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 배우에서 세계적인 스타로 변신했다는 신데렐라 스토리는 할리우드에선 상상할 수 있는 일이다. 가장 최근에도 그런 사례가 탄생했다. 크리스 프랫은 지금 완전히 다른 궤도로 진입했다.
사실 크리스 프랫이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2014)에 승선하기 전까지 완전한 무명 배우에 불과했던 건 아니었다. 올해로 6시즌까지 진행된 TV시리즈 <팍스 앤 레크리에이션>에서 연기한 앤디 역으로 적지 않은 인지도를 얻었고, 크리틱스 초이스 TV어워즈에선 코미디 남우조연상 부문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했다. 사실 <팍스 앤 레크리에이션>의 앤디는 유쾌한 유머 감각을 지닌 캐릭터란 점에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스타로드와 유사한 구석이 있다. 하지만 외모만을 놓고 본다면 마치 지구의 남반구와 북반구처럼, 믿을 수 없도록 동떨어진 존재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근육질의 육체미를 자랑하는 스타로드와 달리 앤디는 테디베어처럼 둥글둥글한 곡선미가 눈에 선명한 남자이기 때문이다.
크리스 프랫은 한 TV쇼에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출연 제안을 받았을 때 자신이 아내에게 소리쳤던 일화를 밝혔다. “여보! 75파운드나 몸무게를 빼야 되니 빵은 그만 구워!” 반쯤은 농담일지도 모르지만 실제로 그에겐 일종의 절실함이 있었다. 마블 코믹스의 팬이기도 했던 그에게 마블 유니버스의 일원이 될 수 있다는 제안은 그야말로 꿈 같은 일이었겠지만 어떤 식으로든 그의 경력 안에서 전환점을 만들 수 있는 기회였다. “나는 우스꽝스러운 감초 역할에 특화된 편이었는데 그런 역할을 통해서 경력을 쌓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해서 다른 오디션은 거의 참여하지 않았다. 하지만 <제로 다크 서티>(2012)에 출연한 뒤부턴 연기하고 싶은 배역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고, 매니저를 통해서 새로운 오디션을 찾아갔다.” 바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말이다.
사실 <제로 다크 서티>에서 크리스 프랫이 특별히 인상적인 역할을 맡았던 건 아니다. 그 이전에 출연했던 <원티드>(2008), <신부들의 전쟁>(2009)이나 <머니볼>(2011), <5년째 약혼 중>(2012) 등의 작품에서 어떤 배우가 맡았다 해도 상관 없을 만한 역할을 전전해왔다. 그나마 지난해에 제작된 <딜리버리 맨>과 <그녀>에선 각각 극의 중심인물이 지닌 정서적 갈등을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는 인물로 등장하거나 중심인물의 정서적 결핍을 긍정적인 태도로 수긍하고 이해하는 인물로서 자리하며 나름의 존재감을 어필할 만한 인물로 등장한 바 있다. 다만 편차가 심해 보이는 체중으로 인상이 자주 변화하는 탓에 크리스 프랫이란 배우에 대한 일관성 있는 인상을 꿰어내기가 쉽진 않았을 거다. 어쩌면 앞서 나열한 출연작들보다도 주연 캐릭터의 내레이션을 맡은 <레고 무비>(2014)에서의 존재감이 보다 확실하게 느껴질 정도랄까.
무엇보다도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스타로드를 보며 앞서 열거한 그의 출연작들을 짐작하는 이란 드물 것이다. 단언컨대 그럴 수밖에 없다. 식스팩과 수백 광년쯤은 동떨어진 듯한 체형의 무명배우였던 그의 과거를 연상했을 때 스타로드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사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어떤 면에서 크리스 프랫과 처지가 유사한 작품이었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또한 마블 코믹스의 역사를 차지하는 작품이지만 <어벤져스>의 세계관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낮은 세계관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크리스 프랫에겐 좋은 기회였다. “시나리오와 감독의 디렉팅을 벗어나지만 않는다면 뭘 해도 상관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게 배우로선 도움이 된다.” 대중에게도 낯선 역할인 만큼 자신의 관점이 새로운 기준이 된다 해도 상관없다는 걸 알았다. 게다가 낯설지 않은 작품이었다. 유년시절 친구를 통해서 우연히 원작 코믹스를 접한 적이 있었고 자신도 그 중 몇 권을 소장할 기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결과론적으론 운명적이란 의미를 붙일 수도 있을 거다. 게다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그의 기대를 넘어서는, 일종의 선물과도 같은 작품이었다. “출연을 결정하기 전에 시나리오를 보지 못했다. 막상 시나리오를 읽었을 땐 내 생각보다 훨씬 좋은 역이라서 안도했지. 시나리오가 아주 웃긴데, 그게 딱 제임스 건 감독 스타일이다. 그는 실제로도 아주 재미있는 친구다.”
