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5.11.15 파리, 광화문, 폭력,
  2. 2015.04.19 마감, 광화문, 세월호, 광장
  3. 2008.05.26 080526

1. 장모님께서 서울에 올라오셨다. 그래서 장모님을 뵙기 위해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윤보선 전대통령의 생가이자 그 후손들이 살고 있는 윤보선가 고택에서 묵으셔서 겸사겸사 구경도 할 수 있게 됐다. 가는 길에 경복궁역에 즐비한 경찰을 보았다. 역 안까지 이미 경찰이 들이 차있었다. 경찰차들은 절묘한 주차술로 인도와 차도 사이를 빈틈 없이 막아서고 있었다. 안국역에서도 경찰을 보았다. 역 안에서도, 역 밖에서도. 정말 많았다. 대부분 어려 보였다. 팔할이 의경들일 것이다. 어린 청년들이 국가의 방패 노릇을 하는 풍경을 가로질러 내 갈 길을 갔다. 그 풍경을 뒤에 두고 나의 일상을 영위한다는 것이 부끄럽다. 그 부끄러움에 화가 난다. 내 일상이란 것이 그렇게 보잘것없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정말 치욕적인 국가다. 사회다. 정부다. 진저리가 난다. 삼청동에서, 잠실에서 광화문을 생각했다.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었다.

 

2. 아침 일찍 파리의 테러 소식을 들었다. 파리와 테러라니, 좀처럼 링크가 걸리지 않는 두 단어의 간극이 사라진 풍경이란 쉽게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한 자리에 머문 이후의 참혹한 결과를 타전하는 수많은 메시지를 보며 문득 절망감이란 것은 멀고 아득한 방식으로도 우리를 멸망시킬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내 삶이 당장 무너지지 않았지만 세계의 한 축이 무너지고 있다는 선명한 절망감 같은 것이 지워지지 않을 얼룩처럼 마음에 새겨졌다. 테러의 소행이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번 테러가 세계의 양분화와 공포의 전염 그리고 당장의 시리아 난민 사태에 얼마나 악영향을 미칠지 많은 생각을 했다. 괴롭다.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이 세계의 커다란 아픔과 증오 앞에서 개개인의 위로란 무엇이 될 수 있을까. 불이 꺼진 에펠탑으로부터 전해지는 선명한 상념 앞에서 화도 나고, 슬프다가도 무력해지는 개인을 보게 된다. 어찌될지 모르겠다. 세계는, 우리는.

 

3. 당장 내년 2월에 파리에 가기로 했다. 항공 예약은 완료했고, 필립 스탁의 마마 쉘터에 묵기로 해서 매우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갑자기 무섭다. 그때 설마 별일이야 있겠냐는 낙천적인 생각의 좌우로 무심결에 공포가 따라 붙는다. 어제 파리에서도 그런 일이 벌어질 거라고 생각했던 이들은 없었을 거다. 폭력의 결과란 이렇다. 세상을 의심스러운 눈길로 바라보게 만든다. 정말 무서운 일이다. 폭력이란 것이 어떤 식으로든 이해될 수 없다는 건 많은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폭력을 통해 낭만을 주검으로 만드는 건 한 순간이다. 끔찍하다. 실로. 고로 이러한 폭력을 이겨내기 위한 세계의 위로란 실로 중요하다. 응징을 다짐하는 오바마의 지지 선언만큼이나 파리의 테러현장 앞에서 존 레논의 ‘Imagine’을 연주하는 청년의 모습에서 얻는 용기가 만만치 않다. 인간의 마음이란 것이 그렇게 쉽게 허물어지지 않을 것이란 믿음이 절실하다.

 

4. 폭력은 지구 반대편의 파리에서만 선명한 것이 아니었다. 광화문에도 폭력이 있었다. 집회 중인 시민 한 명이 경찰의 물대포에 직격타를 당해서 뇌손상이 있었다고 했다. 동영상이 돈다. 플레이를 눌렀다. 욕지기가 나왔다. 경찰의 물대포는 카운터 같은 것이었다. 복싱에서도 쓰러진 사람에게 주먹을 날리진 않는다. 경찰은 쓰러진 사람을 확인하고도 물을 쏘고 있었다. 그를 구하러 간 사람에게도 물을 쏘고 있었다. 쓰러진 사람을 싣고 병원에 가기 위해 대기 중인 구급차에도 물을 쏘고 있었다. 재미있었을까. 흡사 게임처럼, 시민을 맞추면 점수를 주는 룰이라도 존재했던 것일까. 그 속을 알 수가 없지만 그 속을 어떤 식으로든 참혹한 내면을 짐작할 수밖에 없다. 인간으로서 어떤 인간의 참혹한 속을 짐작해야 한다는 건 끔찍한 일이다. 인간이란 것이 이토록 참혹한 존재였던가라는 절망감. 폭력이 인간을 파괴하는 방식은 이렇다. 되갚고 싶게 만든다. 인간적이지 않은 상대를 통해 인간적이지 않은 존재로서의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자아의 상실감. 괴로운 일이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어려운 시대에서 산다는 것은.

