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me of Healing in Cancun
투명하게 부서지는 햇살 아래 반짝이는 에메랄드 빛의 바다, 바스러진 산호초 가루들의 결이 고운 해변 그리고 김아중. 멕시코의 풍요로운 휴양지 칸쿤에서 만난 김아중은 폭풍처럼 몰아치던 어제에서 벗어나 다시 수면 위에서 고요하게 빛나는 내일의 지평선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누군가 그랬다. 칸쿤에 가면 낙원을 보게 될 거라고. 하지만 낙원까지의 여정은 순탄치 않았다. 인천에서 날아올라 일본 나리타, 미국 댈러스에서 각각 세 번의 아침을 나눠 보낸 뒤에야 비로소 멕시코 칸쿤의 오후로 들어섰다. 24시간 남짓한 여정을 지나 도착한 칸쿤에선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절기상 겨울이라 해가 일찍 진다는 현지 가이드의 설명이 무색할 정도로 한낮의 열기를 머금은 초저녁 공기가 더운 바람을 훅 불어대는 칸쿤은 곧 어두운 낯빛을 드러냈다. 인천을 벗어난 이후로 처음 맞이하는 밤이었다. 어둠을 가로질러 30분가량 달려 리조트에 다다라서야 두 번의 경유와 장거리 비행으로 켜켜이 쌓인 피로를 씻어 내렸다. 리조트 주변으로 내려앉은 어둠 너머로 넌지시 바다가 보였다. 파도 소리가 들렸다. 그 막연했던 인상을 뒤로하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세상이 밝아지고 나서야 비로소 제대로 눈을 떴다. 낙원이 거기 있었다. 아름답다거나 찬란하다는 말보다 거창한 수사가 무엇일까 잠시 생각하다 이내 접었다. 그 어떤 언어를 떠올릴 시간 대신 이곳을 두 눈에 담을 시간이 더 절실했으니까. 그리고 그곳에 김아중이 있었다. 눈부신 절경 속에 자리한 그녀는 칸쿤의 태양과 함께 뜨겁게 빛나고 있었다. 먹구름 하나 보이지 않는 하늘처럼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칸쿤에서.
화보 촬영을 즐긴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사실 화보 촬영이 재미있어요. 순간순간 몰입하고 표현하다 보면 어떤 자의식도 생기지 않아요. 내 얼굴은 이 부분이 콤플렉스인데, 이런 생각도 들지 않아요. 순간순간 컷이 잘 나오지 않아도 개의치 않아요. 어차피 최종적으로 베스트 컷이 선택될 때니까.
어릴 때부터 배우를 꿈꿨다던데, 특별한 계기라도?
어릴 때 설날이나 추석에 TV에서 특집 단막극을 방영하는데 주로 고두심 선생님이나 윤여정 선생님 같은 분들이 시련을 이겨내는 며느리 역할을 많이 했죠. 그런 단막극을 볼 때마다 엄마가 그렇게 울었어요. 그리고 드라마가 끝나면 오히려 얼굴이 한층 밝아져서 명절 음식을 장만하시는데, 그렇게 엄마를 울리고 웃기는 단막극이 엄마에게 어떤 활력소였을까, 생각했죠. 나도 저 TV 안에 들어가고 싶다. 나도 사람들을 웃겼다가 울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 꿈이 구체화된 건 언제부터였죠?
당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울 순 없었지만 나름대로 명확했던 거 같아요. 저렇게 TV에서 나오는 사람이 될 거고, 저렇게 사람을 웃기고, 울리고 싶다고. 그러다가 중고등학교 때 노래하고 춤추는 걸 즐기다가, 가수 제의를 받고 실제로 준비하는 중에도 궁극적으론 연기가 하고 싶었어요.
<미녀가 괴로워>가 개봉된 것도 벌써 6년 전이네요.
