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장모님께서 서울에 올라오셨다. 그래서 장모님을 뵙기 위해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윤보선 전대통령의 생가이자 그 후손들이 살고 있는 윤보선가 고택에서 묵으셔서 겸사겸사 구경도 할 수 있게 됐다. 가는 길에 경복궁역에 즐비한 경찰을 보았다. 역 안까지 이미 경찰이 들이 차있었다. 경찰차들은 절묘한 주차술로 인도와 차도 사이를 빈틈 없이 막아서고 있었다. 안국역에서도 경찰을 보았다. 역 안에서도, 역 밖에서도. 정말 많았다. 대부분 어려 보였다. 팔할이 의경들일 것이다. 어린 청년들이 국가의 방패 노릇을 하는 풍경을 가로질러 내 갈 길을 갔다. 그 풍경을 뒤에 두고 나의 일상을 영위한다는 것이 부끄럽다. 그 부끄러움에 화가 난다. 내 일상이란 것이 그렇게 보잘것없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정말 치욕적인 국가다. 사회다. 정부다. 진저리가 난다. 삼청동에서, 잠실에서 광화문을 생각했다.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었다.

 

2. 아침 일찍 파리의 테러 소식을 들었다. 파리와 테러라니, 좀처럼 링크가 걸리지 않는 두 단어의 간극이 사라진 풍경이란 쉽게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한 자리에 머문 이후의 참혹한 결과를 타전하는 수많은 메시지를 보며 문득 절망감이란 것은 멀고 아득한 방식으로도 우리를 멸망시킬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내 삶이 당장 무너지지 않았지만 세계의 한 축이 무너지고 있다는 선명한 절망감 같은 것이 지워지지 않을 얼룩처럼 마음에 새겨졌다. 테러의 소행이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번 테러가 세계의 양분화와 공포의 전염 그리고 당장의 시리아 난민 사태에 얼마나 악영향을 미칠지 많은 생각을 했다. 괴롭다.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이 세계의 커다란 아픔과 증오 앞에서 개개인의 위로란 무엇이 될 수 있을까. 불이 꺼진 에펠탑으로부터 전해지는 선명한 상념 앞에서 화도 나고, 슬프다가도 무력해지는 개인을 보게 된다. 어찌될지 모르겠다. 세계는, 우리는.

 

3. 당장 내년 2월에 파리에 가기로 했다. 항공 예약은 완료했고, 필립 스탁의 마마 쉘터에 묵기로 해서 매우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갑자기 무섭다. 그때 설마 별일이야 있겠냐는 낙천적인 생각의 좌우로 무심결에 공포가 따라 붙는다. 어제 파리에서도 그런 일이 벌어질 거라고 생각했던 이들은 없었을 거다. 폭력의 결과란 이렇다. 세상을 의심스러운 눈길로 바라보게 만든다. 정말 무서운 일이다. 폭력이란 것이 어떤 식으로든 이해될 수 없다는 건 많은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폭력을 통해 낭만을 주검으로 만드는 건 한 순간이다. 끔찍하다. 실로. 고로 이러한 폭력을 이겨내기 위한 세계의 위로란 실로 중요하다. 응징을 다짐하는 오바마의 지지 선언만큼이나 파리의 테러현장 앞에서 존 레논의 ‘Imagine’을 연주하는 청년의 모습에서 얻는 용기가 만만치 않다. 인간의 마음이란 것이 그렇게 쉽게 허물어지지 않을 것이란 믿음이 절실하다.

 

