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정하게 말하자면 전편인 <슈렉 3>는 <슈렉>시리즈의 명성을 죄다 깎아내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단지 시리즈를 이어나가야 한다는 강박과 캐릭터의 인기에 온전히 기대버린 듯한 성의 없는 완성도는 지난 두 편의 전작이 일궈낸 성과의 발목을 잡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슈렉 포에버>는 어딘가 의심스러운 작품이다. 단지 <슈렉 3>의 속편이란 점만으로도 <슈렉 포에버>는 시리즈의 배수의 진이나 다름없다. 전편의 실패를 만회할 것이냐. 하지만 <슈렉 포에버>는 다른 의미의 승부수를 던졌다. 시리즈의 피날레, <슈렉 포에버>는 시리즈의 마지막을 공언한 작품이다. 이는 비장한 결의의 일종이거나 모종의 비겁한 변명이다. 물론 판단은 작품의 완성도에 달렸다.
<슈렉 포에버>는 더 이상 어느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 전시용 괴물이 되어버린 듯한 슈렉의 불만스런 일상을 비춘다. 자신을 빼닮은 세 아이와 사랑하는 아내 피오나, 그리고 언제나 자신의 곁을 지키는 친구 동키와 장화 신은 고양이, 슈렉은 이들과 함께 매일 같이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아니, 적어도 다른 사람들 눈에 행복하게 보일 것 같은 일상을 버틴다. 결코 변하지 않는 매일은 쳇바퀴 돌듯 찾아오고, 안락한 삶은 벗어날 수 없는 감옥이 된다. 그러니까 슈렉이 아버지로서, 가장으로서의 권태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점차 프리하고 와일드한 지난 날의 일상이 그리워진다. 그리고 그에게 단 하루나마 그 일상을 되찾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다시 한번 냉정하게 말하자면 <슈렉 포에버>는 더 이상 이 시리즈가 원래의 아이덴티티를 회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증거처럼 보인다. 그리고 스스로 시리즈의 마지막을 선언한 지금의 입장에서는 마치 고백처럼 이해된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시리즈 안에서 성공적인 결과물이었다 평할 만한 <슈렉>과 <슈렉 2>는 기존의 디즈니 월드로 대변되는 착하고 순수한 동화적 패러다임을 전복시키는 패러디 세계관이 뚜렷한 개성을 지닌 캐릭터의 위트나 유머와 연동됨으로서 시리즈만의 확실한 가치를 어필했던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슈렉 3>를 비롯해 <슈렉 포에버>의 가장 큰 약점은 바로 그 세계관의 온전한 상실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앞선 두 편과 달리 그 뒤를 잇는 두 편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가장 명확한 특징은 애초에 <슈렉>이 패러디하던 세계관이 온전히 껍데기만 남겨졌다는 사실이다. 애초에 자신이 패러디했던 세계관에 대한 독설은 사라지고, 그 알맹이가 사라진 껍데기들이 체스판의 말처럼 움직이며 작품을 구성하고 있다. 물론 <슈렉 포에버>에서도 여전한 건 활기 넘치는 캐릭터들을 보는 재미 그 자체다. 슈렉은 여전히 슈렉이다. 하지만 <슈렉>은 여전히 <슈렉>이 아니다.
물론 서사적으로 <슈렉 포에버>는 극명한 실패의 사례라고 해도 좋을 <슈렉 3>보다 나은 완성도를 품고 있다. 시리즈의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 그 시작점과 연결된 에피소드를 착안하며 나름의 전개적 논리를 마련한 것도 발전적이다. 하지만 이는 애초에 <슈렉>이라는 시리즈의 아이덴티티를 회복할 수 있는 결과물이 아닌, 혹은 그럴 가능성조차 희박해보이는 기획이다. 동화적 세계관의 껍데기를 엮어 새로운 이야기를 창출함으로서 스스로 동화가 되려는 것처럼 보이는 <슈렉>을 본다는 건 자신의 앞선 전력을 온전히 망각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니까 슈렉은 그렇게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따위가 <슈렉>이 할 수 있는 해피엔딩이었던 것일까. 그나마 다행인 건 <슈렉 포에버>가 시리즈의 마지막이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이제 슈렉이 돌아왔다, 는 변명 따위로 끌려나온 슈렉의 어색한 모습은 더 이상 보지 않아도 좋다는 말인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