작품이 흥행에 성공했고, 여전히 제 대표적으로 꼽히지만 개인적으로도 특별한 작품이었어요. 특수분장 때문에 육체적으로 힘들었고 신인으로서 첫 단독 주연을 맡아야 한다는 부담도 컸지만 현장에 나가면 사랑받고 있다고 느꼈고, 정말 재미있었으니까요. 마치 놀이터로 나가면서 오늘 하루도 신나게 놀자는 느낌? 그래서 그 현장을 잊지 못하나 봐요.
<미녀는 괴로워>로 큰 관심을 얻었습니다. 배우로서 분명 좋은 일이겠지만 개인적으론 당황스럽기도 했을 것 같아요.
그땐 사실 기쁨을 누릴 만한 여유가 없었고 오히려 갑작스러운 관심이 무서웠죠. 물론 <미녀는 괴로워>가 잘되리란 짐작은 있었어요. 기본적으로 여자들이 좋아하는 이야기였고, 볼거리나 스토리가 재미있다는 확신이 있었으니까 분명히 관객들에게 외면받진 않을 거라 생각했어요. 하지만 로맨틱 코미디의 흥행 기록을 얻고, 여우주연상까지 받는 건 상상도 못했죠. 신인으로서 여우주연상을 받는다는 게 오히려 무서웠고요.
솔직히 기대 이상으로 굉장히 잘해냈다는 인상이었습니다.
기대보다 잘했다는 말이 뒤집어서 얘기하면 사실 기대하지 않았다는 거잖아요(웃음). 그건 제가 배우로서 신뢰를 쌓지 못했다는 의미고, 여전히 미흡하고 어리단 말이겠죠. 그렇다고 미의 대명사나 ‘핫’한 아이콘으로 분류될 만한 스타라고 하기에도 애매하고, 그 사이에 떠 있는 느낌이 들 때가 많았어요. 어쨌든 칭찬받으면 좋아요. 물론 이제 목표는 김아중이 나온 드라마나 영화는 기대된다는 말을 듣는 거죠. 그래야만 좋은 작품을 많이 할 수도 있을 테고.
그 6년 전과 지금은 무언가 달라진 것이 있다고 느끼세요?
사실 막 시작했을 땐 두려운 게 별로 없었죠. 1등이 되겠다는 생각보다 지금 이 일을 하는데 만족하면서 자신감도 충만했으니까. 그런데 점점 더 많은 관심을 받을수록 오해나 편견에 휩싸이고, 하고 싶은 작품과 인연을 맺지 못하게 되는 과정들이 생기면서 지금의 저를 불완전하게 만들었어요. 그런 경험들이 저를 견고하고 단단하게 만들었다고 하기엔 아직 불완전한 사람인 거 같아요. 여전히 좋은 작품에 대한 갈증도 심하고, 내가 왜 이것밖에 못할까라는 자책을 신인 시절보다도 더 많이 하게 되니까요.
최근 영화 <26년>의 개봉 소식이 들리더군요. 예정대로 2008년에 <29년>이란 제목으로 제작됐다면 <미녀는 괴로워> 이후의 차기작이 될 작품이었죠.
전체 리딩도 끝냈고, MT까지 다녀온 상태였는데, 크랭크인을 5일 앞두고 무산됐어요. 정말 허무했죠. 승범 오빠는 저보다 더 오래 기다렸기에 더 안타까워했어요. 이해영 감독님과 배우끼리 모여서 노 개런티로 연극이나 저예산영화로라도 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얘기한 적도 있어요. 그런데 그렇게 할 수 있는 스케일의 작품이 아니더라고요.
선택했던 작품이 촬영 직전에 물거품이 되면 당장 차선책이 없으니 한동안 활동에 공백이 생기잖아요.
