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한다 90년대

culturist 2015. 4. 6. 01:05

울컥했다는 이가 한둘이 아니다. <무한도전>토토가가 잠자던 90년대의 감성을 건드렸다. 90년대 대중음악이란 지금 어떤 의미인가. 90년대 대중음악을 듣고 자란 세 사람이 모여 썰을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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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의 엄태웅이 배우로 돌아왔다. 열혈형사로 분한 <특수본>이 바로 그것. 사실 엄태웅은 <1 2>로 전국을 돌던 와중에도 언제나 현장에 있었다. 단지 그 동안 우리가 배우 엄태웅에 대해서 잘 몰랐던 것은 아닐까. 어쨌든 배우 엄태웅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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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사부일체> 마지막 30분에 쓰나미가 밀려온다면? <색즉시공> 마지막 30분에 쓰나미가 밀려온다면? <1번가의 기적> 마지막 30분에 쓰나미가 밀려온다면? 이 질문에 수렴할만한 정답은 <해운대>. 단지 제목은 변경돼야 한다. 또한 바다가 인접한 지역이었을 때 가능하다. 서울 한복판에서 쓰나미를 연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를 다른 이미지로 치환하는 것도 가능하다. 만약 테헤란 거리 한복판에서 지진이 일어나 건물이 무너지고 사람들을 구덩이로 빠뜨리면 그 영화 제목은 <테헤란>이 될 지도 모른다. 농담이냐고?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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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능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 노출뿐이라 생각한다면 빈곤한 상상력을 탓할 필요가 있다. 직관적인 이미지는 자극의 잠재적 성과를 되레 반감시킨다. 선명한 이미지의 관찰보다도 불투명한 실루엣이 발생시키는 상상력이 감상적 욕구를 자극하곤 한다. 이미지가 발생시키는 자극의 충만보다도 잠재적인 욕구를 발생시킨다는 점에서 보다 매혹적이다. 여인의 나신을 고스란히 노출하는 관능적인 티저포스터가 눈길을 사로잡는 <오감도>는 분명 파격적이고 창의적인 에로티시즘의 상상을 예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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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감도> 단평

cinemania 2009. 7. 7. 12:00

에로스에 대한 다섯 개의 시선. 과감하고도 감각적인 누드 이미지를 내건 티저포스터는 <오감도>가 구사할 에로티시즘에 대한 기대감을 부추긴다. 그러나 기대는 거기까지, 영화는 포스터가 주는 모종의 기대감과 동떨어진 결과물에 불과하다. <오감도>는 일관된 주제를 관통하지 못하는 옴니버스이자 기획에 따른 기대감을 배반하는 결과물이다. 창의적인 해석력도, 과감한 묘사력도 선보이지 못한다. 도전적이라기 보단 과욕에 가깝고, 창의적이라기 보단 자만에 가깝다. 에피소드를 통과할수록 티끌과 같은 권태가 쌓여나간다. 또한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처럼 축적된 권태의 무게를 견디는 것도 만만치 않은 고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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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을 견딘 예술품은 보존적 가치를 발생시키고 개인의 소유욕을 자극한다. 예술품에 물질적 단위의 가격을 매기게 된 건 그 소유욕 때문이다. 희귀성이 인정될수록 책정되는 화폐 단위가 올라간다. 본질적인 아름다움보다도 금전적인 저울질을 통한 소유욕이 예술을 장악한다. 예술이 금전적 가치로 규정될 때 예술을 돈벌이의 수단으로 변질시키는 굴절된 욕망이 파생된다. 진품을 베낀 위작들이 눈먼 소유욕을 등에 업고 시장에 유통되고 진가를 해독할 수 있는 감정가의 판단이 예술적 가치판단의 기준이 된다. 변수는 그 모든 과정에 개입하는 사람의 속내가 투명하지 않다는 점이다. 예술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붓도, 예술적 가치를 판명하는 혀도, 예술적 가치를 구입하는 돈도, 사람에 의해 움직인다. 결국 사람이 변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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