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훈의 <타짜>가 해운대 앞바다였다면 강형철의 <타짜-신의 손>은 캐리비안 베이다. 인공 파도에 휩쓸리는 것도 나름의 재미가 있지만 결국 인공 파도는 인공 파도다. 애초에 기획되지 않았던 속편이란 맹점과 한계를 그나마 강형철이 잘 메우고 이어낸 인상이지만 태생적인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는 인상. <타짜>의 캐릭터들이 차, 상, 마, 포 같아서 저마다의 파괴력도 있고, 차가 판을 휩쓰는 압도감과 마가 차를 삼키는 쾌감도 있었지만 <타짜-신의 손>은 '졸'의 향연 같아서 실력이 평준화된 선수들의 싸움을 보는 재미도 있지만 '졸'전임이 뚜렷해 보여 김이 새는 지점도 적지 않았던 것 같다. 만들기 위해 만들어진 속편인지라 특별한 무언가를 기대하진 않아서 크게 아쉽진 않았지만 썩 만족스럽지도 않았다. 다만 러닝타임에 비해서 지루하게 느껴지진 않았다는 점에선 본래 품었을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것 같다고 생각한다.

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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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워> 단평

cinemania 2013. 1. 1. 18:42

솔직히 촌스럽다. 웃기고 울리려는 의도가 다분한 찰나가 그런 정황 속으로 끼어들어가도 될 거라 판단한 연출적 감이 기가 막힌다. 말 그대로 그냥 웃기고 울리는 순간을 나열하면 된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하지만 그런 촌스러움이 <타워>를 붕괴시키는 한방은 아닌 것 같다. 그래도 뛰어난 배우들의 연기와 완성도 높은 CG가 이런 단점을 상쇄시킨다. 거대한 주상복합주택의 화재 안전성은 현재에도 여러 차례 제기되고 있는 문제라 CG의 완성도로 인해서 보다 현실적인 공포로 치환된다. 고의적인 악역의 설정도 눈에 빤하지만 우리네 일상에서 마주치는 파렴치한들의 수준이 그만한 것이라 딱히 뭐라 지적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어쨌든 인재에서 비롯된 거대한 재난의 수순은 인정할만하다. 재난의 이미지는 완벽하고 그 안의 끔찍한 그림도 여럿이라 붕괴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결말부까지의 참혹함은 진짜처럼 와 닿는다. 다만 한강 너머에서 바라보이는 여의도의 타워 스카이는 사실 누가 봐도 9.11의 유사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같아서 남의 비극을 상업의 도구로 활용한 것 같다는 일말의 거부감도 든다. 그 이미지를 권유할 마음도 없지만 말릴 마음도 없다.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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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션 사극 <광해: 왕이 된 남자>는 광해군 집권 당대의 아슬아슬한 정치적 조형을 창작적인 스토리텔링으로 안착시키는데 성공했다. 구중궁궐 내의 정치적 모략의 중심으로 떠밀리며 엄격한 궁의 생활에 적응해나가는 왕의 남자의 일상은 코믹한 광경을 이끌어낸다. 이 아이러니한 유머가 칼을 품은 <광해>에서 자연스러운 긴장과 이완의 리듬을 만들어낸다. 아슬아슬한 정치적 조형을 창작적으로 잘 안착시킨 시나리오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때때로 그 합이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 순간도 존재하나 전반적으로 거슬리지 않는 흐름을 지녔으며 그 틈새를 메우는 건 배우들의 탁월한 연기다. 1인 2역을 오가는 이병헌은 서까래처럼 영화의 지붕을 받치고, 류승룡은 주춧돌처럼 영화를 떠받든다. 김인권과 장광의 연기에는 마음이 간다. 교과서적인 웅변조차 절절하게 소화하는 <광해>정치하는 사람보다도 사람이 하는 정치 18세기 조선이나 21세기 대한민국을 관통하는 절실함임을 잘 알고 있다. 달다가 맵다가 끝내 콧날이 시큰해진다.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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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마라톤 출전 선발전에서 1등을 한 조선인 준식(장동건)이 일본의 마라톤 유망주로 촉망 받던 하세가와(오다기리 조)를 제치고 결승 테이프를 끊는다. 하지만 1등으로 호명되는 건 하세가와였다. 분노한 조선인 관중들은 일본인과 뒤엉켜 싸우고 그 결과, 준식을 포함한 조선인들은 현장에서 체포되고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일본군으로 징용된다. 그곳에서 전쟁을 수행하던 준식은 새로운 부대장으로 임명된 하세가와를 마주하게 된다. 어려서부터 마라톤 금메달을 꿈꾸며 경쟁하던 준식과 하세가와의 인연이 전장에서 새로운 악연으로 거듭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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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웨이> 단평

cinemania 2011. 12. 14. 11:05

<마이웨이>는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 후 독일군 포로로 잡힌 한국인에 관한 사진 한 장이 모티프가 된 소설을 영화화한 결과물이다. 눈길을 끄는 파편 하나를 중심에 두고 몸통을 그려 넣은 영화라는 말이다. 마라톤 금메달의 꿈을 품고 경쟁하던 일제 치하의 일본인과 조선인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전쟁터에 서게 되고, 결국 핏덩어리가 되어 뒹굴다가 몇 번에 걸쳐서 군복을 갈아입고, 노르망디 해안까지 다다르게 되기까지의 우여곡절이 그것이다. 이는 결국 <태극기 휘날리며>로 전쟁신 촬영의 노하우를 익힌 강제규 감독의 야심을 담아내기 위해 마련된 그릇 같다. 전쟁영화의 스케일이 험난한 로드무비의 여정을 따라 전시되고, 끝내 두 남자의 멜로로 봉합된다. 기술적인 완성도가 우월한 전투신이 네 번 정도 마련되는데 저마다 압도적인 스펙터클을 자랑한다. 다만 반복적으로 비슷한 것을 보고 있다는 감상 안에서 그 위력이 점차 무마된다. 그 간극마다 비극적인 시대성 안에서 탈이데올로기적 경험을 공유하는 두 남자의 멜로적인 우정, 페이소스를 자극하는 여정이 분명 효과적으로 감정을 건드리는데, 그 물리적인 감정의 총합이 끝내 클라이맥스의 파고를 이루는 느낌은 아니다. 스펙터클의 풍경 안에 선 중심 캐릭터의 감정선이 지나치게 작위적인 합에서 구르는 탓에 좀처럼 이입하기가 쉽지 않다. 스펙터클의 힘이 다할 무렵, 서사의 흥미도 예상 범위 안에서 딱 떨어진다. 거대한 스펙터클의 전시를 위해서 페이소스가 남발되는 양상이다. 150여 분에 다다르는 러닝타임을 이런 방식으로 견뎌내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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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빛만으로 모든 사람을 통제할 수 있는 이름 모를 남자, 그리고 유일하게 그 눈빛에 통제 당하지 않는 남자 규남(고수), 두 남자가 만났다. <초능력자>는 그래서 시작되는 영화다. 세상 누구에게도 자신의 정체를 드러낼 필요도 없이, 어쩌면 드러낼 수도 없이, 급류처럼 인파가 흐르는 서울 한복판에서 외딴 섬처럼 살아가던 초인(강동원)은 사람을 조종하는 능력으로 대부업자들의 돈을 탈취해내며 세상으로부터 스스로를 고립시킨 채 유유히 살아간다. 그리고 어느 날처럼 돈을 얻어내기 위해 들어선 대부업자의 사무실에서 규남을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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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크릿> 단평

cinemania 2009. 11. 20. 15:31

아내가 살인했다. 아니, 살인한 것 같다. 형사인 남편이 살인현장에서 발견한 물증들은 정확하게 아내를 진범으로 겨냥하고 있다. 대학동기인 동료형사에 대한 불리한 증언마저 고지식하게 해낼 수 밖에 없었던 원칙주의자 형사는 남편으로서 기로에 선다. 남몰래 물증의 은폐와 훼손을 감행한다. 그러나 수사가 거듭될수록 은폐하거나 훼손할 수 없는 증거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건넜다. 그리고 도무지 돌아설 수 없는 일이다. <세븐 데이즈>의 각본을 쓴 윤재구가 직접 메가폰을 잡은 <시크릿>은 전자와 마찬가지로 공공적인 윤리에 발붙여야 할 이를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에 얹어놓은 뒤 벌어지는 개인적 갈등을 다룬다. 윤리적 죄의식에 등돌린 채 개인적 불행에서 헤어나기 위해 내달릴 수록 상황은 진창으로 떨어진다. 가치관의 갈등을 느끼는 인물의 심리는 <시크릿>에서 전반적인 긴장감을 직조해내기 위한 궁극적 핵심과 같다. 동시에 빠르게 나열되는 컷과 숏을 통해 정보량을 증가하는 <시크릿>은 단서들의 교차와 충돌을 통해 비밀을 한 꺼풀씩 벗겨가는 스릴러다. 일단은 그렇다.

 

<시크릿>은 인공적인 영화이자 그것을 애써 가리지 않는 작품이다. 말끔한 슈트를 차려 입은 형사의 옷 매무새부터 시작해서 끝없이 단서를 벌려나가는 내러티브의 형태까지, 영화는 좀처럼 현실을 끌어안을 생각이 없다는 듯 모든 것들을 연출적 시공간으로서 치장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스릴러로서 단서를 벌려나가는 이야기가 딱히 인상적이지 않을 때, 이 모든 건 허세가 된다. <시크릿>은 기본적인 비밀의 깊이를 유지하지 못하면서 그 수면 위에 단서를 마구 흩뿌린다. 사연의 단초는 쓸만했다. 도입부의 몽타주도 꽤나 인상적이다. 문제는 그 사연의 설계다. 비장한 표정으로 자꾸 패를 던지는데 그 결과가 초라함을 벗어나지 못한다. 비밀은 여간 해서 모른 체하기 어렵고, 결말부에 다다라 영화가 제 입으로 설명하는 비밀의 정체란 구차하기 짝이 없다. 게다가 그 끝에 매달린 사족은 명백한 낭비다. 허물처럼 벗겨지는 단서들 사이에 감춰진 비밀의 정체란 정작 허망하다. 감춰야 할 것은 제대로 감추지 못하면서 지나치게 많은 것들만 드러낸다. 비범한 척 패를 돌리지만 결과적으로 뻥카 같은 반전 앞에 허세로 몰락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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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사부일체> 마지막 30분에 쓰나미가 밀려온다면? <색즉시공> 마지막 30분에 쓰나미가 밀려온다면? <1번가의 기적> 마지막 30분에 쓰나미가 밀려온다면? 이 질문에 수렴할만한 정답은 <해운대>. 단지 제목은 변경돼야 한다. 또한 바다가 인접한 지역이었을 때 가능하다. 서울 한복판에서 쓰나미를 연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를 다른 이미지로 치환하는 것도 가능하다. 만약 테헤란 거리 한복판에서 지진이 일어나 건물이 무너지고 사람들을 구덩이로 빠뜨리면 그 영화 제목은 <테헤란>이 될 지도 모른다. 농담이냐고? 글쎄.

