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랍게도, 그 모든 가능성들이 존재했지만 이제 사라졌기에, 그 시절이 그립다.” 히스 레저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미셸 윌리엄스에게 슬픔을 안겼다. <브로크백 마운틴>(2005)으로 만나 연인이 되어 결별하기까지, 레저와 윌리엄스는 딸을 낳았고, 추억도 낳았다. 결국 레저는 갔고, 윌리엄스는 살아간다. 지난해 <블루 발렌타인>(2010)에서 보여준 열연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그녀는 마릴린 먼로로 분한 <마릴린 먼로와 함께한 일주일>(2011)로 다시 한 번 오스카를 찾았다. 대본을 읽고 6개월간의 고민 끝에 작품을 결정했다는 그녀는 스크린 속에 마릴린 먼로를 다시 세웠다. 그녀는 말한다. “연기를 그만두는 꿈을 자주 꾼다.”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은 오래되고, 아름답고, 사연을 지녔다. 어떤 슬픔이 있다 하더라도.” 영화에 그 모든 것이 있으니, 그녀의 삶도 그렇게 이어질 수 밖에 없다.
라이언 고슬링은 할리우드의 만년 유망주 같은 배우였다. 각기 다른 세 편의 작품으로 관객 앞에 나선 그의 2011년은 일종의 선언과 같았다. 그의 잠재력이 폭발했다. 그의 시간이 온 것이다.
2011년 칸 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니콜라스 윈딩 레픈의 <드라이브>(2011)는 궁극적으로 유령 같은 한 남자의 러브스토리다. 그에게는 가족도 없다. 말수도 없다. 딱히 정체를 아는 이도 없다. 이름조차 들어본 적 없다. 확실한 건 그가 운전 하나는 기똥차게 잘한다는 것. 낮에는 카체이싱 전문 스턴트맨으로, 밤이면 범죄자들을 실어 나르는 운반책으로, 그는 살아간다. 핸들과 기어가 그의 두뇌이자 심장인 것마냥. 그런 그가 이웃의 한 여자에게 마음을 준다. 그로 인해 예기치 않게 낭떠러지 같은 상황에 몰리지만 그는 결코 핸들을 꺾지 않는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그녀에 대한 순정으로 엑셀을 밟아 직진한다. 운전석에 앉아 있는 건 라이언 고슬링이었다.
미국의 영화평론가 로저 에버트는 고슬링의 연기가 할리우드에서 1960년대 배경의 전통적인 이름 없는 영웅들을 연기한 클린트 이스트우드나 알랭 들롱을 연상시킨다고 평했다. 그리고 <블리트>(1968)의 스티브 맥퀸까지 언급했다. 그들은 하나 같이 과묵했고, 차가웠지만, 순정적이었다. <드라이브>에서 고슬링은 미세한 표정의 변화와 눈빛, 제스처만으로 극명하게 감정을 전달한다. 무엇보다도 그의 연기적 스타일이 전통적인 고전 배우들의 레퍼런스를 동원하게 만든다는 건 흥미로운 대목이다. 사실 그는 오래 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고, 만년 유망주 같은 배우로 꼽혀왔다. 그리고 지난 해, 고슬링은 성공적인 한 해를 채웠다.
캐나다 출신의 고슬링이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처음 발을 들인 건 12세 무렵이었다. ‘우주비행사나 경찰 아니면 소방관이나 무엇이든 하는 것’이 인생이라 생각했던 소년에게 새로운 삶을 부추긴 건 신문의 디즈니 채널 어린이 TV쇼 <미키 마우스 클럽>의 공개 오디션 공고였다. 그는 갔고, 참여했고, 합격했다. 댄서 지망생이었던 그는 브리트니 스피어스,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그리고 여전히 우정을 자랑하는 저스틴 팀버레이크 등이 타고난 끼를 과시하던 무대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게다가 당시 고슬링은 재보다 잿밥에 더 관심이 많았다. “그들이 촬영하는 동안 나는 그저 디즈니랜드에서 많은 놀이기구를 탔다.” 물론 이것이 의미 없는 경력은 아니었다.
