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10번 출구에 포스트잇이 붙었다. 포스트잇에 담긴 소리 없는 아우성이 세상을 흔들었다.
지난해 파리 테러 직후, 파리 시민들은 테러 현장과 인접한 리퍼블리크
광장에 추모의 언어를 모았다. 자유와 평화의 메시지가 담긴 그림과 사진이 자유를 상징하는 여신상 주변에
빙 둘러 쌓였다. 꽃다발과 촛불의 행렬이 이어졌다. 무자비한
폭력에 굴하지 않겠다는 개개인의 신념이 광장에 수집됐다. 이런 식의 추모는 서양에서 흔한 일이었다. 1997년 파파라치의 추격에 벗어나려다 교통사고로 사망한 다이애나의 죽음 이후, 그녀를 추모하는 영국인들은 다이애나가 왕세자비 시절에 머물던 켄싱턴궁 앞에 추모의 메시지가 담긴 사진과 꽃다발을
남겼고, 촛불을 밝혔다. 9.11 테러 이후, 뉴욕의 그라운드 제로에서도 비슷한 광경을 목격할 수 있다.
아마 이런 방식의 추모가 국내에서 가장 명확하게 눈에 띄기 시작했던 건 세월호 참사였던 것 같다. 추모의 메시지를 담은 노란 리본 혹은 노란 종이가 진도 팽목항을 노란 물결로 채웠고, 이런 추모 방식은 서울의 시청 광장이나 광화문 광장까지 이어졌다. 노란
리본을 단다는 것만으로도 세월호 참사를 추모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명확한 공감대를 교환하는 시각적
선언이 된 것이다.
강남역 10번 출구에 켜켜이 붙은 포스트잇도 마찬가지다. 지난 몇 주 사이에 강남역 10번 출구는여성 혐오 범죄 피해자를
위한 추모의 장을 넘어 여성 혐오에 저항하는 성지가 됐다. 여성 혐오에 대한 호소와 절규가 담긴 언어가
적힌 포스트잇이 1000여 개가 넘게 붙었다. 꽃다발과 촛불이
위로를 위한 전통적인 도구에 가깝다면 포스트잇은 상대적으로 새로운 시대의 도구다. 폭력성에 저항하는
목소리와 여성 혐오에 반하는 연대를 호소하는 목소리가 포스트잇이라는 정사각형 종이에 옮겨져 강남역 10번
출구에 게시된다. 불특정 다수가 지나치는 통로였던 강남역 10번
출구는 일종의 게시판이 됐고, 신문고가 됐고, 광장이 됐다. 큰 의미가 없던 일상적인 공간이 상징적인 역사성을 입게 됐다.
이는
시민사회에 새로운 메시지로 가 닿을 것이다. 촛불시위가 시위 문화의 새로운 근간이 됐던 것처럼 강남역 10번 출구의 포스트잇은 사회적 부조리나 불합리에 저항하는 개개인의 목소리가 미약하게 흩어지지 않을 수 있는
하나의 방법론으로 공유된 것이다. 개개인의 목소리가 어느 공간을 점하는 시각적인 규모로 전시될 때 그것이
전 사회를 울리는 강렬한 확성기가 될 수 있다는 것. 그렇게 세상은 때때로 조금씩 전진한다. 생각지도 못한 평범한 것들을 통해서.
(GRAZIA KOREA JUNE SECOND ISSUE 2016 '10 HOT STORIES')
1인 미디어 시대가 도래했다고 한다.
1인 미디어란 언어 그대로 1인이 미디어가 된 것을 의미한다. 이를 테면 파워블로거 같은 것이다. 웹을 통해 전지역적인 네트워크가
개설되고 편집과 제작이 용이한 개인 블로그 플랫폼 툴이 제공되면서 누구나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세상에 띄워 보낼 수 있게 됐다. 세상을 망라한 식견을 쥐고 있다면 충분히 털어낼 수 있는 창구가 생겼다. 그리고
이젠 자신을 영상으로 드러낼 수 있는 시대다. 유투브, 아프리카 TV와 같은 동영상 사이트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의 SNS를 통해 자신의 끼를 마음껏 발산할 수 있다. 언제, 어디서든 마음만 먹으면 영상을 찍고, 보여줄 수 있다. 반대로 언제, 어디서든 마음만 먹으면 볼 수 있다. 누구나 스마트폰을 갖고 있다. 스마트폰에서 전화 기능은 옵션 중
하나가 된지 오래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대부분의
핸드폰 광고는 높은 산에서, 먼 바다에서 통화가 잘 터지는가를 강조했다. 요즘의 스마트폰 광고는 대부분 카메라 화소가 얼마나 좋은지, 데이터가
얼마나 잘 잡히는지에 방점을 찍는다. 결국 잘 찍히는가 그리고 잘 볼 수 있는가가 지금 스마트폰을 고르는
기준이다. 결국 음성이 아니라 사진과 영상이 스마트폰에서 가장 핵심적인 화두란 말이다.
