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마지막 걸작, <라라랜드>의 감동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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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페르노>는 기호학자 로버트 랭던(톰 행크스)을 앞세운, 댄 브라운의 소설을 영화화한 세 번째 탐정물이다. 그런데 <다빈치 코드> <천사와 악마>의 로버트 랭던이 기호학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중세부터 이어져 오던 종교집단들의 은밀한 광기를 추적해 나간 것과 달리 <인페르노>의 로버트 랭던은 현대문명을 관통하는 인구과잉문제와 연관된 테러리즘에 맞선다. 어떤 의미에서 <인페르노>의 로버트 랭던은 그가 아니어도 될만한 일까지 떠맡은 셈인데 그의 역할을 만들어주기 위해 동원된 건 단테라는 모티브를 통해 구상한 기호학적인 퍼즐이다. 그러니까 <다빈치 코드> <천사와 악마>가 로버트 랭던의 개입을 자연스럽게 유도할 수 있는 이야기였던 것과 달리 <인페르노>에선 인위적인 구조적 설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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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 대회에서 번번히 4등만 하는 아이가 있다. 그리고 아이가 터치패드에 손을 대고 전광판에 등수가 발표될 때마다 엄마는 매번 속이 터진다. <4>은 그런 아이와 엄마 사이의 갈등이 주범이 되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아이가 메달을 따면 영생을 얻을 것'이라 발음할 정도로 간절한 엄마는 수소문 끝에 능력 있는 수영 코치를 소개 받고 아이에게 1:1 훈련을 사주한다. 그리고 아들이 코치로부터 매질을 당하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묵과한다. 그 과정에서 아이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수영 코치는 "네가 미워서 때리는 게 아니거든"이라며 매질의 부채를 덜어내고, "내가 볼 때 넌 할 수 있는 아이야. 그런데 네가 집중하지 않잖아"라며 매질의 책임을 떠넘긴다. 그 과정에서 아이에게 재미있었던 수영은 사라지고, 오로지 1등을 해야만 할 수 있는 수영의 과업만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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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 스펙터>를 보고

cinemania 2015. 11. 11. 22:51

멕시코 시티의 죽은 자들의 축제를 배경에 둔 <007 스펙터>의 오프닝 시퀀스는 정말 멋있다. 상당히 유려하고 우아한데 거의 10여분간 몇 마디 대사만 존재할 뿐, 상당히 과묵한 시퀀스가 이어진다. 그리고 초반 5분 가량은 원신원컷에 가까운 편집술로 광장에서, 호텔 안으로 그리고 다시 호텔 난간을 넘어 옥상으로 제임스 본드의 동선을 미끌어지듯 따라잡는데 정말 홀리듯이 봤다.

 

<007 스펙터>죽은 자가 돌아온다(The dead is alive)’라는 자막으로부터 시작되는데 처음에는 조금 뜬금 없었지만 그 의도가 상당히 궁금했다. 결국 이 작품은 다니엘 크레이그가 제임스 본드 역을 맡은 이후의 <007> 시리즈, 그러니까 <007 카지노 로얄>, <007 퀀텀 오브 솔라스>, <007 스카이폴>까지의 전작들을 갈무리하는 마침표처럼 보인다. <다크나이트 라이즈>와 같은 맥락의 영화라는 말이다. 시리즈의 마지막 퍼즐과 같은 것. 그만큼 앞에서 언급한 전작들을 보지 못한 입장에선 감상의 밀도가 조금 떨어질 가능성이 다분하다. 다니엘 크레이그 판본에서 빨래줄 같은 역할을 하는 베스퍼 린드의 이름은 <007 스펙터>에서도 당연히 언급되고 그 아래 지난 전작 세 편에 등장했던 악당 세 명 그리고 주디 덴치의 M까지, 그러니까 제임스 본드에 의해 죽은 자들과 그를 위해 죽은 자들이 모두 언급되고 간접적인 이미지로 노출된다. 지난 세 전작들이 전작과의 연결성을 중시한 경향이 있다면 이 작품은 그 세 전작의 여정을 완전히 갈무리하는 마지막 종착에 가깝다. <다크나이트 라이즈>와 같은 것이다. 결국 독립적인 작품의 만듦새만으로 이 작품을 감상하는 건 반쪽짜리 재미가 될 가능성이 크다.