4. 폭력은 지구 반대편의 파리에서만 선명한 것이 아니었다. 광화문에도 폭력이 있었다. 집회 중인 시민 한 명이 경찰의 물대포에 직격타를 당해서 뇌손상이 있었다고 했다. 동영상이 돈다. 플레이를 눌렀다. 욕지기가 나왔다. 경찰의 물대포는 카운터 같은 것이었다. 복싱에서도 쓰러진 사람에게 주먹을 날리진 않는다. 경찰은 쓰러진 사람을 확인하고도 물을 쏘고 있었다. 그를 구하러 간 사람에게도 물을 쏘고 있었다. 쓰러진 사람을 싣고 병원에 가기 위해 대기 중인 구급차에도 물을 쏘고 있었다. 재미있었을까. 흡사 게임처럼, 시민을 맞추면 점수를 주는 룰이라도 존재했던 것일까. 그 속을 알 수가 없지만 그 속을 어떤 식으로든 참혹한 내면을 짐작할 수밖에 없다. 인간으로서 어떤 인간의 참혹한 속을 짐작해야 한다는 건 끔찍한 일이다. 인간이란 것이 이토록 참혹한 존재였던가라는 절망감. 폭력이 인간을 파괴하는 방식은 이렇다. 되갚고 싶게 만든다. 인간적이지 않은 상대를 통해 인간적이지 않은 존재로서의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자아의 상실감. 괴로운 일이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어려운 시대에서 산다는 것은.

 

5.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경복궁역에서 지상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 주변의 고성을 들었다. 멈춰선 에스컬레이터를 걸어 올라가며 입구를 좁게 막아선 경찰들을 보았다. 올라가는 쪽도, 내려가는 쪽도 불편해 보였고, 불편했다. 격렬하게 항의하는 이의 목소리가 지하철역 안으로 울려 퍼졌다. 경찰은 미동이 없었다. 에스컬레이터 끝으로 올라서서 밖으로 나가려는데 안으로 들어오려는 사람이 마주쳤다. 사람은 둘인데 지나갈 수 있는 사람은 하나였다. 가고자 하는 방향은 다른데 갈 수 있는 방향은 하나였다. 그때 앞에 서있던 경찰이 말했다. “내려가는 분 먼저 보내겠습니다.” 어린 친구였다. 의경이겠지. 한참을 서서 내려가는 사람을 보내다 언제까지 기다릴 순 없어서 틈을 봐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말했다. “욕본다. 건강해라.” 그 청년은 나의 적이 아니다. 어쩌다 보니 서로 다른 방식으로 욕보고 있는 것이지. 하지만 억울함 정도는 알았으면 좋겠다. 너의 좆 같음이 내가 아니라 너를 방패로 세우려 하는 이들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집으로 올라가는 골목까지 서있는 경찰을 보면서 욕이 들끓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오늘 보고 느꼈던 즐거움을 생각했다. 그렇게 일단 오늘을 견뎌야만 한다. 그렇게 나를 불행하게 만들려 애쓰는 세상을 이겨야 한다. 이기고 싶다.

'time loop'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누구라도 꼭 그러하지 않듯이  (0) 2015.09.13
광주에 다녀왔다  (1) 2015.05.08
마감, 광화문, 세월호, 광장  (0) 2015.04.19
<뉴스 9>의 엔딩 시그널  (0) 2014.06.18
제품도 보상도 엉망인 한샘  (0) 2014.02.24
Posted by 민용준
,

1. 어머니께서 누나와 함께 세부로 여행을 떠나셨다. 최근에 하늘이를 잃고 우울해 하시던 차라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해외에 나가시는 건 처음이다. 덕분에 인천공항에 가는 것도 처음이었다. 묘한 기분이었다. 멀리 떠나는 자식 염려하는 부모의 마음을 알 것 같은, 그런 기분. 설레면서도 걱정이 되는 그런 마음. 갖고 있던 300달러를 어머니께 드렸다. 이왕 가는 거 잘 놀고, 잘 쉬다 오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오늘 누나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어머니께서 스쿠버 다이빙을 하셨다고. 생각보다 깊게 들어가서 놀랐다고. 그렇구나. 어머니께서도 하실 수 있는 게 많구나. 어쩌면 나보다도. 마음 한 켠에 바닷물이 들이치는 기분이었다. 짠했다. 어머니가 보낸 지난 세월이. 어머니께서 한국에 돌아오시면 수영을 권해볼까 생각했다.