1995년도에 방영된 드라마
<모래시계>를 사람들은 ‘귀가시계’라 불렀다. 사람들이 <모래시계> 방영 시간을 맞춰서 집으로 귀가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기 때문이다. 때를
놓치면 방송을 보기 힘든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자신이 보고자 했던 방송을 찾아서
볼 수 있다. 재방송을 기다릴 필요도 없다. 결국 정확한
시간대에 TV 앞에 앉아 있을 필요가 없다. 하지만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 스마트폰은 TV의 대안이 아니다. 그들에겐
리모콘으로 채널을 고르는 것보다 액정을 터치해 플레이 버튼을 누르는 게 더욱 익숙하다. 그곳엔 엄마, 아빠가 보던 TV채널과 다른 것이 있다. 먹방, 겜방, 톡방 등
개인이 직접 출연해 자신의 이야기를 하거나 자신의 생각을 말하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공유한다. 자신이란
콘텐츠를 세상에 전파한다. 이들을 콘텐츠 크리에이터라 명명하는데 그들 중에선 연예인만큼이나 상당한 인기를
구가하고 높은 수익을 올리는 이들이 생겨나기도 했다. 올해 <동상이몽>에 출연한 BJ 대도서관은 자신의 월 수익이 오천만원이라고 밝혔다. 대도서관은 자신이 게임을 하는 영상을 중계하고, 그 영상을 보는
이들과 대화하듯 말한다. 즉각적인 대화가 가능하고, 실시간적인
콘텐츠 플레이가 가능하다. 채널에 소속된 개인이 아니라 개인 자체가 채널이 된다는 것, 이는 전통적인 TV 방송 안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방식이다.
연예인에게 매니저가 있듯이 대단한 팬덤을 지닌 콘텐츠 크리에이터에게도 매니저가 생겼다. 콘텐츠 크리에이터가 만든 콘텐츠의 배급과 관리를 담당하는 신종 사업인데 이를 멀티 채널 네트워크(Multi Channel Network), 즉 MCN이라고 한다. MCN 산업은 1인 미디어의 시대를 통해서 새로운 미디어의 흐름으로
여겨지고 있는데 이는 1인 미디어를 위한 매니지먼트이면서도 수많은 1인
미디어를 거느린 방송국의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트레저 헌터나 다이아TV, 메이크어스 등 1인 미디어 혹은 중소 규모의 제작자 집단을 거느린 MCN 산업을 전개하는 움직임이 심심찮게 발견되고 있다. 다만 이런
움직임이 결국 폭넓은 대중의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는 범대중적인 영향력으로 확산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아직
무르익지 않은 시장성과 휘발되는 재미 이상의 가치를 부여하지 못하는 콘텐츠의 질적인 성숙 여부도 향후 MCN 산업의
청사진을 가늠하는 키가 될 것이다.
결국 우리 손에 쥐어져 있는 스마트폰이 1인 미디어의 향방을 좌우할
것이다. 흥미 있는 콘텐츠는 SNS를 통해서 실시간으로 공유되고
발 빠르게 전파된다. 1인 미디어 시대란 결국 스마트폰이란 디지털 디바이스를 통해 발견된 새로운 영토를
개척한 개인 창작자들의 서부시대다. 그 중에서도 영상 콘텐츠는 1인
미디어 시대의 패권을 가늠할 알파요, 오메가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당연히 주목하지 아니할 수 없다.
솔직히 남성용 피임약이 개발됐다는 사실에 별로 놀라지 않았다. 그보단
남성용 피임약이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남성용 피임약을 검색해보니 관련기사가
수두룩하다. 자세한 내용을 보니 ‘바살젤은 기존의 정관수술처럼
고환에 있던 정자가 외부로 나오는 길인 정관을 막아 임신 가능성을 낮추는 원리를 사용한다’라고. 다시 정리하자면 사정은 하지만 정자는 나오지 않는다는 듯. 그러니까
다운로드는 받았는데 폴더 안에 파일이 비었다고? 믿거나 말거나 과학적으로 어느 정도 실효성이 인정되고
있나 보다. 임상실험에서 12마리의 토끼가 피임 효과를 보였다고. 잠깐, 12마리의 토끼라니, 토끼? 아니, 왜 하필 토끼야? 너무
일찍 싸서 슬픈 동물 아닌가. 그래서 정자가 나올 틈도 없는 거 아닌가!
어쨌든 남성용 피임약이 그 목표대로 피임 외의 부작용만 없다면야 반대할 이유는 없을 거다. 일단 당장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임신’이라는 2음절을 넣고 검색해 보시라.
‘남친과의 섹스 중에 질내 사정이 의심되는데 임신을 한 건 아닌지’란 식의 물음이 적지
않게 발견된다. 그러니까 왜 말을 못해. 이 콘돔이 네 콘돔이다! 왜 말을 못해! 콘돔을 끼우면 느껴지지가 않는다는 그 놈의 사정을
봐주다 임신을 하면 그 짐을 당장 무겁게 짊어져야 하는 건 아무래도 남자보다도 여자다. 섹스에서 콘돔
착용이라는 기본적인 피임을 거부한 남자의 책임보다도 그걸 허용한 여자가 짊어질 책임이 보다 막대하다. 그러니
확실하게 주장해야 한다. 꼴린 대로 덤비지 말고 씌우고 덤비라고. 그런
의미에서 남성용 피임약은 훌륭한 대안이다. 0.03mm의 초박형 콘돔조차 거부하는 남성의 예민함도 존중할
수 있는 미래가 열렸다.