 

사실 다니엘 크레이그의 판본 이전까진 이만큼 사적인 <007> 시리즈가 존재한 적도 없었다. <007 카지노 로얄>부터 <007 스펙터>까지 베스퍼 린드라는 이름이 계속 언급되는데 그만큼 공무를 수행하는 더블0, 세븐(007)’보단 제임스 본드라는 안티히어로의 숙명적인 다크나이트적 행보가 눈에 띄는 작품이면서도 <007 스카이폴>에 다다라서는 마치 제임스 본드라는 인물 탐구에 가깝게 변형된 인상도 있었다. 심지어 <007 스카이폴>에선 제임스 본드의 고향이라는 스카이폴에서 악당과 총격전을 벌이기도 한다. <007 스펙터>는 제임스 본드의 사유지로 변모한 시리즈의 숙명을 완전히 완수하는 작품이면서도 그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는 작품이기도 하다. 주디 덴치에 이어 새로운 M이 된 랄프 파인즈와 Q 그리고 머니페니 등 서브 캐릭터의 역할이 보다 활발해진 것도 그런 의도가 엿보이는 대목 같다. 팀워크가 돋보이는 후반부에선 마치 <미션 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의 팀플레이를 보는 느낌이기도.

 

개별적인 작품으로만 보자면 전체적인 스케일은 상당히 팽창한 느낌이지만 밀도가 조금 떨어진다는 인상이. 멕시코시티, 로마, 오스트리아, 모로코의 탕헤르, 런던까지 상당한 규모의 로케이션 촬영이 추진됐는데 그만큼 상당한 볼거리가 존재하지만 동시에 각각의 도시마다 하나의 에피소드를 치고 빠지는 느낌이라 그 여정을 쫓아가는 것이 살짝 피로하다는 느낌도. 게다가 에피소드를 갈무리하는 방식에서 기이할 정도로 나사가 풀렸다 싶을 정도로 의도로 지나치게 간편해 보이는 사건 해결 방식을 보여주거나 갑작스런 전개를 보여주는데 그 중에서의 백미는 제임스 본드가 새로운 본드걸인 레아 세이두와 급작스런 베드신에 들어가는 상황. 물론 베드신은 안나온다. 베드신이 있었을 거라는 강렬한 전조 증상만 노출할 뿐. 아무튼 역대급 강적과 주먹다짐을 벌이고 겨우내 살아난 제임스 본드가 새로운 본드걸인 레아 세이두와 단도직입적으로 에로스의 욕망을 불태울 때는 상당히 웃겼다. 그런데 정말 웃기라고 넣은 것 같기도 하다. 최선을 다해서 치밀해지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는 느낌적인 느낌도 있고.

 

전작인 <007 스카이폴>을 생각해보면 제임스 본드가 한 마디로 내뱉는 단어가 있는데 부활(Resurrection)’이다. <007 스카이폴>은 이 키워드를 통해 영화를 함축한다. 자신의 어두운 기억이 잠재된 고향으로 돌아가 그곳에서 다시 살아나오는 제임스 본드를 그림으로서 완벽하게 부활이란 키워드와 맞아 떨어진다. 이번 작품에서 제임스 본드가 한 마디로 내뱉는 단어는 본능(Instinct)’. 이번 시리즈는 그만큼 본능적으로 사건을 해결하고, 육감에 따라 상황을 판단하고, 실제로 본능적으로 서로에게 이끌려 에로스를 폭발시키는 장면까지 등장하는데 사건을 해결하는 방식들도 이성적인 치밀함보단 동물적인 본능과 육감에 의한 결과로 점철된다. 그런 의미에서 어딘가 나사가 빠진 듯해 보이는 이 작품의 부분적 헐렁함이 살짝 이해가 됐다. 생각해 보면 고전적인 <007> 시리즈들도 그렇게 치밀한 작품들은 아니었다. 마티니와 본드걸로 회자되던 시리즈가 이처럼 하이퍼 리얼리즘 스파이물로 변모한 건 결국 다니엘 크레이그의 판본 덕분이고 그런 이미지를 얻은 역사는 전체적인 시리즈의 역사에 비해 상당히 짧았다는 것이다.