2. 나는 늘 어머니께 종종 말씀드리곤 했다. 엄마는 결혼을 잘못했다고. 세월을 돌릴 수 있다면 아빠 같은 사람과 결혼을 하지 않았어야 했다고. 그러면 어머니께선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랬으면 네가 세상에 있었겠냐? 그렇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어머니의 결혼 전 사진 속의 어머니와 지금의 어머니 사이엔 굉장한 괴리가 있었다. 나는 어머니가 결혼을 해서 아버지를 잘못 만나서 삶이 망한 타입이라고 늘 생각했다. 어머니가 아버지와 결혼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겠지만 어차피 존재하지 않을 것은 존재하지 않음으로써 한편으론 완벽한 것일 테니 상관 없을 것이었다. 그 당시 존재했던 이의 존재감이 변질됐다는 결과적 사실이 보다 중한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머니의 선택 이후로 왜곡된 그녀의 시공간을 생각하면 나는 종종 안타깝다. <인터스텔라>를 보면서도 문득 어머니의 삶을 생각했던 건 그래서였다. 그녀의 삶을 희생함으로써 나의 삶이 영위되고 있다는, 운명론적인, 예언적인 시공간의 오류. 왜곡. 변질. 당신은 지금보다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었을 것이라는, 공허한 안타까움.


3. 오래 전 자취를 했던 여자친구를 사귈 때 그녀에게 가져다 주라며 어머니께서 싸주신 밑반찬을 먹고 여자친구는 말했다. “이러니까 웬만해선 먹을 때 맛있단 말을 안 하지.” 어머니께선 요리 솜씨가 빼어나셨다. 어릴 때부터 내 도시락 반찬은 쉽게 동났다. 연포탕은 그냥 집에서 쉽게 끓일 수 있는 국이 아니라는 걸 서른이 다돼서야 알게 된 것도 그렇다. 요즘은 문득 언젠가 어머니가 해준 밥을 먹지 못할 날을 맞이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머니의 시대가 지나가고 있다는 것을 종종 느낀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이렇게 자랐다는 것을 새삼 실감한다. 두려운 일이다. 나이가 든다는 건. 사라지는 것들 사이에 놓이게 된다는 건 두려운 일이다. 먼저 사라지지 못한다는 건 필연적으로 쓸쓸한 일이다. 그리고 불행히도 인간은 필요 이상으로 오랜 삶을 살게 됐다 하지 않은가.


4. 그래도 어찌어찌 여기까지 삶을 굴려왔다. 수도가, 전기가 다 끊기고, 집이 경매에 넘어가고, 생각했던 것과 다른 방식으로 삶이 나락으로 떨어진다는 것을 느꼈던 20대 초반에 나는 한번 죽음을 생각해본 적이 있었다. 한남대교 중턱까지 걸어가 한강을 내려다 봤던 기억이 난다. 그때 알았다. 나는 쉽게 자살할 수 있는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한남대교 한가운데서 살 수 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다. 어느 드라마처럼 생의 의지 같은 것이 북돋아 오르진 않았다. 그냥 알았을 뿐이다. 그 이후로 나는 여기까지 살아왔다. 살아남았다. 살고 있는 것인가. 잘 모르겠다. 그래도 아직까진 빌어먹지 않고, 밥벌이를 하며 내일이란 것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아주 가끔씩 안도하며 하루하루를 수습하며 산다. 다만 언제나 그러하듯이 긴 계획 따윈 세우지 않을 뿐이다. 내가 어떤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 딱히 부질 없는 일이라고, 내 지난 세월을 통해 나는 믿게 됐다. 적어도 내겐 그렇다. 그러니 그냥 오늘을 버티며 살고 봐야 한다고, 나는 믿고 있다. 오늘을 버텨야 최소한 내일이 있으므로. 그래도 다행히 여기까지 왔다. 다행이다. 아직까진, 그렇다. 최소한 살고 싶다는 마음이 존재한다는 것이 나를 살게 만든다. 그러면 살 것이다. 최소한 내일까지는.