이는 결국 남성에게 실로 좋은 일 아닌가?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다는
윤동주보다도 섬세한 당신의 거시기에게 남성용 피임약은 링컨의 노예해방에 버금가는 업적이다. 물론 콘돔회사
사장님이 이 글을 싫어하겠지만 어쨌든 마실 물과 약만 있으면 마음껏 쌀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데 거부할 이유가 있는가. 게다가 잠깐의 쾌락에 몸을 떨며 멋대로 싸질렀다가 창창하던 미래를 계획에 없던 육아와 자식 부양으로 수렴하는
모험을 감수하지 않아도 된다. 질외사정을 하면 된다고 생각하겠지만 종종 당신의 사정은 당신의 머리보다
빠르다. 쾌감을 느끼고자 하는 본능이 미래를 생각하는 이성보다 강하다.
불과 10초 남짓한 쾌감과 예기치 않은 미래를 교환하는 건 지나친 기회비용이다. 그리고 그 10초 남짓한 쾌감을 보다 생생하게 느끼고 싶다는 욕망을
버리지 못하겠다면 해결책은 간단하다. 먹으면 된다. 남성용
피임약을.
물론 남성용 피임약은 아직 시판 전이다. 우리는 토끼가 아니므로 아직
남성용 피임약을 먹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하지만 언젠가 그것이 나온다 해도 머뭇거릴 이유는 없다. 아마도 그것은 당신의 사정에 해롭지 않을 것이다. 호르몬 조절을
통해 피임을 유도하는 여성용 피임약에 비해서도 그것은 훨씬 안전하다. 그저 당신의 정자가 나갈 길을
막는 문지기를 잠시 추가하는 것뿐이다. 적어도 임상실험에 성공한 남성용 피임약이 증명한 이론은 그렇다. 당신을, 아니 당신의 쾌감을 해치지 않는다. 그러니 그날이 오면, 삼켜라. 그럼
느낄 것이다. 그리고 당신의 사정에 건배를.
(GRAZIA KOREA JUNE FIRST ISSUE 2016 'GRAZIA COLUMN')
지난 2월, 설리의 화보에
관한 뉴스를 발견했다. 무심코 클릭했다. 의외였다. 숱하게 연예인 화보를 진행하는 에디터로 밥벌이를 했던 경험을 반추했을 때 일반적인 여성 아이돌 화보에서 이렇게
도발적인 콘셉트를 허해줄 확률은 대부분 0으로 수렴된다. 노란
티셔츠와 숏팬츠를 입고 나른한 자세와 야릇한 표정으로 빤히 바라보는 설리의 눈은 마치 입과 같았다. 무언가
말을 거는 듯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느낌. 여느 걸그룹 아이돌
화보와는 공기가 달랐다. 그런데 이는 설리의 인스타그램으로 공개된 컷이라 했다. 특정 매체의 화보임을 명시하는 로고도 없었다. 그리고 기사에서 개인적으로
친숙한 이름을 발견했다. "'미소녀 전문 포토그래퍼'로
알려진 로타 씨가 촬영한 화보 5컷"이라니! 궁금해서 로타 형에게 직접 전화를 했다. 설리와의 화보컷에 왜 매체명이
없어요? "설리 씨로부터 직접 연락이 왔어. 개인작업을
진행하고 싶은데 가능하냐고." 헐.
설리가 궁금해진 건 그때부터였다. 아이돌 스타로서 대중이 바라는 예쁜
모습을 충족시켜주는 대신 자신이 예쁘다고 생각하는 모습을 과감히 전시하는 설리의 행보가 파격적으로 와 닿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대중의 취향 안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는가라는 건 다음 문제다. 하지만
화보컷 공개는 일종의 예고편에 불과했다. 지난 4월 9일, 포털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설리의 이름이 떠올랐다. 박병호와 이대호가 메이저리그 무대에서 나란히 홈런을 치며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에 오른 시간에 말이다. 설리도 메이저리그에서 홈런을 쳤나? 그럴 리가. 그날 설리의 인스타그램에는 최자와 함께 찍은 사진이
올라왔다. 평범한 셀카는 아니었다. 침대에 함께 누워 얼굴을
마주보고 입을 맞추는 모습. 초점이 맞지 않은 사진 너머의 연인은 그렇게 만인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있었다. 이와 관련된 온갖 기사와 블로그 포스팅이 쏟아져 나왔다. 포털사이트에선
설리를 검색하면 '설리 인스타그램'을 비롯해 '설리 인스타 논란', '설리 최자'
그리고 '설리 생크림' 등의 자동검색어가 제공된다. 설리의 인스타그램을 향한 관심이 풍년이다.