 

어쨌든 결말은 소문대로 다음 시리즈 출연이 불투명해 보이는 다니엘 크레이그가 쏙 빠져도 상관 없을 만한 모양새다. 아쉽긴 하지만 한편으론 어차피 그 혼자서 끌어갈 수 있는 시리즈가 아니란 점에서 박수칠 때 떠나는 타이밍이기도. 확실히 얼굴에서 이제 피로감이 보인다. 어쨌든 궁금한 건 이후의 <007> 시리즈인데 언제든 제임스 본드 역을 갈아치워도 상관 없었던 역대 시리즈와 달리 지금처럼 완전히 사유화된 상태의 <007> 시리즈 이후에 이 시리즈는 또 다시 리부트의 방식으로 나아가야 할 것 같기 때문. 007이라는 살인면허의 발급자를 시치미 떼고 다른 얼굴로 이양하기엔 다니엘 크레이그의 인상이 너무 강렬하게 남는다.

 

아무튼 개별적인 작품 속성에서 걸작이었던 <007 스카이폴>을 제외하고 <007 카지노 로얄> <007 퀀텀 오브 솔라스>와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작품 자체의 모양새는 <007 스펙터>가 조금 떨어진다는 인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시리즈의 갈무리로서 제 몫을 해내고 있다. 그러니까 이건 <다크 나이트 라이즈>와 같은 것이다. 다니엘 크레이그의 제임스 본드를 따라온 이들이라면 발을 디뎌야 할 마지막 다리라고. 그러니까 안 보고 배길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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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자들>을 보고

cinemania 2015. 11. 3. 11:53

<내부자들>을 봤다. 잘 알려진 대로 윤태호 작가의 동명 원작 웹툰을 스크린에 옮겼다. 아무래도 원작을 직접 본 관객은 드물 거 같은데 원작과의 비교 선상에서 보다 자유로울 수 있다는 건 영화 입장에선 유리한 면이 있지 않을까 싶다. 결과적으로 원작과는 다른 형태로 완성된 영화이기 때문이다. 정경유착과 밀실정치의 행태에 관한 르포르타주를 기반에 둔 원작 웹툰의 극사실적인 묘사는 영화 안에서 현실 정치에 대한 폭로극으로서의 쾌감을 극대화시키기 위한 사실적인 이미지로 적극 활용된 것 같다. 다만 원작의 극사실적 묘사는 그 자체를 본다는 것만으로 완벽하게 현실정치를 폭로한다는 의미가 있었는데 영화에선 그런 사실적인 묘사가 극적인 쾌감을 극대화시키는데 기여하는 장치에 가깝다. 원작에서 중요한 게 밀도였다면 영화에서 중요한 건 부피와 중량이었던 것 같다. 그만큼 원작에 비해 극적이고, 현실적인 타협을 최대한 수용했다. 이를 테면 결국 관객들이 보고 싶어하는 것을 최대한 영리하게 보여주기 위해 고민한 흔적이 역력하달까.

뿌리 깊은 정경유착과 밀실정치가 지배하는 이 사회에 대한 무기력한 수긍을 적나라하게 묘사한다는 점에선 <부당거래>의 묘사가, 폭력적인 하드보일드한 세계관을 지배하는 권력자들을 전복시킬 야심가들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지켜봐야 한다는 점에선 <신세계>의 정서가 연상되는 작품이다. 결말은 <베테랑>과 같은 싸가지 없는 권력 때려잡기 류의 쾌감에 가깝다. 그만큼 새롭고 참신한 작품은 아니지만 자기가 그린 세계관의 입구와 출구를 명확히 세우고 닫는 작품이란 점에서 평가될만한 가치가 있다. ‘물리고 뜯길수록 더 큰 괴물이 되는이들을 상대로 물리고 뜯기다 결국 더 큰 괴물이 되는 방법을 찾아가는 내부자들의 악전고투를 그리는 과정의 기승전결이 단단하게 세워지고, 권력의 위엄 아래 잠재된 추잡한 민낯과 권력의 그림자 속에 기생하는 폭력의 본체 그리고 그 패악한 세계의 본질을 음흉하게 드러내는 대사들의 찰진 은유로서 폭로적인 흥미를 유발한다. 그러니까 이 세계의 그림자를 스펙터클하게 드러내는 묘사와 함께 이상적인 낭만이 가미된 결말의 쾌감은 상호보완적이다. 다만 이야기의 리듬이 잘 정리된 인상은 아니다. 덕분에 몇 차례 높은 파도를 타듯 기승전결의 흐름을 견뎌야 되는 느낌이라 그 과정에서 피로감을 느낄 가능성도 존재할 것 같다. 개인적인 집중력 차이에서 비롯되는 사안일 수도 있겠지만 연출과 묘사의 세기에 집중한 인상이라 상대적으로 그런 감상적 흐름을 간과한 것은 아닌가 싶기도.