사실 크리스 프랫은 자신과 함께한 동료들의 칭찬을 곧잘 하는 편인데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서도 주변 동료들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단순히 입바른 말을 잘해서라기 보단 그가 실제로 사려 깊고 친절한 동료이기 때문일 가능성이 다분해 보인다. 그는 <당신은 몇번째인가요?>(2011)라는 영화로 크리스 에반스와 함께 출연한 적이 있었는데 사실 그는 주연을 맡은 크리스 에반스의 역할에 오디션을 봤지만 작은 역할을 맡아야 했다. 하지만 그 이후로 크리스 에반스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크리스 에반스 또한 SNS를 통해 공개적으로 크리스 프랫에 대한 애정을 표한 바 있었는데 두 배우가 모두 마블 유니버스의 히어로로 활약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연치곤 기묘한 일이다. 언젠가 <어벤져스>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세계관은 필연적으로 중첩될 가능성도 다분한 만큼 두 배우가 한 스크린에 자리할 가능성도 존재할 것이다.
한편 그는 자상하고 세심한 가장이기도 한데 한번은 동료배우이기도 한 아내 안나 패리스의 머리를 땋은 사진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려서 화제가 됐고, 한 영상 인터뷰에서 머리 땋기 실력을 직접 시연해 보이기도 했다. 천연덕스럽게 내년 개봉작으로 예정된 <쥬라기 공원>의 새로운 속편을 홍보하며 1분만에 완벽한 머리 땋기를 선보인 그는 “(머리를 묶을 땐) 고무밴드보단 스크런치라고 불리는 걸 쓰는 게 낫다”는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한편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촬영으로 오랫동안 집을 비운 탓에 아내로부터 생후 13개월이 된 아들이 아빠를 못 알아볼 수도 있으니 낙심하지 말라는 조언을 받았지만 자신을 보고 ‘아빠’라고 불러주는 어린 아들로 인해 눈물을 흘리면서 이 날을 “내 인생 최고의 날이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크리스 프랫은 우주를 지키는 영웅을 연기하는 배우이기 전에 자신의 가정에 충실한 남자인 것이다.
크리스 프랫에게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로 마블 유니버스의 주인공이 됐다는 건 배우로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는 일이다. 그는 최근 LA에 있는 한 아동병원을 방문했다. 자신이 영화에서 입었던 의상들을 입고 스타로드로서 아이들을 찾았다. 그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와 관련된 인터뷰 중 자신의 촬영 의상을 챙겨놨다고 고백한 적이 있었다. 이유가 있었다. “만약 영화가 개봉하고 좋은 성적을 거둔다면 아이들을 찾아갈 거다. 영화가 크게 성공해서 아픈 아이들에게 의미로 다가올 수 있을 정도가 된다면, 피터 퀼이나 스타로드가 찾아오는 게 큰 의미가 된다면 그럴 거다. 그럼 이 영화가 내게 진정한 의미가 될 거다. 가장 멋진 건 내 아들이 언젠가 이 영화를 볼 것이고, 어쩌면 내가 어떤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을 거란 사실이다. 그들에게 좋은 롤모델이 되는 거다.” 생각해보면 크리스 프랫은 대부분의 작품에서 선한 인물로서 자리했다. 때때로 우스꽝스러울지언정 그랬다. 그는 본래 따뜻한 심성을 지닌 배우다. 진정한 영웅의 자격을 지닌 사람이다. 그의 식스팩보다 그 착한 마음이 진정한 매력이자 재능일 것이다. 그 마음이 그의 경력에 좋은 영감이 될 것이다. 물론 그의 식스팩을 볼 기회는 유효하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속편이 2017년에 공개될 예정이니 말이다. 물론 식스팩보다도 따뜻한 마음이 더욱 매력적인 남자, 크리스 프랫의 유쾌한 행보를 계속 목격하고 싶다.
(beyond November 2014 Vol.98 'STARD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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