'time loop'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파리, 광화문, 폭력,  (0) 2015.11.15
광주에 다녀왔다  (1) 2015.05.08
마감, 광화문, 세월호, 광장  (0) 2015.04.19
<뉴스 9>의 엔딩 시그널  (0) 2014.06.18
제품도 보상도 엉망인 한샘  (0) 2014.02.24
Posted by 민용준
,

광주에 다녀왔다

time loop 2015. 5. 8. 13:09

1. 나의 물리적 고향은 서울이다. 고3 말기에 민증을 받고 알았다. 사실 어린 시절엔 고향이 광주인 줄 알았다. 그냥 광주에서 태어나서 어린 시절 서울로 갔다가 다시 광주로 리턴한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민증이 처음 나왔을 때 친구들과 서로의 민증을 돌려보며 '너 얼굴 왜 이따구냐'란 식으로 낄낄대다가 사과를 맞고 중력을 알았다는 뉴턴식 깨달음을 얻었다. 다들 뒤에 일곱 자리 번호 두 번째 숫자가 5인데 나만 0인 거다. 이래저래 알아보니 그 자리가 출생지역에 대한 고유번호라고 했다. 5는 광주, 0은 서울. 출생의 비밀이 궁금해서 어머니께 여쭤봤더니 서울 출생이 맞다고 하셨다. 어쨌든 그래서 나는 누군가가 내 고향을 물어볼 때 고향이 서울이지만 광주에서 오래 살았다고 말했다. 한번은 누군가가 광주가 고향이라고 말하는 게 창피하냐고 했다. 병신이었다. 그래서 나는 '너는 네가 병신인 줄 아냐'고 되묻는 대신 그 뒤로부터 그냥 고향이 광주라고 했다. 내 유년 시절의 기억도, 그때 만나서 지금까지 좋은 친구들도, 모두 광주의 자장 안에 있으니까. 그리고 나는 광주가 그 어느 도시보다도 뜨거운 자부심을 가질만한 도시라고 생각한다. 그럴 만한 자격이 있다. 시대가 좆 같아서 그걸 몰라주니 그렇지.


2. 2년 만에 광주에 다녀왔다. 다음 주에 결혼할 친구가 있는데 다음 주엔 마감 때문에 바쁠 터이니 한 주 전에 보기 위해서였다. 마침 친구들이 모이는 자리를 마련했다고 했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은 많이 변해있었다. 결혼한 친구도 많았고, 아이가 있는 친구들도 제법 생겼고, 살도 많이 쪘고. 어쨌든 시시껄렁한 농담도 하지만 서로에 대한 의미 있는 격려와 조언도 오가는 자리였다. 오랜만에 반갑게 회포를 풀면서도 어제 만난 듯이 편한 친구가 있다는 건 언제나 살아있어야 할 이유를 깨닫게 만든다. 항상 광주에 내려가면 친구들이 차를 몰고 와서 에스코트해주는 덕분에 정말 편하고 즐겁게 여행하게 된다. 이번에도 그랬다. 정말 고마운 일이다.


3. 어린 시절의 광주는 내게 좁고, 빤한 곳이었는데 지금의 광주는 내려갈 때마다 새롭다. 익숙한 곳들은 대부분 변한 곳이 됐고, 변한 곳들은 대부분 익숙한 곳에 있다. 그 와중에 변하지 않고 제 자리에 있는 것들을 보고 감회가 새로워질 때마다 내 삶의 물살을 느낀다. 어느덧 많이 밀려왔구나. 그렇다. 그래도 여전히 그 광주에서 나를 반갑게 맞아주는, 고등학교 2학년 시절에 부반장이었다는 이유로 아직도 나를 '우리반 부반장'이라 불러주는 친구들이 있다는 건 정말 고마운 일이다. 그나마 잘 살았다는 위안을 준다. 덕분에 나의 고향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그립다는 감정을 깨닫게 만든다. 그 감정을 안고 잘 살아야 겠다는 다짐을 다시 되새기게 만든다.


4. 나이가 들어서 광주에 내려가면 새삼스럽게 이 도시가 얼마나 좋은 도시였는지 깨닫게 된다. 번잡하고 변화가 빠른 서울에 비해 상대적으로 느리고 단순하지만 생각 이상으로 아름답고 정겨운 구석이 많은 도시라는 걸 느끼고 돌아온다. 다행이다. 나의 고향이 아름답다는 것은, 자랑할 수 있다는 것은. 내 친구들의 터전이 그렇다는 것은. 다행이다. 다시 내려가고 싶은 고향이 있다는 건. 그러니 잘 살 것이다. 나는 광주가 보다 좋아졌다.