사실 <29년> 이전에 한 10개월 정도 기다렸던 작품도 있었어요. 그렇게 두 작품이 무산되니까 2년 정도 공백이 쉽게 생기더라고요. 사실 <29년>에 대한 애착이 굉장히 강했어요. <29년>을 선택한 건 역사적 배경이나 웹툰의 유명세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그 캐릭터가 너무 좋았기 때문이에요. 가끔 시나리오를 보고 나면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계속 그 인물이 생각나서 보고 싶고, 정말 살아 있는 사람 같다고 느껴지는 이상한 순간들이 있어요. 미진이가 그런 아이였죠.
<29년> 이전에 기다렸던 또 다른 작품이 있었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어요.
감독님들이 작품을 준비하면서 간단한 트리트먼트만 말씀해 주시고 다른 작품 하지 말고 기다려 달라고 부탁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순진했죠. 진짜 기다린 거에요. 보통 다른 작품을 하면서 양해를 구하고 일정을 조율하면서 기다리잖아요. 저는 그게 의리 같은 거라고 받아들여서 진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기다렸어요. 결국 그게 제 영화가 되질 않더라고요. 맨날 광고만 찍고, 까다롭게 작품을 고른다는 이야기까지 듣게 되니까 서운했죠. 두 작품이 연달아 무산되니까 개인적으로도 힘들었고요.
<26년>의 제작사는 <29년>을 제작했던 청어람이었는데, 캐스팅 제의를 받지 않았나요?
이해영 감독님이나 류승범 선배나 저나 다 프러포즈 받았어요. 그렇지만 이번에도 완벽하게 제작할 수 있는 여건인지 확실하지 않았고 우리 세 명의 스케줄을 다시 맞추는 것도 쉽지 않았죠. 무엇보다도 저희 셋 중 누구 하나라도 빠지면 하지 말자고 했어요. 우리가 생각했던 <29년>이 아닐 거니까. 그렇다면 완전히 다른 영화로 다른 인물들끼리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어쨌든 미진이가 되지 못한 아쉬움은 크지만 그 영화가 이 세상에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은 기뻐요. 잘됐으면 좋겠어요.
<페스티발> 엔딩에서 카메오로 출연한 것도 이해영 감독님과의 인연 덕분이었나요?
시나리오 보고 싶다고 하니까 모니터링하라고 주셨어요. 그런데 읽어보니까 하고 싶어졌죠. “저 이거 하고 싶어요(웃음)!” 그런데 엔딩에만 나올 줄은 몰랐어요. 중간중간 뭔가 더 있을 줄 알았죠(웃음).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레드 카펫 현장의 베스트 드레서로 꼽히기도 했는데 정말 오랜만에 공식석상에서 본다는 기분이었어요.
얼굴을 자주 비추는 편이 아니니까 늘 오랜만이더라고요. 그런데 이번 부산국제영화제 레드 카펫은 처음이었죠.
으레 매년 참가했을 거라 생각했어요.
전시되는 느낌이 부담스러워서 레드 카펫을 즐기지 못하는 편이에요. 물론 부산국제영화제의 다른 행사엔 참가한 적 있었죠. 스타 로드처럼 팬들과 소통하는 느낌의 행사에선 떨리지 않거든요.
오랜만에 출연한 영화 <나의 PS 파트너>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는 점도 레드 카펫에 선 계기가 아니었을까요?
사실 <나의 PS 파트너>가 부산국제영화제 프리 마켓에 나왔던 작품이었어요. 아무래도 연말 개봉 전에 어떤 영화를 찍었는지 알리고 싶기도 했죠.
<나의 PS 파트너>는 <미녀는 괴로워> 이후로 6년 만의 영화에요.
사실 개인적인 사유로 몇 번 거절했어요. 지난해 제가 세금을 과소납부했던 문제가 있었잖아요. 세금 같은 부분은 잘 몰라서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제가 잘못한 거니까요. 게다가 저에겐 유난히 좋지 않은 소문도 많은 거 같아요. 그런 상황들이 한꺼번에 스트레스로 밀려와서 너무 힘들었고, 작품을 할 만한 상태가 아니었죠.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시나리오는 재미있었지만 여건이 안 되는데 마냥 붙잡고 있으면 안될 것 같아서 두세 번 정도 거절했죠. 그런데 제작사 쪽에서 우린 그런 거 개의치 않는다고 많이 기다려 주셨죠.