이병헌의 연기는 그야말로 점입가경.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양아치 건달 역을 맡았는데 숱한 조폭영화 상의 유사한 역할들과 비교해도 이만한 사례가 없었던 것 같다. 살기와 백치미를 양쪽 주머니에 차고 필요할 때마다 마음껏 꺼내 쓰는 느낌. 흥행 결과가 어찌될지는 모르겠지만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속담이 와 닿을 정도랄까. 물론 조승우와 백윤식도 확실히 배우 본연의 신뢰감을 수성한다. 그야말로 메소드 연기의 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이 세계를 흔드는 밑바닥의 실체를 목도하고 있다는 기분을 느끼게 만드는 건 결국 배우들의 그런 대단한 연기 덕분이다. 두고두고 회자될 만큼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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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걷는 남자>는 말 그대로 하늘을 걸었던 남자 펠리페 페팃에 관한 영화다. 그는 1974년 뉴욕 세계무역센터, 즉 쌍둥이 빌딩이라 불리던 그 고층건물 두 동의 110층 옥상에 나란히 와이어를 매달아 그 위를 걸었다. 이는 2008년에 공개된 다큐멘터리 <맨 온 와이어>에서 영상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는데 두 영화를 나란히 감상하면 상당히 흥미로운 경험이 될 것이다. <맨 온 와이어> <하늘을 걷는 남자>가 얼마나 사실적인 근거를 바탕에 두고 영화화된 작품인가를 증명하는 기록적 그림자에 가깝다. 고로 두 작품을 교차해 볼 수 있다면 상당히 입체적인 감상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맨 온 와이어> <하늘을 걷는 남자>가 그 대단한 경험을 기록한 사실에 기반한 영화라는 육체적 증거가 될 것이다. <하늘을 걷는 남자> <맨 온 와이어>가 기록하지 못한 감각을 객석에 전이시키는 영혼적 증거가 될 것이다. 같은 것을 보고 있지만 다른 것을 느낄 것이고 궁극적으론 깊고 너른 감흥을 얻게 될 것이다.

사실 <하늘을 걷는 남자>의 영화화 계획이 발표됐을 때, 3D 입체 영상의 장인인 로버트 저메키스가 이 영화에 혹할 이유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110층 높이의 빌딩 꼭대기에 설치한 와이어 위에 선 남자의 주변부를 채우는 뉴욕시의 풍경만큼이나 광대한 원근감이 또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하늘을 걷는 남자>는 단순히 3D 입체 영상을 위시한 볼거리에 국한된 영화가 아니다. 객석에 앉아서 영화를 보는 관객과 스크린 사이의 안전한 경계를 무마시켜 버리는 체험으로 수렴시키기 위한 마술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실화를 바탕에 둔 영화이길 넘어 기록을 읽던 관객을 기록의 현장으로 세워버리고자 하는 체험으로서의 영화에 가깝다. 와이어에 선 필리페 페팃이 줄에 서는 그 순간에 느낄 수 있었던 그 심정에 포개질 순 없겠지만 그 줄에 선듯한 기분을 공유할 수 밖에 없는 광대한 숏 앞에서 경건한 긴장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시각적 스릴을 넘어선 육감적인 떨림. 그 지점에서 이 영화는 어떤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영화를 통해서 무엇을 보는가. 무엇을 겪는가. 무엇을 체험하는가. 그리고 그런 질문을 받을 때 우리는 영화의 영혼을 느낀다. <하늘을 걷는 남자>에선 그런 영혼이 느껴진다. 뉴욕에서 필리페 페팃의 곡예를 본 사람들이 느꼈을 기적적인 감동. 영혼을 지닌 영화는 그런 감동을 전한다.