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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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권 인터뷰

interview 2008. 5. 31. 07:02
사용자 삽입 이미지

벌써 데뷔한지 10년이 넘었다. 스스로 뭔가 달라졌다는 게 느껴지나?
아무래도 영화에서 나한테 원하는 게 뭔지 좀 더 잘 보이는 거 같다. 내가 해야 될 부분과 하지 말아야 될 부분도 보이고. 예전 같으면 그걸 잘 몰라서 무조건 플러스 알파를 더 얹어서 하거나, 더 해야 될 부분이 있는데도 멍청하게 안하고 있었던 거 같은데 이젠 그에 조금 더 맞추게 된 거 같다. 물론 아직도 멀었지만! (웃음)

캐릭터에 접근하는 게 좀 더 수월해졌다는 말처럼 들린다.
기술적으로는 조금. 그래도 매번 역할을 만날 때마다 절대 호락호락하진 않지. 작품마다 감독님도 매번 다르고.

작년 한해는 정말 바빴을 거 같다.
2년 동안 쉬었던 걸 몰아서 했으니까. (웃음)

제대하자마자 바쁘게 출연하더라. 그래도 한동안 공백이 있었는데 캐스팅 제의가 꾸준히 들어왔나 보다. 어떤 면에서는 스스로 걱정되는 일이었을 법한데.
죄다 거절하지 못해서 많이 하게 된 것도 있지. 거의 시간되는 대로 출연했다. 근데 나도 많이 바랬다. 군대 있을 동안 나가서 일하고 싶다는 마음이 굉장히 컸으니까. 고마운 일이지.

연예사병을 한번쯤 염두에 두진 않았나?
군대에 있을 때는 자기 생각이 있을 수 없지 않나. 하나마나, 까라면 까야 되니까.(웃음) 나도 전투경찰로 가라니까 간 거지. 아니요. 저 연예사병갈래요. 이럴 수는 없는 거고. 병장 말년, 전경 식으로 말하자면 수경이나 되야 자기 의사표현이나 하고 말 좀 하지. 훈련소에서는 뭘 알았겠어.(웃음) 단지 내게 군대 2년은 너무나 무거운 짐이었기 때문에 빨리 덜어낸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사실 좀 더 일찍 가려고 했지만 그 때마다 캐스팅 제의가 들어와서 결국 애초 생각보다 늦게 가게 된 걸로 알고 있다.
사실 난 입대영장 받고 배우를 시작했다. 영장 받고 이제 군대가야지 했던 게 이제 스물 한 살 때, 98년도니까 10년 전이다. 그래서 군대 가기 전에 재미난일 없을까 하다가 학교 조교로 있었던 매형 권유로 오디션 봤다가 결국 그로 인해 배우생활을 하게 됐다.

그게 바로 <송어>?
그렇지. 그렇게 <송어>로 시작해 군대라는 짐을 계속 어깨에 얹고 배우 생활을 하다가 결국 <신부수업>까지 끝나고서야 이제 겨우 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늦게 가면 그만큼 고생인데.
나이 먹어서 가면 안 좋다.(웃음) 군대는 아무것도 모를 때 일찍 갔다 와야겠더라. 그냥 고등학교 끝나고 대학에서 자유를 조금 맛봤다 싶을 때쯤이나. 자유가 완전히 몸에 배어버린 뒤에 가면 더 힘들어지는 것 같다.

군대 가기 직전에 안톤 체호프의 <갈매기>를 공연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대학 시절 이후로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알고 있다. 혹시 더 있는데 내가 모르는 건가?
아니. 없다. 사실 내가 연극영화과 나오긴 했지만 전공은 영화연출이다. 동국대학교 연영과는 입학하면 2년 동안 커리큘럼이 같다. 영화로 들어왔어도 일단 무대 작업부터 먼저 해야 하고, 선배들 연기할 때 못질부터 먼저 해야 된다. 4학년이었던 이성재 선배님이나 김주혁 선배님이 무대에 오를 때 난 밤새도록 못질해서 세트 만들고, 의상 만들고 그랬다. 하지만 솔직히 난 연출 전공이라 연극에 뿌리를 둔 배우라고 말하긴 빈약한 게 사실이다.

예전에 농담처럼 주인공 친구 전문배우라고 스스로 말했다. 아무래도 조연배우로 인식된 자신의 상황에 대한 우회적 발언이 아닌가 싶다.
내가 인터뷰할 때마다 김인권씨는 조연인데 주연하고 싶지 않느냐, 주연배우를 한다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런 질문을 상당히 많이 듣게 된다. 그에 대해 내 마음을 솔직히 말하자면 주연은 하고 싶다. 하지만 그건 마치 하늘을 날고 싶다는 것과 마찬가지처럼 느껴진다. 날개를 달고 하늘을 날고 싶다는 게 누구나 지닌 생각이듯, 내가 주연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그것과 비슷한 거 같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하늘을 못 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주연에 대한 생각은 당연히 갖고 있지만 단지 현실적으로 이에 대한 복잡한 문제들이 있고, 내가 아직 갖추지 못한 부분도 스스로 알고 있다 보니까 그건 아직은 안되겠다고 생각한다. 나를 주인공으로 내세워서 영화를 만든다는 것에 대해서는 아직은 조금 깊이 생각해야겠지. 하지만 열심히 하다 보면 어느 순간엔 김인권 씨가 주연을 해줘야 되겠다, 이런 날이 올 수도 있겠지. 물론 주연이 아닌 조연이라도 굳이 김인권 씨 아니면 안되겠다고 하면 그것도 어디겠냐.

조연이라고 같은 조연은 아니다. <숙명>에서도 캐릭터의 선은 상당히 굵은 편이었으니까.
시나리오에 세 번째 주인공이라 명시되어 있는 만큼 주연급 정도로 생각할 수 있는 비중은 된다. 하지만 난 주연이 확실히 있는 상황에서 도와주는 게 조연이라고 본다. 이번 영화에서 송승헌 씨가 연기한 우민이 확실한 주연 역할이고, 난 주인공 친구 역할로서 모든 사건에 동기부여를 해주는 거니까 말하자면 도와주는 역할로서 조연이 맞지. 우민 역할이 더 동기를 가질 수 있도록, 우민이가 더 불쌍하고 더 피폐해지는 모습을 보일 수 있게 그가 처한 상황을 더 암담하게 만드는, 그래야 영화의 마지막 장면까지 우민이가 끌고 가는 힘이 더 강해지지 않을까, 그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했으니까.

도완은 작년에 연기했던 캐릭터들보다 입체적인 성향을 지녔다. 데뷔작이었던 <송어>의 태주나 <플라스틱 트리>의 수처럼 어떤 트라우마가 보이기도 하고.
일단 그 트라우마가 상처, 결함의 의미로 이해하면 될까?

상처를 지니게 된 근본적 이유라고 할까, 단순히 말하자면 응어리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런 연기를 할 땐 내가 배우로서 풀어볼 수 있는, 정확히 뭐라 말할 수는 없지만 내공을 끌어내는 어떤 주머니가 있는 거 같다. 그런 트라우마가 나도 모르게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이지. 그러다가 인물과 가까워지면서 그게 나왔을 수도 있고. <송어>에서도 정신 없게 굉장히 열심히 했는데 그때와 느낌이 비슷했다. 뭐랄까, 연기를 통제한다기 보단 그 통제를 벗어나 어느 순간 극단적 흐름을 타게 되는 순간이 있다. 그런 데서 인간의 본 모습이 보이기도 하잖아. 나도 트라우마가 있긴 있는 거 같다. 사람은 누구나 다 비슷하니까.

그런 극단의 연기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자신과 소통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 같은데.
인간도 동물이다. 사회에서 묻혀 살면서 도덕에 대한 교육, 학습을 거치고 그것이 몸에 배면서 동물적이고 야생적인 면은 거세당하는 거지. 게다가 요즘 시대가 남성성을 최대한 거세하려는 시대니까. <숙명>도 시대적으로 보자면 가위 들고 잘라버리기 위해 덤벼들만한 것이다. 그건 이 시대에 있어서는 안될 만한 것이거든. 여배우도 마찬가지지만 남자배우라면 자신의 야생성이나 동물적인 무의식과 의사소통을 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걸 못하면 연기를 할 때 난해해진다. 연기를 해도 자기 안에 있는 그런 부분과 연결을 못하면 재미없어진다. 근데 김해곤 감독님의 영화를 보면 자기 속에 있는 남성성, 야생성하고 의사소통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배우 출신 감독으로서 배우로서의 직업병이 작용한 건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그런 동물성과 자연스럽게 의사소통을 하고 있지 않았을까. 멜 깁슨 감독이 만든 <아포칼립토>나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도 짐승처럼 잔인한 인간의 동물성을 드러내는 것처럼. 그래서 종종 (송)승헌이 형이나 (권)상우 형한테도 멀쩡하게 좋은 역할 다 놔두고 왜 지저분하고 망가진 역할 하냐, 이러는데 사실상 그분들도 자신의 야생성을 끌어내주는 걸 보면 거기에 매혹되고 매료 당하는 거겠지.

