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컥했다는 이가 한둘이 아니다. <무한도전>의 ‘토토가’가 잠자던 90년대의 감성을 건드렸다. 90년대 대중음악이란 지금 어떤 의미인가. 90년대 대중음악을 듣고 자란 세 사람이 모여 썰을 풀었다.
민용준(이하 ‘민’) 다들 <무한도전> ‘토토가(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는 어떻게 봤나?
김형석(이하 ‘김’) 재미있게 봤다. <무한도전>의 힘을 재확인하는 기분이었다.
배순탁(이하 ‘배’) <무한도전> 다이어리는 특별히 홍보도 안 하는데 100만권이 팔린다더라(웃음). 사실 ‘토토가’에 나온 가수들 대부분은 2000년대 이후의 세대에겐 잊혀져 버린 가수들이라 할 수 있는데 일부로 그런 가수들만 섭외한 건지, 그런 가수들만 섭외된 건지 모르겠다. 어쨌든 기획의 승리라고 본다. 개인적으론 내가 그 노래를 다 기억하고 있어서 놀랐다.
민 뇌가 좀 더 싱싱할 때 들어서인지 몰라도 가사가 저절로 기억나서 따라 부르게 되는 게 신기했다.
배 윤도현이 <나는 가수다>에서 소녀시대 노래를 부를 때 가사가 외워지질 않아서 미치겠다고 했다. 확실한 건 요즘의 가요들과 달리 90년대의 가요엔 스토리텔링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오래 기억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민 ‘토토가’ 이전에도 90년대를 조명하는 기획이 있었다. <응답하라 1997>이나 <응답하라 1994>가 대표적이고, <나는 가수다>도 90년대에 발을 걸친 인상이었다. 작년에 발매된 김동률의 신보도 90년대의 노스탤지어를 건드린 것 같다. 이적이나 윤상 같은 90년대 싱어송라이터가 다시 주목을 받는 과정도 그렇고.
배 사이먼 레이놀즈라는 음악 평론가가 쓴 <레트로 마니아>라는 책이 있는데 레트로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한 책이다. ‘음악에 있어서 더 이상 새로운 것은 없는가’란 식으로. 아무래도 레트로라는 게 과거의 소스를 재생시키는 거니까 먼 과거를 지나 가까운 과거가 레트로의 차례가 됐다고 봐도 될 것 같다. 80년대가 레트로의 대상이 됐던 시대를 넘어서 이젠 90년대가 ‘핫’해질 순서가 된 거 아닐까.
민 90년대 대중음악이란 것이 추억을 넘어 열광의 대상이 되는 인상도 있다. 그건 레트로와 조금 다른 현상 같다.
배 모든 세대마다 자기 세대만의 사운드트랙이 있겠지만 90대는 음악산업이 정점을 찍었던 해이니까 다른 시대에 비해 추억의 밀도가 훨씬 높을 수 있다. 아마 시절을 추억하는 수단이 음악일 수 있는 마지막 세대가 지금의 30~40대일 수도 있을 거 같다. 지금의 10대나 20대는 어쩌면 음악이 아니라 게임이 될 수도 있고.
김 생각해 보면 2000년대에 들어와서 음반시장이 망가진 원인으로 핸드폰을 꼽는 경우도 많았다. 사람들이 핸드폰으로 게임을 많이 하니까 상대적으로 음악을 듣지 않는다는 식이었지.
민 90년대에 대중가요라는 것이 대중문화 안에서 가장 큰 광장 역할을 했고, 거기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던 세대들이 ‘토토가’를 통해 어떤 추억의 연대를 경험하게 된 것 같다. 그런데 사실 지금도 음악의 소비는 활발하게 이뤄진다. 다만 음반이라는 물리적 형태의 소유가 아니라 음원의 거치 형태라는 점이 큰 차이를 만드는 것 같다.
배 아무래도 경험은 물성을 통해서 극대화된다고 본다. 만지는 개념이 정말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90년대는 음반이라는 음악적 물성을 간직한 마지막 시대였던 것 같다. 음반이라는 물성을 경험해보지 못하는 이상 음악이라는 그리움 자체가 형성되긴 어렵지 않을까.