그런 의미에서 <하늘을 나는 남자>는 단순히 볼거리로서의 영화가 아니다. 그리고 이 영화가 단순히 뉴욕 세계무역센터 꼭대기를 와이어로 건너는 남자의 이미지만으로 언급될 만한 작품도 아니다. 어떤 영화는 남다른 모험담을 묘사하며 그가 얼마나 위대한 인물이었는지를 논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런 모험 아래 놓인 모두를 모험하지 않는 인물로 규정하기도 한다. <하늘을 걷는 남자>는 결국 필리페 페팃의 도전기를 다루지만 그것이 우리 모두가 본받을만한 어떤 경지처럼 떠받들지 않는다. 반대로 누군가가 행한 그 모험이 대다수의 사람에 게 어떤 감동과 흥분을 줬는지 표정을 읽게 만든다. 그리고 이를 통해 영화란 것이 줄 수 있는 감동에 대해서 역설한다. 우린 대부분 영화 같은 존재가 될 수 없다. 없을 것이다. 그게 당연하다. 그래서 우린 영화를 본다. 다행히도 영화란 것이 있기 때문이다. 영화 같은 존재들이 있기 때문이다. 우린 모두 이 세상의 중심에 설 수 없는 존재다. 그리고 세상의 중심에 서지 않아도 좋다. 그리고 그 자리에 어울리는 영화도 있을 것이다. 그 자리에 어울리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다만 우리에겐 저마다를 위한 영화가 필요할 뿐이다. 고로 영화는 존재한다. 고로 우린 영화를 본다. <하늘을 걷는 남자>는 바로 그런 영화의 존재를 되묻고, 되짚게 만드는 영화다.

흥미로운 건 이 영화가 그 시대의 공기를 호흡하게 만든다는 것이기도 하다. 필리페 페팃은 자신의 행위가 쿠데타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의 조력자가 되길 자처하는 이들은 하나 같이 기꺼이 그 흥분에 동참한다. 그 시대는 워터게이트로 닉슨의 광기가 절정에서 내려오는 시대였고, 히피들의 전성기가 지났지만 반체제적인 자유와 평화의 여운이 마지막 그림자를 드리우던 시대였다. 어떤 의미로든 무언가 한 시대가 지나가는 징후가 나타나던 시대였다. 그 시대의 끝에서 뉴욕 한복판에 110층 높이의 세계무역센터가 건설됐다. 하나도 아닌 둘 씩이나. 사람들은 땅으로 내려온 필리페 페팃에게 말한다. "다들 저 타워가 마음에 든대. 네가 저 타워에 숨을 불어넣었어." 나는 문득 김춘수의 시 <>이 생각났다. 펠리페 페팃은 완공 직전의 세계무역센터에서 하늘을 걸었고, 이는 결국 이 빌딩을 물리적 랜드마크 이상의 영혼적 상징으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일이 됐다. 그리고 다시 그 형체를 스크린에 소환할 수 있는 사연이 됐다. 지금은 사라진 그 두 빌딩이 나란히 선 풍경을 스크린에서 목도하는 건 결국 사라진 이름을 다시 되새기는 일이 될 것이다. 그것이 결국 불리어지지 않더라고 이름이 존재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일일 것이다. 완전히 다른 영화지만 마찬가지로 세계무역센터를 마주한 채 엔딩크레딧을 올리는 스필버그의 <뮌헨>과 유사한 여운이 남는 것도 그래서다. 영화를 통해 가능한 마법이란 이런 것이기도 하다. 사라진 시대의 공기 속에서 호흡하고 잊혀진 것을 다시 제 자리로 돌려 놓는 소환술. 물론 모든 영화가 그런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어떤 영화는 그럴 수 있다. <하늘을 걷는 남자>는 바로 그런 영화다. 하늘을 걷는 남자와 함께 그 시대를 걷고 호흡할 수 있는, 마술적 체험의 영화. 마음이 벅차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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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사제들>을 보고 나서 설레발을 주체할 수가 없어졌다. 지쟈스 크라이스트. 어쨌든 본격 설레발 시작.

<검은 사제들>은 전율이란 단어의 의미를 명확히 체험시킨다. 사실 한국에서 이렇게 우아하고 강렬한 게다가 한국적인 엑소시즘 영화가 나올 줄은 몰랐다. 그런 의미에서 <검은 사제들>은 국내 장르물의 새로운 한 뼘을 정복한, 오롯이 홀로 선 수작이다. 무엇보다도 엑소시즘을 기반에 둔 오컬트 호러를 국내산 로컬 엑소시즘으로 건져낸 느낌인데 결과적으로 월척이다. 웹툰에서나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장르적 느낌을 실사로서 설득력 있게 구현했다. 최후반부에 판을 살짝 키운다는 느낌은 있지만 딱히 거부감을 느낄 수는 없었다. 요즘 심심찮게 나오는 수입산 장르 코스프레물이 아니라 국내산 배양에 성공한 느낌.

