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1월 9일부터 20일까지 제22회 스톡홀름 국제영화제가 열린다. 스톡홀름 국제영화제는 북유럽 최대 규모의 필름 축제다. 구스 반 산트의 신작 <레스트리스>(2011)를 비롯해서 50여 개 국가에서 모인 160편 이상의 작품들이 ‘북방의 베네치아’ 스톡홀름의 스크린을 수놓는다. 이번 영화제는 프랑스의 대배우 이자벨 위페르를 위한 평생공로상을 마련했다. 이를 기념하듯 스톡홀름으로 날아든 전세계의 유려한 필름들이 백야의 축제를 장식한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세계적인 해안 관광지 코파카바나, <코파카바나>에서는 그 코파카바나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코파카바나를 사랑하는 한 여인이 등장한다. 중년을 넘긴 나이에도 소녀처럼 해맑은 성격을 지닌 그녀는 좀처럼 감당하기 쉽지 않은 산만함과 무책임함으로 주변인들에게 본의 아닌 민폐를 끼치는 통에 딸 에스메랄다(롤리타 샤마)의 결혼식조차 참석할 수 없는 신세로 전락한다. 자신을 처량하게 만드는 가난을 극복하고, 더 이상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는 이들로부터 멀어져 혼자가 되기 위해 그녀는 새로운 삶을 계획한다. 프랑스 국경을 넘어 벨기에에서 콘도 이용권을 파는 영업직 사원일을 시작하기로 한 것. 엘리자베스, 그러나 스스로 바부(이자벨 위페르)라고 지칭하는 그녀는 그렇게 뒤늦은 독립을 꾀한다.
변변한 직장 하나 없는 가난한 싱글맘인 바부는 어른으로 성장했지만 어른다운 성숙한 일상을 꾸리지 못하는 여인이다. <코파카바나>는 어쩌면 한 여인의 삶을 비추는 성장드라마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인물을 고난의 린치로 몰아가며 성장을 강요하거나 그런 변화를 드라마틱하게 포장하지 않는다. 인물의 일상적인 변화를 쫓으며 사건들에 주목하지만 그 사건들은 인물의 심리를 쉽사리 바꾸지 못한다. 바부가 꿈꾸는 여유로운 이상향 코파카바나처럼 이 영화는 쉽게 꺾이는 인물의 의지와 심리적 변화를 삶의 성찰로 연계시키는 여느 성장드라마들과 달리 스스로의 방식으로서 삶을 돌파해나가는 한 여인의 낙관을 지지한다. 물론 이는 무책임한 방관이 아니다.
자신의 방식으로 삶의 돌파구를 찾아나가던 여인이 역시 스스로 선택한 자선으로 인해 모든 것을 잃게 되는 과정은 그 자체만으로도 드라마틱한 아이러니를 깨닫게 만든다.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낙관으로 삶에 올인하는 그녀가 이를 통해 삶을 역전시키는 과정은 다소 극화된 아이러니이지만 되레 통쾌하다. 완전한 기회를 쥔 상태에서도 자신의 삶을 안전하게 꾸릴 줄 모르는 여인의 삶을 지켜본다는 건 아슬아슬한 일이지만 영화는 그녀의 선의를 관객에게 노출시킴으로써, 그리고 그 진심을 성의껏 관찰함으로써 그녀의 삶을 응원하게 만든다. 또한 그녀가 겪어나가는 삶의 아이러니를 매끄러운 서사에 녹여냄으로써 거부감 없는 감상을 이끌어낸다.
무엇보다도 이런 감상을 가능케 만드는 건 바부를 연기하는 이자벨 위페르다. 다소 과장된 캐릭터를 연기하면서도 적절한 여유를 안고 극을 걸어나가는 그녀는 때때로 나이를 잊은 듯 발랄하면서도 오랜 경험에 기반한 관록이 무엇인가를 증명하듯 바부를 연기한다. 냉정과 격정 사이에서 감정적인 기복이 큰 캐릭터를 연기해온 누벨바그 여신 이자르 위페르는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만들지만 씩씩하고 낙천적으로 삶 위로 부유하듯 살아가는 여인을 연기해내는 <코파카바나>에서의 그녀는 인생의 아름다움을 새삼 깨닫게 만든다. 이자벨 위페르의 존재감은 <코파카바나>를 완성하는 이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이자벨 위페르의 관록은, <코파카바나>의 낙관은, 정처 없는 삶에 작은 위로를 얹는다. 케세라세라, 어떤 식으로든 삶은 그리 향하기 마련이다. 당신의 꿈이 오롯이 놓여 있는 그곳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