흥미로운 건 설리의 태도다. 어느 날 설리는 입 안 가득 생크림을
들이붓고 꿀꺽 삼키는 영상을 올렸다. 그 아래로 누군가는 강한 혐오를,
누군가는 열렬한 애정을 댓글로 남겼다. 솔직히 설리가 생크림을 삼킨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에
대한 반응은 뜨겁게 엇갈린다. 하지만 설리는 그저 자신이 원하는 것을 거듭 전시한다. 게임의 룰을 지배한다. 아이돌 스타에게 대중이 기대하는 이미지를
충족시켜주는 대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적나라하게 꺼내 보인다. 놀랍지 않은가. 솔직히 나는 한국에서 이렇게까지 자기 욕망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는 아이돌 스타가 등장할 것이라 예상해 본 적이
없다. 마치 김연아의 트리플 컴비네이션 점프를 보는 것만 같다. 주저하지
않고 뛰어올라 차분하게 착지한다. 그리곤 뒤돌아 보지 않고 제 갈 길로 가버린다.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두고 설왕설래하거나 말거나 자기 일상을 마음대로 전시할 권리를 충실히 이행한다.
설리의 인스타그램이 그녀의 삶을 얼마나 정직하게 반영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걸 꼭 알아야 할 권리가 그
누구에게도 없고, 설리에게 그것을 해명할 의무도 없다는 걸 생각한다면 설리의 인스타그램을 두고 떠들어대는
세간의 태도와 대조되는 설리의 전지적 방관은 상당히 유쾌한 일이다. 그리고 우린 이렇게까지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아이돌, 아니, 연예인을 목격해본 기억이 없었다. 우리가 예상하는 전형적인 아이돌 스타에 대한 관습적 기대감을 완벽하게 부수고 자신의 행복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건강한 욕망을 가릴 것 없이 드러내는 당당함. 자신의 사랑을 거리낌 없이 표현하고 선언할 수 있는
자신감. 거짓말처럼 툭 하고 나타난 판타지스타랄까. 계속
설리를, 설리의 인스타그램을 보고 싶다. 이토록 매력적인
당당함과 자신감을 계속 팔로우하고 싶다. 설리라는 건강한 욕망을.
(GRAZIA KOREA MAY FIRST ISSUE 2016 '10 HOT ATORIES')
세상은 넓고 볼 영화는 많다. 그래서 국제영화제가 개최된다. 천편일률적인 멀티플렉스를 벗어나 동서남북 전국을 돌며 좋은 영화를 찾아 떠나는 기회. 잘 몰랐다면 지금부터 알면 된다.
바야흐로 봄이다. 화사한 벚꽃과 노란 개나리꽃을 보며 사람들은 봄을
만끽한다. 하지만 시네필의 봄맞이는 벚꽃 시기가 지날 무렵 전주에서 시작된다. 매년 4월 말이 되면 어김없이 열리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말이다. 그렇게 본격적인 한 해의 영화 순례가 시작된다. 이 순례는 대부분 10월 초에 개최되는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절정에 달한다.
한국에서 개최되는 영화제는 100여 개에 달한다. 이는 국내외에서 필름을 수급해 상영하는 일반적인 영화제 외에 영화 관계자들을 위한 영화시상식도 일부 포함한
결과다. 여기엔 ‘국제’란
단어로 수식된 영화제도 30여 개나 된다. 크고 작은 영화제의
정확한 수를 가늠하기가 어려울 정도. 1년 열두 달 동안 수많은 영화제가 전국에서 끊임없이 관객을 향해
손짓한다. 가히 영화의 나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본격적인 영화제의 논의가 시작된 건 1995년이었다. 문화공보부 차관과 영화진흥공사 사장직을 역임한 김동호는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직에 관한 제안을 받았고, 이를 수락했다. 그리곤 부산시와 몇몇 기업에서 협찬과 후원을 받아
약 20억여 원의 예산을 마련했다. 그리고 1996년 10월 6일,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가 개최됐다.
남포동 일대를 주무대로 진행된 초기의 부산국제영화제에는 지금으로선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소박한 재미가 있었다. 지금은 좀처럼 기대하기 어렵지만 당시만 해도 왕가위나 박찬욱 같은 거장들이 남포동의 보도블록 위에서 신문지를
깔아 놓고 술을 마시는 풍경을 손쉽게 만날 수 있었다.
1997년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가 개최되고, 2000년엔 전주국제영화제가 막을 올리며 부산국제영화제와 함께 국제영화제 트로이카 시대를 열었다. 부산과 부천, 전주라는 도시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지역적인 축제를
넘어서 세계적인 영화제로 자리매김했다. 이는 다양한 영화제가 도래하는 시대의 촉발로 이어졌다. 지방자치제 시대의 도래와 함께 지역을 대표하는 축제의 필요성이 대두됐다는 점에서 성공적인 영화제 개최 사례는
좋은 선례였다. 게다가 할리우드영화와 한국영화 위주의 영화들로 점철된 국내극장가의 현실을 감안했을 때
이 시기의 국제영화제들은 다양한 국적과 장르의 스펙트럼을 지닌 영화들을 국내에 전파하는 프리즘 역할을 해냈다. 그리고
관객들은 영화제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성실한 호응으로 숨을 불어넣었다. 결국 다양한 국제영화제는 영화제를 찾는 관객들이 존재하는 덕분에 존재하는 행사다. 영화제의 진정한 주인은 관객인 것이다.