왜 자신을 캐스팅하는지 물어본 적 있나요?
솔직히 꼭 김아중이 아니면 할 수 없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을 걸요(웃음). 사실 <29년>의 PD였던 분께서 투자배급사 담당 PD로 자리를 옮기면서 먼저 연락을 주셨어요. 요즘 왜 영화 안 하냐고, 자기 때문에 그런 거 같아서 마음이 무겁다고. 그렇게 해서 제의를 받았죠.
6년 만의 영화가 또 로맨틱 코미디네요.
한때는 <미녀는 괴로워>로 큰 사랑을 받았는데 비슷한 영화를 하면 사람들이 저를 로맨틱 코미디 배우로만 보지 않을까 걱정돼서 다른 장르를 해야 된다는 고민이 있었어요. 그 이상의 로맨틱 코미디를 보여줄 수도 없을 거 같았고요. 아무래도 오랜만에 다시 영화로 돌아오면서 부담을 덜고 익숙하게 다가가고 싶었어요. 가볍게 한 작품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죠. <싸인>을 하면서 좀 힘들었거든요. 회마다 인물이 몇 명씩 죽어 나가고, 맨날 범인과 심문하고, 그런 무거운 상황을 연기하는데 너무 치였어요. 제 나이 또래의 여자들을 표현할 수 있는 밝은 작품을 하고 싶었는데 마침 <나의 PS 파트너>를 만났죠.
일반적인 또래 여자들에게 공감대를 느끼나요?
제 주변 친구들이 결혼에 대한 고민을 많이 털어놔요.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 여자들의 연애는 20대 초중반의 연애랑 또 다르거든요. 30대에 접어들면서 결혼과 타협할지, 직장에서 투사처럼 굳세게 살아남을지 고민하는데 굉장히 결연해요(웃음). 지금 제 또래 여자들의 고민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 인물이니 꼭 하고 싶었어요.
사실 그동안의 역할들이 평범하진 않았죠.
성형수술로 페이스오프하고, 뚱뚱해졌다가 날씬해지고, 아니면 시체를 부검하고, 드라마에서도 톱 스타로 나왔으니까요. 김아중은 생활 연기가 안 될 거 같아, 항상 어떤 특징이나 개성이 뚜렷한 캐릭터만 했으니까 밋밋한 캐릭터 연기는 어려울 것 같아. 이런 얘기도 종종 들었어요. 제 스스로도 이런 연기를 할 수 있는지, 어떤 캐릭터의 설정에 기대서 연기하는 건지, 캐릭터의 기능적인 설정을 다 떼낸 평범한 여자를 소화해 낼 수 있을지 의문이 있었어요. 나름대로 진실되게 연기한다고 했는데 사람들이 어떻게 볼지 궁금하고 걱정돼요.
유명세를 얻은 뒤에 무언가 잃어버렸다고 생각할 때가 있나요?
여자들은 서른 살 즈음에 오춘기가 온다고 하잖아요. 사실 스스로 여자 중에선 꽤 대담하고 열린 생각을 가진 성숙된 인간이라고 과대평가했었어요. 지난 몇 년 동안 여러 가지 일을 겪고, 사람들의 이면을 보면서 개인적으로 너무 힘들었어요. 스스로도 ‘서른 맞이 대잔치’ 한다고, 삼재를 한꺼번에 맞이하는구나 싶었죠(웃음). 서른 살이 되고 나서야 많이 순진했고,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걸 알았어요. 낯선 사람들조차 저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어떤 편견까지 안고 저를 대하는데 저는 그들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채 원래 모습대로 솔직하게 대할 수밖에 없잖아요. 결국 남자든 여자든, 이해관계가 있든 없든, 제가 아무리 솔직해도 누군가의 편견 안에서 극복할 수 없는 괴리가 생기니까 힘들더라고요. 결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미지에 타협할 수도 없으니까 완벽하게 분리돼서 사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인 거 같아요. 그러니까 계속 외로워지는 거죠.