무엇보다도 장르물에 성장드라마의 서브 플롯을 잘 녹였고, 캐릭터물로서도 상당한 매력이 있다. 전반적인 연출 리듬도 상당히 좋다. 특히 본격적인 엑소시즘 초반 신은 정말 매혹적이었달까. 빠르게 컷을 편집해 이어붙이면서도 슬로 템포로 카메라 앵글을 틀면서 줌인아웃을 거듭하는데 긴장감을 고조시키면서도 차분하고 세련된 리듬감으로 평온한 몰입감을 보장하는 느낌.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그 신만 떼서 계속 보고 싶을 정도로 매혹적이었음. 각본과 연출이 모두 괜찮은 인상인데 이 모든 것이 장재현이라는 신예 감독의 물건이라니, 이게 온전히 그의 역량을 뿌리 삼아 나온 결과물이라면 정말 그 이후를 닥치고 기대하겠다.

캐릭터 연출과 연기가 상당히 좋다. <검은 사제들>을 집에 빗대면 김윤석은 기본적인 골조의 틀을 잡아주고 강동원은 그 구조 안에 탁월한 풍경을 마련해주는 인상. 그리고 영신 역의 박소담은 그 풍경 안에 자리한 강렬한 소품. 사실상 캐릭터의 세기만으로 배우의 역량이 과대평가될 수 있는 배역인데 그 한계를 뚫고 스크린에 이름 석자를 박는 느낌. 그야말로 발견. 단언컨대 그녀는 새로운 바람이 될 것이다.

이미 알았지만 <검은 사제들>을 보고 백퍼 확신. 강동원은 그냥 그 자체로 장르다. 비현실, 초현실, 초자연은 다 강동원이란 이름 석자 앞에서 긍휼해진다. 강동원이란 필터를 거치면 판타지가 하이퍼 리얼리즘으로 걸러짐. 지쟈스 크라이스트 강동원느님. 앞으로 강동원의 모에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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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라는 제목을 봤을 때 무엇이 맞고 틀리다는 것인지 궁금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니 '맞고' '틀리다'보단 '지금' '그때'가 보다 중요하게 느껴졌다. 두 개의 지금 혹은 두 개의 그때. 결국 지금이라서 맞고, 그때라서 틀린 것. 이것은 결국 옳고 그름의 문제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것을 옳고 그른 것으로 판명해주는 시간에 관한 이야기인 것이다. 언제나 지금은 맞지만 언젠가 그때는 틀렸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시간이라는 마술적 흐름에 관한, 굉장히 사소한 발견의 깊이.

완전히 분절된 데칼코마니 형태의 출발점에서 제각각 시작되는 두 개의 이야기. 홍상수 감독 특유의 대구 구조를 개별화시킨 두 영화는 하나의 시작을 품었으나 두 개의 우주로 분리된다. 아마 홍상수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새로운 전형으로 구별될만한 작품일지도. 개인적으론 <옥희의 영화> 이후로 또 한번의 전환점이라 생각했다. 하나의 시점으로 분리시킨 두 가지 삶의 체험. 정말 놀라운 영화적 경험. 사소한 일상의 톤으로 길어 올린 마술적 리얼리즘. 나는 이 영화에 어떤 찬사도 아끼고 싶지 않다. 놀랍다는 말도 부족하다.

정재영은 두 사람 몫을 하며 영화의 너비를 확장하고, 김민희는 한 사람으로서 영화의 경계를 만든다. 두 개의 정재영과 하나의 김민희가 이 영화의 대구를 완성한다. 두 방향으로서 완전한 하나의 영화. 이 영화가 놀라운 건 영화라는 체험이 삶을 어떻게 예언하는가, 삶을 어떻게 반추하는가, 정반대의 방향성을 지닌 두 가지 질문에 합당한 답을 모두 해낸다는 것이다. 그러니 결국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현재는 언제나 옳게 합리화되고, 과거는 언젠가 틀려서 부끄러워진다. 그래서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하지만 우린 언제나 지금을 사는 인간이다. 부끄럽지 않고 배길 수가 없다. 그게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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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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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 더 비기닝>은 버디무비로서의 장점이 강한 작품이다. 권상우와 성동일의 케미가 나쁘지 않다. 덕분에 웃음을 유발할만한 코미디로서의 장점이 발휘된다. 능력 없는 민폐 남편이자 구박덩어리로 전락한 권상우의 찌질한 연기를 보는 재미도 있다. 성동일 역시 사회와 가정에서의 이중적인 위세를 지닌 인물이란 점에서 코믹한 극적 장치가 된다. 물론 이게 남성편향적으로 설계된 코미디란 점은 좀 지적하고 싶어지지만.

