이것저것 해보면서 멤버들의 조화를 찾아가던 과정이 다시 온 것 같다. 우린 활동 기간보단 항상 지금 시작한다는 데 의의를 뒀다. 이 시점에는 이렇게 해야 된다는 강박이 전혀 없었다. 지금도 며칠 전에 시작한 애들 같다.
미쓰라는 살이 많이 빠졌다.
미 이번 앨범을 준비하면서 많이 뺐다. 3년 만인데 뭐라도 변해서 나와야 재미있을 것 같고.
미쓰라마저 결혼하면 국내 유일의 유부남 힙합 그룹이 탄생할지도(웃음).
타 진짜 없나?
미 없을 걸? 타 그런데 난 에픽하이나 내가 힙합 신에 속해 있다고 생각해 본 적 없다. 힙합 외에도 우리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해왔고, 멤버들도 그렇게 활동해 왔으니까. 힙합 신을 이끌어갈 권리도 없고, 원하지도 않는다. 다만 50대가 돼서도 랩을 잘했으면 좋겠다. 할아버지가 돼서 랩 앨범을 낸다고 생각해 봐. 재미있겠지(웃음).
투 주책처럼 보이지만 않으면.
타 그때 랩 좀 한다는 애들과도 별반 차이가 느껴지지 않으면 정말 재미있겠지.
미 물론 열심히 뛰는 음악은 못하겠지. 심장이 버틸 수 있을지 모르니까(웃음). 그때 어울리는 진지한 깊이가 생길 수도 있고.
타 나중에 손주가 친구랑 대화하는 데 이러는 거야. “너네 할아버지 뭐 해?” “랩 하셔(웃음).” “잘해?” “상당하셔.”
미 “너네 할아버지 뭐하셔?” “집에서 랩 녹음하고 그래.” “뭐?”
타 “우리 할아버지 펀치 라인이 죽여(웃음).”
이번 앨범을 작업하기 위해서 모이는 과정은?
타 난 이미 녹음실에 들어가 있었고, 얘들이 합류했다.
투일단 혼자서 작업하고 있었다. 어느 날 자연스럽게 커피 한잔하면서 어떻게 만들까 얘기하기 시작했다. 미 제대했을 땐 이미 곡이 많이 나온 상태였다.
그린 데이의 <Dookie> 앨범에서 모티프를 얻었다고 들었다.
타 ‘Don’t hate me’가 그랬다. 주변에서 많이 물었다. 힙합 그룹이 90년대 풍의 록을 지금 왜? 그냥 그런 노래 하나 만들고 싶었다. 그냥이란 단어말곤 할 말이 없다. 그런 노래로 무대에서 뛰어놀고 싶었다.
미정말 신나게 뛸 수 있는 걸 원했다. 제일 재미있는 게 내가 뛰고 관객들도 뛰는 거니까 그런 노래를 만들고 싶었다.
9년 전과 체력 차이는 느껴지지 않나?
타신기한 건 20대 초반 데뷔 시절엔 1시간만 공연해도 힘들었다. 그 정도 공연하면 누구나 힘들다. 계속 뛰니까. 그런데 이번 앨범 발매 후 클럽 공연에서 앵콜 무대만 1시간 반을 했다. 전체적으론 2시간 반에서 3시간 정도였고.
투 그때 절실히 느꼈다. 우리가 정말 쉬는 동안 맺힌 게 많았구나. “우리 집에 좀 보내주면 안돼요?”라고 했지만 말만 그랬지, 계속 하고 싶었다.
타 끝난 뒤에도 별로 지쳐 있지 않았다. 한두 시간 더 할 수 있을 거 같더라. 이대로라면 10년은 괜찮겠다.
투운동 선수 인터뷰 같은데(웃음). 미 향후 10년은 문제없다. 더 뛸 수 있다. 함부로 은퇴를 논하지 마라(웃음).
타 아직 거뜬하다. 아이를 키워보면 알겠지만 아이들 에너지를 따라갈 수가 없다. 그걸 따라갔으니까 무대 정도야(웃음).
‘춥다’로 첫 음원을 공개했을 때, 전반적인 음반의 분위기가 그럴 줄 알았다.
타 일단 ‘춥다’가 가장 먼저 만든 노래였다. 사실 어둡거나 슬프게 만들려고 했던 노래가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쓸쓸하게 나왔다. 우울한 음악을 만들면 그 못지않게 더 우울해진다. 지금 그런 음악들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때부터 앨범의 방향이 많이 달라졌다.