민 ‘토토가’ 이후로 90년대가 대중음악의 전성기였다는 말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배 부분적으론 동의할 수 있다. 모든 지표들이 그걸 증명해 주니까. 90년대는 대중음악이 문화 소비의 패권을 차지했던 시대였다. 지금은 그 패권이 영화로, 게임으로, 스마트폰으로 넘어갔지.
김 요즘은 음악을 통한 부가사업들이 보다 중요하다. 패션, 스타일, 마케팅, 일종의 종합선물세트로 기획된다. 90년대는 음악 자체가 주된 소비의 대상이었기 때문에 음악이란 본질에 충실했던 시대였다.
배 사실 ‘토토가’에 나왔던 음악들도 90년대 대중음악신 안에서 일부가 되는 음악이었단 사실이 중요하다. 게다가 90년대는 모든 장르의 음악을 TV로 들을 수 있었던 마지막 시대였다. 고인이 된 신해철의 넥스트가 공중파 가요 프로에서 프로그레시브록을 연주하는 시대였다. 발라드나 댄스음악이 공존했고. 그런 면에선 확실히 회자될만한 가치가 있다.
민 사실 90년대에도 댄스 음악 일변도라 들을 음악이 없다는 비판이 상당했다.
배 ‘토토가’에 나온 가수들은 90년대에 큰 족적을 남긴 가수들이지만 아마 김건모나 엄정화 정도를 제외하면 당시에 진지하게 음악을 듣던 이들에게 대부분 욕을 먹었을 거다. 립싱크 논란도 심했고. 그런 면에서 90년대는 저렇게 좋았는데 지금은 너무 엉망이란 식의 태도는 지양할 필요가 있다.
민 90년대 음악이 향수가 된 건 그 시절의 음악 소비를 주도했던 세대가 나이 들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이를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문화 소비의 중심부에서 밀려났는데 ‘토토가’를 통해 자리를 찾았다는 감격이 서럽게 다가오는 지점도 있었던 것 같다.
배 지금의 30대, 40대가 대부분 그랬을 거다. 잠재돼 있던 문화 소비 욕구의 도화선에 불을 지폈다고 할까? ‘토토가’ 다음날 음원 차트를 보고 깜짝 놀랐다. 어떤 식으로든 소비를 이끌어냈다는 점에선 긍정적이다. 그런데 주영훈 씨가 100억을 벌었다는 기사가 나온 건 진짜 어이 없더라(웃음).
민 음원 수익 분배 구조에 하등의 관심도 없으면서 기사를 쓴 거 같더라. 그냥 약 판 거지(웃음). 음원 수익이 작곡가에게 돌아가는 게 정확히 몇 % 정도인가?
김 한 4%? 90년대엔 음반이 100만장 팔리면 40~50억 정도 매출이 나왔는데 이젠 다운로드 100만 건이면 1억 수준일 거다. 게다가 스트리밍은 거저 주는 꼴이라 다운로드 수를 현저히 떨어뜨린다.
민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미국에서 아이튠즈를 통해 290만 건이 다운로드돼서 얻은 수익이 28억 정도 된다고 들었다. 그런데 국내에선 360만 건 정도가 다운로드됐는데 싸이에게 돌아간 수익이 6000만원 정도였다더라. 나는 내가 숫자를 잘못 본 줄 알았다.
김 가장 큰 문제는 투자하는 회사에서 유통을 하고, 제작도 하고, 음원 판매 사이트까지 운영한다는 거다. 게다가 미디어까지 갖고 있고, 정상적일 수 없는 구조인 거다.
배 완벽한 갑인 거지. 슈퍼갑.
민 음반시장에서 음원시장으로 넘어오면서 고착된 상황이다.
김 음악종사자들이 발 빠른 대처를 못했다. 머리가 빨리 돌아가는 사람들은 기업에 있고, 음악은 ‘쟁이’들이 하니까(웃음). 물론 회사에서도 할 말은 있다. 망도 깔고, 시스템에 투자한 돈이 얼마이고. 하지만 문화사업이 1~2년 보고 가는 게 아니지 않나. 최소한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적절한 수익이 배분되고 있는지에 대한 논의 정도는 가능해야 되는데 그런 개념이 전혀 없다.