하지만 모든 영화제의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특히 영화제를 주관하는
지자체와 영화제를 운영하는 집행위원회와의 불협화음이 심심찮게 도래하며 영화제의 뿌리를 흔드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전주국제영화제는 2회 직전 지자체와 갈등을 빚어온 프로그래머가 사퇴하며
흔들리는 상황이 연출됐고,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일방적인 집행위원장 해고 사태로 영화제 자체가 존폐
위기를 맞이하기도 했다. 현재 표류 중인 부산국제영화제 또한 이와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다. 대부분의 영화제가 이런 문제 앞에서 영화제의 역사를 송두리째 상실할 위기에 놓였거나 놓여있다. 영화제는 단순한 지역 행사가 아니다. 영화를 선정하는 전문 프로그래머와
영화제 운영의 노하우를 익힌 전문적인 운영위원들이 꾸준히 영화제의 내실을 다짐으로서 성장해 나갈 수 있는 문화적,
경제적 보고다. 그만큼 전문인력양성을 도모하고 이를 보조하는 기관의 협조와 이해가 절실하다.
어쨌든 올해에도 이미 기지개를 켠 전주국제영화제를 필두로 다양한 영화제가 손님맞이를 준비 중이다. 그러니 당신은 그저 두둑하게 준비하기만 하면 된다.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여유와 기대를.
전주국제영화제
2016. 4. 28 ~ 2016. 5. 7
전주 고사동 영화의 거리 일대
올해로 17회를 맞이한 전주국제영화제는 부분경쟁을 도입한 비경쟁 영화제다. 영화들이 수상을 위해 출품된 작품보단 상영과 발표에 목적을 두고 있단 의미다.
그런 면에서 전주국제영화제의 가장 큰 특징은 디지털영화나 독립영화와 같이 기존의 주류영화가 가지고 있지 않은 문법이나 정서에 주목한, 대안적인 영화들을 위해 뿌리 내린 국제영화제로 자리잡았다. 매년
영화제에서 발표되는, 세 명의 국내외 감독들이 참여하는 디지털 단편 옴니버스 기획 ‘디지털 삼인삼색’과 영화제가 선정한 세 명의 국내감독이 완성하는 단편영화
기획 ‘숏!숏!숏!’은 전주국제영화제를 대표하는 인장과도 같다. 무엇보다도 연간 700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는 도시로 성장한 전주에서 열리는 국제영화제란 점에서 영화 외적으로도 즐길만한 여흥이
많다는 건 영화제 입장에선 상당한 장점이다. 그만큼 도시의 전성기와 함께 영화제의 발전 가능성도 보다
무궁무진할 것 같다.
부산국제영화제
2016.10.6~2016.10.15
부산 해운대 센텀시티와 남포동 일대
벌써 21회를 맞이할 차례인 부산국제영화제는 국내 영화제의 맏형 노릇을
해왔다. 한국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최고의 영화제로 성장한 부산국제영화제는 ‘아시아의 창’이란 슬로건을 필두로 아시아영화들의 전진기지 역할을 해왔다. 초기엔 남포동 일대를 중심으로 운영되던 영화제는 근래에 들어선 해운대 일대로 영화제의 중심무대를 옮겨갔다. 이를 통해 해운대 바다를 배경 삼아 다양한 영화제 부대행사를 진행하며 관객과 영화제 사이의 거리감을 긴밀하게
좁히는데 성공했다. 무엇보다도 아시아 최고의 영화제로 자리한 부산국제영화제는 아시아영화들로 제한된 부분경쟁을
도입한 비경쟁영화제로서 아시아영화들의 발전과 미래를 제시하는 영화제로 확고한 자기 영역을 확보했다. 또한
아시아영화뿐만 아니라 미국과 유럽 등지의 다양성영화들이 소개되는 장으로서 영역을 확장해 나가는 중이다. 해운대를
낀 입지 조건은 영화제를 찾은 관객들이 다시 부산으로 발길을 돌리게끔 만드는데 일등공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부산을 다시 찾을 시네필들을 위해서 그리고 한국을 대표하는 국제영화제의 위상을 위해서 영화제의 정상화는 절실할 수밖에 없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2016. 7. 21 ~ 2016. 7. 31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일대
올해로 20주년을 맞이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부산국제영화제에 이어
두 번째로 긴 명맥을 자랑하는 국제영화제다. ‘판타스틱’이란
단어를 직접적으로 내건 만큼 장르 영화제로서의 정체성을 세우기 위한 노력이 지속돼 왔다. 호러와 SF, 스릴러, 판타지 장르 그리고
B급 영화의 하위 문화까지 포괄하는, 다양한 취향의 영화들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통해서
저변을 넓혀왔다. 최근 10년 동안은 장르적 취향의 작품
이외에 코미디나 액션, 멜로드라마를 포함한 대중적인 영화들도 영화제를 통해 소개되고 있는 상황이다. 장르영화제로서의 정체성을 공고히 다져나간 10년 이후부턴 영화제
자체의 대중적 규모를 강화해나가는 인상이다. 한편 올해부턴 영화제 시기와 맞물려 개최되는 부천국제만화축제와의
연계도 적극적으로 모색할 예정이다. 부천이라는 지역적 공통 분모를 통해 축제의 분위기에 활기를 더하겠다는
밑그림은 분명 주목할만한 청사진이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
2016. 8. 11~ 2016. 8. 16
의림지와 청풍호반 그리고 제천 시내 일대
2005년에 시작된 영화제이지만 부산국제영화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와 함께 4대 영화제로 꼽힐 정도로 빠르게 성장했다. 매년 8월 중순마다 광복절 휴일을 끼고 개최되는데 운치 있는 청풍호반을 병풍처럼 두른 개막식부터 제천국제음악영화제의