활기찬 넘버들로 구성됐지만 마냥 신나게 듣지 못하겠더라.
미 우리가 겪은 일이 있으니까 그렇게 보일 순 있겠지. 그런 생각들이 내재돼 있는 상태에서 우릴 볼 테니까.
타 실제로 밝은 게 아니고 너무 힘드니까 애써 밝은 음악을 만들었다는 분들도 있더라. 그 말도 어느 정도 맞다. 밝은 음악을 만들면서 우리가 좀 더 즐거웠던 것도 사실이고.
투 무대 위에서도 즐겁다. 그러려고 만든 앨범이라 생각해도 된다.
한동안 타블로의 상황을 옆에서 지켜본 멤버들의 심정이 궁금하다.
투 솔직히 다신 팀으로 활동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가장 가까운 사람 중 하나인데 어떻게 도울 수 없으니까 미치겠더라. 현실이라는 게 꿈 같았다.
그런 사건들이 음악에 미치는 영향은 없었나?
타 우울한 음악은 하기 싫었고, 좀 웃으면서 할 수 있는 방향으로 결정됐다는 거? 그 외엔 없다.
음악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없었나?
타 그것 때문에 하겠다기보다 음악을 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했다. 음악을 하고 싶다는 이유로 아끼는 이들에게 피해를 줘야 한다면 계속 하는 게 맞을까 싶었다. 나 하나만 그만두면 되니까. 하지만 내가 아끼는 사람들을 챙겨주고, 그사람들에게 보답하고, 그들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도 음악 밖에 없더라.
전반적으로 보컬 비중이 늘었다. 멤버들의 보컬도 많아졌고.
타 사실 몹쓸 짓인데(웃음). 무대에서 다시 한 번 뛰어노는 게 가장 중요했다. 피처링을 많이 쓰면 그게 어렵거든. 노래방에서 뛰어놀아도 자기가 불러야 재미있잖아.
투 제한되는 부분이 많지. 미 일단 한 번 해볼 순 있는 거고, 딱히 심하게 거북해하지 않으면 다음에도 가능하겠지. 그런데 딱히 별 말이 없더라. 타 난 솔로앨범에서 발라드도 불렀어(웃음).
YG 엔터테인먼트 소속 프로듀서들의 참여도 눈에 띈다.
타 내가 요청했다. 공동 작업은 처음이다. 요즘 내가 음악을 만들면 무조건 우울해진다. 피아노를 치고 코드만 들었을 땐 분명히 밝은데 완성하면 우울해진다. 그게 굉장히 짜증났다. 밝다고 만들었는데 암울하다고 하니까 스트레스지. 멤버들도 무겁고 진지한 것보다 밝고 신나게 갔으면 좋겠다고 했기 때문에 지원군을 찾았다. 우리에게 필요한 밝고 신나는 에너지를 더해달라고 요구했다.
투 새로운 에너지가 필요했다. 사실 우리끼리 앨범을 만들 땐 굉장히 진지하고 우울하다.
타 우리 작업할 때 와보면 분위기가 굉장히 안 좋다고 느낄 거다.
투 되게 예민하고 찌든 애들 있잖아. 스튜디오에 사람들이 와서 자기들끼리 농담하고 있으면 쫓아내버렸다. 그런데 이번엔 활기가 넘쳤지.
타평상시에 작업할 땐 폐쇄적이고, 날카롭고, 분위기가 좋지 않았는데 이번엔 거의 놀면서 했다.
미옛날에 작업할 땐 아무도 못 들어오고 우리 셋만 딱 들어가 있었지. 이번엔 누가 놀러오면 다 들어오라고 하고, 다른 사람들 의견도 참고하고, 녹음실에서 뛰어놀면서 유쾌하게 작업했다.
타 원래 “이건 어때?”라고 물으면서 작업하는 게 우린 불가능했거든. 언쟁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의견이 달라도 얘기하지 못하고 서로 눈치만 본다. 워낙 예민하니까.
누군가 중재하는 역할을 하지 않나?
타나랑 (미)쓰라가 붙으면 투컷이 하고, 나랑 투컷이 붙으면 쓰라가 한다. 미쓰라랑 투컷은 음악 작업 때문에 붙진 않는다. 음악 때문에 일어나는 언쟁은 거의 나 때문이다. 솔직히 내가 문제다(웃음).