그 후, 몇 편의 아동용 TV시리즈에 출연했던 고슬링은 학업을 중단하고 LA로 건너가 폭스 키즈 채널의 <영 헤라클레스>를 촬영하던 중, 마음이 꿈틀거림을 느꼈다. “더 많은 시간을 캐릭터와 함께 하고 다른 방식으로 캐릭터를 시도할 수 있도록, 영화를 하길 원했다. 그래서 나는 말했지. ‘TV는 이제 됐어.’” <리멤버 타이탄>(2000)으로 스크린에 입문한 그는 바로 다음해 배우로서의 결심을 완전히 굳혔다.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 <빌리버>(2001)에서 고슬링은 광기에 가까운 극단적 신앙을 지닌 네오 나치 청년을 연기했다. 비록 미국 내 극장 상영이 이뤄지지 않았지만 영화를 본 평단은 대부분 그의 연기를 높게 평가했다. 그리고 고슬링은 변화를 자각했다. “내게 변화가 왔다. 마치 나의 내면을 담아낼 수 있는 공간이 생긴 것처럼 느껴졌다.”
할리우드와 인디 신을 오가던 고슬링에게 세계적인 유명세를 달아준 건 순정적인 멜로 <노트북>(2004)이었다. 전세계적으로 1억 달러가 넘는 수익을 올렸고, 그 성공 이후로 로맨스물 출연 섭외가 이어졌지만 그는 쉬운 길을 가지 않았다. 진가는 인디펜던트 신에서 보다 확고하게 드러났다. <하프 넬슨>(2006)에서 약물중독자 고등학교 교사를 연기한 고슬링은 생애 첫 오스카 남우주연상 부문 노미네이트를 비롯해서 인디펜던트 스피릿 어워드에서 수상자로 단상에 오르는 영광을 안았다. 그는 촬영 한 달 전, 브룩클린의 한 고등학교에서 그림자처럼 교사의 특성을 관찰했다. 이는 그를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 후보로 천거한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2007)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실제 인간의 형태와 흡사한 ‘리얼돌’을 사랑한 한 남자의 애틋한 사연을 그린 이 영화에서 그는 실제 인형을 감정적인 대상으로 이해하기 위해 세트에서 실제로 인형과 함께 하룻밤을 묵기도 했다. “사람들은 줄거리를 듣고 웃겠지만 나는 <노트북>보다 훨씬 더 로맨틱하다고 장담할 수 있다”는 그의 말처럼, 인형을 진짜 연인처럼 대하는 남자의 웃지 못할 광경은 진전되는 극 안에서 진실된 감동의 결정을 만들어낸다.
“목적지로 가는 백만 가지 방식이 있겠지만 연기할 대상을 위한 진짜 참고사항이 없을 때, 그건 도전이다.” 고슬링은 메소드 연기에 대한 철학을 드러냈다. 단순히 캐릭터를 숙지하는 것이 아니라 캐릭터와 연기자 사이의 상호적인 교감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연기하는 캐릭터를 사랑하고 증오해야만 한다. 그들은 사람이다. 그들을 이해하는 것처럼 간단하지 않다.” 물론 시행착오도 존재한다. 안소니 홉킨스와 함께 출연한 법정 스릴러 <프랙처>(2007) 개봉 당시 인터뷰에서 고슬링은 고백했다. “안소니의 연기와 그의 재능을 분석하고 이해하려 노력했다. 결코 할 수 없었지.” 연기 집념만큼은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한동안 밴드를 결성하며 음악으로 외도한 고슬링은 <블루 발렌타인>(2010)으로 3년 만에 스크린에 돌아왔다. 경제적인 난관으로 권태기에 이른 한 부부의 지리멸렬한 일상을 다룬 이 작품에서 고슬링은 미셸 윌리엄스와 탁월한 호흡을 선보였다. “이 업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금발을 지닌 두 사람은 그들 세대에서 가장 훌륭한 배우다. 그들이 함께 한 연기를 본다는 건 일종의 스릴이다.” <뉴욕> 매거진의 평이다. 성공적인 복귀 이후, 고슬링은 2011년 최고의 경력을 나열했다. <드라이브>를 비롯해서 <피플>지로부터, “오스카 수상의 가치가 있는 배우가 단지 재미를 주고자 굉장히 섹시한 역할을 맡았다”는 평을 얻은 코미디 <크레이지, 스투피드, 러브>와 조지 클루니의 네 번째 연출작인 정치물 <디 아이즈 오브 마치>가 그것이다.
다작 배우가 아닌 고슬링이 각기 장르가 다른 세 편의 영화로 한 해를 채우며 증명해낸 건, 그가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확실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내는 배우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는 말한다. “나는 테스트될 때까지 기다릴 수 있다.” 물론 지금 그가 기다릴 입장은 아닌 것 같다. 지난해 칸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테런스 맬릭과 윈딩 레픈을 비롯해서 그를 원하는 감독들이 줄을 서있다. 그의 배우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한 해가 지났다. 그의 시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의 잠재력은 여전히 폭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