배 그러니 부가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아이돌만 육성되는 거고, 다양성이 존재할 수 없는 시장이 된 거다. 그런 면에서 90년대는 음악 창작자에 대한 정당한 대가가 주어졌다는 면에선 괜찮은 시대였던 것 같다. 2000년대 이후론 그게 완전히 무너졌으니까.
김 심지어 당시엔 표절 문제가 불거지면 팀도 해체됐다. 지금은 듣기 좋거나 재미있으면 그냥 잘 넘어가는 것 같고.
민 그런데 팀 해체는 좀 가혹했던 거 같다.
김 그만큼 아티스트의 양심에 대한 가치가 중요하게 여겨진 시대였던 것 같다. 창작자가 표절을 했을 때 누군가가 손해를 본다는 물질적 개념보단 창작자가 거짓말을 해선 안 된다는 윤리적 가치관이 대중에게도 절대적이었던 거지. 대중음악이 그만한 가치를 존중 받았던 시대였기 때문일지도 모르고.
민 그러고 보니 90년대 대중가요는 싱어송라이터의 시대였던 것도 같다.
배 국내에서 싱어송라이터라는 말이 처음 쓰였던 게 90년대였다. 가수가 직접 작곡, 작사에 참여한 곡이 많았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 자기 음악을 직접 만들려는 아이돌이 많아진다는 건 긍정적인 거 같다. 단순히 기획사의 인형이 되고 싶지 않은 거다. 샤이니의 종현 같은 친구와도 대화해보면 음악 욕심이 어마어마하게 느껴진다.
김 90년대처럼 다시 싱어송라이터가 중요한 시대가 됐다. 아이돌도 아티스트로 변모하길 원하고. 미국도 10년 전엔 백스트리트 보이스 같은 아이돌의 시대였지만 지금은 크리스 브라운 같이 재능 있는 싱어송라이터가 대세다.
민 90년대 아이돌과 지금의 아이돌의 차이는 그런 후천적 욕망에 있는 것도 같다.
김 사실 90년대엔 프로듀서라는 개념이 희박했다. 지금은 기획사만의 색깔이라는 게 있지 않나. JYP는 섹시, YG는 힙합, SM은 팬시. 어쨌든 자기 색깔이 분명하니까 팬덤도 그렇게 형성되고 ‘안전빵’ 장사도 가능하다. 그런 색깔은 아티스트 개인이 아니라 회사 차원에서 기획해야 한다. 그래서 프로듀서가 필요한 거다.
배 결국 그런 시스템이 90년대로부터 잉태됐다는 게 중요하다.
김 그래서 3대 기획사의 수장 중 두 사람이 90년대 음악신에서 배출된 사람이란 것에 주목해야 한다. 사실 90년대엔 보편적으로 타당한 노래를 좋아했다. 내가 들어도, 네가 들어도 슬픈 노래. 지금은 그 사람만 할 수 있는 게 추앙 받는 시대다. 1:1의 문화인 거다. 예전엔 미국의 문화, 유럽의 문화란 식으로 구분했다면 지금은 그냥 싸이의 문화가 인정받는 거다.
배 확실한 개성이 요구된다.
김 아카데미에서 수업을 듣는 학생들한테 좋아하는 가수를 물어보면 빅뱅을 많이 답한다. ‘자기들만의 음악이 있어서’라는 게 이유다. 최소한 애들도 나름의 기준으로 아이돌을 판단한다는 거다. 아이돌이 난무하다 보니 소비자의 관점이 진화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민 ‘토토가’는 90년대 음악의 상품성을 창출하는 매대 역할을 했다는 점에선 괜찮은 쇼케이스였다.