'time loop'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파리, 광화문, 폭력,  (0) 2015.11.15
누구라도 꼭 그러하지 않듯이  (0) 2015.09.13
마감, 광화문, 세월호, 광장  (0) 2015.04.19
<뉴스 9>의 엔딩 시그널  (0) 2014.06.18
제품도 보상도 엉망인 한샘  (0) 2014.02.24
Posted by 민용준
,

1. 마감이 끝났다. 홀가분하다. 하지만 대단히 좋아서 죽을 거 같다거나, 그렇진 않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확실한 한 가지는 지금이 4월 17일이기 때문이다. 지난 해 이 맘 때엔 진도 앞바다에서 배가 뒤집어졌고, 오늘 같은 날엔 광화문 광장에 사람이 모여들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화가 나는 건 같은데 조금 다른 건 울적하다는 느낌 같다. 흐느낌 같은 것이 하루 종일 내 등 뒤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기분. 생각해 보니 어제, 비도 왔다. 눈물 같은 하루였다.

2. 집으로 오는 길에 필연적으로 광화문을 지난다. 광화문에서 경복궁 방면으로 들어가는 길이 경찰 차벽으로 인해 완벽하게 봉쇄됐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새벽 4시가 넘어서인지 통행이 가능했다. 하지만 여전히 세월호 유가족이 농성 중이라는 광화문 앞과 헌화를 위해 사람들이 모인 광화문 광장 주변엔 경찰차들이 촘촘하게 서있었다. 택시가 마치 섬 사이를 지나가는 배와 같았다. 저 너머에 사람이 있는데 보이지가 않았다. 마치 오늘을 기다리며 철저하게 대비했음을 보여주듯 놀랍도록 철저하게 봉쇄된 광장 주변의 풍경이 암담했다. 그러니까 1년 동안 구상한 게 저것이란 말인가.

3. 광화문 인근에 사는 탓에 세월호 유가족이 머무르는 텐트를 필연적으로 자주 봤다. 봄이 끝나갈 무렵에 세워진 텐트는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지나고, 겨울을 지나, 다시 봄까지 왔다.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동안 텐트는 같은 자리에 있었다. 그러니까 텐트도 정확히 지구와 함께 태양을 한 바퀴 돌았을 것이다. 가만히 있어도 그렇게 먼 거리를 움직일 수 있는데 몇 걸음 걸으면 다다를 수 있는 청와대 앞으로 유가족은 갈 수 없었다. 태양을 한 바퀴 도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다. 세월호 유가족이, 대통령을 만난다는 건. 내년에도 태양을 한 바퀴 돈 세월호 유가족의 텐트를 보게 될까. 어쩌면. 아니, 혹시라도. 혹은 제발.

4. 지난 1년 동안 세월호는 끊임 없이 바다 밑바닥으로 가라앉으면서도 끝끝내 떠오르는 단어였다. 서울에 있다가도, 부산에 있다가도 진도 앞바다를 생각했다. 나는 잊는 게 두려웠다. 그리고 내가 잊지 않아도 세상이 바뀌지 않을 것 같아서 두려웠다. 그래서 잊을 수 없었다. 그 두려움을 통해 그 날을 끊임 없이 떠올려야 할 것 같았다. 추모의 의미로 달았던 노란 리본은 강력한 상징이 돼서 떼낼 수 없는 것이 됐다. 평생을 바쳐 추모해야 하는 무언가가 됐다. 내가 어른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점점 어른으로 살아간다는 게 죄를 짓는 것만 같다. 물려줄 죄만 늘어가는 세상이다. 우울하다.

5. 세월호 유가족이 한 말이 각인된다. “박근혜는 죽으면 자식이 없겠지만 나라에서 장례를 치러주겠지. 하지만 나나 부인은 거둬줄 사람이 없다. 내가 박근혜보다 나이가 적다. 죽을 때까지 두고 볼 것이다.”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도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것밖에 없다. 그러니 최선을 다할 것이다. 광장에 서서, 광장이 돼서.


