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최대 규모의 영화제였던 부산국제영화제가
제대로 개최될 수 있는지조차 불투명한 영화제로 전락한 건 내부의 적 때문이었다.
한국을 넘어 동아시아 최대 규모의 영화제로 자리잡은 부산국제영화제는 올해로
21회를 맞이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과연 올해 부산국제영화제가 제 생일을 챙길 수 있을지
의문이다. 부산국제영화제는 매년 10월경에 열렸다. 지금쯤이면 초청작을 비롯해 기본적인 영화제의 윤곽 정도는 잡았어야 할 시기이지만 영화제 기간을 제외한 어느
것도 준비된 것이 없다. 그나마 원년 집행위원장이었던 김동호 명예집행위원장이 서병수 부산시장 대신 민간
자격의 조직위원장으로 추대된 것이 최근의 성과다. 10월 6일부터 15일까지 열린다는 영화제 기간을 제외하면 확실한 것이 하나도 없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2014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선
세월호 참사 구조 현장의 목소리를 담은 다큐멘터리 <다이빙벨>의
상영을 결정했다. 그 과정에서 부산시장이자 조직위원장인 서병수가 정치편향적인 영화라는 이유로 <다이빙벨>의 상영 중단을 요구했고, 영화계에선 상영 중단 요구를 철회하라며 반발했다. 결국 부산국제영화제
측에선 영화제의 독립성과 자율성이라는 모토를 고수하며 예정대로 <다이빙벨>을 상영했다. 그리고 본격적인 사태가 시작됐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일부 영화인들만의 전유물로 전락했다.” 서병수
시장은 부산국제영화제를 향한 비난을 쏟았다. 비난에서 그치지 않았다.
지난 해 1월부터 4월까지, 부산국제영화제는 감사원으로부터 대대적인 감사를 받았고, 9월에는
국고보조금을 부실 집행했다는 명목으로 관련자를 검찰에 고발하라는 감사원의 지시가 떨어졌다. 그리고 12월엔 당시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이었던 이용관이 검찰에 고발됐고, 이듬해 1월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그 과정에서 영화계의 격렬한 항의가
이어졌지만 결국 지난 2월, 부산국제영화제 정기총회에서 집행위원장
임기가 종료된 이용관의 재위촉이 무산되면서 부산국제영화제는 키가 없는 배처럼 방향을 잃고 표류했다. 영화제
집행위원회에선 국내영화계 인사들로 구성된 자문위원 68명을 위촉했지만 부산시에선 되레 자문위원 위촉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하며 팽팽히 맞섰다. 결국 국내 영화계 인사들로 구성된 영화인 연대에서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 대한 보이콧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막연한 우려가 ‘열릴 수 없을지도 모른다’라는 실물적인 예감으로 번지는 상황이었다.
김동호 명예집행위원장은 2010년 집행위원장 직을 내려놓았다. 1996년 영화제의 시작부터 함께 했던 그는 부산국제영화제를 성공적인 현재로 이끈 일등공신이다. 은퇴한지 6년 만에 집행위원장으로 다시 돌아온 이유는 자신의 손으로
일군 부산국제영화제가 기우는 걸 막기 위해서였다. 국내 영화인들과 대립각을 세워오던 부산시장 서병수
역시 부산국제영화제가 좌초되는 것만큼은 막아야 했다. 세계적인 영화제를 하루 아침에 바닥으로 내려 앉힌
악명을 뒤집어 쓰는 건 정치인의 입장에선 두고두고 회자될 오명이다. 결국 조직위원장 자리를 민간 자격인
김동호 명예집행위원장에게 이양함으로써 명예와 실리를 함께 세우겠다는 의도가 읽힌다. 중요한 건 결국
남은 시간이다. 불과 4개월 남짓한 기간은 영화제를 정상화시키기
빠듯한 시간이다.
사실 국내 영화제가 예산을 집행하는 지자체와 갈등을 빚어 파행의 위기에 놓인 사례는 적지 않다. 전주국제영화제는 2회 직전 지자체와 갈등을 빚어온 수석 프로그래머가
사퇴하며 영화제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상황이 연출됐고,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선 부천시장인 조직위원장을
필두로 한 조직위원회에서 집행위원장을 일방적으로 해고하는 상황이 벌어지며 영화계의 반발을 샀고 영화제 자체가 존폐 위기를 맞이하기도 했다. 현재 표류 중인 부산국제영화제 또한 이와 다를 바 없는 경우다. 대부분의
국내 영화제는 지방자치단체, 즉 지자체의 예산을 통해 운영되고 이를 집행하는 지자체장이 조직위원장으로
추대되는 것이 관례다. 문제는 영화제의 역사와 함께 전문성 있는 인력으로 양성된 프로그래머나 영화제
관계자들이 영화제의 전문성과 무관한 지자체 관계자들로 구성된 조직위원회의 간섭을 받거나 정치적인 외압을 받으며 영화제의 역사를 송두리째 상실할
위기에 놓였거나 놓여있다는 것에서 문제의식을 느껴야 마땅하다.