사실 <숙명>의 캐릭터 중 도완이 가장 잔인하게 느껴진다.
나 같은 경우는 피가 나오니까. 도완은 자기 몸을 막 그어버리고 그러기도 하고, 솔직히 푹 찌르는 거 보단 쪼잔하게 살짝 그어버리는 게 더 잔인해 보인다. 그렇다 보니까 지저분해 보이는 것도 있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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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도칼로 미진의 얼굴을 긋는 장면은 섬뜩했다.
연기하는 입장에서도 섬찟했다. 내가 사랑하는 여자를 그렇게 한다는 게 그 자체로 상당히 끔찍한 거니까. 물론 그게 감독님이 이야기하는 방식이고 그걸 통해서 감독님이 보여주고자 하는 뭔가가 있었으니까 이해했다. 미진을 놓고 봤을 때, 이 여자도 도완이 못지 않게 밑바닥이다. 술집 나가서 맨날 담배나 뻑뻑 피고, 술이나 마시고, 그 와중에 남자친구라고 하나 사귀는 게 약쟁이지. 그런 상황에서 도완이는 자기도 밑바닥이지만 도완이는 너무 좋으니까 자기 입장에서는, 너 그렇게 살 바에는 내가 네 얼굴 긋고 내가 보살피고 살겠다. 차라리 네가 다른 남자 만나면서 지저분하게 살지 않게 하겠다. 나랑 있자, 는 진심이 포함된 거지. 아무 생각 없이 그걸 행동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진실됐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여자를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진짜 동물적인 남성의 마지막 결단이니까.

그 애정의 근거가 더 필요할 것 같다.
이렇게 하기 전에 했던 도완은 이미 자기가 죽으려고 했지 않나. 그럼 그건 아마 도완이에게 자기가 죽는 것보다 더 하기 힘든 행동이었을 거다. 만약에 그게 더 쉬웠다면 먼저 여자의 얼굴을 그었겠지. 그리고 그래도 안되면 죽었을 테고. 근데 자기 배를 찔렀는데도 우민이가 와서 살려놓으니까, 안되겠다. 내가 살아있는 이상 미진이가 없으면 안 된다. 미진이를 저렇게 지저분하게 살게 하는 것도 안되고. 난 도완이가 그렇게 생각한다고 느꼈다.

김해곤 감독은 상당히 거칠고 센 입담을 구사하는 편으로 유명하다. 그런 성격에 적응하는 것부터가 중요했을 것 같은데 어땠나?
겁나는 개가 짖기도 잘 한다고, 속으로는 알몸이라 여린 사람이 약점을 가리기 위해 겉으로 화를 잘 내고 욕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욕하는 것만 봤다면 저 사람 무서운 인간이다, 이렇게 단정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게 아니라서 감독님 욕은 그렇게 지저분하게 들리지가 않는다. 굉장히 동정심이 가는 욕이다. 그래서 난 감독님이 굉장히 인간적으로 느껴진다. <숙명>에서도 부분부분 느껴지지 않나? 진짜 밑바닥에서 살아온 사람들만의 어떤 끈끈한 인간애라던가, 삶에 대한 집착이라던가, 이런 게 욕에 묻어나니까. 사실 예전부터 김해곤이라는 배우 때부터 감독님을 좋아했고, 덕분에 현장에서 만났을 때는 매료가 됐지. 지금 어떤 영화평을 떠나서 김해곤이란 사람이 써내는 대사만 봐도 그냥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본다.

사실 조연으로 출연하면서 다작하는 경우가 많다. 작년에도 그랬던 것 같고. 그런 경우에는 캐릭터의 다양성을 극복하는 게 중요할 것 같다.
배우가 캐릭터와의 관계를 놔버리면 영화에 도움이 되게끔 연기가 나오긴 나온다. 그러나 그런 연기는 그 배우를 잊혀져 버리게 만드는 게 아닐까 싶다. 조연을 하더라도 그 캐릭터에 대한 애정과 이해가 필요하다. 연기하는 배우가 그걸 이화(異化)시켜 버리면 비호감이 된다. 그저 이 캐릭터가 이런 거 아니겠어?, 이렇게 대충 보여주게 되면 배우로서 생명력이 짧아지는 길이 될 수 밖에 없다. 그게 우리가 흔히 표현하는 가벼워진다, 망가진다, 란 것이 될 수 있는데 사실 그렇더라도 그걸 자신과 동화시켜서 끌고 가면 그건 배우로서 발전적인 연기라고 본다. 근데 그걸 자기로부터 이화시켜버리니까, 놔버리니까, 그럼 결국 관객이 똑같이 느끼는 거지. 저 사람에게 어떤 인생이나 인간미가 느껴져야 되는데 그냥 주연을 위해 도와준답시고 자신을 젖혀놓게 되면 그 배우도 젖혀져버린다. 다양한 역할을 할 때 놓치지 말아야 할 건 이 캐릭터에 내 자신을 동화시켜서 현장에 가져가야 된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는 거다.

자신을 캐릭터와 동화시킨다는 의미를 좀 더 구체적으로 묻고 싶다.
내가 모르는 연기를 하면 안 된다는 거다. 내가 아는 것 내에서 연기해야지, 내 연기가 아니라 나 이외의 것을 끌어다가 연기해버리면 그건 그 캐릭터를 사랑하지 않는 거나 다름없다. 정말 그 캐릭터를 사랑한다면 이 캐릭터가 보여주는 것 중 나에게 있는 것만 남겨놓고 나머지 제 성격을 버리는 거다. 그런 식으로 연기하면 그건 내 모습이지. 내 어딘가에 있는 내 모습이 되는 거거든. 그럼 관객도 그렇게 느낄 테고, 결국 저 배우가 보이는 거다. 내가 그 캐릭터를 놔버리면 애정과 이해를 놓아버리는 것과 다를 게 없고 그 순간, 위험해진다고 봐야지. 어쩌면 그에 비해 조연보다 주연이 편할 수도 있겠다. 시나리오 책 한 권에 캐릭터의 역사가 다 나오잖아. 물론 그대신 그만큼 책임이 큰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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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은 어떤 전사를 배제하는 것처럼 어느 지점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래서 그 흐름에 대해서 유추해내는 게 중요하지 않았을까 싶다. 도완이란 역할에 대해서도 스스로 포인트를 잡아가야 했을 것 같은데.
도완이 같은 경우에는 내게 없는 부분을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게 있었다. 사실 도완이는 객관적으로 내가 표현할 수 있는 70%를 내게서 가져갔지만 한 30%는 놔버린 게 있었다. 그래서 영화를 보면서 안타까울 때가 있고 종종 감독님이 원망스러운 부분도 있다. 물론 내가 감독님을 너무 좋아하지만 날 좀 잡아주지, 하는. 현장에서 내가 너무 힘에 부쳐서 힘들어 하니까 아예 그냥 놔버리고 가게 될 때가 있었다. 그런 게 이제 나는 보였지. 그리고 관객들도 분명히 그걸 느낄 거다. 물론 거기서는 이제 100% 다 내게서 가져가고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있기도 했지만 어느 부분에 있어서는 내게 없는 걸 가져다 놓고 스스로, 그냥 이런 거 아니겠어?, 했던 것도 없진 않았었다는 거지. 그래도 한편으로 많이 가져갈 수 있었던 건 감독님이 잡아준 덕분이기도 하다. 만약 내가 내 멋대로 했으면 더 많이 가져갈 수 없었을 텐데 감독님이, 그건 아니다. 도완이는 이거다, 라면서 현장에서 많이 교정해줬거든. 만약에 나대로 했다면 그 캐릭터를 내 맘대로 가져갔을지 몰라도 감독님이 원하는 도완이가 아니었겠지. 하지만 감독님을 내가 이해한다고 해도 서로 완전히 100% 같을 수는 없는 거다. 그걸 끝까지 물고 늘어질걸, 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못한 부분도 있지. 만약 그럼 너는 뭐했냐고 하면 나도 나름대로 하긴 했지만 나는 부족하다고 느끼는 거다.

약물 중독에 대한 연기를 위한 구체적인 준비 과정도 있었을 것 같다.
구체적으로 약이 나오는 영화는 죄다 봤다. 다른 배우들은 약 먹은 연기를 어떻게 하는지, 심지어 약을 해본 경험자하고도 만나려 하니까 안 만나 주더라. 그래서 전화통화라도 해봤다. 일단 중독된다는 게 또 사람마다 다르더라. 약의 종류에 따라서도 다르고. 그걸 외형적으로 어떻게 표현하느냐, 의 문제 때문에 영화를 굉장히 많이 봤지. 한 40편 봤나? <레퀴엠>이나 <트레인스포팅>이라던가. <사생결단>에서 추자연 씨가 연기를 정말 잘 했더라. 그래서 상도 받았겠지만, 약에 취해서 씨익 웃는 게 정말 뭔가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잘 했다. 약을 먹었을 때의 어떤 흥분이 이런 느낌이구나, 라는 걸 디테일 하게 알아야 했거든. 막 약하고 자지러지게 웃는 모습이 정말 최고조의 기쁨처럼 느낄 수 있어야 하니까. 그리고 그게 끝난 뒤 찾아오는 금단 현상도 마찬가지였지. <친구>의 유오성 씨처럼 추워서 몸을 떠는 식이기도 하고, 장이 뒤틀리듯 속이 쓰린 사람도 있고. 도완이 같은 경우는 장도 아프고, 뼈도 쑤시고, 그래서 밥도 안 넘어가고, 그런 걸 이제 내가 다 가지고 가는 거지.

도완은 칼을 잘 다루는 캐릭터로 묘사되기도 한다.
도완이는 자기 배도 가르고, 여자친구 얼굴도 가른다. 내가 생각하기에 도완이는 상처를 입는다던가, 몸에 피가 난다는 거에 대해 굉장히 익숙한 애다. 우리는 그에 대한 두려움이 있잖아. 주사바늘 하나 들어가는 게 무서워서 병원에 안가는 사람도 많으니까. 근데 도완이는 그게 아니거든. 도완이는 그 공포를 이미 스스로 넘어선 놈인 거지. 그리고 일단 도완이는 송승헌 씨나 권상우 씨처럼 키도 크지 않고, 근육도 좋지 않다. 그래서 면도칼로 쓱 그어보고 피 나는 걸 찍어 먹어보는 식으로 사람들에게 위압감을 주는 거지. 쟤는 함부로 건들면 안되겠다는, 당장은 저놈을 두들겨 팰 수 있다 해도 언제 내 뒤통수에 저놈이 뭘 들이댈지 모르겠구나, 라는 걸 인식시키는 거다. 살아남기 위해서 스스로 극복한 거지. 한편으론 잃을 게 없는 거다. 그래서 남들이 봤을 때는 도완이를 잔인하고, 미친놈이고, 꼴통이라고 하지만 내가 느끼기에 도완이는 그런 행위를 스스로 합리화시키고 있다고 본다. 내가 죽이기를 했어, 목을 따기를 했어, 동맥을 끊었어, 살짝 얼굴에 그냥 몇 바늘 꿰매면 그만인데, 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겠지.

