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몇 년 동안 할리우드에서 제작된 대작 영화의 엔딩 크레딧을 유심히 지켜본 관객이라면 한국인 스태프의 이름을 심심찮게 발견했을 거다. 할리우드에서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프로덕션과 스튜디오에서 활약하는 한국인 출신 VFX 아티스트들은 적지 않은 수를 자랑한다. 이들은 한국 VFX산업의 잠재적인 자산이다. 그리고 지금 영화의 패러다임의 전환이라 불리는 <아바타>에서도 한국인 아티스트들의 손재주를 확인할 수 있다. 텍스처 아티스트(Texture Artist) 전병건을 비롯해 시니어 모델러(Senior Modeler) 장정민, 시니어 페이셜 모델러(Senior Facial Modeler) 이진우, 노응호, 모델러(Modeler) 이선진, 리드 라이팅 임창의, ATD 라이터(Assistant Lighter) Sean Lee, 모션캡쳐 에디터(Motion Capture Editor) 김기현그리고 시니어 애니메이터(Senior Animator) 박지영까지, 총 9명의 한국인이 그 역사적 작업에 손을 보탰다. 그 중 두 명의 아티스트를 소개한다.
외국에서 활동하게 된 계기를 소개해달라.
전병건(이하 ‘전’):홍대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1996년에 샌프란시스코의 AAU(Academy Art of University)로 유학을 갔다. 웨타에 오기 전,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서 3편의 장편과 1편의 단편 애니메이션 작업에 참여했다. 플레이스테이션 제작사인 소니 컴퓨터 엔터테인먼트와 파라마운트 산하 스튜디오에서 근무한 경력도 있다. 경력 초반에는 SNK, 액티비전, 소니 등 게임 시네매틱 분야에서 3-4년 일했고, 영화쪽 경력은 2003년부터 시작했다.
박지영(이하 ‘박’): ‘CalArts(California Institute of The Arts)’에서 캐릭터 애니메이션을 전공했고 졸업 후, 인디 영화사에서 2D 키애니메이터(Key Animator)로 일을 시작했다. 많은 2D 애니메이터들이 3D 파트로 전향하던 시기였고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3년 전, 제임스 카메론이 <아바타>를 준비한다는 공고를 보고 웨타 애니메이션 팀에 지원했다.
<아바타>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분야의 역할을 맡았나?
전: 2008년 11월부터 초반 8개월은 CG로 만들어진 캐릭터나 배경, 소품 등에 색상과 질감을 입혀주는 텍스처 아티스트(Texture Artist)로, 나머지 4개월은 완성된 장면에 조명을 더해 최종 이미지를 그려내는 조명 스텝(Lighting Technical Director)으로 일했다. 부서를 옮겨가며 일하다 보니 더욱 폭넓게 <아바타>의 제작과정을 경험할 수 있었다.
박:시니어 애니메이터(Senior Animator)로 참여했다.영화에 등장하는 동물과 식물을 살아 숨쉬는 생물체처럼 보이게 하는 일이다.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모든 동식물들은 직접적인 순수 애니메이션 방식으로 탄생됐다.
할리우드의 제작 방식을 경험했을 때 특별하다고 느낀 바가 있었을 것 같다.
박:자본의 적극적인 투자가 이뤄지고, 체계적인 프로덕션 파이프라인 구축됐으며 유능한 프로페셔널 아티스트들이 많다. 투자자본이 많은 만큼 새로운 기술개발 투자가 이뤄지고 그렇게 개발된 신기술들이 바로 영화에 활용된다. 특히 프리 프로덕션이나 기획 단계에 많은 공을 들여서 소프트웨어와 테크놀로지 개발을 진행하고 탄탄한 스토리 구성을 갖추는 등, 효율적인 프로덕션 계획을 철저히 이룬다. 덕분에 철저한 계획에 맞물려 능률적인 작업 환경이 완성되며 시간소비가 줄어든다. <아바타>도 제임스 카메론과 20세기 폭스가 몇 년에 걸친 준비기간 동안 ’Pace Fusion 3D Camera System’이라는 새로운 카메라 기술을 개발했다. 이런 신기술들을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실력을 지닌 아티스트가 많다는 것도 할리우드 VFX산업의 강점이다.
한국VFX기술의 발전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나?
전:열악한 제작환경 속에서도 여기까지 오게 된 것만으로도 상당히 고무적이다. 규모가 적지만 최소한 자국 영화 시장이 있다는 환경적 조건과 함께 열악한 환경을 견뎌내고 현재까지 산업을 이끌어온 한국의 VFX 종사자들의 역할이 크다고 본다. 하지만 비슷한 경제 수준을 지진 타국과 비교했을 때, 한국의 기술이 특별히 월등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러시아에서 만든 <나이트 워치>(2004)나 <데이 워치>(2006)의 VFX수준이나 최근 전세계를 대상으로 <아스트로 보이>와 같은 풀 3D애니메이션을 제작한 홍콩의 사례도 있다.
박:한국영화 관계자들이 VFX의 엔터테인먼트 산업 부흥 효과에 많은 관심을 가진 덕분에 해마다 VFX를 이용한 영화에 대한 투자가 증가하고 덕분에 영화의 소재도 표현력이 풍부해지고 있다. VFX활용도는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과거보다 이 분야를 공부한 전문 인력이 많아진다는 것도 두드러지는 현상이다.
최근 한국 VFX 업체의 외국진출 움직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전:한국 VFX업체의 해외 프로젝트 공동 작업과 해외 진출은 매우 바람직한 방향이고 앞으로도 적극적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적은 규모의 시장에서 국내 관객만을 대상으로 산업을 이끌어 나간다면 VFX의 발전을 기대하기 힘들다. 현재 할리우드 제작사에서는 제작비를 줄이기 위해서 할리우드를 벗어나서 많은 프로젝트를 제작하고 있다. 실력만 검증되고 영어로서 커뮤니케이션만 가능하다면 해외의 VFX나 애니메이션 수주를 이룰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거다. 문제는 한국이 다른 나라에 비해서 어떤 장단점이 있는지 스스로 파악하고 그 문제점을 해결해 나갈 수 있는가다. 한국은 자국 영화와 게임 시장이 존재하고 수준 이상의 전문 인력이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하이엔드 제작 경험을 가진 인력이 부족하고 영어로 커뮤니케이션이 서툴다. 지금 VFX와 애니메이션 분야에서 미국의 수주를 받는 나라는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싱가폴, 인도와 같은 영어권 국가란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