문제는 이 영화가 기본적으로 추리물이란 점이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탐정>이라는 제목을 지우고 싶을 정도로 형편 없는 만듦새를 전시한다. 전설적인 강력계 베테랑 형사와 아마추어 추리광이 함께 사건을 풀어나간다는 골자는 흥미롭지만 베테랑 형사는 그 경력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무능하고, 아마추어는 그야말로 민폐 덩어리다. 추리를 한다기 보단 완성된 시나리오를 토대로 추리를 끼워맞춘다는 인상이랄까. 추리물이란 장르 안에서 도무지 신뢰가 안 간다. 기이할 정도의 자신감이 묘할 정도.

의외로 이 영화에서 재미있게 여겨지는 건 사건현장이 아니라 각자의 집안에서 벌어지는 부부끼리의 사연이다. 밥벌이에 무능하든, 유능하든 아내보다 약한 남편들의 고충을 나누는 광경이나 밥벌이 제쳐두고 탐정질에 환장한 남편 때문에 힘들어 하는 아내 연기를 하는 서영희의 연기는 <탐정>에서 쓸만한 서브 플롯 노릇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최소한 납득이 가는 추리물로서의 구색을 맞췄어야 했다. 그런 의미에서 긍정적으로 관람을 권하기가 어렵다.

그나마 어설픈 슬랩스틱 따위로 범벅된 쌍팔년도 명절 코미디가 아니라 캐릭터의 특성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코미디를 받아들이게 만든다는 점은 평가해주고 싶다. 그런 면에선 팝콘무비로서 가볍게 받아들일 준비가 된 관객들에겐 미덕이 없는 영화는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다만 나는 개인적으로 추천하지 못하겠단 거지.

영화가 흥행한다면 누가 봐도 속편이 나올 수 밖에 없는 결말이다. 이미 제목부터 '더 비기닝'이란 부제를 품고 있으니 당연히 결말에 대한 야심이 팽배한 것 같은데, 과연 어떨지. 전통적인 관점에서 추석에 먹힐 영화처럼 보이긴 한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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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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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스캐처> 단평

cinemania 2015. 1. 27. 03:33

1. <폭스캐처>는 실화를 바탕에 둔 작품이다. 결국 <폭스캐처>는 정해진 결말로 가는 과정에 관한 영화일 수밖에 없다. 어느 미친 재벌 상속자의 살인사건이 복잡다단한 미스터리의 내면이 뒤엉켜 벌어진 필연적 비극이었음을 추론해 풀어헤친 뒤 개연성 있는 서사로서 나열해내는 과정이 상당히 흥미롭다.

 

2. 감정적인 온도를 동결시키는 서늘한 기조를 밀고 나가는데 그 덕분에 <폭스캐처>에선 감정의 온도보다도 밀도가 크게 와닿는 인상이다. 시종일관 팽창되는 감정의 밀도로 스크린이 꽉 차오르는 느낌이랄까. 그래서인지 스산해 보이는 스크린 너머의 온도가 감지되기보다도 목까지 차오르는 불안감이 들썩이는 느낌을 연신 얻었다. 그만큼 심리적 인과를 세심하게 드러내는 내러티브의 개연성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 형성되는데 그에 걸맞게 시종일관 힘을 잃지 않으면서도 인과의 흐름에 집중할 수 있도록 감상의 지표를 잘 세워나간다. 한편으론 이처럼 이성적인 내러티브로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심리적 충돌을 추론해나가는 이 영화가 서늘한 온도를 유지하는 것이 당연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3. 카메라는 인물에게 결박된 유령처럼 슬그머니 그 주변에 부유하듯 존재하는데 인물의 표정과 내면의 감정을 중계하는 카메라의 거리감이 변화하는 방식은 처음부터 끝까지 살얼음판 같은 분위기를 평행선처럼 이어나가는 이 영화에 미세한 긴장과 이완의 리듬을 만들어낸다. 인물과의 거리감을 통해 물리적인 풍광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차원을 넘어서 객석에서 지속적으로 감지할 수밖에 없는 불안감을 벌리고, 조이는 인상이랄까. 특히 인물의 얼굴을 초근접 촬영한 컷이 스크린을 장악할 때 정말 광활한 풍경이 된다고 느꼈는데 인물의 내면적 갈등이나 결핍이 순간적으로 감상의 여지를 확 벌리고 쓰나미처럼 쏟아져 버리는 것 같았다. 그만큼 배우들의 표정 연기가 상당히 좋았다.