도완이는 면도칼이 방패였을까?
걔는 사실 그거 말곤 방패가 없는 거다.

그렇게 생각하면 측은하다. 그 작은 면도칼을 방패 삼아 살아가는 인간처럼 비루한 인생도 없을 테니까.
우리도 마찬가지다. 내가 뭐 특별한 게 있어서 배우 하는 것도 아니고, 몸뚱어리 하나로 연기하는 거니까. 당신도 펜으로 사는 거고. 다들 자기가 가진 재주 하나로 사는 거지. 그게 도완이는 면도칼이었던 거지. 하지만 남한테 피해가 가니까 다수에게 통용되기 힘든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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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에서 네 남자의 공통점은 자신의 가족에 대한 애착이 있다는 거다. 결국 남자의 숙명이란 자신의 가족을 위해 비루해질 수 밖에 없는 운명인가 싶더라.
나도 그렇지만 남자는 대부분 가족을 위해서 산다. 가족을 위해서 돈 벌어오는 거 아닌가. 자기 꿈도 있고, 하고 싶은 것도 있지만 결국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모두 돈하고 연계될 수 밖에 없으니까 나가서 돈을 획득해오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24시간 자유가 주어진 인생을 다 털어서 돈 벌기 위해 열심히 사는 거지. 물론 하고 싶은 일 하는 사람은 그나마 행운이지만 하기 싫은 일 하는 사람은 처자식을 위해서 여자와 어린이들을 위해서 참고 사는 거겠지.

역시 남자라서 가족에게 약해질 수 밖에 없는 건가.
처자식은 끝까지 지켜야 된다. 남자가 밖에서는 아무리 칼 들고, 발 들고 해도 부모님과 처자식은 지켜야지.

결혼이라는 건 남자에게 안정감을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어떤 책임감을 부여하기도 하는 거 같다.
가장이 되는 것도 모 아니면 도로 가야 한다.(웃음) 가족한테 끌려가면서 허덕이면서 살던가, 확실하게 벌어서 가장으로서 당당히 끌고 가던가. 하지만 애매하게 일 핑계로 가장 못하고, 가장 핑계로 때문에 일 못하고, 이러면 안 되지.

아내를 두고 입대한다는 건 부담이었겠다.
(한숨을 쉬고) 부담이 있는 정도가 아니라 많았다. 군대 있을 동안 아기까지 태어났고,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었지. 2년 동안 마음은 집에 있었다. 그러니 군생활이 어땠겠어.

제대 이후, 오랜만에 현장에 복귀한만큼 다시 연기의 감을 찾는 것도 중요한 문제였을 것 같은데.
<외과의사 봉달희>(이하, <봉달희>)로 다시 시작해서 다행이었지. 드라마는 바로 반응이 보이니까, 내 연기를 바로 체크할 수 있었다. 만약 일주일에 몇 커트가 있는 영화였다면 익숙해진 연기로 감을 찾는 게 오래 걸렸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봉달희>처럼 빠른 리듬으로 막 흘러가는 드라마의 호흡을 내가 쫓아가다 보니까 어느 순간 이렇게 빨리 됐나 싶더라.

<봉달희>를 통해서 드라마의 대중적 파급력을 실감했을 것 같다.
일단 지명도가 높아지니까 도움이 될 수 밖에 없다. 드라마를 사람들이 좋아하게 되니까 나도 함께 유명해지고 호감을 얻게 되고. <봉달희>의 김형식 감독님은 내겐 은인이다. 내가 제대하자마자 그 역할을 주셨으니까, 거기에 대해서는 굉장히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요즘처럼 영화시장이 어려울 때는 드라마가 나름대로 기회의 연장일 수도 있는데.
하지만 일단 지금은 영화를 하고 싶다. 드라마가 싫다는 건 아니고, 캐릭터를 따라가고 싶어서. 물론 대본을 봤을 때 진짜 하고 싶은 캐릭터가 있다면 그걸 연기하게 되겠지. 안성기 선배님 말씀대로 인기나 돈을 쫓아가기 보단 일을 쫓는 배우가 되고 싶다. 쉽게 말해서 이거 된다고 하는 말을 쫓기 보단 일을 쫓는 배우 본연으로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드라마보다 영화에 대한 애정이 강한 덕분이기도 하겠지.
아무래도 난 영화를 되게 좋아하나 보다. 영화가 스크린을 통해서 나를 관객과 이어준다는 걸 사랑한다. 영화라는 공정이 내가 해왔던 일이기도 하고, 시나리오도 써보고, 연출도 해봤고, 그래서 그런지 이 매체를 굉장히 사랑할 수 밖에 없겠지. 깜깜한 극장에서 나 혼자 즐길 수 있는, 물론 다른 사람들도 존재하지만 깜깜하니까 나 혼자 즐기는 듯한 즐거움이 있지 않나. 편안하게 발 뻗고 온 가족이 보는 것도 좋지만 아무한테도 말걸 수 없는 깜깜한 곳에서 스크린을 보면서 꾸는 꿈이 좋다. 물론 악몽이 될 수도 있지만.(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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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드라마보다 영화에 친숙한 탓이기도 할 것 같다.
내가 추구하는 캐릭터도 스크린을 통해서 보여줄 수 있는 것에 가깝다. 그게 때로 TV를 통해서는 방영불가 될지 모를만한 것이기도 하다.(웃음) 그리고 TV가 선호하는 배우는 잘 생기거나 예뻐야 하는 경우도 많고, 재미난 이야기를 그만큼 건전하고 밝게 전달해줄 수 있는 캐릭터도 많으니까, 거기에서 오히려 난 돋보이기 힘든 탓도 있지. 그래서 여러 가지로 영화가 좋다. 영화라는 매체가 있었기 때문에 내가 배우가 될 수 있었고, 영화가 없었으면 오히려 배우를 할 수 없었겠지. 내 감성을 이용해서 연기를 보여줄 수 있어서 영화가 좋다. 그리고 지금 영화가 힘들다고 쉬운 길 찾아가면 말 그대로 내가 내 자신을 증명하지 못하는 거지. 난 내가 영화를 사랑한다는 걸 증명해 보이고 싶다. 사실 한국영화가 가장 흥행했던 2년 동안 난 군대에 있었으니까 그 혜택도 못 누린 거다. 그런데 만약 지금 내가 드라마에 치중하면 오히려 나도 같이 거품이었다고 말하게 될 수 있는 상황이니까, 내가 거품이 아니란 걸 증명하고 싶다. 당분간은 군대에서 벼려왔던 2년이 아까워서라도 남아있어야지.

공백이 길었지만 작년에 드라마 하나에 영화 세편에 출연했다. 그리고 사실 <숙명>도 작년부터 촬영했고, 스스로 힘에 부치는 상황도 있었을 것 같다.
역할을 기다리듯 하는 사람, 그러니까 강한 동기가 생겨서 하는 사람은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런 거 없이 그저 끌려가듯이 연기하게 되면 에너지가 딸릴 수 밖에 없지. 이건 체력이 딸리는 것과는 다른 거다. 그래서 배우는 갈급함을 모아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걸 모아두지도 않은 채 관객이나 대중들, 시청자들 앞에 서면 그건 안 하느니만 못하게 된다. 요즘 <온에어>에서 송윤아 선배님을 보면 그 연기가 잘했네 못했네 자체를 떠나서 대사 치는 게 바로 그런 거다. 사실 그게 리얼리티 수준을 굉장히 떨어지게 만드는 대사톤이라서 정말 엄청나게 연습하지 않고서는 저렇게 나올 수 없는 대사인데 그걸 끝까지 유지하는 거다. 그게 눈에 보인다. 진심이 보이는 거지. 저분이 이번에 저 캐릭터를 하고자 하는 갈급함이 느껴지는 거다. 그리고 그게 에너지로 느껴지는 거고, 그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절실함이 있어야 된다는 건가?
그런 게 없으면 강렬한 캐릭터도 소용없다. 뭘 하더라도 관객을 감동시키는데 힘이 부치는 거지.

본인에게 그 갈급함은 얼마나 됐을까.
2년간의 갈급함이었지.(웃음) 그런데 네 작품이나 하니까 이제 많이 떨어지더라. 아직도 남아있는 게 없진 않지만 그걸 몰아서 풀어버리다 보니 오히려 위기감이 올 수도 있겠더라. 그래서 다시 좀 더 모아야 될 것 같다. 게다가 지금 영화판이 힘들다고 해서 냉큼 편한 자리 찾아서 가면 그게 모이지도 않는 거라 다른 생각도 배제하게 되는 거고.