영화제는 단순한 지역 행사가 아니다. 영화를 선정하는 전문 프로그래머와
영화제 운영의 노하우를 익힌 전문적인 운영위원들이 꾸준히 영화제의 내실을 다짐으로서 성장해 나갈 수 있는 문화적,
경제적 보고다. 그만큼 전문인력양성을 도모하고 이를 보조하는 기관의 협조와 이해가 절실하다. 영화제를 쥐고 흔드는 게 아니라 영화제의 정체성이 지속될 수 있도록 함께 고민해야 한다. 심지어 지자체에서 집행하는 예산이 하늘에서 떨어진 것도 아니지 않은가. 지자체의
예산은 시민의 것이고, 국민의 것이다. 지자체는 대리 집행인일
뿐이다. 부산, 전주, 부천, 제천 등 지금의 국제영화제를 성공적으로 뿌리내린 건 영화제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성실한 호응으로 숨을 불어넣은 관객들이었다. 영화제는 영화제를 찾는 관객들이 존재하는 덕분에 존재하는
행사다. 영화제의 진정한 주인은 관객인 것이다. 고로 지자체의
예산은 그 예산의 집행을 위해 세금을 낸 국민들 즉 관객들을 위해 집행하는 것이므로 영화제에 알력을 가한다는 건 결국 영화제의 주인들이 기꺼이
납부한 재산으로 영화제의 주인들이 일군 텃밭을 훼손한다는 것과 같다. 무엇보다도 지자체가 알력을 써서
지자체의 자산을 무너뜨린다는 것 자체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이게 무슨 낭비적인 짓거리인가.
어쨌든 부산국제영화제는 열려야만 한다. 시네필들의 애정이 원기옥처럼
모여서 만들어진 20년의 역사가 몰염치한 지자체의 알력 따위로 무너지는 걸 본다는 것 자체가 뼈아픈
일이다. 심지어 ‘아시아의 창’이란 슬로건을 걸고 아시아영화들을 발견하는 보고의 역할을 해온 부산국제영화제의 문제는 아시아 영화계의 전체의
문제이기도 하다. 부산을 기억하는 전세계 시네필들의 염원이 부산국제영화제의 정상화로 이어지길 바라며, 나 역시 염원을 보낸다.
전주시의 지휘 아래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4대 사고 가운데 유일하게 살아남았다는 전주사고의 조선왕조실록 복본화 작업이 계획된다. 전주시청 한지과로 발령을 받게 된 7급 공무원 한필용(박중훈)이 실록 복본화 프로젝트를 일임하게 된다. 그 가운데 유명 다큐멘터리 감독 민지원(강수연)은 전주시청에 한지 다큐멘터리 제작 협조를 요청하고 전주시장은 그것이 복본화 작업에 시너지를 부여할 것이란 판단에서 이를 수락한다. 그것이 달갑지 않은 한필용은 이로 인해 그녀와 반목하게 되지만 점차 한지의 매력에 빠져드는 것처럼 그녀에게도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그리고 필용은 뛰어난 지공예가였으나 뇌경색으로 거동이 불편해진 아내 이효경(예지원)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그녀의 고향을 찾고자 노력을 기울인다.
<달빛 길어올리기>, 시적인 제목을 지닌 임권택 감독의 101번째 작품은 영화의 스토리와 같은 맥락에서 제작된 작품이다. 조선왕조실록 복본화 작업을 진행하는 전주시장 송하진은 전주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민병록 교수에게 한지를 소재로 한 영화 제작을 의뢰했고, 이는 임권택 감독에게 전달됐다. 판소리와 민속화라는 <서편제>나 <취화선>, <천년학>이 그러했던 것처럼 <달빛 길어올리기> 역시 민족적인 정서를 발굴하는 극영화라는 점에서 임권택의 세계와 동떨어지지 않은 세계다. 다만 그 전례가 자발적인 움직임이었다는 것과 달리 <달빛 길어올리기>가 관영적인 의뢰를 통해서 제작된 작품이란 점에서 출발점이 다르다. 물론 <달빛 길어올리기>가 관영적인 홍보에 충실한 기능적인 영화라는 지적이 아니다.
