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에 돌란은 일찍이 게이임을 커밍아웃했다. 그가 자신의 영화
대부분에서 직접 게이로 등장하는 건 아마 그것이 자신에게 가장 자연스러운 리얼리티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만큼
자비에 돌란의 영화를 퀴어영화의 범주에 묶어서 설명하는 건 간편하겠지만 한편으론 나태한 일이다. 자비에
돌란의 영화에 등장하는 성소수자들은 대부분 퀴어영화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존재로서 살아가기 보단 영화적인 스토리텔링으로 극대화되는 '삶'의 감정선을 극대화시키는 장치로서 작동하는
경향이 강했기 때문이다.
자비에 돌란 스스로 자전적인 영화라고 밝힌 연출 데뷔작 <아이 킬드 마이 마더>는 자비에 돌란이 연기하는 후베르트의 어머니에 관한 영화다. 후베르트의 어머니는 타인의 입을 통해서 자신의 아들이 게이라는 사실을 전해 듣게 되는데 이는 모자 관계의 갈등을
점화시키는 불씨가 된다. 하지만 그 갈등은 단순히 아들이 게이라서가 아니라 지속적인 갈등 국면을 이루는
하나의 원인으로 작동할 뿐이다.
자비에 돌란의 두 번째 연출작
<하트비트>는 특별한 삼각관계 로맨스물이다. 여기서
삼각관계를 특별하게 수식하는 건 자비에 돌란이 연기한 게이 청년 프란시스인데 그의 존재감이 삼각관계의 꼭지점 하나를 차지하면서 이 영화는 삼각관계 로맨스물의 전형성으로부터
완전히 탈피한다. 한 남자를 사이에 두고 경쟁하는 남녀의 갈등이란 특이성은서 우정이란 정서를 통해 보다 특별한 삼각관계의 갈등과 화해를 형성시킨다.
<탐엣더팜>에서도 자비에 돌란이 연기하는
탐이 게이라는 설정은 영화를 지탱하는 서스펜스에 지속적인 미스터리를 불어넣는 장치에 가깝다. 동성애인의
죽음을 애도하며 장례식이 열리는 연인의 고향을 찾는 탐은 현지에서 만난 애인의 친형 프란시스로부터 폭력과 협박에 시달린다.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엔 가학과 피학이라는 폭력적 작용과 반작용 이상의 기이한 기류가 더해진다. 자신의 폭력성을 통해서 관계적인 결핍을 충족하고 반대로 피해자는 그 폭력성을 통해서 상실감을 채우는 듯한 기이한
상충 관계가 형성된다. 이런 관계적 모호함은 결국 이 영화의 미스터리를 강화함으로써 서스펜스의 위력을
더하는데 일조한다.
어쩌면 여자가 되고 싶은 남자와 그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의 로맨스에 주목하는 <로렌스 애니웨이>야말로 자비에 돌란의 연출작 중에서 유일하게
퀴어영화의 카테고리 안에서 해석될만한 작품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칸영화제는 이 작품에 퀴어영화상을 안겼다. 하지만 자비에 돌란은 자신의 영화가 퀴어영화라는 카테고리에서 해석되는 것에 대해서 거부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창작자 자신의 바람과 달리 자비에 돌란의 영화는 퀴어영화의 영역 안에서 언급되고 회자될 것이다. 그것이 손쉽고 간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자비에 돌란의 족쇄
노릇만 하는 건 아닐 거다. 그의 영화를 선전하는 날개가 된다는 것도 부정할 순 없다. 퀴어영화라는 정체성이 주목 받을 만한 재능을 알리는 쇼윈도 노릇을 한다면 결코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닌 셈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 누구보다도 자비에 돌란 자신이 이를 가장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