영화가 김인권이라는 배우를 필요로 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 지금쯤이면 과거에 자신이 했던 연기를 돌아보게 되는 순간도 있을 텐데. 특히 군대 있을 때는 생각도 많았을 테고.
저거 진짜 못했네. 왜 저렇게밖에 못했을까. 그런 생각이 많이 들지. 나는 영화든 드라마든 작품을 찍고 내 연기를 관객입장으로 보기까지 한 10년 정도 걸리는 거 같다. 그 정도는 되야 완전히 당시 그 기분이 기억의 용량에 밀려서 갱신되고 잊혀져 버리는 것 같다. 그래서 나도 희망이 있지 않나. 앞으로 또 10년 뒤에 도완이가 과연 어땠을까, 하고 다시 보면 왜 저거밖에 못했을까, 이런 생각을 할 테니까. 그렇다면 난 분명 옛날에 했던 거보다 나아졌다는 거 아닐까. 그런 식으로 발전해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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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적어도 그 연기가 그 당시 자신에겐 베스트였을 텐데.
그 당시엔 그랬지. 그런데 그때도 비슷하다. 지금 도완이가 한 30%를 대충했다고 말하는 것처럼 그때도 최고에 달했다고 생각하지만 최고는 아니었다. 심지어는 초창기엔 카메라 앞에서 연기한 뒤 뒤돌아서 그걸 생각하지 말자고 되뇐 적도 있다.(웃음) 물론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다. 어느 순간, 이건 됐어, 이렇게 100%만족스러운 경우도 있고, 아쉬울 때는 한번 더 가자, 는 얘기도 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그 당시에는 못해놓고, 혼자 속으로 씩씩거리다가 말았지. 모든 배우들 그런 경우 있을걸. 감독이 컷! 오케이!, 하면 (속으로) 오케이 아닌데, 이러는 거.(웃음)

사실 자신의 연기를 만족한다고 말하는 배우를 보기란 드물다.
만족하기란 쉽지 않지. 근데 요즘은 어떤 커트를 해놓고 너무 힘들어서 이제 더 이상은 못하겠다, 이런 경우도 있다. 정신 차려야지. 에너지가 없으면 그렇게 되는 거더라. 에너지가 있으면, 감독님, 한번만 더 하겠습니다!, 이렇게 되는데 그걸 다 써먹고 채우질 못하니까 힘에 부치는 거다.

도완같은 캐릭터에 몰입하다 보면 심리적으로 힘들어지는 순간도 있었을 거다. 심리적으로 날을 세운 캐릭터에 동화되는 연기를 하다 보면 그게 자신에게 전이되기도 할테니까.
오히려 그렇게 했어야 되는데 도완이가 너무 끔찍하기 때문에 내가 몰입을 많이 못했다. 내 집에 딸이 있고 걔한테 영향을 미치면 안되니까. 건달도 처자식 생기면 건달 끝이라고, <넘버3>에서 나오는 말이잖아. 배우도 조심해야 된다.

아무리 그래도 몰입하지 않고서야 연기가 가능하나?
컷이 끊어지고 연기가 끝나고 감독님한테 돌아갈 때, 저 어땠어요?(호들갑스럽게), 이런 식으로 바뀌는 버릇을 들이는 거지. 바뀌지 않고 거기에 계속 몰입해서 집까지 가져가면 감당이 안 된다. 얼마 전에 인터넷으로 <추격자>의 하정우 씨 인터뷰를 봤는데 흰자에 핏발이 서 있더라. 그거 조심하셔야 된다.(웃음) 빨리 빠져 나와야 돼. 관상학적으로 핏발이 선 게 사람 죽이는 건데, 걱정되더라.

캐릭터와 일체화되는 메소드 연기를 지양하나?
아니, 지향하지. 사실 더 그렇게 했어야 했다. 배우가 준비기간까지 포함해서 연기하는 동안, 캐릭터에 녹아 들어서 얼굴의 관상이 바뀔 정도가 돼버리면 가장 좋은 거지. 그러니까 <추격자>가 그런 에너지가 생기는 거잖아요. 그게 에너지죠. 그런 갈급함을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는. 다만 캐릭터로부터 빨리 빠져 나오는 기술을 확실하게 가지고 있으면 현장에서 들어가는 게 더 수월한데 그 합일점을 찾는 게 쉽지가 않거든.

대신 입구는 찾기 쉽지만 출구를 찾기가 힘들기 때문에?
출구가 없으면 안 된다. 특히 그런 역할은 출구가 없으면 더욱 안되고. 나도 옛날에 했던 역할의 잔재가 아직까지 남아있는 게 굉장히 많다. 그때마다 다 빼내지 못해서.

어쩌면 도완이란 역할의 출구를 만들어준 건 가족일 수도 있겠다.
(잠시 생각하다가)그렇네. 가족을 통해서 잊는 방법이 있네. 매일같이 가족을 만나서 잊게 되는 거니까. 근데 그게 기본적으로 적당한 시간도 필요하겠지. 그건 또 문제다. 하여튼 난 그런 합일점을 빨리 찾았으면 좋겠다. 내 연기가 집에 영향을 주면 안되니까.

<추격자>의 흥행은 고무적이지 않나. 인기에 편승하지 않아도 영화적 완성도와 배우들의 연기력이 훌륭하면 관객들에게 어필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 아닌가.
그 동안 투자자나 제작자가 인기에 편승해왔는데 그건 아니지. 이젠 나도 그건 아니라고 얘기하고 싶다. 물론 영화는 상업예술이기도 하지만 상업을 하는 사람이 감독예술은 건드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감독이 작품에 자기 영혼을 담아서 진짜 에너지를 쏟아 붓고, 그 역할에 맞는 캐스팅을 하고, 그렇게 해서 작품의 완성도를 이룰 수 있는 영화만의 신성함은 건드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나머지 테두리는 그걸 도구로 해서 돈을 버는 분들이 열 배를 벌던, 백배를 벌던 상관없지만 감독예술이라는 영화자체만큼은 건드리면 안 된다. 물론 의견을 제시할 수는 있으되, 감독이 주도권을 잡아야 되고, 감독이 맞추고자 하는 일관성은 건드리면 안 된다. 그리고 감독님들도 그에 맞는 책임감을 확실히 기르고 그 외의 것을, 이 영화를 어떻게 해서 돈을 번다던가, 그런 걸 생각하시면 안되겠지. 난 배우니까 철저하게 감독님이 원하는 연기를 하면 되는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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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의 위기 상황이란 게 그런 의식의 부재에서 원인을 찾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니까 이 위기가 감독예술이라는 본연의 의미를 찾아가는 기간이 됐으면 좋겠다. 그걸 찾으면 우리도 할리우드가 부럽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그걸 못 찾고 계속 이대로 그냥 살아남겠다고 상업적인 돈의 논리로 인지도 높은 배우 쓰고, 작가 뭐야, 감독 뭐야, 그런 식으로 하면 답이 없겠지만. 하지만 완성도를 찾아갈 거라 믿는다. 만약 그래서 결국 다 떨어져나가고 C급만, D급만, 분야별로 최하급만 남더라도 상관없다. D급 배우에 D급 감독, D급 투자, 이렇게만 모여도 영화에 일관성이 생기니까 거기에 스피릿이 생기고 그 영화의 완성도가 생긴다.

가장 열악한 밑바닥까지 내려앉더라도 진정성을 찾으면 된다는 말인가?
A급 배우에, C급 뭐에, D급 뭐에, 이렇게 일관성이 없어지면 오히려 관객이 진정성을 못 느끼지. 그래서 그냥 최하급만 남더라도, 그 일관성 때문에 빛이 난다고 생각하는 거다.

원래 연출을 지망해서 연극영화과에 진학했던 만큼 그에 대한 관심도 남다를 것 같다.
연출적 마인드로 연기를 하면 도움은 많이 된다. 감독을 더 이해할 수 있고, 감독이 나를 이해시키기가 굉장히 쉬워지니까. 지금으로서는 그런 정도의 연출적 마인드만 지니고 있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가 감독이 되겠다고 하기엔 아직 재주가 없는 탓이기도 하고. 시적인 표현이든, 내러티브가 있는 이야기든, 이 시대로부터 영감을 받아서 이야기할 수 있는 작가적인 차원의 재주가. 난 배우로서 내 역할 하나 하기에도 아직도 부족하다.

졸업작품으로 예전에 <쉬바스키>라는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나름대로 제작환경을 이해하는 좋은 경험이었을 것 같은데.
그냥 맨땅에 헤딩하듯이 내가 제작부터 배우까지 다 했으니까. 그때 같이 했던 재승이라는 친구는 시네마서비스에서 <강철중>PD를 맡고 있는데 가끔 전화할 때면 지금도 그때가 좋았다고 한다. 참 좋은 경험이었지. 가장 순수한 걸 해봤다는 그런 만족이 있다. 어렸을 때부터 소꿉장난으로 의사놀이를 해봤던 아이가 의사가 되는 것과 칼싸움했던 아이가 살다 보니 의사가 괜찮은 직업인 것 같아서 의사가 되는 것과는 차이가 있겠지. 어렸을 때 영화가지고 한번 놀아봤다는 게 내겐 남은 거지.

배우 경험이 많은 김해곤 감독과 다른 감독의 차이가 있었나.
다르지. 김해곤 감독님은 현장이나 무대에서도 그러잖아. 우리 배우들만 돋보이면 된다. 욕하려면 나를 욕해라. 굉장히 배우를 중심적으로 캐릭터에 염두를 둔다. 게다가 혹시나 감정 상할까 봐 배우들한테 함부로 하지도 않고. 배우한테는 더 없는 감독이지.

오래 전에 했던 인터뷰에서 종종 자신은 배우가 아니라고 했더라.
사실 배우가 쉽게 되는 게 아니거든. 너무 이상적인 생각인가? 내가 영화에 대해서 너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는데, 배우도 마찬가지다. 배우도 그냥 되는 게 아니지.

여전히 스스로를 배우라고 말할 수 없다는 건가?
멀었지.

어느 정도의 연기를 해야 스스로를 인정할 수 있을까?
꿈이 이뤄지는 것만큼 허황된 것이 없다. 만약 내가 요절하면 남들에 의해서도 배우로 평가될 수 있겠지만 살아있는 이상, 그냥 열심히 하겠다는 생각밖에 없다. 나도 그냥 살아가는 사람에 불과하고, 일에 대해서 뭔가를 추구할 뿐이지. 언젠가 이뤄질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기 보단 그저 열심히 살려고 한다.

차기작으로 <나쁜 놈이 더 잘 잔다>란 작품에 캐스팅된 걸로 알고 있다.
영진위에서 시나리오 공모전 1위를 한 작품인데 영진위로부터 6억이 투자된 상태다. 캐스팅은 거의 됐고, 시나리오도 고치는 중이다. 감독님이 투자를 더 받아서 영화를 더 풍성하게 만들고 싶어하는데 돈줄이 말라버렸다. 대본이 너무 좋다. 매력이 있더라. 일단 일정이 좀 늘어지면서 기다리는 중이다. 진심을 가지고 열심히 하는데 잘 안되나 보다. 그래도 진심은 통하니까, 어떻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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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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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

한예슬 인터뷰

interview 2008. 5. 31. 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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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스>가 마음에 들었나 보다. 미니홈피에 ‘Falling slowly’ 가사를 포스팅 해놓았던데.
좋았다. 최근에 봤는데 좀 꽂혀서, 내가 원래 아이리쉬 음악 밴드를 좋아한다.

