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율이란 이름으로
발음할 때마다 반짝이면서도 명료해지는 느낌이다. 권율이란 이름은. 그리고 권율은 반짝이고 명료한 배우가 되기 위해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드라마 <싸우자 귀신아>와 영화 <사냥> 홍보를 병행 중이다.
조금 분주하긴 한데 드라마 초반 비중이 크지 않아서 아직은 여유가 있다. 그래도 7월 11일 첫방송 전까진 많이 찍어둬야 한다. 후반작업이 중요한 작품이라.
<싸우자 귀신아>의 주혜성은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역할이란 점에서 중요하다.
지금껏 드라마에서 보여주지 못한 얼굴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된다. 초반에는 반듯하고 부드러운 이미지이지만 중반부부터는 전혀 다른 인상일 거다. 게다가 <식샤를 합시다2>(이하, <식샤2>)로 만난 박준화 감독님의 작품이라 주저 없이 선택했다.
전후반부에 다른 성향을 드러내는 인물이니 두 사람을 연기하는 느낌일지도.
시험에 드는 순간들이 있지 않나. 지갑을 주웠을 때, 주인을 찾아줄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인간 자체가 본래 두 얼굴을 갖고 있을 수도 있다는 이해를 바탕에 두고 있다.
시험에 들었다고 생각한 순간이 있나?
배우로서 열정적으로 활동하지 못했던 시기? 물론 큰 시험까진 아니었고, 쪽지시험 정도? (웃음) 다만 내 인생을 흔들만한 순간까진 아니었다.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도 아직 때가 오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이겨내고자 노력해왔다.
아무 것도 없는 상태라고 느꼈던 건 언제인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사이에 하고 싶은 것들을 많이 못했다. 그 당시엔 괴로웠지만 스스로를 의심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버텼다.
하고 싶었던 것들이란?
배우로서 하고 싶은 역할이나 작품을 하지 못할 때 자괴감이 들고, 지치더라. 배우라면 누구나 이런 시기를 지나왔겠지. 결국 기다림과 싸워온 시기를 어떤 에너지로 승화시킬 수 있는가라는 마인드가 중요한 것 같다.
Q 부잣집 출신이나 지적인 캐릭터를 자주 맡았는데.
A 드라마에선 그랬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영화에선 다양한 이미지를 확장해왔다. <잉투기>의 백수 캐릭터나 <피에타>에서 연기한 애달픈 아이 아빠를 비롯해 <명량>이나 <사냥>에서도 모두 다른 인상을 찾았다. 자칫하면 고정될 수 있는 이미지에서 벗어날 기회를 스스로 찾고 싶었다.
Q <잉투기>에서도 부잣집 아들로 출연했지만 유복한 환경에서 빗나가는 캐릭터를 연기하며 배우에 대한 편견을 배반하는 쾌감이 있었다. 배우로서도 즐거운 작업 아니었나?
A 기본적으로 청개구리 기질이 있는 거 같다. '저렇게 생긴 친구가 욕도 잘하고 거침 없구나'라는 말을 듣고 싶었다. TV 드라마에선 그런 기회를 얻기가 어렵지만 영화에선 가능성이 종종 열린다. 그런데 요즘은 드라마에서도 다양한 얼굴을 찾는 추세이고, 장르적 시도도 활발해서 배우로선 좋은 시기인 거 같다.
Q 6월 29일에 개봉하는 <사냥>에선 비열한 역할을 맡았다데.
A 어린 나이지만 돈줄을 쥔 덕분에 무례하고 건방지게 구는 캐릭터다. 그런데 산속에서 뜻하지 않은 상황을 맞닥뜨리고 생존이 우선시된 상황에서 나약한 내면을 드러내다가 점차 바닥에 있던 본성을 끌어올리는 인물이다.
Q <사냥>과 <싸우자 귀신아>에선 전후의 변화가 있는 캐릭터를 연기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A <싸우자 귀신아>는 본인의 의지와 무관한 악을 받아들이는 개념에 가깝지만 <사냥>에선 욕망에 눈이 멀어 자신의 본성을 끌어내 밀고 나간다. <사냥>은 캐릭터의 변화 전후 온도가 비슷하다면 <싸우자 귀신아>는 판이하다는 차이가 있다.
Q <사냥>은 산 속에서 촬영했는데 힘들지 않았나?
A 남자들끼리 모여있다 보니 유치하게 놀게 됐다. 이를 테면 '돌 멀리 던지기'나 '돌로 나무 맞추기' 같은. 이런 소소한 낙으로 힘든 상황을 이겨냈다. 그러다가도 작품에 대해 얘기하면 진지해지고, 그런 상황이 재미있었다.
Q 제작보고회에서 조진웅 씨가 권율 씨 덕분에 많이 웃었다고 하더라.
A 현장 특성상 산에서 어울리는 시간이 많다 보니 배우 선배들과 내외할 정도로 친해졌다. 아무래도 막내 군번이다 보니 분위기를 띄우려 노력했고, 그런 게 좋아 보였나 보다.