'time loop'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누구라도 꼭 그러하지 않듯이  (0) 2015.09.13
광주에 다녀왔다  (1) 2015.05.08
<뉴스 9>의 엔딩 시그널  (0) 2014.06.18
제품도 보상도 엉망인 한샘  (0) 2014.02.24
결혼합니다  (4) 2013.04.22
Posted by 민용준
,

매일 같이 다른 음악을 선곡했던 <뉴스 9>의 엔딩 시그널이 두 달이 넘도록 무음으로 일관되고 있다. 팽목항엔 여전히 찾지 못한 실종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생 안에 놓인 이들은 최선을 다해서 그 생을 아름답고 행복하게 수식해나갈 권리가 있다. 그래야만 한다. 다만 최선을 다해서 누리는 그 행복이 누군가에겐 절실한 생의 영역이었음을 기억하고 어루만져줄 수 있는 성숙한 의식으로 무르익길 바란다.

아직 팽목항엔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아마 그들은 다시 살아서 재회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그나마 그 마지막 재회를 간절히 기다리는 이들이 있다. 우리가 누리는 행복의 한 켠에 작게나마 그 간절함을 도닥여줄 수 있는 불씨가 있었으면 좋겠다. 결코 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뉴스 9>의 기자들만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아니길, 내 스스로에게도 간절히 기도한다.

'time loop' 카테고리의 다른 글

광주에 다녀왔다  (1) 2015.05.08
마감, 광화문, 세월호, 광장  (0) 2015.04.19
제품도 보상도 엉망인 한샘  (0) 2014.02.24
결혼합니다  (4) 2013.04.22
<문라이즈 킹덤> 관객과의 대화  (0) 2013.02.15
Posted by 민용준
,

200만원 상당의 물건을 구매한 뒤 반년 만에 세 번이나 A/S를 받게 되고, 환불 대상으로 분류된 뒤 정신적인 스트레스와 제반 비용에 대한 보상을 요구할 때, 어느 회사도 그런 문제로 보상해주지 않는다는 이야길 듣게 되면 기분이 상큼하겠지? 한샘의 고객상담팀장인 한영근 씨, 덕분에 기분이 상쾌하네. 그리고 전화도 잘 안 받아서 참 고맙소.

 

어쨌든 한샘에서 시스템 옷장은 죽어도 사지 마시길. 반년 만에 옷을 거는 봉이 다섯 번이나 떨어졌다. 대안이 되는 모델도 없고, A/S기사로부터 같은 문제 때문에 A/S 받는 고객이 많다고도 직접 들었다. 심지어 뒤늦게 통화가 된 고객상담팀장이란 사람이 "이런 문제는 처음이라"란 식으로 말씀하시는 게 정말 신선하더라. 안타깝지만 당사의 A/S 기사님께서도 피곤한 제품이라고 하시는데, 게다가 뒤늦게 알아보니 먼 친척이 이 제품 샀다가 피봤다는 이야기까지 들었는데, 이런 얘기를 늘어놓으니까 그제서야 '구라 실패'를 예감했는지 머뭇하시더만. 만약 진짜 몰랐다면 한샘은 조직적으로 소통이 안되는, 문제의 개선 여지가 없는 무책임하고 무능한 회사이거나 고객에게 친절한 목소리로 구라를 치는데 능한 협잡꾼 조직이겠지.

 

최근 카드사 개인정보 유출 사태에서도 소비자들의 정신적인 권익이라는 것이 개무시당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란 사실에 빡쳤는데 한샘이란 기업의 입장도 이와 다를 바가 없는 듯. 어쨌든 좀 빡치는데, 일단 <허핑턴 포스트 코리아>에 포스팅할 블로그의 첫 번째 글을 드디어 정한 거 같다. 널리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다.

 

다시 말하지만 한샘에서 시스템 옷장은 절대 사지 말라. 당해본 놈이 말하는 것이니까 주변의 누군가가 구매를 고려한다면 적극적으로 말리시길.