나도 좋아한다. 그래서 미니홈피를 자세히 볼 생각은 없었는데 음악을 듣다 보니까.
자세히 보게 됐구나!

<원스>OST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데미안 라이스(Damien Rice)까지 나오는데 그냥 지나칠 수가 없더라. (웃음)
그렇구나. 나랑 음악 취향이 비슷한 것 같다.

감성적이고 서정적인 음악을 좋아하나 보다.
그렇지만 일렉트로니카 계열은 말고, 조금 더 약간 기타음이 들어간 음악이 좋다.

쟁글거리는 기타팝 부류의?
맞다. 그런데 음악 취향이 아주 좋으시네. (웃음)

사실 옛날엔 약간 과격한 음악을 좋아했었다.
나도, 얼터너티브(alternative) 락 같은.

나도 한때 그런지(grunge) 풍의 음악 많이 들었다. 너바나(Nirvana)는 지금도 좋아하고.
너바나, 스매싱 펌킨스(Smashing Pumpkins).

시애틀 그런지(Seattle Grunge)!
너무 좋아했다. 그런데 나이 먹으니까 좀 서정적인 쪽으로 가는 거 같다.

같이 늙어가는 처지라는 게 막 느껴지는데. (웃음)
조금 더 가면 완전 올드팝으로 빠질 지도 모른다.

아, 누가 보면 음악 매거진인 줄 알겠네. (웃음) 그런데 본인의 히트곡도 있지 않나. ‘그댄 달라요’같은. 난 사실 그 노래를 군대에서 줄기차게 들었다.
진짜? (웃음)

고참들이 너무 좋아해서 말이지. (웃음) 그런데 음악 매거진 인터뷰도 아니고, 이젠 음악 얘긴 그만. (웃음) 미니홈피를 보고 얼마 전, 청룡영화제 사건에 관련된 스타일리스트 분의 글을 보게 됐고, 본인의 코멘트도 읽게 됐다. 사실 말로만 들었었는데.
아, 그 해프닝에 대해서?

그에 대해서 감동적이라는 말이 많더라. 어떻게 보면 대중의 관심을 얻게 된 덕분에 그런 후일담 같은 사연까지 노출된 것인데 사실 사생활이 노출된다는 게 흔히 말하는 공인으로서 꺼려지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나?
대중들에게 어느 정도 자신의 이미지를 상품화하는 배우라면 그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작품을 통해서 대중들과 간접적으로 만난다 해도 결국 직접적인 대상은 나인 셈이니까. 그렇기 때문에 공적인 삶과 사생활의 선을 긋는다는 건 진짜 힘든 일이다. 공인으로서 활동하는 연예인이나 배우들은 다 짐을 짊어지고 가야 되는 게 아닐까. 어떻게 보면 그런 대중들의 관심이 자신의 커리어와 이어지는 것이니까.사적인 대중들의 관심도 없다면 그건 무관심일 테고, 그렇다면 커리어를 지켜나갈 수 없는 거다. 물론 너무 관심을 갖고 사랑하다 보면 아무래도 그 선을 조금 지나치게 되는 경우가 있긴 하다. 하지만 그마저도 당연히 짊어가야 할 짐인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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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야심만만에 출연했는지 인터넷에 기사가 도배됐더라. 내용으로 봐선 상당히 솔직하게 대답을 한 것 같던데 자신을 드러내는 것에 대한 거리낌이 별로 없나 보다.
물론 그런 면에 대해서 굉장히 조심해야 된다는 건 안다. 배우로서 너무 많이 드러내는 것도 바람직하거나 똑똑한 대처법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쇼 프로그램을 통해서 대중들에게 친근함을 주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인상이 대중들에게 있어서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토픽(topic)이라면 굳이 드러내도 상관없겠다고 느껴졌다. 물론 내가 사생활을 드러낸다고 해서 남자친구와 어떻게 연애를 했는지, 몇 년을 사귀었는지, 그런 아주 사적인 내용들을 얘기한 것까진 아니니까, 그냥 내 일상에 대한 생각들을 이야기했을 뿐이다.

개인의 세계관 같은?
맞다. 대중들한테 예전에 있었던 해프닝 정도를 얘기하는 것까지 크게 숨겨야 할 필요성을 못 느꼈다. 너무 숨기는 것도 좀 그렇잖아.

그런 솔직함이 어떻게 보면 한예슬의 숨겨진 매력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환상의 커플>의 나상실은 그런 단면이 잘 드러난 캐릭터라고 생각된다. 확실히 <환상의 커플>은 한예슬이란 배우에게 캐릭터라는 정체성과 환상을 동시에 만들어 준 작품인 것 같다.
배우들이 좋은 역할을 많이 맡고 싶어하는 건 대중들이 그만큼 공감해주기 때문이란 필요성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데 아무래도 그런 역할을 소화하는데 있어서는 그런 색깔을 잘 나타내줄 수 있는 자신만의 색깔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한테는 정말 둘도 없는 애정이 가는 역할이었지. 나도 그 순간만은 나상실로 살면서 행복했던 거 같다.

배우로서 그런 캐릭터를 만나는 것도 쉽지 않았을 거다. 특히나 우리나라에서 그런 독보적인(!) 여성 캐릭터를 만났다는 건 좋은 운이라고 생각한다.
축복이지. (웃음)

사실 나상실은 한예슬이란 배우에게 타이밍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용의주도 미스신>은 나상실의 연장선상처럼 보인다. 이미지 굳히기 같아 보이기도 하고.
나상실처럼 <용의주도 미스신>의 신미수도 겉으론 못마땅한 구석이 많아 보일 수 있다. 좀 도도하고, 용의주도하다는 면이 어떻게 보면 꼴불견일 수도 있잖아. 그렇게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 때문에 불쾌할 수도 있지만, 실질적으로 나상실이 갖고 있었던 어떤 순수함처럼 신미수에게도 그런 매력이 있다. 나름대로 신미수로 하여금 그렇게 용의주도하게 행동할 수 밖에 없었던 과거의 상처가 있고, 내면에 여린 마음도 있고, 그리고 어떤 면에서 보면 굉장히 귀엽고, 상큼하고, 그런데 한편으론 덤벙거리기도 하는 부족한 여자다. 사실 <용의주도 미스신>의 영화적 포인트는 신미수가 많은 남자와 연애를 하면서 발생하는 에피소드들이다. 그게 재미있는 건 이 여자가 용의주도하지 않기 때문이다. 왜냐면 너무 완벽하게 용의주도하면 뻔하지 않나. 이 여자는 용의주도하려고 무진장 노력하지만 다 어설픈 거다. 그리고 이제 관객들이 봤을 때 그런 신미수의 어리버리함으로 빚어지는 에피소드 속에서 재미를 느끼는 거지.

결국 나상실처럼 신미수도 양면성이 있는 캐릭터다. 어쩌다 보니 그런 캐릭터를 계속 연기하게 된다.
내가 그런 걸 좋아한다. 뭔가 약간 특별한 색깔이 있는 역할을. 그래서 내가 지금까지 맡은 역할들을 보면 굉장히 다 정상적이지 않은 거 같더라. (웃음) 알다시피 정상적인 멜로라던가, 그런 역할을 한번도 해본 적 없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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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시작부터가 정상은 아니었다. (웃음)
<논스톱4>에서부터 그랬지. 한 색깔로 꾸준히 지속되는 역할보단 복합적인 성향의 캐릭터를 연기하는 게 재미있다.

사람들이 나상실에 열광했던 건 뒷면이 있는 캐릭터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론 도도하고 새침하지만 뒤로는 소심하고 때론 천박스럽기도 하다. (웃음) 자장면을 게걸스럽게 먹기도 하고. 그런데 그게 한예슬이라는 배우의 이미지로 어필되는 거 같기도 하다. 화려한 스타와 평범한 일반인의 입체감을 동시에 형성한다고 할까.
맞다. 나 정말 평범하다. (웃음) 실제 생활도 정말 평범하고.

그런데 평범한 사람처럼 보이진 않는다.
그건 직업상 요하기 때문에, 당신도 만약에 배우 생활을 한다면 많은 변화가 있을 거다. 사람은 직업에 따라서 풍기는 아우라가 틀려지는 것 같다. 그렇지 않나? 선생님은 선생님 같고, 사기꾼은 사기꾼처럼 생겼고, 음악가는 음악가처럼 아티스틱(artistic)하게 생겼고. 이렇게 직업에 따라서 풍겨지는 이미지가 틀려지는 거 같다. 당신도 계속 일하다 보면 더욱 기자스러워지는 면이 있을 거다. 배우도 신인 때는 배우로서 2% 부족한 느낌이 난다. 하지만 커리어를 쌓아가다 보면 나중에 언젠가 배우다운 아우라가 나올 때가 있겠지. 나도 그렇게 커리어를 쌓아가면서 점점 배우 같은 이미지가 조금씩 소화되는 거 같다. 하지만 내가 학교 생활하던 학생이었다면 지금 같은 이런 느낌은 안 나왔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래도 그 외모가 어디 가겠나? (웃음) 외국에서 오랫동안 살았다. 혹시 한국에서 느꼈던 문화적 차이는 없었나?
난 나만의 성격이 있다. 나만의 색, 나만의 스타일이 있다. 얘길 할 때도 그래서 솔직하게 표현하는 편이다. 그런데 그게 신인이었었을 때는 너무 솔직하고 당당한 것에 대해서 오해하시는 분들이 많았다. 쟤는 뭘 믿고 당당할까, 건방지다, 아니면 도전적이라서 기분 나쁘다. 이렇게 오해하게 되는 부분들이 많았던 것 같다. 그런데 오히려 요즘에는 내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어느 정도 오랫동안 일하다 보니까 이젠 사람들이 그걸 다르게 해석한다. 쟤는 프로 정신이 있는 것 같다, 당당하면서도 노력하는 모습이 예뻐 보인다. 그런 식의 변화가 있었는데 그렇게 위치에 따라서 사람들의 시선이 천차만별인 거 같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그런 점들을 이해하기가 조금 힘들었다. 내가 미국에서 받은 교육 방식은 내 생각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합리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모든 일을 할 땐 정당성이 있어야 하는 것이지, ‘그거 해!’ 이런다고 하는 게 아니다. 왜 그걸 해야 하는지 설명해주고, 들어야 하고, 그 일을 해야 되는 것에 대한 이유를 어느 정도 이해한 후에 일을 시작하는 거지. 그런데 신인 때는 내가 꼭 ‘왜 이걸 해야 해요?’ 이렇게 캐묻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거부감을 느끼시는 분들이 있었던 거 같다.