외롭다고 느끼나요?
한 스물여덟, 스물아홉까진 외롭다는 거 잘 몰랐어요. 그렇다고 어릴 때처럼 하루하루가 마냥 즐겁다거나 내년은 또 다른 삶이 펼쳐질 것 같다는 기대감이 부풀어서 살진 않잖아요. 그렇지 않아요(웃음)? 적당히 현실과 타협하고, 스스로를 점점 냉정하게 평가하면서 포기할 건 포기하고, 그렇게 조금씩 외로워지는 거 같아요.
예기치 않게 작품 활동이 뜸해졌던 탓일지도 모르겠어요.
정말 쉬고 싶지 않아요. 사실 데뷔할 때 “어떤 영화 하고 싶어요?” 물으면, “페미니즘 영화하고 싶어요” 막 이랬어요(웃음). 어릴 떈 <바그다드 카페> 같은 여성주의 영화를 하고 싶었어요. 물론 아직도 그렇긴 해요. 많은 여배우들이 꾸는 꿈이기도 하고. 얼마 전 <철의 여인>을 봤는데 매 순간마다 소름이 돋는 거에요. 정말 말도 안 되는 장면에서 울었어요. 메릴 스트립이 혼자 남편의 허상에 대고 중얼중얼 얘기하면서 TV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리는 손을 비추는 인서트 컷이 나오는데 그걸 보고 운 거에요. 그녀가 너무 외로워 보였나 봐요.
평소 시나리오를 찾아 읽을 정도로 많이 본다던데.
시나리오와 실제 영화가 구현됐을 때의 차이를 보는 게 좋아요. 일단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나름대로 영화의 이미지를 상상하고 나중에 영화가 어떻게 나왔는지 비교하죠. 시나리오를 보면 항상 감상평을 남겨요. A4 용지 절반에서 한 장 사이 정도로 쓴 감상을 컴퓨터에 저장했다가 나중에 영화를 보고 나면 그렇게 저장해 둔 글 아래에 이어서 느낌을 남겨요. 뭐가 비슷했는지, 뭐가 달랐는지.
언제부터 생긴 습관인가요?
저한테 직접 들어오는 시나리오가 있잖아요. 최소한 거절하더라도 왜 거절했는지 정확히 알고 그것이 좋은 판단이었는지 반성해 보고 싶었어요. 그러려면 꼼꼼히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래야 작품을 보는 안목도 높아질 거 같았어요.
스스로에게 엄격한 편인가요?
관대하진 않아요. 특히 일에 있어서 만큼은. 하지만 일을 제외하면 굉장히 게을러요. 개인적인 삶을 위해서 노력하는 건 별로 없어요. 여행을 좋아하긴 하지만.
여행은 자주 다니세요?
사실 여행만을 위해서 떠나는 경우는 많지 않아요. 일단 여름 휴가 시즌은 사람들이 많으니까 일단 피하고, 가을이나 연말 즈음 한겨울에나 한두 번씩?
최근 뉴욕에서 혼자 생활했잖아요. 얼마나 있었죠?
한두 달 정도? 모든 것이 처음이었죠. 혼자 살아본 것도, 혼자 여행을 해본 것도, 외국에서 공부해 본 것도. 꼭 한번 해 보고 싶었는데 해보니까 이젠 혼자 여행도 할 수 있을 거 같고, 어디 가서도 지낼 수 있을 거 같아요.
