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10번 출구에 포스트잇이 붙었다. 포스트잇에 담긴 소리 없는 아우성이 세상을 흔들었다.
지난해 파리 테러 직후, 파리 시민들은 테러 현장과 인접한 리퍼블리크
광장에 추모의 언어를 모았다. 자유와 평화의 메시지가 담긴 그림과 사진이 자유를 상징하는 여신상 주변에
빙 둘러 쌓였다. 꽃다발과 촛불의 행렬이 이어졌다. 무자비한
폭력에 굴하지 않겠다는 개개인의 신념이 광장에 수집됐다. 이런 식의 추모는 서양에서 흔한 일이었다. 1997년 파파라치의 추격에 벗어나려다 교통사고로 사망한 다이애나의 죽음 이후, 그녀를 추모하는 영국인들은 다이애나가 왕세자비 시절에 머물던 켄싱턴궁 앞에 추모의 메시지가 담긴 사진과 꽃다발을
남겼고, 촛불을 밝혔다. 9.11 테러 이후, 뉴욕의 그라운드 제로에서도 비슷한 광경을 목격할 수 있다.
아마 이런 방식의 추모가 국내에서 가장 명확하게 눈에 띄기 시작했던 건 세월호 참사였던 것 같다. 추모의 메시지를 담은 노란 리본 혹은 노란 종이가 진도 팽목항을 노란 물결로 채웠고, 이런 추모 방식은 서울의 시청 광장이나 광화문 광장까지 이어졌다. 노란
리본을 단다는 것만으로도 세월호 참사를 추모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명확한 공감대를 교환하는 시각적
선언이 된 것이다.
강남역 10번 출구에 켜켜이 붙은 포스트잇도 마찬가지다. 지난 몇 주 사이에 강남역 10번 출구는여성 혐오 범죄 피해자를
위한 추모의 장을 넘어 여성 혐오에 저항하는 성지가 됐다. 여성 혐오에 대한 호소와 절규가 담긴 언어가
적힌 포스트잇이 1000여 개가 넘게 붙었다. 꽃다발과 촛불이
위로를 위한 전통적인 도구에 가깝다면 포스트잇은 상대적으로 새로운 시대의 도구다. 폭력성에 저항하는
목소리와 여성 혐오에 반하는 연대를 호소하는 목소리가 포스트잇이라는 정사각형 종이에 옮겨져 강남역 10번
출구에 게시된다. 불특정 다수가 지나치는 통로였던 강남역 10번
출구는 일종의 게시판이 됐고, 신문고가 됐고, 광장이 됐다. 큰 의미가 없던 일상적인 공간이 상징적인 역사성을 입게 됐다.
이는
시민사회에 새로운 메시지로 가 닿을 것이다. 촛불시위가 시위 문화의 새로운 근간이 됐던 것처럼 강남역 10번 출구의 포스트잇은 사회적 부조리나 불합리에 저항하는 개개인의 목소리가 미약하게 흩어지지 않을 수 있는
하나의 방법론으로 공유된 것이다. 개개인의 목소리가 어느 공간을 점하는 시각적인 규모로 전시될 때 그것이
전 사회를 울리는 강렬한 확성기가 될 수 있다는 것. 그렇게 세상은 때때로 조금씩 전진한다. 생각지도 못한 평범한 것들을 통해서.
(GRAZIA KOREA JUNE SECOND ISSUE 2016 '10 HOT STOR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