체계에 대한 하위적 일방성을 강요하는 문화가 강한 게 사실이다.
한국은 항상 어른들 말씀하실 때는 대답 짧게 하거나 자제하고, 그저 조용조용히 있는 게 미덕이다. 하지만 미국은 항상 주위에 반대의견을 낼 수 있도록 분위기가 열려있다. 그저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있고, 어른과 아이의 관계가 있고, 선배와 후배의 관계가 있다. 미국에서는 좀 낯선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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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 동안에는 가족이 있는 미국에 머무른다고 들었다. 그런 면에서 충분히 자신의 개인 생활을 하고 배우로서 재충전의 시간을 보내기에 좋은 아지트처럼 보인다.
맞다. 한국에 있다 보면 배우들이 자유자재로 활동을 못하게 되고, 심지어 집에서 잘 나가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내가 외국으로 더더욱 나가려는 이유는 배우라면 자꾸 감성 훈련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인생을 통해서, 하루하루의 삶을 통해서, 내가 기뻐하는 것, 내가 행복해하는 것, 내가 슬퍼하는 것, 내가 외로워하는 것, 이런 걸 충분히 만끽하면서 인생에 대해서 자꾸 배워나가야 된다. 왜냐면 나중에 배우로서 성숙한 역할을 표현해야 할 때, 인생을 모른다면 그걸 표현할 수 없지 않을까. 단세포적으로 아주 일차원적인 역할이나 어린 아이들이 하는, 아이돌 역할만 할 수 없잖아. 그렇지 않기 위해선 자꾸자꾸 커져야 한다. 그런 인생 공부를 하기 위해선 내가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넓은 영역을 갖고 시야를 넓히는 게 중요한 거 같다. 물론 그게 책이 될 수도 있겠지만 난 직접 느끼는 걸 더 좋아한다. 사람들 관찰하는 것도 좋아하고.

생각보다 감성적인 성향이 짙어 보인다.
감성적인 면도 강하고, 또 직업상 감성적인 면도 훈련해줘야 되는 것이고.

상당히 말을 조리 있게 한다. 평소에 대화를 즐기는 편인가?
난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은 아니다. 사람들과 말을 많이 하진 않는데, 다만 내 생각을 잘 들어주는 사람들에게 내 생각을 표현하는 건 좋다.

그렇다면 외로움을 많이 느낄 것 같다. 자신에게 맞는 사람을 찾기란 쉬운 건 아니니까. 더욱이 지금처럼 한국에 와서 지내는 경우엔 더더욱.
외로움 잘 탔지. 예전에 20대 초반 때, 한국에 와서 혼자 활동하고 그럴 때는 아무래도 어리니까 굉장히 외로웠는데 그게 하나의 훈련이 된 거 같다. 지금은 그런 외로움을 어떤 일을 하거나 작품을 완성하고, 그에 대한 성취감으로 충족시킨다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이젠 역할을 맡고 일을 하면서 그런 것들을 친구 삼아 사는 거 같다.

한국에 와서 좋은 사람은 많이 만난 것 같나?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다 좋은 사람들이다.

이번에 스타일리스트와 관련된 일도 결국 사람간의 문제였다. 어쨌든 관계를 돈독히 다질 수 있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발전적인 결과가 된 셈인데 스스로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면이 강한 것 같다. 자기 컨트롤에 능하다고 할까.
그것도 항상 잘했던 건 아니다. 사회 생활하면서 훈련을 통해서 이뤄진 거지. 처음부터 자기 컨트롤 잘하는 사람은 누구도 없을 거다. 얼마만큼 훈련하고, 얼마만큼 자제하고, 노력하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틀려진다. 난 어느 분야에서건 성공한 사람은 누구나 다 그런 훈련을 성공적으로 한 분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사회 생활 속에서 성공한다는 게 쉽지 않겠지. 그 반대로 자기 컨트롤이 안 된다는 건, 가장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자기가 노력한 만큼 자신에게 주어지는 일들은 많아질 텐데 그것들을 감당할만한 그릇이 되지 못하면 상당히 곤란하다. 컨트롤할 수 있는 중심을 잡지 못한다면 아무리 큰 행운이 오거나 큰 일들이 주어진다 해도 모두 흩어져버리고 오히려 내가 그것들에게 삼켜지는 꼴이 될 테니까. 때론 갑자기 큰 관심을 얻었다가 그걸 힘들어해서 망가지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성공적으로 배우의 길을 걷고 계시는 대부분의 분들은 그런 절차를 성공적으로 밟았다고 생각된다. 자기 어떤 컨트롤이지. 참아야 될 건 참아야 되고, 인내해야 될 건 인내해야 되고, 넘겨야 할 건 넘겨야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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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같은 경우도 배우로서 하나의 사생활인데, 그것이 종종 인내해야 할 것처럼 요구되는 경우가 있다. 얼마 전, 본인도 TV에서 그에 대한 질문도 받기도 했다.
연애를 아예 안 하는 건 아니겠지. 때로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고, 데이트도 할 수 있는 건데, 단지 함부로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 위치가 있고, 배우로서의 이미지가 있기 때문에. 사실 진실한 사람을 만난다는 게 힘든 일이다. 난 연애를 대충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단지 그냥 기다리는 것뿐이지, 난 배우니까 아직 연애하면 안돼, 이런 건 아니다. 좋은 사람 있으면 왜 못하겠어. 그렇지만 내가 일을 하면서 연애를 같이 감행할 경우엔 그에 대한 어떤 충분한 가치가 있어야 된다. 쓸 때없이 그냥 연애하고 싶어서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한테 있어서는.

사실 연애도 좋은 경험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거지! 특히 배우의 감수성에 있어서 사랑은 더더욱 중요한 거다.

<용의주도 미스신>은 출연작 중 가장 많은 남자를 만난 케이스고, 앞으로도 이런 경우는 드물 것 같다.
그렇겠지. 그런데 난 신미수란 여성을 정말 이해할 수 있었다. 신미수는 굉장히 사랑 받고 싶어하는 여성이지만 그 사랑을 찾지 못하는 거다. 사람이 정말 먹고 싶은 건 없어도 배가 고프면 먹어야 된다. 이 여자도 외롭기 때문에 진정한 사랑을 찾지 못했지만 사랑을 만나고 싶은 거다. 그래서 사랑을 하고 싶기 때문에, 사랑이 없는 여러 남자들을 만나면서 자기의 사랑을 합리화시키고 싶은 거다. 내가 이 남자를 왜 만나야 되지? 그렇게 사랑이 없으면서도 사랑해야 되는 이유를 찾는 거지. 그래, 얘는 재력이 있잖아, 모든 사람들이 재력을 좋아하고 또 존경해주잖아, 그렇기 때문에 그 남자랑 연애를 해도 정당성이 있는 거다. 그리고 사법고시 고시생이랑 연애할 때도, 장래성이 있는 예비 검사니까 날 지켜줄 수 있을 거야, 그런 조건도 사랑을 합리화시키는 거지. 진정한 사랑이 있었다면 신미수가 처음부터 갈등할 이유는 없었을 거라 생각한다. 물론 이성을 만날 때 조건을 따진다는 게 굳이 나쁘다는 건 아니다. 다만 내가 이 여자를 사랑하고, 이 남자를 사랑해야 될 어떤 정당성을, 이유를 찾아야 한다는 거다. 솔직히 대부분의 사람들 중, 진정한 사랑을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세태를 풍자한 캐릭터 같다. 요즘 애정이나 사랑을 조건시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감정을 이성으로 해결하려 든다.
특히 한국 사회는 결혼에 대한 스트레스가 많은 거 같다. 외국 같은 경우는 개인과 개인의 결혼이지만, 한국 같은 경우는 집안과 집안의 결혼이라 해야 맞는 거 같다. 한국은 시어머니, 시아버지, 오누이, 며느리, 친정 아버지, 친정 어머니, 이렇게 챙겨야 할 가족 시스템(system)이 워낙 많기 때문에 개개인이 결혼해서 행복하자고 해서 쉽게 행복해질 수 없다. 왜냐면 모든 가족이 다 융화가 되야 하니까. 그런 스트레스 때문에 조건을 생각하게 되는 거 같다. 왜냐면 나만 좋다고 되는 게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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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수 때문에 결혼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맞아, 그런 거. 혼수 문제 때문에 얽히고 설키다 보면 또 서로에게 자꾸 섭섭한 게 생긴다. 아무리 우리 엄마가 그랬다고 해도 우리 엄마한테 너 이럴 수 있어? 이런 식으로 감정상하다 보면 그렇게 되겠지.

<환상의 커플> 이후로 공백이 있었다. 사실 배우로서 상종가인 시기에 기회가 상당했을 텐데, 오히려 몸을 추슬렀다는 게 다소 의외였다.
난 오만 방자하기 싫었다. <환상의 커플>로 사랑을 받게 돼서 캐스팅 섭외가 많아졌고 자칫하면 그릇된 초이스(choice)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한발자국 물러서서 지금 내가 있는 정확한 위치를 보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있는 정확한 위치에서 나한테 가장 걸맞은 역할을 하고 싶었다. 왜냐면 내가 <환상의 커플>로 대중들에게 심어주었던 믿음을 배신하고 싶지 않았다. 실수하고 싶지 않았다. 대중들에게. 그리고 거품에 쉽게 휩싸이지 않는 그런 배우로 남고 싶었다.