 

4. 대단히 빛나는 연기를 선보이는 마크 러팔로와 스티브 카렐의 연기를 위한 반사판 노릇을 하고 있지만, 채닝 테이텀의 연기 또한 상당히 좋았다.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를 차지하는 그의 연기는 시작부터 호기심을 끌어내고 견인하며 영화에 탁월하게 기여한다. 무엇보다도 스티브 카렐이 맡은 존 E. 듀폰이 채닝 테이텀이 연기하는 마크 슐츠를 만나며 처음 등장할 때의 신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괴팍하면서도 음침한 구석이 있어 보이는 백만장자가 여유를 부리며 불운한 금메달리스트를 대하며 권위적인 호흡으로 대화를 주도하고, 대화의 여백을 만들어 상대의 반응을 골똘히 살피다가도 쉭쉭거리며 숨을 가다듬을 수밖에 노쇠한 육체가 새어나오는 모습을 보고 스티브 카렐이 이 작품의 주도권을 쥐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당연히 그래야겠지만 당연히 그럴만한 연기를 한다는 건 또 다른 차원의 경지다. 코를 붙인 건 단지 외모를 따라가기 위해서였을지 모르겠지만 그가 살짝 고개를 들고 상대를 응시하며 침묵을 통해서 어떤 불만을 전하고 긴장감을 조성하는 신에선 그 코의 높이가 상당히 기능적인 역할을 해낸다는 인상이었다. 한편으로 감탄한 건 마크 러팔로와 채닝 테이텀이 연기하는 선수로서의 움직임이었는데 채닝 테이텀이 고릴라처럼 성큼성큼 걷는다면 마크 러팔로는 오랑우탄처럼 흐느적거리며 걷는다. 이런 행동묘사는 인물의 성격과도 완벽하게 부합돼서 행동과 심리에 대한 입체적인 감상 층위를 형성한다. 정말 좋은 배우들이다. 한편으론 최근 <아메리칸 스나이퍼>에서도 등장하는 시에나 밀러가 좋은 작품에서 거듭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개인적으론 그녀가 에이미 아담스 정도의 배우로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기 때문에 반갑기도 했는데, 물론 어찌될진 두고 볼 일이다.

 

5. 베넷 밀러는 <카포티>, <머니볼>에 이어서 <폭스캐처>로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실화 바탕 영화로 채웠는데 <폭스캐처>를 보고 나니 앞으로 어떤 경력을 얻게 될지 궁금해졌다. <카포티> <머니볼>이 어떤 인물의 내면에 관한 영화였다면 <폭스캐처>는 어떤 사건의 내면에 관한 영화에 가깝기 때문에 그의 전작들과 다른 지점이 존재한다. 인물의 관계 구도가 중요했고, 그 관계 구도로 뒤엉킨 심리가 파생시킨 사건이 중요했다는 점에서 베넷 밀러의 경력 안에선 새로운 지점이었던 것 같다. 그만큼 <폭스캐처>가 베넷 밀러라는 감독에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는 담보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6. <폭스캐처>는 열등감의 지옥에 갇혀버린 이들에 관한 이야기다. 빈부의 대비가 아이러니할 정도로 혈연에게 인정 받고자 하는 결핍에 삶을 지배당하는 두 사람의 만남은 필연적으로 어울리고, 필연적으로 어울릴 수 없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결국 그 불가분의 비극은 벌어지고 만다. 흥미로운 건 존 듀폰과 마크 슐츠가 자신의 열등감을 공허하게 채우는 방식인데 국가에 대한 충성심에 복무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덧없이 팽창시켜서 자신이 원하는 대상에게 그 존재감을 전시하고자 하는 그의 노력이 새어나가는 순간과 그의 노력에 사냥개처럼 복무하며 자신의 존재 가치를 되새기는 마크 슐츠의 환각이 흩어지는 순간 이후의 과정에선 일말의 페이소스가 느껴지는데 그 페이소스는 에필로그에 가까운 결말과 맞붙어 가질 수 없는 무언가를 꿈꾸는 인간의 처연함 그 자체로 와닿는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두 사람이 각기 인정받고자 했던 대상은 영화의 끝에 다다라 모두 다 세상으로부터 사라지고 지워진다. 그런 의미에서 결국 <폭스캐처>는 여우를 사냥하는 인간을 흠모하다 버림 받은 사냥개들의 영화처럼 보인다. 생각보다 슬프고 처절한 영화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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