분위기는 운치 있게 달아오른다. 음악영화제이지만 단순히 음악영화를 위한 축제인 것만은 아니다. 음악과 영화가 어우러진 축제에 가깝다. 다양한 음악영화들과 음악영화라
호명되지 않아도 음악적 울림이 있는 좋은 영화들이 의림지나 청풍호반과 같은 고즈넉한 풍경들과 어우러져 눈을 홀리는 동시에 다양한 음악 공연들이
매일 같이 귀를 홀린다. 국내에서 큰 인기를 모았던 영화 <원스>를 발굴한 영화제이기도 한데, <원스>의 주연배우이자 뮤지션인 마르케타 이글로바가 영화제를 찾아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지난해엔 상영관 좌석점유율이 80%에 육박하기도 했는데 그만큼 영화제를
한번 찾은 관객이 다시 찾아오는 일도 많다. 그만큼 영화제에 대한 관객들의 만족도가 상당하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
2016. 6. 2~ 2-16. 6. 8
메가박스 신촌, 아트하우스 모모
“여성의 눈으로 세계를 보자!”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올해로 18회를 맞이하는 영화제다. 여성이란 정체성을 내세운 것처럼 여성의 주체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관통하는 영화들을 소개하는데 사회적 약자로서
그늘진 여성상을 조명하거나 주체적이고 아름다운 여성성을 화두로 삼은 전세계 영화들이 관객을 찾는다. 전세계적인
여성영화의 흐름을 짚고 아시아 여성영화인과 여성영화제 사이의 네트워크를 잇는 여성영화계의 가교 역할을 하는 데에도 앞장 서고 있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30여 개국에서 초청된 100편 이상의 영화를 통해 꾸준히 관객과 소통해 왔는데 이는 여성영화제 중 전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이기도 하다.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
2016. 9월 중
메가박스 신촌, 아트하우스 모모
올해로 18회를 맞이할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는 비로소 청소년을 내건
영화제에 걸맞은 나이로 성장했다. 청소년영화제인 만큼 성장통과 가족을 주제로 둔 영화들을 주로 소개하고
있다. 다만 키즈아이, 틴즈아이, 스트롱아이로 상영작을 구분하는 섹션을 운영하는데 이는 성장통이라는 주제의식에 대한 극적 표현의 강약에 따라
구별된 것으로 관람작을 선택하는 관객들을 위한 배려에 가깝다. 또한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는 청소년영화를
상영하는 영화제를 넘어 청소년을 위한 영화제로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용하고 있다. 새로운 시대에 영상문화를
이끌 전세계 청소년들을 위한 영상 기술을 학습하고 직접 영상을 제작하는 캠프를 운영하는데 이 과정을 통해 전세계 청소년들이 교류할 수 있는 장을
연다는 의미에서도 젊은 세대를 위한 영화제의 미덕이 엿보인다.
예향의 도시라 불리던 광주에 아시아문화의
허브를 표방하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열렸다. 낮은 자세로 임하듯 자리하고 있지만 놀라우리만큼 꽉 찬
공간이었다.
2015년 11월 25일, 광주에서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개관식이 열렸다. 2006년에 제정된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본격적인 사업이 추진된 이래로 10여 년 만에 구체적인
실체가 드러난 것이다. 구 전남도청 부지를 포함해 무려 4만8천여 평의 너비로 조성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서울의 용산국립중앙박물관이나 예술의 전당보다도 넓은, 국내 최대 규모의 문화시설로 완공됐다. 하지만 지상에서 그 위용을
확인하긴 어렵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내려다 봐야 알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지상 아래에 설계된 지하 공간이다. 지하 공간에
조성된 대규모 문화시설이라 하니 지하로부터 실내 공간이 이어지는 파리 루브르 박물관의 형태를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모든 시설은
하늘이 올려다 보이는 너른 광장을 통해 연계된다는 점에서 루브르 박물관과는 완전히 다른 공간이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폐쇄적인 지하 구조 대신 뉴욕의 록펠러 센터와 같이 개방적인 선큰(Sunken) 광장의 형태로 설계됐다. 가까운 예로는 서울 삼성동의 코엑스몰 입구 연결로를 떠올리면 된다. 하지만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드높은 빌딩 아래 조성된 공간도 아니고, 단순한 통로도 아니다. “중간에 있는 큰 광장은 한옥의 마당 같은 것입니다. 가족들이 한옥의
마당을 통해 서로 연결되듯이 이 마당을 통해 사람들도 통하는 셈이죠. 하늘을 향해 뚫려 있으면서도 내향적인
공간이기도 하고요. 그럼으로써 아시아적인 공간이자 결국 한국적인 공간인 것이죠.”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설계한 재미 건축가 우규승의 설명처럼 이 광장은 시민들의 접근이 용이한 공간으로서 의미가
남다르다. 충장로와 금남로 일대의 지하상가와 이어짐은 물론 지하철과 연계돼 있고, 지역에서 가장 많은 인파가 몰리는 중심 번화가에 자리해 있다는 점을 생각하자면 이 너른 광장은 광주의 중정이나
다름없다.