 

5.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경복궁역에서 지상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 주변의 고성을 들었다. 멈춰선 에스컬레이터를 걸어 올라가며 입구를 좁게 막아선 경찰들을 보았다. 올라가는 쪽도, 내려가는 쪽도 불편해 보였고, 불편했다. 격렬하게 항의하는 이의 목소리가 지하철역 안으로 울려 퍼졌다. 경찰은 미동이 없었다. 에스컬레이터 끝으로 올라서서 밖으로 나가려는데 안으로 들어오려는 사람이 마주쳤다. 사람은 둘인데 지나갈 수 있는 사람은 하나였다. 가고자 하는 방향은 다른데 갈 수 있는 방향은 하나였다. 그때 앞에 서있던 경찰이 말했다. “내려가는 분 먼저 보내겠습니다.” 어린 친구였다. 의경이겠지. 한참을 서서 내려가는 사람을 보내다 언제까지 기다릴 순 없어서 틈을 봐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말했다. “욕본다. 건강해라.” 그 청년은 나의 적이 아니다. 어쩌다 보니 서로 다른 방식으로 욕보고 있는 것이지. 하지만 억울함 정도는 알았으면 좋겠다. 너의 좆 같음이 내가 아니라 너를 방패로 세우려 하는 이들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집으로 올라가는 골목까지 서있는 경찰을 보면서 욕이 들끓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오늘 보고 느꼈던 즐거움을 생각했다. 그렇게 일단 오늘을 견뎌야만 한다. 그렇게 나를 불행하게 만들려 애쓰는 세상을 이겨야 한다. 이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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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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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감이 끝났다. 홀가분하다. 하지만 대단히 좋아서 죽을 거 같다거나, 그렇진 않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확실한 한 가지는 지금이 4월 17일이기 때문이다. 지난 해 이 맘 때엔 진도 앞바다에서 배가 뒤집어졌고, 오늘 같은 날엔 광화문 광장에 사람이 모여들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화가 나는 건 같은데 조금 다른 건 울적하다는 느낌 같다. 흐느낌 같은 것이 하루 종일 내 등 뒤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기분. 생각해 보니 어제, 비도 왔다. 눈물 같은 하루였다.

2. 집으로 오는 길에 필연적으로 광화문을 지난다. 광화문에서 경복궁 방면으로 들어가는 길이 경찰 차벽으로 인해 완벽하게 봉쇄됐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새벽 4시가 넘어서인지 통행이 가능했다. 하지만 여전히 세월호 유가족이 농성 중이라는 광화문 앞과 헌화를 위해 사람들이 모인 광화문 광장 주변엔 경찰차들이 촘촘하게 서있었다. 택시가 마치 섬 사이를 지나가는 배와 같았다. 저 너머에 사람이 있는데 보이지가 않았다. 마치 오늘을 기다리며 철저하게 대비했음을 보여주듯 놀랍도록 철저하게 봉쇄된 광장 주변의 풍경이 암담했다. 그러니까 1년 동안 구상한 게 저것이란 말인가.

3. 광화문 인근에 사는 탓에 세월호 유가족이 머무르는 텐트를 필연적으로 자주 봤다. 봄이 끝나갈 무렵에 세워진 텐트는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지나고, 겨울을 지나, 다시 봄까지 왔다.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동안 텐트는 같은 자리에 있었다. 그러니까 텐트도 정확히 지구와 함께 태양을 한 바퀴 돌았을 것이다. 가만히 있어도 그렇게 먼 거리를 움직일 수 있는데 몇 걸음 걸으면 다다를 수 있는 청와대 앞으로 유가족은 갈 수 없었다. 태양을 한 바퀴 도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다. 세월호 유가족이, 대통령을 만난다는 건. 내년에도 태양을 한 바퀴 돈 세월호 유가족의 텐트를 보게 될까. 어쩌면. 아니, 혹시라도. 혹은 제발.

4. 지난 1년 동안 세월호는 끊임 없이 바다 밑바닥으로 가라앉으면서도 끝끝내 떠오르는 단어였다. 서울에 있다가도, 부산에 있다가도 진도 앞바다를 생각했다. 나는 잊는 게 두려웠다. 그리고 내가 잊지 않아도 세상이 바뀌지 않을 것 같아서 두려웠다. 그래서 잊을 수 없었다. 그 두려움을 통해 그 날을 끊임 없이 떠올려야 할 것 같았다. 추모의 의미로 달았던 노란 리본은 강력한 상징이 돼서 떼낼 수 없는 것이 됐다. 평생을 바쳐 추모해야 하는 무언가가 됐다. 내가 어른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점점 어른으로 살아간다는 게 죄를 짓는 것만 같다. 물려줄 죄만 늘어가는 세상이다. 우울하다.

5. 세월호 유가족이 한 말이 각인된다. “박근혜는 죽으면 자식이 없겠지만 나라에서 장례를 치러주겠지. 하지만 나나 부인은 거둬줄 사람이 없다. 내가 박근혜보다 나이가 적다. 죽을 때까지 두고 볼 것이다.”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도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것밖에 없다. 그러니 최선을 다할 것이다. 광장에 서서, 광장이 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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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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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0526

time loop 2008. 5. 26. 02:17
담배를 끊은지 1년하고도 3개월 정도 됐다.
참으로 오랜만에 담배 한 대 피고 싶어졌다.

세상이 하수상하면서도 감이 잡히지 않았다.
광화문과 청계천은 그리도 시끄럽다는데, 이리도 조용한 우리동네에 있으니 내가 제정신이 아닌 것도 같았다.
그 때 광주는 얼마나 외로웠을까, 문득 처연해졌다.
그리고 지금 그들은 얼마나 절실할까, 또 한번 문득 처연해졌다.

몸이 기진맥진해서 혼미해진 정신이 간만에 돌아왔다.
덕분에 일거리는 쌓이고 의욕은 아직 부족하며 심란한 정세까지 눈에 들어온다.
세상은, 그리고 나는 이리 돌아가고 있구나.
밥을 한 숟가락 떠먹었다. 기운을 차려야지.
내 방의 평온함조차 지독하게 고요하여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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