뉴욕에 간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사실 술도 잘 못 마시고, 클럽을 다니는 편도 아니고, 연애를 하는 것도 아니라서 스트레스 풀 데가 없어요. 또래 친구들은 각자 연애도 하고 돈 벌기도 바쁘니까 만나서 수다 떠는 것도 한계가 있죠. 그래서 몸에서 곰팡이 냄새가 날 정도로 집에만 있었어요. 그게 너무 싫어서 어딘가로 나가고 싶었죠.
의외네요.
사실 일반적인 제 이미지와 실제의 저는 많이 다른 거 같아요. 그래서 들어오는 캐릭터들도 부담스러울 때가 많아요. 사실 제가 얼굴을 봐도 조금 잘 놀게 생겼어요. 술도 잘 마시고, 밤문화도 좀 즐길 거 같고, 패션이나 쇼핑도 좋아할 거 같고, 화장품도 잘 알 거 같고, 그렇지 않아요(웃음)? 정반대죠. 그런 면에선 성실하지 못해요.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겠네요.
평범하게 책이나 영화 보면서 시간을 보내요. 먹는 걸 좋아해서 맛있는 걸 찾아 다니기도 하고, 와인도 좋아하고.
메뉴를 고를 때, 각자 다른 메뉴를 주문하자고 할 때 미식가의 기질이 느껴지더군요.
눈이 반짝반짝 했죠(웃음)? 좋은 음식 먹는 게 좋은 옷 사는 것보다 아깝지 않아요. 좋은 와인을 한 병 먹는 게 좋은 가방 하나 사는 것보다 좋아요. 그래서 외국나가면 비싼 와인도 한 병씩 사 와요. 최근에도 <나의 PS 파트너> 팀들이랑 개봉 전에 모이면 마시려고 한 병 샀어요.
여행이 좋은 이유는 뭔가요?
다른 문화를 체험하길 좋아해요. 외국에 어떤 문화가 있는지 보고, 알고 싶어요. 또래 친구들은 여행을 가면 쇼핑몰이나 클럽 같은 핫 플레이스에 가길 원하는데 저는 언더그라운드에서 가장 ‘핫’한 공연이나 유적지가 궁금해요. 보고 싶은 게 달라요. 항상 현지인에게 질문해요. ‘이 나라 사람들의 평균 수입이 얼마예요?’ 같은 거. 사람들 수입 수준이 얼마인지, 뭐가 발달했는지, 뭐가 유명한지, 그런 게 궁금해요.
원래 호기심이 많은가 봐요.
알면 알수록 알고 싶은 게 많아지는 편이에요. 사실 예전엔 이런 줄 몰랐어요. 그 나라의 전반적인 문화나 문화나 사람들의 경제적인 수준, 종교 같은, 진짜 관심사가 궁금해요.
결국 사람에 대한 관심이네요.
이런 관심을 갖고 멕시코영화를 보는 것과 어느 날 갑자기 멕시코영화를 보는 느낌은 완전히 다르겠죠. 실제로 경험하지 못해서 생긴 선입견들이 있을 거니까요. 이태원에서 데이트를 하면서 브리토를 먹었던 사람과 멕시코의 블루칼라 노동자들이 길거리에서 브리토를 먹는 걸 본 사람이 멕시코영화에서 브리토를먹는 남자의 모습을 봤을 때의 느낌은 완전히 다르겠죠. 결국 사람에 대한 관심일지도 모르겠어요.
지금 본인의 관심사란 무엇인가요?
아직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의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는 나이인 만큼 아직 다양한 캐릭터를 만날 가능성은 적겠죠. 게다가 시나리오는 저뿐 아니라 많은 여배우들에게도 가고, 다른 배우가 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같이 작업하는 크리에이터들이 이건 김아중이랑 했으면 좋겠다고 떠올릴 수 있는 걸 표현하고 싶어요. 제가 가진 걸 누군가와 다르게 확실히 보여주고 싶어요.
(ELLE KOREA 12월호 No.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