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마라톤 출전 선발전에서 1등을 한 조선인 준식(장동건)이 일본의 마라톤 유망주로 촉망 받던 하세가와(오다기리 조)를 제치고 결승 테이프를 끊는다. 하지만 1등으로 호명되는 건 하세가와였다. 분노한 조선인 관중들은 일본인과 뒤엉켜 싸우고 그 결과, 준식을 포함한 조선인들은 현장에서 체포되고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일본군으로 징용된다. 그곳에서 전쟁을 수행하던 준식은 새로운 부대장으로 임명된 하세가와를 마주하게 된다. 어려서부터 마라톤 금메달을 꿈꾸며 경쟁하던 준식과 하세가와의 인연이 전장에서 새로운 악연으로 거듭난다.

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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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웨이> 단평

cinemania 2011. 12. 14. 11:05

<마이웨이>는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 후 독일군 포로로 잡힌 한국인에 관한 사진 한 장이 모티프가 된 소설을 영화화한 결과물이다. 눈길을 끄는 파편 하나를 중심에 두고 몸통을 그려 넣은 영화라는 말이다. 마라톤 금메달의 꿈을 품고 경쟁하던 일제 치하의 일본인과 조선인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전쟁터에 서게 되고, 결국 핏덩어리가 되어 뒹굴다가 몇 번에 걸쳐서 군복을 갈아입고, 노르망디 해안까지 다다르게 되기까지의 우여곡절이 그것이다. 이는 결국 <태극기 휘날리며>로 전쟁신 촬영의 노하우를 익힌 강제규 감독의 야심을 담아내기 위해 마련된 그릇 같다. 전쟁영화의 스케일이 험난한 로드무비의 여정을 따라 전시되고, 끝내 두 남자의 멜로로 봉합된다. 기술적인 완성도가 우월한 전투신이 네 번 정도 마련되는데 저마다 압도적인 스펙터클을 자랑한다. 다만 반복적으로 비슷한 것을 보고 있다는 감상 안에서 그 위력이 점차 무마된다. 그 간극마다 비극적인 시대성 안에서 탈이데올로기적 경험을 공유하는 두 남자의 멜로적인 우정, 페이소스를 자극하는 여정이 분명 효과적으로 감정을 건드리는데, 그 물리적인 감정의 총합이 끝내 클라이맥스의 파고를 이루는 느낌은 아니다. 스펙터클의 풍경 안에 선 중심 캐릭터의 감정선이 지나치게 작위적인 합에서 구르는 탓에 좀처럼 이입하기가 쉽지 않다. 스펙터클의 힘이 다할 무렵, 서사의 흥미도 예상 범위 안에서 딱 떨어진다. 거대한 스펙터클의 전시를 위해서 페이소스가 남발되는 양상이다. 150여 분에 다다르는 러닝타임을 이런 방식으로 견뎌내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무비스트)

Posted by 민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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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이란 말은 부질없다.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을 뒤집어 가정하는 건 어디까지나 불필요한 첨언에 불과하니까. 하지만 현실이 아닌 허구 안에서 가정이란 유효한 착상이다. 논픽션이 아닌 픽션의 세상을 그리는 이야기꾼들에게 가정이란 발칙한 야바위이자 무궁무진한 떡밥이니까.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이하, <바스터즈>)은 픽션으로 디자인된 논픽션의 세상, 다시 말하자면 영화로 이입된 현실의 역사를 전복시키고 깔깔거리는 유희다. 어쩌면 메가폰을 쥔 당사자가 쿠엔틴 타란티노란 사실만으로도 알만한 사람들에게 <바스터즈>는 싹이 노란 영화일 것이다. 그리고 <바스터즈>는 과감하게 돌진하는 피칠갑의 난장 속에서도 과장과 비유를 뒤흔들어 능수능란한 유머로 발화시키는 타란티노적 시네마천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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