의외로 <달빛 길어올리기>는 작품의 제작 동기와 무관하게 임권택 감독의 개인적인 소망이 간절하게 투영된 한지 영화로 완성됐다. 특히 <달빛 길어올리기>는 그의 전작들과 비교했을 때 보다 차별적인 형식의 시도가 두드러지는 작품이다. 극영화의 형식을 표방하고 있지만 <달빛 길어올리기>는 다큐적인 면모가 보다 돋보이는 작품이다. 사실상 전주시청의 실록 복본화 작업에 참여했던 7급 공무원의 실화가 바탕이 된 드라마투르기 속의 인물들은 한지라는 주인공을 수식하기 위한 장치처럼 삽입된 것이라 해도 좋을 정도다. 한필용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영화의 서사에 몰입하던 관객은 시점숏으로 관찰되던 한지 수공예품들이 갑작스럽게 정직한 인서트 숏으로 대체되는 광경 앞에서 당혹감을 느낄 것이다. <달빛 길어올리기>는 극영화로서의 요소와 다큐멘터리적인 요소가 공존하는 작품이지만 동시에 두 요소가 밀착하지 않고 분리된, 그리고 그것이 그렇게 보이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방식으로 완성된 작품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형식성의 실패처럼 보이지만 다시 한번 되짚어보면 그 무리수를 감안하고 밀어붙인 창작자의 의도 안에서는 성공한 작품처럼 보이기도 한다. 현실에서 점차 그 고유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채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나가는 한지를 조명하고자 한 임권택 감독은 그 소재 자체를 조명하는 것이 극영화적인 형식성의 완성보다도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임권택의 세계관에 익숙한 이들에게 굉장히 낯선 형식의 영화가 될 것이며 반대로 그런 형식성을 기대하지 않았을 대부분의 관객들에게 당혹스러운 감상을 부여하는 영화가 될 것이다. 어쩌면 임권택 감독은 한지라는 전통적 가치가 현실 속에 놓인 처지를 자신의 입장으로 이해하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추측을 배제하고 한지 자체의 소재를 조명하는 이 영화의 방식을 고려했을 때, <달빛 길어올리기>는 감독 자신이 한지라는 소재 자체의 조명에 자신의 세계관이 함몰되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지 않은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형식적인 실패를 밀어붙인, 의도적인 성공의 결과물에 가깝다.
그런 형식성의 차이와 무관하게 이 영화는 역시 임권택 감독만이 보여줄 수 있는 내공의 시선을 견지한 작품이다. 종종 임권택 감독의 작품에서 발견되는, 단지 보고 있다는 것만으로 감동적인 선경은 이 영화에서도 두루 발견된다. 한필용과 민지원이 오롯이 빛나는 달 아래서 차를 타고 가는 나이트신이 담긴 원경은 고요하고 그윽하다. 달밤 아래 깊은 계곡 속에서 전통적인 한지 제조에 전념하는 이들의 풍경으로 갈무리되는 결말 역시 숭고하고 애잔한 정서를 가감 없이 드러낸다. 이 모든 풍경들은 물리적인 기능성으로 대변될 수 없는, 장인의 내공을 통해 살아있는 풍경 속에서 길어 올린 한 폭의 그림과 같다.
<달빛 길어올리기>는 임권택 감독이 <창>(1997)을 연출한 이후로 15년 만에 현대극을 완성했다는 점에서도 특별하다. 이는 어쩌면 <천년학>에 걸린 100번째 영화라는 수식어의 무게를 뒤로 한 채, 자신 스스로도 새로운 것을 해보고 싶었다는 임권택 감독의 집념을 보다 강력하게 반영한 또 하나의 시도일지도 모른다. 그 모든 대외적 의미를 배제하고 단순히 이 영화가 지닌 현대극적인 완성도를 본다면 적절한 수준의 성과를 지니고 있다고 평해도 좋을 것 같다. 그러나 내러티브의 흐름과 달리 플롯과 플롯을 잇는 과정에서 기이한 단절이 발견된다. 인과적으로 플롯을 마무리지어야 할 대사들이 종종 삭제되거나 시퀀스를 정리할 마지막 숏이 증발된 느낌이다.
<달빛 길어올리기>는 일종의 과업처럼 완성된 작품이지만 그 의무에 짓눌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존중받아도 좋을 작품이다. 하지만 그 의도에서 벗어나 냉정한 시선으로 이 영화를 정리한다면 임권택 감독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의 전달을 넘어서는, 한 영화의 완전한 잉태에는 다다르지 못한 미완의 야심처럼 보인다. 한 장 한 장 정성스럽게 길어 올린 한지와 같지만 그 정성스러운 낱장의 요소들이 조화를 이루는 것까지는 다다르지 못한 듯하여 일말의 아쉬움을 떨치기가 어렵다. 깊게 배어든 정성을 쉽게 펼쳐내기가 쉽지만은 않았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