배 아마 제작진도 이 정도로 흥할 줄 몰랐을 거다. 거의 장난처럼 시작된 기획이지만 <무한도전>이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김 미디어의 역할이 그거다. 가치를 부여해서 진열대에 올려 놓는 것. 대중들은 능동적이지 않다. 소수 매니아를 제외하면 대부분 수동적이다. 그걸 미디어가 건드려줘야 한다. DJ 정권 시절에 음원 수익 배분 구조를 국가에서 결정해버렸는데 실질적으로 음반시장 붕괴 이후엔 국내 음악산업 종사자들의 수익이 거의 사라졌다. 당장 먹고 죽을 것도 없어졌다. 그나마 돈벌이가 되는 아이돌을 양산해낼 수 밖에 없는 구조가 됐고, 가요프로그램에서 20팀 중에 18팀이 아이돌로 채워지는 상황이 돼버렸다. 개인적으로 K팝이 롱런하려면 결국 다양성이 중요하다. 마이클 잭슨이 좋아서 미국 팝을 들어봤는데 다 마이클 잭슨 같으면 계속 들을 이유가 없지 않나. 결국 다양성을 끌어내야 한다. 생각해보면 90년대는 음악적 다양성이 폭발하는 시대이기도 했다.
민 음반과 음원으로 음악을 듣는 건 정말 다른 경험인 거 같다. 발품을 팔았다는 보상심리가 생기고, 이 음반의 기회비용을 생각했을 땐 그만큼 열심히 그 음반을 소비해야 한다는 심리가 동원된다. 감상의 밀도가 달라진다고 할까. 음원을 통해 음악을 듣게 되면 이런 과정이 어느 정도 상실되는 것 같다.
김 최근 삼성에서 ‘밀크’라는 음원서비스를 새롭게 공개했다. 기분이 우울하다고 클릭하면 알아서 노래들을 선곡해준다. 이제 내 컨디션만 알려주면 알아서 음악을 골라준다. 그렇게 편안함에 중독되는 거다. 그러면 결국 내 자아가 사라질 것 같다. 편리한 일이지만 사소한 불편함을 삭제했을 땐 경험을 통한 깨달음의 가능성도 같이 삭제될 가능성이 있다.
배 몸을 움직여서 뭔가를 해야 경험이든, 영감이든 발생하는 법인데 그런 몸의 움직임이 계속 지워지는 세대에겐 음악에 대한 기억도 얕아질 수밖에 없다. 내 몸을 움직여서 음악을 득템하는 과정들이 대부분 삭제되니까 음악에 대한 추억 자체도 희미해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지금의 10대에게 음악과 연관된 자신의 이야기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을지 모르겠다.
민 90년대의 음악 소비가 대화나 접촉 같은 아날로그 방식이었다면 21세기의 음악 소비는 데이터 송신의 디지털 형태로 이뤄진다. 음악을 듣는다는 본질적 경험은 동일하지만 그 과정의 형식과 소유의 방식이 달라지면서 기억의 유효기간도 확연히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토토가’가 어떤 불씨를 살린 측면은 있는 것 같다. 그걸 꼭 활활 타오르게 만들 의무는 없지만 이왕 살린 불씨라면 최대한 지펴보는 것도 의미는 있겠다. 최소한 유의미한 오락거리 하나는 발굴했다는 점만으로도 긍정적이고.
김 어차피 90년대 음악이 주류가 될 순 없지만 비주류가 된 음악을 재조명했다는 건 분명 좋은 시도라고 생각한다. 지난 시대에 대한 가치를 조명하는 시도가 거듭 이뤄져야 한다. 후세대가 봤을 때도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이해하게 되면 그게 유산이 되는 거니까.
배 우리도 ‘토토가’를 빌미로 90년대 이야기를 하려고 모였지만 요즘 얘기도 많이 했다. 결국 90년대라는 화두를 통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가 가능하단 말이다. 그런 움직임이 더 활발해져야 할 것 같다. 그리고 90년대는 지금과 가장 가까운 과거다. 70~80년대도 소중하지만 지금과는 너무 먼 시대가 돼버렸으니까 90년대를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것도 같다.
김 90년대를 직접 겪은 사람들에겐 90년대가 현실이었다. 그러니까 지금의 청소년들이 음악을 바라보는 태도를 우리가 지켜보는 상황이 아니라 그 아이들이 겪는 현실로서 이해하는 게 정말 중요할 거 같다.
민 최대한 꼰대 같지 않게(웃음).
(ELLE KOREA FEBRUARY 2015 NO.268 'ELLE 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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