무엇보다도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지하에 건축된 건 광주의 역사적 배경과 깊게 연관돼 있다. “기억에 대한 문제가 중요했습니다. 5.18 민주화운동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간직한 장소인 만큼 그런 기억을 어떻게 되살릴 수 있겠는가라는 고민이 있었죠. 전남도청 건물을
보존하는 것만으론 부족했어요. 이를 압도하는 큰 건물을 올려선 안되겠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이건 문화산업시설이기 때문에 과거에 집착한다는 인상을 주는 것도 곤란했어요. 과거를 보존하면서도 미래로 연결할 수 있는 여건을 형성하는 게 관건이었습니다.”
건축가 우규승의 깊은 고민은 결국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구조적 깊이로 완성됐다. 실제로 지상에서
바라본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구 전남도청 건물을 제외하면 그저 너르게 조성된 평탄한 공원처럼 보인다. 이는
숭고하게 기록돼야 할 역사적 유물을 미래지향적인 문화 시설을 통해 떠받든다는 점에서 입체적인 의미를 낳았다.
“구글 사진을 통해 보게 된 광주는 회색이었어요. 녹지가 거의 없다는 걸 알았죠.” 건축가 우규승의 말처럼 광주는
녹지 조성에 인색한 도시였다. 천혜의 자연 경관을 품은 무등산이 가까이 자리한 탓일지 모르지만 편히
찾을 수 있는 공원이 부재했다는 건 아쉬운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광주에 새롭게
이식된 허파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낮은 곳으로 임한 주요 건물들 덕분에 평탄한 여백이 된 지상을 채운
건 만연한 초록이다. 다양한 나무와 식물들을 심고 산책로를 조성했다.
번화한 충장로의 상점가에서 길만 건너면 손쉽게 여유를 찾을 수 있다. 게다가 드넓은 풍광을
가리던 전남도청 일대의 주변 건물들이 사라진 덕분에 멀리 무등산까지 시야가 확보됐다. 도심에 새로운
옷을 입혔다. 도시의 색도, 풍경도 완전히 달라졌다.
아시아라는 이름으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다섯 공간으로 구별된다. 구 전남도청 건물을 활용한
민주평화교류원과 문화정보원, 문화창조원, 예술극장 그리고
어린이문화원까지. 민주평화교류원을 제외한 네 공간은 모두 지하에 기반을 두고 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그 이름처럼 아시아문화를 위한 전당이다. 하지만
단순히 아시아문화를 관람할 수 있는 전시장이나 공연장의 기능만을 염두에 둔 공간은 아니다. “아시아
각지에서 수급한 자료를 토대로 아시아문화에 관해 연구하고 이런 연구 자료를 보관하고 공유함으로써 실질적인 문화 창작에 기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완성된 예술적 결과물을 보여줄 수 있는 무대를 갖춤과
동시에 이를 보다 넓은 세계로 유통할 수 있는 파이프 라인을 구축하려는 것이죠.” 문화창조과의 박종달 과장의 설명처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거대한 포부를 품고 있다. 이는 막연한 선언이 아니다. “지금까지 예술극장에 서른세 편의 공연을 무대에 올렸는데 이중에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직접 제작하거나 공동
제작한 열여섯 편이 미국, 영국, 독일, 스위스 등지에서 107회 정도의 공연을 펼칠 예정입니다.” 박종달 과장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의
개관작인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열병의 방>과
김지선의 <다음 신의 클라이막스> 등이 이에 해당된다.
그런 의미에서 문화정보원은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두뇌와 같다. 아시아문화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한 지식을 보관하고 널리 공유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특히 직접적인 실물 자원과
다양한 기록물과 영상 자료로 채워진 문화정보원의 라이브러리 파크는 그야말로 아시아문화 정보의 보고와 같다. 아시아의
근현대건축에 관한 자료들은 저마다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주거 형태를 소개함으로써 아시아라는 이름 아래 존재하는 다양한 삶을 유추하게 만든다. 그리고 사진과 영상을 통해 그렇게 짐작한 삶의 실제 표정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아시아 각국의 현지에서 녹음된 소리를 듣고 실제적인 삶의 감각을 체험할 수 있다. 단순히 총합적인 자료를
보관하는 공간을 넘어 아시아라는 거시적인 영토의 곳곳에 자리한 미시적인 삶으로 관객을 밀어 넣는다.