투나랑 미쓰라는 아예 분야가 다르지만 타블로는 아무래도 곡도, 가사도 쓰는 포지션에 있으니까.
타 멤버들도 답답할 거다. 난 음악 할 때 약간 돈키호테 같거든. 누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고 말해도 그냥 끝까지 간다. 그렇게 고집해서 밀어붙였는데 결과가 좋으면 괜찮지만 좋지 않으면 정말 미안해서 우울증까지 온다. 좋아도, 좋지 않아도 결국 내 탓이다(웃음). 그래서 항상 말한다. 만약 에픽하이 앨범이나 노래가 마음에 안 들면 타블로를 욕하라고. 아마도 내 탓일 테니까(웃음). 투 이제 우리도 그걸 잘 알아서 내버려둔다(웃음).
미예전엔 많이 다퉜는데 이젠 나이가 들고 서로를 이해하니까. 요즘은 잘하라고 독려해 준다. 뭐가 나올지는 끝까지 가봐야 아니까.
타 그래도 이번엔 내가 너희들 의견을 어느 때보다 많이 들어줬지(웃음). 먼저 사람들의 의견을 묻고 다녔잖아. 물론 난 여전히 예전과 마찬가지로 그런 사람이다. 이번 앨범에선 그걸 놓은 것뿐이지.
오랜만에 복귀한 만큼 새롭게 감지되는 음악 신의 변화는 없나?
미 음원 사이트의 흐름이 정말 빨리 바뀌는구나 싶더라.
투 예전엔 CD 판매량을 집계하는 한터 차트가 중요했는데 요즘은 음원 차트가 가장 중요하더라. 그리고 실시간 차트가 생겼다는 거. 타 실시간 차트가 있다는 건 아직도 적응이 안 된다. 세상에 어느 차트든 최소한 1주일에 한 번씩 집계되잖아. 어떻게 음악이 나온 지 1시간 뒤에 차트가 만들어지는 건지, 그게 어떻게 중요한 차트가 된건지 놀랍다.
투 마라톤 중계 보는 거 같고.
타 우리는 1년 동안 작업해서 앨범을 낸다. 그런데 지금 시장에선 앨범을 내면 안 된다. 투 타이틀 곡만 알려지고 나머지 곡들은 쉽게 묻히니까. 타 20곡을 미친 듯이 만들었는데 19곡이 그냥 묻힌다고 생각해 봐라. 그래서 디지털 싱글을 많이 발표하는 추세다
투 그게 현재 시장에 딱 맞다.
타그렇다고 이 상황에 불만이 있다는 건 아니다. 어쨌든 소위 음악으로 먹고 살려면 거의 두세 달에 한 번씩 신곡을 내는 게 영리한 방법이다. 그런데 우린 앞으로도 그렇게 못할 거 같다. 그러니 결국 무식한 음악 메이킹을 고집해야 한다.
90년대 음악 스타일이 많이 반영했다.
타 우리와 일반적인 사람들이 생각하는 90년대는 또 다르더라. 우린 스매싱 펌킨스나 너바나나 그린 데이를 생각했지만 전람회를 떠올리는 분들도 많다. 사실 나는 클론이나 서태지와 아이들이나 ‘잘못된 만남’ 같은 노래가 생각나기도 하고.
투 어떤 분들에겐 H.O.T일 수도 있고.
타 다시 한번 들어보니까 그렇게 90년대처럼 들리진 않더라. 역시 내 탓이다(웃음).
에픽하이의 음악적 자양분이 다채롭다고 느꼈다.
타첫 앨범을 다시 만들면 힙합 그룹이란 얘긴 하지 않을 거다. 그게 굴레처럼 느껴지고 답답할 때가 있다. 물론 우리가 힙합을 할 땐 확실히 힙합이다. 힙합 팬들은 그 노래를 듣고 우리를 힙합 그룹이라고 생각할 거다. 1을 갖고 99를 판단하는 거다. 우리의 감성적인 곡을 좋아하는 분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우릴 규정짓는다. 각자가 생각하는 에픽하이가 워낙 다르니까 우리로서는 뭘 해도 상관이 없다. 하지만 둘 다 좋아할 만한 음악을 고민하긴 힘들다. 과거로 돌아가면 우린 그저 팝 그룹이고, 랩이나 힙합도 잘할 자신이 있다고 얘기할 거다(웃음). 처음부터 우리 입으로 얘기한 것도 아니었다. 힙합 전사라는 수식어가 많이 붙어서(웃음).