Q 현장의 분위기에 많이 좌우되는 편인가?
A 현장이 무조건 밝고 행복한 분위기여야 하는 건 아니다. 배우가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가 중요하지. <명량>에선 힘든 지점도 많았고, 대선배들과 연기하는 부담도 컸지만 선배님들이 그런 부담을 이겨내도록 응원해주시고, 힘을 주셨다. 결국 혼자만의 작업이 아닌 거다.
중대 연극학과 출신이다.
고3때부터 준비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을까?
드라마틱한 계기가 있는 건 아니다. 어릴 땐 연출자가 되고 싶었는데 PD가 되려면 신방과에 가야 한다고 하길래 신방과를 생각했지만 성적이 좋아야 된다고 해서. (웃음) 결국 연극영화과를 생각했고 언제부턴가 진로상담을 할 때 자연스럽게 장래희망을 배우라고 말했다.
결국 연극학과에 가서 배우라는 길에 확신하게 됐나?
현실로 확 다가오더라. 전쟁터 앞으로 내몰린 느낌이랄까. 입학하자마자 배우로 활동하는 친구도 있고, 유명해진 애들도 있고. 심지어 후배인데도. 그런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면서 내가 너무 느긋한 건가 고민하게 됐다. 하지만 충분한 실력을 쌓고 싶다는 생각이 컸다.
그래서 20대 초반에 매니지먼트 제안을 거절했나?
일단 겁이 났다. 명확하게 길을 정하지 않은 상황에서 그런 결정을 한다는 것에 대한 거부감도 있었고. 그래서 거리를 두게 됐다.
그 결정을 후회하진 않았나?
안 했다. 좋은 사람을 만나 더 좋은 배우로 성장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당시엔 나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고 준비가 필요했던 게 맞다.
자책처럼 들린다.
자책도 하지만, 복기를 많이 한다. 지난 상황을 복기하면서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편이다. 완벽해질 수 없는 걸 아니까 최대한 해보려고 채찍질하는 셈이다. 다만 그런 고민에 매몰되기 전에 버릴 건 빨리 버리고 할 수 있는 걸 판단하려 한다.
외모도 배우에겐 재능이란 점에서 잘 생겼다는 건 분명한 장점이다.
장점이라면 이미지에 부합하는 캐릭터가 있다는 것 정도? 하지만 너무 잘생긴 배우도 많고, 외모에 자신감이 넘치는 것도 아니다. 잘생긴 내면과 연기력을 갖고 싶다.
로맨스물의 주인공에 어울려 보이는 외모랄까.
아무래도 <식샤2>의 삼각관계 로맨스가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졌으니까. 일일드라마 <천상여자>에서도 자상한 남자였고, <한번 더 해피엔딩>에서도 로맨스가 있었으니까. 아무래도 쉽게 연상되겠지.
혹시 외모에 대한 불만은 있을까?
배우라면 다들 있지 않을까? 내게 없는 이미지를 갖고 싶은 건 어쩔 수 없다. 그래서 한때는 콤플렉스도 있었는데 요즘은 내가 가진 것을 감사하게 여기고 그걸 더 깊게 풀어내는 고민이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
<식샤2>에선 미식의 'ㅁ'자도 모르는 남자였는데, 실제론?
맛있는 거 싫어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특별히 찾아 다니며 먹는 편은 아니다. 입이 짧다면 짧은 편인데 맛보다는 상황이 중요한 거 같다. 김밥 한 줄을 먹어도 다 함께 어우러져서 먹는 게 좋다.
혼자 밥 먹는 건 어렵지 않나?
어렸을 때 부모님께서 맞벌이를 하셔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혼자 먹는 걸 좋아하진 않는다. 하지만 혼자 먹는데 무덤덤하기도 하다. 단순히 끼니를 때우는 거니까. 다만 그걸 외롭다고 생각하면 너무 힘든 일이고, 그냥 어쩔 수 없이 주어지는 삶이니까 그러려니 해야지.
<최악의 하루>에서 신인배우 역할로 등장하면서 주변을 의식하는 연기가 재미있었다. 실제로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졌을 텐데 그런 게 부럽던 시절도 있었을 거다.
아무래도 부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지. 하지만 일희일비하고 싶진 않다. 누가 알아보는 게 배우로서 중요한 건 아니니까. 유명세가 좋기도 하겠지만 한편으론 부담스러울 수도 있고. 자연스럽게 감당할 상황이 되면 감당하는 거고.
본명인 권세인으로 활동하다 <피에타>에 출연할 때부터 권율이란 예명을 썼다.
세인이란 이름도 예쁘지만 힘이 있는 이름을 선택하고 싶었다. '법 율'자를 썼는데 이름을 받고 보니 힘을 주는 이름이 아닐까 생각했다.
아주 오래 전부터 유명한 이름이었다.
그래서 책임감을 갖고 최선을 다하자는 다짐을 하게 됐다. 게다가 진짜 권율 장군의 후손이니까 그 이름에 누가 되진 않아야지. (웃음)
(동방유행 July 2016 VOL.10 '동 COVER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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