'time loop'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감, 광화문, 세월호, 광장  (0) 2015.04.19
<뉴스 9>의 엔딩 시그널  (0) 2014.06.18
결혼합니다  (4) 2013.04.22
<문라이즈 킹덤> 관객과의 대화  (0) 2013.02.15
정당한 오식빵  (0) 2011.10.03
Posted by 민용준
,

결혼합니다

time loop 2013. 4. 22. 02:04

결혼합니다. 하지만 특별히 결혼식은 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신혼여행은 가고 할 건 다 합니다. 그래서 청첩장을 빙자한 결혼 알림장을 제작했습니다. 오프라인용과 온라인용의 디자인이나 레이아웃은 조금 다릅니다만 들어간 내용은 동일합니다. 결혼합니다. 아래 내용대로 축하는 셀프입니다만, 프리이기도 하니 마음껏 축하해 주신다면 그 기운 받아서 잘 살겠습니다.

지금도 많은 분들의 축하를 받고 있고 응원을 받으며 용기를 얻고 있습니다. 사실 결혼식을 하지 않는 것이 특별한 무언가를 증명하기 위한 방식이었다면 이런 결과까지 닿기 힘들었을 겁니다. 오히려 이런 방식을 흔쾌히 지지해주신 양가 부모님들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사실 결혼식을 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서 많은 응원을 받게 될 줄도 몰랐습니다. 오히려 반대일 가능성에 대해서 고민한 적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어쨌든 저희는 저희에게 가장 편하게 적용될 수 있는 방식으로서 결혼하게 됐습니다. 그러니 지나가다 우연히 이 글과 만나게 됐을 때 마음이 동하신 분들이 있다면 마음껏 축하해 주시길.

'time loop' 카테고리의 다른 글

<뉴스 9>의 엔딩 시그널  (0) 2014.06.18
제품도 보상도 엉망인 한샘  (0) 2014.02.24
<문라이즈 킹덤> 관객과의 대화  (0) 2013.02.15
정당한 오식빵  (0) 2011.10.03
북촌테러  (0) 2011.09.15
Posted by 민용준
,

오는 2월 20일, 오후 7시 30분부터 씨네코드 선재에서 상영되는 <문라이즈 킹덤> 상영이 끝나고 관객과의 대화(GV)를 합니다. 하자고 합니다. 관객과의 침묵이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혹은 명상 GV라던가. 암튼 그렇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참고하시길.

'time loop'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품도 보상도 엉망인 한샘  (0) 2014.02.24
결혼합니다  (4) 2013.04.22
정당한 오식빵  (0) 2011.10.03
북촌테러  (0) 2011.09.15
가카의 자격  (0) 2011.09.13
Posted by 민용준
,

정당한 오식빵

time loop 2011. 10. 3. 14:39

엘쥐와 두산의 벤치클리어닝 사태에서 오재원이 식빵 문 거 전적으로 이해한다. 두 타석 연속으로 헤드샷 필이 충만한 투구를 경험한 타자라면 누구라도 욕이 나올만한 상황이다. 조준사격이건, 오발이건, 영점 조절 못하는 투수 덕분에 골로 갈 위기를 매너모드로 넘겨줄 의무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택근의 순발력은 좀 병맛스러웠다. 똥과 된장은 구분해야지. 어쨌든 그런 와중에도 5위는 한화. 올해 프로야구 하위권은 오세훈 하차를 추모하는 서울팀이 점령한답니다.

'time loop'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결혼합니다  (4) 2013.04.22
<문라이즈 킹덤> 관객과의 대화  (0) 2013.02.15
북촌테러  (0) 2011.09.15
가카의 자격  (0) 2011.09.13
다행이다  (0) 2011.08.02
Posted by 민용준
,

북촌테러

time loop 2011. 9. 15. 18:09

유례 없는 이번 정전 사태는 북한의 소행이 분명하다. 나 같은 애국자는 분노를 금할 길이 없다. 가카께서는 바삐 어버이 연합을 북한에 파견하고 가스통 테러를 실시하시라. 가스통 테러가 불가능하다면, 보다 용이한 보온병 투척이라도 실시하실 것을 가카께 촉구한다. 국가의 긴급 위기 앞에서 섬세하고 꼼꼼한 가카의 용단을 바란다.

'time loop'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문라이즈 킹덤> 관객과의 대화  (0) 2013.02.15
정당한 오식빵  (0) 2011.10.03
가카의 자격  (0) 2011.09.13
다행이다  (0) 2011.08.02
난 당신들이 매우 고맙다.  (0) 2011.07.14
Posted by 민용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