이러한 과정은 우리가 속한 아시아를, 우리와 가까운 아시아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우리가 서양에 비해 동양의 문화예술을 등한시해온 경향이 있잖아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인접한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관심을 일깨우고 예술적 가치를 일으켜 보자는 취지가 담긴 공간이에요.” 박종달 과장의 말처럼 우리가 잘 몰랐던, 어쩌면 크게 관심이
없었던 아시아를 향해 시선을 돌리게 만든다. 그리고 비로소 아시아의 공연예술과 퍼포먼스 아트, 크리에이터, 실험영화 등 다채로운 예술적 기록을 만나게 된다. 이곳이 비단 지식 전달의 목적에만 충실한 공간은 아니다. 벽을 따라
일렬로 이어지는 대나무 위로 은은한 자연광이 떨어지는 테라스 공간에선 자유롭게 휴식을 취하거나 담소를 나눌 수 있는 설비를 제공한다. 테라스 공간과 인접한 실내 창가엔 다양한 문화적 지식을 향유할 수 있는 도서들과 테이블이 길게 이어져 있다. 괜히 라이브러리 파크라 명명된 것이 아니다. 그야말로 도서관과 공원의
융복합적 공간인 것이다.
문화창조원과 예술극장은 현재진행형의 아시아문화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대면하게 되는 공간이다. 문화창조원은 인문과 예술, 과학의 경계를 초월한 영감을 이끌어내는
자궁이자 그로부터 잉태된 결과물을 세상에 드러내는 분만실이다. 일단 거대한 스케일과 경이적인 발상으로
점철된 세계적인 뉴미디어 예술가들의 작품들을 통해 감각의 우주를 체감할 수 있다. 바닥에 깔린 거대한
스크린 위로 변화무쌍한 바코드 패턴을 흘려 보내며 그 패턴에 호응하는 EDM 사운드로 공간을 가득 메운
료지 이케다의 <테스트 패턴 [n°8]>은
그야말로 감각을 두들기는 극렬한 체험이었다. 반대로 아트+콤
스튜디오의 <RGB/CMYK 키네틱>은 기계의
움직임으로 우아함의 극치를 선사하는, 테크놀로지의 미학이란 흥미를 던진다. 동서양의 탈경계적인 발상을 제시하고, 신화적인 상상력으로 아시아
역사와 전통을 해석한, 인문학적인 고민이 깊게 배어있는 작품들도 만날 수 있다. 국내외 예술가들의 창작과 제작 연구를 지원하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통한 성과를 만날 수 있는 공간이란 점에서
미래지향적인 의의와 성취를 발견할 수 있는 전시관이기도 하다.
거대한 문이 압도적인 인상을 주는 예술극장은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기 힘든 가변형 극장이다. 극장 바닥은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는 구획으로 나눠져 무대와 객석의 위치와 형태를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 무엇보다도 완전히 개폐가 가능한 여닫이 문을 통해 실내 관객과 실외 관객 모두를 향한 쌍방향 무대를 연출할
수 있다는 점은 같은 공연을 보는 관객의 체험을 양방향으로 제시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거대한 위용을
자유자재로 변형할 수 있는 극장 자체가 예술적인 인상을 준다.
지역과 미래로 소통
어린이문화원은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가장 이색적인 공간이다. 유일하게
어린이들을 위해 특화된 테마파크다. 하지만 단순한 놀이터가 아니다. “어린이문화원은
국제교류, 창작 및 제작과 함께 전당의 3대 핵심사업입니다. 문화적 다양성을 체험하고 다문화사회에 대한 자연스러운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어린이극이나 음악극 형식을 빌린
창의적 교육과 다양한 체험 학습 기회를 제공하고 있죠.” 박종달 과장의 설명과 함께 왁자지껄한 아이들의
음성이 섞여 들렸다. 웃고 뛰놀며 자연스럽게 아시아의 문화에 익숙해지는 아이들의 미래가 궁금해졌다.
무엇보다도 이 공간은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기도 하면서도 자녀가 있는 지역민들이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란 점에서 의미가 크다. 아시아 문화의 보고가 되길 지향하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터전인 광주에서
자란 아이가 이곳에서 보고 경험한 것을 토대로 새로운 문화의 주역으로 자라난 결과를 보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숭고한
민주항쟁의 영토가 범세계적인 문화적 거점으로 거듭난다는 건 여러 모로 유의미한 사례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아직 정비 중인 민주평화교류원의 역할이 중요해 보인다. 역사적 의미를 온 몸으로 안고 있는
구 전남도청 건물을 인계한 민주평화교류원은 아시아의 민주주의와 인권 등의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적 교류의 장이 되고자 한다. 역사를 계승하는 의미 이상의 성과가 더해진다면 가치는 더욱 무궁무진해질 것이다.
유럽에서 가장 큰 현대미술관으로 알려진 파리의 퐁피두 센터를 찾았을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길게 늘어선 줄이었다. 도서관과 어린이 체험 공간, 독립영화 상영관에 입장하기 위해 퐁피두
센터를 찾은 현지인들의 줄이 미술관 입장을 기다리는 줄에 비해 압도적으로 길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여러 모로 퐁피두 센터를 떠오르게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아시아문화의 스펙트럼을 전하는 프리즘이 되길
꿈꾸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진짜 살아 숨쉬는 공간이 되길 기원한다. 수많은 이들이 두 발을 딛고 서서
아시아를 보고, 느끼며 공감할 수 있는, 사람과 함께 호흡하고
사랑 받는 문화와 교류의 광장 같은 곳 말이다.
(MorningCalm MAY 2016 'Contemporary Korea / Asia Culture Cen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