미 힙합이란 단어가 붙으면 다 전사가 되는 시대였다.
타힙합을 미친 듯이 좋아한다. 그런데 누군가 나를 힙합 뮤지션이라고 얘기하면 이게 정확한 카테고리인지, 그렇게 끼여도 되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앨범상을 받는 건 좋지만 힙합 부문 상을 받을 땐 정말 미안하다. 장인 정신처럼 오로지 힙합이란 두 글자를 고수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그래서 항상 알려지지 않은 래퍼들을 피처링으로 많이 쓰려고 했다. 우리가 힙합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그런 친구들이 알려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
이번 앨범의 트랙 수가 예전 앨범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적다.
타5~6년 전 시장과 지금의 시장은 다르다. 지난번에 나왔던 솔로 앨범도 10곡이었다. 그 중 한 곡은 짧은 인터루드였으니 실질적으로 아홉 곡이다. 앨범에 수록한 노래들이 다 사람들에게 전달된다면 그렇게 하겠지만 이젠 앨범을 사지 않는 사람들에겐 그 노래들의 존재를 알리기 힘들다. 방송에서 보여주는 것도 한계가 있고, 뮤직비디오를 다 찍을 수도 없다. 투 앨범 만들 때 모든 곡에 쏟는 정성은 똑같다. 비싼 비용이 들어가는 스트링 편곡이 필요하다면 한다. 그런 노래들이 발매되자마자 사장되는 거다. 타 타이틀 곡만 클릭해서 들으니까.
투누굴 탓하는 게 아니라 그냥 허탈하다. 열심히 만들었는데 들려줄 방법도 없고.
타 아는 사람은 알 텐데 무슨 상관이냐고 묻는 사람도 있겠지만 만드는 사람 입장에선 다르다. 솔로 앨범도 파트 1, 2로 나눴던 건 10곡을 한꺼번에 들려주면 소화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기 생각도 140자로 쓰는 현실에서 남의 생각을 오랫동안 들어줄 시간이 어디 있겠나. 일단 5곡부터 듣고 마음에 들면 다음 5곡도 들어달란 거지. 대부분의 뮤지션들이 공감하는 이야기다. 어떤 이들은 그게 상업적이라는데 입장을 바꿔 생각하면 내 노래를 더 많은 사람들이 듣게 만들고 싶은 게 순수한 뮤지션의 마음 아닌가.
투상업적이라면 차라리 앨범보단 디지털 싱글을 내겠지.
타이틀 곡이 3곡이다. 많은 곡을 들려주고 싶은 욕심 때문일까?
타어차피 다 우리가 만든 곡이니까 타이틀은 뭐가 돼도 상관없다. 다만 방송마다 다른 노래를 부르고 싶은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이 기사가 나올 때면 아마 이미 우리가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출연했을 텐데 그 무대도 타이틀 곡 완곡 대신 메들리로 준비했다.
내년이면 10주년이다. 특별한 계획이라도?
타 커리어에서 정점이라 꼽힐 만한 앨범을 만들고 싶다. 데뷔 앨범만큼 중요한 앨범이라 생각한다. 지난 9년은 다 연습이었다고 생각할 만큼 충격을 주고 싶다. 최선을 다해야지.
미물론 늘 그래왔지만.
타 이번 활동은 11월 말이면 끝날 것 같다. 그리고 산에 들어간다는 생각으로 시작해야지. 사실 지금 다시 열정이 불타기 시작했다. 왜 하필이면 앨범 나온 다음에 음악을 만들고 싶은 욕구가 불타오르는지 모르겠다(웃음). 무대에서 관객들을 만나니까 하고 싶은 음악들이 파도처럼 몰아친다. 오늘부터 장비를 바꾸기 시작했다. 이번 활동이 어쩌면 그걸 위한 게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미치겠다. 떠오르는 것도, 해보고 싶은 것도 너무 많아서 잠도 안 온다. 지난 앨범들에 비해서 미쓰라나 내가 평소보다 랩을 조금 덜해서인지 랩이 다시 프레시하게 들린다.
새롭게 해보고 싶은 게 생겼나?
타 솔직히 하고 싶은 건 다 해본 거 같다. 잘하는 걸 더 잘해야 할 때가 된 거 같다. 그리고 결국 해야 되는 음악을 하고 싶다. 다시 잘한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도록 스텝 업을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