결국 자기 보호를 위한 시간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일관된 이미지의 캐릭터를 연기하다 보면 그런 이미지로 각인될 위험도 크다. 다양한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배우로서 어떤 이미지를 각인시킨다는 건 일종의 모험일 수도 있다.
물론 그렇다. 하지만 지금 한 색깔을 고집하는 배우들 중에서도 훌륭한 배우들이 많다. 로버트 드니로나 알 파치노도 있고, 미쉘 파이퍼도 그렇고. 훌륭한 배우들은 자기만의 색깔을 뚜렷이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물론 여러 가지 색깔을 가진 배우들도 많지만 대부분은 그런 것 같다. 또한 역할의 변신에 따라서 몰입도가 각각 다르겠지만 그래도 그 사람만의 카리스마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난 단지 나만의 카리스마로 여러 역할을 소화해보고 싶은 거다. 그래서 그 어떤 일정한 캐릭터에 갇힐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대중들이 날 볼 땐 한예슬의 색깔을 보겠지만 그것도 다른 인터프릿(interpret), 해석을 통해서 새로운 색깔로 승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상당한 자기 신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난 대중들이 날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의견에 묶여서 배우 생활을 하는데 좌지우지되고 싶지 않다. 난 배우로서 내가 표현하고 싶은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그러면서 대중들과 어떤 영감이 통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을 것 같다.

자신의 방식을 고집하고 싶다?
교감하고 싶은 거지. 그리고 난 다음 작품에서 다른 역할을 했을 때, 굳이 변신이라고 하지 않아도 그 역할로 자기 색깔을 낼 수 있다는 자신이 있다. 그리고 그전에 일단 난 배우이기 때문에 그건 내가 해야 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여름의 태풍>같은 시도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정극적인 캐릭터도 언젠가 다시 도전해야 할 산이 아닐까.
좋다. 어떤 하이라이트나 악센트 없이 잔잔하게 흘러가는 <원스>같은 영화라면. 정말 물 흐르듯이, 그런 잔잔한 역할도 너무 좋다. 어떤 역할에 대한 복합적인 느낌보다는 그 영화 자체가 주는 복합적인 느낌도 좋다.

단순히 어떤 두드러지는 부분이 아니라 전체를 두드러져 보이기 위한 일부처럼 느껴질 수 있어도 좋다는 말인가?
그 영화는 해석하는 사람마다 다르잖아. 왜 두 사람이 맺어지지 않았는지 이유도 설명하지 않고 잔잔하게 흘러가 버리지만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세계 속에서 그림을 그리고 공감할 수 있는 영화. 그런 것들이 너무 좋다. 그런데 솔직히 영화는 영화마다 너무 매력이 많다. 그렇지 않나? 물론 드라마도 좋지만 드라마는 아무래도 영화보다 완성도가 떨어진다. 영화라는 장르는 나로 하여금 다른 세계에 살 수 있게끔 해주는 것 같다. 그래서 배우 활동을 함에 있어서 외로울 틈이 없다. 그렇게 될 수 있는 건 일을 하고 있는 동안에는 나로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난 다른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그런 다양한 삶을 인생에서 여러 번 사는 것도 바쁜 거지.

마치 여행을 가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자신도 모르는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이랄까. 마치 운명처럼 느껴진다.
난 솔직히 처음엔 연기가 싫었다. 내가 왜 연기를 해야 되는지 몰랐는데, 그냥 끌리는 거 있잖아. 도망가고 싶은데 도망갈 수 없게 끌리는, 그래서 난 처음에 연기할 땐 정말 울면서 연기했다. (웃음) 정말 싫은데, 그걸 하고 있는 내 자신이 너무 이해가 안가는 거다. 그래서 엄마한테 매일 전화해서, 엄마, 나 미국 갈 거야, 미국 갈 거야. 그랬었다.

뭐가 그렇게 싫던가?
모르겠다. (웃음) 그게 왜, 신 내리면 무당이 하기 싫어도 할 수 밖에 없다고 하잖아. 그런 걸 운명이라고 그러는 건지 모르겠다. 나 같은 경우는 일단 한 작품이 끝났고 지금은 한창 영화 홍보에 바쁘지만 솔직히 6개월 정도 쉬면서 미국에 가서 공부를 할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벌써 다음 작품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푹 빠져버린 거 같다.
헤어날 수 없는 거 같다. (웃음) 내가 정말 너무 연예인 생활이 힘들어서 벗어나고 싶다고 해도, 이미 정신적으로 헤어날 수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사람은 일과 사랑에도 중독되기 쉽다던데, 그렇게 일에 중독됐나 보다.
그런 가봐. 어떡해~. (웃음) 내가 예전에 인터뷰 할 땐, 항상 내 개인적인 삶과 일의 밸런스를 맞춰서 행복한 여자로 살 수 있도록 정말 균형 있는 삶을 유지하며 살겠다고 말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일이 얼마나 좋으면 내 개인적인 행복을 희생해서라도 하고 싶을 만큼 이게 더 좋은 거다. 그건 위험한 거지, 솔직히. 그건 내 인생에 있어서 어떤 선을 넘는 순간인데, 그만큼 일이 좋아진다는 건 정말 내가 돌이킬 수 없는 그 선에 가까이 가고 있구나 싶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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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큼 연기에 대한 매력을 많이 느끼게 된 것 같다.
내 개인적인 삶과 일반적인 삶에서 줄 수 없는, 그런 세계에서 살 수 있는, 그런 삶이 너무 좋은 거 같다. 더 이상 그것만큼 내게 삶의 즐거움을 주는 어떤 것도 없는 거 같다. 너무 따분해지는 거 있잖아. 일상 생활이. 항상 다른 역할로 살다가 내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매일 하는 식사와 그냥 주위 사람들과의 뻔한 대화와 일반 사람들과의 생활이 내게 더 이상 새롭지가 않은 거지.

그건 좀 위험한 것 같다.
예술가들 중 보통 왜 저렇게 살까라는 궁금증을 자아내게 만드는 분들이 많잖아. 이해가 갈 거 같더라. 왜 저렇게밖에 살 수 없는 것인지. 예를 들어 그림 그리시는 화가 분들 중 아예 사회와 교리를 끊고 정말 그림만 그리시는 분들 있잖아. 왜 저렇게 살까 하면 그분은 그 세상에서 하는 일이 즐거운 거겠지. 그런 게 있는 거 같다. 나도 돌아갈 수 없는 그런 선을......(웃음)

그렇다면 본인이 생각하기에 용의주도한 삶이란 어떤 것일까?
어떤 기사에서 읽었는데, 용의주도의 의미를 사전으로 해석했더라. 용의주도란 매사에 신중하게 꼼꼼히 따져서 일을 그르침이 없도록 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 뜻으로 해석한다면 용의주도하다는 건 필요한 거 같다. 그릇됨이 없이, 그르침이 없이. 하지만 일반 생활에서 해석되는 용의주도함이란 어떻게 보면 잔머리 굴리고, 어떤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 뭐든지 한다는 듯한 뉘앙스가 있다. 그런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항상 진실되지 않은 행동에서 이뤄지는 모든 것이 자신에게 돌아오는 득이라고 생각될지언정, 그것도 진실이 아니라 가상으로 만들어낸 어떤 거품이라고 생각된다. 자신이 진실로 이뤄낸 모든 일들은 그 일들이 자신에게 돌아왔을 때 진실되게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국은 현실에서 용의주도한 삶이란 거짓 같은 인생에 가깝다는 것 같다. 그렇다면 본인은 용의주도한 편인가?
난 별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가 용의주도했다면 <환상의 커플> 끝나고 내게 들어왔던 CF에 모두 계약하고, (웃음) 그 다음에 섭외됐던 대작들을 모두 섭렵하고, 쉬지 않고 활동했을 거다. 나는 차근차근 수위를 높여가고 싶다.

배우가 된 뒤로 부모님의 반응은 어떤가?
처음에 저희 아버지께서는 굉장히 반대하셨다. 굉장히 보수적이시다. 사실은 내가 데뷔를 더 일찍 할 수 있었다. 길거리 캐스팅으로 먼저 손을 뻗는 경우 있잖아. 그래서 일찍 시작할 수 있었는데 아버지 때문에 못했다. 그래도 일단 일을 시작하게 돼서 이젠 인정해주신다. 어머니 같은 경우는 굉장히 적극적으로 날 도와주시는 편이시다. 저희 어머니는 내가 재능이 있다고 굳게 믿고 꿈을 펼치라고 적극적으로 후원해주시는 분이시다. 아마도 내가 그만 둔다고 그러면 어머니께서, ‘너 미쳤니? 왜 그 재능을 썩혀?’ (웃음) 그러면서 날 오히려 더 밀어 넣으실 거다.

<환상의 커플>로 많은 관심을 얻은 후, 그런 관심으로부터 다시 멀어질 수 있다는 부담감은 없었나?
난 그렇게 쉽게 사라지진 않을 거다. 밟아도 밟아도 뿌리 뻗는 잡초처럼. (웃음) 난 내가 잠시 얼굴을 안 비춘다고 대중들한테 잊혀지는 그런 배우였다면 이렇게 연기를 꾸준히 할 수 있지도 못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난 자신감 있기 때문에, 그리고 대중들한테 보여줄 게 아직도 많다고 생각하고, 대중들이 내 모습을 보길 원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유를 갖고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잡초치곤 너무 예쁜 거 같은데. (웃음)
밟아도 밟아도 라는 말이 너무 웃기지 않아? (웃음)

미니홈피에서 인상적인 글을 하나 읽었다. 난 우주인이며 이중인격자다. 하지만 난 나를 사랑해주는 지구인들을 누구보다 사랑한다. 계속 이 별에 눌러 살아야지. 물론 거기서 지구인은 팬을 의미하는 것 같다.
그렇지. 그건 내가 신인 때, 미니홈피 막 시작하고 썼던 글이다. 이제 삭제할 때도 됐는데, 그냥 그때 그렇게 내가 적어놓은 글을 보면 그 생각들이 너무 귀엽다. 나의 세계관을 풍자해서 적은 글이라고 보면 된다. 나의 세계관은 비록 다른 사람과 틀리지만 나의 이런 점을 사랑해주는 사람들에 대해서 고맙다는 걸 재미있게 풀어 쓴 거다.

지워버리긴 아까운 거 같다.
그럴까?

그리고 역시나 우주인 치곤 너무 예쁘다. (웃음) 그리고 오랫동안 눌러 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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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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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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